대한민국 최고 금수저인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은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한 줌도 안되는 지분으로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지지율 4%에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새누리당과 정치권을 쥐락펴락한다. 이정현 같은 친박계 의원들을 내세워 새누리당을 장악하고, 새누리당을 통해 입법·행정·사법부 관료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재벌 총수들은 더 심하다. 지분율이 1%도 안되지만 순환출자를 이용해 그룹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에버랜드 대주주로 등극한 뒤 에버랜드 보유 지분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등을 지배했다.

형제자매와 연을 끊고 산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 동생 지만씨는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말로 누나와의 관계를 표현했다. ‘진한 물’은 최순실씨다. 박 대통령 동생 근령씨의 남편 신동욱씨도 “아내가 해야 할 일들을 최순실씨가 했다. 최씨로 인해 형제간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삼남매는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세운 육영재단의 소유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박 대통령이 처음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1982년에는 최태민씨를 고문으로 임명했다는 이유로 근령·지만씨가 반기를 들었다. 이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근령씨는 동생 지만씨와의 송사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재벌 2·3세들도 유산 상속 등을 놓고 암투와 소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삼성가 이맹희·건희 형제의 분쟁, 현대가 정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이 과거 일이라면 효성(조현준·현문), 금호(박삼구·찬구), 롯데(신동주·동빈)의 골육상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산 다툼은 그 재산이 이들의 노력으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6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재벌 총수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배신을 혐오하는 것도 박 대통령과 재벌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조폭 우두머리처럼 부하들에게 맹목적인 의리와 복종을 강요한다. 윤리나 도덕, 개인의 가치 판단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 비자금 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현대차는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에어백 센서 결함과 세타2 엔진 불량 문제를 경향신문 등에 제보한 김모 부장을 해고했다. 한화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정권과 재벌의 유착을 비판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내치고, 친박이 비박을 욕하는 것과 판박이다. 배신을 혐오하는 것은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배신자를 응징하는 것은 그만큼 배신이 두렵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늘면 이들이 쌓은 성은 저절로 무너진다.

박 대통령은 검찰에 당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3개월 전만 해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최고의 특수부 검사라는 평판을 들었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민정수석으로 앉혔다. 그러나 결국 김수남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움직인 40여명의 검사들에게 탈탈 털렸다. 막강한 재벌 총수들도 검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다양한 방법으로 검찰 수뇌부를 관리하고 수사가 시작되면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줘가며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검사 비리 문제 같은 것으로 검찰이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면 도움이 안된다. 검찰은 재벌의 뒤통수를 치면서 한순간에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최태원(SK)·김승연(한화)·이재현(CJ) 회장이 그렇게 해서 감옥에 가게 됐다는 시각이 있다. 작년에는 포스코가, 올해는 롯데가 그런 이유로 검찰에 당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전직 대통령은 화합을 명분으로, 재벌 총수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사면을 받는다. 

일상의 자유로움에서 박 대통령과 재벌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숙소에 누워 있어도 알아서 보고가 올라오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지시가 내려간다. 없는 듯하면서도 있고, 있는 듯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이들은 오로지 질문을 할 뿐 답변은 하지 않는다. 누가 적어준 것을 그대로 읽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수천만 시민이 TV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소소한 것까지 박 대통령과 재벌은 닮았다. 논어에 ‘인지장사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면 선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고 치명적인 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 스스로는 개과천선하기 어렵다. 바로 이것이 추운 겨울에도 시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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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우아함이라곤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말이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앉혔던 1차 청문회는 가관이었다. 신념이나 명예를 지키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자들. 증인으로 출석한 자들은 ‘불법’보다는 기꺼이 ‘무능’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비록 사회적 선(善)이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이나 철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는 고상함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정기준(윤제문 분)’을 떠올려보라. 그에게는 ‘악당의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증인석에 앉은 자들 중에 그 정도의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는 모르오, 나는 무능하오, 나는 꼭두각시였소”를 읊조렸을 뿐이다.

