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목소리와 표정에서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분이다 보니 기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는 16일 사퇴 기자회견이었다. 국정농단 사태에 떠밀려 임기 2년 당 대표직을 4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일주일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에 “혼밥, 혼술은 해봤지만 ‘혼박’은 처음이었다. 날아갈 것 같다”면서 박수치며 기뻐했던 사람들은 ‘이건 뭐지’라고 했을 장면이다.

 

이른바 친박이라는 사람들. 자신들이 따랐던 지도자가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홀로코스트 같은 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건 중요하지 않았다. 비박 인사들을 경멸하는 말을 쏟아내다가도 원내대표 경선이 임박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 모드로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어찌됐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정치를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였다.

 

원내대표 경선을 하던 날,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15%. 더불어민주당이 40%를 찍었으니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지지율’은 흔적조차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최소 지지율이 35%”라던 새누리당은 제2야당과 지지율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그 이유는 다 아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귀 기울여 신속하게 과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다. 살아있는 정치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왼쪽에서 세번째)가 1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최연혜·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왼쪽부터)과 지도부 일괄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국민들은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지자 ‘이것이 나라냐’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않게 되고, 국가와 국민은 분리됐다. 새누리당도 그랬다. 대통령의 오만·독선을 견제할 의지나 능력은커녕, 그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새누리당도 국민들로부터 분리됐다. 4·13 총선에서 ‘여소(與小)’로 전락한 이유였다. 대통령이 최순실이 엮어놓은 실에 따라 움직이는 허깨비였다는 것이 드러나도 대통령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 친박의 실상이다. 이런 집단이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친박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념과 노선 따위는 애시당초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박근혜’를 버리면 더 이상 나란 존재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을 해체하라”고 하고, 여의도 당사에 계란이 날아들어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4·13 총선에서 갖은 무리수를 써가며 배지를 달아준 ‘진실한 사람들’은 믿는 구석이었다. 당의 생리도 잘 알았다. 새누리당은 보수적 정서와 행동, 현상유지적 가치를 통해 오랫동안 일관성과 동질성을 유지해왔다. 다른 정당을 흡수해 세를 불리기는 했지만 내부가 쪼개진 적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비박은 집단적으로 뛰쳐나가지 못한다’는 게 친박의 구상으로 정리된다. 친박의 농단으로 4·13 총선에서 참패했음에도 넉 달 뒤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에서 둘째라고 하면 서러워할 친박 당 대표를 배출하지 않았던가.

 

비박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친박 추대 후보 정우택 의원이 경선에서 얻은 표는 62표.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 반대 56표보다 6표가 더 많았다. 정 의원이 “내년에 좌파정권,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호소할 때, 비박 단일후보 나경원 의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친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이미지 이외에는 변화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진단도 틀렸고, 아무것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보수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삼았으니 친박이나 비박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저희 당은 보수정권으로 대표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뒤바뀌지 않게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비박들을 적당히 비상대책위원회에 끼워주는 방식으로 포장지만 바꿔 놓고 달라졌다고 할 태세다. 눈엣가시였던 이 대표를 위시한 친박 핵심들은 2선으로 물러나지 않았느냐면서.

 

친박이 비박과의 팽팽한 힘겨루기에 이겼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종종 쓰는 표현이 ‘제궤의혈(堤潰蟻穴·작은 개미 구멍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인데 둑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3년4개월 뒤 21대 총선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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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계가 요즘 하는 일을 보면 그 막무가내 행태를 표현할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부른 폐족으로 자성하기는커녕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막 나가고 있다. 그제는 박 대통령을 징계하려는 당 윤리위까지 편법적으로 장악했다. 친박 일색의 최고위원회가 이진곤 윤리위원장과 사전 협의 없이 친박 성향 위원 8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기존 윤리위원 7명보다 더 많은 위원을 추가 투입해 대통령 보호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그래 놓고 “애초 윤리위 구성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꼼수와 편법도 모자라 오리발까지 내미는 처사에 할 말이 없다. 참다못한 이 위원장과 기존 위원들은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왼쪽)이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계 주류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친박처럼 몰상식한 정치 집단은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민주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 집단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의 맹목적 충성은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라는 표현이 백번 맞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강요하며 후배 정치인들을 겁박하는 서청원 의원의 조폭적 행태 역시 목불인견이다. 촛불시민의 분노를 불렀던 김진태 의원은 어제 또다시 “친박이 아무리 주홍글씨라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진 않았다. 종북 좌파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생겼다”고 했다. 국정농단 동조 세력이 순국자들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이끌었으니 탄핵으로 귀결된 것이 당연하다. 친박은 자신들의 모임 명칭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라고 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정통 보수세력으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했다. 혁신과 법치주의를 표방하다니 그 뻔뻔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친박은 16일 새 원내대표로 정우택 의원을 밀기로 어제 집단 결의했다. 탄핵을 부른 데 대한 반성은커녕 또다시 당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시민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오만한 행동이다. 신임 원내사령탑은 조만간 이정현 대표가 사퇴하면 당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하게 된다. 한 줌도 안되는 계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오염시키는 친박세력이 다시 당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 의원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친박을 지금 징치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같은 불통 정권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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