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에 해당되는 글 69건

  1. 2017.03.16 [경향의 눈]헌재 결정문과 대통령 취임사
  2. 2017.03.15 [정동칼럼]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3. 2017.03.07 [사설]대통령 탄핵 이유 분명하게 드러낸 특검 수사 결과
  4. 2017.03.07 [박래용 칼럼]굿바이, 박근혜
  5. 2017.03.06 [아침을 열며]탄핵을 이끈 건 국회가 아니라 시민이다
  6. 2017.03.03 [편집국에서]금남로의 태극기, 서울광장의 성조기
  7. 2017.03.02 [사설]3·1절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그 걱정과 희망
  8. 2017.02.28 [조호연 칼럼]박 대통령부터 헌재 승복 선언하라
  9. 2017.02.21 [사설]특검 연장 반대 당론 정한 한국당의 무책임한 행태
  10. 2017.02.15 [사설]뇌물죄만 아니면 탄핵 불가라는 이동흡 변호사의 억지
  11. 2017.02.14 [사설]당명만 바꾼 새누리당의 ‘쇄신 코스프레’ 누가 믿겠나
  12. 2017.01.31 [사설]버티는 대통령 때문에 시민이 불행해진다
  13. 2017.01.24 [사설]지연책 쓰는 박근혜, ‘빠른 탄핵’이 필요하다
  14. 2017.01.13 [사설]반기문 전 총장,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5. 2017.01.11 [사설]국정 베낀 가짜 검정교과서 만들려는 교육부
  16. 2017.01.09 [NGO 발언대]박근혜 환경적폐
  17. 2017.01.06 [사설]촛불은 민심 아니라는 박근혜의 정신상태
  18. 2017.01.04 [정동칼럼]촛불과 소수자 목소리
  19. 2016.12.29 [사설]한·일 위안부 합의 1년, 무효화해야 한다
  20. 2016.12.26 [정동칼럼]지체된 탄핵 결정은 정의가 아니다

2000년대 초 대학입시에 논술이 화두였다. 논술은 객관식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험생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 접목이 쉽지 않았다. 당시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으로 논술 출제와 채점을 맡았던 김영정 교수(철학과·2009년 작고)가 두 개의 논술 전범(典範)을 제시했다. 하나는 대통령 취임사, 다른 하나는 헌법재판소 판결문이었다. 취임사는 필자(대통령)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나 당면 과제로 의제를 설정한 뒤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형식의 글이다. 독자(시민)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헌재 판결문은 찬반·시비 논란이 있는 사안에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피력하는 형식이다. 제3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반대 측의 승복을 받아내려면 증거가 객관적이면서도 논리와 구성이 치밀해야 한다.

지난 10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낭독한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 요지’를 보면서 헌재 판결문이 왜 논술의 전범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논리 전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표현이 적확해 경탄이 절로 나왔다. 글은 재판에 임하는 재판관들의 심경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대통령 측에서 문제로 제기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절차와 헌재의 8인 재판관 체제 등은 흠결이 없다고 쾌도난마로 처리하고, 대통령 측과 국회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린 탄핵 사유 13개를 4개 범주로 묶어 하나하나 따졌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나 삼성 뇌물 등은 대통령 탄핵의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음에도 제외했다. 국회 탄핵안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을 넣으면 대통령 측의 반발 등 분란만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재의 문장은 간결하고 문체는 건조했다. A4용지 4장, 7000자 분량의 글에 관형어와 부사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같은 주제문에서 ‘압도적으로’라는 수식어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독자(청자)에 대한 배려도 돋보였다. ‘지금부터’ ‘먼저’ ‘이제’ 등의 말을 써서 맥락과 내용이 바뀌고 있음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어려운 한자나 법률용어를 최소화해 법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했다. 구성이 탄탄해 극적 효과도 뛰어났다. 4번의 ‘그러나’와 3번의 ‘그런데’는 시민들을 일순간에 천당과 지옥으로 내몰며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여론 조사 결과 헌재 선고 전 80% 수준이던 대통령 탄핵 찬성 의견이 헌재 선고 뒤 90% 이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그만큼 헌재 판결문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논술의 또 다른 전범인 대통령 취임사(2013년 2월25일)를 찾아서 읽어봤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 국민 개개인의 행복의 크기가 국력의 크기가 되고, 그 국력을 모든 국민이 함께 향유하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 …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때 국민행복시대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민 행복의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 저와 정부를 믿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는 길에 동참하여 주십시오. 우리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대통령인 화자의 권위와 공신력을 바탕으로 청자의 이성과 감성을 흔들어 깨웠다. 직유와 은유, 대조와 대비, 점강과 점층 등 중·고교 국어 시간에 배운 각종 수사법이 활용됐다. 문장이 길어도 운율이 있어 읽는 맛이 느껴졌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우리의 역사는 독일의 광산에서,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과 연구실에서, 그리고 영하 수십 도의 최전방 전선에서 가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위대한 우리 국민이 계셔서 가능했습니다” 등의 표현은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고 눈물샘을 자극했다. 풍부한 예시와 참신한 비유 외에도 ‘경제 민주화’ ‘창조 경제’ ‘문화 융성’ ‘국민 맞춤형 복지’ 같은 창의적 대안이 돋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진실성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 정권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이었다. 양극화와 소득 감소로 중장년의 삶은 더 불안해졌고, 다수의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은 사치 혹은 공포가 됐다. 정부는 총체적으로 무능했고, 대통령은 최악의 비리를 저질러 파면당했다. 아무리 문장이 좋아도 내용이 거짓이면 ‘0점’이다. 불행하게도 이를 확인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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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국회를 거쳐,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최종적으로 파면당했다. 이것은 언론방송이 묘사하는 것처럼 ‘승복’의 대상도 아니며, 누군가가 희망하는 것처럼 재고(‘재심’)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이고 단순명료한 현실의 서술일 따름이다. ‘대통령’ 앞에 붙여진 ‘전(前)’이라는 글자는 시간의 비가역성(非可逆性)만큼이나 무겁고 절대적이다.

그것이 굳이 폭죽을 터트릴 만큼 감격스럽거나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이유로, 땅을 치며 통곡을 할 필요도, 애꿎은 분노를 표출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일은 그저 헌법이 미리 규정한 대로 탄핵과 파면의 절차를 밟았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탄핵의 대상이 자연인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이라는 기관이고, 파면의 결과가 자연인 박근혜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비우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누가 대통령이었다 하더라도 같은 상황에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자 주요 외신들도 한국 역사상 최초의 현직대통령 파면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국 BBC 방송, 미국 CNN 방송, 영국 일간 가디언,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홈페이지 화면.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자 주요 외신들도 한국 역사상 최초의 현직대통령 파면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국 BBC 방송, 미국 CNN 방송, 영국 일간 가디언,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홈페이지 화면.

