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5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11차 전원회의를 열고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확정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고용을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찬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지만, ‘고용감소가 불가피하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우려에 많은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언론들이 ‘업주보다 더 많이 벌어가는 알바’라는 선정적인 문구로 국민들의 불안을 파고든다. 최저임금 문제를 이른바 ‘을과 을’의 전쟁으로 몰아가려는 뻔한 수법이다.

자영업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비용 중에 일부일 뿐이다. 설비비, 인테리어비, 전기요금, 관리비, 임대료, 가맹점비, 대출이자 등 많은 비용이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비용의 지출은 당연히 여기면서 인건비의 지출에 유독 인색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의 ‘시장경제’는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경제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히려 자본의 이익을 최소화하고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경제체제로 ‘시장경제’를 구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교과서를 살펴보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적정한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정한 가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애덤 스미스는 적정하지 않은 가격은 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자본가의 욕심에 따라 이윤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정의롭고 올바른’ 완전경쟁시장으로 발전하면 이윤이 줄어든다는 것, 그러기 위해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한 적이 있는 계급” 즉, 자본가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 <국부론>의 주요 논점이다.

자본에 대해 이처럼 박한 평가를 한 이유는 국부창출에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 ‘이윤’만을 노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관점을 21세기 자영업 현장에 적용해보면 열심히 일하면서 노동을 하는 자영업자와 알바는 노동자에 해당하고, 건물주, 가맹점본부, 금융기관은 자본가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이유는 공정하지 않은 임대료, 수수료, 이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애덤 스미스가 우려했던 대로 우리 ‘을’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다.

공정하지 않은 임대료로 논의를 좁혀보면, 스스로 자영업을 영위할 생각이 없으면서 점포를 소유하고 임대료를 자영업자에게 거둬들이는 구조가 자영업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 실수요자, 즉 자영업자가 아닌 ‘돈 많은’ 사람들이 점포를 매입하겠다고 뛰어드는 순간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그에 대한 투자비를 회수하겠다고 임대료를 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런 행태는 낮은 비용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경제를 어지럽히는 매점매석과 동일한 부작용을 낳고 자유주의 이념에도 배치된다.

정리하자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구조는 ‘을과 을’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공정한 노동대가에 대한 불로소득의 침해’를 막아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불로소득을 줄여 적정한 노동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따라서 불공정한 갑의 횡포를 막고 자영업용 부동산의 불합리한 소유 및 임대구조를 개선하려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불로소득을 재테크 따위로 부르면서 장려하거나, 취할 수 있는데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재력가나 고위공직자의 필수 덕목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부’가 철학적으로 용인되는 근거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대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땀 흘린 대가가 불로소득보다 존중받을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이며 튼튼한 시장경제가 지속될 수 있다.

강세진 | 박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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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언턱거리 하나 나왔다. 보수(라 쓰고 ‘적폐’ 또는 ‘수구’라 읽는다)라는 세력은 물 만난 고기인 양,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선동에 나섰다. 근거 없이 그리스·브라질 같은 나라와 비교하거나 이주노동자까지 들며 오금을 당긴다. ‘경제논리’를 내세운 언론과 ‘전문가’들도 저마다 우려를 쏟아낸다. 딴에는 실물경제를 좀 안다는 자들은 더욱 말에 날을 세워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포퓰리즘을 저주한다.

저마다 말포장은 영세 자영업자들과 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대개는 시작도 안 한 경제개혁에 대해 초를 치는 것이거나 기득권에 기댄 이념 공세에 다름없어 보인다.

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선순환이 어떤 경제학적 고리들로 달성되는지,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이 어떤 궁극적 효과를 가져올지 잘 모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는 안다.

