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으로 망가진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회사가 퇴행을 거듭하는 동안 친구의 일상은 확 달라졌다. 그림 그리기, 서예, 요리 등 각종 취미생활을 섭렵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다른 짓을 하면서 버티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니기 힘들다며 웃는데, 그 덤덤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열정 넘치던 신입은 사라지고, 못 볼 꼴을 많이 본 자의 씁쓸함이 가득했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바로 징계다. 저항하는 자는 제거되고, 따르는 자는 이익을 얻으며, 시스템이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때 개인이 버티기란 쉽지 않다. 말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무력함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핵심이니까.

‘블랙리스트’도 비슷하다. 다들 심증은 있되 물증이 없었을 뿐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예 명단을 만들어 배제할 사람과 지원할 사람을 지명해 하달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린다. “사실은 사실로 판가름나지 않았다. 사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힘이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소설의 구절을 빌린다면 ‘아무리 우스운 리스트여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힘이고, 이 정부가 내세우던 ‘문화융성’이었을 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탔어도 5·18을 다룬 소설을 쓴 이상 리스트에 포함될 사유가 충분해지는 식이다. 그 결과 조악하고 엉성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고, 일단 한 번 만들어지자 리스트가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정할 수 있는’ 윗분의 뜻에 따라, 일은 착착 처리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거인멸 중단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덮어쓴 후 벗어서 하늘로 날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로 수천억원의 문화예술 예산을 주무르며 ‘문화융성’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블랙리스트에 오른 현장 문화예술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지원조차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받지 못했다. 문화예술지원사업의 대부분이 공적 기금, 그러니까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부 지원 자체가 끊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예술인들이 바로 오늘(10일),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문을 연다.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은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빼앗고 관객들에게 공론장으로서 공공극장을 빼앗았지만, 동시대 고통받는 목소리들이 사라진 공공극장을 광장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 이 극장의 취지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기심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더러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와 반대로 적극 지원하거나 추천하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까지 만들어 화끈하게 지원했다는 이 정권이야말로 이기심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블랙리스트를 만들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검열하고 탄압할 수 있었던 지난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예술과 문화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해서는 안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는 네덜란드의 문화정책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문화예술지원의 오랜 명제인 ‘팔길이 원칙’(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만 지켜져도 감사하겠다.

앞서 언급한 친구의 직장은 MBC다. 간판뉴스 시청률이 2%대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특검 블랙리스트 수사’에 딴지를 걸고 있는 ‘대단한’ 언론사다. “블랙리스트 운영을 언론, 사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보고 있다”는 특검의 수사에 희망을 걸다가도,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가 사라지기 전에 이 친구는 극장을 취재하러 갈 수 있을까?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꼼꼼하게 뿌려져 작동 중인 블랙리스트들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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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다. 한 해를 마감하기 사흘 전에 찾은 광화문광장에 부는 바람은 찼다. 하지만 가을 끝자락에서 겨울로 진입하던 때 뜨겁게 달궈졌던 광장의 열기는 칼바람에도 식지 않았다. 작가 최인훈은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고,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두 공간의 어느 한쪽을 가두어버릴 때 인간은 살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옳았다. 광장의 촛불은 밀실의 어둠을 몰아냈다. 죽어가던 민주주의를 살려낸 광장은 위대했다. 1000만개의 촛불로, 질서 있는 분노로, 저항의 함성으로 가득 찼던 광장은 명예혁명의 산실이었다. 헌정파괴와 국기문란을 일삼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열차에 올려 태운 광장의 명령은 준엄하고도 단호했다. 세밑 광장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작을 간구하는 외침으로 가득 차 있다. 70년간 쌓인 적폐를 걷어내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외침이다.