그러나 문제는 2017년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선악의 뚜렷한 구분이나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때로는 ‘팩트(fact)’라는 말이 ‘의견’이나 ‘관점’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90%가 탄핵과 파면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 10%가 있으며, 양자는 평행 우주의 대척점에 기거하는지도 모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평가는, 매우 극단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고 점잖게 요약하자.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부분적 진실이라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와 명백한 증거들이 민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권의 신속하고 비가역적인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헌법재판관들을 아주 많이, 오래 괴롭혔을 것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해답은 또 다른 민의, 즉 입법부의 수적 우위와 정치적 판단에 따르는 미국 모델이겠지만, 우리 헌법은 그 부담을 오롯이 헌재의 규범적 판단에 남겨놓은 셈이고 그 답안은 지난 금요일 공개되었다.

헌재가 내놓은 답안만이 유일한 정답일 수는 없다. 예컨대 나는 여전히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이 파면사유로 인정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의 어느 친구는 어떤 탄핵 사안도 대통령 궐위를 가져올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친구는 간통죄 처벌 위헌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어쩌면 모든 정치공동체의 공적 결정이 이런 과정일지 모른다. 의견은 갈리고 ‘팩트’는 흐리며, 갈등은 항존하는 곳에서, 승리자가 있으면 패배자의 눈물이 반드시 있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그 친구가 오늘의 불만을 뒤로하고 내일의 토론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정치공동체가 도달한 결론을 존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이며 언젠가 생각이 일치하는 장면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소 요건이라 생각한다.

정치인 박근혜에게 결정적으로 결여됐던 것은 이러한 다원주의적 가치들의 공존을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들을 푸는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 있고, 나의 답보다 더 나은 답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을 찾아 나가는 토론과 설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과서 국정화를, 사드 배치를, 개성공단 폐쇄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고는, 다른 목소리와 다른 해답들의 가능성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정치인 박근혜는 스스로가 항상 올바른 편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유일 가치와 위배되는 모든 사람과 세력들을 적으로 간주하였다. 어제의 적이 얼마든지 내일의 동지가 될 수도 있으며, 작은 것을 양보하면 큰 것이 돌아온다는 사실도 믿지 않았다. 다른 가치와 신념들을 배척하였고, 야당을, 여당의 대부분을, 의회를, 그리고 국민의 대부분을, 이제는 검찰과 헌재를 끊임없이 배제하고 적으로 간주하였다. 한 정당 분파의 지도자로서는 일관된 신념을 지닌 것처럼 보였겠지만,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으로서는 심각한 결격사유였다. 이상은 사인(私人) 박근혜의 사익추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한국 정치의 근본적 비극은 이러한 1970년대의 정치적 DNA가 아직까지도 전승되면서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을 끊임없이 감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답이 두 개 이상이라는 것을 당신은 인정할 수 있는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누구든 민주공화국에 설 자리는 없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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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 등 5개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이 밝힌 기존 8개 혐의를 더하면 총 13개에 이른다.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그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훼손 등 박 대통령 탄핵 사유는 이로써 더욱 분명해졌다. 특검 수사의 최대 성과는 박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특검은 433억원의 성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공권력과 국가 기구를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원활한 합병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대가라고 못 박았다. 헌법재판관 출신으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핵심인 이동흡 변호사는 “삼성 관련 소추 사유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입증되지 않는 이상 파면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법원은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대통령 등이 시킨 대로 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을 동원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뇌물죄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죄를 훨씬 무겁게 묻는다. 박 대통령은 삼성 뇌물만으로 탄핵감이라 할 수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열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수사 결과 대국민 보고’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기남 기자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연설문이나 인사 자료를 유출해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특검 수사로 더 많은 범죄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의 마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외에 외교부까지 뻗쳤다. 최씨는 미얀마 공적개발원조사업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내정된 인사까지 밀어내고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와 김인식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을 앉혔다. 청와대 의료시스템이 붕괴 상태였던 것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최씨 소개로 불법 의료업자들로부터 시술을 받고 공식 자문의가 아닌 김영재씨로부터 ‘비선 진료’를 받았다. 일급 기밀인 대통령의 혈액 등 건강 관련 정보가 새나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의식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관여하고, 최씨 민원을 받아 KEB하나은행의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도 확인됐다. 청와대 지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극우 단체에 지원해 ‘관제 데모’를 유도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이렇게 남용했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민낯도 드러났다. 황 대행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이 이뤄지도록 특검팀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거꾸로 나왔다. 특검의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를 공표해야 했다. 그래야 특검이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대행은 알량한 법 지식을 이용해 결정을 미루면서 국회와 특검을 능멸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황 대행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특검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주말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 덕분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을 뿌리뽑지 않고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특검 수사팀의 의지도 작용했다. 청와대는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의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헌재가 판단할 일이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어제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75.7%와 73.3%다. 탄핵심판 선고가 일주일 안으로 다가왔다. 헌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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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는 뿌리가 깊다. 고조선의 팔조법금에도 명시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간통을 저지른 자는 장형(杖刑) 80대, 유부녀는 90대를 쳤다. 그런 간통죄가 1990년 헌법재판소 테이블에 처음 올랐다. 6 대 3 합헌. 시기상조라는 취지였다. 그리고 2015년 2 대 7 위헌.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이유였다. 고조선부터 2100년간 건재했던 간통죄는 헌재 심판 5차례 만에 사라졌다.      

법은 진리가 아니다. 절대 불변도 아니다. 진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은 진리다. 법은 세월에 따라, 사회 변화에 따라 개정되고 폐지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헌재는 법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곳이다. 1988년 창립 이래 29년간 헌법적 가치를 판가름하며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호주제, 동성동본 금혼, 혼인빙자 간음죄, 제대군인 가산점, 영화 사전검열제를 없앴다. 헌법이 우리 사회의 근본 규범이라면 헌재는 그 근본을 지키는 기둥이다. 그래서 헌재는 매년 국가기관 중 신뢰도 평가 1위를 차지해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 70여개 국가 중 가장 성공한 모델이다. 지금 헌재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직 헌재 재판관에게 물어봤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3월7일 (출처: 경향신문DB)

- 재판관들의 심적 부담이 대단하겠다.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재판관들은 자부심과 사명감, 용기를 갖고 있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 탄핵 평의와 평결은 어떻게 진행되나.

