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그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위원들과의 접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 발표 자료를 보내주면 최순실씨가 밑줄을 치면서 수정했다”고 말했다. 인사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최씨의) 수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2015년에도 (자료를) 조금 전달한 게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 열람했다는 내용이 JTBC에 보도된 다음날인 10월25일 1차 대국민담화에서 “(최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에 의하면 연설문 외에 인사 자료까지 최씨에게 건네졌고, 취임 3년차인 지난해까지도 이런 자료 유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차 대국민담화부터 박 대통령은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해볼 생각이었던 셈이다.

청와대 문건유출 등 혐의로 구속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20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11월 20일 기소한다. 연합뉴스

지난달 4일 발표한 2차 대국민담화도 거짓이었다. 박 대통령은 “어느 누구라도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하고,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지만 정작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대면조사 등을 요구하자 수사 자체를 거부했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 당일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았으면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피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했다”고 답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실 박 대통령의 거짓말은 이전부터 일관됐다. 지난 9월 언론과 야당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관한 의혹을 쏟아내자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는 폭로성 발언”이라고 했다.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참담한 것은 대통령의 거짓말이 놀랍지 않고 시민들도 대통령의 거짓말에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나라가 엉망이 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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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촛불에서 횃불로 옮겨붙었다. 부문별, 계열별 전문가 집단이나 협회, 단체들의 자잘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혁신하려는 이 도도한 흐름은 국민·시민 주체가 만들어내는 촛불공론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나 시민이라 불리는 주체들이 단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따로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강고하게 연대한 개별주체들이다. 이렇듯 파편화한 개인들을 엮어주는 공론장은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일궈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거대한 퍼포먼스와 섬세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시민운동가와 문화예술인들의 역할도 매우 크다.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변혁의 에너지를 지켜내는 일은 100만 촛불의 몫으로만 남겨진 것은 아니다. 그 힘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업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울 추위가 강해질수록 현장을 지키는 문화예술인들의 강단있는 활동이 도드라져 보인다. 단 한 명의 입건 사례 없이 평화롭게 이어온 촛불집회는 공연을 매개로 한 정서적 공감의 장이다. 그것은 장르와 세대를 넘어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게 만드는 예술의 역할을 재확인시켜준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가 공존하는 촛불문화제는 투쟁의 장을 축제의 장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12일 서울 대치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특검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여기에 더해서 시각예술가들의 다양한 표현물들이 집회장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텍스트 작업은 물론 걸개그림과 포스터, 깃발, 퍼포먼스, 스티커,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풍자와 비판정신 가득한 작품들로 광화문광장을 예술의 거리로 만들고 있다. 100만의 촛불파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여서 예술적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장의 갤러리 ‘궁핍현대미술광장’을 열고 개관전 ‘내가 왜’를 시작했다. 촛불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공론장을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하고 확산하는 예술적 소통공간이다.

이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마음은 국가위기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 이성적인 합의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일의 초기부터 광장에 자리 잡고 광화문텐트촌을 꾸리고 있는 예술인들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집회 현장의 공연 및 전시 프로그램을 통하여 광장의 에너지를 집결하는 한편, 그 너머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문화예술 개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가 아무래도 비리의 폭로에 주력하느라 차분한 성찰과 대안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들의 광장토론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과 사업 분야에 집중해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예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돌았다. 민관협치 개념으로 출범했던 예술위원회는 오작동을 연발했다. 공공기관의 인사 문제 또한 무방비로 농단의 무대로 전락했으며, 문화융성의 이름으로 깨알 같은 사익편취가 만발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는 동안 문체부의 행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행정적 과실 유무 여부를 떠나서 공직자 윤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담하기 그지없으니, 이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시 논의할 때가 왔다.

국가단위 행정을 지자체단위 행정으로 세분화·지역화하고, 아카데미와 시장과 행정이 주도하는 제도예술과 그 바깥 비제도예술의 공존과 균형을 맞추며, 예술위원회를 되살려 민관협치를 복원하고, 기관장 인선 관련 전문성 강화 및 국정농단의 비리 관련 부역행위에 관한 행정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일 등 무수한 사안들이 있다. 나아가 국정 전반에서 문화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재구조화 논의가 절실하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최순실은 현 정권의 비선 실세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처에 똬리 틀고 있는 모순덩어리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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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일단락됐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은 공개된 청문회장에 끝내 나서지 않는 등 시민 우롱으로 일관했다. 어제 국정조사특위는 19년 만에 구치소 현장 청문회를 했다. 최씨는 청문회장까지 나오기를 거부했고, 의원들은 수감동을 찾아가 비공개 신문을 했다.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던 최씨는 이날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아느냐”는 질의에 최씨는 “모른다”고 잡아뗐고,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의혹에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당하게 들어갔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를 묻자 최씨는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백번 양보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답변 내용과 태도는 기가 찰 일이다. 최씨는 사익을 꾀하려고 정부와 청와대를 주물렀다가 국정 마비 상태로까지 몰고 온 장본인이다.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 도깨비가 박 대통령을 홀려 일을 했다는 건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앞줄 왼쪽)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오른쪽)이 26일 수감 중인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가 개최한 현장 청문회에서 여야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부구치소 제공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고질이 재발한 점은 아쉽다. 의원들은 의혹을 재탕, 중복 질문을 했다. 특히 새누리당 이완영·이만희 의원은 위증 교사 의혹을 불렀다. 이는 국정조사제도의 근간을 흔들 중차대한 문제로, 수사를 통해서라도 규명돼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있었다. 정·관·재계가 어떻게 최씨와 얽혀 이익을 주고받았는지, 그 민낯이 생중계됐다. 누리꾼의 실시간 제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등 시민참여형 청문회 가능성도 보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증인·참고인 출석 거부와 모르쇠 답변, 위증 등을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 증언·감정법과 형법상 ‘국회 회의장 모욕죄’ 형량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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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단체의 송년 모임에서 간단한 강의를 했다. 나는 ‘올해 지구촌 뉴스’를 전하면서 “박근혜, 트럼프보다 더한 인물이 다음 우리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박근혜·최순실도 충분히 끔찍한데, 더 나쁜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놀란 모양이다.