[장도리]2017년 7월 17일 (출처: 경향신문DB)

첫째, ‘보수’는 물론 소위 ‘경제 전문가’들도 세사나 경제를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라는 것. 단지 국내 상황에 한정되지 않을 수많은 변수들이 상호작용하여 어떤 결과를 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경제 전문가’는 몇이나 될까? 그들 ‘전문가’나 보수세력이 진정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세상에 경제위기나 정책 실패는 없어야 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서민도 없어야 한다.

몇몇 경제학자들이 고백하듯 경제학조차 다른 인문·사회과학처럼 과학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 가까이 있다. 성실한 경제학이 ‘과학’을 추구한다 해도 그 대상은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그것과 다르다. 그중 어떤 ‘경제학 논리’는 기본 인간관·사회관 자체가 진리와 거리가 멀다.

둘째, 어떤 경제 정책의 성패 여부에는 ‘경제’ 바깥에 있는(것처럼 뵈는) 정치와 여론이 무척 중요한 변수라는 점.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끈질긴 비협조와 잔혹한 저주, 그리고 스스로의 불철저함과 한계 때문에 주저앉지 않았던가? 그들은 대기업의 해외 투자도, 국제환경의 악화도, 모두 ‘노무현 탓’ ‘좌파정권 탓’으로 돌렸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둘러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1)야당·보수언론 등이 향후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제적 불안정이나 일부의 고통을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계속 선동한다. 2)극우 단체와 일부 기득권층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좌파’ 문재인 탓에 나라 망한다고 SNS 등에서 부르댄다. 3)우파·주류 ‘경제 전문가’들이 몇 가지 경제학적(?) 지표를 들어 1), 2)를 증명(?)하고 개혁에 역행하는 언어를 프레이밍한다. 그래서 1), 2)가 더 강화된다. 4)중간·중립층의 불안도 커진다. 여권 내부의 신자유주의자들이나 ‘경제 전문가’들도 회의를 표명한다. 5)지자체 선거가 다가오고 불안이 커진다. 결국 논란과 갈등 끝에 애초의 경제민주화 공약과 노동 관련 정책의 기조가 포기되고 누더기 정책만 남아 표류한다. 6)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은 0% 또는 30원쯤 인상. 7)흙수저는 그냥 평생 흙수저로, ‘저녁이 없는 삶’은 ‘저녁이 없는 삶’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 그나마 촛불의 힘으로 이렇게 어렵게 시급이 1060원 오르고 월급이 겨우 200만원대로 진입하는 동안, 누워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수조원을 번 사람들도 있고,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고 큰 종교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도 많고, 한 푼도 세금을 안 내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혈을 빠는 지주·부동산 임대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다주택자 월세소득 연 20조…18조는 세금 한 푼 안내’(한겨레) 2017·7·13)

그래서 한편 정성을 다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보완대책을 집행하고 벌써 귀가 얇아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한편 단호하게 ‘우리 이니’를 옹호해야 할 영역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청와대 행정관의 여성관이나 이미지정치 연출 능력이 아니라 말이다.

