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내에 있는 야당들이 해야 할 일은 서명운동이 아니라, 어떻게든 탄핵을 성사시킬 길을 찾는 것이다. 탄핵이 눈앞으로 다가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해도 할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탄핵이 현실화될 것 같으니까 사퇴했다.

탄핵 절차로 갔을 때 우려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번째는, 국회 내에서 탄핵 소추 의결에 필요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새누리당 안에서도 탄핵 얘기가 나왔다. 이들이 탄핵에 동의하도록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 뇌물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든 퇴출명단에 올릴 준비가 국민들은 돼 있다.

두번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만약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헌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여론이 그렇다. 따라서 아무리 보수적인 헌법재판관들이라고 하더라도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탄핵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심판에 걸리는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번째는, 국회가 탄핵 소추 결의를 하게 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당들은 진작에 총리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 때문에 망설여서는 안된다. 만약 황 총리가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정을 농단하려 할 경우에는 황 총리까지 탄핵시켜야 한다.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다. 역사를 보면, 권력서열 3위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사례도 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던 때에도 권력서열 3위인 외교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었다.

네번째,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1명의 임기가 내년 1월, 3월에 각각 끝나는 문제가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최소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한데,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 자리가 새로 충원되지 않으면 그만큼 가결이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뇌물수수를 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버틸 헌법재판관이 있을까?

그래서 지금은 야당들이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하고, 탄핵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이 해야 할 몫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탄핵 절차가 시작된다고 해서 시민들은 촛불을 놓아서는 안된다. 국회나 헌재에만 맡겨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앞으로는 퇴진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12일에 이어 19일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헌법 제1조가 제대로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염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강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는 다른 국가의 헌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헌법 제1조는 입법권이 의회에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일본헌법 제1조는 천황 얘기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대한민국 임시헌법’에 뿌리를 두고, 제헌헌법으로 이어진 문구이다. 이 두 문장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응축된 문구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촛불은 헌법 제1조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제도를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시민들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며, 지방의 자치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집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다.

이 일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이 일을 맡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제1조 운동’으로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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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인간의 표정과 몸짓, 생리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눈썹 근육은 위축된다. 눈을 부라리며 분노의 대상을 응시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권투 선수의 기본자세와 같은 몸짓이 생겨난다. 사람이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언제든 주먹을 내지를 수 있도록 손으로 향하는 혈류량도 늘어난다. 화가 나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내뱉는 언어도 과장되고 공격적으로 된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과 도발에서부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회적 부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분노는 이런 외부 자극에 대한 인간의 방어수단이다. 우리의 몸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준다. 위협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심리적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분노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는 없다. 격렬한 분노 상태가 계속되면, 몸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탈진해서 일순간 맥없이 풀어져 버리거나, 자기 분노를 스스로 못 이겨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지난 19일 전국 60여 곳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 주최 측 추산 96만명(경찰 추산 26만여명)이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부산 서면 촛불집회(왼쪽 사진)에는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만명이 참가했다.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 새누리 해체’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오른쪽 위). 광주 집회에선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에 횃불을 켜고 열었던 ‘민주성회’가 재현됐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오는 26일 5차 촛불집회에 최대 3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심경은 복잡하다. 부끄러움, 허탈감, 배신감, 나라가 사달이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대통령의 태반주사 의혹에 이르러서는 역겨움까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적인 감정이 분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 그리고 그들의 수하들이 벌인 온갖 일은 우리 사회의 근간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국민의 분노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원천이 뿌리 뽑혀야 분노가 풀어질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한 친박 국회의원의 말처럼 청와대와 수구세력은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다. 우리도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장기전을 준비하는 첫번째 마음가짐은 차갑게 분노해야 한다는 것이다. 뜨거운 분노는 오래갈 수 없다. 흥분하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극우단체를 동원한 물리적 충돌의 덫에 걸려들 수도 있다. 어차피 오래갈 일이라면 차분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지나치게 흥분하면 서로 자제시켜야 한다. 극우단체들이 촛불집회 옆에서 난장판을 부려도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사나?’라며 구경하면 될 일이다. 분노라는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할 하등의 가치가 없다.

두번째 마음가짐은 딴 데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작정치와 여론조작은 저들의 전매특허이다. 해운대 엘시티의 유력 정치인 연루설, 조직적인 실시간 검색순위 조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작과 조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명 연예인 스캔들이 터질 수 있고, 간첩단 사건이나 남북 간 무력충돌과 같은 북풍이 재현될 수도 있다. 개헌 카드를 되살려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돌릴 수 있다면 저들은 어떤 일이든 능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눈과 귀를 떼지 말아야 한다.

