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늘 세월은 흐르고 새해가 오지만 올해는 범상한 해가 아니다. 추운 날씨에도 10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오직 불의에 분노하고,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이 열망이 이번에는 실현될까? 과거 몇 차례 찾아왔던 호기를 번번이 놓쳐버린 우리가 과연 적폐를 청소하고 새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첫 단계는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불법을 밝혀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정도로 새나라 건설은 안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잘했는데, 그 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일심동체다.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산물이다. 박정희는 헌법 위에 군림했고, 그걸 보며 자란 박근혜 역시 법의식이 희박하다.

박정희는 보기 드문 기회주의자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일왕에게 충성 맹세 혈서를 썼다. 조갑제 책을 보면 박정희는 수시로 일본말을 했는데, 5·16 새벽 쿠데타군 출동명령조차 일본말로 했다. 해방 후 좌파 세상이 올 것 같으니 좌파에 가담했다가 이승만이 총애했던 악질 친일파 김창룡에게 체포되자 대뜸 동지들 이름을 불어서 수많은 동지들을 죽게 하고 혼자 살아남았다. 4·19로 모처럼 찾아온 민주주의를 1년 만에 뒤엎는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온갖 이유를 갖다 대지만 본질은 권력욕이다. 그 뒤 대통령 임기 연장을 위해 헌법을 바꾸고 또 바꾸어 종신집권을 기도했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박정희의 여성 문제를 밝히는 부하의 발언을 제지했으나 끌려간 젊은 여성이 200명이 넘는다는 말을 남겼고, 그 부하는 달력에 등장하는 여성은 거의 다 다녀갔다고 보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람들은 박정희가 경제는 살렸다고 말하는데 이마저 허상이다. 박정희는 청렴해서 떨어진 러닝셔츠를 입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최순실 일가의 천문학적 재산이 실은 박정희 재산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통령의 재벌 독대, 정경유착, 부패는 박정희 모델의 핵심이다. 박정희는 욕심이 지나쳐 전국의 땅을 파헤치는 난개발,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 한국 땅값을 세계 1위로 올렸고, 돈을 마구 풀어 물가를 천정부지로 올렸다. 난개발과 물가상승은 일시적 성장 효과가 있겠지만 마약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경제를 망친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덕분이 아니고,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근면한 우리 노동자, 농민이 피땀 흘려 달성한 것이다.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를 1968년에 착공, 1970년에 완공했다. 무리한 졸속, 부실공사로 애꿎은 77명의 인부들이 사망했다. 왜 이렇게 무리하게 서둘렀을까? 1971년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정희는 나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고, 멀리 보지 않고 항상 눈앞의 이익을 탐했던 사람이다. 일제 때는 친일파, 좌파 세상이 되자 좌파 변신, 체포되자 동지 배신, 권력욕에 눈이 멀어 신생 민주정권을 총칼로 뒤엎었고, 권력 유지를 위해 애국 학생, 시민을 잡아다 일제식으로 고문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고, 경제개발조차 대통령 선거에 이용했던 사람이다. 이런 아버지를 찬양하기 위해 박근혜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단 말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사람을 배우라고 가르친다면 이 나라가 장차 어찌 될 것인가.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면 세종과 이순신이 이러려고 훈민정음 만들고, 거북선 만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것이다.

선산 출신 김재규는 평생 박정희와 가까이 지냈으나 유신독재의 죄악상을 직시하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패륜아로 몰았지만 언젠가 역사가 재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재규는 거사 직전 붓글씨를 많이 썼는데, 그중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 있다. 비리는 법을 못 이기고, 법은 권력을 못 이기고, 권력은 하늘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박정희의 무도한 권력도 하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다는 뜻이리라.

