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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4 [경향의 눈]저녁이 있는 삶 언제 오나

7·30 재·보선 투표함이 열렸을 때 크게 실망했다. 한마디로 “이건 아닌데…”였다. 심판받아야 할 여당이 되레 승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11 대 4로 스코어가 굳어지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라리 잘됐다”는 거였다. 9 대 6이나 10 대 5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물 손학규의 낙선이 확정됐다. 그때는 벌떡 일어나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거다!”라며.

정치평론가는 아니지만 정치평론가 뺨치는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주곤 하던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야당 지지 성향 유권자의 심정을 아주 잘 대변하면서도 마지막 부분에 찍은 방점이 독특해서 귀담아들었다. 그는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당락을 7·30 재·보선의 최고 관전 포인트로 삼았고 그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다음날 손 고문이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을 보고는 박수까지 보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해석은 이렇다. 손 고문은 인품이나 자질 면에서는 대통령감 1순위다. 하지만 지지도는 그런 평가를 좀처럼 받쳐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손 고문이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국민은 후보의 인품이나 자질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이미지를 보고 투표한다. 손 고문에게는 강렬한 이미지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이면서도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낙선하면서 가능성이 생겼다. 정계은퇴를 하면 그것이 이미지가 되고 나중에 야권이 그를 불러낼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세계에서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썩 동의하기는 곤란한 시나리오다. 손 고문의 성격이나 그동안의 정치 행보를 보면 그런 복선을 상상하기도 어렵거니와 의도하지 않게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가 쉽게 움직일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정계은퇴 선언 이후 그에 대한 정치적 재평가가 활발해지고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이 보기 좋다” “한국 정치의 큰 손실이다” 등의 평가가 그렇다.

사실 손 고문과 같은 경험과 경륜을 가진 정치인을 현실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대학 졸업 후 민주화운동 8년, 영국 유학 7년, 학계 5년 등 정치권 밖에서 보낸 20년은 인고의 준비 기간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넘나들며 21년 동안 경륜을 쌓았다. 신한국당 등에서는 여러 당직과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고, 민주당에서는 당 대표에까지 올랐다. 그때마다 수처작주(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라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손 고문은 대학 시절 무기정학 중에 무기정학을 받았을 정도로 열혈 운동권이었다. 그런 과거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격하하지도 않는 그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그의 이념 지향과 통합의 정치 노선 등 ‘손학규식 제3의 길’은 그런 깊은 고민과 공부와 경험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정성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바탕에서 나온 그의 정치적 꿈의 결정판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스털린의 역설(경제가 성장한 만큼 사람들의 행복감은 늘지 않는다는 경제이론), 아니 그 함정에 빠져 있다. 성장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 함정에서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삶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시장경제, 즉 경제 민주주의, 복지, 진보적 성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에서)

손학규 著 '저녁이 있는 삶' 출판기념회 당시 모습 (출처 : 경향DB)


1993년 4·23 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을 때 그는 기자에게 “조직·자금·지명도 면에서 절대 부족한 제가 참신하고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뛰어들었는데 국민이 인정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힘과 돈과 이미지에 의존하는 정치판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정치가 발붙일 여지는 별로 없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제1야당으로 옮겼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름 아닌 그의 은퇴가 증거다.

손 고문의 은퇴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의 정치적 실패는 우울하다. 돈보다 생명, 성장보다 행복을 중심에 두는 정치에 대한 현실적 기대를 기약 없이 미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이제 누가 말할 것인가. 아니 그런 정치를 누가 할 것인가.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에 묻고 싶은 말이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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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