‘최저시급 1만원’의 의미는 단지 ‘경제’가 아닐 것이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반을 둔 성장모델을 바꾸고, 노동 혐오·노동 분할의 연쇄로 된 ‘헬조선’의 정치·문화 재생산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실천일 것이다. 분명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양극화사회에서 복지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고, 대기업과 초고소득자는 물론 중산층의 세금 분담도 필요하다. 여전히 촛불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와 함께 갈 태세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정의·조세정의의 원칙을 틀어쥐고 계속 나아가기 바란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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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60원(16.4%) 오른 시간당 7530원으로 확정됐다. 아르바이트 청년들과 비정규직들이 요구한 1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17년 만의 최대 인상률이다. 이번 인상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는 463만명으로 추정된다. 월 20만원가량 추가 수입이 생긴다고 해서 이들의 고단하고 궁핍한 삶이 곧바로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을 확대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소득 주도 성장’의 주춧돌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수준이면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이행도 가능할 것이다.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근로자 측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는 경영과 고용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보이는 한결같은 반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했다”고 밝혔다. 경총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4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고 소상공인의 27%는 영업이익이 월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총이 진정으로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재벌·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나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부터 비판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의 심각한 경제 불평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많이 올라야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크게 늘어난 소상공인과 영세 기업을 위해 3조원을 투입하고,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자영업자를 위해 보증금·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낮추고, 현행 5년인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은 10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언제까지 국민 세금으로 한계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인건비를 대줄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자영업자 대부분은 참신한 사업 아이템과 도전 정신으로 창업을 했다기보다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소규모 식당이나 프랜차이즈점을 차린 사람들이다. 이런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주가 자기들보다 더 가난하고 불쌍한 청년·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 지금까지의 최저임금 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산업 구조를 개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부는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 상태인지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기업과 관련 산업에는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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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0일 밤에 딸아이와 함께 나는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을 기록한 동영상을 찾아서 봤다. 영상 속 서울 한복판에는 사람들이 장마철의 한강처럼 가득했고 문익환 목사의 외침은 그 물결에 부딪히며 흘러나갔다.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하여 호명되는 앳된 청년의 이름들이 그 강 위에서 봄날의 꽃잎처럼 참 슬프게도 흩날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은 당시 고작 22살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공포 속에서도 민주화를 꿈꾸다 사망한 박종철·이한열도 20대 초반 꽃다운 청년이었다. 꽃잎 하나 떨어지면 이어서 수백개의 꽃잎이 떨어지듯 1970년 11월에 전태일이 사망하고 사흘째 되던 날, 서울대 법과대학 학생 100명은 ‘민권수호학생연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어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 수백명이 추도식과 집회를 열었고 이는 계속해서 전국 각지의 학생과 청년들의 집회로 확산되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도,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도 그 중심에는 청춘들의 영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968년께 중부시장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왼쪽이 전태일).

수십명의 군경들에 맨몸으로 맞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그 광장에서 그들이 느꼈을 무서움, 슬픔 그리고 분노에 대해 가만히 상상해보게 된다. 나도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우리도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대해 저토록 저항해낼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언제부터 침묵하는 것에 이토록 길들여지게 되었나.