“먼저 법률 위배가 있는지를 따진다. 위법이 있다면 그것이 탄핵당할 만큼 잘못한 것인가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한다.”

-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한다는 뜻은.

“헌재는 여론조사기관이 아니다. 오늘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일 어떻게 될 것인가까지 폭넓게 본다는 뜻이다.”

- 개인의 정치성향이나 지명자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영향을 미치나.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 양심엔 개인의 소신도 담겨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 추천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고, 애초에 그런 성향의 인물을 추천하는 것이다.”

- 평결은 어떻게 나올 것 같나.

“그런 질문이라면 전화 끊겠다.”

박근혜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박근혜와 멀어졌다는 점이다. 당 대표나 후보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대부분이 등을 돌렸다. 박근혜를 알면 알수록 그렇게 된다고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대변인 출신 전여옥은 말했다. 멍청한 사람의 최고의 도피처는 침묵이다. 박근혜의 침묵은 가장 효율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었다. 어쩌다 한마디 할 때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서민 주거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선 “그런데 근저당권이 뭔가요”, 복지 대책 회의에선 “왜 복지 재원을 세금을 거둬서 하나요. 국가 재정으로 해결해야죠”라고 했다. 세금이 국가 재정이다. 박근혜 후보 시절 경제 과외교사였던 김종인은 “(박 후보는) 뭘 알고서 말하는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저녁 여섯시면 정치인 박근혜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완벽한 미지의 세계에 있었다고 의원들은 말했다.

“당 대표 시절 어느 비행기를 타든 박 대표의 좌석은 정해져 있었다. 비행기 맨 왼쪽 앞좌석 창가였다. 그런데 언제나 그 옆자리를 비워놨다. 옆에 누가 앉는 것을 싫어해서라고 했다.”(전여옥 <오만과 무능>)

박근혜 정치의 키워드는 시혜(施惠)였다. 그는 스스로를 공주나 여왕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행위를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지자는 그를 불쌍하다고 대통령으로 뽑아줬다. 불쌍한 건 국민이었다. 박근혜는 무능하고 오만했다. 그에게 청와대는 ‘나의 집’이었고, 대한민국은 ‘나의 나라’였다. 박근혜의 공적으로 남을 단 하나는 그와 함께 ‘박정희 패러다임’도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극우 이념으로 똘똘 뭉친 김기춘류(類), 권력의 뒤에서 단물만 빨아먹은 최태민류의 부패세력은 이참에 함께 쓸려 나갈 것이다. 국정농단을 가능케 했던 50년 기득권 체제에 금이 쩍 가고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탄핵 심판 결과가 어찌 나올 것 같냐고. 헌재 재판관들은 시대를 항해하는 항법사다. 8 대 0, 만장일치로 혼란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믿는다. 저항하는 수구세력의 입을 막고, 모욕당한 태극기를 되찾고, 무너진 정의를 세우리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탄핵 전과 후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굿바이 박근혜.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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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그날 윤영철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출입기자단의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정례 기자간담회인데 몇 달 전에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전에 서초동 검찰 기자실에서 TV로 중계되는 국회 상황을 보면서 설마 탄핵안이 통과될까 했다. 앞서 많은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결과가 나온 터다. 야당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리를 하겠는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곤 헌재가 있는 재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라디오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어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태의 담당이 정치부 기자들에게서 헌재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들에게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아뿔싸. 탄핵안은 전날에도 통과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날도 그냥 넘어가려니 하는 생각에 기사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헌재소장 기자간담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4주년인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17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과 레드카드를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 무슨 기구한 팔자인지. 헌재 출입기자 때 겪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담당 사회부장이 돼 또 맡고 있다. 당시와 지금은 같은 대통령 탄핵 정국이지만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당시는 지금처럼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심판정에서 대리인단이 재판부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없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과에 승복 못하겠다는 억지는 없었다. 당시도 광화문 일대 등에서는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헌재 정문 앞에서는 탄핵 찬반 1인 시위가 이어졌지만 지금처럼 ‘빨갱이를 죽이자’느니 ‘군대여 일어나라’느니 같은 비이성적 구호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태들보다 당시와 지금을 본질적으로 차별 짓는 것은 누가 대통령 탄핵을 이끄는가다. 당시는 국회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 야당이 탄핵을 주도했다. 반면 이번 탄핵은 야당 등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초반 야당은 대통령 탄핵 주장을 꺼내는 데 주저했다. 여소야대이긴 하지만 야당은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탄핵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몰락했던 ‘흑역사’도 의식했으리라. 그러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탄핵 촉구 함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야당은 탄핵안을 발의했고, 여당에서조차 찬성표가 대거 나오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탄핵을 헌재 손에 넘긴 것은 국회가 아니라 시민들이다.

2004년 헌재는 탄핵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가 발표한 51쪽짜리 결정문에 담긴 기각 사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에서 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신임투표를 받겠다고 한 것은 공직선거법이나 헌법을 위배한 것은 맞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까진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헌재는 50일 동안 진행된 7차례의 변론과 여러 증거 자료,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각종 서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배경엔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탄핵 반대 여론은 지금의 탄핵 찬성 여론만큼 높았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중 치러진 17대 총선 결과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선 결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전보다 103석이나 많은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137석이던 의석이 12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탄핵안 발의를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61석이 9석으로 줄어들며 완전히 망했다. 압도적인 국민들의 뜻을 목격한 법조계나 정치권에서는 탄핵심판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 박근혜 대통령 측은 지금 여론 돌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한민국 인구의 10분의 1인 500만명이 모였다느니, 탄핵 찬반 의견이 5 대 5가 됐다느니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탄핵 찬성 응답이 77%이고, 반대는 18%였다. 탄핵심판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치다.

헌재는 이번에도 81일 동안 진행된 17차례의 변론과 여러 증거 자료,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각종 서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지난 주말은 유난히 햇살이 좋았다. 봄은 성큼 다가왔고, 탄핵심판 선고도 며칠 남지 않았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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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보면 심심찮게 태극기를 발견한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옆 상무대에 모셔 놓은 희생자의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광주시민은 왜 태극기를 들었을까. 먼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항쟁이었다. 또 걸핏하면 정적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군사정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의 예상대로 신군부는 고정간첩이 선동하고,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개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극기는 광주시민들이 정체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인상 깊은 사진도 있다.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양손을 들고 다탄두 최루탄이 쏟아지는 도로를 뛰는 사진이다. 독재에 대항해 태극기를 든다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로의 변화, 국가 정체성의 변화 요구였다.