그런 광장이 막혔다면? 촛불시민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고, 세상은 불의와 부패, 부정이 판치는 기득권 세력의 놀이터가 됐을 게 뻔하다. 끔찍한 일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통치자는 백성에게 자신의 존재만 알게 하고(太上下知有之), 최악의 통치자는 백성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其次侮之)”고 했다. 그가 옳았다. 연설문 작성과 관료 인선, 정책 결정을 비선 실세에게 맡긴 대통령은 무능·무지·무책임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을 복구한 검찰은 “(최순실과 박근혜의 통화 내용을) 10분만 들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저 정도로 무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독재자 아버지의 허상에 기대 권력욕만 키운 대통령은 비선 실세와 측근들에게조차 조롱의 대상이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은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와 “최순실과 박 대통령은 동급으로, 공동정권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40년 지기 최순실은 “아직도 지(박근혜)가 공주인 줄 아나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검찰도 국정농단 주범들의 관계를 ‘지시하는 가부장적 남편’(최순실), ‘아내’(박근혜), ‘사촌’(문고리 3인방)으로 명료하게 정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대통령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고, 저 혼자만 똑똑하고 나머지는 다 병신들”(김종필 전 총리)로 여길 정도로 오만했다. 그런 최악의 통치자를 업신여기지 않을 시민이 있다면? 아마 ‘혼이 비정상’일 게다.

알제리의 식민해방투쟁가 프란츠 파농은 “어리석은 권력은 민중의 목소리를 거부하다가 끝내 자멸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가 옳았다.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은 친일·독재를 미화한 국정 역사교과서,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동북아 신냉전을 불러온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남북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폐쇄 등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게이트의 주범이면서도 자신의 책임은 털끝만치도 인정하지 않았다. 간교한 정치적 술수로 ‘막판 뒤집기’만을 노리다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 대통령을 시민들은 ‘죄의식 없는 확신범’으로 여길 뿐이다.

영국의 신학자 스티븐 체리는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옆구리에 깊숙이 박힌 창을 내 손으로 뽑아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게 용서”라고 했다. 그가 옳았다. 세월호 침몰 당일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수장될 때 올림머리를 하느라 90분을 허비한 대통령을 용서할 수 있을까. 구의역 19살 노동자와 백남기 농민이 죽어갈 때,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신음할 때, 서민들이 생활고로 절망할 때 청와대 관저에서 미용주사를 맞고 ‘혼밥’을 먹으며 TV를 보던 대통령을 용서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심판 답변서에 “최순실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 “측근비리가 발생한 역대 대통령도 탄핵 대상”이란 막가파식 논리를 편 대통령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런 대통령을 옆구리에 깊숙이 박힌 창을 뽑아내는 고통을 견디며 용서할 시민이 있다면? 아마 ‘박사모’ 회원일 게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해가 바뀌어도 잊지 못할 이름들이 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이들의 이름은 ‘1분 소등’ 시위 때 광장에 울려 퍼졌다. “최강서, 이운남, 이호일. 박근혜 당선 직후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이름입니다. 고창석, 이영숙, 권혁규, 박영인, 남현철, 허다윤, 조은화, 양승진, 권재근. 세월호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관홍, 최종범, 염호석, 한광호, 송국현, 백남기, 김주영. 박근혜 정권에서 희생된 분들의 이름입니다.” 촛불항쟁의 길을 터준 이들의 이름은 산산이 부서지고, 허공에 흩어졌어도 시민들은 설움에 겹도록 부르고 또 부를 것이다. 잊지 못할,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이름이기에….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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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어두침침하고 섬뜩한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말한 것처럼 현실은 어쩌면 인공지능 컴퓨터시스템이 우리 뇌 속에 심어놓은 거대한 환상에 불과한지 모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가. 작금의 현실에 빠져들수록 디지털 지하세계 ‘다크웹’ 속의 극단적인 범죄자들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다크웹은 원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특히 독재국가의 시민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익명성 보장이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익명성 보장이라는 매력적이고 강력한 기능은 범죄자들에게 오히려 반가운 툴이었다. 이제 다크웹이라고 하면 은밀한 범죄왕국, 혹은 거대한 불법 거래시장 등을 연상시킨다. 살인청부, 보복 의뢰, 인신매매, 장기밀매 등의 거래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접속하기 위해서는 토르라는 소프트웨어 툴을 통해 가능한데, 다운로드 수만 2015년 기준 1억6000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우병우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둔 후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민정수석실에서 국가의 모든 고급정보를 접하던 그가 민간인이 된 후 한 첫 번째 행동이었다. 그는 정보조작과 교란, 왜곡을 바로잡아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오히려 대통령에게 법적논리를 제공하는 등 국정논란의 거대한 축을 형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동안 국정조사 증인으로 나서지 않기 위해 그가 숨어들어간 곳이 다크웹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보안기능을 갖춘 메신저 텔레그램이었다. 2년 전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대화록 사찰과 검열 논란이 생기면서 카카오톡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1주일 만에 200여만명이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으로 이동한 것이다.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고 김영한 비망록의 민간인,법조계 사찰에 대한 분석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의 민변,카카오톡 SNS,종교계을 계획 통제하려 했던 내용등을 공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나는 당시 ‘카카오톡 사찰의 교훈’이라는 칼럼에서 카카오톡 사찰이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창조경제의 기본원칙과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 국내 이용자들을 불안케 해 결과적으로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키느냐는 것이 칼럼의 요지였다. 최근에서야 창조경제가 그처럼 어설프고 엉성하게 진행되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일당은 창조경제까지 말아먹고 있었다. 문화융성사업 예산을 유린하던 차은택은 한동안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국민혈세에 빨대를 꽂고 지속적으로 이권을 강탈해 나가고 있었다. 최순실은 아직도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이터 분석기술로 휴대폰 사용자가 어느 곳을 돌아다녔는지를 분석해 24시간 이후 사용자가 어디에 있을지, 20m 이내의 정확성으로 예측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최순실은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남겨두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대통령의 연설문과 대선 관련 자료, 외교문서까지 망라돼 있는 태블릿에 셀카까지, 모든 게 드러났는 데도 말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장관·차관은 물론 국가기관의 인사를 전횡하고, 딸을 부정입학시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무원까지 내쫓는 모습은 다크웹의 위험한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의 정보독점과 왜곡은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그들은 그저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의 심부름꾼이고, 정보를 왜곡 조작하는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었다. 사악한 정치권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보조작을 통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박관천 전 경위나 조응천 전 비서관,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권력이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된다.

