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롭게 했으니 이번엔 조금 더 앞으로 나가도 좋다는 허가다. 이건 100만 또는 200만 시민에게 준법서약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찰의 행정작용이 헌법과 법률의 원칙에 맞는지만 판단해야 할 법원이 자기 역할에서 훌쩍 더 나아가 시민의 도덕교사처럼 굴고 있다. 기본부터 다시 확인해보자. 대통령이 앞장서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상황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조).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집회나 시위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로운 집회를 한다거나 남들이 버린 쓰레기마저 잘 치우는 착한 시민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선량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묻지 않고, 이전 집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느냐며 전력을 따지지도 않는 거다. 경찰이나 법원 등 국가가 허용하고 말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도 경찰과 법원이 집회를 허용하는 건 희한한 악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때문이다. 집시법은 1962년 12월 제정됐다. 군사쿠데타 직후에 국회가 아니라,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만든 법이다. 이 법을 만들었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박정희에게 임명장을 받은 쿠데타 부역자들로 구성된 반헌법 유령조직이었다. 여기서 만든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법이 여태껏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청와대 근처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건,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선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의 규정 때문이 아니다. 집시법 제12조의 ‘주요 도로’ 규정 때문이다. 교통 소통 때문에 주요 도로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주요 도로는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는데,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와 모든 자동차 전용도로에다, 서울 16개, 부산 10개 등 전국 88개 도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해 놓고 있다. 서울의 1번 주요 도로는 자하문 터널 북단부터 한강대교 남단까지다. 효자동,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 삼각지를 아우르는 꽤 긴 코스다. 그나마 1번 주요 도로는 좀 낫다. 2번 도로는 아예 서울 서남부 끝에서 동북부 끝까지다. 부천시와의 경계부터 구리시까지의 경계다. 여기에는 오류동, 영등포역, 여의도, 광화문, 종로, 청량리, 상봉동, 망우동까지가 모두 들어간다. 시내 어디든 경찰이 맘만 먹으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거다.

악법을 만든 박정희도 이렇게까지 무도하지는 않았다. 1962년의 집시법에도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는 개념은 있지만, 그건 관공서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전과 1시간 후까지로만 한정된 개념이었다. 만약 박정희가 만든 집시법이 여태껏 남아 있었다면, 주요 도로를 핑계로 집회 금지 통고를 반복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는 주로 출퇴근이 없는 토요일에 모인다. 54년 동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도 통탄할 일이지만, 그냥 존속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박정희 때보다 퇴행했다.

청와대는 다섯 번의 촛불집회 내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차피 기댈 게 없는 사람, 진작 쫓아냈어야 할 사람이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국회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중만 쫓는 여당은 제쳐놓더라도, 야당이 이러면 안 된다. 촛불 행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반헌법, 반인권 악법을 폐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야당 의원이 청와대 앞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개정안을 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의원들에 비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집시법 문제는 청와대 앞 100m를 30m로 당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집회와 시위를 경찰이 허가하는 근거 법률인 집시법이 남아 있는 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침해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는 집시법이란 법 자체가 없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집회와 시위가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집회와 시위가 자신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민원인에게 시달린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집회와 시위는 기본적으로 평소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우리 시민들, 특별히 가난한 시민들의 권리다. 말로만 민심을 좇는 게 아니라면, 당장 광장을 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광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집시법이다. 쿠데타 시절보다 못한 퇴행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헌법질서가 일상적으로 파괴되는데도 잠자코 있는 까닭이 뭔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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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세력이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하면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부추기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거론한 것이 바로 개헌을 고리로 한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개헌론을 제기하면 탄핵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담화이다. 야권 내 일부도 개헌을 주장하므로 야권을 분열시켜 탄핵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던 지난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느닷없이 개헌을 제안해 정국 반전을 꾀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개헌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그 카드로 판을 뒤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 뒤편으로 나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무엇보다 허다한 정치·사회적 과제를 개헌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옳지 않다.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시민 의사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한국 사회의 권력이 된 재벌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하청을 받는 청부업을 청산하고 독립적 주체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정당체제, 정치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 방송개혁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시민이 하라는 개혁은 안 하고 헌법 타령을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개혁해야 할 낡은 정치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 국면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개헌으로 판을 흔들어 보겠다며 헌법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여야의 대선주자들과 여러 세력들이 대통령 중임제니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자기에게 유리한 권력 구조로 바꾸려고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헌이라는 거대 이슈를 꺼내들어 일반 시민들을 배제하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 개인적인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정치인의 바른길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개헌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대선에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하고 대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논의하면 될 일이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은 시민들이 이미 마음으로 탄핵한 박 대통령을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개헌론을 꺼내겠다면 그것은 촛불에 대한 저항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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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는 지난 한 주간 트위터상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키워드가 6주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21일부터 27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29일 발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비아그라’였다. 청와대가 세금으로 비아그라와 미용 주사제 등을 대량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수행원 고산병 때문에 비아그라를 구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청와대가 고산병 치료제를 별도로 구입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지속됐다.

