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잘하는데 인성은 별로다. 서울대 출신에 대한 흔한 평가다. 학업적 성취에 비해 인성 발달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능력은 있지만 조직 친화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팀워크를 경시하고, 조직 적응 노력을 소홀히 한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서울대 내부 평가도 비슷하다. 서울대 교지 ‘관악’은 서울대생의 심리적 특성으로 대인관계 능력 부족, 지나친 자기중심적·개인주의적 경향,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 및 공동체 의식 부족을 꼽았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이 어제 2017학년도 입학식에서 “최근 서울대인들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류철균·남궁곤 이화여대 교수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다수의 서울대 출신이 연루된 것을 염두에 둔 자성의 목소리로 보인다. 성 총장은 “서울대라는 이름에 도취하면 오만과 특권의식이 생기기 쉽다”며 “남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르는 리더는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모든 이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주문했다.

[장도리]2017년 3월 3일 (출처: 경향신문DB)

성 총장의 연설은 지난달 서울대 재학생·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끄러운 서울대 동문상’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떠올리게 한다. 설문조사에서 ‘2016 최악의 동문상’ 분야 1위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2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 3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각 선정됐다. 또 대한민국 헌정사에 해악을 끼친 인물을 가리는 ‘멍에의 전당’ 분야에서는 98%가 넘는 압도적 비율로 ‘법꾸라지’ 김기춘 전 실장이 꼽혔다. 네 명 모두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인성은 성적순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타 대학에 비해 서울대 출신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은 국내 최고 대학으로서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가 된다. 서울대 출신 입장에서는 ‘능력 탓할 게 없으니 품성 갖고 뭐라고 한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인성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다. 그러니 서울대 출신에게 공동체 의식과 공감 능력을 특별히 더 요구할 이유는 없다. 그런 요구 자체가 서울대 특권의식을 조장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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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벌인 ‘관제 데모’ 실상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기획하면 재벌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자금을 대고, 극우단체가 움직이는 구조다.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집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 등이 이런 식으로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공작을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직 청와대 직원으로부터 김 전 실장이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 극우단체에 자금 지원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정무수석실은 전경련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전경련은 극우단체에 차명으로 돈을 보냈다.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단체를 키운 것이다. 특검은 김 전 실장 등이 2014년 6월 극우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게 한 구체적인 정황도 포착했다.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극우단체의 패륜에 시민들이 충격을 받고 의아해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이다.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극우단체 대표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적극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이 15시간이 넘는 고강도 특검 조사를 받았다. 김기춘 전 실장(왼쪽)이 15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은 뒤 18일 새벽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을 나선 뒤 차량에 탑승해 있다. 조윤선 장관도 21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은 뒤 이날 오전 6시께 특검 사무실을 나선 뒤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청와대 지시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를 벌인 정황도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자유총연맹의 관제 데모를 지시한 사람은 허현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다. 허 행정관은 2015년 하반기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세월호 진상조사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어달라고 연락했다고 한다. 허 행정관은 전경련을 통해 극우단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수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참가자 1인당 2만원씩 줘 관제 데모를 열게 한 배후자로도 지목받고 있다.