혼란스럽다. 현실은 막장드라마보다 신선(?)하고 추악했으며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는 마약, 폭발물, 장물, 위조화폐, 장기밀매 등이 넘치는 다크웹이라는 가상공간보다 위험하고 살벌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사기, 음해와 협잡, 사찰과 갑질, 완장질 등은 소통하지 않고 군림하려는 정권이 남겨준 더러운 적폐다. 칼을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없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마음만 먹고 달려든다면 완벽한 보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안시스템은 책임자가 반드시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 국가 개조작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권력의 정보조작이나 왜곡 등의 적폐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정직하고 공평한, 특권 없는 사회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이다.

최희원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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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갖가지 추문을 단박에 잠재운 강력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이 사건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간 박근혜 정권 아래 이루어진 모든 일과 맞물려있다. ‘문화융성’이란 모토 아래 추진된 여러 행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 선임이 최순실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

그 무리들에 의해 온갖 비리가 저질러졌고 블랙리스트도 작성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작성한 리스트란다. 2014년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 명단을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내려 보내 지원사업 선정에 반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옥죄고 탄압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방증하고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정부는 돈줄을 풀거나 조이는 방식으로 문화계를 길들여왔다. 자신들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이들을 모조리 좌파로, 빨갱이로 몰아 뽑아내고는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선거캠프와 새누리당 출신 친정부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내리꽂았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갖은 비리와 전횡을 일삼아 왔음도 익히 접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동일한 욕망으로 공동체를 이룬 무리이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 자본을 확장하고 대를 이어 보존하고자 하는 탐욕으로만 점철된 강고한 카르텔이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차은택의 스승이란 이유로 장관에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김형태 전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한 이였는데 최근 성추행과 인사전횡 등으로 해임됐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통령 관심사항인 전시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진즉에 파리 목숨이 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를 관리하는 간부직엔 대선캠프에서 활약한 기업인이 추천한 인사가 낙하산 임용됐다는 설이 오래전부터 파다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국내 미술상황에 대해 거의 무지할 수밖에 없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외국인 관장 뒤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로 인해 서울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전시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덕 전 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 응모해서 선별된 후보자를 선임하지 않고 미루다가 끝내 무산시키고 뜬금없이 낯선 외국인을 관장으로 선임한 배경을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여타 미술관의 관장이나 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윗선과 연결된 문체부 관리들이 주축이 돼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진보나 좌파적 성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들을 적극 소탕하고 내치는 한편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조직적으로 앉혀왔다고 본다.

