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이었다. 교회는 놀이터이자 유치원이었고, 성경책이 동화책이었다. 전도사님과 목사님은 선생님이었으며 하나님은 아버지였다. 입버릇 같던 ‘아버지하나님’에 분노한 아버지의 꾸지람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래도 교회 가는 일이 즐거웠다. 어린 마음속의 예수님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늘 사회적 약자에게 손 내미는 의롭고 친절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이었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심지어 삼일 만에 부활하신 분 아닌가. 나는 그분을 존경했고 사랑했으며, 매일 만나고 싶었다. 어머니들은 식당에서 밥을 퍼주며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교회의 주요 보직은 아버지들만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엔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젠더관념이 없었다.

성장한 이후 개인사에 변화가 생겨 천주교로 개종했다. 새롭게 외워야 할 복잡한 절차가 많았지만 학생운동을 하고 바티칸에 유학까지 다녀온 똑똑한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 게 너무 좋았다.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보되 진지하게 비판할 수 있는 관점에 감명 받았다. 성당의 분위기는 엄숙했고 사람들은 경건했으며 겸손했다. 당시 나는 수사와 신부는 다 남성이고 여성은 왜 수녀만 되어야 하는지, 성당의 수많은 잡일들을 치르면서도 여성들은 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질문하지 못했다.

마음 한편 늘 꾸물거렸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인생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이름 없는 존재로 살고 있나, 대학교육이 왜 여성들에겐 쓸모없는 것이 되는가, 왜 같은 인간인데 다른 평가와 처우를 받으며 당연하게 여기는가. 불공평한 세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다. 성당은 그만 다니게 되었지만, 서구 여성운동뿐 아니라 한국의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접하면서 종교가 기여한 많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한국 사회에 평등과 인권 감수성을 도입하고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투쟁해 온 기독교와 천주교의 역사를. 조선 말기부터 성차별, 신분차별을 넘어 동등한 교육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던 이들을 기억한다. 여성에 대한 노동착취, 성착취, 인신매매, 봉건적 관습에 대해 서슴없이 일침을 가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용감한 종교인들을 기억한다. 엄혹하던 박정희 독재정권하에서도 그들은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하며 원자폭탄에 의해 희생된 조선인 배상운동을 벌이고 일본 남성들의 기생관광에 반대하며 폭압적 독재정권에 맞섰다. 1980년대 민주화과정에서는 누구보다 앞장서 최루탄을 맞고 공권력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일본군 성노예제와 미군기지촌은 물론, 성폭력 당하고, 매매되고, 일상에서 두들겨 맞고 인권유린을 당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들리는 데 더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특정 집단을 저주하고, 낙인찍고, 차별을 정당화하며, 법적 죄와 도덕적 책임까지 지우는 일에 앞장서는 이들이 바로 같은 종교를 믿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믿을 수가 없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두 팔 활짝 벌리던 그 장소, 경찰에 쫓기던 ‘운동권’ 학생들에게 문을 열어 주던 바로 그 자유와 해방의 장소에서, 똑같은 모자를 쓰신 분들이 여성억압을 정당화하는 서명지에 사인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분노한다. 성평등이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용어라며 여성가족부에 난입해 농성을 벌이는 자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허용법이라며 온갖 반대집회를 개최하는 이들, 성관계를 통제할 수도, 아이를 낳을 수도, 안전하게 기를 수도 없는 세상에서 임신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데 앞장서는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에. 살아 있는 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이들은 진정 종교인인가, 세속화되고 제도화된 이익집단인가, 약자를 탄압하는 권력집단인가. 아님, 이러한 현상 자체가 더 이상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소멸될 위기에 처한 종교의 역설적 위상을 증명하는 것인가.

종교가 단지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할 때, 혐오집단을 등에 업고 사회적 약자들을 심판하고 버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인가.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나’ ‘정의를 실천’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던 하나님의 말씀은, 더불어 살아감의 가치를 깨닫고 차별을 야기하는 불평등의 축을 바로잡으며, 공공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종교가 존재해야 함을 일깨우는 것 아닌가. 한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들이 그런 의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는 데 다시 앞장서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린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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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금기시해온 동성애·이혼·혼전 동거에 대해 포용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바티칸에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는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물론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 가톨릭이 그동안 죄악시해온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실로 놀랍고 뜻깊은 변화다.

