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어제 회동한 뒤 다음주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의 분당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진영의 위기가 심각하고 새로운 보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징표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 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여론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음에도 반성은커녕 민심을 거스르는 길만 걸어왔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뉘우치는 듯하다 틈만 보이면 이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 막판에는 비주류에 비상대책위원장을 양보할 것처럼 하다가 뒤집는 치졸함까지 드러냈다. 총선이 3년 넘게 남았고, 촛불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 등에 기댄 탓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변화를 통해 당을 재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탈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유일 보수정당의 법통’ 운운한 것은 가히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그나마 시민의 질타를 두려워하는 보수세력과 기득권에 젖은 비양심적 가짜 보수의 결별이다. 보수 내부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탈당 기자회견 후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1명이 '집단 탈당'을 결의하고. 탈당 시점은 오는 27일이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총선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반칙 없는 세상과 더불어 책임지는 정치를 요구했다. 극우적 세계관과 영남 지역주의를 벗어난 건강한 보수, 명예와 도덕이라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보수 정치세력을 시민들은 갈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탈당파는 이 같은 새로운 보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산·경남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 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수구적 이념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짜 보수당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앞서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까지 가세하면 신당 추진은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 탈당파가 중도보수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면 정치권은 1990년 3당 합당 후 26년 만에 4당 체제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정책의 대결과 함께 곧 있을 대선 정국에서 정책에 따른 연대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보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한다. 과거에도 보수당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보수, 진정한 보수를 표방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전에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보수의 혁신을 외쳤지만 결국 집권을 위한 한 편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보수의 정책과 가치에 충실한 정당이 아니라 파벌과 이권,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탈당도 대선용, 위기모면용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당을 박차고 나간 정치세력이 성공한 예는 없다. ‘보수정당의 분열은 필패’라는 말이 있을 만큼 탈당과 신당 창당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극복과 진정한 보수정당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흔들림 없이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한다면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진정한 보수세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막 닻을 올린 새누리당 탈당파의 실험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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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친박)계’ 행보가 목불인견이다. 국회 국정조사의 위증을 교사하고, 당이야 깨지든 말든 ‘비박계’ 찍어내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선거가 코앞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자행하는 이들의 행태는 불한당과 다를 바 없다.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인 이만희·이완영·최교일 의원이 위증을 교사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이완영 의원실에서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따지기는커녕 방해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주요 증인인 고영태씨 발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절도범으로 몰려고 했다. 일반 재판에서도 중대 범죄인 위증을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은 어제 의원총회에서 해명 기회만 제공했다.

최순실 태블랫PC 관련 위증 논란 진상규명을 위한 국조특위 긴급 전체회의가 열린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친박계는 또 비박계가 유승민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하자 사실상 거부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면)당의 내분과 내홍이 심해져 심지어 풍비박산과 분당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총회에서 친박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 않고 당을 수습하는 대통합 비대위원장’을 첫번째 조건으로 내세워 유승민 의원을 거부할 명분을 마련했다. 더 가관인 것은 친박계의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공식 해체다. 불과 일주일 전 친박계는 “당을 구하겠다. 새로운 보수를 만들겠다”면서 모임을 꾸몄다. 그간 혁신과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자신들이 알 것이다. 변한 게 있다면 친박계 원내대표가 뽑혔다는 점이다. 결국 모임은 원내대표 자리를 비박계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표 단속용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여당 주도 세력의 처신이 이렇게 경망스럽다.

총선이 내년 4월 치러진다면 친박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아마 명망있는 비대위원장 모시기, 당 쇄신, 보수 통합, 대통령과 선 긋기, 비리·물의 인사 축출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친박계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도로 친박당’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친박계에 남은 것은 단 하나, 유권자 심판이다. 3년 뒤 이들이 당을 쇄신하고 보수를 통합한다고 북새통을 떨어도 유권자들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신장개업 쇼’로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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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목소리와 표정에서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분이다 보니 기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는 16일 사퇴 기자회견이었다. 국정농단 사태에 떠밀려 임기 2년 당 대표직을 4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일주일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에 “혼밥, 혼술은 해봤지만 ‘혼박’은 처음이었다. 날아갈 것 같다”면서 박수치며 기뻐했던 사람들은 ‘이건 뭐지’라고 했을 장면이다.

