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그날 윤영철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출입기자단의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정례 기자간담회인데 몇 달 전에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전에 서초동 검찰 기자실에서 TV로 중계되는 국회 상황을 보면서 설마 탄핵안이 통과될까 했다. 앞서 많은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결과가 나온 터다. 야당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리를 하겠는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곤 헌재가 있는 재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라디오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어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태의 담당이 정치부 기자들에게서 헌재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들에게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아뿔싸. 탄핵안은 전날에도 통과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날도 그냥 넘어가려니 하는 생각에 기사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헌재소장 기자간담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4주년인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17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과 레드카드를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 무슨 기구한 팔자인지. 헌재 출입기자 때 겪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담당 사회부장이 돼 또 맡고 있다. 당시와 지금은 같은 대통령 탄핵 정국이지만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당시는 지금처럼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심판정에서 대리인단이 재판부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없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과에 승복 못하겠다는 억지는 없었다. 당시도 광화문 일대 등에서는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헌재 정문 앞에서는 탄핵 찬반 1인 시위가 이어졌지만 지금처럼 ‘빨갱이를 죽이자’느니 ‘군대여 일어나라’느니 같은 비이성적 구호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태들보다 당시와 지금을 본질적으로 차별 짓는 것은 누가 대통령 탄핵을 이끄는가다. 당시는 국회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 야당이 탄핵을 주도했다. 반면 이번 탄핵은 야당 등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초반 야당은 대통령 탄핵 주장을 꺼내는 데 주저했다. 여소야대이긴 하지만 야당은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탄핵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몰락했던 ‘흑역사’도 의식했으리라. 그러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탄핵 촉구 함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야당은 탄핵안을 발의했고, 여당에서조차 찬성표가 대거 나오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탄핵을 헌재 손에 넘긴 것은 국회가 아니라 시민들이다.

2004년 헌재는 탄핵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가 발표한 51쪽짜리 결정문에 담긴 기각 사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에서 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신임투표를 받겠다고 한 것은 공직선거법이나 헌법을 위배한 것은 맞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까진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헌재는 50일 동안 진행된 7차례의 변론과 여러 증거 자료,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각종 서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배경엔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탄핵 반대 여론은 지금의 탄핵 찬성 여론만큼 높았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중 치러진 17대 총선 결과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선 결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전보다 103석이나 많은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137석이던 의석이 12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탄핵안 발의를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61석이 9석으로 줄어들며 완전히 망했다. 압도적인 국민들의 뜻을 목격한 법조계나 정치권에서는 탄핵심판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 박근혜 대통령 측은 지금 여론 돌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한민국 인구의 10분의 1인 500만명이 모였다느니, 탄핵 찬반 의견이 5 대 5가 됐다느니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탄핵 찬성 응답이 77%이고, 반대는 18%였다. 탄핵심판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치다.

