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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25 [정동칼럼]담대한 외교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몇 차례 스텝이 꼬이는 일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인 대국민 소통과 높은 지지를 통해 착실한 걸음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부 야당은 이미지 위주의 ‘쇼통’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 못하는 자가당착이다. 6개월의 국정공백과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했음에도 안정적이면서도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변화의 역동성이 있다. 같은 기간 80%의 지지율이 반토막 났던 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연착륙’이라는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 성공적 출발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취임 100일의 연착륙이 성공의 보증수표일 수는 없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일자리, 탈원전 등 난제들이 첩첩산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외교일 것이다. 지난 9년의 실패를 복구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도전은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미 공조와 ‘베를린구상’으로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으려던 계획이 흔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7년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미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언술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중의 힘겨루기로 한국은 설자리 찾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지난 정부 외교부 장관의 엉터리 상황인식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대외정책의 컨트롤타워는 현안관리에만 매몰되면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노정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미 공조를 다진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입장에 지나치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도 일관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는 질문이 지지층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외교안보라인의 인사를 보며 과연 정권이 교체된 것이 맞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있는데 반대편도 아닌 지지층의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외교란 관리한다고 관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현상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한 경우보다 아닌 때가 훨씬 더 많다. 현안은 처리해야 하겠지만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순위와 과감한 결정을 통해 단순화시켜야 한다.

현 난국을 돌파하는 방법은 상황관리보다 담대한 제안과 주도권 행사라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다. 노무현 2.0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식의 미국 내 강경파의 압박과 국내 보수세력의 안보프레임 공세를 비껴가기 위해 혹시라도 일보후퇴 일보진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재고해야 한다. 사드 조기 배치 여부를 통해 한국 대통령을 검증하겠다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도를 넘은 압박에 말려들어서는 결코 안된다.

참여정부 초기 국내 보수기득권의 거센 저항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이고 이를 잘 관리하면서 대북 문제에 관한 통합적 지지를 획득한다는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기모순을 내포한 희망적 사고다. 그들이 현재 입을 다문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신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 때문에 벙어리냉가슴 앓는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내심 원하는 외교를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여차하면 돌변할 변덕스러운 침묵일 뿐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분명하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한 소심한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을 때 담대한 평화구상을 제시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미 표한 것이며,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은 이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좌충우돌로 대중정책은 변덕스럽고, 대북정책도 불분명하다. 미국이 헤매고 있을 때 우리가 나서야 한다. 사드 조기 배치, 예방공격, 한국의 독자제재 강구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노선과 압박에 더 이상 밀리지 말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으로 미국을 설득해내야 한다.

1994년 제네바합의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는 현 위기에서 희망은 문재인 대통령뿐이라고 했다. 이는 개인의견이 아니라 미국 대화파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북핵동결론은 원래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 조건이 되어버렸다. 대화를 하고 조건을 다루면 되는데, 대화에 조건을 두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박근혜의 신뢰 프로세스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단순한 신정부가 아니라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다. 따라서 빚진 대상은 국민들뿐이다. 국민들만 생각하고 국민들만 믿고 담대한 타개책을 제안할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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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