지금 당장 한국 청년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헬조선, 흙수저 같은 자조 섞인 신조어, 알부자족(아르바이트해서 부족한 학자금을 모으는 청년들),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 니트족, 히키코모리 등 모두 불안정한 청년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청년세대의 절망적인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1999년 공식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높은데 여기에 취준생(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여 실질 실업률을 따져보면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자이다. 모두가 어렵다지만, 유독 청년층의 고용률만 감소하고 있다. 어렵게 취업되었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청년층에서만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오직 20~30대 청년가구의 소득만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에 더해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지난 10년간 약 24배 증가했으며, 대출받는 학생의 수는 약 10배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니 좀 더 안정되고 높은 보수의 일자리로 가기 위해 학업이나 취업을 연기하는 것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주거 상황도 나쁘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청년들의 5명 중 2명은 주거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고시원, 지하방,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 타 연령층에 비해서도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새로운 빈곤집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질성을 가진 개인들은 비슷한 의제가 있으면 연대하기 마련인데 한국 청년들의 정치참여나 사회참여도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다. 청년문제에 청년들이 뛰어들기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도 버겁다. 또한 독재정권처럼 아주 선명한 적폐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의 헬조선은 누구의 잘못인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 없이 다만 자욱한 안개 속에서 ‘실패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네온사인만 어렴풋이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대적 과제를 이렇게 방치해도 될까. 당장 이번 달의 최저임금 협상 결과는 청년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소득보장 정책에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비판적 사고로 부당한 관행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을 제기해야 한다. 지난 시간 속의 청년들, 지금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흐르는 역사의 강에서 만나 공유할 것이 있다. 우리가 아파서 청춘이 아니다. 청년의 정신은 저항이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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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 함께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할 최저임금위원회에 복귀하기로 했다. 양대 노총의 불참으로 파행이 우려됐던 최저임금 논의가 15일 열리는 3차 전원회의부터 본격화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대 노총은 지난해 최저임금 논의에서 시급 1만원 즉각 인상을 요구했지만 공익위원들이 시급 6470원을 전격적으로 표결에 부치자 근로자 위원직을 사퇴했다. 올해 두 차례 열린 전원회의에도 모두 불참했다. 그동안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위 복귀를 망설인 것은 가구생계비의 최저임금 기준화, 공익위원 위촉방식 변경,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감독 및 처벌 강화 등에 대한 정부의 제도 개선 의지가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지켜지려면 최저임금은 매년 15.6%씩 올라야 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올해 6470원에서 2018년 7485원, 2019년 8660원, 2020년 1만19원 수준이다. 그러나 재계는 최저임금위 논의 시작 전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강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활력을 떨어뜨리고, 고용을 줄일 것이라며 매년 되풀이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법에 따라 오는 29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최저임금위의 논의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280만명뿐 아니라 노조가 없는 90%의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 조건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 약자들의 임금협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늘어나 내수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호주가 올해 최저임금을 18.29호주달러로 인상하고, 미국의 뉴욕·캘리포니아 등 19개주가 최저임금을 올린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일본도 지난해 최저임금을 사상 최대폭인 24엔 인상한 822엔으로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 각국의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 한국도 소득 양극화 해소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저임금 1만원 실현에 매진해야 한다. 매년 법정시한을 넘기고 ‘찔끔 인상’으로 노동계의 불만을 증폭시켰던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는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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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초의 시급 노동 대가는 4320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수습 기간을 적용한 최저임금 90%인 3890원이었다. 첫 아르바이트의 주된 업무는 피자를 만들어 포장하는 일이었다. 4년이 지난 2016년에는 숙련되어 당시 최저임금보다 470원 높은 6500원을 받았지만 필요 이상의 소비를 참아내는 삶은 3890원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근로계약서를 사장님과 나누어 가질 수 있었고 의자에 한 번도 앉지 못한 바쁜 날에는 1시간의 시급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야간수당과 주휴수당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내가 일하던 가게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피자집이었다. 창업개설비(가맹비·교육비·인테리어비·간판비 등)부터 이따금 불쑥 내라는 광고비, 카드 수수료와 배달앱 수수료까지 나갈 돈은 한두 푼이 아니었다. 이미 계약 당시 예상했던 마진이 나지 않기 시작했는데 같은 상권에 다른 프랜차이즈 피자집 3개가 더 입점하더니 이번엔 하루 주문량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렇다고 가게 임대료를 낮춘다거나 가맹비를 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엔 사람을 줄였다. 처음엔 3명이 했던 일을 1년 후엔 2명이, 또 1년 후엔 나 혼자서 하게 되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조원들이 29일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위해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청와대 방향으로 3보1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어쩌다 사장님과 최저임금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래도 사장님은 저보다 더 많이 버시잖아요!’와 ‘나도 이번 달에는 너만큼밖에 못 벌었어!’라는 내용이었다. 점점 언성이 높아질 때 우린 직감했다. 우리 입장만 우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무렵 사장님은 가맹점주협의회를 만들어 낮엔 가게 일을 하고 밤에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일하지 않는 날엔 시민운동을 했다. 그렇게 사장님과 나는 영업이 끝나면 다른 투쟁을 시작했다. ‘각개전투’라는 말 말고는 서로 외로워지는 싸움을 설명할 수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서 알바와 사장의 고통은 ‘알바 살리자고 최저임금 올릴 거면 지금 당장 최저임금도 주기 힘든 소상공인의 생계를 책임져라’는 말로 치환된다. 이는 둘 중 하나가 적자생존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불러오는 몇십억원 손해와 이득이라는 단순한 숫자놀음도 이 난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 높아진 임금이 내수경제 활성화를 불러올지 소상공인의 멸망을 불러올지는 그 어떤 경제학 논리로도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니 이젠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높아진 임대료, 그 어떤 규제도 없이 작은 상권에 난립하는 동종 업계들간의 경쟁,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근거조항으로 징수되는 가맹비부터 헤집어 진짜 해답을 찾아가는 논의를 시작하자.

