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오늘 국회에서 처리된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축출 여부를 결정할 의원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역사의 한 장을 마주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 나은 국가를 향해 행진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갈 것인가. 시민의 뜻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새로운 국가, 새로운 질서를 세우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적 질서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시민 전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시민이 위임해준 권력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최순실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음이 드러났다. 최씨의 국정농단 실태는 그제 국회 국정조사에 나온 최씨의 측근들을 통해 다시 입증됐다.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리며 최씨와 함께 국정을 주무른 차은택씨는 “최씨와 박 대통령이 동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최 공동정권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때 최씨를 도왔던 고영태씨도 “최씨가 김종 전 문화부 차관을 수행비서쯤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사실 앞에 시민들은 분노와 참담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특검 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의 박 대통령 행적이 드러나면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해놓고 한 달 넘게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미르·K스포츠 재단을 만들어 재벌들로부터 돈을 내도록 한 것이 국가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거짓말과 꼼수로 시민을 우롱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국회에 두 번씩이나 거취를 정해달라며 공을 던져놓고 정치적 혼란을 부추기며 연명을 꾀했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과거 정윤회씨 문건 유출이나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사 때 “국기를 흔드는 행위”라고 딱 잡아떼며 보호막을 쳤다. 국정농단의 주범이 자신이면서 끝까지 시민을 속이고 정권 유지에만 골몰하는 가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민주당 당사를 도청한 사건으로 물러난 게 아니다. 사건 발생 후 대응과정에서 거짓말한 사실이 밝혀졌고 그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리자 스스로 사임했다. 닉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헌법을 유린하고 시민에게 거짓말을 반복한 박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탄핵한단 말인가.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권력 유지를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지금도 시민의 뜻에 저항하고 있다. 탄핵이 가결되어도 물러나지 않고 헌법재판소에서 법리 다툼을 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보수 일색으로 짜놓은 헌법재판관 진용을 믿고 있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라는 원칙 하나에 의존해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는 대통령에게는 탄핵으로 응징하는 것 이외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이미 80%의 시민이 박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지지하는 이는 100명 중 5명이다. 선거부정을 저질러 축출된 초대 대통령도, 유혈 진압으로 집권한 군인 대통령도 이렇게 배척받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을 뽑았던 시민들이 더 실망하고 분개하는 이유가 뭔지 더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회는 민주공화국의 품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탄핵소추안을 가결해야 한다. 최고권력자도 법 앞에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입증하기 위해, 민주적 질서의 수호를 위해 국회는 그를 탄핵해야 한다. 헌법, 민주주의, 시민 주권, 정치적 책임성, 반부패라는 대의 앞에 여당과 야당, 친박계와 비박계,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시민의 대표권을 상실했다. 그렇다면 시민을 대표하는 유일한 제도로 남은 국회가 할 일은 그의 대표권을 회수하는 것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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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은 지 30년이 됐고, ‘박근혜’는 그 여섯번째로 선택받은 대통령이다. 어디 순탄한 정권은 없었다. 임기 초 90% 넘는 지지를 받다가 떠날 때쯤에는 곤두박질친 대통령이 있었고,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몇 번의 정권을 지나다보니 주기라는 것도 있다. 취임 초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비리로 걸려들면 정권의 도덕성이 상실돼 국정의 추가 비틀거린다. 측근들, 친·인척 이름이 나오면 국정을 이끌 힘이 쫙 빠진다. “역사는 평가해 줄 것이다. 역사로부터 평가받겠다”면서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곧장 여론의 역풍을 맞고 흐지부지된다. ‘미래 권력’ 자리를 다투는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현재 권력’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짐 쌀 준비를 한다. 물론 후임 대통령이 와도 1~2년은 고생을 해야 한다.

누구는 대통령의 5년이 비슷하게 반복돼 온 것을 ‘불행한 역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정권 5년 동안 내세울 만한 공(功)이 있었다. 과(過)도 있었지만 반면교사가 되면서 사회가 발전해왔다. 청와대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온 검찰 특별수사본부 이영렬 본부장(서울중앙지검장)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20일 서울 중구 한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그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비선 파동’이 났을 때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 파견됐다 나왔던 공무원 ㄱ씨의 허탈한 표정이 아직 생생하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실패하면서도 수십년간 쌓아온 시스템이란 게 있는데 그게 송두리째 무너졌잖아요.” ㄱ씨도 자신이 청와대에 있을 때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랐을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양태들이 드러난,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놓고는 말을 못할 것이다. 공무원이니까. ㄴ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중앙부처 5급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을 때, 고참으로부터 들은 “일선 공무원들은 장관을 위해, 장관은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은 국민을 바라보고 일을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설령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는 일도 결국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고 했었다고 한다. 요즘 민심 동향 파악이 임무인 공무원들도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특별히 전할 민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 5%가 지지하고, 딴소리 말고 즉각 퇴진하라는 여론이 계속 늘어 70%대에 이른 상황이니 ‘위’에다 무엇을 보고하겠는가.