‘박·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국정파탄,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구토를 부르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분노보다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한계와 절망을 느꼈다. 독점한다는 의미의 ‘농단(壟斷)’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최순실씨 일가가 박태환 선수 협박부터 무기 구입까지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들이 집어 삼킨 것은 좁은 의미의 국가권력(청와대)이 아니라 사회 전체다. 그들은 ‘우리’에게 깊은 자상을 남겼다. 정권이 교체될지 확실치 않지만, 이번 사태가 새누리당 해체나 정권교체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이유다.

인간관계, 사회성, 민주주의를 해결해주는 과학기술은 왜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기왕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면 바둑이나 소설 쓰기 실험 대신 인간의 가장 어려운 문제인 도덕성을 조절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해본다. 삶의 꼭대기에 부와 성공, 물질적 욕망이 등극한 지 오래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자원은 감정의 연대다. 덜 외로운 상태. 스트레스 덜 받는 일상. 자기가 속한 곳에서 인정받는 것. 나의 경우 미세먼지 없는 세상이다. 한국인들이 인간관계의 고통과 불쾌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의 1인당 주류 소비량, 국민총생산 대비 최대 규모의 성산업, 쇼핑 중독.

<빵과 장미>라는 영화가 있지만, 둘은 다르지 않다. ‘빵’도 ‘장미(인간으로서 존엄)’의 힘이다. 의식주는 유대와 배려 속에서 생산된다. 정의가 힐링이다. 바람직한 사회제도 역시 선의의 인간이 운용할 때만 인프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다. 박·최 게이트는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증명 같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e메일을 많이 받는다. 이런 사연이 적지 않다. “저의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요즘은 특히, 마음 둘 곳이 없는 중에, 하소연합니다. 별반 내용도, 목적도 없는 메모가 되고 말았지만… 죄송합니다.”

광장은 불신의 시대에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나누고, 두고 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되었다. 광장에 모인 200만이 넘는 사람들의 동기와 생각이 같을 리 없다. 광장의 축제는 일상의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촛불은 밤의 시위가 아니라 낮의 우울을 밝히는 데 더 긴요한지도 모른다. 이런 촛불이 “바람 앞에 쉽게 꺼진다”고?

마음 둘 곳. 마음을 두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한때 이데올로기에 마음을 두었고, 한때는 사람에게 마음을 두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의 거처는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나 역시 있을 곳이 없다. 옆을 기웃거리게 된다. 외로움과 혼자임은 무관하다. 문제는 자기 충족적인 건강한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하고 고립된 느낌이다. 외로운 사람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다. 외로움 자체는 죄가 없다. 사회가 따뜻하다면, 외로움은 절실한 연대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경험하다시피 현실은 외로운 사람을 이용한다.

살 만한 현실이 중력처럼 나를 붙잡아주면 좋으련만 세상이 썩었으니 그 끈도 위태롭다. 예전에는 종교에 몸을 맡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기복은커녕 위안도 되지 못하나 보다. “종교가 없다”는 한국인이 56%가 넘는다.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다가 방황을 멈춘 이들의 결심, 대한민국의 자살과 우울은 상상 이상이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상황은 몸(존재)을 둘 곳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몸 둘 바(所)를 모르겠습니다”는 겸양, 민망, 사과 등의 의미다. 내 몸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관짝만 한 공간조차 아깝고 부당하다는 자학의 뜻이다. 그런데 비유적으로 “죄송하다”는 의미 말고, 글자 그대로 실제 몸을 둘 곳이 없는 상태. 이것은 외로움을 넘어 존재의 위기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적합한 사람일까. 타인과 세상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이들의 스트레스가 이것이다. 자기 몸 둘 곳이 없는 사람에게 사회는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눈총’에 대한 어느 청소년의 표현인데 실감 났다) 한심하게 여긴다.

나를 포함, 마음 둘 곳도 몸 둘 바도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잉여 신세임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고 있다. 자기계발도, 힐링도 속임수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투자할 돈도 없다. 다른 쪽 사람들, 고령화사회에서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심정은 또 다른 서러움이다. 세상이 계속 “당신의 존재 자체가 사회문제”라고 하면? 고령화 대책은 좋은데, 그럴 때마다 ‘실제’ 고령인 사람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나는 ‘그들’과 동일시된다.

나의 송년 결론.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쓸모가 ‘생산과 건설’로 지구를 망치는 일이라면, 쓸모의 의미를 재규정하면 되지 않을까. 내 마음 둘 곳을 찾지 말고, 쉽지 않겠지만 남들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이렇게라도 생각을 묶어두어야 새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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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어두침침하고 섬뜩한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말한 것처럼 현실은 어쩌면 인공지능 컴퓨터시스템이 우리 뇌 속에 심어놓은 거대한 환상에 불과한지 모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가. 작금의 현실에 빠져들수록 디지털 지하세계 ‘다크웹’ 속의 극단적인 범죄자들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다크웹은 원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특히 독재국가의 시민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익명성 보장이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익명성 보장이라는 매력적이고 강력한 기능은 범죄자들에게 오히려 반가운 툴이었다. 이제 다크웹이라고 하면 은밀한 범죄왕국, 혹은 거대한 불법 거래시장 등을 연상시킨다. 살인청부, 보복 의뢰, 인신매매, 장기밀매 등의 거래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접속하기 위해서는 토르라는 소프트웨어 툴을 통해 가능한데, 다운로드 수만 2015년 기준 1억6000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우병우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둔 후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민정수석실에서 국가의 모든 고급정보를 접하던 그가 민간인이 된 후 한 첫 번째 행동이었다. 그는 정보조작과 교란, 왜곡을 바로잡아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오히려 대통령에게 법적논리를 제공하는 등 국정논란의 거대한 축을 형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동안 국정조사 증인으로 나서지 않기 위해 그가 숨어들어간 곳이 다크웹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보안기능을 갖춘 메신저 텔레그램이었다. 2년 전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대화록 사찰과 검열 논란이 생기면서 카카오톡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1주일 만에 200여만명이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으로 이동한 것이다.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고 김영한 비망록의 민간인,법조계 사찰에 대한 분석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의 민변,카카오톡 SNS,종교계을 계획 통제하려 했던 내용등을 공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나는 당시 ‘카카오톡 사찰의 교훈’이라는 칼럼에서 카카오톡 사찰이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창조경제의 기본원칙과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 국내 이용자들을 불안케 해 결과적으로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키느냐는 것이 칼럼의 요지였다. 최근에서야 창조경제가 그처럼 어설프고 엉성하게 진행되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일당은 창조경제까지 말아먹고 있었다. 문화융성사업 예산을 유린하던 차은택은 한동안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국민혈세에 빨대를 꽂고 지속적으로 이권을 강탈해 나가고 있었다. 최순실은 아직도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이터 분석기술로 휴대폰 사용자가 어느 곳을 돌아다녔는지를 분석해 24시간 이후 사용자가 어디에 있을지, 20m 이내의 정확성으로 예측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최순실은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남겨두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대통령의 연설문과 대선 관련 자료, 외교문서까지 망라돼 있는 태블릿에 셀카까지, 모든 게 드러났는 데도 말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장관·차관은 물론 국가기관의 인사를 전횡하고, 딸을 부정입학시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무원까지 내쫓는 모습은 다크웹의 위험한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의 정보독점과 왜곡은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그들은 그저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의 심부름꾼이고, 정보를 왜곡 조작하는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었다. 사악한 정치권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보조작을 통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박관천 전 경위나 조응천 전 비서관,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권력이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된다.

