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난을 우려하는 연구 결과 두 편이 19일 공개됐다. 하나는 미국 하와이대 등 국제연구진이 기후변화 전문 학술지인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에 발표한 것으로 지금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세기 말 일부 연안 지역에는 최대 6가지의 재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경우 홍수, 해양의 화학물질 오염, 온도 상승, 해수면 상승 등 4가지의 중대 재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또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인 ‘네이처’에 남극 대륙 빙하의 녹는 속도가 10여년 정도 늦춰지겠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재난 등 부정적 영향은 더욱 클 수 있다고 했다.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시민의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든 지 오래다. 재난 수준인 미세먼지도 지구온난화 탓이 크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대기의 흐름이 원활하면 바람에 흩어진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한반도 상공의 강한 제트기류의 흐름이 끊기고 대기가 정체되면서 미세먼지 농도를 높여 피해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여름 한국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폭염이 나타났다. 이것도 온난화에 따른 제트기류의 변동 때문이라고 한다.

전 지구적인 온난화 추세보다 한반도 온난화가 더 급속하게 진행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구의 평균기온이 20세기 이후 112년간 0.89도 상승했지만 한국은 1912년부터 2010년까지 89년간 약 1.7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의 해수면 상승속도도 지구 평균치보다 빨랐다.

하지만 정부의 온난화 대책은 ‘남의 집 불구경’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가하다. 지난여름 기후변화 분석기관인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너무 낮고 방법도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자원절약이나 재활용 등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시민의 활동도 활발하다고 할 수 없다. 온난화를 포함한 기후변화는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재앙 경고를 결코 흘려듣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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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참 무덥고 비도 많이 내렸다.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날씨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더워서 어디 살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 더위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4년 여름 나는 군대에서 일병을 달고 있었는데 그해도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내부반이 서쪽 건물 벽에 붙어 있어 지는 해의 열을 받아 밤새 후끈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들 혀를 내둘렀지만 그걸 가지고 기후변화를 운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여름을 보내면서 사람들의 머리는 이 더위를 지구온난화와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듯하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는 지난 십수 년간 조금씩 확실하게 진행되어 이제 피부로 인지할 수준까지 됐다는 이야기다. 내년에도 이런 더위가 올 확률이 매우 높다. 겨울은 어떤가.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북극의 한풍이 한반도를 덮었던 지난겨울의 상황이 올해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름엔 지독하게 덥고 겨울엔 지독하게 춥다. 사계절이 완만하게 서로 바뀌며 순환하던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지난 8월 20일 기준으로 전국 저수지의 저수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충남에서 가장 낮은 저수율을 보인 공주시 중흥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해왔다. 기후가 바뀌면 거기에 맞게 적응하면 된다. 군대에 제빙기를 넣어주고, 양봉하는 사람은 벌통 주변에 나무를 수십 주 더 심어 온도를 낮춰준다. 게릴라성 폭우와 폭염이 몰아치는 여름에는 야외에서 하는 행사를 대폭 줄여야 하고, 더위로부터 목숨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취약계층을 잘 살펴야 한다. 과일이나 농작물도 기후 변화에 맞게 바꿔서 심거나 물과 온도를 조절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에어컨 업체는 생산량을 늘리면 되고 정부는 전기료를 깎아주면 되고 정치인은 더위는 내가 해결하겠다고 공약하면 된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명한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면 아마존 밀림이 붕괴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쓰는 산소 중 상당히 많은 양을 생산하는 이 거대 삼림이 황폐화되면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가 250PPM이나 추가로 배출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이산화탄소의 막이 좀 더 두꺼워져서 온도가 1.5도 상승하게 된다. 이는 곧 지구 온도를 4도나 상승시키는 일로 이어지고 이 단계에 접어들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소와 메탄이 우후죽순으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더 늘어나 곧 5도 상승에 직면하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바다 심해에 저장되어 있는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대기 중으로 나와 6도 상승에 이르는 대재앙이 발생한다. 이런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지구의 온도 상승은 2도 상승이 마지노선이라는 게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그 이상이 되면 임계점을 벗어나 인간의 손으로 막을 수 없는 연쇄반응이 시작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금성이 떠오른다. 요즘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금성은 사실 지옥성이다. 금성을 감싼 두꺼운 가스층으로 인해 온실효과가 극단적으로 진행돼 내부 온도가 무려 500도를 넘는다고 한다. 지구가 이런 환경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올해 여름은 지난해 여름보다 무려 5~6도나 더 덥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북극에서 절대, 네버, 앱솔루틀리 녹을 일이 없다는 코어 빙하에 금이 쩍 하고 갔다는 뉴스도 보도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기후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당신은 너무 야속한 사람이다.