민주화 이후 시위 현장에서 태극기는 사라졌다. 왜?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엄하며, 전체를 위한 부속품이 아니라는 거였다. 국기가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할 필요도 없었다. 하여 3·1절, 광복절 같은 국경일, 국제적 스포츠 경기가 아니면 태극기를 들 일이 별로 없었다.

보수단체인 태극기행동본부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개최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서울광장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시위대에는 노인이 많다. 이들에게도 태극기는 역시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내보이는 존재 증명일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고, 어떤 이들은 사우디 같은 건설현장에도 다녀왔다. 심지어 ‘미국의 전쟁’이었던 베트남에 파병됐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타국에서 총과 삽까지 들었다고 자부하던 이들을 자극한 것은 대통령 탄핵으로 자신들이 세운 대한민국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성조기를 들고나온 이유는?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반공과 친미로 다져왔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가 1947년  미 군정 고위 한국인 관료 115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1명만이 항일 운동과 관련 있고 나머지는 일본 강점기 때 관료, 군인 등이었다. 정통성이 취약한 친일파들은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를 내면화했다. 군사정권은 인권을 유린했고, 반대자들을 탄압했지만 세습 왕조국가나 다름없는 북한보다는 낫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강화하면서 반공과 친미는 보수의 종교가 됐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박 대통령이 2015년 3월 중동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공항에서 병원으로 곧바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찾아 병문안했던 것은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근대화는 국가주의에서 민주주의적 개인화로의 이행을 뜻한다. 근대화는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다원적이다. 한데 한국의 근대화는 오로지 산업화만을 중시해왔다. ‘조국 근대화’를 내건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꾀했고, 반근대적이었지만 보수에게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들은 오로지 성장만이 중요하고, 재벌이 곧 경제이며, 경제만 좋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 속에 살아왔다. 탄핵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이런 사고에서 나온다. 이런 한국의 근대화를 김덕영은 ‘환원근대’라고 했다.  또 극단적인 친미주의를 추구하며 미국과의 강박적인 분리불안을 나타내는 한국을 ‘콤플렉스 국가’라고 비판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를 듣고 국기에 배례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사랑이라고 치켜세운 박 대통령은 국가주의즉, 전근대의 상징이다. 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것은 인권·세계평화·민주주의 등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호소이다. 태극기·성조기 시위대의 눈에는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인(私人)에게 넘기고, 재벌을 압박해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반헌법적 행위가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 탄핵은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일 수 있다. 이번 탄핵은 개인의 고난사를 넘어 그동안 사회적 나침반을 제대로 설정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국가와 동맹을 맺었던 재벌은 특혜를 받아왔다. 안타깝게도 국가는 산업역군이라 자부하는 노인들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들은 산업화의 짙은 그늘에 놓였지만 집단을 위한 희생을 애국으로 각인해왔다. 국가주의 신화 속에서 ‘조국을 위해 일했다’는 신념을 재확인하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에 태극기를 움켜쥔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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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었다. 선열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꼭 9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에선 3·1정신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촛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불공정·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 촛불민심은 국치(國恥) 주범들의 단죄만 요구한 게 아니다. 촛불집회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심판을 계기로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헌법을 유린한 피의자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탄핵 반대 집회를 이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 박근혜 구하기에 나선 수구세력들이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해서 ‘태극기집회’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제98주년 3·1절인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거대한 경찰 차벽으로 나뉜 두 집회가 각각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집회(오른쪽)와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장의 두 집회는 보수와 진보, 여와 야의 이념이나 진영의 대결이 아니다. 촛불이 이뤄낸 탄핵을 사회개혁, 국가개조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광장에서 만났을 뿐이다. 가치의 충돌도 아니다. 미래의 대립도 아니다. 촛불은 무너진 민주공화국을 복원하고 시민주권시대를 열자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탄핵 반대가, 보호하고 지킬 가치일 수는 없다. 촛불은 구체제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자는 미래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다.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란 협박과 선동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것이 본질이다. 보수세력이 기계적 중립이란 허울 아래 탄핵 촉구와 반대, 촛불과 태극기가 경쟁하고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촛불을 폄훼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고, 친박계 의원들이 탄핵 불복을 공언하고 나선 건 탄핵 이후, 대선 이후에도 보수층을 결집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자구(自救)의 몸부림이다. 한술 더 떠 박 대통령은 3·1절 집회를 하루 앞두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탄핵 반대 맞불을 키워 지지층을 모으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작태다.

매주 이어지는 두 집회를 놓고 걱정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걱정할 것 없다. 대다수 시민들은 알고 있다. 탄핵이 인용되면 반대 세력의 반발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수구세력의 반동과 퇴행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과 외환위기 속에서도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뤄냈다. 박 대통령 탄핵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헌법과 정의와 역사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누구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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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열차가 종착역 코앞에서 덜컹거리고 있다. 열차를 막아선 것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이다. 그들은 탄핵사유를 확인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부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와 특검 등 국가기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문제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탄핵을 피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헌정질서 파괴와 국정농단 혐의로 탄핵심판 중인 대통령이 또다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막장드라마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탄핵 이전보다 탄핵 이후 발생한 탄핵 사유가 더 중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법률대리인인 김평우 변호사의 변을 보자. “친구 하나 잘못 두신 죄로 그 깨끗한 이름을 잃으시고 탄핵소추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끝까지 의연하게 대통령의 품위를 잃지 않고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신 박근혜 대통령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김 변호사의 저서 <탄핵을 탄핵한다>의 서문) 현직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특검수사와 탄핵심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국회가 죄 없는 대통령을 직무 정지시키고 청와대에 가둬놓고 탄핵하려 한다”고 모략하는 그에게서 대한변협 회장을 지낸 원로 변호사의 경륜과 자존심은 찾을 길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8명의 재판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불출석한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 이동흡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또 다른 대통령 대리인 서석구 변호사의 기행도 만만찮다. 그는 “촛불집회는 김정은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박 대통령의 부정한 기업 청탁 수용에 대해 “백성의 하소연을 소홀히 말라는 육영수 여사의 유언을 지킨 것”이라는 황당한 지론을 편다. 헌재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몸에 감고 퍼포먼스를 하는 그가 한때 “대구·경북지역이 수구로 회귀하면 안된다”고 부르짖던 인권변호사요, 부산지역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에서 소신 판결을 내린 양심판사였다니 믿기 어렵다. 단순히 시간이 그를 비루하게 변모시킨 것이라면 더 이상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는 누리꾼 댓글에 공감한다. 