전국에서 190만명이 모인 26일 ‘촛불집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트위터에서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150만 인파의 촛불 파도타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로 시작된 1분 소등 퍼포먼스, 가수 양희은과 150만명의 ‘아침이슬’ 합창 장면 등이 주로 공유됐다.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된 9월2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최순실 게이트’ 관련 키워드는 약 1600만건에 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무위원 전원 사퇴를 주장하면서 ‘국무회의’ 역시 핫 키워드가 됐다. 박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무력감과 분노감으로 국무회의장을 박차고 나왔습니다”라며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하는 국민의 뜻을 분명 전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검찰이 삼성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압수수색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언급량도 급증했다. 검찰은 국민연금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대가로 정권 및 최순실씨가 이익을 취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후쿠시마’가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한 키워드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22일 새벽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일어났지만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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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시위의 새 역사를 썼다. 전국을 밝힌 190만 촛불은 사상 최대 규모요, 촛불의 절정이었다. 춥고 눈·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도 훼손된 민주주의를 시민 손으로 직접 되살리려는 촛불은 횃불로, 들불로 번져 활활 타올랐다. 시민들은 활력이 넘쳤고 외침은 엄중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에워싼 인간띠 잇기는 청와대를 포위하며 행진을 벌였다. 6살 아들과 함께 나온 젊은 엄마는 “이미 민심이 대통령을 이겼다”고 했다. 시민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길에서도 버려진 손팻말 등 쓰레기를 주웠다. 광화문광장을 일순간 암흑으로 바꾼 ‘1분 소등 행사’에서 시민들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감동과 전율이 몸에서 몸으로 전해졌다. 남녀, 세대, 지역, 이념을 떠나 모든 시민이 하나가 된 자리였고, 대화합 축제의 장이었다.

주말인 26일 오후 8시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150만개의 촛불이 1분간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함성이 이어졌다. 촛불은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옆으로는 종로·청계천로·새문안길, 율곡로까지 메우며 밝고 힘있게 다시 켜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침묵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시민들은 너나없이 목청껏 울분을 토해내며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전국 60여개 도시에서도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40만개의 촛불이 함께 타올랐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장에 나오지 못한 수많은 시민들도 마음은 함께했을 것이다. 시민들은 비폭력·평화 시위를 유지했으며 경찰은 평화시위 보장 약속을 지켰다. 외신들도 “사상 최대 피플 파워” “거대한 콘서트”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대통령은 국격을 추락시켰지만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전 세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보여줬다.