기후윤리학자인 가디너(Stephen M. Gardiner)는 기후 변화와 관련한 원인과 결과의 분산성, 행위자의 파편성, 제도의 불충분성 때문에 기후 변화를 좋은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경고한다. 기후 앞에서 인간의 도덕성은 붕괴되어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내가 참고 협조하면 그게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이 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도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대응을 막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나는 사람들의 기후 감수성을 높여주고, 기후 판단을 도와줄 책들을 계속 펴내고자 한다. 올해 <폭염 사회>라는 책을 내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실제 판매는 기대와 달리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기후 문제를 심각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좀 더 쇼크를 주거나 재미요소를 넣거나 하는 수밖에. 조만간 그런 책을 들고 다시 돌아오리라. 폭염의 귀환에 맞춰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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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폭염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더위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한 지인은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옮겨 다녀서인지 더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에서 나온 뒤 자동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역시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같은 날씨를 공유하는 게 당연한 듯싶지만 더위는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부자보다 빈자에게, 건강한 사람보다 병자와 약자에게 더 가혹한 게 더위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더위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는 이미 이 같은 위협과 직면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5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혼자 살았으며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다. 사망자 중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통계적으로도 빈곤하고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위에 취약했다. 미국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시민권자보다 3배 더 높았다.   

폭염이 이어진 14일 한 관광객이 서울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집단으로 도시에 사는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를 지목하고 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에어컨 실외기 등이 합작해 열섬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적하고 초목이 많은 지역보다 기온이 더 높다. 부유층·중산층 거주 지역은 주변에 정원과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초목이 열기를 식혀주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거주 지역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가 2017년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내 흑인은 초목보다 아스팔트·콘크리트로 뒤덮인 지역에 살 가능성이 백인보다 52% 더 높았다. 아시아인과 히스패닉도 이런 가능성이 백인보다 각각 32%, 21% 컸다.