가톨릭은 남녀 간의 결혼만 인정하는 성경 교리에 따라 지난 2000년 동안 동성애를 ‘내재적인 장애’로 여기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혼과 동거도 금기시했다. 하지만 그간 가톨릭이 교리주의에 갇혀 동성애·이혼·동거가 늘어나는 세상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현실과 교리의 괴리가 가톨릭 쇠퇴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시노트 보고서는 달라진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혁명적 전환’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이혼.동성애.미혼모 등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들 (출처 : 경향DB)


이번 회의에서도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교황은 취임 후 일관되게 ‘상처받은 가족들’을 언급했다. 그가 지난해 9월 “만약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이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누가 그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동성애에 대한 교황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가 곧장 가톨릭 교리의 변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종 결론까지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 보수적인 주교들이 반발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신(神)의 대리자급 권위를 가진 교황의 뜻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지침이 될 것은 확실해보인다.

가톨릭계의 이런 변화는 동성애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체계의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가 가톨릭의 이런 변화를 한국의 ‘상처받은 가족들’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때다. 우리 사회처럼 동성애자, 이혼자, 미혼모 등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도 드물다. 성적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이 동성애자나 다른 소수집단의 법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에 앞장섰으면 한다. 예컨대 국회에서 계속 미뤄지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가톨릭의 역사적인 동성애·이혼·동거 포용의 뜻이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전해져 소수자에 대한 종교적·법적·제도적 차별을 없애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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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서소문(소의문)은 서울성곽에 있는 사소문 중 하나다. 서소문은 사대문 및 사소문 사업의 일부로 태조 5년(1396년)에 건립됐다. 원래 이름은 소덕문인데 보통 서소문이라고 불린다. 강화군 또는 인천군을 향하는 관문으로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됐다. 한양 도성의 장례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은 사소문 중 서소문과 광희문밖에 없었다.

한국천주교 역사에 약 1만명의 순교자가 있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100여명의 천주교인이 서소문에서 처형됐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주재로 서소문의 천주교 순교자 44명이 성인품에 올려졌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서소문의 순교자 27명이 시복됐다. 다산 정약용의 형 약종(1760∼1801)도 이곳에서 참수됐다. 서소문은 이제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서소문에서 천주교 순교자들만 처형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형이 서소문에서 집행됐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전봉준, 홍경래 같은 의인들도 여기서 처형됐다. 황사영 같은 천주교 신자도 여기서 처형됐다. 황사영은 조선을 청나라로 편입시키거나,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이다. 서소문은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처형된 곳이다. 천주교가 이곳을 독점 소유할 권리나 명분은 없다.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묻고 싶다. 이곳을 단독 성지로 추진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가. 국민들과 이웃 종교에 양해를 구하고 상의했는가. 똑같은 질문을 정부에 하고 싶다. 서소문에서 가톨릭 순교자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정부가 가톨릭 단독 순교성지 조성에 나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벌써 정부와 서울시가 총사업비 513억원 규모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설계공모까지 들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당시 서소문공원을 방문했다. 교황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정확하게 보고받고 있을까. 만일 교황이 그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된다면 과연 찬성할까. 교황의 서소문공원 방문 사실 자체를 마치 교황이 서소문 단독 성지 사업을 찬성하는 신호로 해석하거나 선전하는 것은 지나치다.

천주교는 서소문에 큰 의미를 둘 만하다. 그러나 서소문을 천주교 단독 성지로 만들려는 생각은 무리다. 천주교는 정부의 호의를 얻어 특혜를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천주교의 환심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천주교는 정부에 기대지 말고, 정부는 천주교를 이용하지 마라.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출처 : 경향DB)


나는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단독 성지로 만드는 데 반대한다. 서소문이 천주교 성지인 것은 맞지만 천주교 단독 성지인 것은 아니다.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단독 성지보다는 서소문에 관계된 여러 종교의 공동 성지로 만들면 어떨까. 일종의 평화공원 말이다.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서도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지난날의 순교자를 공경하는 것보다 지금 순교하는 일이 천주교에 더 중요하다. 성지 개발이 교회의 주된 임무는 또한 아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편드는 데 우선 더 신경 써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며칠 전 한국주교회의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천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은 서소문 성지를 위해 노심초사할 것이 아니라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천주교가 돌아가신 순교자를 존중하자고 외치면서, 지금 살아 있는 순교자를 외면하면 되겠는가. 서소문성지 문제에서 한국천주교의 정신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와 정부가 어떻게 처신하는지 국민들과 이웃 종교가 지켜보고 있다.


김근수 |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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