이들은 플라톤의 ‘원시적 정의론’을 신봉하는 듯하다. 플라톤은 <국가론>의 첫머리에서 “동지들에게는 선을, 적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것이 정의다”라고 썼다. 21세기 원로 엘리트의 윤리 의식이 기원전 40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여당도 국론 분열 대열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언행은 단순한 정치적 의견 표출을 넘어 탄핵반대 시민들의 논리와 행동강령으로 거듭난다. 정치적 공황에 빠진 보수층 사이에서 헌재 결정 불복과 내란 선동 발언이 끝없이 재생산되고 내면화·신념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들이 김평우·서석구로 변모한 결과는 보수 사회의 광범위한 광기화, 파쇼화로 이어진다.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 살인과 테러를 주창하는 섬뜩한 글들이 넘쳐나는 이유를 알겠다.

일반 시민사회와 소규모 공동체에서도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낭자하다. 학부모 모임 밴드가 몸에 태극기 두른 사진을 올린 엄마 때문에 문을 닫고, 탄핵 찬반 논란 탓에 “고교 동문 카톡방이 디비지는” 사태가 속출한다. 한 보수성향 커뮤니티에는 “태극기 집회에 못 나가게 하는 자식과 관계를 끊었다”는 60대의 글도 올라왔다. 이른바 ‘태극기 부모’와 ‘촛불 자녀’의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평우 변호사의 내란 선동 발언을 무작정 내칠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어제 헌재 마지막 변론에서조차 탄핵 사유를 모조리 부인했다. 수많은 증거와 정황들을 반박하는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변론 연장만 주장하는 태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종료 30초를 남긴 축구 경기를 뚜렷한 이유 없이 30분 더 연장하자고 떼쓰는 식이다. 헌재 판결이 2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발언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이 “어떤 상황이 오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현 시국은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만큼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예방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행복해했다. 법이 작동하고 정의가 통하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아니라도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역할마저 외면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공식적인 탄핵심판 결과 승복 선언이 시급하다. 대권주자들에게만 요구할 게 아니다. 과열된 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재 판결 승복을 촉구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번에는 박 대통령 차례다. 박 대통령이 한 번만이라도 법치 수호의 책무자로서 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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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특검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수사기간 30일 연장을 요청하고, 야 4당까지 원내대표 회동에서 연장 승인을 요구한 상황에서 한국당만 홀로 반대 당론을 정한 것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당론 채택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심판 이후에도 특검을 계속하는 것은 대선 정국에 특검 수사를 이용한다는 대선용 정치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8일로 종료되는) 특검의 연장은 전적으로 황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새 특검법을 통해서라도 기간을 연장하려는 야당의 발을 묶겠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특검 수사기간 연장 여부는 그것이 수사에 필요한지를 최우선으로 놓고 따져야 한다. 그런데 수사기간이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특검이 특검법에 기재된 수사 대상을 모두 다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검은 지난 두 달 가까이 많은 진실을 밝혀냈지만 드러내야 할 진실이 아직도 많다. 엊그제 청와대 비서관이 미르재단 설립과 모금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삼성을 제외한 대기업의 뇌물제공 등은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다. 특검 수사가 충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한 데 이어 특검의 대면조사도 회피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측 증인들은 온갖 방법으로 진실을 덮고 있다. 황 권한대행도 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특검 연장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어제도 그는 “특검 연장에 대해 추가로 밝힐 입장이 없다”며 특검 연장 결정을 미뤘다. 시민을 우롱하는 태도와 다름없다.

자유한국당이 특검 연장 반대를 당론으로 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 수사가 계속되면 대선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실 규명보다 당파적 이익을 앞세우는 몰염치한 행위다. 한국당 의원들은 연일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애국폭동” “계엄령 선포”와 같은 반사회적인 구호를 외치고 있다. 탄핵 민심에 반성하는 듯하더니 ‘친박 새누리당’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반사회적인 언동을 하는 수구·친박 단체들의 지지라도 붙잡으려는 모습이 가련하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힐 기회가 이번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방조해 나라를 어지럽혀 놓고 그 진실을 가리는 일마저 방해하겠다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한국당은 특검 수사기간 연장 반대 당론을 당장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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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동흡 변호사가 어제 열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 “대통령 행위가 부정부패나 국가 이익을 명백히 해치는 행위가 아니므로 삼성 관련 소추 사유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입증되지 않는 이상 파면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지난달 법원에서 기각된 것을 박 대통령 탄핵 기각 근거로 삼고, 만약 특검이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또다시 기각될 경우 이를 탄핵 불가 논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구속 수사 필요성’에 관한 판단이다.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특검 수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3차 변론. 박 대통령측 대리인단에 합류한 이동흡 전 헌재 재판관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뇌물 혐의는 박 대통령의 탄핵 사유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서 삼성 외에 다른 재벌·대기업으로부터도 돈을 챙기고 특혜를 주는 등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다.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 및 인사·정책자료를 유출하고 최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자 등을 임명·해임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위반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상황 파악 노력을 하지 않고 숙소인 관저에 머물면서 혼자 밥을 먹고 머리를 손질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국민생명 보호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탄핵안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여론조작용 관제데모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런 사안 하나하나가 모두 탄핵감이지만 이 변호사 등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반 사유로 제시한 ‘명백하게 국익을 해하는 활동’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 침해’ 등 5개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항목은 당시 헌재가 예시를 든 것이다. 언제 헌재가 측근의 국정농단이나 국민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등이 탄핵 사유가 아니라고 밝힌 적이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이 변호사는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됐으나 특정업무경비 사적 유용 등의 의혹이 불거져 낙마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도덕적 기준이 일반인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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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어제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꿔 새 출발을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을 쇄신한다며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지 5년 만에 다시 문패를 바꿔 달았다. 비선 실세와 함께 국정을 문란케 해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박 대통령과 선긋기를 하면서 당 쇄신을 강조했다. 이정현 전 대표가 장기간 사퇴를 거부해 지탄을 받은 것을 의식, 당 대표 및 선출직 최고위원에 대한 당원소환제도도 도입했다.