청와대는 주말 집회 이후 “국민의 뜻을 다시 한 번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의 소리를 잘 듣고 겸허한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마나한 반응만 5주째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시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시민들의 화만 돋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2차 대국민담화 이후 3주일 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10월20일), 국무회의(10월11일)를 마지막으로 주재한 이후 공식 회의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법무부 장관·청와대 민정수석이 낸 사표조차 1주일이 다 되도록 처리를 못하고 있다. 참모가 던진 사표조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대통령의 현재 모습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교육부의 반기(反旗) 조짐에도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모든 국정 현안을 판단하고 결정해줬던 비선 측근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검찰이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대면조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주엔 국회 국정조사가 본격 개시되고, 야당이 추천한 특검도 임명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선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된 셈이다. 더는 입을 닫고 넘어가기 어렵게 됐다.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혹시 역풍을 기다려 국면전환을 하겠다는 속셈이라면 가당치도 않고 이뤄질 수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수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한 달 동안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게 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200만 촛불의 명령은 탄핵 전에 퇴진하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대통령 스스로 결단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강제로 끌려 내려오기 전에 스스로 사퇴 일정을 제시하고 물러나는 게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바른길이다.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포위됐고, 섬처럼 고립됐다. 들끓는 민심은 이제 폭발단계에 이르렀다. 더 얼마나 많은 촛불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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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민주주의 공적 기구를 사유화하고 자유 시장경제를 파괴했는데 새누리당은 이런 대통령을 막기는커녕 비호했다”며 헌법 수호를 포기한 당을 떠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을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정당다운 정당,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의 이탈은 단순히 탈당의 마중물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한국 정당사에서 보수당이 갈라진 일은 없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다수가 선뜻 탈당을 결심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탈당 감행은 새누리당이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시사한다. 새누리당은 2003년 전신인 한나라당이 재벌로부터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 후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도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당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면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은 탈당 대신 해체 수준의 재창당으로 새누리당을 일신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 등 현 친박계 지도부를 모두 퇴진시킨 뒤 새 지도부로 당을 혁신해 거듭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오른쪽)와 김용태 의원이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한 뒤 밖으로 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결국 새누리당 비박 세력은 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만들자는 탈당파와 당의 틀은 유지하면서 혁신하자는 재창당파로 갈린 것이다. 어느 해법이 현실화될지는 불투명하지만 간판만 바꿔 다는 신장개업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과거부터 보수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제도로서의 정당보다 지도자 개인 중심으로 결속한 사당(私黨)에 가까웠다. 현재 새누리당의 위기도 ‘박근혜의 당’이라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새누리당 탈당과 진정한 보수당의 창당을 선언한 현실 인식은 옳다. 친일·반공 세력과 재벌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인물 중심의 수구 정당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에 충실한 당이 나올 때가 되었다. 최근 사태와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난 시민의식으로 볼 때 토대도 충분하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보수는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친박당이 무너진 잔재 위에 보수의 가치를 표방하는 현대적인 보수정당, 과거 낡은 유산에 기대는 기득권 집단이 아닌 진짜 보수당의 등장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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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촛불집회에서 중고생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중고생의 패기와 치기, 그리고 생경함을 동시에 느꼈다.

‘혁명’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을 집약하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라는 표현이 점차 담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 혁명을 대표했던 사회주의 혁명이 대부분 비인간적 체제로 귀결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새로운 사회의 건설보다 폭력과 파괴가 지배적 이미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담론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중고생의 구호는 현재 상황을 혁명과 연결시키며 이러한 생각에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

‘중고생연대’ 소속 회원 등 10대 청소년들이 서울 보신각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정지윤 기자

혁명이 무엇인가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한나 아렌트는 <혁명론>이라는 책에서 혁명은 해방을 넘어 ‘자유’(사적인 자유와 구분되는 공적·정치적 자유)를 확립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미국 혁명의 타운홀 미팅, 러시아 혁명 초기의 평의회 등 자유를 확장시키는 공간의 형성을 혁명의 핵심으로 보았다.