이런 환경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야 한다면 더위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이번 여름 낮 기온이 46도까지 올랐던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 주민들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질식할 것 같다” “집이 오븐 같다”고 호소했다. 히잡, 부르카 등을 써야 하는 여성 무슬림들에게 더위의 고통은 배가된다. 카이로 슬럼에 사는 한 여성은 “딸에게 히잡을 두 겹만 두르거나 밝은색 히잡을 쓰라고 항상 얘기한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온열질환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온열질환자 중 32%는 길가, 25%는 논밭에서 쓰러졌으나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사람도 19%에 이르렀다. 정부는 폭염주의보 발령 등 기온이 치솟을 때면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지만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내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2014년 영국 공중보건국은 “냉방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 상당한 수준의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냉방 시스템의 분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더위 해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선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고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신축 건물을 지을 때 건축 면적 이상 넓이의 옥상 정원을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옥상 정원은 주변 기온을 2~3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미국 뉴욕에선 ‘쿨 루프’(시원한 지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붕에 햇빛을 반사하는 성질의 페인트를 칠해 건물 온도를 낮추자는 취지다. 로스앤젤레스 시당국은 아스팔트 위에 이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도시계획과 주거, 복지 등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만들 때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점의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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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의하면, 연일 계속되는 이번 폭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북유럽, 아프리카 등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인데, 지구온난화가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고 한다. 고도 10㎞의 상층 대류권에 기압 차이로 서에서 동으로 부는 강한 바람띠(편서풍, jet stream)가 형성돼 있어 대기 순환에 기여하는데, 이 바람이 약화되어 고기압의 흐름이 정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대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서 상승기류가 활발해진 것도 고기압 발달에 기여했다고 한다. 호주의 한 대학 연구팀은 20개국 412개 지역에서 2031~2080년 열파(Heat Wave)로 인한 사망자를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2031~2080년의  열파로 인한 사망자수는 1971~2010년 대비 4배 이상 20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산화탄소(CO2)의 배출로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가 발생하여 지구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을 지구온난화라고 불러왔는데, 최근에는 미국 과학학술지 논문에서 핫하우스 지구(Hothouse Earth)라는 개념이 소개됐다. 지구온난화가 돔(dome)이 씌워진 것 같은 현상의 임계점을 이미 넘어서서,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온실이 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대체로 기후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만 줄이면 마치 산술적으로 온실효과도 진행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미 일어난 현상이 지구의 안정된 질서를 깨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어 예측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이 그 실례이고, 기후변화 관측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을 경우를 든다. 빙하가 녹으면 지구 평균 해수면을 7m 이상 높이게 되고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반이 잠기고, 상하이도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태국, 메콩강 하구도 지대가 낮은 편이라 해수면 상승 시 위험하다. 폭염과 혹한, 홍수 등 극한현상은 진작부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관측돼왔다. 식량과 물부족, 기후난민, 빈곤심화 등의 사태도 기후변화의 결과로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에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95개 국가들이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켜야 하는 공동의 의무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 후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상당히 제고됐지만, 이것이 단순히 에너지 공급원인 화석연료를 줄이는 것만으로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이미 나타난 사태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다. 지구 평균기온은 2016년 현재 1.1도 올랐고 바다도 계속 더워지고 있는데 한번 더워지면 열이 잘 식지 않기 때문에 수온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본다.

그런 가운데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산업문명이 초래한 것이어서 미국은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국가이지만, 실제로 기후변화의 피해는 미미한 편이다. 기후변화에서는 원인제공을 한 선진국 국가군과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 간의 불균형도 문제해결에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위에 속하는 책임이 큰 나라다.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급변하리라는 예측을 하면서도 신속하게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데에는 구체적인 피해를 겪기 전에는 좀처럼 문제를 실감하기 어렵고 관행대로 흘러가는 게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의 고통스러운 장기간의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다 절실한 각성의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겠다.

기후변화는 산업문명의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지구적 규모로 거대화한 물질적 성장과 혜택을 공유하기에 한 국가나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실천할 방법들이 마땅치 않고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개인으로선 속수무책에 가까운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물론 개개인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을 나누면서 적합한 생활방식을 찾아 사소한 실천이라도 해나가야 한다. 이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는 산업문명의 시작 때부터 드리워져 있던 어두운 이면이다. 이제 포화상태의 표면을 뚫고 드러나는 놀라운 진실은 우리 스스로 공동의 집 지구를 폭행하고 망가뜨려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지구를 파괴할 정도로 가공할 만한 힘을 부려본 경험이 이전에 없었기에 무분별한 과오로 인해 초래됐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 저변에는 왜곡된 문명의 관점으로 ‘이기심’이 깔려 있다. 탐욕이 인간의 속성이라 하더라도 지구와의 관계에서 배려와 신중함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이다. 인간중심주의는 대체로 두 형태로 나타난다. 과오를 알게 된 상황에서도 거짓말과 조작을 동원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경우이다. 일찍이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화학제품의 문제를 폭로했을 때부터 산업의 이익을 누리는 측에서는 항상 그런 반응을 반복해왔고, 지금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의 근저에는 과학을 발전시켜서 자연을 지배하고 그리해서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성찰능력에 대한 위대한 자부심이 놓여있다. 그러한 의식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동력이기도 했다. 이제 인본주의의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지점에서 다시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와의 관계 재정립이 이 문명의 가장 커다란 숙제이며, 이 문제와의 상호연관성 안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바다가 육지를 삼키고 하늘이 두꺼운 온실공간의 뚜껑으로 갇혀버려 산천초목이 죽어간다면, 밀폐된 지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으랴.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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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기후변화에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그해 본격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23일, 기후변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그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기후변화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순간이었다. 향후 가열되는 기후변화 논쟁의 예고탄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당시 핸슨 박사가 말한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1988년은 역대 어느 해보다 더운 해라는 점이다. 둘째,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온실효과가 폭염 같은 극단적인 사태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까지 지구의 5년 단위 평균기온이 1950~1980년보다 약 1.0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워싱턴을 비롯한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를 예측했다. 핸슨의 예측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2017년까지 실제 기온 상승폭은 0.82도였다.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는 오히려 핸슨의 예측을 웃돌았다.