그런데 여당이자 원내 제2당의 새 출발을 선언했으면 시민들이 주목해야 할 터인데 영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그동안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하는 양을 보면 과연 시민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는지 의심이 든다. 진정 쇄신하고자 한다면 당명과 당헌을 바꿀 게 아니라 친박세력부터 청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친박 핵심인 윤상현·조원진 의원과 과거 당 지도부 인사들이 탄핵반대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해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친박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당 전체가 탄핵반대 쪽으로 되돌아가는 형국이다. 당명을 바꾸고 새 출발을 선언하는 날 김진태, 최교일 의원 등 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특검 수사를 짜맞추기라고 비판하고 국회의 탄핵 절차에 제동을 걸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이날 질서 있는 퇴진론으로 박 대통령을 비호하고 나선 것도 쇄신이 겉치레임을 입증한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할 것 같으니 탄핵당한 정당이라는 비판만이라도 면해보겠다는 꼼수다. 종북 타령에 터무니없는 위기론 조장으로 생명 연장을 꾀하는 모습도 구태 그대로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함께 당을 하다 쪼개진 바른정당을 향해 박 대통령 탄핵에 책임이 있으면서 없는 척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그럴 자격이 없다. 이들은 지금까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의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을 한마디도 비판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해 제명 등 중징계를 할 듯하더니 탈당 여부를 일임해 면죄부를 줬다. 촛불민심을 거스르는 박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어떻게 민심을 받든다고, 쇄신한다고 외칠 수 있는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자유한국당이 오늘부터 지방을 돌며 반성투어에 나선다지만 천막당사가 사기극이었던 것처럼 이 역시 믿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사죄와 친박세력 청산이 없는 한 자유한국당의 쇄신은 신장개업 눈속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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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애먼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설인 지난 28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박사모’ 회원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는 손태극기 2개를 든 채 몸을 던졌고, 태극기에는 ‘탄핵가결 헌재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모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 유족을 상대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스님이 박 대통령 체포 등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은 박 대통령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조씨의 투신에는 설 직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거대한 산”이라며 허위 내용으로 극우 언론인과 인터뷰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박사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대통령직 유지를 국가 수호와 연계하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인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 박근혜 정부가 중도에 해체되더라도 주권자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세우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며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임계치에 이르렀다. 설 연휴 모처럼 일가 친척이 모인 자리의 대화 주제도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와 나라 걱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는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수구 보수층을 내세워 재기를 모색해보려는 꼼수에 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고, 헌재는 탄핵 결정을 앞당겨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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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도 훼방을 놓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고소했다. 자중해야 할 피의자가 수사 주체를 고소해 처벌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 향후 특검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순실씨도 막무가내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검의 소환 통보를 6차례나 거부해 수감 중인 최씨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물가와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와 나랏빚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탄핵 국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나라 바깥도 어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전 세계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헌재가 일단 내달 1일 김 전 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을 심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헌재의 최종 결론은 8명의 재판관이 내리게 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오는 31일 퇴임한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8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 조건이 변해 박 대통령은 그만큼 유리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걸 노렸을 것이다. 헌재는 무책임한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선고 일정 등을 가능한 한 일찍 알려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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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년간 유엔 수장으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어제 귀국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메시지를 통해 “부의 양극화,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다. 수많은 지지 인파 속에서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된다”며 국가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포부와 각오도 밝혔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무대를 누빈 한국인에게 시민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향후 5개월 안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짧은 기간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했지만 국내 정치에는 문외한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현안을 접하지 않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와 그 배경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 것이다. 당장 그에게 이에 관한 해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반 전 총장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맞는 한국적 상황은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투표장에서까지 ‘깜깜이 선거’를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의 미래 비전과 이를 구현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반 전 총장의 인기는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막연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어제 부의 불평등과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을 헐뜯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게 권력의지라면 저는 권력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 신인으로서 기존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지만, 기성 정치 비판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구성원들간 분출하는 갈등을 조직하고 조정하고 또 해소하기 위해 타협과 설득, 협상을 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을 통해 민심을 수렴하고 선거를 매개로 책임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반 전 총장에게 현실 정치, 특히 정당 경험이 없는 것은 예사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그는 지난달 “국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이 무슨 소용인가. 동교동, 상도동, 비박, 친박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정당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특정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뭉치자는 논의의 중심에 반 전 총장이 서 있다. 정당은 경시하면서 정당 간 연대를 통해 당선되겠다는 생각은 이율배반이다.

그의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도 검증 대상이다. 이리저리 눈치만 본 역대 최악의 총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험담인지,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에는 왜 부응하지 못했는지 등을 냉정히 따져야 한다. 게다가 개인 비리 의혹까지 불거져 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수수한 의혹은 물론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가 뇌물 공여 혐의로 미국 연방법원에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은 (박연차씨 의혹에) “왜 내 이름이 등장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부인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한 유엔총회 결의에 대한 질문에도 “왜 명백한 사안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제제기가) 정당하지 않다”고 거부감을 표출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을 거치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시민들의 검증 욕구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을 정치공세로 치부할 게 아니라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 경제와 민생, 안보 문제 등이 한꺼번에 겹친 총체적 위기에서 치러진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기간도 짧고 인수위원회 활동도 없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후보들의 비전과 철학, 정책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또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 함께할 정당은 물론 함께 집권할 통일된 정치 집단도, 집권 구상도 아직 없는 반 전 총장이 짧은 기간에 대통령 자격을 입증하는 일은 그 자신의 성공 여부를 떠나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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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모든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친일·독재를 미화해 폐기해야 마땅할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제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을 부른 것은 검정 절차 탓이라는 지적이 있어 심사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와 함께 중·고교에서 쓰일 검정 역사교과서가 집필기준에 미달하면 검정 심사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큰 틀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도록 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로 만들려는 얄팍한 속셈을 드러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고, 박정희·이승만 관련 내용과 북한의 도발 사례를 대폭 늘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지 않는 검정 역사교과서는 탈락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출판사가 심사본을 제출하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출판사들로서는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탈락하면 교과서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정 역사교과서 필진이 자기 검열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를 개연성이 높다. 검정 역사교과서가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검정 혼용 방침에 따라 검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자신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 부정이자 무원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2015년 8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교육부 위탁으로 역사 교수와 중·고교 교사 13명이 참여해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어 공청회까지 거쳤다. 하지만 국정화 고시가 발표되면서 해당 집필기준은 시안으로만 남아있다.