혼란스럽다. 현실은 막장드라마보다 신선(?)하고 추악했으며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는 마약, 폭발물, 장물, 위조화폐, 장기밀매 등이 넘치는 다크웹이라는 가상공간보다 위험하고 살벌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사기, 음해와 협잡, 사찰과 갑질, 완장질 등은 소통하지 않고 군림하려는 정권이 남겨준 더러운 적폐다. 칼을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없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마음만 먹고 달려든다면 완벽한 보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안시스템은 책임자가 반드시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 국가 개조작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권력의 정보조작이나 왜곡 등의 적폐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정직하고 공평한, 특권 없는 사회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이다.

최희원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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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했다. 법 지식을 악용해 출석요구서와 동행명령장 수령을 피하는 방법으로 국회를 농락한 그는 인터넷에 수배 전단이 돌고,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리자 결국 청문회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게이트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위원들의 질의에 “모른다” “아니다”로 일관했다. 대통령 측근과 고위 관료들의 비리 감시 등 민정수석 업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사판이다. 민정수석이라는 자가 이렇게 뻔뻔하고 무책임하니 박 대통령이 그렇게 됐는지, 아니면 밑에서 일하다보니 상사를 닮아서 그렇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심증은 더욱 분명해졌다.

우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 등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문화계 실력자 차은택씨가 박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며 정부의 문화융성 사업을 말아먹고 있었지만 낌새를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물론 언론사 기자들까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던 최씨와 차씨의 전횡을 대한민국의 수사·정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민정수석이 몰랐다는 말을 믿으라는 소리인가. 그는 심지어 장모 김장자씨가 최씨, 차씨와 골프를 같이 쳤다는 구체적인 정황과 증언이 있는데도 장모와 최씨가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5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입을 굳게 다문 채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 시절 ‘정윤회 문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광주지검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와의 통화 내역이 담긴 해양경찰청 서버를 압수수색할 때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거나 압력을 행사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윤회 문건 사건 발생 당시 그가 최씨의 비위 행위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조사하지 않고 덮었다는 경찰관의 증언이 있고, 그에게서 압력을 받았다는 광주지검 수사진의 진술도 있다. 청와대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는 우 전 수석이 오히려 게이트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사건이 드러나자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하려 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 전 수석은 개인 비리도 모두 부정했다.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혐의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청문회에서 밝힌 유일한 사실은 박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존경한다는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의 혐의는 물론 청문회에서 한 발언의 사실 여부까지 밝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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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드러난 어른들의 모습에서, 연말 우리 사회를 블랙홀로 빨아들인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까지 그 어느 해보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해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들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특해 하다가도 ‘조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때가 많다.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의 모습도 그렇다. 30개월 아들을 둔 아빠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뭔가 손에 쥐고 연기를 뿜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라고 물었더니 “담배 피워”라고 말을 해 가족을 당황시켰다. 이런 상황을 TV로 옮겨 보면 어떨까. 2015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생 5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좋아하는 배우의 TV 속 흡연 및 음주 장면을 보면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응답이 흡연의 경우 22.6%, 음주의 경우 25%에 달했다.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감사편지쓰기 공모전의 홍보대사를 위촉하는 자리. 실제 공모전에 응모했던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초청했다. 공모전을 어떻게 알고 응모했는지 궁금해 물으니 아이는 학원 선생님이 알려줬다고 대답했다. 요즘은 유아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생들이 어른보다 더 바쁘다는 이야기를 일찍이 접하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과의 대화에서 ‘학원’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게 등장해 속으로 놀란 적이 있다.

JTBC 한 프로그램을 통해 잘 알려진 알베르토와 다니엘이 참석한 외국어고등학교의 인성콘서트 현장. 알베르토가 “여러분 행복한가요”라고 물으니 “아니요”라는 답변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알베르토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곳을 가리키며 “이쪽은 2학년인가봐요”라고 묻는다. 콘서트장에 1~2학년이 함께한다는 것을 들은 알베르토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학교 입시준비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의 고충을 익히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부모는 아이가 만나는 첫 어른이자 중요한 롤모델이다. 부모 노릇의 왕도가 없기에 아이에게 ‘좋은 부모’, ‘좋은 어른’으로 남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따른다. 2016년 3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진행한 부모의 인식조사 설문에서 ‘부모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중복응답)라고 물었다. 이에 78.4%는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응답했다. 57.4%는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으로, 35.3%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이면 모두 부모’라고 답했다. 14.6%는 ‘자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으로, 14.3%는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으로 답했다.

국제어린이재단연맹 멕 가디너 사무총장은 “성공이라는 결과보다 아이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노력과 더불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성장하는 존재로 우리가 가르치고 인도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아이를 스스로 변화하는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아동학대 이슈가 뜨거웠다. 많은 시민들이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서명하고 비영리단체들이 연대를 통해 사회적인 각성과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재단에서 진행하는 아동학대예방 서명릴레이에도 저명인사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까지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했다. 그럼에도 생후 2개월 된 갓난아이가 기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회 이슈에 밀려 아동들의 문제는 뒷전인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아이가 스스로의 권리를 인식하고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부모의 바른 가치관과 양육의 역할도 아이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 어른들의 바른 역할도 절실하다.