올해도 어김없이 2018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시작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전보다 우호적인 정부가 출범했으나 작년과 똑같은 위원들이 앉아있다. 작년 협상 당시 가위바위보로 임금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사용자위원의 추태가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드러났다. 구의역, 경산 CU에서 일하다 죽은 최저임금 노동자는 또 다른 노동자로 손쉽게 대체됐다. 노동자가 손쉬운 소모품이 되는 시대,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월급으로 규정하는 시대에서 생계유지도 되지 않는 수준의 최저임금으로 시작되는 최초 노동은 일종의 낙인효과를 가져온다. 최저 인간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자존을 회복하는 것이 최저임금 인상의 진짜 이유 중 하나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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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최저임금법 제1조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급 6470원(주 40시간 노동 시 월 135만2230원)의 현행 최저임금으로는 최소한의 삶조차 유지하기 힘들다. 월세와 식비, 교통비, 통신비 등에만 월 100만원 넘게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산출한 1인 가구 월 생계비는 168만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마저 못 받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최저임금 미달자는 266만3000명에 이른다. 임금노동자 7명당 1명꼴로 주로 비정규직 청년·노년 노동자들이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익을 담당한다. 그러나 당장 호구를 잇기도 어려운 저임금 노동자들과 노동의 가치와 사회의 미래를 논할 수는 없다.

1일 민주노총이 서울 대학로에서 연 ‘2017년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재벌체제 해체, 노조 할 권리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 투자가 선순환을 이뤄야 하는데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너무 떨어져 내수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외국 정상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난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하지만 기업에서 실질적인 생산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이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혁신의 노력 없이 경영난을 저임금으로 해결하려는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받을 타격에 관해서는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시대적 과제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1만원(시급)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등 대선후보들도 2020년이나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노동자 개인의 인간다운 삶뿐 아니라 사회 양극화 해소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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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1987년에 발족했으니, 올해로 30년차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30번 결정될 동안 만족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노동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고 평가하고 사용계는 너무 높다고 평가한다.