시민에게 탄핵당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려볼 요량으로 꼼수만 쓰고 있는 교육부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교육부는 시대착오적인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박근혜표 국정교과서’에 부역해온 잘못을 속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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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주민 주권은 하나의 가결과 다른 하나의 부결을 받아낸다. 정의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12월9일 가결되었다. 20일 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는 ‘설악산천연보호구역 내외 설악산 오색 삭도 설치 건’을 만장일치로 부결시킨다. 위 두 사건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비로소 부결되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열망한 시민의 위대한 힘은 ‘박근혜 환경 적폐’를 바로잡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추진과 폐기 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문화재위원은 천연보호구역에 미치는 야생동물의 서식환경 악화, 외래종의 침입 가능성, 정류장 설치에 따른 지질 훼손,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우려하였다. 심의에 참여한 문화재위원 10명 전원 부결을 의결한다. 이는 1965년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지정 근거나 1982년 오색과 중청봉 등 3구간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불가’ 결정을 내린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양양군의 세 번째 시도는 과거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부결 때와 사뭇 달랐다. 박 대통령, 전경련과 문체부가 직접 관여하였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2014년 6월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와 승마공원을 포함한 산지 관광 활성화 방안을 제안한다. 그해 8월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을 발표한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종 문체부 2차관은 9월 이후 4차례, 환경부와 양양군이 참여하는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 10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현장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조기 추진하라”고 직접 지시한다. 양양군은 2015년 4월에 3차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고, 환경부는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그해 8월28일에 조건부 승인으로 통과시킨다. 산악 관광을 명분으로 정치와 재벌은 설악산 케이블카를 밀어붙였고 행정부는 절차를 밟았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부정한 정치와 재벌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해서는 안될 사업’이다. 천연보호구역, 국립공원,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각종 보호구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 그래서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했다. 설악산의 빗장을 열고 케이블카 도미노, 산지 난개발을 시작하겠다는 것. 관광과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몇 남지 않은 보호구역 핵심지역과 야생의 생명을 처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난 5년 동안, 설악산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비극을 여실히 경험하였다. 정치와 재벌의 부정한 결탁이 그 이유다. 가습기 살균제 책임자는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도체 백혈병 사업장은 사상 최대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단 며칠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베어버린 가리왕산 10만그루 나무들, 한겨울 상시 녹조를 만들어낸 4대강 사업, 지진의 위험에도 가동되는 핵발전소와 늘어나는 석탄화력도 마찬가지다. 안전 대신 위험, 사람 대신 돈을 선택한 부조리한 정치권력이다.

정치와 재벌의 부정한 결탁이 지금 여기, 민주주의와 생명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세대의 능력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현세대의 부정한 욕망을 채우는 ‘박근혜 환경 적폐’는 정리되어야 한다. 세월호 1000일의 눈물은 멈춰야 한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취소가 그 시작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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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측이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변론에서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촛불’은 민심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서석구 변호사는 “광화문 대규모 촛불집회를 주도한 곳은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인데, 이를 주도한 곳은 민주노총”이라고 언급한 후 “민주노총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이석기를 석방하라고 행진하는 것을 볼 때 민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명령에 따라 남조선 인민이 횃불을 들었다’고 했다”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은 촛불민심에 색깔론을 덧씌우면 탄핵을 모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대통령이 정경유착 비리를 저지르고 비선의 국정농단을 부추겨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에 대한 시민의 비판을 북의 지령 때문이라니 그가 국가 지도자이기는커녕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시민 모독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다. 박 대통령은 또 서 변호사의 입을 빌려 “소크라테스도 사형됐고,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면서 자신을 박해받은 성인들에 비유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6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수사 기록을 증거로 쓰면 안된다는 주장도 했다. 서 변호사는 “박 대통령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이었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이영렬 지검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많은 인사혜택을 받고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다.

박 대통령 측은 박영수 특검팀에도 딴지를 걸었다. 야당이 특검을 추천해 정치적 중립성에 위반된다는 논리지만 박 대통령의 불법행위가 증거로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을 지연하기 위한 꼼수도 부렸다. 증인신문이 예정됐던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헌재는 이들이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국회 청문회 출석을 기피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쓰던 방식과 닮은꼴이다. 헌재의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와 당위성은 이미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헌재가 신속히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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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다. “그들이 온다!”고 하면 비상이 걸렸다. 인권위 건물을 점거무대로 삼은 장애인들이었다. 칼날 같은 주장과 거친 몸싸움에 엘리베이터를 점거하고 밤샘농성도 불사했다.

왜 저럴까?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더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 과격하면 거부감만 더 커진다는 것을 왜 모를까? 그런 선입견이 작동하면 그들의 울부짖음의 내용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나중에 하나하나 살펴보니 구구절절 옳지 않은 주장이 없었다. “장애인도 공부하고 싶다.” “제발 지하철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하라.” “규율이 지배하는 시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우리도 사람이다. 1급, 2급으로 등급 매기지 마라.”

주장은 과격하지 않았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것에 불과했다. 장애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눈감고 귀 막은 비장애인에게 있었다. 존중받지 못하니 목청이 높아지고 차츰 분노가 쌓이며 쇳소리가 날 수밖에.

들어주고 만나주지 않으니 행동은 더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혹 아는가?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스 바퀴 밑으로 몸을 던진 뒤에야 휠체어로 오르내릴 수 있는 저상버스가 이 땅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장도리]2017년 1월 2일 (출처: 경향신문DB)

광장의 일렁이는 촛불과 함께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희망을 염원하던 사람들은 이제 촛불을 들고 탄핵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촛불혁명의 목표는 정권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광장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혹자는 재벌개혁을, 누군가는 특권과 부패 척결을, 어떤 이는 갑질과 학벌주의와 남성중심사회의 청산을 주장한다. 나는 평등과 정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구체제와 낡은 질서 대신에 들어서야 할 사회의 중심적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중에 인권위를 찾아오던 장애인들이 자꾸 떠올랐다. 탄핵과 정권교체를 외치던 광장의 사람들은 탈시설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에도 한목소리를 낼까? 터무니없는 임금과 비인격적 대우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거나 처우 수준을 높이자고 하면 받아들일까? 인종차별을 견디며 온갖 허드렛일을 감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민을 허용하자고 하면 어떨까? 성소수자를 차별·혐오하는 대신 존중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그 밖에도 많다. 미혼모와 노숙인과 독거노인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신용불량자와 난민에게도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중대한 국면에 부딪힐 때면 흔히 간과되는 것이 소수자와 약자의 문제다. 소수자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나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단결이 우선이고 분열되어서는 안되니 우선 좀 참으라고 한다.

