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20대 후반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유럽에서 쓴 텍스트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잃을 것이라곤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로 끝을 맺고 있다(<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 사회주의란 실험을 추동했던 선동적 텍스트의 말미는 도저한 낙관과 명령의 문장이다. 그 실험은 실패했다. 그들이 예측했던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는 등장하지 않았다. 텍스트의 오류와 오독 그 두 과오의 공통분모는 정치권력의 생산과 재생산, 권력의 민주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었다.

2015년 6월 한국의 진보정당 정의당 대표 경선에 30대 후반의 한 청년이 출마했다. 조성주다. 그의 출마선언문을 읽은 후 “근래 5년간 이토록 내공과 영혼이 담긴 연설문을 처음 보았다”고 평한 안병진의 경향신문 글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안병진은 조성주를 여야와 시민사회의 정치인인 박원순, 유승민, 손석희와 동급의 반열에 올렸다. 박상훈이 그 이전 경향신문 글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의 연설을 “보수적이되 민주적이고 또 ‘정치적 이성’을 갖춘 말”로 평했을 때, 그 텍스트를 읽으려 했다. 조성주의 텍스트도 매혹의 대상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읽어야 하는 텍스트가 생겼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아버지는 인천에서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조성주 출사표의 신파처럼 보이는 첫 문장이다. 그러나 ‘개인’의 감성을 팔지는 않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조합원이 된 아버지의 임금이 인상되면서 가족의 삶, 개인의 삶이 향상되었음을 말한다. “민주주의와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선배 세대의 희생이 있었기”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배울 수 있었”다는 예의도 있다. 그러나 선배들이 성취한 세상에 나왔을 때 청년실업, 비정규직, 가난한 영세 자영업자의 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민주화의 역설의 세상에서 “선배 세대가 이룬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철저히 고립”된 그는 “더 이상 지성의 전당도 민주화운동의 중추도 아”닌 대학에서 “당장의 등록금과 생계를 걱정하는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그 “세대의 노동권을 위해” 기존 노동운동 밖에서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을 결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운동에서 정치로 도약한다. 좋은 진보정당이 없다면 지금 여기서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의 진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읽기의 사슬을 만들었다. 사회주의란 이념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란 빈 공간에도 진입하지 못한 “민주주의 밖의 시민” “노동운동 밖의 노동”을 대표하겠다는 그의 말을 읽으며 <공산당 선언>을 떠올렸다. 그 텍스트의 끝 두 문장처럼 도저한 낙관과 명령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계급투쟁이 제도화된 국가에서조차 진보정당은 압도적 다수로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다수로 가정되는 그들의 반계급투표가 이루어져왔다. 낙관과 명령은 ‘진정성’과 ‘실력’, 그것을 담지한 ‘정당’과 ‘지도자’가 있을 때 실현가능한 언술이다.