나는 이 처절한 무능의 스펙터클 앞에서 기괴함을 느꼈다. 자유주의와 만난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는 기회의 균등과 능력 본위를 기반으로 한 합리성이다. 이 시대에 무능은 도태의 원인으로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발버둥 친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의 무능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그 큰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사진 오른쪽부터)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수치심은 사회적인 맥락과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매우 문화적인 감정이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는 공동체가 지정해주며, 타인의 시선은 우리에게 그 기준을 내면화하게 한다.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들이 무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사회적 약속의 장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법이 작동하는 장에서 살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를 규율하고 있는 이 세계의 가치는 저들에게 아무런 행동의 지침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의 전시된 무능과 뻔뻔함은 상징적이다. 평등, 능력 본위, 합리성 등을 내세우며 세계에 등장한 자본주의가 처절하게 실패하여 완전한 판타지로 휘발되었다는 것을 ‘한국 자본주의의 리더’인 그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대물림되는 무소불위의 계급이 상존하는데 ‘개, 돼지들의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법망의 공백 안에 몸을 숨겨 어떻게든 당장의 곤란함을 피해가면 그만이다. 이 하루만 잘 버티면 영원과도 같은 부와 권력이 그들 앞에 있다.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이나 명예 따위, 중요할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스스로 ‘개, 돼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무능을 손가락질하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를 공고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꺼이 무능함을 선택한 자들이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종류의 ‘스펙’과 자기계발의 신화를 강요하는 각자도생의 담론을 생산하고 있음을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능이 오히려 위세가 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예컨대 이재용 부회장의 얼굴에 때때로 떠오르던 ‘교활한 썩소’는 바로 이런 이율배반이 흘러나오는 틈새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우리를 구속하는 ‘유능함’이라는 주술로부터 벗어나되, 그들에게는 무능을 가장한 부정(不正/否定)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봉건적인 계급제가 근대적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부활한 현장을 보고 있다. 정유라가 ‘부모의 돈도 실력’이라고 말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실력’이라는 말을 봉건적 언어로 왜곡했다. 이는 그들만의 문법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법이 우리의 문법을 침해해 오염시키는 것을 용인해선 안된다.

수치심은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을 억압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고 성찰의 기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하는 문명의 감정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 한다.

수오지심은 모멸감과는 또 다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그의 아내가 청문회 후 드러냈다는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은 억울함과 분노, 짜증 등을 동반한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일생이 수치의 기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록 앞에서 모멸감을 느껴야 할 것은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 모멸의 시대를 뒤집을 봉기의 시공간을 열었다. 이 혁명의 시공간이 그들에게 수오지심을 가르칠 수치심의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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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시민에 의해 포위된 청와대에서 홀로 웅크린 채 거짓 해명에 억지 부리기, 버티기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야금야금 국정 복귀의 기회만 노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억지다 싶으면 찔끔 물러서가며 오로지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시민에 맞서고 있다. 최순실씨 등 3인의 공소장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그동안 나돈 이야기로 어느 정도 단련된 시민조차 깜짝 놀라게 하는 것들이었다.

정권 초기에 잠시 연설문 등의 표현에서 최씨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 박 대통령의 말은 온통 거짓이었다. 지난 4월까지 외교문서는 물론 장차관 인선 검토 자료까지 줄기차게 최씨에게 넘기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 등의 설립과 모금 전 과정을 깨알같이 지시한 것도 모자라 재벌 총수에게 최씨의 납품 청탁까지 챙겨준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KD코퍼레이션이라는 업체로부터 현대자동차에 원동기용 흡착제를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최씨는 이를 박 대통령에게 전했고 박 대통령은 정몽구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를 관철했다.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대통령이 한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22일 (출처:경향신문 DB)

그래 놓고 검찰 조사 내용은 상상과 추측에 불과하며, 수사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말 잘 듣던 검찰이 하루아침에 변해 없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는, 삼척동자도 코웃음 칠 억지주장이다. 어제는 돌연 국회가 추천해주는 총리를 임명해 내치를 맡기겠다는 자신의 제안까지 거둬들였다. “(야당이 제시하는)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야당 핑계를 댔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주말 즈음에는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자숙하는 체하다 지나가면 다시 배짱을 부리는 것도 오직 한 가지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자리마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검찰을 종처럼 부릴 수도 없고, 재벌 총수를 불러 돈을 뜯을 수도 없는 자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도 주재할 엄두를 못 내는 그 자리의 쓸모는 오직 하나, 당분간 수사를 피하는 것이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되든 지금 그에게 중요한 일은 대통령이라는 석자가 붙은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그것을 위해 박 대통령은 저잣거리 사람들도 하지 않는 막무가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절대 제 발로 나가지 않을 테니, 나를 끌어내릴 수 있으면 해보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지금 이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중·고등학생도 주시하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대통령이 국가를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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