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를 이어 가보겠습니다. 지난 칼럼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분권이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죠. 더불어 논의되는 내각제는 여론조사에서 늘 꼴찌입니다. 촛불혁명의 의미를 고려할 때 내각제가 가장 알맞은 정부 형태임을 보면 이 또한 정치의 아이러니라 할까요.

2013년 체코의 네차스 총리가 사임했습니다. 임기를 마친 게 아니라 논란에 휩싸여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죠. 최측근들이 군 정보국에 이혼 중에 있던 총리 부인을 감시하라고 명령했고 거액의 뇌물수수 등 전횡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의회 해산, 총선이 이어졌고 야당이 승리하며 정권교체가 재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네차스 정부의 전횡은 박근혜 집단에 비하면 그 규모나 죄질이 동네 길고양이 수준이었지만 말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가 기가 막힌 지는 참 오래됐었습니다. 정당성에 대한 의심은 대선이 채 치러지기 전에 시작됐죠. 언론 통제 등 권력 남용이 뻔히 지속됐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한탄과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피시’가 발견되기까지, 박근혜는 끄떡없었습니다. 그러고도 박근혜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100만의 인파가 차가운 광장을 뜨겁게 달구고서야 정치권이 간신히 움직였죠. 한국 민주제도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죠.

그 짓거리를 하고도 그렇게 오래 버텼다는 게 한계입니다. 이르면 대선의 정당성이 의심됐을 때, 늦어도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를 갈아치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헌법은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는 버틸 수 있었고, 버텼기에 국정은 망가져 버렸습니다. 현 제도하에서 대통령은 마치 수능을 끝낸 학생과 비슷합니다. 시험이 없으면 공부할 맛이 안 나죠. 이미 권력의 정점에 와있고 더 이상 선거 걱정도 없는 정치인, 즉 대통령도 남 눈치 볼 이유가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국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에는 있습니다. 체코 총리가 스스로 물러난 구조적 배경은 민-의회-정부-총리, 이렇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권력 구도였습니다. 유권자는 정당에 투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석수를 나눕니다.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그 당의 리더가 정부 수반이 됩니다. 여기에 유럽식 선거법을 더하면 다당제 의회가 보통이 되죠. 자연히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정당연합을 꾸려 다수를 만들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을 이룬 정당들의 끊임없는 타협과 양보는 필수적이죠. 정부는 의회의 과반을 등에 업고 있으니 일하기도 쉽습니다.

반대로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정부는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총리도 마찬가지죠. 자리를 잃는 것은 간단합니다. 의회가 불신임안을 처리하면 됩니다. 보통 때라면 힘들지만 민심이 싸늘해지면 사정은 돌변합니다. 야당은 불신임안을 처리하자고 목청을 높이고, 여당 측에서도 눈치를 살피다 등을 돌리는 일이 생기죠. 즉 정부와 총리의 해고 가능성이 실존합니다.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리라도 내각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원내각제가 좋지만 우리 정당의 행태를 보면 아직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는 앞뒤가 바뀐 지적일지도 모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살아남은 지금의 정당을 바라보고 하는 소리니까요. 제도를 바꾸면 정당들은 빠르게 탈바꿈할 겁니다. 반대로 정당이 지금 같으면 4년 중임제를 해도 대통령에게 끌려다닐 테니까요.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제를 도입한 이는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특히 박정희는 쿠데타로 의원내각제 정부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죠. 박정희가 파괴한 민주주의의 꿈을 되살릴 때가 왔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경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장한 정당들이 권력을 갖고 제왕이 아니라 인민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촛불혁명에 맞는 이유입니다.

2012년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대부분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고 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말을 문재인 대통령이 잊지 않았길 바랍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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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3주가 흘렀다. 비상식과 적폐, 그리고 부재와 공백의 시대를 지나 하나씩 살려내고, 건져내며, 바꾸려는 모습들이 짧은 시간의 속도마저 추월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역동적이다. 상식의 회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반전과 대조가 만들어내는 과거와의 격차에 가슴이 뛰며, 국민을 섬기는 진정한 정치의 귀환을 보며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과장된 희망이 가미된 것이라고 해도 벅찬 시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희열만큼이나 낯선 동시에 자각몽처럼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촛불혁명으로 시작해서 탄핵 인용으로 이어진 모든 과정은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승리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광화문의 기적’의 결실이며,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은 이제 “이게 나라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이다. 세월호처럼 침몰하던 대한민국을 건져 올렸고, 건져진 대한민국은 다시 세월호를 건져 올린 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래도 시작에 불과하다. 필자는 대선 직전 칼럼에서 3개의 질곡을 극복할 수 있는 지도자를 열망했었다. 촛불혁명의 의미를 심장 깊이 새김으로써 민주주의 훼손의 역사, 불평등의 헬조선을 만든 천박한 자본주의, 그리고 기득권 안보장사꾼들이 만든 분단체제의 종북프레임을 청산할 막중한 임무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다. 혼자 이뤄낼 수도 없고, 한 번의 정권창출로도 불가능하지만 목표는 선명해야 한다. 설익은 통합론으로 청산과 갱생의 시대적 요구를 희석해서는 안될 말이다. 진정한 반성 없이 거짓 통합론 뒤에 숨어 어떻게든 모면하고 살아남으려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6월 2일 (출처: 경향신문DB)

사드 추가 반입에 대한 보고 누락은 이런 적폐를 드러낸 충격이자 경고다. 권력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오히려 사드 배치를 가속화시켰던 것은 민족의 생존과 국익을 결정하는 외교·안보·통일정책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삼았고, 이는 정부가 바뀐 뒤에도 변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해준다. 탄핵 인용 후 대행정부는 국익보다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뛰는 행동대원 같았다. 게다가 사익까지 챙겼다면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미·중은 한국을 인질로 갈등을 격화하고, 일본은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러시아는 호시탐탐 개입을 도모하며,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는 극히 어려운 외교환경에서 최선의 자세와 최상의 실력으로도 모자란데, 그들은 무능과 반란 사이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트위터에 올렸던 안도현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이다.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참고 기다리면서 엉덩이가 짓물러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그날은 고대하는 마음과 마음들이 뒤섞이고 걸러지고 나눠지고 침전되고 정리된 이후에 온다.”