지난해 9월 중국 네이멍구 바우터우 쿠부치 사막의 조림지 대한항공 녹색생태원에서 임직원들이 황사 방지 희망 나무를 심기 위해 사막 능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바우터우(중국) _ 이준헌 기자

그로부터 30년. 핸슨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예측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최고기온을 갈아치울 정도로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을 넘어섰다.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불리는 400PPM을 넘어선 지 3년 만이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손을 떠났다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왔다. 8개국 13개 연구기관의 학자들은 지난 6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가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가 자정작용을 멈춰 온실가스 감축 등 향후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핸슨 박사도 회한을 드러냈다. 지난 6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기후변화 이야기를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쓴 뉴요커 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30년 전 핸슨의 증언을 “침울한 이정표”라고 했다. 한 과학사 연구가는 핸슨을 “비극적인 영웅”으로 묘사했다. 핸슨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린 선지자였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핸슨은 대중과의 소통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 반대시위 현장에서 5번이나 체포될 정도로 과학자를 넘어 시민행동가로서의 소임도 다했다.

2012년 봄에는 ‘내가 기후변화에 대해 반드시 외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했다. NASA에서 은퇴하기 1년 전에 한 이 강연 동영상은 130여만명이 봤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빨리 예측하고 알리고자 했던 핸슨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응해온 기후변화 부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문제다. 그가 회한의 소회를 밝힌 이유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TED 강연 동영상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그가 손주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결국 그를 ‘기후변화 전도사’로 나서게 한 건 미래세대에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핸슨의 역사적인 증언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다. 기후변화는 거대담론이다.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핸슨 같은 선지자의 경고보다 에어컨 전기료 폭탄 문제에 우선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핸슨은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다. 그래서 당신이 있었기에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아직도 대처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핸슨은 의회 청문회장에 나오기 전날 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보면서 다음날 날릴 멋진 문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그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청문회 뒤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은 이렇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온실효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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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유례없는 폭염은 많은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올해만 유독 불거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최근 5년 동안 매년 한반도 사상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고 최악의 더위는 여름철 늘 있는 대책 없는 단골뉴스가 되는 등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기온 상승은 기후학자들이 우려하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여름철 며칠만 피하면 괜찮은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름 내내 지속되는 자연재해가 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이준헌 기자