그렇게 기관의 장이 된 이들이 각종 행사에 나와서 문화융성에 대해, 문화예술의 창조성에 대해 온갖 수사로 지껄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공무원들은 그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주도해나갔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특정 예술인들을 속아내고 지원금을 차단하고, 직장에서 내쫓거나 검열을 일삼는가 하면 대통령 측근 인사를 심어주는 일을 충실히 집행한 대가로 승진하거나 해외 문화원 원장으로 영전돼 나갔다. 이게 우리나라 문화현실의 꼬락서니다. 이러한 문체부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괴벨스나 매카시, 박정희가 지배했던 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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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수상하다 못해 부끄럽다.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에서 갑자기 대통령의 무능과 부패를 꾸짖는다. 특종 경쟁까지 점입가경이다. 낯설다.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스스로 지금까지의 행태부터 반성해야 한다. TV조선에서 박근혜 불러놓고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운운하던 건 어쩌고. 반성이 없으니 기회주의로만 보인다. 그런 처신으로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 같지는 못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수구정치인들의 야합이다. 그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저지른 패악의 결과다. 해방 후 친일매국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해서 악의 뿌리들이 카르텔을 형성했다. 지금의 참담한 상황은 그 유산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뿌리까지 들어내고 뽑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축복인지도 모른다. 부역을 종결시킬 기회다. 역사는 그런 악의 뿌리가 3대를 가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양국충(楊國忠). 당 현종 때 양귀비의 육촌 오빠인 자다. 황제의 총애를 받은 누이를 업고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무뢰배였다. 오죽하면 친척들까지 상종하지 않으려 했을까. 재상이 되자 천하의 일을 다 쥔 듯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국가의 중요한 일도 마음 내키는 대로였다. 공경대부들조차 턱짓과 표정으로 지휘했다. 무소불위 그 자체였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안 될 일이 되고 거치지 않으면 될 일도, 되어야 할 일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무려 40여 개의 직책을 겸임했다. 천하의 모든 관직을 양국충이 쥔 셈이다. 그쯤 되니 양(楊)가 성을 가진 자들치고 한 자리 차지하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오죽하면 양씨 가문에서는 ‘닭이나 개조차 하늘로 날아오를 지경’이라고 했을까! 계견승천(鷄犬昇天)의 시대였다. 양국충을 추종하던 무리가 조정과 지방의 수령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눈에 들면 권력의 공과 사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 끝내 ‘안사의 난’을 맞았다. 양국충은 패퇴하여 현종을 따라 도망가다가 격분한 장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나라와 백성을 망친 주범이라 여겨 격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를 추종하던 자들 역시 파국을 피하지 못했다. 도승지 사고조차 미치지 못하는 전 비서실장은 코웃음을 쳤다. 봉건시대에도 없을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그러나 며칠 뒤 모든 일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대통령도 피해자라며 감싸는 발언도 했다. 여전히 정신 못 차렸다. 당 대표는 연설문 자문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자기도 연설 전 여기저기 물어본다고. 가벼운 자다. 주제넘은 옷을 입었다. 당 대표의 격이 아니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란 판에 변명과 침묵뿐이고 심지어 엉뚱하게 물귀신 버릇까지 어김없다.

‘시민의 삶’을 산 적 없고 스스로를 공주나 여왕쯤으로 여기는 사람을 지도자로 섬긴 자들이다. 실체를 이미지와 포장으로 차단했다. 물론 그 포장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도 ‘기꺼이’ 거기에 홀린 유권자들도 문제이긴 하다. 어떤 이는 말한다. 그 사람들하고 책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겹친다고. 공부하지 않고 분별하지 못했기에 그런 선전과 이미지에 스스로 속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그런 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줄 서고 아양 떨던 자들이다. 오죽하면 한 심리학자는 “극우보수와 최순실이 박근혜씨를 ‘사육’해 대통령으로 내세웠다”고 말할까. 이쯤이면 대통령의 자격도 능력도 정지된 것이다.

청와대 수석, 장관, 차관도 최순실에게 선을 대며 들락댔다.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관의 목도 날아가는 걸 봤다. 그 여인에 가까이 선 자까지 호가호위를 누렸다. 광고감독으로는 유능했을지 모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겁결에 닿은 줄이 청와대까지 쥐락펴락하는 비선 실세였다. 능력을 넘어선 탐욕으로 나라를 유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자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다. 능력도 자질도 없는 자가 이 나라 문화를 다 말아먹어도 비판은커녕 거기에 줄 댈 방법만 모색했다. 최순실과 차은택이 의지할 태산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태산이 아니라 얼음산일 뿐이었다. 해 나면 금세 녹을 뿐인.

