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어제 고조되는 북핵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긴급 제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하고, 6자·4자회담 등 다자회담을 재개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참모들의 전면적 쇄신도 요구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다른 야당들과 달리 건설적인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야당의 모습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5일 오전 정론관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임시배치를 중단하고 지난 정부 안보 적폐세력의 밀실 외교에 의한 사드 조기배치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가 “강대강 대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과감한 대화 제안에 나서야 한다”고 한 것은 현실을 정확히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원칙도 전략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이끌어나가기는커녕 그에 휘둘리며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응수위만 높여왔다.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전략자산 배치 철회라는 이른바 ‘쌍중단’을 해법으로 제안한 것도 타당하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종료된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훈련을 축소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나아가 일부 훈련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핵동결부터 이끌어내는 방안은 현실적이다. 실현불가능한 전술핵 재배치 등 강경 입장만 관성적으로 되풀이하는 보수 야당과 대비된다.

정의당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협조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난맥상을 매섭게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비판할 것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기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정의당의 시의적절한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야·정 평화협력체 구성 제안도 즉각 시행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한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정의당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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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가 7월 차기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지난 주말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당의 새로운 지도력을 발굴하고 그 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시기”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간 우리 당이 워낙 생존에 허덕이고 제도적 제약 때문에 유능한 잠재적 리더들이 성장하지 못한 현실에 큰 책임감을 가져왔다”고 했다. 심 대표는 5·9 대선에서 정의당 후보로 완주, 6.1%를 득표했다. 역대 진보정당 대선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이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사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진보적 가치와 정책들이 왜 필요한지 설득력있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정당지지도에서 정의당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8% 동률을 이뤘다. 보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한국당·바른정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지지도가 껑충 치솟은 것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의 역량을 확인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진보정당은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이 40년 만에 원내 진입한 이후 여러 차례 부침을 겪어왔다. 정의당은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거친 후 창당됐다. 그동안 시민 월급 300만원, 국회의원 세비 최저임금 연동 상한제 등 거대 정당들이 외면하는 의제와 정책을 제시하며 진보정당의 면모를 강화했다. 여기에 오기까지 진보의 스타 정치인이라 할 수 있는 심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의 힘이 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심상정·노회찬 이후를 끌고 갈 젊은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다. 정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타 정치인이 필요하지만 또한 소수에게만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게 지금 정의당이 처한 딜레마다.

정의당은 슬로건과 달리 엘리트 정당, 강남 좌파 정당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노동자·서민이 지지하고 그들이 당원으로서 후원하는 정당이 아니라 지식인 및 중산층이 지지하고 주축인 정당이었다. 노동자·서민의 이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과 그들을 대표하는 참신한 리더십으로 당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지 못한 것이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당 안팎에서 널리 젊고 매력적인 인물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엔 진보적 대안정당을 열망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 진보정당답게 당의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으로 그 열망에 부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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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정책으로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친(親)노동 대통령으로 분류된다.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편에 섰다. 대기업의 독점을 용납하지 않았고, 금융시장 규제를 강화했다. 보수세력과 자본가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될 만했다. 루스벨트는 1933년 첫 취임 연설에서 밝힌 대로 “돈과 이윤보다는 사회적 가치에 헌신해야 경제 재건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른바 ‘와그너법(Wagner Act)’을 제정해 노조결성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했다. 노동시간을 규제했고, 아동노동을 금지했다. 뉴질랜드가 1894년 처음 도입한 최저임금제를 미국 노동시장에 착근(着根)시킨 것도 루스벨트였다. 그는 1938년 시간당 25센트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서 “노동자들이 생존할 수 없도록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기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소득 하한선을 설정한 루스벨트는 상한선도 그어야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은 상위 1%의 소득이 국민 총소득의 20%를 웃돌 정도로 소득불평등이 극심했다. 