박근혜, 최순실의 부역자들이 쇠고랑을 차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엄정한 법적 처벌만 갖고 새 나라 건설을 낙관할 수 없다. 하늘의 심판, 즉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박정희를 청산하지 않고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던 우리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없다. 박정희 청산 없는 박근혜, 최순실 처벌은 뿌리는 그냥 둔 채 잎과 가지만 자르는 것이어서 언제 다시 기회주의자들이 살아나 정의를 짓밟을지 모른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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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양에 관한 얘기는 그가 정계 입문한 18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박근혜는 늘 짧게 말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다였다.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선 정책 현안을 묻는 문재인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했다. 본질인 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행적과 언행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통령이 돼도 걱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8회, ‘무능과 독선의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았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10회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50여회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는 4년 동안 5번 기자회견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질문은 받지 않았다. 토론 없는 회의, 대면보고 불가, 문답 기피는 박근혜의 실체다. 대통령 리더십은커녕 사회인의 기본 자질마저 갖추지 못했다. 그런 그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집단 네다바이’를 당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는 보수·영남·고령층에 깔린 박정희 향수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신격화됐고, 박정희의 딸도 특별한 존재였다. 박정희의 후광을 빼놓고서는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둘째는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다. 박근혜는 야당 시절에도 ‘여의도 권력’이었고 확고부동한 ‘차기 대통령’이었다. 불러주면 감읍했고, 부르지 않더라도 줄을 이었다. 셋째는 포장이다. 박근혜의 불통과 오기, 무능, 책임 회피는 철저히 감춰졌다. 모든 단점은 신비주의로 포장됐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신중하다고 했고, 어쩌다 한마디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메시지라고 했다. ‘식인종 시리즈’를 얘기하면 세상에 이런 재밌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를 만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있었을 테지만 외면하거나 은폐됐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곧바로 ‘레이저’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 김용환조차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거명했다가 그 길로 정치생명이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여옥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친 유일한 측근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대표를 2년간 밀착 수행한 전여옥은 박근혜의 실체를 맨 처음 폭로했다. 전여옥에게 물어봤다.

-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많았는데.

“컴퓨터로 치면 저장 용량이 이미 꽉 차 있다. 새로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고 공감할 능력이 없다. 야당 대표 시절엔 그나마 종이에 써서 외우기라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 다시 나의 집이었던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하고 손을 놔버린 것 같다.”

- 박근혜 화법을 ‘베이비 토크’라고 했다.

“사용하는 단어를 세어 보면 100단어가 안된다. 문법도 표현도 안 맞는다.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는 말은 유치원생들이 ‘꽃이 아야야 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청와대 공주 수준에서 딱 멈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나.

