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막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광고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다. 거래처 사장과 앞으로의 제작 일정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일정 중 설 명절이 있어서 기한 내 제작의 어려움을 설명하는데 눈앞으로 갑자기 커피 잔이 날아왔다. 내 기억으로 피하지 않았거나 피하지 못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손목을 꺾었는지 잔은 내 등 뒤로 날아가 산산이 깨졌다. 당황한 나에게 그는 핑계처럼 “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다소 반항적인 인간이었던 탓일까. 어려서부터 누나에게 “너 눈 좀 그렇게 뜨지마”라는 지청구를 듣긴 했었다. 커피 잔이 영화 속 슬로모션으로 내 옆을 스쳐지나간 뒤, 나는 사장을 탓하는 마음에 앞서 ‘내 눈빛이 그렇게 안 좋은가?’란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과연 내 몹쓸 눈빛 탓이었을까, 요즘도 가끔 생각나는 사건이다.

출처:경향신문DB

조현민이 광고사 직원에게 이른바 ‘물컵 갑질’을 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 사건에 관한 세 가지 혐의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 단순폭행, 둘째 업무방해, 셋째 특수폭행이다. 단순폭행은 피해자랑 합의하면 끝, 업무방해는 그것이 당사자의 업무였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업무를 방해했으니 끝, 남은 것은 특수폭행 하나뿐이지만, 결국 이것도 무혐의가 되었다. 보통 일반인이 유리컵을 던지면 빼도 박도 못하게 특수폭행(특수협박)이 된다고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손목을 꺾었는지 이조차 무혐의로 풀려났다. 사건이 일어난 뒤 이걸 가지고 칼럼을 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건이 사건을 덮는 ‘다이내믹 코리아’니까, 이마저도 시일이 조금 지나면 잊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 다른 ‘갑질폭력’ 사건이 알려졌다. 놀랍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에선 이런 사건이 해마다, 달마다, 매일 어디선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건 당사자가 단순히 ‘갑질폭력’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일의 웹하드 업체 소유자이며, 웹하드 플랫폼을 통해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을 유포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업체란 사실이다. 2015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웹하드 서비스 음란물 이용현황에 따르면 웹하드 업계 전체 매출액은 약 2000억원, 그중 70~80%를 상위 5개 업체가 차지한다. 수십개의 웹하드 업체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소유주는 몇 명 되지 않는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도 그중 하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웹하드에서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은 저작권료 없는 콘텐츠로 매우 수익성 높은 상품이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웹하드 업체가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유포가해자인 헤비업로더들을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경찰 수사에서 보호하는 등 범죄행위에 동참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피해촬영물을 기술적으로 걸러주는 필터링업체와 인터넷에서 삭제해주는 대행업무로 수익을 올리는 디지털장의사 업체까지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해촬영물을 유포하여 수익을 얻고, 이를 유포하는 범죄자들을 관리하고 보호해왔으며, 피해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피해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방식으로 다시 수익을 얻는 구조란 것이다.

웹하드 커넥션은 단지 필터링업체, 디지털장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십수년 동안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이들이 쌓아온 돈(자본)의 힘은 어느새 정치권, 언론, 법률시장, 모바일결제시장, 통신사 등등 웹하드와 연계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들과 연계되어 왔다. 그동안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 유통 근절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야기되어 왔던 까닭은 기술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권력과 수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법이 명백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할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할 때 이것은 결코 진심이 아니며 진실일 수도 없다. 그것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정도로, 처벌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권력차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꿔 읽어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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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갑질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번 사건의 주역들은 한진그룹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와 어머니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에 이어 일가족이 연타를 날린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의 반복되는 사과가 있었다.

재벌의 갑질 사례는 한진그룹을 제외하고도 많고,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너로 예정되어 있는 그들 사회의 악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질로 인한 손실을 당사자가 전부 감당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주주들과 국민, 직원들이 나눠서 진다는 것이다. 조현민 전 전무의 사건이 알려진 4월12일 대한항공 주가는 매도세에 밀려 전일 대비 6.5%나 하락한 3만3550원으로 마감되었고, 지금도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너리스크로 당일 손실을 보고 매도했거나, 보유하고 있는 일반주주와 12.45%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까지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들은 기업의 이미지 추락으로 정신적 고통과 우리사주조합 주식 가치하락까지 겪고 있다. 갑질 당사자는 사과와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고,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도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일로 발생할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온 가족이 ‘갑질’ 논란에 휩싸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외항기를 이용할 때 해외지점 직원들을 동원해 항공기 착륙 게이트를 변경하거나 보안 검색 편의를 요구하는 등 과잉의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벌의 갑질을 불러오는 근본적 배경은 커질 대로 커진 경제력 때문이다. 이를 등에 업고 대대로 경영권 세습과 황제경영을 하며,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 해소가 근본적 방편이지만, 오너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과 행위 자체에 대한 시장규제도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지배구조 개선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와 감사의 선출,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법무부가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이슈가 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갑질 행위 자체에 대한 시장규제이다. 즉 기업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본 주주들에 대해 사재로 배상을 하도록 하고, 중대 경제범죄로 처벌을 받았을 경우,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경제·경영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업 자체로 이를 정관에 반드시 규정하도록 하고,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거래소를 통한 강제적 규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계열사를 포함해서 정관에 반드시 명시할 것을 상장 유지조건으로 규정한다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갑질은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제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3배 정도의 손해 배상 개념이 아니라, 징벌성격의 상한이 없는 배상액 또는 기업 매출액 대비 10%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입증책임 완화를 통해 약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행위를 했을 때 잃는 것이 막대하다는 것을 사전적으로 인식시켜줘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재벌들도 전근대적인 사고를 넘어, 갑질을 당하는 상대방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그 행동이 피해자뿐 아니라, 기업과 주주, 국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하기를 바란다.

<권오인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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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조현아 칼네트워크 사장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를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고, 준법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도 했다. 조 회장의 사과문은 조 전무의 ‘물컵 갑질’이 폭로된 지 열흘 만에 나온 것이다. 여론의 눈치만 살피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사과문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 회장은 2014년 ‘땅콩 회항’ 사태 때도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을 경영일선에서 퇴진시키겠다고 해놓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슬그머니 계열사 사장으로 복귀시킨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조 회장의 사과문 발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속임수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관세 포탈 혐의를 조사 중인 관세청 조사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전산센터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조 회장은 70대 노인을 폭행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유임시켰다. 전문경영인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힌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는 조 회장의 최측근이다. 한마디로 가족·측근 경영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행태에 대한 해명은 전혀 없었다. 조 회장이 약속한 준법위원회 구성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조 회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소통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조 회장이 등 떠밀리듯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번 사태가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관세청은 한진그룹 일가의 밀수와 관세포탈 의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조 회장 일가가 해외에서 구입한 가구와 명품 등을 회사 물품 또는 항공기 부품으로 둔갑시켜 운송료와 관세를 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무가 2010년부터 6년간 진에어 등기이사를 지낸 것도 국내 항공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사안이어서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 회장 일가의 일괄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경영으로 초래된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과 범법행위에 대한 성난 여론도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 조 회장은 이제라도 가족경영의 폐해를 근절하는 전면적인 혁신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룹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재벌 총수의 사과에 시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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