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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04 [사설]70년 동안 4·3을 방치한 책임을 성찰한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3일, 희생자를 기리는 사이렌이 제주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날 제주 밖의 시민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제주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현직 대통령 참석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추념식이었다. 4·3 희생자들은 지하에서나마 위로받았을 것이다. 이날 4·3 추념식은 2000년 4·3특별법 제정, 2003년 국가를 대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2014년 국가추념일 지정에 이은 4·3에 대한 또 하나의 재평가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위렵탑에 헌화한 뒤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4·3이 국가폭력이 낳은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또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4·3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남로당 무장대가 산간지역 주민을 방패 삼아 유격전을 펼치고 토벌대가 강경 진압작전을 해 제주 양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논평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은 해방 직후 불안정한 정치상황에서 제주 시민들이 미 군정과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거부하는 무장투쟁으로 시작됐다. 단독 선거는 남로당뿐 아니라 김구로 대표되는 중도세력까지 반대한 사안이었지만 유독 고립된 제주에서 무자비한 진압이 벌어졌다. 2003년 정부의 4·3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1947년 3월1일 관덕정 앞 발포사건과 1948년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를 거쳐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까지 7년여에 걸쳐 2만5000~3만명가량의 제주도민이 희생됐다. 당시 제주 인구 10분의 1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어린아이와 노인 희생자도 전체의 12%나 되었다. 무장봉기를 주도한 남로당 무장대가 살해한 주민도 있었지만, 군경과 우익단체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한 양민 학살이 대부분이었다. 국가폭력에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것이다.

이후 유족에게 가해진 폭력도 심각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숱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다. 유족들에게 씌워진 ‘폭도의 가족’이라는 굴레는 연좌제로 대물림까지 되었다. 1970년대까지 4·3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가슴과 몸에 한이 새겨진 유가족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제주에는 봄이 없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는 4·3이었다. 그렇게 70년이 흘렀다.

4·3에는 여전히 가려진 부분이 많다. 남로당에 의한 무장봉기나 군경의 양민학살에만 주목해서는 4·3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시작된 4·3에는 남북통일과 평화, 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강렬한 염원과 저항정신이 들어있다. 이를 재조명해야 비로소 4·3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최근 학계와 시민사회의 성찰이다. 4·3은 2차 세계대전 후 동서 냉전의 최전선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미국과 소련의 책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 4·3특별법 개정안에는 억울한 희생에 대한 배상과 보상, 불법적 군사재판의 판결 무효화, 4·3 수형인 명예회복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지금도 낡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색깔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반공주의를 절대 선으로 떠받드는 이념의 틀을 넘어야 비로소 사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고 진정한 국민 통합도 가능하다. 상처는 진상규명 후 가해자가 참회하고 피해자가 용서해야 비로소 치유된다.

70년이 되어도 정의할 수 없는 사건으로 방치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모독하는 일이자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시민들이 4·3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에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 그 출발을 다짐하는 것이 70번째 4·3을 맞은 오늘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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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