“왜 몰랐겠나.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먼저 안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말을 안 하더라. 그게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 넘버원인 김기춘은 “우리 대통령은 차밍(매력적)하고, 디그니티(위엄) 있고, 엘레강스(우아)하다”고 했다. 이정현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이들뿐 아니다. 박근혜를 인우(隣友)보증 선 인사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이들은 서로 네 잘못이 크다며 싸우고 있다. 박근혜 코미디 2막이다.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박근혜가 무사히 임기를 마쳤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그 위세를 계속 떨쳐갔을 것이다. 친박계도 건재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휘저을 것이고, 현안마다 “좋아요” “나빠요”를 던지며 정치 영생(永生)을 누렸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런 꼴을 더 봤어야 할 판이다. 반면교사도 훌륭한 선생님이다. 이젠 인물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눈도 생겼다. 지역·세대 투표도 달라질 수 있다. 천만다행이다. 그러니 박근혜에게 속았다고 속상해할 일만은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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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의 현재 재산은 3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최씨 언니 등 일가의 자산을 다 합하면 1000억원대일 것으로 평가된다. 최씨의 전력에 비춰볼 때 나이 20대에 유치원을 운영해서 이만한 돈을 모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아버지 최태민씨가 숨겨둔 재산을 대물림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씨는 1970년대 중반부터 대통령 딸(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워 검은돈을 긁어 모았다는 게 주변 인물 다수의 증언이다. 서울 불광동 전셋집을 전전하며 생계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다가 1975년 대통령 딸을 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앉힌 이후 갑자기 재산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제2의 최태민·최순실을 막기 위해 최씨 일가가 쌓은 부정재산을 환수하는 특별법을 만들려는 것은 시민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다. 아무 벌이가 없는 최순실씨가 강남의 빌딩, 강원도 21만여㎡ 땅, 독일 주택 등을 소유하고 유럽 도피 생활 중에도 현금을 펑펑 썼다는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그 돈 어디서 났느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그 돈이 부정축재한 것이라면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일반 정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박근혜 대통령(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씨(사진 가장 왼쪽)가 1975년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30~40년 전 재산이 범죄로 조성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처벌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분노는 이해하지만 법치주의 국가에서 형벌 소급, 과잉처벌 등 위헌 요소가 큰 법률을 감정만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법안이 만들어지기까지 충분히 공론을 거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은 최씨 일가 재산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이 시급하다. 당장 최씨 언니의 딸 장시호씨는 200억원대 제주도 땅을 50억원에 급매물로 내놓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재산 규모를 파악한 뒤에는 하나씩 축적 과정을 조사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프랑스 형법처럼 의심되는 재산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본인이 소명토록 하고 소명하지 못하면 국가가 환수하는 ‘당사자 입증 의무’를 도입할 수도 있다. 부정한 재산을 어떻게 환수할 것인지는 그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요는 공적 권력을 이용해 사적 부를 축재한 자는 몇 십년이 지나도 역사의 단죄를 면치 못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최순실법’이 만들어진다면 이번 사건은 좋은 교훈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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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된 국민의사에 반하는 대통령의 아집으로 나라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면은 혼미하나 민의는 하나다. 남녀와 세대와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어 6월항쟁 이후 지금처럼 압도적인 국민통합과 단일의사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고위급 인물들이 줄줄이 소환·구속되는 데서 볼 수 있듯 청와대는 이미 부패의 핵심이자 범죄소굴이었다. 그 범죄자들에게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동시에 자신들의 범죄를 가능케 해준 두목이었다.

퇴임 이후 문서를 반출한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자기 정부의 공직기강비서관과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 사범으로 정죄한 대통령(과 여당)은, ‘현재의’ 국가기밀을 계속 반출하도록 조장·허용·묵인하는 국기문란행위를 자행한 자신에 대해서는 탄핵을 포함해 훨씬 엄한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늘 말한 원칙이고 신뢰다.

종횡으로 연결된 사적 범죄집단의 위세는 공조직을 압도하였다. 대포폰, 차명거래, 외부밀실 회합, 국가재물사취와 이익보장, 주고받기 거래 등 조직폭력배들이 사용하는 어둠의 수법들을 문명국가의 최고 공조직 내에서 지속한 그들이 반(反)국가 범죄집단이 아니라면 누가 반국가·반공화국 범죄자들인가?

국가 권부의 사사화는 국가 공공기구와 시민사회의 열정과 생기, 의지와 창의, 애국심과 헌신을 무력화하여 국가발전을 가로막은 최고 주범이었다. 이런 국가공조직이 국가발전을 이끌 수는 없다. 군대라면 전쟁에서의 승리는 꿈조차 꿀 수 없다. 따라서 국가의 사사화는 공화국의 존엄성과 공화국 시민의 존귀함과 자존감을 짓밟은 국가능멸인 동시에 국가파멸의 망국적 범죄다. 