지난 30년 동안 노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은 불만족스럽게 여겨졌다. 이 때문에 발족 30년차를 맞은 최저임금위원회를 개편하여 ‘국민이 만족할 만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참여하는 구조를 유지한 채 최저임금위원회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축이 있다. 먼저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위원들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위원회를 상시적 기구로 활용해야 한다.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7월 16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14차 전원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17년 최저임금은 올해(6천30원.월급 126만270원)보다 7.3% 인상된 시급 6천470원 월급135만 2천230원으로 결정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핵심은 직접 교섭에 참여하는 노사 및 공익위원의 구성과 관련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인, 노동자위원 9인, 공익위원 9인 등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사위원은 최저임금 당사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노사 대립으로 매년 법정 시한을 넘기기 일쑤고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파행으로 이어진다. 결국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공익위원의 최종 제시안이 모두 의결안이 된 것만 봐도 공익위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익위원의 편향성 시비는 끊이질 않는다. 사실상 공익위원은 없고 노와 사가 9 대 18 아니냐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공익위원의 결정적 역할을 감안하면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의 실패는 공익위원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익위원 임명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용자 측에 편파적인 인사들로 채워지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안으로 시민배심원을 공익위원으로 선정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배심원을 선정해 재판에 참여하도록 한다. 물론 배심원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을 갖지만,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할 경우 판사는 그 이유를 판결문에 분명히 밝혀야 하는 등 일정한 제약이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민배심원제를 채택한 이유는 국민의 일반적이고 건강한 상식과 눈높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국민 임금 하한선으로서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시민이 직접 심판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노사·시민배심원으로 구성해 편파성 시비를 없애자는 것이다. 이 경우 노사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단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교섭안을 제시해 소모적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최저임금은 노사와 시민이 소통한 결과라는 점에서 숙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노사관계가 보다 성숙한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정수는 더욱 내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축소할 필요가 있다. 현행 27명 구조는 실질적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위원 정수를 축소하되, 노총 위원장이나 경총 회장처럼 조합원과 회원사를 대표하는 책임성을 가진 교섭권자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 당사자인 비정규직, 청년, 여성 등을 대변할 주체가 참여해 대표성이 축소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위원 임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위원 임기는 3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다선 위원은 최저임금 결정의 맥락에 대한 이해도는 높다. 그러나 필자는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면서 장점을 상쇄하는 단점을 수차례 목격했다. 최저임금 결정 근거나 설득 논리가 매년 똑같을 정도로 관성적이다. 위원회 논의가 관성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인원이 지속적으로 보강될 수 있도록 위원 임기를 2차례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법의 목적은 노동자를 위함으로써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위원회 구조를 잘 정비해야 한다. 조금만 손보면 훨씬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위원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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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으로부터 기성(도급비) 2억7000만원을 받았는데 빚을 갚고 나니 1000만원밖에 남지 않았단다. 그래서 월급은 물론이고 퇴직금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하청업체로부터 공탁금을 받아놓은 게 있지 않으냐고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에 찾아가 따져 물었다. 그런데 그 돈마저 하청 사장에게 이미 가불 형식으로 지급해서 남은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현대미포조선에서 배를 만들어온 KTK라는 하청업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도급비를 후려친 건 원청이었다. 회계장부상으로는 지난해 말 현재 사내유보금만 15조6000억원, 현금 및 현금성자산만 2조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대중공업그룹 안에서만 올해 들어 10개 안팎의 하청업체가 폐업을 해서 노동자들 임금과 퇴직금만 날려먹었다. 게다가 오래된 하청업체들을 중심으로 폐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경우 임금만이 아니라 학자금 혜택도 날아가버린다. 조선업종에서는 하청 고급인력을 잡아둘 목적으로 하청업체들이 학자금을 보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법정 최저시급(5580원)으로 하루 8시간 일해서 116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한다. 하루 5.5시간 근무에 95만원을 준다는 거다. 시간당 임금은 올랐지만, 월 임금 총액은 20만원 이상 깎였다.

더 황당한 얘기는 이 노동자들이 하루에 일하는 총량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는 거다. 국내 최고 사립 명문대인 연세대와 그 하청업체인 세안텍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대학 구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비용을 절감한다며 가장 먼저 청소·경비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용역업체 도급단가부터 깎아버린 거다. 수천억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는 대학, 수백억원을 들여 지하주차장 공사를 하고 있는 연세대, 그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현실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오지환씨를 헹가래치고 있다. _ 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임금은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노동자들의 임금(월급봉투)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그들은 주요 업무 대부분을 하청화·외주화해버렸다. 도급단가만 후려치면 이윤이 늘어나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다. 하청 사장도 배째라 식이다. 도급비를 받아서 자기 빚 갚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써버리고, 하청노동자 임금은 맨 마지막 순서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사장들을 감옥에 보내기라도 하던가?

