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돌아섰다. 검찰이 등을 돌린 것은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군과 경찰이 시민의 편에 선 것과 같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굴종하고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다는 ‘하이에나 검찰’의 재빠른 변신이다. 검찰은 촉이 빠르다. 검찰의 표변은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란 뜻이다.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 것을 안다.

국정복귀 일성으로 던진 ‘엘시티 철저 수사’ 지시는 지금 박근혜가 갖고 있는 패가 흑싸리 껍데기만큼 보잘것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됐다. 특검 후보로 반짝 거론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과 친분이 있다. 부산의 룸살롱 마담이었던 그의 내연녀 임모씨(혼외아들의 생모)에게 레스토랑을 차려준 사람이 이영복이다. 하마터면 채동욱에게 조사를 받을 뻔한 박근혜는 ‘채동욱 특검’ 시나리오를 좌절시켰다. 대통령의 엘시티 발언은 김수남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김 총장도 이영복과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검찰총장에게 보내는 모종의 메시지란 얘기가 돌았다. 문재인·김무성 연루설까지 더하면 1타3피, 1타4피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정에 고심하는 수준이 이 정도다. 김 총장에게 물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영복 회장을 아시는가.

“그렇잖아도 범정(범죄정보기획관실)으로부터 그런 첩보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얼굴을 본 적도, 통화한 적도, 악수 한번 한 적도 없다. 난 부산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전혀 모른다.”

-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는 뭔가.

“아마 대통령도 비슷한 정보보고를 받은 것 아닌가 싶다.”

- 검찰총장을 염두에 두고 한 얘기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 문재인·김무성 연루설은.

“지라시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써대는 소설이다.”

박근혜는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던지고 있다. 최순실을 덮으려 개헌을 꺼내든 것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인지 알 수 있다.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하다”(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의학적 소견은 그래서 더 무겁게 들린다.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미국의 여류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톰 리플리가 재벌 아들인 친구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자기 말이 탄로날까봐 불안에 떠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

박근혜의 거짓말은 리플리의 수준을 넘어섰다. 최순실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 일으키는 유언비어”→“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사실”→“연설문 도움받은 정도”→“선의로 한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또 다른 거짓말을 내놓는 식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감찰에 나선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이라며 내쫓았던 그다. 이제 와선 “나도 최순실에게 속았다”고 한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계속 맡아야 한다는 자기방어 논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비정상적 자기합리화, 자기왜곡, 공감능력 상실이다. 100만 촛불민심 앞에서 뻔뻔할 수 있고, 어떤 위기에서도 멘털 갑으로 버틸 수 있는 이유다. 불행히도 김종필 전 총리의 “5000만명이 시위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언은 점점 맞아가고 있다. 의학 교재엔 리플리 증후군의 위험성도 쓰여 있다.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으로 믿게 되면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위험이 높아진다.’

지금 박근혜에게 나라를 맡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미친 마부에게 말을 맡기는 것과 진배없다. 리플리는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재능 있는 박근혜씨’는 현실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의 거짓말 릴레이와 막가파식 버티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검찰 수사도 못 받겠다고 하더니 국회 추천 총리도 철회하겠다고 한다. 중대범죄의 주범이 청와대를 진지 삼아 농성 중이다. 성(城)안에 갇힌 줄 모르고 성 밖 시민을 상대로 결사항전 태세다. 자기 살겠다고 나라야 결딴 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짓이다. 내일은 또 뭘 꺼낼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대통령은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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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발언 한 토막이었다. 어쩌다 ‘최순실의 폭주’가 가능한 사회가 됐는가를 고민하던 터였다. 채 전 총장은 며칠 전 김어준의 팟캐스트에 나와 3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내쳐진 과정을 토로했다. ‘왜 잘렸나’라고 묻자 “법대로 하다가”라고 대답했다. 검찰이 권력 말을 왜 잘 듣느냐는 물음에는 “말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 들으면 물먹이고.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 몰아내고. 뭐 그러면서 엎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검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기 때문 아닌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성과 당부가 가슴에 닿는 술회다.

조직이 샐러리맨화하면서 사회 전체가 초식동물화하고 있다는 얘기는 검찰뿐 아니라 관계, 정계, 언론계에서 늘 농담처럼 듣는 얘기다. 채 전 총장의 말처럼 이미 체제순응형 사회가 된 것인가. 난세에 모난 정일 필요없고, 험한 세상 가늘고 길게가 미덕으로 얘기된 지 오래다. 하물며 위기가 상시화하고 생존이 정의라는 시대 아닌가.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4일 (출처: 경향신문DB)

검찰이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이미 익숙한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의 잣대는 오로지 권력 편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문제제기는 사표로 이어졌다.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집권여당, 특히 친박에게 시민은 안중에 없었고 주군만 존재했다는 것은 야당 진영만의 얘기가 아니다. 옳고 그름보다는 충성이 우선이었다. 그 충성도 맹목적이었다. 관료들은 어떤가. “너무 늦으면 저희가 난리납니다. (저는) 중간에서 확실하게 전달해드렸습니다.” 관료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이 3년 전 CJ그룹 오너의 퇴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전화 내용이다. 그가 과연 엘리트 공무원 출신 맞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 기금 갹출과정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활약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학교수에서 대권 캠프를 기웃거리다 박근혜 진영에 안착한 인물이다. 주류라고 뻐기는 언론은 또 어떤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나 공공성은커녕 대통령의 발언을 충실히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이들에게 중립성이 훼손되면 국가가 위험해진다는 말은 애초부터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표현일 수 있다.