세번째 마음가짐은 분열의 언어를 경계하는 것이다. 분열은 청와대와 수구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조장될 수 있다. 평범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특정 세력, 특정 정치인, 특정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런 마당에 각 세력, 정치인, 정당,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내부에 총질하고 서로를 흠잡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촛불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경쟁과 비판은 칭찬받아야 한다. 그러나 각자의 힘을 키우기 위한 갈등과 비난에 대해서는 국민이 가차 없이 레드카드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군 훈련소 시절의 교관이 있다. 다른 교관들과는 달리 그는 화를 내거나 고함을 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항상 웃는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가 훈련을 제대로 할 때까지 한없이 우리를 뺑뺑이 돌렸다. 말 안 듣기로 소문난 군의관 훈련생들이었지만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고함치는 교관들은 그때만 잘 피해서 넘기면 되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 교관의 별명이 ‘무한반복’이었다.

마음가짐만 잘하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 빨리 결론을 내 달라고 정치권을 독촉할 이유도 없다. 성급한 결론은 청와대와 수구세력을 이롭게 할 공산이 크다. 우리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민의 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지치지만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답답한 이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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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받아가세요!”

혼잡한 광화문역을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들린 첫 음성이었다.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준비했다며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를 하나씩 나눠준다. 나도 받아들었다. 초코파이는 달콤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넘친다. 차가 사라진 거리는 이미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많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실제 인파를 확인한 사람들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흐른다. 줄줄이 서 있던 통신사들의 중계기가 무색하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은 터지지 않고 전화도 끊기기 일쑤였지만 불편하지 않다. 말 그대로 인파를 헤치며, 아니 떠밀리듯 이동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 막차 안보다 사람이 더 많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서 사람에 밀려다니는 경험은 또 처음이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아무도 짜증내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다. 묵묵히 사람들이 움직이는 큰 방향을 따라 이동할 뿐.

“많아지면 달라진다”고 했던가.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지난 토요일의 광화문은 여러모로 진풍경이었다. 촛불 없이 팻말만 들고 있던 내게 누군가 불붙인 초를 건네주고, 옆자리 아주머니는 사탕을 한 움큼 꺼내 내 손에 쥐여줬다.

가수 이승환씨가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3차 집회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마스크와 모자에 붙인 스티커, 손에 들린 팻말까지 “박근혜는 하야하라”가 선명하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혼자 나온 사람들도 즐겁게 웃으며 인증샷을 찍는 풍경도 자주 보인다. 인기 만점 JTBC 중계차 주위에서는 “힘내세요! 사랑해요!”라는 응원이 들린다. 여기저기서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외침이 터져나오는 와중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통로는 빠르게 채워져 빈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다양한 깃발 사이에서 “아~ 쫌!”이라 써있는 깃발도 눈에 띈다. 외국인에게 일부러 다가가 “위 아 소 앵그리(We are so angry)”라고 설명해주고 가는 사람도 있다.

“힘이 있다고 믿는 곳에 힘이 머무는 법입니다. 힘은 벽의 그림자 같은 것이죠. 그 그림자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작은 남자도 아주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 수 있는 법이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대사다. 지금 청와대에 힘이 있다고 믿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2주 연속 5% 지지율이라는 객관적 숫자만으로도 이미 청와대는 힘을 잃었다.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낼 만큼 거대한 권력인 줄 알았던 청와대와 대통령이 사실 누군가의 줄에 조종당하던 작은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 모두 알아버렸다. 국민은 청와대가 더 이상 힘이 있다고 믿지도 않고, 있다고 믿었던 힘을 계속 줄 생각도 없다. 아무런 자격도 없던 비선 실세가 만들어낸 커다란 그림자는 빛에 노출되면서 걷혔고, 그 그림자에 기대던 권력은 힘을 잃었다. 벽의 그림자가 사라진 거리에서 국민들은 마음껏 떠들며 각자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써가는 중이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다음주와 다다음주에 더 뜨겁게 다시 모이자”는 주최 측의 발언에 군중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빨리 하야하면 그때는 모여서 놀면 되겠네?” 그 재치있는 대답에 예능프로그램에서 김건모가 혼자 술 마시다가 심심해서 아이폰의 인공지능 ‘시리(siri)’에게 말을 걸던 장면이 생각났다. 뭘 물어도 척척 대답하는 ‘시리’에게 말문이 막힌 쉰 살 김건모가 “너 몇 살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시리는 명랑하게 받아친다. “먹을 만큼 먹었어요.”