권력과 돈으로 민의를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한 관제 데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것도 김 전 실장 등과 청와대가 조종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도 김수남 총장 체제의 검찰은 손을 놓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고 청와대가 시위를 사주했다는 의혹을 지난해 4월부터 수사하고 있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동생이 김 총장 부속실에 근무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관제 데모 의혹 역시 특검이 풀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전경련, 극우단체 간 유착 관계를 밝히고, 검찰의 직무유기 행위도 파헤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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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인 송수근 제1차관과 문체부 간부들이 어제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차관에 이어 조윤선 장관까지 줄줄이 구속되자 부처 차원에서 참회하고 자성의 뜻을 밝힌 것이다. 송 차관은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할 문체부가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으며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특별검사가 진실을 밝히는 일에 적극 협조하고 책임도 감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체부의 참회를 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체부를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챙기는 도구로 마음껏 주물렀다. 자질이 없는 사람들을 장차관으로 기용해 사기업도 못할 일을 서슴없이 시켰다. 문체부는 정상적인 국가 조직이 아니었다. 유진룡 전 장관이 두 차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부당성을 제기했다고 하지만 공허한 저항에 그쳤다. 오히려 정유라씨의 승마 대표선수 선발이나 1급 공직자 집단 사직 강요 논란이 보도됐을 때 문체부는 의혹을 부인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편법 설립도 문체부 간부와 직원들이 충실히 해냈다. 법령과 절차에 따라야 할 관료조직이 스스로 규범을 어긴 것이다. 강요당했다고 피해자로 자처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에 대해 작심한 듯 비판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유 전 장관은 어제 블랙리스트 작성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주도했으며, “헌법 정신을 훼손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김 전 비서실장은 지금까지 리스트 작성 지시를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이를 보도한 언론을 제소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운영은) 문화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로,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명한 사람들은 나몰라라 하는데 문체부는 분명히 지시를 받았다며 사죄하는 희극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면 황교안 권한대행이 나서서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황 대행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문체부를 대표해 사죄한 차관은 언제 블랙리스트 사건 피의자가 될지 모르는 처지다. 1만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묶어 탄압한 국제사회의 수치를 수습하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공무원들이 권력자의 불법적 지시에 복종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부의 지시를 영혼 없이 따르기만 하다 사후에 참회하라고 공직을 맡긴 게 아니다. 공직사회 전체가 단단히 교훈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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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56·제2차관)이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실·국장 이상 간부들 명의로 “(블랙리스트로) 국민들에게 큰 고통과 실망, 좌절을 안겼다”며 사과문을 발표하고 머리를 숙였다. 문체부는 사과문에서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또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질 것”이라며 “부당한 개입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체부의 사과문 발표는 앞뒤가 바뀌었다. 블랙리스트의 작성 과정과 관여자를 밝혔어야 했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관여했는지, 그래서 소위 ‘부역자’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문체부의 대대적인 사과는 특검 수사로 인해 실체가 규명될수록 비난 수위가 높아질 것을 우려해 물타기를 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송수근 장관 직무대행(왼쪽) 등 간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진상을 밝혀 사과할 기회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블랙리스트 존재가 공론화된 것은 2015년 9월 국정감사 때였다. 9473명의 명단이 들어간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된 시점은 지난해 10월이다. 문체부는 그동안 “블랙리스트를 모른다”는 조윤선 전 장관(51)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조 전 장관이 구속된 이후에야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과에 나선 것이다.

조윤선 전 장관

블랙리스트에 관한 한 모르쇠로 일관했던 문체부는 현재 ‘풍비박산’이 났다. 현직 장관이 구속되는 첫 사례를 기록하며 이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 김종 전 2차관(56), 정관주 전 1차관(53)까지 구속됐다. 한 부처에서 최고 수장인 전·현직 장차관 4명이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사례는 건국 이후 찾기 힘들다. 게다가 앞으로 구속자 명단에 누가 더 포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당장 이날 사과문을 발표한 송 직무대행 역시 블랙리스트 관여자로 의심받고 있다. 이 외에 고위직부터 산하기관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가담한 관계자가 더 밝혀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체부의 사과를 놓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그만두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문화예술인 단체들로 구성된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공범자로 추정되는 범죄자의 사과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문체부가 진실 규명이나 관련자 처벌 없이 “졸속 사과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국민사과는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바라보는 안일한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낸 꼼수에 가깝다.