지금까지 아이들의 어려움과 불행은 대부분 어른들의 잘못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상정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어린이연구원이 쓴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현재 어른들의 모습은 어린 우리들보다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판단을 못하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교육도 중요하지만 병들어 가고 있는 현재 어른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이 글을 읽으니 2017년은 우리 어른들만 제대로 잘하면 될 것 같다. 그러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길과 행복을 찾을 것이다.

이서영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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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금수저인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은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한 줌도 안되는 지분으로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지지율 4%에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새누리당과 정치권을 쥐락펴락한다. 이정현 같은 친박계 의원들을 내세워 새누리당을 장악하고, 새누리당을 통해 입법·행정·사법부 관료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재벌 총수들은 더 심하다. 지분율이 1%도 안되지만 순환출자를 이용해 그룹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에버랜드 대주주로 등극한 뒤 에버랜드 보유 지분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등을 지배했다.

형제자매와 연을 끊고 산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 동생 지만씨는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말로 누나와의 관계를 표현했다. ‘진한 물’은 최순실씨다. 박 대통령 동생 근령씨의 남편 신동욱씨도 “아내가 해야 할 일들을 최순실씨가 했다. 최씨로 인해 형제간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삼남매는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세운 육영재단의 소유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박 대통령이 처음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1982년에는 최태민씨를 고문으로 임명했다는 이유로 근령·지만씨가 반기를 들었다. 이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근령씨는 동생 지만씨와의 송사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재벌 2·3세들도 유산 상속 등을 놓고 암투와 소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삼성가 이맹희·건희 형제의 분쟁, 현대가 정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이 과거 일이라면 효성(조현준·현문), 금호(박삼구·찬구), 롯데(신동주·동빈)의 골육상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산 다툼은 그 재산이 이들의 노력으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6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재벌 총수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배신을 혐오하는 것도 박 대통령과 재벌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조폭 우두머리처럼 부하들에게 맹목적인 의리와 복종을 강요한다. 윤리나 도덕, 개인의 가치 판단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 비자금 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현대차는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에어백 센서 결함과 세타2 엔진 불량 문제를 경향신문 등에 제보한 김모 부장을 해고했다. 한화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정권과 재벌의 유착을 비판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내치고, 친박이 비박을 욕하는 것과 판박이다. 배신을 혐오하는 것은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배신자를 응징하는 것은 그만큼 배신이 두렵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늘면 이들이 쌓은 성은 저절로 무너진다.

박 대통령은 검찰에 당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3개월 전만 해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최고의 특수부 검사라는 평판을 들었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민정수석으로 앉혔다. 그러나 결국 김수남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움직인 40여명의 검사들에게 탈탈 털렸다. 막강한 재벌 총수들도 검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다양한 방법으로 검찰 수뇌부를 관리하고 수사가 시작되면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줘가며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검사 비리 문제 같은 것으로 검찰이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면 도움이 안된다. 검찰은 재벌의 뒤통수를 치면서 한순간에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최태원(SK)·김승연(한화)·이재현(CJ) 회장이 그렇게 해서 감옥에 가게 됐다는 시각이 있다. 작년에는 포스코가, 올해는 롯데가 그런 이유로 검찰에 당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전직 대통령은 화합을 명분으로, 재벌 총수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사면을 받는다. 

일상의 자유로움에서 박 대통령과 재벌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숙소에 누워 있어도 알아서 보고가 올라오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지시가 내려간다. 없는 듯하면서도 있고, 있는 듯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이들은 오로지 질문을 할 뿐 답변은 하지 않는다. 누가 적어준 것을 그대로 읽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수천만 시민이 TV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소소한 것까지 박 대통령과 재벌은 닮았다. 논어에 ‘인지장사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면 선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고 치명적인 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 스스로는 개과천선하기 어렵다. 바로 이것이 추운 겨울에도 시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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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연세대 재학 중 학점 미달로 학사경고를 3회 받고도 제적되지 않고 졸업하는 특혜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가 21일 발표한 ‘장시호 관련 연세대 체육특기자 학사운영 특정사안 조사 결과’를 보면 1996~2012년 연세대 체육특기자 685명 가운데 장씨처럼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고도 졸업한 학생은 115명에 달했다.

장씨는 1998년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에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해 2003년 8월 졸업했다. 당시 연세대 학칙에는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으면 제적하도록 돼 있었지만 장씨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교육부는 장씨가 학사관리에서 특혜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졸업 취소는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대학이 관행처럼 학칙을 위반해 뒤늦게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사관리를 부실하게 운영한 연세대에 모집 정지 등 행정제재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조치로는 무너진 대학교육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선서를 위해 단상에 올라 있다. 김창길 기자

체육특기자에 대한 부실한 학사관리는 비단 연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체육에 특별한 소질을 지닌 학생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상급학교 입학 시 특례를 인정하는 체육특기자 제도는 “운동만 잘하면 명문대 졸업까지 가능하다”는 암묵적 합의를 만들어내며 파행적으로 운영돼 왔다. 미국이나 일본의 체육특기자 학사관리는 국내 대학에 비해 훨씬 엄격하다. 미국의 체육특기자는 대학스포츠관리기구가 정하는 매 학기 학업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본도 대학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학업 성적을 가장 중요시하고, 입학 후에도 학사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교육부는 체육특기자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체육특기자의 입시와 학사관리를 전담할 기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제2의 정유라·장시호의 출현을 막고, 체육특기자의 입시 및 학사관리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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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이라곤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말이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앉혔던 1차 청문회는 가관이었다. 신념이나 명예를 지키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자들. 증인으로 출석한 자들은 ‘불법’보다는 기꺼이 ‘무능’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비록 사회적 선(善)이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이나 철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는 고상함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정기준(윤제문 분)’을 떠올려보라. 그에게는 ‘악당의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증인석에 앉은 자들 중에 그 정도의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는 모르오, 나는 무능하오, 나는 꼭두각시였소”를 읊조렸을 뿐이다.