대통령이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다. 그럴 거면 뭐하러 장관을 세웠을까. 게다가 여론을 무시하고 능욕하며 국민감정 짓뭉개고 앉힌 장관들이다. ‘베이비토크’의 어휘력과 문장력 때문이었다. 장관의 말을 알아들을 줄 모르고 해야 할 말도 모르니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장관 해 먹기 참 좋았을 것이다. 부르는 일 없으니 긴장할 것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이상한 정책 지시하면 그대로 아래에 전하면 그뿐이었을 테니. 그러면서 나라는 멍들고 썩어갔다. 조선시대 정쟁 심할 때조차 같은 붕당의 대신들마저 자기 부서를 위해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 내각을 차지한 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들끼리는 신났다.

최순실이 진짜 실세임을 재빨리 안 자들은 거기에 줄 대는 일에만 몰두했다. 경제가 무너지고 청년들이 절망해도 남의 일이었다. 관리들은 그녀의 눈치 보기 바빴고 그녀 주변의 쓰레기들은 돈 쓸어 담을 일에만 몰두했다. 언론도 거들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발 잽싸게 빼는 기회주의에 편승하고 있다.

문장 하나 제 능력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대통령. 애당초 깜이 아니었다. 닭은 날지 못한다. 물론 급하면 퇴화한 날개로 짧게는 난다. 주변에서 그 닭에 봉황과 공작의 깃털을 붙였다. 닭은 스스로 봉황이라 여겼지만 추종세력은 실체를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입 다물었을 뿐이다. 퇴행과 퇴화의 결정판이다. 그게 하필 지금, 가장 어려운 때 벌어졌으니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그런데 진행되는 꼴은 거의 희극 수준이다. 온갖 양아치들이 득시글대며 부나비처럼 권력을 농단했다. 그 실체가 이제야 드러났다. 그러자 뜬금없이 개헌 카드로 덮으려 했지만 용감한 한 언론의 폭로로 그 암수는 금세 무산되었다. 그걸로 이미 끝났다. 그런데 아직도 봉황이라고 착각한다. 엉뚱하게도 오동나무 위에는 온갖 새들의 깃으로 위장한 칠면조가 봉황으로 여기며 앉았다. 그 칠면조가 돌아왔다. 닭과 칠면조가 세상을 능멸했다.

젊은 철학자 임건순은 우리의 비극은 바로 ‘못 배운 사람들의 맹신과 배운 놈들의 부역’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책도 읽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는 지도자, 그 지도자와 똑같은 유권자. 그게 우리 비극의 근인(根因)이다.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 한다.

부역자들을 반드시 밝혀내고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래야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민특위의 무산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지금 반드시 그들을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 ‘닭이나 개조차 하늘로 날아오를 지경’을 끝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바로 선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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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은거해온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어제 오전 극비리에 귀국했다. 최씨의 측근으로 중국에 머물던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씨도 “귀국해서 검찰수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권력을 등에 업고 장관 인사와 국가예산, 재벌기업을 주무르며 국정을 농단한 두 사람이 서로 입을 맞춘 듯 조기 귀국으로 선회한 것이다. 특히 두 사람이 돌연 귀국의사를 밝힌 지난 28일 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에 대해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음날 청와대에 압수수색을 벌였다. 누군가에 의해 짜인 각본처럼 국정농단 비리의 두 주범과 청와대, 검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이다.

30일 오전 최순실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극비 입국하는 장면이 한 시민의 휴대폰 카메라에 찍혔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일사불란함이 ‘성역없는 수사’보다는 ‘파문 축소’에 맞춰진 듯 석연찮은 행보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고도 압수수색 방식을 놓고 청와대와 이틀 연속 입씨름만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사이 청와대 비선 실세로서 특권을 마음껏 누리던 최씨는 극비리에 입국해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공항을 빠져나갔다. 검찰이 알고도 봐준 것인지, 모르고 있다 놓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씨는 입국 직후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하루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고 검찰은 곧바로 ‘오늘은 소환하지 않겠다’고 호응했다. 최씨 측과 검찰 수뇌부가 귀국 전에 사전 교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최씨의 돌연 귀국과 일련의 움직임이 진상규명을 위한 자발적 행동이라기보다 조직적 은폐를 위해 이번 사태를 지휘하는 사령탑이 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하루라도 빨리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해 ‘말맞추기’나 ‘증거은폐’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동안 미적거리던 검찰의 수사 태도를 보면 여전히 권력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최씨는 구체적 증거가 드러난 국가기밀 유출 등 자신을 둘러싼 비리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최씨는 여전히 검찰 조사에서도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각본도 짜였을지 모른다. 그동안 검찰은 항상 박 대통령이 제시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맞춰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과 검찰이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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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조계 이너서클의 실체를 파헤친 역저다. 출간 시기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이다. 지금쯤 속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경준·홍만표 이야기가 아니다. 청와대 주변 부나방들 얘기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법학자인 손기병 교수(가명)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합니다. 실력주의, 업적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입니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마이클 영에 따르면 메리토크라시는 지능지수와 노력에 의해 수월성(merit)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메리트를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메리토크라시 사회라는 것이 손 교수의 주장입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0월 11일. 출처: 경향신문 DB