상황은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훨씬 더 나빠진다.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뛰는 자들에게 소수자의 목소리는 간과되고 묵살된다. 그래서 소수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된다.

한국의 인권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론 염려스럽다. 자신의 인권에 대해서는 민감성이 드높아졌지만 이웃의 인권 침해나 차별에는 무심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가 아니니 소수자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권침해의 경사에 놓인 바위는 멈추지 않고 굴러떨어진다. 소수자를 위협하던 인권침해는 곧 나의 인권을 위협한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소수자이고 약자이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 중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한 마리의 양 이야기가 있다. 목자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 얼핏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흔아홉 마리의 양 입장에서 한번 보자. 언젠가 길 잃은 양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신뢰하게 되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를 믿고 따르지 않을까?

소수자와 약자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곁가지로 사소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우선적으로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인권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은 따뜻한 연대를 통해 비로소 충만해진다.

촛불광장은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로 채워져야 한다. 작은 목소리를 내도록 격려하고, 광장에 나오지 않는 소리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촛불이 되고, 서로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이리라.

문경란 |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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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어제 1년을 맞았다. 한·일 양국은 지난 1년간 화해·치유재단 출범, 지원금 10억엔 출연 등 합의 이행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어제도 변함없이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린 것이 그 증표다. 

한·일 양국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합의의 동기가 잘못된 데서 기인한다. 중대한 인권침해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일관계 개선 차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니 합의의 의미나 내용보다 ‘2015년 내 타결’ 등 합의 시기를 더 중시하는 해괴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사죄와 반성을 합의문에 담았으나 전쟁범죄나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10억엔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약속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1년을 맞은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올해 별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이런 위안부 문제 합의가 전쟁 시에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표준에 부합할 리가 없다. 실제로 합의는 분명한 사실 인정과 직접적 사죄 표명, 법적 배상금 지급, 재발방지 등의 국제 표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포함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합의 도출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었다.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을 지니는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 절차도 밟지 않았다. 합의내용이 문서화되지 않고 양국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형태로 발표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양국 정부가 이런 부실투성이 합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합의 후 고자세로 돌아서 “강제성이 없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할머니들 마음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누가 봐도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할 수 없는 태도이다. 한국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사업 예산을 삭감했다. 위안부 백서 발간도 백지화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개별 지급하는 것이 과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지 묻고 싶다.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위안부 합의는 당장 무효화하는 게 맞다. 여론도 합의 무효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국가 간 협상의 결과물이어서 되돌리기 어렵다지만 국회 비준 회부 등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전에라도 합의 무효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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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전국적으로 70만명이 모인 9차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대통령 퇴진’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심판 진행을 통한 ‘조기 탄핵’을 외치는 국민들의 함성이 높았다.

헌재의 탄핵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첫째, 대통령의 ‘즉각 퇴진’은 대다수 국민들의 일관된 민심이다. 국회의 탄핵소추 직전에 ‘국회가 여야 합의로 퇴진 일정을 정해주면 거기에 따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일부 정치권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국민들은 미동도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 스스로의 하야가 됐건, 헌재에 의한 파면결정이 됐건 박근혜 대통령과는 함께할 수 없음을 일관되게 밝혀오고 있는 것이다. 헌재가 행사하는 헌법재판권도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 원리에 의해 주권자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헌정을 중단시킨 대통령에 대한 ‘즉각 퇴진’ 요구는 즉흥적이고 가변적인 여론이 아니지 않은가. 주권자 국민들이 상당기간 일관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민심이다. 헌재에서는 이러한 민심을 잘 살펴 신속한 탄핵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국익을 위해서도 신속한 탄핵결정이 꼭 필요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한 국정수행은 임시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안으로는 경기 침체로 경제위기가 도래하고 있고 밖으로는 미·중·러의 대립과 북핵 문제로 여러 외교·국방상의 현안들이 쌓여가고 있다. 새 대통령을 뽑아 적극적인 국정수행으로 이러한 국내외의 위기들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비정상적인 권한대행 체제로 아까운 시간들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지난 22일에 헌재에선 제1차 준비절차기일이 열렸다. 3명의 수명 헌법재판관들은 5번이나 ‘신속한 진행’을 강조했다고 한다. 문제는 대통령 측의 태도다. 대리인단을 통해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답변서에서 13가지 탄핵소추 사유 전부에 대해 부인하고 철저한 사실조사를 요구했다고 한다. 탄핵심판을 사실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형사재판처럼 끌고 가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끝까지 민심과 국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 헌법재판의 하나이면서 ‘파면’을 통해 일종의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은 징역형 등의 형사처벌을 통해 형사책임을 묻는 형사재판과 그 심판절차에 있어서도 같을 수 없다. 징역과 같은 형사처벌을 내리는 형사재판에서는 징역 몇 년으로 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사실조사를 통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엄격한 혐의 입증이 필요하지만, ‘파면’이라는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에서는 그 정도로 철저한 사실조사와 혐의 입증이 필요 없다. 개략적인 사실조사를 통해 13가지 중 어느 하나의 탄핵소추 사유에서라도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지위에서 국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신임을 박탈할 정도의 위헌 혹은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바로 파면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형사상 유무죄를 가리는 철저한 사실조사는 탄핵인용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그 후 기소돼 형사재판에 넘겨졌을 때 하면 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을 하고, 형사재판은 법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헌재의 탄핵결정은 1월 말 박한철 소장의 퇴임 전까지 내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한대행에게는 헌재소장이나 헌법재판관과 같은 중요한 인사를 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1월 말 박 소장 퇴임, 3월 중순 이정미 재판관 퇴임 후의 후임자 선출은 당분간 어렵다고 봐야 한다. 9명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있을 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서두르면 충분히 가능하다.

특검도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불응하면 진실규명을 위해 강제수사도 가능하다. 헌법 84조가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재직 중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은 ‘기소’ 면제의 특권이다. 기소 이전의 수사단계에서 특검이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영장을 신청해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국회의 탄핵소추의결로 권한행사가 정지된 대통령은 직무수행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형사상 특권이 적용되어야 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 자체가 없는데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형사상 특권을 보장해주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재의 파면결정에 추가적인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지금 국민들이 헌재를 향해 외치고 있다. ‘지체된 탄핵결정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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