지난 12일, 이승환이 100만 군중 앞에서 부른 “야발라바 하야하라 박근혜” 노래 가사를 들려주면 ‘시리’는 뭐라고 답할까. 미리 테스트해본 결과 내 아이폰의 ‘시리’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지만 적어도 그날 거리에서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답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리’ 역시 그 답이 뭔지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될 것 같다. 요즘은 인공지능도 그 정도쯤이야 금방 배우는 시대니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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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국민대각성의 시대다. 쇠고기 촛불 이후 영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연일 봇물 터지는 보도에 국민은 아연실색, 분노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보수의 아성 대구도 그렇다.

지난 백년 우리나라에 정의가 승리할 절호의 기회가 몇 차례 찾아왔으나 우리는 한번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기회주의자, 권력파들이 노상 승리하고 정의와 양심을 사랑하는 민주파는 패배하고 좌절해왔다. 그래서 ‘정의고 양심이고 소용없다’ ‘권력과 돈이 최고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런 못된 풍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정의는 패배해 왔다. 우리가 선진국이 못되는 이유는 소득이 낮아서가 아니고 바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구조에 있다.

[시사 2판4판]사이비 (출처: 경향신문DB)

첫번째 기회가 해방 직후였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감격과 환희에 가슴 벅차하며 새 나라를 열망했던가. 그러나 많은 애국세력들이 신탁통치 찬반으로 나뉘어 분열하는 사이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들을 배격하고 친일파들을 몽땅 기용해서 권력을 잡았다. 일제가 김구 선생보다 큰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었으나 실패했던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일본 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모욕을 당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약산은 풀려난 뒤 사흘 동안 울었고 결국 이듬해 월북했다. 두번째 기회는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혁명 때 찾아왔으나 민주당이 신파·구파로 분열·반목하는 사이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친일 군인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1년 만에 무너졌다.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유신 폭압통치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광화문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세번째 기회는 1979년 박정희가 죽고 난 뒤의 ‘서울의 봄’. 그러나 전두환 쿠데타로 다시 좌절했다. 네번째 기회는 1987년 민주대항쟁으로 전두환 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찾아왔으나 양김이 양보하지 않고 욕심부리는 바람에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번이 다섯번째 기회다. 네 차례나 실패했으니 이번만은 잘해야 한다. 분열과 욕심은 금물이다. 다시 천추의 한을 남겨선 안된다.

명백히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뭘 잘못했는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아직 모른다. 두 차례 사과도 진실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이며, 국회 방문도 미봉책이다. 찔끔찔끔 최소한으로 사과하고 지나가려 한다. 다급해지니 청와대에 각계 인사를 불러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너무 늦었고 진정성도 없다.

맹자는 “왕이 큰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왕을 바꾼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지만 박 대통령은 잘못을 간할 만한 강직한 사람을 아예 옆에 두지 않았다. 이 정부 고위직이나 청와대에 바른말 하는 사람은 씨가 마르고 온통 간신배로 가득 찼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장관의 대면보고조차 받지 않았다. 과거 기자회견 때 뒤의 참모들을 돌아보면서 “대면보고 필요하세요?”라고 묻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라. 대통령이 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고 어떻게 국정 현황을 파악하며,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있을지.

국정은 이미 지난 몇 년간 표류해왔고, 공백상태였다. 장관과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보고를 요구하지 않으니 속으로는 편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각자 알아서 권력자들 눈 밖에 나는 일만 없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창조경제는 원래 실체도 없고, 사기꾼 설치기 좋은 환경인데, 아니나 다를까 엉망진창이다. 대통령은 언제나 원고를 또박또박 낭독은 잘했으나 자유대화, 자유토론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그러니 지금 대통령 그만둔다고 국정공백 생길 리 없다. 오히려 빨리 하야하고, 새 대통령 뽑는 게 국정공백을 줄이는 길이다.