헌재는 이번에도 81일 동안 진행된 17차례의 변론과 여러 증거 자료,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각종 서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지난 주말은 유난히 햇살이 좋았다. 봄은 성큼 다가왔고, 탄핵심판 선고도 며칠 남지 않았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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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째 아내는 발뒤꿈치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했다. 족저근막염이라고 진단이 나왔는데 집에서도 발바닥이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해 좀이 쑤시던 아내가 내게 따져 물었다. “100만 촛불이니 230만 촛불이니 하지만 거리에 나간 촛불만 세는 건 아니라고 봐. 광화문에 나가진 못해도 마음속에 촛불을 켜는 나 같은 사람들은 왜 빼놓는 건데.”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집, 가게, 공장에서 타오른 ‘국민 촛불’까지 염두에 두면 숫자는 무의미해진다.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촛불의 방향에 대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지역 민회를 구성하자는 움직임도 있고,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도입을 내세우는 쪽도 있다. 촛불 시민혁명의 역사적인 의의를 짚는 토론도 시작됐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물줄기로 모일 것으로 보인다. 촛불로 응집된 민심을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모순과 부조리까지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촛불은 비정형이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이번 촛불을 ‘녹색 촛불’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시종일관 유지된 비폭력과 집회 후 쓰레기를 청소하는 시민들의 배려심 때문만은 아니다. 녹색은 독점과 배제, 뻔뻔함과 거짓, 오만과 독단과 상극을 이룬다.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정경유착에 분노하는 촛불, 국민이 공화국의 주인임을 밝히는 촛불은 그 자체로 생태적이다. 촛불은 스스로 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힌다. 100만분의 1이라도 되겠다고 추위에도 아이들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바로 그 모습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과 휴대전화로 빛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이 녹색인 이유는 더 있다. 그건 광장 바깥에서 켜졌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촛불을 보면 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전국 최악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지역인 충남 당진에서 켜진 촛불이다. 지난 5일 시민들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민투표를 ‘기업 이익을 위해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등한시한 채 몇 푼의 가산금으로 지역을 분열시키고 주민을 현혹하는 정부의 불통행정에 맞선 주민자치운동’으로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촛불은 재작년과 작년에 연이어 진행된 삼척과 영덕의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 켜졌던 촛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또 다른 녹색 촛불은 지난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켜졌다. 장병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가결한 것이다. 법률안은 “전기판매사업자는 발전원별로 전력을 구매하는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경제성, 환경 및 국민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전력시장은 그동안 연료비가 가장 싼 발전소부터 가동하는 경제급전 방식에 따라 원전, 석탄, LNG 순으로 발전소를 가동해 왔다.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안전성이나 미세먼지 등 환경영향에 눈감아 온 부조리한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게 된다.

국회에 켜진 녹색 촛불은 또 있다. 지난달 14일 홍영표 의원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획기적인 감축을 위한 ‘미세먼지 대책 4대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석탄발전설비의 발전량을 국내 총발전량의 30% 이내로 제한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단연 눈에 띈다. 현재 40%가 넘는 석탄발전 비중을 낮춰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촛불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커 보여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는 광장에서 촛불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광장이 빈다 해도 쓸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 켜진 수천만개의 녹색 촛불이 있으니 말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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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탄핵안 표결에 임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이 요청한 ‘내년 4월 퇴진·6월 조기대선 실시’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탄핵이 아닌 자진 사퇴로 마무리하고 싶지만, 탄핵이 되더라도 헌재에서 법리를 다투면서 버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두 사람이 전한 면담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은 이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3차 담화에서 밝힌 ‘임기 단축을 포함한 퇴진’ 방침에서 ‘내년 4월 퇴진·6월 대선’으로 시점만 조금 더 구체화했을 뿐이다. 