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은 임기응변의 세금 투입 일색으로, 주변 전체를 생각한다면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근본적 대책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까지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기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에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 당장 살기 힘든 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재난의 원인을 지구적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 치부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으며 순순히 더 길어지고 더 세지는 여름철 재앙을 앞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견디는 것만 남게 된다. 한반도 기온 상승이 지구 평균에 비추어 두 배 이상 빠른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를 대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당장 원전을 더 가동시켜 전기를 싸게 쓰자는 대책을 일부 기득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이 광범위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유발원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서민에게 전기료 절감과 같은 달콤한 대책으로 비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반도 기온 상승의 속도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절실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논의는 우리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구적 기온 상승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다. 이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며, 둘째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더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해 보이는 이 대책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무조건 더위를 참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말이나, 일반화된 소비 행태의 급진적 전환 요구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대책의 시작은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화석에너지원 및 원전의 빠른 전환과 함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대안은 숲의 면적과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목은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는 효과와 동일하게 수분을 증발시켜 대기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이중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녹지정책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위한다는 최우선 명분과는 달리 탄소 흡수 기능을 훼손하는 데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그것인데, 최근 10년간 약 2조2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한 사업의 대부분은 간벌과 가지치기로 숲의 탄소저장 총량과 연간 탄소흡수량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아울러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가 살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겨울철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인 소나무재선충병 방재를 명목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참나무와 낙엽활엽수 숲으로의 안정적 전환을 방해하는 데 쏟은 세금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폭염의 대책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폭염을 가중시키는 데 들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높은 효과를 보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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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쇼핑센터의 거대한 주차장에서 빈 공간을 찾기는 어려웠다.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하고 진입하려는데 근처의 주차요원이 방해가 됐다. 손짓을 해도 알아듣지 못해 창문을 내리고 목청을 높이자 그가 내 차 쪽으로 다가왔는데 모습이 심상찮았다. 20대 안팎으로 보이는 청년의 다리는 풀린 듯 휘청거렸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으며 눈동자마저 풀린 듯했다.

차문을 열고 발을 내디딘 순간, 훅 덮쳐오는 뜨겁고 매캐한 열기. 나는 그의 약간 얼빠진 모습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매장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빨라졌지만 발길을 되돌려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고, 또한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겠는가만, 그냥 못 본 체하며 지나가기가 힘들어서였다.      

“2시간 일하고 1시간 쉬어요.”

꽁꽁 얼린 생수병을 셔츠 안쪽으로 넣어 문지르고 있던 그 알바 주차요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한다”는 두 마디를 한 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몸만 탈진했겠는가. 어쩌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헬조선 청년의 현실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그의 꿈마저 불에 데이지 않았을까 싶어 나 또한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폭염이 이어진 24일 오후 경북 영천 신녕초등학교에 설치된 온도계가 40도를 넘어서고 있다. 대구기상지청은 오후 3시 27분 영천 신녕면 기온이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으로 40.3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살인적인 폭염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밤이 돼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니 어찌 견딜까 두렵다. 누구도 폭염을 피해갈 순 없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더위는 불평등한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태풍과 폭염 등 기후변화로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겪는다.

어릴 적 기억에 물난리가 꼭 못사는 동네만 골라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아 의아했는데 이후 자연 재난 또한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됐다. 웬만한 태풍에도 견고하게 지은 도시의 고급 아파트는 잘 견딘다. 하지만 가난한 동네의 얼기설기 지은 집은 부서지기 십상이다. 물난리나 지진 등을 당하면 대피하기 어려운 노약자나 장애인 등이 더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대낮에 길거리를 걸어보면 뙤약볕도 강렬하지만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의 밤낮없이 내뿜는 열기가 도시 전체를 거대한 찜통지옥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열기는 에어컨을 틀 수도, 자동차를 굴릴 수도 없는 사회적 약자에 가혹하게 덧씌워진다. 실내 주차장의 주차요원뿐이랴. 길거리 공사인부, 폐지 수집 노인,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지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청소노동자, 판자촌 거주민들은 자연보다 인간이 내뿜는 해악에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폭염경보나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면 매 시간 10~15분의 휴식을 제공하라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산업현장에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인부들은 ‘그림의 떡’일 뿐,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다수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장서서 동네에 ‘무더위 쉼터’를 마련하고 가정방문과 안부전화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폭염에 방치된 취약계층을 촘촘히 보살피기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린 듯하다. 

