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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6 [직설]고독한 채팅방 입성기
우연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바로 개설된 채팅방 수만 1만개가 넘는다는 ‘고독한 ○○○’ 시리즈 채팅방이다. 워낙 유행이라 그런지 ‘안 고독한 ○○○’ 방들도 여럿 보인다. 궁금해져서 몇 개의 고독한 채팅방에 들어가봤다. 누구나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답게 내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카카오톡 프렌즈로 프로필 사진을 정하고, 아이디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상대방도, 나도 서로에 대해 알 수 없을 뿐더러 알 필요도 없는 구조다. 스타, 다이어트, 뜨개질, 스키, 마인크래프트, 동네 맛집, 여행, TV 프로그램 등 취미생활이나 게임까지 없는 게 없다. 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친목 금지’와 ‘고독’이 콘셉트이기 때문에 대화는 NO, 사진만 OK라는 규칙을 갖고 있는 방들이 많다.

이 고독한 방들은 일본 인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패러디한 방에서 시작해 고양이 사진을 공유하는 ‘고독한 고양이’ 방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예인 방이 많아지면서 팬들이 만든 ‘고독한 ○○○’ 방에 해당 연예인이 직접 들어와 인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들어간 ‘고독한 김생민’ 방의 대화를 살펴보다가 <김생민의 영수증>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동방신기 덕질하며 내 집 마련하고 싶어요”란 사연이 떠올랐다. ‘덕알못(덕질을 알지 못하는 준말)’인 김생민이 이 방을 알았다면 ‘고독한 동방신기 방’에 참여하라고 해답을 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잔뜩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스타와 직접 인사를 나눌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채팅방이 덕질에만 유용한 건 아니다. ‘고독한 김생민’ 방에서는 김생민 뺨치는 절약 팁과 조언이 공유된다. “전동칫솔 사도 됩니까?”란 질문에 “이를 닦을 때마다 몸을 흔들 것”이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각자 읽고 있는 책의 표지나 인용문을 올리는 ‘실속형’ 채팅방도 많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셈이다.

신기한 방이 많아 몇 개의 방에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해 봤는데 살짝 귀찮은 것 외에 부담은 없다. 일반 그룹 채팅방에 초대되면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해 머리 아픈 경우가 많은데, 오픈 채팅방은 그런 피로감에서 자유롭다. 사진만 올라오니 누군가의 이야기에 답을 할 필요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오픈채팅방은 의도치 않게 타인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거나 사소한 것까지 알게 되는 경우에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으니 그만하라는 뜻으로 요즘 많이 쓰이는 ‘TMI(너무 많은 정보/Too Much Information)’와는 좀 다른 맥락이다. 어쩌면 이 ‘고독한’ 방들은 ‘김무성 의원 탄생화는 로즈메리’ ‘푸틴은 용인대 명예박사’처럼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딱 맞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타인과의 불필요한 감정소모 없이 서로의 목적에 맞게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고,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나누는 한편 필요한 자료를 다 받으면 미련 없이 나갈 수 있는 편리함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카카오톡, 텔레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인스타그램, 블로그, 카페까지 많은 SNS를 이용하면서 온라인 관계조차 신경써야 하는 요즘, 가장 마음이 편한 수단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겠다.

‘고독한’ 방들의 유행은 20대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쓸모없는 선물 교환’과도 닮았다. 주차금지 표시판, 구멍난 고무장갑, 보도블록, 짚신처럼 최대한 ‘쓸데없는 것’을 찾아 서로에게 선물하고 노는 놀이 말이다. 비용이나 시간 걱정 없이 다른 사람이 키우는 반려동물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랜선 집사’ 놀이와 비슷한 기분으로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불특정 다수와 부담없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상품을 권유하지 않는 ‘무언(無言) 접객 서비스’가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와도 비슷할 테다.

원하든 원치 않든 너무 많은 정보와 연결점에 지쳐있는 요즘, 나는 당분간 고립되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고독한’ 오픈채팅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대답하고 싶을 때만 대답해도 아무 부담 없는, ‘고독’하게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닐 수 있는 이 채팅방에서 말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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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