국정농단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는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어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초래된 국정혼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포괄적인 책임만 인정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이 정상적 국정 수행이며, 나머지는 비선인 최순실씨의 개인적인 비리라고 우겨온 태도 그대로다. 측근들이 모두 박 대통령 지시를 받고 범법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는데도 나홀로 법을 지켰다고 우기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탄핵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역풍이 무서워 국민 앞에 나서 담화를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놀라운 것은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통해 끝까지 승부를 가리겠다는 발상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탄핵이 가결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당에서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법리 다툼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검찰 수사는 왜 거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헌재에서 법리 논쟁을 벌이겠다고 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는 즉시 자신이 약속한 ‘4월 퇴진 수용’ 방침도 폐기하겠다는 말이다. ‘4월 퇴진’ 수용은 정말 사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탄핵을 피하려는 술책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박 대통령을 면담한 새누리당 지도부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은 마찬가지다. 역풍이 무서워 4차 대국민담화조차 직접 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대표와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 얼굴이 수척하다느니, 당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을 조장했다. 탄핵을 막지 못했다는 오명을 피하려는 여당 지도부와 여당 의원의 탄핵 참여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대통령의 합작품이 이날 면담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시종 꼼수로 대응하다 민심에 의해 이미 탄핵당하고 이제 국회에서마저 탄핵당할 차례다. 이쯤 되면 즉각 퇴진하는 게 상식인데 끝까지 반전을 꾀하고 있다. 탄핵을 앞두고 친정인 여당에 마지막 호소를 하는 자리에서까지 시민을 향해 해볼 테면 해보자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정상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탄핵안이 가결되어도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버틸 경우 그 혼란상은 불 보듯 뻔하다. “밤낮 없이 나라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정작 나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탄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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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대부분 의원들은 입장을 천명했지만, 유독 새누리당 초·재선 80여명의 표심만 안갯속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권력 재편은 물론 이후 국회 재구성까지 이들 손에 달린 형국이다. 여당 초·재선 의원들이 방관하지 말고 책임있게 행동하고 시민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이유다. 탄핵소추안은 야 3당과 무소속 의원 등 171명 명의로 발의됐다. 나머지 새누리당 의원 128명 가운데 비주류 30여명은 탄핵에 찬성하고 있다. 지도부와 친박계 30여명은 반대를 천명하고 있다. 나머지 60여명은 침묵하거나, “고민 중”이라며 답변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익명의 그늘 뒤에 숨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제만 해도 232만명이 전국 67곳에서 촛불을 들고나와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여당 초·재선들이 탄핵안 처리 요구에 답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통령의 범죄는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파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탄핵소추안에 적시된 대통령 범죄에 동조 혹은 묵인하느냐, 반대하고 처벌토록 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판단을 내리고 답해야 한다. 다선 의원들은 파당의 핵심이 돼 있고, 공복으로서 의무보다 정치적 이득에 몰두해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한다.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초·재선들이 나서야 엉킨 매듭을 풀 수 있다. 부끄럽지 않은 보수정당으로의 변모도 때가 덜 낀 초·재선이 주도할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 의원이 복종할 대상은 공천장을 준 옛 당 대표도 아니고, 좌충우돌하는 현 당 대표도 아니며, 청와대에서 뭘 하는지 모르는 대통령 박근혜 개인도 아니다. 좁게는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 넓게는 시민 전체를 위해 복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시민들이 지금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9일 국회에서 탄핵안 처리가 무산됐을 때 후폭풍이 어디로 불지 자명하다. 촛불은 국회, 당사, 지역구 사무실로 옮아갈 것이다. 이미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말한 김진태 의원 지역구에서 촛불·트랙터 시위가 열렸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광장에서 촛불을 켠 고등학생들은 21대 총선에서 생애 첫 투표를 한다. 이들은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당신은 3년 반 전 탄핵소추 때 무엇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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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가 어디서 공개된 거예요?”(나경원) “페이스북인지 뭔지….”(박인숙)