무엇보다도 무녀에게 홀렸다는 논리는 전혀 옳지 않다. 핵심 문제는 구조이며, 구조를 활용한 대통령의 사인적 정신상태와 행동이다. 부패고리는 치밀했다. 그리고 부패를 낳은 국가 주요 정보와 정책의 사적 누설과 사익의 교환은 철저했고 반복적이었다. 대통령을 닮은 사적 행위자들은 국가의 약한 공적 고리 곳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국민의 복지와 임금으로 돌려져야 할 자원을 송곳처럼 빼먹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적 친위세력을 공적 길목에 정확히 배치하여 갈취구조를 완성하였다. 부패구조는 마치 ‘조직 내 조직’처럼 공적 결정체계와 소통과정을 무력화시키는 암적 존재였다. 그들은 방송, 체육, 연예, 문화, 올림픽, 교육, 재벌, 대기업, 경제단체에 넓고 깊게 마각을 뻗쳤다. 이들 국가부패구조를 종횡으로 엮는 정점 고리는 대통령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모셔놓고 권력-관료-재벌-기업-문화-방송-교육-대학의 상층부가 거대한 부패의 사슬구조를 형성하여 국가를 뜯어먹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금번 부패사슬구조는 전혀 훈련받지 못한 무자격 하류잡범들이 대통령과의 사적 연줄 하나를 무기로 국가 심부를 초토화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었다. 대통령의 오랜 사적 심부름꾼을 포함한 하류잡범들의 지식과 경력을 보면 이들에게 국가 최고 인재들이 계속 제공한 국가기밀과 결정권한, 굴종과 아부는 애국심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적 윤리조차 찾기 어려운 서글픈 국가현실을 상징한다. 국가고위직들이 특정 사인에게 업무협조·보고·정보제공·복종·굴종·아첨·공모하는 치욕적인 행태를 반복하는 실상은 국가기강과 공공윤리의 전면 붕괴를 보여주는 표상이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의 가장 비통한 모습이다. 국가공공성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도 노예적 관료와 지식인들 중 누구도 양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재벌과의 정경유착은 문제의 심층 본질을 구성한다. 냉혹한 이해타산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대통령의 정치적 뒷배와 경제적 특혜에 대한 기대 없이 일시에 신설 조직에 거액을 갹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불법행위 묵인과 탈세 무마를 포함한 불법흥정과 거래는 국가를 사설부패집단으로 변모시킨 전두환·노태우의 파렴치한 수법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 기업들이 불법 제공한 거액은 노동자들의 피땀이라는 점이다. 재벌 대기업들의 천문학적 이익과 사내유보금은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구조로 인해 가능했다. 청년실업이 만연하고, 주요 국가산업이 쇠퇴하고,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숱한 노동자들이 실직당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에도 국가권부는 스스로가 넓고 넓은 부패공간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정권과 기업의 부당한 결탁이 경제의 추락과 국가퇴락을 가속시킨 요인인 것이다. 대통령 하야와 부패고리 청산이 국가추락을 막고 성장동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인 까닭이다.

교육공정성의 붕괴는 금번 사태의 또 하나의 중심 줄기다. 입시는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의 전 생애를 건 승부다. 그러나 부모의 불법 권력과 금력에 힘입어 뒷문입학이 가능하다고 할 때 국가 교육체계의 모든 공정성은 무너진다. 나아가 권력-대학, 부모-교수의 부당한 거래로 학업성취도가 결정된다면 대학교육은 존재의 이유조차 없다. 이 두 모습의 결합은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대학 입시, 공무원시험, 환경미화원은 물론 비정규직조차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지옥 같은 현실이다. 그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청년들이 기나긴 날을 사투해야 하는 현실에서 누군가가 부모의 부정부패를 등에 업고 아무런 노력도 없이 쉽게 인생의 성공가도에 들어서는 부당한 현실은 부모와 청년학생들을 격분과 공분 상태로 치닫게 하였다. 이런 언어도단의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박근혜는 박정희의 육체적 2세일 뿐만 아니라 정치행태 역시 고스란히 부활시켰다. 새마을운동, 국정교과서, 국가정보기구 선거개입, 정경유착, 부패구조, 종북공세, 최태민·최순실 일가 부활과 밀착…. 박근혜시대는 박정희시대 통치양태의 부정적 생환이었다. 사실 대통령만 특권적 2세가 아니었다. 박정희를 모셨던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충격적이게도 현 정부의 청와대, 정부 공공조직, 여당의 고위인사 부모들은 상당수가 박정희시대 장관·장군·고위관료·국회의원들이었다. 대통령과 이들 세습 자제의 사사적 특권행태에서 모든 국민을 위한 공화국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정점이 사사화하자 학교·기업·금융·병원·유치원 등 거의 모든 곳에서 재봉건화와 재신분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국가가 튼실히 보호하는 공화국 국민과 공적 시민은 실종되고, 낱낱의 사적 개인들만이 거대기구들과 단독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즉 일상 삶의 현장에서 사장·회장·교장·원장·상사를 포함한 소위 ‘갑’들에게 당하는 일반 서민들의 직업적 불안정성과 인간적 모멸은 국가공공성의 해체에 비례하여 말단까지 급속하게 확산된다. 국가권력의 민주화 없이 기초 생활단위와 일상현장의 인간화는 전연 불가능하다. 생활현장의 민주화와 인간적 대우는 국가권력에 대한 공적 통제와 민주화에 비례한다. 그들 각 단위 삶의 불안과 울혈이 불의한 사적 국가권력의 전횡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 금번 국민항쟁이다.