조성주는 “2세대 진보정치”를 선언한다. 세대담론은 중대 국면을 경험한 집단이 계급조차 권력이 된 시대에 스승 없이 도전하겠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진보조차도 권력화되었을 때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진보의 역설의 한 지점이다. 출사표는 거기까지다. 담겨야 할 미래는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싸우는 정당”이 아니라 “미래와 싸워야” 할 정당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로 남아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정치적 중력은 왼쪽을 향하지만 중단기적으로 정치적 중력은 오른쪽을 향한다. 진보의 권력 생산이 어려운 이유다. 권력 의지와 권력의 민주화를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진보의 의무도 한몫을 더한다. 세대담론의 편협성에 기초하여 세대 간 타협을 도출할 수 있는 보편담론, 성장과 복지가 결합된 경제담론, 남북관계 및 국제관계가 쟁점화될 때 발생하는 정치적 중력의 우경화를 제어할 수 있는 평화담론 등이 담긴, 출사표 이후의 텍스트를 기대해 본다. 정의당 대표 경선은 그 길로 가는 첫 관문이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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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TAG 조성주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다른 이들이 다 미친 것인가? 어제 대통령의 일상으로 복귀 명령에 따라 오랜만에 애국하는 심정으로 극장에 들렀다. 메르스 여파로 극장은 한산했다. 텅 빈 객석에서 <매드 맥스>를 보고 나왔지만 계속해서 첫 장면에서의 주인공 독백이 자꾸만 머리에 맴돈다. 최근 마치 ‘닥터 둠’처럼 가는 곳마다 다가오는 대붕괴를 언급하면서 급진적 전환을 외치고 다니는 나도 주인공과 같은 독백을 하곤 한다. 영화에서의 황폐한 디스토피아 풍경처럼 대한민국의 대붕괴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단단해보였던 기존 압축성장 시대의 경제, 정치, 사회의 모든 틀이, 심지어 지구 자체가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메르스, 저성장, 기후변화 등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문명의 작동불가능을 시사한다. 영화는 녹색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 여정 끝에 놀랍게도 결국 사막만 남아있음에 절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줄 알고 우울증이 도질 뻔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놀라운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아직도 꼰대가 되지 않은 조지 밀러 감독은 도발적으로 다시 그 지긋지긋한 장소로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경이로운 결단을 보여준다. 미치지 않고는 그 지옥과 같은 장소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독은 우리 모두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새로운 유토피아는 없음을 안다. 지구 자체가 지금 6번째 대멸종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이주 준비 클럽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그 지긋지긋한 장소로 돌아가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길은 아닐까? 아직은 너무나 불완전한 돌파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작은 씨앗은 있다. 나는 이를 박원순, 유승민, 손석희, 조성주에게서 본다. 휴, 벌써 지인들이 야단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환청처럼 들린다.

박원순현상. 나는 그의 조치에 다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박원순현상은 기존 압축성장 시스템이 이제 수명을 다해 헐떡이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시행착오 속에서도 자라나고 있음의 징후이다. 21세기는 연방제적 조직, 개방, 공유, 생명, 안전, 기후변화, 예방, 인간적 도시 등 압축성장 시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키워드의 시대이다. 최근 메르스 사태는 비극이지만 21세기의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 보이는 시대정신의 출현이다. 만약 지금 혁신 지자체장들이 함께 만드는 박원순현상이 그 거칠고 부족함을 반성하면서 21세기 리더십으로 성숙해간다면 10년 후에는 그래도 다시 희망이 있다.

유승민의 고투. 나는 과거 박근혜 후보가 ‘규율있는 자본주의론’으로 대박을 터뜨렸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흐름을 주도했던 유승민 현 원내대표는 최근 천민 보수주의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맞서 연이어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극단적이고 자의적 정치, 경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민주공화국 정신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의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가 여의도의 진흙탕 현실 속에서 좌절하거나 혹은 기대의 배반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제 정신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 있어 함께 유승민현상이 더 담대하게 확대되어 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좀 덜 불안할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가운데)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손석희현상. 나는 가끔 이 채널의 <정치부 회의 시간>과 <손석희 뉴스>를 보곤 한다. <비정상회담>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능 대통령 유재석마저 곧 합류한다고한다. 미디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극단적으로 힘의 균형이 일그러진 미디어 생태계는 대한민국의 붕괴를 재촉하는 인화물질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 채널이 이후 미국의 MSNBC처럼 성장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조성주는 누구지? 최근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청년유니온 출신의 신세대이다. 난 그의 출마 선언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근래 5년간 이토록 내공과 영혼이 담긴 연설문을 처음 보았다. 그의 등장은 마치 <매드 맥스>에서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든 청년처럼 가뭄에 단비와 같다. 그는 청년들을 조연으로만 취급하는 꼰대 체제에 대해 이제 잠자는 거인들인 청년들이 깨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난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과연 그가 어떻게 성장해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주류 언론의 조명 바깥에서는 수많은 조성주가 자라고 있다. 만약 이들이 향후 10년간 무럭무럭 자라난다면 대한민국의 디스토피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이제는 정직한 절망과 담대한 정면돌파가 필요한 시기이다. 매드 맥스처럼 말이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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