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대표자로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은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정치인은 직무와 관련된 결정과 행위를 논리적으로 철저히 시민들에게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위임받은 권력을 통치행위로 행사하는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며 도리이다. 직무 수행이 온전치 못했거나 판단 착오를 범했을 때, 더욱이 그것이 법규 위반으로 이어졌을 때는 그에 대한 입장 또한 명료한 언어로 밝혀야 마땅하다.

오늘의 정국은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권력은 사적인 삶을 위한 도구로, 권력을 가진 자를 법치영역의 예외자로 만드는 일탈적 힘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상식적 언어의 변질, 부재라는 현상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언어는 외적 대상을 지시하기만 하는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본질을 드러내는 통로이자 내용이며, 공동체의 합리적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적 기반이다. 사고의 훈련은 그래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배우고 다듬는 훈련과 불가분의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법으로부터 예외적인 존재라고 굳게 믿는 것으로 보인다. 그 법에는 문법도 포함된다. 대통령의 발화는 늘 문장구조가 부정확하고 지시대상과 표현이 불분명하다. 오죽하면 ‘박근혜 번역기’라는 패러디 게시물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겠는가. 탄핵정국 이후 신년의 이른바 기자간담회에서 일방적으로 내놓은 입장표명도 마찬가지였다. 끝이 없는 비문들로 늘어놓은 부인과 해명은 법적 책임의식이나 윤리적 성찰의 흔적을 보이지도 않았고,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최순실이 고친 연설문이 국정농단 사태 폭로의 발단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속속 공개되는 최순실의 말주변, 글솜씨는 또 어떤가. 그들의 두서없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녹취를 했다는 대통령 비서관의 증언은 이 사태의 핵심적 아이러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철학과 소신’이 그에게든 최순실에게든 있다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의 파편들을 조리없이 나열하는 발화가 바로 그것의 실체다. 철학은 언어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가 계속되는 동안 최고권력을 사유화한 이들은 법적 책임을 추궁당하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윤리적 주체로서의 발언은커녕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 소환에 불응하다 겨우 출석한 전·현직 공무원들은 ‘모른다’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태연히 늘어놓으며 법치영역의 예외자로 행세했다. 무한 반복되는 그 말들은 민의를 위임받은 국회 청문회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시민들을 모욕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의 변론을 위해 대통령 변호인단이 구사하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를 비롯한 최고위 권력층에서 동원하는 논리와 표현 수준은, 그들에게 권력을 맡겼던 시민들에게 수치와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부끄러움이 위반한 자들의 몫이 아닌 시민의 몫이라는 점 역시 견디기 힘든 부조리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하지만 대통령과 비선 관계의 실제 내막과 뇌물 수수의 규모, 대통령의 7시간, 대통령의 성형시술 의혹을 비롯한 비선 의료진의 존재, 청와대의 비아그라와 향정신성 의약품 다량 구입,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진상 등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검찰 수사가 있었고, 청문회에 이어 헌재의 탄핵심판과 특검이 진행 중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도, 납득할 만한 해명이 제시되지도 않고 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상황에서 수없는 추측성 가설들과 믿고 싶지 않은 가상의 시나리오들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것들은 물론 음모론의 일환이다. 하지만 음모론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가장 합리적인 충동의 대중적 발현이다. 합리성의 영역에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가능한 논리로 언어화하려는 필사의 시도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현상은 현 정권 출범 이래 두드러졌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의 적절한 대처와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현 정권은 유신시대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하는 ‘유언비어’라는 낡고 낯선 말로, 끊일 날 없었던 시민들의 불안감과 의구심을 위축시키는 데만 골몰했다.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말의 소통을 막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을 ‘지라시’ 수준의 유언비어라고 규정했던 정권의 실체야말로 비선의 농단이었다. 유언비어란, 말이 있으되 말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언비어가 누구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가장 비논리적인 언어로, 가장 비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윤조원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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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돌이켜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양에 관한 얘기는 그가 정계 입문한 18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박근혜는 늘 짧게 말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다였다.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선 정책 현안을 묻는 문재인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했다. 본질인 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행적과 언행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통령이 돼도 걱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8회, ‘무능과 독선의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았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10회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50여회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는 4년 동안 5번 기자회견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질문은 받지 않았다. 토론 없는 회의, 대면보고 불가, 문답 기피는 박근혜의 실체다. 대통령 리더십은커녕 사회인의 기본 자질마저 갖추지 못했다. 그런 그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집단 네다바이’를 당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는 보수·영남·고령층에 깔린 박정희 향수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신격화됐고, 박정희의 딸도 특별한 존재였다. 박정희의 후광을 빼놓고서는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둘째는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다. 박근혜는 야당 시절에도 ‘여의도 권력’이었고 확고부동한 ‘차기 대통령’이었다. 불러주면 감읍했고, 부르지 않더라도 줄을 이었다. 셋째는 포장이다. 박근혜의 불통과 오기, 무능, 책임 회피는 철저히 감춰졌다. 모든 단점은 신비주의로 포장됐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신중하다고 했고, 어쩌다 한마디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메시지라고 했다. ‘식인종 시리즈’를 얘기하면 세상에 이런 재밌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를 만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있었을 테지만 외면하거나 은폐됐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곧바로 ‘레이저’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 김용환조차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거명했다가 그 길로 정치생명이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여옥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친 유일한 측근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대표를 2년간 밀착 수행한 전여옥은 박근혜의 실체를 맨 처음 폭로했다. 전여옥에게 물어봤다.