나는 이 처절한 무능의 스펙터클 앞에서 기괴함을 느꼈다. 자유주의와 만난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는 기회의 균등과 능력 본위를 기반으로 한 합리성이다. 이 시대에 무능은 도태의 원인으로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발버둥 친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의 무능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그 큰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사진 오른쪽부터)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수치심은 사회적인 맥락과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매우 문화적인 감정이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는 공동체가 지정해주며, 타인의 시선은 우리에게 그 기준을 내면화하게 한다.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들이 무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사회적 약속의 장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법이 작동하는 장에서 살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를 규율하고 있는 이 세계의 가치는 저들에게 아무런 행동의 지침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의 전시된 무능과 뻔뻔함은 상징적이다. 평등, 능력 본위, 합리성 등을 내세우며 세계에 등장한 자본주의가 처절하게 실패하여 완전한 판타지로 휘발되었다는 것을 ‘한국 자본주의의 리더’인 그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대물림되는 무소불위의 계급이 상존하는데 ‘개, 돼지들의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법망의 공백 안에 몸을 숨겨 어떻게든 당장의 곤란함을 피해가면 그만이다. 이 하루만 잘 버티면 영원과도 같은 부와 권력이 그들 앞에 있다.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이나 명예 따위, 중요할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스스로 ‘개, 돼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무능을 손가락질하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를 공고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꺼이 무능함을 선택한 자들이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종류의 ‘스펙’과 자기계발의 신화를 강요하는 각자도생의 담론을 생산하고 있음을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능이 오히려 위세가 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예컨대 이재용 부회장의 얼굴에 때때로 떠오르던 ‘교활한 썩소’는 바로 이런 이율배반이 흘러나오는 틈새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우리를 구속하는 ‘유능함’이라는 주술로부터 벗어나되, 그들에게는 무능을 가장한 부정(不正/否定)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봉건적인 계급제가 근대적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부활한 현장을 보고 있다. 정유라가 ‘부모의 돈도 실력’이라고 말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실력’이라는 말을 봉건적 언어로 왜곡했다. 이는 그들만의 문법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법이 우리의 문법을 침해해 오염시키는 것을 용인해선 안된다.

수치심은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을 억압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고 성찰의 기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하는 문명의 감정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 한다.

수오지심은 모멸감과는 또 다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그의 아내가 청문회 후 드러냈다는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은 억울함과 분노, 짜증 등을 동반한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일생이 수치의 기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록 앞에서 모멸감을 느껴야 할 것은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 모멸의 시대를 뒤집을 봉기의 시공간을 열었다. 이 혁명의 시공간이 그들에게 수오지심을 가르칠 수치심의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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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TV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가 “저는 대한민국과 결혼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냥 얼어붙어 버렸다. 현직에 있던 대통령과 영부인을 총탄에 보낸 경험을 안고 있는 국민들은 그들의 딸 앞에서 연민의 정에 포박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후광 앞에 그의 지도자적 자질이나 인간됨, 성격 등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니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어 보였다. 일상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슬퍼하고 사소한 일에 기뻐하기도 하며 질박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일반적인 국민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삶을 살아온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4년10개월 뒤인 지난 11월 영국 BBC는 박근혜 스캔들을 ‘셰익스피어의 희곡감’이라고 보도했다.

쿠데타로 집권해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의 딸로 태어나 권력의 보호막 밖에서 단 한순간도 살아보지 않은, ‘완전히 기이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가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고, 그 ‘기이한 환경’의 힘으로 대통령까지 되었다가 40년 지기 최순실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한 결과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스토리는 그 어떤 희곡보다 훨씬 극적이다.

2012년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출연한 SBS <힐링캠프>.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었던 맥베스 이야기를 셰익스피어가 희곡으로 만든 것도 극적 운명 때문이었다. 맥베스는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믿고 권력에 대한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이 모시던 왕을 죽이고 권력을 쟁취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악마의 예언에 눈이 멀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다니…. 하늘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나, 저주받은 왕관 때문에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한탄을 쏟는다. 그는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강력한 용맹을 가졌지만 마녀의 예언을 믿을 만큼 어리석었고, 그의 머릿속엔 권력의 욕망 이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연설문 하나 자기 힘으로 작성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집요한 권력욕을 이용하여 대통령을 지배한 최순실은 맥베스를 죽음으로 이끈 마녀와 똑같은 역할을 하였다. 희곡 속 맥베스의 마녀는 처벌받지 않았고, 현실의 박근혜는 자신이 완전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른다는 것만이 다른 점이다.

눈먼 권력자의 운명은 2000년 전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이미 비극의 전형으로 묘사한 바 있다. 오이디푸스는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방랑길에 올랐고, 아무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지혜로웠다. 그러나 세 갈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행인과 다투다가 그가 아비인 줄 모른채 왕을 살해했다.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그녀가 어미인 줄 모르고 선왕과 사별한 왕비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절대로 결백하며 죄는 오직 다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다는 중대한 착각과 오만에 빠져 있었다.

그는 선왕 살해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다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과 자기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미이자 아내인 왕비가 자결을 하자 그는 왕비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찌르고 절규하며 파멸하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타고난 ‘운명’과 자신은 완결하다는 ‘오만’이었다. 일반국민의 삶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박근혜는 크나큰 폐해를 덮어버린 산업화의 신화로 포장된 박정희의 후광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동정심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은 결백하며 모든 잘못은 주변 사람들에게 있다는 독선과 오만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 전의 오이디푸스와 너무도 닮았다.

맥베스는 마녀에게 속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오만함에 속았다면, 오늘날은 박근혜라는 기이한 운명의 권력자에게 온 국민이 속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과정과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독선과 오만으로 위법행위를 한 대통령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곡 중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 감정을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서 분노에 가득한 국민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법에 따른 처벌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거리로 나선 수백만 국민들의 가슴에 메워질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 뿐 아니라 제2, 제3의 박근혜의 등장을 보게 될 것이다.

송호창 | 존스홉킨스대 방문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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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친박)계’ 행보가 목불인견이다. 국회 국정조사의 위증을 교사하고, 당이야 깨지든 말든 ‘비박계’ 찍어내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선거가 코앞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자행하는 이들의 행태는 불한당과 다를 바 없다.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인 이만희·이완영·최교일 의원이 위증을 교사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이완영 의원실에서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따지기는커녕 방해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주요 증인인 고영태씨 발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절도범으로 몰려고 했다. 일반 재판에서도 중대 범죄인 위증을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은 어제 의원총회에서 해명 기회만 제공했다.