대선 직전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모델로 문재인 후보를 내세우면서 ‘협상가(the negotiator)’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지금 한국 외교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리더십이다. 우리 외교는 일차방정식의 진영외교, 친미편승외교, 또는 아웃소싱외교로 불안정한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이해상관자(stakeholder)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모두로부터 소외를 가속화해왔다. 사드 배치는 미국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이고, 사드 철수는 중국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구도가 되었고,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우리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권력의 제로섬 게임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경고하는 함의를 가진다.

너덜너덜해진 한국 외교는 신정부가 말하는 국민외교로 회복해야 한다. 국민외교는 국민을 위한 위민(爲民)외교이자, 국민에 의한 의민(依民)외교이다. 균형외교라는 트라우마를 가진 용어는 동원하지 않더라도 중국과의 협력을 증진하면서도 대미관계의 손상을 초래하지 않는 외교가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가치외교를 던지고 힘의 외교를 앞세울 때 우리는 오히려 다자외교를 통해 가치를 강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평화결손의 한반도가 그 결손을 메움으로써 세계에 희망을 던질 수 있다. 한국 우선의 국익을 추구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향해, 세계를 향해 협력과 평화공존, 민주주의 같은 가치외교의 기치를 올려야 한다. 시발점은 남북관계 개선이고 종착점은 동북아평화가 될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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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촛불혁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나는 촛불혁명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당연한 진리를 국민들이 국민 대표들 앞에 당당히 확인시켜준 역사적 사건이라 믿는다.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을 뽑았다고 이러한 촛불혁명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촛불현장의 뜨거웠던 열기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떠올려볼 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이 국민 모두의 머리와 가슴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날까지 촛불혁명은 계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19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개 정당 원내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들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 야당 원내대표는 “국회 개헌특위를 즉각 가동하고 대통령도 국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국회가 개헌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또 다른 야당의 한 원내대표는 “대선 전 국회 개헌특위에서 민주당을 제외하고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 있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재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권력구조 개헌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분들의 말 속에는 개헌의 주체가 ‘국회’라는 생각이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아니다. 헌법 제1조에 따르면 개헌에 대한 권력도 국회가 아니라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개헌논의가 항상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 촉발되고 개헌이 정치인들이 짠 정치일정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중에 독재로 치달은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상의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손댔다. 심지어 1987년 6월항쟁의 결과 쟁취해낸 개헌의 기회에서도 주인인 국민들이 아니라 정치인인 여야 8인 대표들이 개헌안을 만들었다. 6월항쟁에서 피를 흘린 국민들은 개헌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그래서 6월항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 약 30년이 지나도 나아진 것 없는 답답한 현실 앞에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개헌을 한다면, 이제 국민 주도의 개헌이 되어야 한다. 연초부터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돼 활동 중이지만 국민 여론수렴은 뒷전인 모양새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개헌의 내용이 무엇인지 듣기보다는, 또다시 분권형 대통령제니, 의원내각제니 하면서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권력구조 개헌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제가 문제여서 이 부분을 개헌해야 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바로 그런 대통령을 보좌해온 분들이 없지 않다. 누가 권력구조 개헌을 통해, 말로는 ‘국민을 위한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이나 자기 당의 권력 참여지분 확대에 더 치중하는지 국민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물론 현행 헌법 제128조에 의해 개헌발의권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헌법 제1조의 정신으로 이 조항을 읽으면, 개헌의 방향과 개헌안의 주된 내용은 국민들이 정하고 국회나 대통령은 이를 받아 발의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일정에 따라 당리당략에 따른 주고받기로 만든 개헌안에 대해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찬반의사만을 표시하게 해서는 ‘국민 주도의 개헌’이 될 수 없다. 또한 국민 주도의 개헌절차를 밟다보면 당연히 개헌의 주된 방향과 내용도 국민들이 결정하게 된다.

헌법에는 권력구조 조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권조항, 경제민주화 조항, 지방자치조항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더 중요한 조항들이 많이 있다. 촛불현장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된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는 국민이 배제되고 기존의 정치인들만 참여하는 개헌논의 과정 속에서는 결코 반영될 수 없다. 비정치인으로 구성된 헌법심의회가 우편이나 각종 소셜미디어상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개헌안을 마련해 낸 아이슬란드 개헌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주도의 개헌이 외국에서도 대세를 이룬다.

개헌은 국민들이 주도하게 하고, 국회와 정부는 적폐청산, 일자리 등 민생, 외교안보 안정화, 선거구제 개편 등을 통한 정치개혁에 노력을 집중하면 된다. 촛불혁명의 시작도 국민이 했듯이, 그 수행도 국민이 개헌을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 이번 개헌이 반드시 국민 주도의 ‘촛불개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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