업무를 하청 줘버렸으니 노사관계를 뒷감당할 이유도 없다. 도급비 삭감의 결과는 모조리 하청노동자 월급봉투 쥐어짜기로 이어진다. 하청노동자들이 열 받아서 노조라도 결성하고 임금 좀 그만 깎으라고 외치면, 재벌 원청기업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당연히 하청노동자의 분노는 재벌 원청사를 향한다. 우리는 현대미포조선에서 배를 만든 것이지, KTK 업체의 배를 만든 게 아니다. 우리는 연세대 기숙사를 청소한 것이지, 세안텍스 건물을 청소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를 직접 부려먹은 진짜 사장 현대미포조선과 연세대가 직접 임금과 고용을 책임져라! 하청노동자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니다. 이제 당당하게 진짜 사장을 향해 동료들과 손을 잡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재벌 원청은 이미 업무의 대부분을 하청 줘버렸기 때문에 노동자들 대부분이 하청, 하청에 재하청으로 하락해왔다. 더 빼앗길 수 없는 최저임금 수준까지 내몰렸는데, 여기에 5.5시간 일자리를 만들며 최저임금마저 빼앗으려 한다. 그렇다면 진짜 사장들을 향해 우리 모두 같이 외쳐보자. 임금을 임금답게 대접하라고 말이다.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월 209만원으로 대폭 인상하자고!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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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에 최소한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먼저 주장한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자’들이었다. 14세기 유럽 전체를 휩쓴 흑사병으로 영국 인구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일꾼과 농부로 부릴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콧대가 높아진’ 평민들은 예전보다 돈을 3배 이상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귀족들은 에드워드 3세 왕에게 임금의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351년 ‘노동자 법령’이다.

이 법은 국왕이 정한 최대 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경우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법을 지탱할 논리가 필요해졌다. 그들은 중세 신학교리를 접목해 이렇게 설파했다. “부는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그보다 더 적어도 안되고, 그보다 더 많으면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임금 상한선만 있어선 곤란했다.

1389년 법령의 일부가 개정됐다. 식량 물가에 맞춰 임금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최저임금제의 시초라고 본다.

도입 과정 자체는 상당히 기득권층의 자기편의적인 요소가 많지만, 사실 그들이 내세웠던 논리가 지금처럼 와닿는 때도 없다. 한쪽에서는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울 만큼 너무 많은 보너스를 챙기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달 초 미국 정책연구소(IPS)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월가 금융가 종사자 16만여명이 받은 보너스 총액은 285억달러(약 31조9200억원)였다. 이는 미국에서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으로 생활하는 사람들 모두의 연봉 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고, 패스트푸드점 노동자 220만명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시켜 주고도 남을 액수다.

반면 최저임금 생활자들의 삶은 어떨까. 영국은 지난 17일 올해 최저임금을 지난해보다 3% 인상된 6.70파운드(약 1만1140원)로 결정했다. 정부는 물가를 감안한 실질 인상률로 따지면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BBC방송 등은 “먹지도 않고, 전기도 안 쓰고, 옷도 안 사고, 세금도 안 내고, 몽땅 저축해도 런던에서 침대 1개짜리 볼품없는 방 월세를 겨우 낼 수 있는 정도”라고 비판했다.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최저임금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의 상황도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다. 최저임금 5580원은 유명 커피 체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 값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14세기에도 “임금은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임금을 올리면 그나마 지금 가진 일자리도 뺏기게 될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만 돌아온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와 알바생들 사이에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째서 ‘을과 을’의 싸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것은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돌아온다. 단기적으로 종업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골목상권 보호와 적정 하도급 단가 보장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자영업자의 가족들이 저임금 노동자인 경우도 많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표는 ‘일자리 늘리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바나나나 버터가 아니다”.

노동의 대가를 상품 가격을 매기듯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결정해선 안된다.


정유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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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서 내수 진작을 위한 임금 인상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정책 제언을 내놓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최근 발행한 ‘일자리 확대를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이라는 보고서에서 “임금은 내수를 확대해 경기를 회복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는 원천”이라며 “정부는 각종 정책 수단을 동원해 임금 인상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특히 “저임금 계층은 고임금 계층에 비해 한계소비성향이 크기 때문에 증가한 임금이 대부분 지출되어 내수 확대에 크게 기여한다”며 임금 인상이 저임금 계층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우선 과제라는 얘기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최근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연에서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며 불씨를 댕기자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해온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동안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부담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소극적이던 새누리당도 최 부총리 발언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선회했다. 어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한다.