미 컬럼비아대학 지구환경과학부 존 머터 교수는 폭염과 같은 재난이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하지 않으려면 소위 ‘파인먼의 경계(Feynman line)’에 설 것을 권한다.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먼이 신학의 영역을 오갔던 것처럼,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도 자연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으로도 함께 접근할 때 재난의 불평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자연의 변덕이 부린 폭염은 그 자체로는 자연적이지만 그 폭염을 견뎌내는 것은 순전히 사회적 문제다. 올 폭염으로 벌써 1000명 이상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폭염은 사계절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며, 폭염의 결과로 불평등이 더 악화되는 인권의 문제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폭염과 자연재난이 지속적으로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리라는 것은 예견되는 일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폭염 위기관리나 피해보상 근거 등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이며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재난의 불평등이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이 더 혹독한 폭염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폭염은 이제 국가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정치적인 문제다. 폭염과 같은 자연재해가 인간을 덮칠수록, 우리 곁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자원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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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같은 숫자도 단위에 따라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숫자 535 뒤에 조 단위가 붙고, 또 그 뒤에 달러가 붙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액수가 된다. 535조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경원이다. 경은 조보다 1만배나 크다. 0의 개수만 16개나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결코 마주칠 수 없는 숫자다. 얼마나 큰 액수인지 짐작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비교를 하면 피부에 와닿을지 모르겠다. 1400조원대인 한국 가계부채보다 429배나 많은 액수다. 18조1247억달러(2015년 기준)인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해도 약 30년치에 해당하는 돈이다. 어쨌든 이 천문학적인 535조달러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은가.

현재 인류가 처한 문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다. 그 심각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 농도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구의 CO2 농도는 280PPM 수준이었다. 그러다 2015년, 400PPM을 돌파했다. 400PPM은 흔히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린다. 끔찍한 대재앙의 전조다. 그래서 기후과학자들은 400PPM 수준인 CO2 농도를 350PPM 아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1.3도 높았다. 기후과학자들은 350PPM 아래로 낮춰야만 금세기 후반에 기온 상승폭을 1도로 묶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015년 말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은 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기준 2도 이내로 묶는 것이 목표다. 이 추세로도 지구 기온은 엠 간빙기 때만큼이나 높아질 수 있다고 기후과학자들은 우려한다. 엠 간빙기는 13만~11만5000년 전 지구가 뜨거웠던 시기다. 지금보다 빙하가 훨씬 적고 해수면은 6~9m나 높았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재앙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CO2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줄이지 않고 CO2를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이론적으로는 CO2를 제거하면 된다. 즉 대기 중에서 CO2만 추출해 밀폐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CO2 포집·저장 기술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쉽지 않고, 그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프랑스·중국·영국·호주의 기후과학자들이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2100년까지 대기 중 CO2 1조t을 추출해 저장하려면 535조달러가 든다는 내용이다. 논문은 유럽지구과학협회가 지난 18일 펴낸 ‘지구시스템다이내믹스’ 최신호에 실려 있다. 연구자들은 이 비용을 ‘미래세대의 부담’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535조달러는 우리가 CO2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후손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인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인구를 75억명으로 추산하면 1인당 부담액은 8억원이나 된다. 미래세대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액수다.