 

이른바 친박이라는 사람들. 자신들이 따랐던 지도자가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홀로코스트 같은 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건 중요하지 않았다. 비박 인사들을 경멸하는 말을 쏟아내다가도 원내대표 경선이 임박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 모드로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어찌됐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정치를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였다.

 

원내대표 경선을 하던 날,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15%. 더불어민주당이 40%를 찍었으니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지지율’은 흔적조차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최소 지지율이 35%”라던 새누리당은 제2야당과 지지율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그 이유는 다 아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귀 기울여 신속하게 과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다. 살아있는 정치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왼쪽에서 세번째)가 1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최연혜·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왼쪽부터)과 지도부 일괄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국민들은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지자 ‘이것이 나라냐’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않게 되고, 국가와 국민은 분리됐다. 새누리당도 그랬다. 대통령의 오만·독선을 견제할 의지나 능력은커녕, 그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새누리당도 국민들로부터 분리됐다. 4·13 총선에서 ‘여소(與小)’로 전락한 이유였다. 대통령이 최순실이 엮어놓은 실에 따라 움직이는 허깨비였다는 것이 드러나도 대통령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 친박의 실상이다. 이런 집단이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친박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념과 노선 따위는 애시당초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박근혜’를 버리면 더 이상 나란 존재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을 해체하라”고 하고, 여의도 당사에 계란이 날아들어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4·13 총선에서 갖은 무리수를 써가며 배지를 달아준 ‘진실한 사람들’은 믿는 구석이었다. 당의 생리도 잘 알았다. 새누리당은 보수적 정서와 행동, 현상유지적 가치를 통해 오랫동안 일관성과 동질성을 유지해왔다. 다른 정당을 흡수해 세를 불리기는 했지만 내부가 쪼개진 적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비박은 집단적으로 뛰쳐나가지 못한다’는 게 친박의 구상으로 정리된다. 친박의 농단으로 4·13 총선에서 참패했음에도 넉 달 뒤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에서 둘째라고 하면 서러워할 친박 당 대표를 배출하지 않았던가.

 

비박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친박 추대 후보 정우택 의원이 경선에서 얻은 표는 62표.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 반대 56표보다 6표가 더 많았다. 정 의원이 “내년에 좌파정권,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호소할 때, 비박 단일후보 나경원 의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친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이미지 이외에는 변화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진단도 틀렸고, 아무것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보수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삼았으니 친박이나 비박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저희 당은 보수정권으로 대표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뒤바뀌지 않게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비박들을 적당히 비상대책위원회에 끼워주는 방식으로 포장지만 바꿔 놓고 달라졌다고 할 태세다. 눈엣가시였던 이 대표를 위시한 친박 핵심들은 2선으로 물러나지 않았느냐면서.

 

친박이 비박과의 팽팽한 힘겨루기에 이겼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종종 쓰는 표현이 ‘제궤의혈(堤潰蟻穴·작은 개미 구멍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인데 둑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3년4개월 뒤 21대 총선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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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심에 놀라 침묵했던 새누리당 친박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떠넘긴 뒤부터다. 친박들은 개헌 추진 등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촛불 민심을 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 범죄의 공범이 되고 탄핵·퇴진에 몰리게 된 데는 친박 세력 책임이 가장 크다. 자숙해야 마땅한 이들이 또 돌격대인 양 나서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무시한 피해 의식”이라며 “국회가 역할을 못하면 ‘무기력 집단’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은 절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내 비주류가 결성한) 비상시국회의를 해체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탄핵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면서 “탄핵에 들어가면 지도부는 (21일로 예정된) 사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이 전지전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장의 함성을 통해 반영된 국민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첫걸음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을 개헌 정국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1일 (출처: 경향신문DB)

막말도 이어지고 있다.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을 위해 야당이 하나가 됐고 정치 타임테이블을 설정해놨는데, (대통령 담화로)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롱했다. 김종태 의원은 그제 의총에서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좌파 종북 세력은 통상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로 책임자를 다 정해 나온다”고 말했다.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이 종북 세력에 의해 조종됐다는 폄훼다. 실로 몰상식하다.