공화국은 본래 소수특권층이 아닌 ‘모두의 복리’ ‘모두의 행복’(common wealth) 또는 공민의 나라(republic)를 뜻한다. 우리가 지금 공화국 대한민국을 소수 부패집단에서 국민 모두를 위해 반드시 다시 찾아와야 하는 이유다. 애국국민들이 국민항쟁을 통해 참된 민주공화국을 재건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예혁명이요, 시민혁명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끝내 하야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대통령의 존재가 대한민국의 골칫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환부인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식물대통령’을 거쳐 우리는 사상 처음 ‘환자대통령’을 갖게 되었다. 국민항쟁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질병은 대한민국 전체로 번지고 말 것이다. 하야가 정답인 이유다. 잿더미로 변한 조국의 공공성을 구출하고 공화국을 구원하기 위해 우린 다시 시민적 영혼을 가다듬어 광장에 모여야 한다. 

이번 국민항쟁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지금은 국가권력과 국민권력의 분리상태다. 이중권력상태다. 즉 정의로운 국민권력과 불의한 정권집단의 격돌이다. 불의한 권력집단은 대한민국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와 국가미래가 끝없이 추락해도 끝끝내 국민과 맞서려는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정의를 이기는 불의도 없다. 정의로운 국민을 이기는 불의한 권력은 더욱 존재할 수 없다.

하야 이후 국민의 용서를 기다린다면, 자비로운 국민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엄정수사와 진실고백, 중립내각 구성, 국정 완전후퇴, 비정(秕政) 백서 발간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관용 어린 국민들은 하야 이전이라도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국민과 국가와 본인의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 마지막 남은 애국의 기회를 잃지 말기를 눈물로 호소드린다.