현재 전개되는 상황은 국가를 급진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렌트적 의미에서 혁명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 광장은 해방의 공간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광장은 공적인 자유가 실현되고 진전되는 장이기도 하다. 연령, 사회적 위치 등과 관계없이 모두가 떳떳하게 자신의 주장을 외치고 있다. 유례가 없이 평등한 정치적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몇 번의 시위가 과연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도 하다. 광장이 어떤 정치적 결정을 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점, 따라서 바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미 이룬 것도 많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국정혼란을 우려하고 있으나, 현재 우리는 심각한 국정혼란을 극복 중이다. 박근혜 정부의 온갖 비행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특히 박근혜 정부는 최근까지도 강경한 대북정책을 내세우며 남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다. 지금 광장의 정치는 박근혜 정부의 무모한 행동에도 제동을 걸고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큰 해방적 의미가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번 광장의 정치가 일과적인 것이 아니라 멀게는 1987년 6월항쟁, 가깝게는 2009년 촛불집회와 이어지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한국적 실천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지만, 시민이 참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표출시킬 수 있는 공간은 꾸준히 확장되어 왔다.

이번 촛불집회는 6월항쟁보다도 시민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태도에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시 국민 중 다수는 정치권에 기대를 걸었다. 광장의 에너지가 정치권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민들은 정치권에 할 일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정치권에 문제해결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정치권은 사태 초기부터 빠른 수습책을 먼저 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광장의 목소리는 빠른 수습책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더라도 4·19 이래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가진 광장의 정치는 소멸되지 않고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계속 작동할 것이다.

혁명을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혁명적 과정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장기 혁명’이고, 한국적 혁명이다. 우리 국민이 혁명적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 신자유주의의 도래에 따른 민주적 공간의 축소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또 이를 확장시켜왔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이러한 정치적 실천이 어떤 구체적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단기적 결과만을 갖고 광장의 정치를 평가하려는 태도는 사태를 오도하기 쉽다. 더구나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대한 변환의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가 원하는 큰 변화가 무엇인지를 찾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적 의미를 갖는다. 다가오는 26일 촛불집회도 이 장기적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임할 일이다. 그러한 태도가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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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엄밀성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입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받거나,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된다. 수능 문제는 전 영역에서 한 점 흠결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혼란이 크고 입시 공정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게 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입시부정에 수험생들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은 실세의 딸을 위해 입시요강을 바꾸고,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특혜는 입학 이후에도 계속됐다. 교수들은 일개 학생에게 상상할 수 없는 편의를 제공했다.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 비문 투성이 리포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수강신청을 대신 해줬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로 또래를 멸시하고 세상을 조롱했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 중고생들의 참여가 많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최순실 모녀의 농단이 없더라도 교육은 이미 불공정한 게임이 됐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공정한 입시니, 교육의 기회균등이니 하는 말은 허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 균등이란 서울 강남에서 월 500만원 사교육을 받는 학생과 가난한 조부모 밑에서 주경야독하는 학생이 같은 시각 같은 문제를 푼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교육은 한때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높고 견고한 벽이 됐다.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다. 명문대 입학생의 부모는 대개 고위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임원, 변호사·의사 같은 전문직이다. 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자녀의 입시 실패가 곧장 계층 하락으로 이어지므로 허리띠를 졸라매 사교육에 투자하지만 대부분 본전도 못 건진다.