문화부 | 김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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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3일 (출처: 경향신문DB)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게 전부다. 헌법은 양심, 언론 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다. 더구나 이 정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내부에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빨간 딱지를 붙여 탄압했으니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두 사람은 구속 직전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현직 장관 구속 1호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이라고 믿기 힘든 파렴치한 피의자들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수차례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동자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가장 심각하고 위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검은 문명국가의 수치인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반드시 찾아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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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재직 시절 극우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반대집회를 조직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대변인은 어제 이런 내용으로 수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객관적 물증을 확보하면 추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조 장관은 2014년 6월 정무수석에 발탁된 뒤 우익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게 했다. 조 장관은 이들 단체가 시위에서 외칠 구호도 챙기고,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까지 간여했다고 한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영장심사를 위해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 같은 사실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의해 어느 정도 추정된 바였다. 비망록에 따르면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은 누군가가 정부 비판 세력을 겁박하도록 우익단체를 움직였는데, 그 연결고리가 정무수석 조윤선이었음이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자식을 처참하게 잃은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보듬기는커녕 뒤에서 공격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게 고위 공직자가 할 일인지 조 장관에게 묻고 싶다. 조 장관은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반정부 블랙리스트 작성에 간여한 일로도 구속영장이 청구돼 있다. 결국 조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김 전 실장과 함께 온갖 불법을 저지른 운명공동체였기에 중용된 것이다.

청와대의 사주와 극우단체의 꼭두각시 노릇이 드러난 만큼 자초지종을 밝혀야 한다. 이는 조윤선 개인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문제다. 보수단체 뒤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제기됐다. 어버이연합은 지난해 청와대 정무수석실 허모 행정관의 지시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집회를 연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흐지부지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블랙리스트와 관제데모,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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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미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결국 꼬리가 밟혔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공무원들은 이미 일부 구속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나 사퇴는 고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권자인 시민을 우롱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즉각 구속하고, 이들의 다른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김 전 실장의 비위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김 전 실장은 사법부를 길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 정치인을 검찰에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월호 관련 여론을 조작하려 했으며, 검찰 수사와 문체부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도 있다. 과거 독재정권의 정치공작을 연상케 한다. 특검은 이런 의혹의 사실 여부뿐 아니라 이런 일들이 김 전 실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김 전 실장과 최순실씨의 관계도 의문이다. 김 전 실장은 결백을 강조하기 위해 최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했지만 누리꾼의 제보로 청문회에서 거짓임이 들통났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조 장관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고 하더니 지난 9일 청문회에서는 “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며 말을 바꿨다. 특검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블랙리스트가 작성돼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가 실행됐으며, 이 과정에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 장관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은 이미 구속됐다.

특검 수사의 최종 타깃은 박 대통령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시절 정부의 블랙리스트 적용 움직임과 관련해 2014년 1월과 7월 박 대통령과 면담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 부분이 특검 수사로 확인되면 그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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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무관 ㄱ씨의 표정은 어두웠고, 눈빛은 다소 지치고 불안해 보였다. ㄱ씨는 서류가방에서 꺼낸 파일을 매우 조심히 은밀하게 다뤘다. 제대로 펼쳐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엑셀 파일을 프린트한 서류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ㄱ씨는 급기야 한 카페에서 불만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배들도 ‘이런 것’은 처음이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앞으로 지침에 따라 어떻게 문화예술 현장에서 적용할지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ㄱ씨는 상급자에게서 건네받은 그 리스트를 산하기관 현장에 가져와 전달하고 적용토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을 각종 지원공모에서 떨어뜨려 배제시키려면 최종 심사 결과를 조작해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수십명, 수백명도 아닌 수천명의 사람들을 합법적인 과정으로 제외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0대의 젊은 사무관 ㄱ씨는 2015년 가을 대학로에서 그렇게 자신의 책무와 무언가 불의하다고 느껴지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사무관 ㄱ씨의 사례는 해당 문체부 산하기관에서 근무한 전직 관계자가 경향신문 기자에게 증언한 내용이다. 사무관 ㄱ씨는 현재 세종시 문체부 청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8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사진)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오른쪽)이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