최순실 태블랫PC 관련 위증 논란 진상규명을 위한 국조특위 긴급 전체회의가 열린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친박계는 또 비박계가 유승민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하자 사실상 거부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면)당의 내분과 내홍이 심해져 심지어 풍비박산과 분당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총회에서 친박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 않고 당을 수습하는 대통합 비대위원장’을 첫번째 조건으로 내세워 유승민 의원을 거부할 명분을 마련했다. 더 가관인 것은 친박계의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공식 해체다. 불과 일주일 전 친박계는 “당을 구하겠다. 새로운 보수를 만들겠다”면서 모임을 꾸몄다. 그간 혁신과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자신들이 알 것이다. 변한 게 있다면 친박계 원내대표가 뽑혔다는 점이다. 결국 모임은 원내대표 자리를 비박계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표 단속용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여당 주도 세력의 처신이 이렇게 경망스럽다.

총선이 내년 4월 치러진다면 친박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아마 명망있는 비대위원장 모시기, 당 쇄신, 보수 통합, 대통령과 선 긋기, 비리·물의 인사 축출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친박계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도로 친박당’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친박계에 남은 것은 단 하나, 유권자 심판이다. 3년 뒤 이들이 당을 쇄신하고 보수를 통합한다고 북새통을 떨어도 유권자들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신장개업 쇼’로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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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세력들이 전면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최순실씨는 그제 열린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8가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것인데 공모 사실 자체가 없으니 무죄라는 논리도 폈다. “죽을죄를 졌으니 용서해 달라”며 검찰청에 들어서면서 머리를 조아리던 게 불과 50일 전 일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며 국회가 제시한 13가지 탄핵 사유를 모두 부인했다. 몇 차례 반성하는 대국민사과를 일방적으로 하고 눈물도 흘리는 듯하더니 이제 와서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식이다. 갖은 비리에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기억상실증도 동시에 걸리는 모양이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팽개친 이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 21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와 최씨의 재판 발언,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친박계와 최씨 측근의 국정조사 말 맞추기 의혹 등을 종합하면 모든 것이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는 의심이 든다. 박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에서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완료 후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끌고, 이를 이용해 헌재의 탄핵 결정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정혼란이 길어지든 말든 자신의 몸을 건사해 반전의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이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시민들에게 퍼뜨리려 한 것도 작전의 일종이다. 최씨는 이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재판부에 검증을 요청했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씨 소유가 아니라고 해도 비선에 국민주권이 훼손되고 국정이 유린된 이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본심이 확인된 만큼 박영수특검팀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특검팀은 20일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면서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이들의 비리도 밝혀야 한다. 범죄 소굴이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압수수색을 실수 없이 마쳐야 함은 물론이다.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 절차를 진행해 탄핵 결정을 늦추려는 국정농단 세력에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 법원도 매일 재판을 연다는 각오로 국정혼란의 조기 수습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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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곧잘 비교됐던 미국 대통령은 앤드루 잭슨(1767~1845)이다. 미국 제7대 대통령이었던 잭슨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비주류 출신이다. 정치조직을 활용하지 않고 유권자를 상대로 유세를 벌여 당선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 잭슨의 지지계층은 노동자·농민 등 서민이었다. 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은 그를 ‘서부 출신 촌뜨기 대통령’으로 경시했다. 그래서였을까. 잭슨은 대통령 취임 이후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각료들을 제쳐두고 측근들과 국정을 논의했다. 이에 반발한 각료들은 잭슨이 ‘키친 캐비닛’(주방 내각)을 운영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가정에선 일반 손님은 응접실(Parlor)까지만 들이고, 친한 사이만 주방(Kitchen) 출입을 허용한다. 이에 빗대 미국 정가에선 잭슨 대통령 재임 이후 공식 내각을 ‘팔러 캐비닛’, 비공식 자문위원을 ‘키친 캐비닛’으로 부른다. 대통령에게 격의 없는 조언을 하는 키친 캐비닛은 임명직이지만 보수는 없고, 1년에 4차례 백악관에서 모임을 갖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하기 전 키친 캐비닛의 일원으로 활용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재일동포 출신 이홍범 박사 등을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 답변서에 ‘키친 캐비닛’이란 용어가 느닷없이 등장했다. 박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연설문을 고치게 한 것은 ‘국민 눈높이 자문’을 받은 것이며, 이를 속칭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미국 따라하려면 오바마처럼 세월호 참사 당일에 뭐했는지 분 단위로 공개하라”는 등의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둘(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는 치킨 캐비닛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 국민은 치킨 캐비닛에 권력을 위임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순실이 ‘키친 캐비닛’이라니, 프로포폴 전담 캐비닛이었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으며 20달러 지폐 앞면에 인물초상이 새겨진 잭슨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것 같다. 미국 시민이 알까 걱정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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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 틀림없어. 평일 아침에 흙 묻은 등산화를 신고, 허름한 배낭을 멨다. 게다가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분명 간첩이야. 저걸 어떻게 신고하지? 가다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워야겠다.’

 

1970년대가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6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도 아니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아홉 먹은 멀쩡한(?) 청년, 게다가 버스 운전사였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모는 삼화교통 333번 버스에, 어릴 적 반공 세뇌 교육으로 배운 그런 간첩 행색의 남자가 탔다. 나는 룸미러로 그자를 훔쳐보면서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파출소에 버스를 대고 얼른 뛰어가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와서 조사해 보니 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요즘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북한지령 망국촛불’이라고 쓴 팻말을 보면 내가 버스 운전할 때 간첩 신고한 것과 너무 흡사하다.

 

“도대체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 당시, 집회하는 대학생·시민들을 보고 ‘도대체 왜 집회하는 거야?’라고 궁금해했던 것보다 더 세상을 모르고 있다.

 

사실 박사모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가끔 본다. 얼마 전에 방송대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일흔 정도 돼 보이는 방송대 학생이 내 가슴에 달린 백남기 농민 추모 리본을 보더니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난 백남기 그 사람, 살아온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달고 다니는 세월호 배지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아니, 다 끝났는데 아직도 달고 다니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는 지난주에도 있었다. “아니, 대통령 7시간이 왜 그렇게 중요하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박사모들은 어릴 때 나처럼 반공교육에 세뇌된 사람들이다. 나는 다행히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리영희의 <반세기의 신화> 등 다양한 책을 보면서 세상을 배웠다. 그런데 박사모들은 그때 세뇌된 상태로, 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세상을 판단한다. 전엔 박정희, 요즘은 박근혜에게 장악돼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만 보니 그 의식은 변하지 않는다.