그동안 대통령은 두 번 사과했다. 처음은 마지못해 한 티가 역력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래서 두번째 사과를 했지만 “내가 이러려고 ○○○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패러디를 양산했을 뿐이다. 사과의 성패는 사과하는 이의 말과 의도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심과 태도, 즉 쌍방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비난받을 자신의 행동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에 따른 사회규범을 수용할 뜻을 밝혀야 한다. 위기 모면에만 급급한 이런 식의 대통령 사과는 백날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말이 있는데 그 얘기를 안 하기 때문이다. 말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도 지났다.

평화롭게 마무리된 지난 토요일 집회는 ‘세상의 바보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었다. 헌법을 유린당한 국민들에게 ‘헌법(대통령 권한) 수호’만 얘기하고 “대통령 관련 의혹 중에 입증된 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머리를 들고 있다. 민심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데, 대통령 자신도 결국은 민심에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알 텐데 이판사판에 다름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도 열었다. 가용 공적 수단을 총동원해 민심과 맞서겠다는 것인데, 기세등등했던 대통령이 초라해 보인다.

대통령은 검찰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공범’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주에 받겠다던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특별검사로부터 수사를 받겠다고 한다. 어차피 ‘대통령 박근혜’가 아니라 ‘피의자 박근혜’로 지내야 할 시간들이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창조 비리’의 수단이었음이 국정농단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국정에 복귀한다고 한들, 갖은 수를 써서 남은 1년3개월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들, 무엇을 하더라도 될 일도 없고 될 리도 없다. 그동안 온나라가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다. 안보의 위기, 경제의 위기는 가중되고, 국격과 국익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버티면서 이제 국회는 탄핵 절차에 돌입할 태세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한다. ‘개인 박근혜’의 자존심은 접어두고, ‘국가’와 ‘역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자존감을 세워줬으면 한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명예’일지도 모른다. 떠날 때는 말없이.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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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의 탁월한 재능 가운데 하나는 불리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판을 ‘이전투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범법자와 고발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사안의 본질은 흐려지고 곁가지만 무성해진다. 비리의 몸통은 온존하고 깃털만 치명상을 입는다.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대중은 시선을 딴 데로 돌리게 된다. 정치에 대한 혐오, 공동체를 향한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청와대가 다시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 모양이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관련 문건을 작성·유출한 배후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주도하고 박지만 EG 회장 측근 등이 참여한 ‘7인 모임’을 지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한 뒤 특별감찰을 해 이 같은 결론을 내고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조 전 비서관이 모임의 실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또 다른 ‘진실게임’으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청와대 감찰 결과가 사실이라면 마땅히 수사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수사를 하더라도 선후는 가려야 하고, 형평성도 지켜야 한다. 이번 사건의 초점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이 실재했는지 여부다. 이 부분을 철저히 수사하지 않고서 작성·유출의 배후부터 따진다면 옳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정윤회씨 소환 조사를 두고 뒷말이 많은 터다. 검찰은 소환에 앞서 정씨 자택이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출석 과정에서 보안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직원 전용 출입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었다. 조사 시간 동안 정씨 사건 담당 부서가 있는 2개 층에 대해선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이러니 정윤회씨가 유감 표명 한마디 없이 “엄청난 불장난” 운운하는 것 아닌가.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검찰 출석 16시간이 지난 11일 새벽 2시경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내용을 “루머”(12월1일), “찌라시”(7일)라고 비난해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청와대가 특별감찰 결과까지 검찰에 넘기면서 ‘세 번째 가이드라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검찰이 행정부 산하임을 감안한다 해도, 대통령 발언과 청와대의 행태는 도를 넘은 수사권 침해라고 본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다. 검찰은 이 점을 깊이 새겨 국민 앞에 모든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섣불리 ‘불장난’으로 규정하고 ‘불장난에 춤춘 사람’이나 쫓아다닌다면 검찰은 존립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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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관련 고소 사건을 수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는 ‘찌라시’의 유출자와 유출 과정을 밝혀내는 일인가.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인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검찰의 행보 때문이다.