거대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하나둘 진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가 TV로 중계될 때마다 거짓말하려는 자들과의 진실공방을 지켜본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 핵심 관계자들은 여전히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정황은 특검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문체부의 전·현직 장관과 차관, 국·실장들이 줄줄이 참고인이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또는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비밀스럽게 다뤄졌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블랙리스트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핵심 고위직뿐 아니라 몇년차 되지 않은 젊은 사무관까지 ‘거대한 블랙의 소용돌이’에 가담돼 있다. 공무원뿐 아니다. 민간인들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지역의 작은 교육기관 인문학 강좌 담당자조차 국정교과서에 반대 서명을 한 강사들을 깨알같이 걸러냈다. 정부 예산이 1원이라도 집행되는 곳이면 작품이든, 사람이든, 프로그램이든, 간행물이든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블랙리스트는 권력과 탐욕에 눈먼 자들의 손에서 시작됐지만 현장에서 ‘피를 묻힌’ 실무자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공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소 1~2년간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그들이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을 내면 깊은 곳에 밀어넣은 채 비정상적인 업무를 침묵하며 수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국가에 의해 합법화된 범죄의 시대”를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부역자’를 양산한 박근혜 정권에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대인 학살 핵심 책임자로 재판받은 아이히만을 두고 아렌트가 정의한 ‘악의 평범성’은 이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여하튼 ‘평범성’이란 단어가 취재 현장에서 만난 적지 않은 부역자들의 평범한 모습들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관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문체부 ㄴ씨는 예의 바르고 성실한 인물로 평판이 나 있었다. ㄴ씨는 최근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 공무수행 때도 겸손한 자세로 제 역할을 했다. ㄴ씨는 취업을 위해 여러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고, 나중에는 죽을힘으로 공부해 고시에 합격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관계자 ㄷ씨는 평소 느지막이 시작한 피아노 연주를 자랑하길 좋아했다. ㄷ씨는 평범한 사람들도 열정만 있으면 음악이든 뭐든 새로 시작해 삶의 성취와 즐거움을 이룰 수 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ㄱ씨, ㄴ씨, ㄷ씨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 시대를 지나고 있을까. 일상에서 이뤄진 ‘악의 평범성’은 특별하지 않다는 그 특별함 때문에 더 두렵게 느껴진다.

블랙리스트의 어두운 장막이 명명백백히 거둬진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경험한 비이성적인 인식과 행위의 잔해가 어딘가에 살아남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을 때 불현듯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 모두를 “범죄의 시대”에 몰아넣은 이들에 대한 확실한 단죄만이 두려움을 몰아낼 것이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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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간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그의 집무실과 자택이 압수수색당했다. 특검이 곧 그를 소환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리스트를 만든 혐의로 특검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조 장관의 블랙리스트 작성 참여 사실은 복수의 전직 문체부 고위간부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조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정무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김소영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보냈다고 증언했다. 리스트를 본 적조차 없다는 조 장관의 변명은 말이 안된다. 특별검사도 조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본 적도 없다”고 한 것은 위증이라면서 특검에 고발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리스트를 함께 만든 사실은 특검이 문체부 실무자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확인했다고 한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적용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문,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지표 중 하나가 문화융성임을 감안하면 정권의 자기기만이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해도 막아야 할 일을 해놓고 문체부 장관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은 공직의 엄중함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 차례 장관을 할 정도로 승승장구한 배경에도 이런 불법행위가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문체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부처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 대한 특혜지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 편법 설립 등이 다 문체부를 통해 이뤄졌다. 관계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려면 장관이 그대로 있으면 안된다. 더구나 조 장관은 수사가 시작될 즈음 집무실과 해당 부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갈아치워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있다. 지금도 매일 출근하면서 어떤 증거들을 인멸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조 장관의 존재는 공무원들이 사실대로 진술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핵심 역할을 한 직원이 장기간 휴가를 가는 사례도 있었다.