대학 진학은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쏟은 땀방울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손실이 너무 크다. 수능을 끝으로 수험생들이 그동안 펼쳐온 동료와의 선의의 경쟁도 막을 내린다. 이제는 협동과 연대를 할 차례다. 좁은 교실과 칸막이가 쳐진 독서실에서 나와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관심을 갖자. 전국의 60만여 수험생들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너진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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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민심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야당은 갈지자걸음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어제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집중하고 나머지 정치적 상상과 제안은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급하게 가도 안되고, 너무 서서히 가도 안된다. 민의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민심의 흐름을 좀 더 관망하겠다는 뜻이지만 뚜렷한 전략도 대책도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지난 5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시민들에게 버림받았다.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최근 한 달 새 두 차례 대국민사과를 했고, 한 차례 국회를 제 발로 찾아왔다. 그동안 안하무인격 1인 통치를 해왔던 것에 비하면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다. 모두 언론의 끈질긴 보도와 분노한 민심이 만들어낸 성과다. 여기까지 오는 데 야당이 한 일은 뭐가 있는가. 야당은 특검, 총리 지명 철회, 국회 추천 총리란 3대 조건을 내건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사과에서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고, 총리 추천을 국회에 제안함으로써 총리 지명도 사실상 철회했다. 기실 이런 대응은 총리 지명이란 새로운 이슈로 지금의 위기 국면을 벗어나려는 꼼수다. 헌법에 ‘총리는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새삼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을 주겠다고 선심 쓰듯 한 것은 권력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국회가 추천하든, 대통령이 지명하든 어차피 총리는 대통령 지휘 아래 있으니 우선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야 3당이 이런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거부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민들의 눈에는 야당의 제안을 대통령이 다 받아들였는데 마치 또 다른 조건을 요구하며 국가적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비친다는 점이다. 여권에서 “무책임 야당”이라며 일제히 공세모드로 전환한 것도 이러한 기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상시국을 수습해야 하는 책무는 야당에도 있다. 대통령의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국회 다수 세력인 야당이라도 책임의식을 갖고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2선 퇴진, 새누리당 탈당, 책임총리 권한 명시 등의 현안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국정공백을 조기에 수습하고 정국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 마비 상황에서는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국정을 이끌어간다는 자세도 요구된다. 주말 촛불집회에서 성난 민심이 표출된다면 ‘백기 투항’을 받아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수권정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대통령을 떠났다고 민심이 야당 품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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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 20만명이 지난 주말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촛불은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타올랐다. 촛불 시민 사이에는 교복 차림의 중·고교 학생들도 있었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는커녕 불평등을 조장한 대통령에게 절망한 미래 세대까지 거리로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70대 노인들도 길 위에 섰다. 한 노인은 “박 대통령에게 줬던 한 표를 되돌려받으러 왔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야말로 지역과 나이, 이념을 넘어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이유는 하나다. 민주공화국의 복원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시스템의 일부일 뿐, 무한대의 권력을 위임받은 제왕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용하고 관료조직을 이끌 권한을 일시적으로 부여받은 대표 ‘공복’인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위임받은 대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감시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물을 권한이 있다. 지금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위임받은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하고 헌법적 권리에 따라 박 대통령에 대해 ‘즉각 퇴진’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민주국가의 통치자로서 자격을 상실했다는 증거는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공적인 참모조직은 한낱 껍데기일 뿐 비선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온 것 하나만 갖고도 물러나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시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관료조직과 노동자의 피땀이 담긴 기업의 이익을 비선조직의 사적인 이득을 챙기는 데 동원했다. 엊그제는 재벌 총수들과 독대하면서 비선이 꾸린 재단에 돈을 내라고 한 데 이어 수백억원의 추가 모금까지 지시한 정황이 폭로되었다. 정경유착이라는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국기문란 행위다. 그런데 이 모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고도 박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살리지 못했다. 외교도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신뢰를 잃었다.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은 막지 못하고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민주적 리더십은 고사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하기까지 한 박 대통령을 국가의 통치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시민의 외침은 너무나 정당하다.

대규모 촛불집회에도 시민들은 경찰과 충돌하지 않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였다. 시민들은 절제된, 그러나 확고한 태도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바뀔 민심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은 전적으로 박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과 협의해 국정을 이끌어가라는 민의를 무시한 채 연이틀 동안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기습적으로 지명했다. 그래 놓고 야당과 협력하겠다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이러니 박 대통령이 새롭게 내놓은 제의가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엊그제 청와대는 내정과 외치를 분리해 박 대통령이 외치만 맡는다고 했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이를 공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권력 집착은 스스로 물러날 수 없다는 김병준 총리 지명자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말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실제로는 시간을 끌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박 대통령을 평범한 시민들조차 믿지 못하겠다며 저항에 나선 것이 촛불집회다.

박 대통령 통치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 때도 여소야대의 민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독주했다. 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지금 멈춰 선 국정을 정상화하는 길은 박 대통령이 하루빨리 물러나는 것뿐이다. 여당 의원도 “제2의 4·19가 오는데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95%의 시민들이 신뢰를 접은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4개월을 계속 통치하는 것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박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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