루스벨트는 소득계층 간 격차를 줄이는 ‘대압착(Great Compression)’의 일환으로 1942년 소득상한제 도입을 추진했다. 연소득 2만5000달러를 상한선으로 설정하고, 초과분은 100%의 세율로 과세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선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득상한제는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지만 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을 불렀다. 의회는 공방을 거듭한 끝에 1944년 20만달러가 넘는 소득에 대한 과세율을 94%로 높이는 절충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후 소득분배는 눈에 띄게 개선됐고, 세수도 늘어났다. 루스벨트가 빈부격차 없는 세상을 꿈꿨다는 것은 1937년 두 번째 취임 연설문에 드러나 있다. “가진 자들의 부유함에 많은 것을 더하는 것보다 빈곤층을 넉넉하게 해줘야 미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루스벨트처럼 ‘노동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선거 구호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내걸었다. 시대정신으로는 ‘불평등 해소’를 꼽았다. 노동 존중의 정신이 헌법에서부터 구현되도록 하는 ‘노동 헌법 개정’ 공약도 내놨다. 헌법 전문에 노동과 평등의 가치를 담고, 헌법 조문에 있는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의 이런 비전 제시는 주목할 만하다.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직 심 후보만이 노동 의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 후보는 ‘살찐 고양이법’으로 불리는 ‘최고임금법’ 제정 의지가 강하다. 대선 주요 공약으로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최고임금법을 발의하면서 “헌정사에서 처음 제출되는 기념비적 법안”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최고임금제는 민간기업 임직원 보수를 최저임금의 30배, 공공부문은 10배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심 후보는 최고임금제가 도입돼야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최저임금이란 바닥은 높이고, 최고임금이란 천장은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대압착’과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최고임금제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찮다. 재계는 임금 상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난다는 반론을 편다. 고액 연봉자에 대한 질투를 밑거름으로 삼는 반(反)기업적 발상이란 시각도 있다. 하지만 소득불평등 해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절박한 과제다.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의 등기임원 평균 보수는 최저임금의 140배가 넘는다. 상위 10%의 소득은 국민 총소득의 48.5%에 달한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월 200만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 살찐 고양이들의 하품 소리가 졸라맬 허리띠조차 없는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게 한국 사회다. 애덤 스미스의 “큰 부자 한 명이 있으려면 500명의 가난뱅이가 필요하다”는 말을 증명해 보이려는 듯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심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한 ‘슈퍼우먼 방지법’ ‘최저임금 인상’ ‘주 35시간 노동’ ‘비정규직 철폐’ 등에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의지와 열망이 담겨 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광장에 울려 퍼졌던 ‘이게 나라냐’는 탄식 없이 ‘같이 좀 잘사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노동자들을 ‘새롭게(new) 대우하겠다(deal)’는 뉴딜 정책을 펴며 빈부격차 없는 사회를 꿈꿨던 루스벨트처럼.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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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정치체제이다. 이념과 노선 차이는 별로 없으면서 격렬한 대결 정치를 하는 현상도 상당 부분 양당체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양당체제는 중도를 지향하는 경향을 띠는 정당 체계라고 한다. 이런 체제에서 정치 지형은 보수화되고 소수자, 배제된 자,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잘 대표되지 않는다. 한국 정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냉소주의, 정치참여 부재, 정당의 대표성과 책임성 약화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국 정치의 불건강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지닌 제3의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최소한 원내교섭 단체를 구성하는 진보정당이 존재한다면 기성 정당에 상당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발언권을 지닌 진보정당은 정책 경쟁을 유도하고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정치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진보정치 없는 정치’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정의당이 진보정당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진보정당의 왜소화는 기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차 정기당대회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 현실에서 정의당이 어제 3차 정기 당대회를 열고 ‘이념적 진보정치’를 ‘현실주의적 진보정치’로 전환하는 새 강령을 채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새 강령은 “낡은 이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정당입니다’라는 구호와 출생부터 사망까지 생애 주기별 국가 역할을 규정한 ‘생애주기 강령’도 채택했다. 진보정당은 자기 이념의 선전에 만족하는 운동 단체가 아니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정당보다 더욱 시민들의 삶과 밀착한 의제를 개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도 진보정치가 공허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더 나은 방법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 우위 체제는 진보정당의 무능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진보적 의제의 부상이 말해주듯 진보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높다. 그 욕구를 조직화하지 못한 건 진보정당의 책임이다. 진보정당은 한국 정치구조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정의당의 신강령 채택이 새로운 진보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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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정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