이런 사람들이 박근혜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어 대통령으로 세웠고, 여당을 이끌어 왔다. 국정농단을 방관·방조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좋은 자리를 나눠 먹는 등 이권을 챙겨온 게 이들이다.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한 시점에서도 이간질, 범죄자 보호, 사법 방해, 위력 과시, 협박에 무고까지 하고 있다. 주먹만 안 썼을 뿐 범죄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여당을 지켜보고 있다. 이 당이 해체하지 않더라도 다음 21대 총선 때 선거 벽보에 박 대통령과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붙일 후보가 몇이나 되겠나. 깊게 생각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형해나 다름없는 일부 무리가 아니라, 시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게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유권자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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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원유철·김재경·홍문종·나경원·주호영·정우택 의원(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주류·비주류 중진의원 6인 협의체가 2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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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내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비박근혜계 세력의 중심인 김 전 대표가 대선주자 자리를 버리면서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야 3당 의석을 모두 합쳐도 171석밖에 되지 않아 탄핵 정족수(200석) 확보에 고심해온 야당에 그의 가세는 원군이 될 것이다.

23일 새누리당 김무성 전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하지만 김 전 대표의 다짐이 썩 미덥지는 않다. 김 전 대표는 지난 4년 내내 박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방조했다. 교과서 국정화 앞장서기 등 퇴행적 행태를 보였고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는 선봉에 섰다. 그런 그가 이제 와 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니 사돈 남말 하는 격이다. 최근에는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새누리당에 있느냐. 몰랐다면 거짓말 아니냐”며 자신의 직무유기를 덮으려는 모습까지 보인 터다.

새누리당을 합리적인 보수로 개혁하겠다는 말도 생뚱맞기는 매한가지다. 수구적인 발언, 색깔론을 무수히 제기하며 정치판을 흐려온 그가 합리적 보수가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친박 세력이 새누리당의 당권을 쥐고 버티는 상황이니 그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으로는 보수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일이다. 과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시인하고 통렬히 참회하는, 분명한 자기 청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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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민주주의 공적 기구를 사유화하고 자유 시장경제를 파괴했는데 새누리당은 이런 대통령을 막기는커녕 비호했다”며 헌법 수호를 포기한 당을 떠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을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정당다운 정당,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의 이탈은 단순히 탈당의 마중물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한국 정당사에서 보수당이 갈라진 일은 없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다수가 선뜻 탈당을 결심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탈당 감행은 새누리당이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시사한다. 새누리당은 2003년 전신인 한나라당이 재벌로부터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 후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도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당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면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은 탈당 대신 해체 수준의 재창당으로 새누리당을 일신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 등 현 친박계 지도부를 모두 퇴진시킨 뒤 새 지도부로 당을 혁신해 거듭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오른쪽)와 김용태 의원이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한 뒤 밖으로 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결국 새누리당 비박 세력은 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만들자는 탈당파와 당의 틀은 유지하면서 혁신하자는 재창당파로 갈린 것이다. 어느 해법이 현실화될지는 불투명하지만 간판만 바꿔 다는 신장개업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과거부터 보수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제도로서의 정당보다 지도자 개인 중심으로 결속한 사당(私黨)에 가까웠다. 현재 새누리당의 위기도 ‘박근혜의 당’이라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새누리당 탈당과 진정한 보수당의 창당을 선언한 현실 인식은 옳다. 친일·반공 세력과 재벌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인물 중심의 수구 정당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에 충실한 당이 나올 때가 되었다. 최근 사태와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난 시민의식으로 볼 때 토대도 충분하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보수는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친박당이 무너진 잔재 위에 보수의 가치를 표방하는 현대적인 보수정당, 과거 낡은 유산에 기대는 기득권 집단이 아닌 진짜 보수당의 등장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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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