어떻게 535조달러가 나왔을까. 계산법은 이렇다. CO2 배출량 증가율을 현 추세인 2%로 가정했을 때 금세기 말까지 대기 중에서 추출해야 할 CO2 양은 1조t에 이른다. 이를 모아서 지층 아래에 저장할 경우 드는 비용이 535조달러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CO2 배출량을 2021년부터 매년 6%씩 줄인다면 2100년까지 추출할 CO2 양은 1500억t으로 줄어든다. 이 가운데 1000억t은 농업과 산림정책 개선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 경우 비용은 최대치의 6분의 1 수준인 89조달러로 떨어진다. 하지만 연구팀은 CO2 포집·저장 기술은 현재로서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펜스테이트대학이 지난해 한 실험을 보면 추출한 CO2를 저장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연구팀은 지층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암과 석회암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암석에는 구멍이 많고, 지하수는 소금을 용해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곧 물과 CO2가 만나면 소금물의 산성이 더 강해지고, 그 물은 바위를 녹인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CO2를 지층에 저장하는 방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535조달러는 너무나 큰 액수이다 보니 좀처럼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당장 나와 무관하다고 여길 수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숫자가 아니다. 무시해서도 안된다. 우리 자식들과 후손, 인류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어쩌면 535조달러는 미래가 인류에게 미리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535조달러짜리 청구서를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명하다. 미래세대로부터 지구를 파괴한 세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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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내가 가 본 세계 여러 곳의 자연사박물관 중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전시를 하고 있다. 입장하면 만나는 대형 홀에 가득한 동물들의 박제는 홍수 앞에서 모든 종의 생명체를 보존하려고 했던 노아의 고민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물관 전체에 기상 현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가끔은 번개도 치고 밝기도 바뀐다. 2015년 12월12일 타결된 파리기후협약을 상징한다. 이 협약은 지금 국가로 인정받는 197개국 중에서 시리아와 니카라과를 제외한 195개국이 서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2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한 이 협약은 작년 11월4일부터 포괄적인 구속력을 가진 국제법으로 효력이 시작되었다.

파리기후협약이 대체한 이전의 기후협약인 교토의정서에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온실기체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미국, 중국, 인도 등이 빠져 있어서 실효성이 작고 참가하고 있는 당사국들의 불만도 컸다. 하지만, 파리협약은 이런 한계를 넘은, 지구 역사의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인류 역사는 다시 크게 후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한 뒤 뒤돌아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 _ 신화연합뉴스

지구온난화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심지어 그의 탈퇴 선언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선언만으로도 그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다.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인류 역사에서 전 인류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기로 한 역사적인 결정이 뒤집힌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지성이 이루어낸 연구 결과를 이해할 능력은 없고 개인적인 욕심에 눈이 어두운 지도자를 뽑은 결과가 이렇게 처참하다.

지구온난화가 진실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되었다. 40년 전에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가이아>라는 책을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지구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주장한 것이다. 러브록이 살아 있는 지구에게 인간은 여드름 같은 존재이고 지구의 자정 능력으로 인간이 훼손한 것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논란이 발생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화석 연료의 사용이나 온실 기체의 배출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더 나아가 러브록이 다국적 석유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이런 주장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이 논란에 등장하는 다국적 석유기업은 이번에 트럼프가 야기한 소동에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가 임명한 미국의 국무장관이 다국적 석유기업 출신이다.

20년 전에 비외른 롬보르가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서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서 통계적 오류를 범하고 있고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이 지구의 여드름 정도가 아니라 암세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산업화 이후 배출한 온실기체와 지구 기온이 상승한 것 사이의 관계는 명백하다. 그리고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 파국이 온다는 것도 분명하다. 마크 라이너스는 <6도의 악몽>에서 고기후학의 증거들로 과거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델링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 자료를 모아 1도씩 평균 온도가 오를 때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여주었다. 0.7도쯤 오른 지금 당장 북극이 좁아지고 그로 인해 전 지구적 기후 시스템이 요동치고 있다. 2도 오르면 거대 가뭄이 발생하고 밀림의 생물종 중 3분의 1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3도 오르면 더위로 인한 인간 생존의 한계점에 도달한다. 4도 오르면 바다와 면한 모든 지역이 수몰되고 수억 명의 피난민이 발생한다. 5도 오르면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분출되고 해양사면이 붕괴해서 쓰나미가 빈발한다. 6도 오르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대멸종이 진행된다. 파리기후협약은 지금 멈추자는 것도 아니고, 고작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노력해보자는 정도의 약속이다. 심지어 지구온난화가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롬보르조차도 2.5도를 별문제가 생기지 않을 선으로 잡았다. 급진적이지 않지만 희망을 품었던 이유는 인류 전체가 처음으로 멸망으로 가는 시계를 되돌린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겠다는 탐욕으로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자료들이 사실을 가리켜도 그들의 마음을 돌릴 길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손에 인류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여주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가 속거나 실수했을 때를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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