박명림 |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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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8월 자신의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오바마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서 이 글에 대해 “적어도 나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일침을 가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비꼰 동시에, 자신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말이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박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가 박 대통령에게 저 말을 한다면 박 대통령은 오바마처럼 응수할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미래의 역사교과서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과 비선 실세의 이름이 나란히 쓰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의혹'과 관련한 대국민사과를 한 뒤 돌아서고 있다. ㅣ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는 역사교과서의 한 대목이라기보다는 어느 추리소설의 후반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순실’이라는 퍼즐 조각 하나를 집어넣었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하나의 꾸며진 소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라는 데 있다. 국정농단의 장대한 플롯을 접하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지적 흥분이 아니라 크나큰 허탈감과 수치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알고 보니 주체성이 부족한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최태민 일가가 조종하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그려지고 있다. 다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지금 국민이 보는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개인이 아니다. 짜인 각본 안에서 남이 써준 대사를 앵무새처럼 읊는 무기력한 연기자다. 그것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자기대상(selfobject)’ 개념을 잠시 빌려와 보자. 자기대상은 타인이 온전히 자신의 일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닌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이 고안한 용어다. 자기대상의 발달은 유아기에 시작한다. 유아는 충분히 안정된 자기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여서 성숙하기 전까지 정신구조의 일부 기능을 대신 맡아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어려서는 부모가 이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맞추고 아이를 적절히 진정시키며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거울처럼 일일이 반영해준다. 이를 통해 아이는 일종의 전능감을 맛보게 된다. 코헛은 이러한 공감 경험이 건강한 자기애의 근간이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까지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현실 속에서 단계적으로 적정 수준의 좌절을 경험하면서 유아의 자기대상은 원시적인 형태에서 더 성숙한 형태로 점차 발전해 나간다. 이것이 코헛이 말하는 심리적 성숙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과정을 정상적으로 겪지 못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가령 양육자의 공감이 현저히 부족했거나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심리적 발달이 저해된다. 또는 수족처럼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존재가 계속 곁에 있을 경우에도 유아기적 전능감은 적절히 포기되기 어려울 수 있다. 장기간 고립되어 지내는 것도 자기대상의 원만한 변형과 발전을 어렵게 한다. 부모에서 친구로, 연인에서 배우자로, 스승이나 동료, 때로는 자식에게로 자기대상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과정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최태민과 그의 자녀들, 그중에서도 최순실은 오랜 세월 박 대통령의 자기대상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건강하지 못한 자기대상이었을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모자공생을 연상케 한다. 이런 밀착된 관계에서는 자기 생각과 타인의 생각, 자기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주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서 언급한 ‘순수한 마음’은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제대로 대면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춰주기만을 바라는 유아기적 욕망에 가깝다. 대통령의 생각이 여전히 ‘순수’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개인의 불행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이 국가 통치에 앞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 정치의 전면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용기와 결단력, 사고력이 대통령에게 남아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기대는 크지 않다. 심리적 성숙은 그리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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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이어 그 언니 최순득씨와 조카 장유진씨(장시호로 개명)도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씨 자매와 매주 만나는 한 지인은 “최순실은 최순득이 지시하면 그대로 움직이는 현장 반장이며, 최순실을 비선 실세라 하는데 최순득이 숨어있는 진짜 실세”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테러를 당한 뒤 요양했던 곳도 박 대통령의 고교동창인 최순득씨 집이라고 한다. 최순실씨의 브레인이 장유진이며, 그가 국정농단의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씨 모녀의 호가호위도 모자라 일가족이 나랏일을 주무르고 있었다니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영국 가디언은 “굴착기 운전자가 대검찰청 청사로 돌진했다”는 내용까지 보도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최근 제기된 의혹을 보면 이번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태민씨 일가 국정농단’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새로 불거진 의혹은 지난 6월 설립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최씨의 조카 장씨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다. 영재센터는 1년 새 6억7000만원의 정부 예산을 챙겼고 이 과정에 장씨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기존 단체와 기능이 중복되는 데다 실적이 없는 단체에 이런 큰 금액이 지원된 것은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장씨는 1300억원이 투입된 강릉 빙상장의 사후 활용계획 등에 관여했다는 말이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권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최순실씨의 첫째 언니의 아들 이모씨는 최씨가 쓰던 태블릿PC 명의자인 김한수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고교동창이다. 김 행정관은 최씨를 이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씨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3급이 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의 권력을 공유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의 영적 지도자였던 최태민씨의 가족은 이제 40년 가까운 박 대통령과의 친분과 배경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이권까지 챙겼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최씨 자매 재산의 출발점이 과거 육영재단에서 횡령된 돈이라는 의심마저 나오고 있다. 이들 가족이 13조원에 달하는 평창올림픽의 이권에 개입하려 했다니 다른 곳에서 또 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 예산을 제 곳간처럼 여긴 최씨 일가라면 못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장씨가 보름 전 국가대표 출신 모씨에게 전화를 해서 (장씨가 한 일에 대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했다. 검찰은 서둘러 의혹에 연루된 최씨 가족들을 찾아 소환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국정농단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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