시험은 사람의 열정과 재능을 평가하는 많은 수단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시험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열정과 재능을 폭넓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시험 결과조차 부모의 배경, 학교와 교육시스템이라는 비능력적 요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터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하에서는 메리토크라시 비판도 사치로 여겨진다. 메리토크라시마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오장육부’로 불린다는 최순실씨가 대표적 사례다. 왜 최씨는 대통령의 친동생도 넘기 어렵다는 청와대 문턱을 내 집처럼 넘나드는가. 왜 그의 딸은 개인 승마연습 때도 한국마사회에서 감독을 파견하는 일이 가능한가. 왜 그의 딸을 위해 명문대가 학칙을 개정했다는 말까지 나오는가.

광고감독 차은택씨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CF계의 ‘미다스 손’이었다고 하나 일반인에겐 생소했던 그가 어떻게 ‘문화계 황태자’로 등극할 수 있었는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은 또 어떤가(우 수석은 메리토크라시의 통과의례인 사법시험이라도 거쳤다고 치자). 다른 젊은이들은 운전도 못해 불안한데, 그는 ‘코너링’이 유난히 좋다는 이유로 서울경찰청 차장의 운전병이 된다. 이들이 보유한 수월성의 실체는 ‘대통령과 가깝다’(혹은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과 가깝다’)는 것뿐이다. 시험을 통과하지도, 선거로 선출되지도 않은 ‘박근혜 친목모임’ 출신에게 부와 명예와 권력과 편리가 집중되는 것은 비정상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7일 코리아 가상현실(VR) 페스티벌을 찾았다. 대통령은 “기가 막힌다” “대단하다” “놀라움의 연속”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다음 세대의 반은 가상현실에서 살면서 거기서 배우고, 또 반은 현실에서 사는 이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대통령은 감탄할 이유가 없다. 최순실, 차은택, 최씨의 딸, 우 수석의 아들은 실재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세계는 이 글을 쓰는 나와, 읽을 독자들이 속한 현실이 아니다. 일종의 가상현실이다. 대통령도 그들과 함께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800억원 모금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세상, 특정 광고감독이 특정 대기업 방송광고의 절반 이상을 ‘자연스럽게’ 독식하는 세상. 일반 시민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짐은 곧 국가’라 여기는 대통령에겐 딱히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 최순실 의혹을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으로 일축하며 의혹 제기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몰아붙이지 않았겠나. 무력한 시민은 이 가상현실의 성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을 얻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이런 세상에 한 자리 끼어들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메리토크라시는 왜곡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메리토크라시마저 무력화시키는 ‘박근혜크라시’는 왜곡을 넘어 최악이다. 박근혜크라시에는 메리토크라시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규칙조차 없기 때문이다. 권력자와의 거리가 돈과 힘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인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아니 왕자·공주의 나라보다도 나쁘다. 많은 군주국은 왕실의 특권을 허용하는 대신 군 복무 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한다. 최순실과 차은택은 집권당의 엄호 속에 국정감사 출석조차 면제받는다. ‘박근혜의 신성가족’끼리 모여 사는 가상현실을 깨부수려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런데최순실은?”(※)

※트위터·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붙이기 캠페인이 일고 있다.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최순실 의혹’을 상기하자는 취지다. 해시태그란 #(해시) 기호 뒤에 단어·문구 등을 띄어쓰기 없이 붙여 씀으로써 분류·검색을 쉽게 하는 메타데이터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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