엊그제 임명된 송수근 제1차관도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돼 있다. 현직 장차관이 동시에 사법처리되는 초유의 사태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경이면 조 장관은 단순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은 즉각 사퇴한 뒤 특검에 출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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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최순실씨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최근까지 아무런 통제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량에 앉아 ‘11문(정문)’을 통해 검문 없이 오갔다는 것이다. 장관들도 출입증 제시와 얼굴 대조를 거친 뒤에야 진입이 가능한 곳이라고 하니 최씨의 위세는 장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법과 시스템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사적 인연에 의한 통치를 행한 것이며 이 나라가 ‘박근혜-최순실 공동 정부’였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2일 (출처: 경향신문DB)

최씨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을 것이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박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온갖 국정에 개입했을 것이다. 최씨가 청와대로 올라오는 각종 기밀문서들을 훑어보고 직접 들고 나왔을 수도 있다. 그동안 현 정부에서 장관들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차단돼 있으며 이는 매우 비정상적이란 우려가 높았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일 국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임하는 11개월 동안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관련 부처 책임자와 교감이 가능한 대면보고의 중요성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장관들과의 대면보고가 적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하는 게 편리하지 않으냐는 이유를 댔다. 그런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는 무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도록 허용했다는 소식은 정말로 경악스럽다. 최씨와 국정을 상의하고 있으니 장관들과 논의할 시간은 불필요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청와대는 최씨의 과거 출입기록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각종 의혹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나라를 위해서 좀 냉정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 무책임하다. 사실이 아니라면 떳떳하게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최씨가 언제 청와대를 출입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최씨가 자주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얘기는 진작부터 돌았다. 친박 실세들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마땅히 최씨를 멀리하도록 대통령에게 진언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친박 실세들은 대부분 최씨 전횡을 몰랐다며 잡아떼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서 권력만 누리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정말 후안무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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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공무원연금 문제로 어제 돌연 사퇴했다. 조 수석은 ‘사퇴의 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대통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논의마저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 국민연금을 연계시키고 기초연금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개혁의 취지를 심각하게 몰각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뒤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누차 밝혀온 입장이다. 조 수석이 이런 이유로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즉각 수리한 조처가 뜬금없이 비치는 까닭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여야 합의안을 비난하고, “연금 포퓰리즘으로 도탄에 빠진 그리스가 남의 일이란 보장은 없다”고 겁박하는 일개 수석의 ‘사퇴 변’을 가감 없이 브리핑했다. 청와대가 정무수석의 사퇴까지 꺼내 들어 ‘공무원연금과 공적연금 연계 불가’라는 대통령의 원칙을 못 박으며 여론전을 벌이는 꼴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당·정·청 회동을 열고 지난 2일 야당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새누리당은 ‘협상재량권’을 확보했다고 보고 본격 대야 협상에 나설 방침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문화 대신 ‘기초연금 강화’를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음을 밝힌 상태다. 여야가 새로운 환경변화를 토대로 어제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갖고 협상을 재개하려는 판에 청와대가 조 수석의 사퇴를 앞세워 또다시 가이드라인을 치고 나섰다. 지난 5일 여야 원내대표 회담을 앞두고 무책임한 ‘1702조원 세금폭탄론’을 터트린 연장선상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조윤선 정무수석이 지난해 8월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다. _ 연합뉴스


어렵사리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을 무산시킨 청와대가 이렇게 여야 협상의 고빗길마다 개입하고 국회를 압박하게 되면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처리는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지침에 끌려다니는 여당과 반발하는 야당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봐야 소용없기 십상이다. 청와대가 겉으론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조속한 처리를 말하지만, 실은 박 대통령의 기대치에 미흡한 이번 안 자체를 무산시킬 속셈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여야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으려면, 청와대가 여당을 로봇처럼 조종하고, 야당을 압박으로 굴복시키려는 태도부터 접어야 한다. 그게 공무원연금 개혁을 한시라도 빨리 성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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