 

하긴 TV조선 같은 종편은 더 심하다. 2011년 12월 조선일보 기자 박은주가 TV조선 방송에 나와 박근혜를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했다. 다른 진보언론이나 인문학 책을 보지 않고 그런 방송만 보니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없고, 꼴통 보수의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보수언론이 박사모 같은 단체를 만든 주범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가 세상에 드러난 건 진보·보수언론의 합작품이었다. 박근혜 불통 정권을 일관되게 비판해온 매체는 경향신문, 한겨레이지만, 2016년 7월26일 ‘청(와대) 안종범 수석, 500억 모금 개입 의혹’ 기사로 K스포츠·미르 재단 의혹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TV조선이었다. 그리고 다시 진보언론이 국정농단한 최순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JTBC, 조선일보가 가세하면서 박근혜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끝까지 침묵하던 공영방송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박근혜 게이트를 다뤘다.

 

박사모는 헷갈린다. 박정희, 박근혜를 칭송하던 보수언론이 갑자기 박근혜가 최순실 꼭두각시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고, 탄핵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니 헷갈릴 수밖에. 그들은 정말로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를 수도 있다. 그리고 “언론은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보수언론이 갑자기 내부자에서 심판자로 바뀐 걸까? 두고 봐야 한다. 보수언론이 이전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고, 전쟁을 조장하고, 진보를 비방한다면 ‘역시 보수언론은 쓰레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박사모한테 “언론은 쓰레기”라는 칭찬을 늘 받을 수 있는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그리고 박사모들은 경향신문이나 월간 작은책 같은 진보적인 매체도 좀 읽어보시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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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에서 12월에 걸쳐 한국에서 벌어진 평화시민혁명의 의미를 지금 가늠하기에는 너무 이른지도 모르다. 일단은 잠정적 진단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국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투쟁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이끌어냄으로써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만명에서 시작한 집회는 매번 참가자가 늘어나 급기야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국에서 참여하는 초거대 집회로 발전했음에도 순조롭게 열렸다. 정말 놀랍게도 부상자, 구속자 한 명 없이 평화롭게 순항했다. 세계가 놀랐고 우리 자신도 놀랐다. 우리는 이 세기적 평화시민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가능했는지 곰곰이 헤아려야겠다. 이 진지한 점검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가 걸려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필자는 갖는다.

 

한국에서 평화시민혁명이 분출한 시점은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집권이 예정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역학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이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혹은 개입축소정책으로 재조정되려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한국의 동향을 북한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 등 관련 당사국들이 예민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수로, 배타주의로, 자국이기주의로, 인종주의로 흐르고 있지만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정의로, 화해와 공존으로, 공동체주의로 향하고 있다. 핵무장으로 자신의 생존을 찾으려는 북한은 국정파탄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집권자를 국회에서 탄핵하고 재판에 넘기는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으로 미·일 군사동맹에 한국을 편입시키려 하지만 평화시민혁명에 부닥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대북정책에서 자신에 어깃장을 놓는 박근혜 정권이 못마땅했지만 평화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의 중도하차가 분명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태도를 재조정하려 할 것이다.

 

간략하게 살펴봤지만 평화시민혁명은 남북한 분단대결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미묘한 시기에 한반도 내부와 주변에 큰 파장을 던지면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적으로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사태 때문에 지난 60년 가까이 지속된 박정희·박근혜 프레임의 모든 사고와 행태가 한국 국민으로부터 폐기되었다. 이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면서 반성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지배자의 군림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혁명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승만 이래 미국 일변도의 의존체제가 불가피하게 전환을 강요당하는 시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 그렇게 하도록 요구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 더 이상 군비확장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군사동맹을 폐기하거나 축소해가겠다고 대선 전부터 약속했다. 이 추세는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전략대화는 한반도에서의 대결보다는 힘의 균형 쪽으로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한반도에서의 평화공존, 교류번영을 추구하고 남북의 현상변경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양 대국의 이해와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핵 문제에서 이런 흐름에 함께하느냐가 관건이 되겠다. 남북의 대화·교류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은 아베 정권의 일본과 대화를 이어가되 일본의 평화운동 진영과 긴밀한 논의를 깊이 있게 나눠야 한다.

 

박근혜와 그 일파가 나라망신을 저지르고 위험에 빠뜨렸다면 평화시민혁명은 세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국격을 높였다. 평화시민혁명은 이제 한국과 한반도의 운명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 평화를 새롭게 확장하는 데 공헌하게 될 것이다. 이 위기의 지구촌에서 한국이 평화시민혁명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와 그 일파들을 극복하고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우리 시민들이 자랑스럽다.

 

이부영 |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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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저지레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 모양이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밥만 먹고 이야기만 들었다면 키친 캐비닛이라 한들 뭐라 하겠는가? 그런 거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무엇인가를 도모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이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키친 캐비닛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이 최근 지적했듯 ‘가족기업’이다. 최순실은 남편, 박근혜는 아내라는 얘기다. ‘재산마저도 집단 운영해온 공동운명체’라고 하니, 구태여 부른다면 ‘키친 캐비닛의 대화’가 아니라 ‘베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때는 박근혜는 구국선교단이라는 거창한 조직의 대표를 맡고 최씨네는 실질적 경영자 역할을 하는 가족기업을 운영했다. 지금 최씨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종잣돈은 이때부터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에게 명예총재를 맡긴 후부터 최씨네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을 다 냈다’는 것이 최씨네 식구로부터 나온 증언이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 실험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재단을 책임지고 있던 때에도 그들의 궤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족기업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돈을 빼돌리는 일이다. 이들은 공공재를 개인화하는 일을 능사로 알았다. 당시에 일어났던 온갖 부정이 그러했다.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던 동안 대학 경영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입학, 경리부정, 재산매각대금의 불분명한 처리 등 문제 제기가 꼬리를 물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비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최씨네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가족기업이었다. 결국 그 일로 박근혜 재단이사장은 학원민주화 과정에서 자리를 내놓았는데, 당시의 부정비리가 최근 청와대에서 일어난 것과 복사를 한 듯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농단한 것이다.