검찰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경찰관 2명을 체포했다. 이들로부터 문건을 넘겨받은 한화그룹 직원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 문건 외에 언론에 보도된 다른 문서의 유출 과정까지 모두 수사할 것이라고 한다. 유출 문제에 관한 한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비선 개입 의혹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는 소극적이다. 검찰은 처음부터 ‘십상시 회동’의 실재 여부에만 수사를 집중해왔다. 이 회동이 없었다면 문건은 허위이고, 그렇다면 문건에 나오는 다른 의혹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일까. 문서의 일부 내용이 거짓이면 문건 전체가 거짓이 될까. 더욱이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문건에는 애초 폭로된 것보다 많은 정보가 포함돼 있음이 속속 드러나는 터다. 일부 내용은 실제 정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요컨대 ‘판’은 계속 커지는데 검찰은 애써 외면하는 형국이다. 의혹의 초점인 정윤회씨가 오늘 출석할 예정이지만, 검찰의 의지가 없다면 정씨 조사도 해명만 듣는 통과의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검찰 출석 16시간이 지난 11일 새벽 2시경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정씨는 이번 사건의 배후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만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출처 : 경향DB)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고발된 사건을 중심으로 수사하되, 수사 단서가 있고 범죄의 단초가 되면 수사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건 유출·명예훼손 사건을 먼저 마무리한 뒤 다른 의혹으로 넘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사 기법상으로 맞는 말일지 모르나 검찰의 양태에 비춰보면 믿기 어렵다. 검찰은 세계일보 보도가 나오자마자 고소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을 열흘이 넘도록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사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검찰의 난처한 처지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건 내용을 “루머”(12월1일) “찌라시”(7일)로 규정한 터다. ‘수사 가이드라인’을 넘어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수준 아닌가.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왜, 무엇을’ 수사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출자가 경찰관이든 누구이든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질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여부다. 이 부분을 밝혀내지 못하는 한 의혹은 덮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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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정윤회

‘비선 실세’로 지목돼온 정윤회씨가 개입된 ‘승마협회 사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씨 편을 들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경질을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유진룡 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박 대통령이 자신을 집무실로 불러 수첩에 적힌 문화부 국·과장을 지목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교체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문화부 국·과장은 정씨 부부가 연루된 승마협회 감사 책임자다. 감사 결과가 정씨 쪽에 유리하게 나오지 않자 청와대에 담당자 처벌을 청탁했고, 박 대통령이 직접 문화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을 인사조치했다는 게 유 전 장관의 증언이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박 대통령이 실은 ‘비선 실세’를 비호하며 진실을 숨겨왔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인사는 장관의 고유권한이고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은 장막 뒤에 숨지 말고 그 전말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유 전 장관 증언으로 의문투성이인 승마협회 사건의 맥락이 잡힌다. 정씨의 딸이 지난해 4월 전국승마대회 출전 후 판정 시비가 일자 경찰이 수사를 벌였다. 한 달 뒤엔 청와대가 승마협회 감사를 문화부에 지시했다. 판정 시비에 경찰이 개입하고, 일개 ‘협회’에 대한 조사를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건 이례적이다. ‘배후’가 어른거린다. 실제 문화부 감사 결과가 ‘정씨 측이나 반대편 모두 문제가 많다’고 나온 뒤, 박 대통령이 직접 담당 문화부 국·과장 교체를 지시했다. 유 전 장관은 “조사 결과 정씨 쪽이나 그에 맞섰던 쪽이나 다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올린 건데 정씨 입장에선 상대방만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문화부가) 안 들어주니까, 괘씸한 담당자들의 처벌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정씨나 그의 전 부인 최순실씨가 청와대에 불만을 전달했기에 청와대가 일개 승마협회 문제를 직접 챙기고, 대통령까지 일선 국·과장 문책 조치를 했다는 얘기다.

비선 의혹에 싸인 정윤회 (출처 : 경향DB)


이만큼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실체를 드러내는 사례도 없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유 전 장관 증언이 나오자 “장관 대면보고 때 체육계 적폐 해소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유진룡 장관이 일할 수 있는 적임자로 인사조치를 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해명이라고 한 건가. 바로 그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힌 문화부 국·과장 좌천 인사를 한 사람이다. 이제 의혹의 몸통은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조처를 지시하면서 “나쁜 사람이라더라”고 인용화법을 썼다. “나쁜 사람”이라는 애기를 누구로부터 들은 것인지를 포함해 모든 진상을 직접 소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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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정윤회

