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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9 새롭다는 건

‘가왕’ 조용필의 ‘바운스’가 싸이의 ‘젠틀맨’을 제치고 한국 음원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 팬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까지도 그의 신곡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 자의 의미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런 현상이 그렇게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누구인가?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소화해낼 수 있다고 해서 ‘가왕’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가요계의 어른’이 아닌가? 


그런데 실상이 이렇기 때문에 이번 현상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운스’에 대한 찬사가 아이돌 스타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이 곡이 표현하고 있는 ‘젊은 감각’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사랑의 설렘을 경쾌하게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에도 호소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다. 한마디로 나이 지긋한 ‘가요계의 어른’이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곡을 불렀다는 신선함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이다.


(경향DB)


물론 이런 ‘젊은 감각’만을 이 노래의 특성으로 꼽을 수는 없다. 가사에 담겨 있는 내용은 요즘 세태와 사뭇 다르다. “사랑이 남긴 상처들도 감싸줄게”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노래는 어린 사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상처를 많이 간직한 사랑에 대한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바운스’를 조용필이라는 ‘낡은 가수’가 불렀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새로운 노래로 들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든 무엇이든, 세파에 지쳤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위안을 전혀 새로운 형식에 담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바운스’는 새로움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지난 선거에서 새로움은 한국 사회의 화두였다. 원래 혁신과 창조라는 용어는 좌파의 전유물이었는데, 이제는 우파가 이 말을 더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좌파든 우파든 혁신과 창조를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를 통과하면서 스스로 변화했고, 또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한국의 보수가 최근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은 그동안 내걸었던 혁신과 창조를 무색하게 만든다.


보수가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태생적으로 보수는 새로운 것보다도 옛것을 존중하고 숭상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초가삼간이라도 지킬 것이 있어야 보수다. 이렇게 보수와 새로운 것을 연결시킨 장본인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이야말로 일찍이 ‘새마을’이나 ‘뉴타운’이라는 구호를 통해 보수와 새로움을 ‘훌륭하게’ 하나로 만들어놓은 전력이 있다. 이런 까닭에 솔직히 한국의 보수는 지킬 것이 없는 보수인지도 모른다.


지킬 것이 없으니, 한국의 보수는 언제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왔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에 냉전이 한창일 때 한국의 보수는 특별한 고민없이 그냥 반공주의만 지지하면 됐다. 문제는 냉전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철천지원수가 우방으로 간주되는 반전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여전히 무너지지 않는 북한은 일부 한국의 보수에게 그나마 정체성의 혼란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나마 북한이라도 있으니,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은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종북 논쟁은 이런 보수의 위기의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증상이라고 이 자리에서 논의한 적이 있다. 정작 지킬 것이 없으니, 이미 자유진영에서도 포기한 냉전의 논리를 부여잡고 낡아빠진 수사만을 늘어놓고 있는 형편이다. 레퍼토리가 동일해서 젊은 세대에게 아무런 감흥을 줄 수가 없다. 그렇게 종북주의에 문제가 많다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삼이사에게 호소력 있는 ‘젊은 감각’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말로만 혁신과 창조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조용필의 ‘바운스’처럼 실질적으로 ‘젊은 감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용필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고초를 겪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가요정화 조치라는 이름으로 청년문화의 상징이던 록과 포크를 탄압했는데, 대마초 사건이 그 빌미였다. 조용필도 그 사건에 연루되어 공안당국에 끌려가서 인간 이하의 고문을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대중문화가 초래하는 개방성을 참을 수 없었던 당사자들이 지금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고 있는 이들 중 일부다. 이런 보수가 혁신과 창조를 말해봤자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가 제대로 자신의 의미를 정립하겠다고 한다면, 이런 어두운 과거로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힘으로 대중의 욕망을 억누르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 드는 낡은 방식으로 한국의 보수는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바운스’ 현상이 한국의 보수에게 말해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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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