-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많았는데.

“컴퓨터로 치면 저장 용량이 이미 꽉 차 있다. 새로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고 공감할 능력이 없다. 야당 대표 시절엔 그나마 종이에 써서 외우기라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 다시 나의 집이었던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하고 손을 놔버린 것 같다.”

- 박근혜 화법을 ‘베이비 토크’라고 했다.

“사용하는 단어를 세어 보면 100단어가 안된다. 문법도 표현도 안 맞는다.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는 말은 유치원생들이 ‘꽃이 아야야 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청와대 공주 수준에서 딱 멈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나.

“왜 몰랐겠나.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먼저 안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말을 안 하더라. 그게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 넘버원인 김기춘은 “우리 대통령은 차밍(매력적)하고, 디그니티(위엄) 있고, 엘레강스(우아)하다”고 했다. 이정현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이들뿐 아니다. 박근혜를 인우(隣友)보증 선 인사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이들은 서로 네 잘못이 크다며 싸우고 있다. 박근혜 코미디 2막이다.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박근혜가 무사히 임기를 마쳤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그 위세를 계속 떨쳐갔을 것이다. 친박계도 건재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휘저을 것이고, 현안마다 “좋아요” “나빠요”를 던지며 정치 영생(永生)을 누렸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런 꼴을 더 봤어야 할 판이다. 반면교사도 훌륭한 선생님이다. 이젠 인물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눈도 생겼다. 지역·세대 투표도 달라질 수 있다. 천만다행이다. 그러니 박근혜에게 속았다고 속상해할 일만은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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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이 이틀 연속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지명하더니, 어제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자신의 비서실장에 앉히겠다고 발표했다. 인사권을 휘둘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고 분노한 민심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번 인사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지만, 예상외 카드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그 저의가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이제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제 김병준 교수 지명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분노가 거세졌다.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야,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사권을 휘두르는, 여전한 오기와 독선 때문이다. 야당과 인연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야권 분란은 물론 김 교수가 주장해온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으로 시선 전환을 꾀하려 했음이 명백하다. 그래 놓고 여야에 인선안을 받으라고 요구했으니 대통령 퇴진 목소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허원제 신임 정무수석(오른쪽)이 3일 임명 발표 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인사하기 위해 춘추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화해와 포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을 국민적 시각에서 보좌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적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데 한 위원장이 국민 대통합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도 없다. 이제 와서 그가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해줄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오불관언 인사로 여야 할 것 없는 비판에 직면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총리를 지명하여 갈등이 고조된 그 다음날 비서실 인선을 강행했다. 비서실 인선 시기를 이렇게 잡은 것은 대통령의 일방 독주 선언”(하태경 의원)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 일부 친박계만 환영하는 인사가 돼버렸다.

박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 명찰을 단 인물을 내세워 현 국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눈 밝은 시민이 그런 잔수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최근 주말 날씨를 알아보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5일 열리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그만큼 시민의 분노가 턱밑까지 찼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방탄용’ 인사권을 거두고, 국정 방향과 자신에 대한 조사 방법을 국회와 논의하는 게 그나마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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