 

지난 주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살인 암투를 보여주었는데, 그 핵심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거기에서도 오랫동안 가족기업을 굴려온 최씨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구국선교단,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그리고 청와대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돈을 어떻게 빼돌렸는지를 이번 기회에 파악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일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듯하다. 그리고 가족기업을 통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은 모두 토해 내도록 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부정축재에 대해 취한 방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부정축재를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저 음험한 가족기업의 모의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분칠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앉은 곳마다 능수능란한 방법으로 돈을 빼먹어온 저 어두운 역사를 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 환수한 나랏돈은 나라에 돌려주고, 학교의 돈은 학생들을 위해 쓰도록 하고, 공익재단의 돈은 재단이 돌려받아 사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최순실이 저지른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고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에서 재차 무고를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는지는 특검이 구체적으로 증거를 확인하며 밝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반복적인 ‘영업수법’으로 미루어보아 박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리에는 전략만 있고 성찰은 없다. 물론 그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입을 앙다물고 전위를 맡고 친박이 새누리당의 스크럼을 다시 짜며 후위를 맡아 특검과 헌재 심판을 돌파할 계획으로 보이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저지른 동일수법 전과기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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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인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 두 명이 최순실씨 측근과 질문·응답을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 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주기 위한 것으로 청문회에서 실제 각본대로 이뤄졌다. 게이트 내부 고발자인 고영태씨는 지난 1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이 새누리당의 한 의원과 사전에 입을 맞추고 4차 청문회에서 위증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의 의원이 ‘최순실씨와 일하며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박 전 과장이 ‘최순실이 아니라 고영태가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한번은 고영태가 태블릿PC 충전기를 구해 오라고도 했다’고 답하는 스토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이 18일 오후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과의 사전 위증모의 논란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연합뉴스


15일 열린 청문회는 고씨의 예견이 적중했다. 이만희 의원이 “JTBC에서 공개한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박 전 과장은 “고영태씨가 갖고 다니면서 충전기를 사오라고 시켰다”고 답했다. 모의가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게이트 부역 세력이 국정조사마저 조작하고 방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완영 의원이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나 태블릿PC 관련 답변을 협의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과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완영 의원이 태블릿PC는 고영태의 것으로 보이도록 하자며 정동춘 이사장에게 제의했고, 정 이사장이 이를 박헌영 과장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던 셈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두 의원이 특위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위 사퇴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의 조사를 통해 출당 등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한다. 국회는 두 명을 윤리위원회에 회부, 제명 등 중징계하는 것은 물론 국정조사 방해 행위로 특검에 고발해야 한다. 시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자가 의원 행세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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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꼭 열흘이 지났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 퇴진이 헌법과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정·청은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과 황당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되레 탄핵민심을 짓밟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헌법 위반 5건, 법률 위반 8건의 탄핵 사유를 모두 부정했다. 나아가 “최순실 등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헌재는 충분히 사실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탄핵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헌재가 검찰과 특검에 수사자료를 요청하자 곧바로 이의신청을 낸 것 역시 명백한 지연 전략이다. 그러면서 “최순실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 “측근비리가 발생한 역대 대통령도 모두 탄핵 대상”이라는 따위의 해괴한 논리를 들고나왔다. 정유라 친구 아버지의 현대차 납품 특혜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터무니없는 변명 일색이고 시민 상식과 거리가 먼 억지 주장이다.

 

[장도리]2016년 12월 20일 (출처: 경향신문DB)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란 주장에 이르러선 차라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수차례 대국민담화를 통해 울먹이며 시민에게 용서를 구하던 위선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살고 보겠다는 ‘막가파’식 태도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원내대표에 이어 비상대책위까지 접수하려는 ‘도로 친박당’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 중이다. 친박계 추대와 지지로 뽑힌 신임 정우택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내년에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또 좌파, 색깔론 타령이다. 어제는 비대위원장을 놓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은 곤란하다”며 ‘유승민 불가론’을 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 위반과 범죄행위의 실질적 공범이고 부역자 집단이다. 대통령과 함께 친박도 탄핵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석고대죄하기는커녕 여전히 대통령을 감싸며 한 줌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니 아예 민심과 담을 쌓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정당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찬가지다. 황 대행은 연일 지위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보를 하고 있다. 황 대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임시로 과도기를 이끄는 탄핵 시기 국정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동반퇴진해야 할 총리가 속죄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마치 선출된 대통령이나 된 듯한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늦게나마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여권의 일사불란한 일련의 행태는 당·정·청이 합심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계속 정권을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보인다. 촛불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반격이 가능했던 데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야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국정농단 세력의 발호 움직임에도 우물쭈물하며 허송세월했던 게 사실이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져 시민들을 답답하게 한 바 있다.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시민의 뜻은 신속하게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야 3당은 촛불민심을 수렴해 구체제를 청산하고 시민들이 요구한 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말뿐이 아닌, 진짜 수권정당의 능력을 보여줄 때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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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가 공개됐다. 탄핵 사유를 반박한 박 대통령의 논리라는 게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에 기재된 헌법 위반 혐의 자체를 모두 부인했다. 뇌물죄와 강요죄 등 각종 법률 위반 혐의는 ‘검사의 의견’이나 ‘무분별하게 남발된 언론의 폭로성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과나 반성은 일언반구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는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탄핵안의 핵심인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라고 했다. 미르재단 등은 공익사업이고, 박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한 것은 아니므로 뇌물수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관련 제3자뇌물수수죄도 부인했다. 기업의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압권은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최순실씨 딸 정유라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에 관한 답변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시야가 제한돼 있는 직업공무원들로 이뤄진 보고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국민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한 방법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인정돼 왔다”고 했다. 정몽구 회장에게 KD코퍼레이션 특혜 민원을 하는 자리에 직접 동석했으면서도 이런 식이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국민의 생명권을 등한시한 ‘세월호 7시간’에 관한 답변도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해경 등에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고 신속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했다”고 했다. 집무실로 출근하지도 않고 숙소인 사저에 틀어박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데 정상 근무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으로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긴 지 5시간, 사고 신고 8시간이 지났을 때다.

 

박 대통령은 19일부터 시작되는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결과 뒤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헌재의 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가 혼란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집권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겠다는 뜻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시민들 가슴에 또 한 번 못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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