이쯤 되면 관위(官威·조그만 힘도 휘두르며 존재감 과시), 불위(不爲·부패도 저지르지 않지만 일도 하지 않음), 홀유(忽悠·교묘한 말로 포장하기), 간객(看客·강 건너 불구경 하기) 등 중국 사회를 상징하는 복지부동 표현들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옮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민도가 고작 이 수준인가. 윗선의 부당한 압력에 버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하다못해 소극적인 태업이라도 할 배포는 없어진 것인가.

보도를 종합하면 최순실은 사실상 ‘비밀 사설 정부’ 역할을 했다. 최순실의 ‘폭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능함’에서 비롯된다. 이를 감안하면 최순실의 폭주가 아니라 박근혜의 폭주라 해야 마땅하다. 검찰총장을 간단히 제압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의원을 겨냥해 시민에게 배신을 응징해달라고 요구하는 뻔뻔함을 감안하면 공포를 정치에 이용할 줄 아는 ‘전제군주’임이 틀림없다. 따지고보면 ‘부역’이란 용어가 새삼 주목받는 것 자체가 5년 단임 대통령 시대가 아닌 전체주의 시절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돌격 앞으로를 마다않는 이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체제순응형 초식사회를 흔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초식사회를 깨운 것은 역설적으로 최순실과 대통령이다.

이미 언론은 두 재단의 실력자로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찾아냈고, 최순실의 독일 내 유령회사도 밝혀냈다.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국정농단 내용도 내보냈다. 경쟁하면서 새 사실을 찾아내고 진실을 파헤쳐가고 있다. 1970년대 금권정치가 활개치며 썩어 문드러져 가던 일본이 그나마 버틴 것은 언론의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받아들여 성역없이 수사한 검찰 때문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를 낙마시킨 것은 100만엔짜리 잉어가 떼지어 놀던 정원이 딸린 별장을 사들인 점에 의구심을 가진 탐색보도에서 시작했다. 록히드 스캔들의 배후에 도사린 다나카 전 총리의 그림자를 간파하고 이를 파헤친 것도 언론과 검찰이었다.

진부한 얘기지만 ‘물은 괴면 썩는다’. 더 진부한 얘기지만 ‘관행화한 방식은 부정해야 산다’. 이런 진부함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이어 시민항쟁이 시작됐다. 채 전 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검사들이 쥔 칼자루는 법을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날뛰는 놈들을 죽이라고 국민이 빌려준 것이다.” 그들의 순서이자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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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과 관련된 개인정보 불법유출 사건은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말 것인가. 그제 1심에서 정보 유출 관련자 가운데 전 서울 서초구청 국장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고 한다. 전 청와대 행정관은 수사단계에서 범행을 시인했음에도 모호한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 앞서 검찰이 ‘윗선은 없다’며 꼬리를 잘랐는데, 그 꼬리마저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검찰총장이 불법적 뒷조사를 당하고 무고한 어린이의 사생활이 낱낱이 까발려졌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전직 구청 국장뿐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군의 정보를 불법조회한 혐의로 기소된 조이제 전 서초구청 국장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채군 정보를 넘겨받은 국가정보원 직원 송모씨에게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보 조회를 요구해 전달받은 혐의로 기소된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조 전 행정관은 지난해 6월11일과 13일 조 전 국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6월11일은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수사 결론을 듣고 ‘채동욱 찍어내기’에 돌입했다는 게 정설이 되다시피한 터다. 재판부는 문자메시지 송수신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인정한) 조 전 행정관의 검찰 진술은 언론 보도 등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언론에서 그렇다고 하니 스스로 죄를 뒤집어썼다는 말인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관련자들 사법처리 현황 (출처 : 경향DB)


검찰은 지난 5월 청와대 민정·교육문화·고용복지수석실이 채 전 총장 뒷조사에 나선 사실을 밝혀내고도 ‘정당한 감찰 활동’이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조 전 행정관과 국정원 직원 송씨를 기소하면서도 청와대나 국정원과는 무관한 ‘개인적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개 청와대 행정관과 국정원 정보관이 독자적으로 검찰총장 뒤를 캤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그런데 법원은 기소된 ‘꼬리’들에게까지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합리적 상식과 시민의 법감정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정권이 불법적으로 시민을 감시하고 개인정보를 파헤쳤다면 이는 사생활 침해를 넘어 인권유린에 해당한다. 더욱이 어린 초등학생에게까지 이러한 폭력을 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태다. 상급심에서는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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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채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