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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04 [시론]혁명의 의미

혁명은 ‘정당함’을 표현하는 언어다. 세계와 인간과 삶의 본질인 ‘좋음’을 구현하기 위한, 즉 실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란(rebellion)’이나 ‘반역(revolt)’과 구분해 ‘혁명(revolution)’이란 말을 별도로 만들어 쓰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혁명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기존의 권력층을 뒤엎거나, 특정 정권을 타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와 인간과 삶의 본질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낡은 체제(앙시앵 레짐)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근대 문명의 정치적 특성인 민주공화제의 등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혁명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보면 혁명이 반란이나 반역과 다른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루이 16세가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선 “반란인가?”라고 물었으나, 그의 최측근이었던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가 “아닙니다. 폐하! 혁명입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는, 혹은 이 일화를 소개한 <프랑스 혁명>(1837)의 저자 토머스 칼라일은 루이 16세와 달리 바스티유 감옥 함락의 의미가 루이 16세의 퇴진만이 아니라, 시민과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절대왕정과 신분사회로 압축되는 앙시앵 레짐의 사멸과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질서, 즉 민주공화제를 요구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미국의 독립혁명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에 앞서 일어난 미국 독립혁명 역시 단지 영국의 왕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획득’이라는 좋음을 추구한 사건이다. 프랑스와 미국 외에도 근대 문명 세계에서 강대국 혹은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 대부분이 혁명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근대 의회정치 발전의 기초가 된 명예혁명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독일도 기억할 만한 혁명의 역사를 갖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말미인 1918년에 제정을 무너뜨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기초를 세운 11월 혁명이 그것이다. 아예 유럽 전체를 휩쓸면서 혁명의 경험을 선사했던 사건도 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수용토록 한 1848년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아직 어둡습니다. 지난해 세밑까지 촛불을 들었을 때 시민들은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라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은 ‘여기 사람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였습니다. 암흑에 빠져 있던 민초들을 꺼내야 한다는 구조 신호였습니다.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이었습니다. 새해에는 촛불을 켜지 않아도 대지와 광장의 목소리들이 곳곳에 전달됐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삶이 밝아졌으면 합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은 새해 첫날 새벽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김창길 기자

최근 대한민국에선 촛불시위 과정에서 혁명이란 말이 공론장에 다시 등장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혁명이란 슬로건을 들고나오고, 지식인들이 촛불시위의 성격을 시민혁명으로 파악하면서다.

4차 산업혁명론을 필두로 문명의 전환이 거론되고 있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대한민국 재설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혁명이 공론장의 주요 토픽으로 등장한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이번 기회에 촛불시위를 통해 모아진 민의를 구체제의 청산과 새로운 체제의 수립으로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촛불시위가 실제 혁명으로 이어질지 아닐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 혁명의 기운만이 아니라, 혁명으로 평가할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다수의 참여와 결집을 가능케 한 평화적 방식의 고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나는 내가 대표한다”는 기치하에 기성 질서에 대해 해학과 풍자의 언어를 구사하고, 기존 운동단체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의사표현과 참여의 방식도 그러하다. 혁명으로 불린 여타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했을 때조차 혁명적이다.

촛불시위를 이런 방향으로 이끈 촛불시민은 ‘새 술’이다. 촛불집회의 진행을 담당했던 한 인권운동가가 “이들이 다 어디서 (광장과 거리로) 나왔나”하고 물음을 던질 정도로 새롭게 등장한 주체이다.

고약한 승자독식체제에서의 고단한 일상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벗과 함께 광장을 사수한 주체들이다. 그러나 아직 촛불시민이라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없다. 새 술의 맛을 더 감칠나게 할 새로운 장인이 누군지도 아직 모르겠다. 촛불시위를 여전히 일시적 저항의 관점에서만 조망하거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로만 몰아 개헌만 힘주어 주창하거나,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통해 자파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기성 정치인들, 특히 노회한 정객들을 볼 때 그러하다.

2017년, 이들을 넘어서서 촛불시민 스스로가 새 부대를 마련하고, 새 술의 맛을 더 감칠나게 할 새로운 장인을 발견해내길 갈망한다. 그래서 촛불시민이 혁명의 도정에서 진짜 주역으로 서길 기대한다.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혁명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 본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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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