알바노조 회원들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 과정에서 부과된 1500만원의 벌금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정치권의 분위기를 보면 최저임금 수준의 개선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시급 5580원인 최저임금이 기초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다. 적어도 최저임금을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7000~8000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관건은 정부의 의지다. 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도 지적하듯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는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을 위해 저임금 계층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갖게 된 만큼 최저임금 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이 기대된다. 가깝게는 오는 6월 결정하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멀게는 생활임금 수준으로 가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실행에 옮겼으면 한다. 임금 인상이라면 질겁하는 재계의 발상 전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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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 내각이 ‘가계소득 증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혹시나’ 하는 심정은 빛의 속도로 ‘역시나’로 바뀐다.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내놓은 3대 패키지 정책, 즉 △기업소득 환류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의 내용을 뜯어보면 말이다.

2013년 기업소득은 2008년보다 80.4% 급증했지만 같은 기간 가계소득 증가율은 26.5%에 그쳤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쳤다. 2008년 상용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280만1700원에서 2013년 329만8000원으로 연 3.5% 오르는 데 그쳤다. 그 기간 물가상승률이 연평균 2.8%였던 것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상승률은 0%대. 지난 5년간 기업들은 돈벼락을 맞았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다람쥐 쳇바퀴를 돌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키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에 과세한다는 방침도 ‘기업의 전체 세금이 높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로 도루묵이 되었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만 해도 대기업들은 임금을 올려줬다는 명목으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배당을 늘리면 세제 혜택을 준다? 배당소득을 늘리면 누가 가장 혜택을 받겠는가? 최소한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주식 부자들과 재벌 총수 일가다. 최경환 경제 내각이 내놓은 정책은 기업소득 일부에 세금을 매겨 기업에 다시 돌려주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굳이 세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아도 정부가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법정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거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500만명 노동자들이 밑바닥 최저임금에 맞물려 있고, 그 위로 시급 몇 백원씩 더 받는 노동자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이는 구조이다. 즉, 밑바닥 최저임금만 올려도 전체 노동자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게 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 내년은 370원 오른 5580원이다. 이걸 시간당 1만원 수준으로 올리면 생활임금에는 다소 못미쳐도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비용은 누가 대느냐고? 아니, 가계소득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게 기업소득 아닌가. 지불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대기업의 하청 구조에 편입된 중소기업에 대해 원청 대기업이 책임지면 된다.

장도리 7월 31일자 (출처 : 경향DB)


법체계를 뛰어넘는 발상 아니냐고? 현행 국가계약법을 보면 정부가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업체 노동자 임금이 시중 보통 노동자 임금 수준을 유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시중 보통노임은 최저임금보다 40%가량 높다. 즉, 정부는 일정 수준 이하의 저임금 업체에 하도급을 줄 수 없다. 이런 법체계를 준용하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풀어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보호에 사용할 수 있다.

그래도 PC방, 편의점 같은 데서 어떻게 시간당 1만원을 주느냐고? 예전에 PC방을 운영해본 후배에게 한번 물어봤다.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형님, 그러면 제가 뭐하러 PC방 운영합니까? PC방 알바로 뛰면 더 받을 수 있는데.” 그래, 뭐가 이렇게 자영업자들이 많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들의 삶을 직장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절실하다.

그럼 그분들 일자리는 어떻게 만드느냐고? 정부도 알고 있다. OECD 최대 수준인 연간 2092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거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박근혜 대통령의 ‘절친’인 앙겔라 메르켈. 그가 총리로 있는 독일 정부가 근무시간 외에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전화하거나 e메일을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독일에서 업무 과다로 ‘탈진 증후군’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연간 1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의 3분의 2 수준인 1393시간! 왜 이런 건 배우려고들 하지 않는지.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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