대통령 그만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맹자가 말했다. “나라에 백성이 근본이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民爲本 社稷次之 君位輕).” 대다수 국민의 눈에 이미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다. 외치·내치 구분해서 맡기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통령은 해외에서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대통령직 오래 유지해봤자 국정 혼란과 공백이 길어질 뿐이다.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남은 애국심이 있다면 국민에게 이실직고하며 용서를 빌고 하루빨리 하야해야 한다. 호가호위하면서 저질 정치를 해온 새누리당 친박들은 석고대죄하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 야당은 이 문제를 미온적으로 대하지 말고 가차 없이 하야를 요구해야 한다. 오직 촛불, 민심이 천심이고 백성이 근본이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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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약 2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1987년 6월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박근혜의 국민이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다고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과 기만의 언어, 봉건적 권위와 여제적 행태로 채워진 ‘박근혜의 시간’은 국민에게는 자학의 시간이었다. 박근혜의 오만과 기만과 불법과 무능은 ‘우리가 도대체 지난 대선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가슴속 깊이 파인 상처를 자학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학이 분노의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언론의 굳건한 ‘협업’ 탓이었다.

굳건한 협력의 빗장을 풀고 은폐의 육중한 문짝을 열어젖힌 것은 흥미롭게도 보수권력이 자신의 입으로 삼고자 했던 종편방송이었다. JTBC가 확보한 최순실의 태블릿PC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박근혜의 시간은 최순실의 시간으로 확인되었다. 드디어 시민의 자학은 거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등에 배반의 칼 하나씩 꽂힌 채 망연자실한 시민들에게 대통령은 마음 없는 성명서를 독백처럼 읊조리고 들어갔다. 총리를 일방적으로 지명하고, 국회의장실의 카펫을 패션쇼의 런웨이 걷듯 휘돌아 나왔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아주 오래된 기만, 아주 익숙한 대통령의 오만을 다시 떠올리며 이제 시민들은 거대한 저항행동에 돌입했다. 2016년의 시민항쟁이 시작되었다. 모든 역사적인 저항행동이 그렇듯 시민항쟁은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불만의 직접적 계기가 무엇이든 시민항쟁의 근저에는 피폐한 경제와 고단한 시민의 삶이 있다. 청년의 미래를 닫아 버리는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의 현실,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줄어드는 소득과 늘어나는 부채, 노동계를 압박하는 재벌·대기업 친화정책, 모든 세대가 불안을 벗을 수 없는 현실 등이 저항의 심층에 시퍼렇게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저항의 뿌리는 그만큼 깊다.

지난 주말부터 대규모 저항의 물꼬를 튼 시민의 물결에서는 냉철한 이성적 분노가 감지된다. 광장의 시민들은 질서 있는 ‘이성적 군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위군중의 표정이 밝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군중이 아니다. 배신의 칼을 맞은 시민의 표정이 왜 이토록 밝은가? 오랜 자학의 시간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일 수 있다.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자학과 세월호, 메르스, 경주 지진으로 이어지면서 누적된 불안의 원천이 온전히 드러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듯하다. 덧붙일 수 있는 설명 하나는 ‘자신감’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과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5%로 곤두박질친 대통령 지지율과 보수언론의 변화를 보며 광장의 시민들은 끊임없이 “더 모여야 된다”고 서로를 독려한다.

2016년 항쟁의 시민들에게 인지된 기회구조가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저항행동에서는 주어진 기회구조를 운동주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정부의 통제역량에 대한 인지가 중요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조직과 동원의 역량에 대한 인지 또한 중요하다. 말하자면 광장에 모인 군중의 밝은 표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냉철한 이성이 담겨 있고, 이제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2016년의 시민항쟁은 어느 때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군중의 냉철한 이성과 고도의 집단지성이 비추는 렌즈 앞에선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고,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다. 국민을 배반한 권력의 마지막 꼼수도, 정치권의 주판알 튕기기도, 궤변의 책임논리나 돌발적 소영웅주의도 시민의 눈을 속일 수 없다.

박근혜의 모래시계에서 마지막 모래알이 흘러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직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국정공백, 헌정중단보다 더 큰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그래서 민심과 공감하는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민들은 국정의 정상화를 기대하며 그 역할을 야당이 떠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야당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사로운’ 정치에서 시작된 위기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잇속을 노리는 정치는 이 국면에서 가장 예리하게 포착될 것이다. 야 3당은 오로지 시민의 뜻에 따라 국정을 정상화하는 길을 올곧게 선택해야 한다.

경제 위기와 트럼프의 미국 대선 당선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급박한 현실을 자신이 물러나지 않아야 할 이유로 들이대는 것은 반상식과 비정상의 절정이라는 것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쁠 순 없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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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