검찰이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관련 수사팀을 구성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출발점은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의 명예훼손 고소 사건이지만 향후 진전에 따라 예상외의 파장이 일 수도 있다. 검찰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검찰 수사 대상은 두 가지다.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측의 명예훼손 혐의와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박모 경정의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다. 본류는 당연히 전자다. 명예훼손 혐의를 규명하려면 실제 정씨의 국정개입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전자를 형사1부에, 후자를 옛 대검 중앙수사부 기능을 하는 특수부에 배당했다. 문건 유출에 초점을 두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사건 배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의 의혹 제기를 “근거 없는 일”로,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한 뒤 이뤄졌다. 결국 박 대통령 발언이 ‘수사 가이드라인’이 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이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현 정부 비선실세로 꼽히는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파문을 비판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불거지면 검찰에 해결사 역할을 맡겨왔다. ‘김진태 검찰’은 그때마다 청와대 뜻에 충실히 따랐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불법 열람·유출 사건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무혐의 처분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수사 땐 청와대의 뒷조사에 대해 “정당한 감찰”이라며 면죄부를 줬다.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사건에선 표현의 자유를 옥죄고 언론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마자 ‘사이버 명예훼손’에 칼을 빼들었다. ‘공익의 대표자’여야 할 검사들이 ‘권력자의 칼’로 전락한 격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다를까. 검찰의 수사팀 구성을 보니 기대 난망이다.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맞춰 문건 작성·유출자를 처벌하고, 비선 개입 의혹은 실체 없는 풍설로 결론짓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하지만 ‘청부수사’로 이런 결론을 내린다 한들 파문이 수습될 리 만무하다. 문건에 등장하는 인사들이야 ‘명예회복’을 할지 모르나 권력 핵심부를 둘러싼 의혹은 증폭되고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수많은 과거 사건과 마찬가지로 재수사나 특별검사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꼭 1년 전 취임사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다짐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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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서 권력형 의혹이나 국기문란 사건이 터지면 ‘대처 문법’이 있다. 관련 의혹이나 의문을 제기한 언론이나 야당 등을 ‘법적 조치’로 위협하고, ‘정치검찰’의 물타기 수사로 물꼬를 돌리고, 곁가지를 끄집어내 본질을 호도하고,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궁지에 몰리면 “개인적 일탈 행위”로 몰아 꼬리자르기에 골몰하는 식이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사건을 필두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등 청와대가 개입된 사건에서 특히 그랬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로 거론되어온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청와대 문건이 공개되자, 당황한 청와대와 여당이 예의 ‘본말전도’ ‘책임 떠넘기기’ ‘꼬리자르기’ 수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당장 ‘청와대 문건’의 작성 경위·내용에 대해선 아무런 조사나 설명 없이 “찌라시 수준”이라고 일축하면서, 애써 ‘문건 유출’만을 부각시킨다.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정윤회씨 감찰을 벌여 보고서를 작정한 박모 전 행정관의 문건 유출 의혹과 기강 문제로 초점을 돌리려는 적반하장이다. 새누리당은 연일 청와대 문건을 “허구와 상상에 기인한 소설”로 단정하며, ‘문서 유출’ 엄단만을 촉구하고 있다. 대놓고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꼴이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문서 유출’을 따지려면, 공식 직책이 없는 정씨에게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 동향 등을 유출했다는 청와대 인사들의 중대 범죄 여부부터 조사해 규명해야 한다. 청와대도 존재를 시인한 ‘공식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언론사를 ‘명예 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도 실체 추적을 옥죄려는 치졸한 대응일 따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비선실세 국정농단진상조사단장이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청와대 문건 유출'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분명코 본질은 “라면박스 2개 분량의 청와대 문건” 유출 여부가 아니다. 왕조시대의 ‘환관권력’을 연상케 하는 비선 측근들의 국정농단 내용이 담긴 청와대 보고서가 작성되었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정식 보고된 사실이다. 국정에 개입한 구체적 행위와 정황이 적시되었음에도 면밀한 조사나 조치 없이 “풍설”로 치부해 없던 일로 덮은 경위다. 외려 보고서를 올린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비서관과 행정관이 인사조치되는, ‘권력 암투’의 잔영이 강렬하다. 본디 ‘공식’이 아닌 ‘비선’ 권력을 둘러싼 의혹은 감추려 들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안으로 곪기 마련이다. 청와대는 속히 보고서 작성 경위,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 대통령에 대한 보고 내용, 사후 조치 등에 대해 낱낱이 밝혀야 한다. 최종적으론 정윤회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이른바 ‘십상시’들의 국정농단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명명백백히 규명되어야 할 터이다. 그리고 ‘비선 측근’이란 의혹 자체가 곧장 대통령에게 연결되는 만큼 이번 파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입장표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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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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