‘민중의소리’에 따르면 지난 2일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에서 박인숙 의원은 나경원 의원에게 이런 푸념을 늘어놨다. ‘탄핵에 찬성하라’는 문자메시지가 하루에 300통 이상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단이 된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말투가 인상적이다.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으로부터 시작됐다. 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장을 탄핵 반대, 눈치보기/주저, 찬성으로 나눠 실명 게재했다. 이어 한 시민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명단과 탄핵 찬반 여부, 과거 이력과 휴대전화 번호를 구글스프레트시트로 정리해 공개했고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에 확산됐다.곧바로 의원들의 휴대전화는 불을 뿜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 수백 건에 문자메시지가 1000건이 넘게 쌓였다. 의원들은 ‘카톡 감옥’에 불려가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새누리당 의원들을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초대해 ‘박근혜 탄핵하세요. 창피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의원들은 곧 퇴장했지만 다시 초대해 ‘답변하라’고 다그쳤다.

새누리당은 휴대전화 번호 유출을 수사의뢰했다. 새누리당 민경욱 의원은 표 의원을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하이테크는 좋고 편리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혁명이 떠올랐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의원들은 ‘불편’하겠지만 시민들은 ‘좋고 편리한’ 게 아닐지. 표 의원은 명단 공개 후 “의원님들이 개별적으로 입장을 변경 표시해 달라고 요구를 주셨다”고 말했다. ‘하이테크’가 만들어낸 직접 민주주의의 풍경이다. 한 시민은 표 의원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자기들은 선거 때 무차별 문자 보내면서 당해보니 싫대요? 똥물을 퍼붓고 싶은 심정인데, 문자나 보내며 참고 있는 걸 모르나 보죠??”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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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뻔한 잔수에 야당이 걸려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다. “진퇴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는 이간책에 주도권을 다투는 형국이다. 무능에 욕심이 더해진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대통령 임기 단축 협상 불가, 2일 탄핵안 국회 처리’ 등을 합의한 바 있다. 합의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불협화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어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만나 박 대통령 사퇴 문제를 논의했다. 추 대표는 내년 1월 말, 김 전 대표는 4월30일 퇴진을 각각 주장했다. 양자 회동 소식이 전해지자 공동보조를 맞춰온 국민의당이 반발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탄핵을 발의하자고 주장하던 추 대표가 내년 1월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왜 이렇게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2일 탄핵안 국회 처리 요구에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비박의 협력이 먼저”라며 거부했다.

야당은 시민이 경계했던 바대로 행보하고 있다. 탄핵이냐 퇴진이냐, 언제 시행하나, 거국내각 구성과 개헌은 어떻게 하느냐 등으로 여야, 야야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였다. 추 대표는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및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추진하는 등 돌출 행동으로 ‘추키호테(추미애 + 돈키호테)’라는 별칭을 얻은 터다. 이번에도 ‘탄핵 연대’에 상처를 주면서 “추미애판 최순실이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당 반응도 문제 해결보다는 제1야당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일정 조율을 위한 야 3당 대표 회동 장소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대표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결국 야당 이견으로 2일 탄핵안 처리는 불발되고 마침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만일 박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나서 내년 4월 퇴진과 개헌을 천명하면, 탄핵 결의는 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그간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한 게 뭐냐”고 비난받아왔다. 언론과 시민이 차려놓은 ‘국정농단 사건’ 밥상에 수저만 들고와 배를 불렸기 때문이다. 탄핵이라는 설거지라도 제대로 하라는 게 시민 요구인데, 그조차 못하고 있다.

이제 야당은 다른 일체의 행동을 멈추고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 처리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할 일은 단 하나, 빈틈없는 공조다. 그래야만 새누리당 ‘비박’도 탄핵 대오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이것조차 못한다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청와대 앞이 아니라 야당 당사 앞에 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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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후 탄핵 처리 기류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야 3당 대표는 어제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을 거부하고, 탄핵안을 예정대로 2일 또는 9일에 처리하기로 재확인했다. 그러나 탄핵안 처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일부가 탄핵에서 돌아서는 등 내부에서 견해가 갈리고 있다. 상당수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을 지켜본 뒤 9일 탄핵 처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2일 탄핵안 처리는 어려워지고 일부에선 9일 탄핵안 가결마저 장담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3차 대국민 담화에서 “국회가 정한 일정과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민규 기자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교묘한 사퇴 선언으로 탄핵 대오 흔들기를 시도했지만, 절대다수 시민의 탄핵 민심은 미동도 없다. 박 대통령의 꼼수 정치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오히려 평일 촛불집회 참석자가 늘었다. 여야는 시민들의 확고한 의지를 대표해 탄핵안을 가결해야 마땅하다. 특히 야 3당은 탄탄한 공조로 탄핵안을 마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꾀하는 여당 지도부에 여당 의원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가령 세월호 침몰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은 탄핵 사유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될 것이다. 7시간의 진상은 향후 국정조사나 특별검사 수사를 통해서도 밝힐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탄핵 사유와 논리를 세우고 후속 일정까지 짜는 등 빈틈없는 탄핵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탄핵의 가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새누리당 의원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박 대통령의 자진 퇴진 의사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여기서 탄핵 대오에서 이탈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박 대통령은 민주국가의 기본 질서를 파괴한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계속 거짓 변명과 꼼수로 난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 비주류가 그동안의 실책도 모자라 또다시 박 대통령과 친박 주류의 설득에 놀아난다면 시민의 매서운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들은 지금 박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막지 못한 채 수구의 길을 걸어온 새누리당이 과연 건강한 보수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탄핵안 처리에 비주류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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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