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노동운동의 지도자이자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유진 뎁스는 미국인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설령 그럴 능력이 있더라도 여러분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을 그곳으로 이끌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여러분을 그곳에서 끌고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뎁스가 살아서 촛불집회를 본다면 자신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느낄 법도 하다. 그만큼 시민들은 특정한 정치 지도자나 정당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강력한 정국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게 했다. 아직 확고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상황도 극히 유동적이지만, 주권자가 직접 나서서 기성 정치권이 나라의 새 기틀을 세우도록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혁명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혁명이라 부르는 사건은 4·19혁명뿐이다. 물론 이 용어에 부정적인 이들도 아직 많고, 현행 헌법 전문도 ‘4·19 민주이념’이라는 표현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4·19는 결코 ‘의거’나 ‘봉기’에 머물지 않은 위대한 ‘미완의 혁명’이며,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경험을 거치며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학자들은 뚜렷한 이념, 조직된 주체, 폭력적 권력 교체 등의 기준에 비춰 촛불집회에 혁명의 개념 적용을 꺼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론은 현실을 뒤따라오는 법이다. 이화여대생의 끈질긴 농성 투쟁이 운동권의 관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음을 되돌아보라. 머지않을 미래에 정치적 변화가 고비를 넘는 순간, 이 땅이 새로운 정치이론의 탄생지가 될 수도 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4월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4·19가 터진 다음달에 그는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기도’) 우리의 혁명을 끝까지 이룩하자고 노래했다. 그처럼 소박한 성취라면 그저 자연발생적인 봉기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4월의 혁명성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동시에, 민중 역량의 취약함과 혁명을 훼방 놓을 세력의 건재함을 직시했다. 그런 복합적 인식 위에서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육법전서와 혁명’)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머지않아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면 이후 60일 안에 치러질 대선에서 새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다. 숨 가쁜 정치 일정 속에 시민혁명의 방향타를 주권자로부터 가로채려는 술수와 공작이 더 거세질 것이며, 야당들의 동요와 과욕이 부른 실책도 이어질 것이다. 그런 방해물들에 역사의 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시민들은 대선 이전에라도 결선투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를 바꾸고 검찰, 언론, 재벌 개혁을 서두르라고 외치는 중이다. 또한 권력 분점에 눈이 먼 졸속 개헌이 아닌 긴 안목의 차분한 개헌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이 민심에 충실한지를 가늠할 시금석 하나는 김수영의 깊은 인식과 한 몸인 살아 있는 언어 감각을 보여주느냐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의 헌정파괴에는 명백히 사법적 처벌 대상인 ‘공범’이 많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공범에 준하는 자들을 ‘부역자’라고 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한국전쟁기의 참혹한 대립을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는 우리 편이 아니면 곧 적이요, 적은 처단 대상일 뿐이라는 흑백논리에 오염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대선주자가 말한 ‘국가 대청소’는 성급한 어휘 선택이며, 촛불집회의 자유발언에서 시민들이 거듭 강조한 ‘우리 안의 최순실’에 대한 성찰과 동떨어진 느낌이 짙다. 퇴행을 거듭해온 우리 사회를 갱신하려면 단지 선명한 구호가 아닌 자기갱신의 비전을 담은 창조적 언어, 혁명의 언어가 필요하다.

급박한 변혁의 시기는 언어를 둘러싼 싸움의 나날이기도 하다. 농단, 탄핵, 인용 등 어려운 한자어가 빈번하게 쓰이는 시국에 ‘키친 캐비닛’ 같은 낯선 외국어가 오용되기도 한다. 세월호 희생자 중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9명의 실종자를 ‘미수습자’로 바꿔 부르게 한 사연을 정치권은 깊이 되새겨야 한다. 광장 안팎을 가득 메우는 자신의 실천이 혁명인지 아닌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촛불시민의 당당한 자세야말로 새로운 언어와 정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미 대선 과정에서 나온 도널드 트럼프의 대외정책 관련 발언의 요지는 ‘오바마의 정책은 안 한다(Anything but Obama)’로 요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중국이 북핵문제를 풀 수 있는데 전혀 안 도와준다’고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고강도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향후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바마 정부의 ‘중국 역할론’을 답습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트럼프 시대에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대하는 우리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트럼프 정부 초대 내각의 안보라인이 국가안보보좌관 플린, 국무장관 틸러슨, 국방장관 매티스 등 대북 강경파 인사들로 채워짐에 따라 북핵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오바마 때보다 더 강경한 대북, 대중정책이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미국 외교협회(CFR)는 북한이 5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고, 탄두의 소형화·경량화까지 달성한 것을 두고 오바마 정부의 북핵정책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트럼프의 북핵정책이 대화·협상 쪽으로 바뀌지 않으면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고, 우리는 결국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처지가 될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DB)

 

‘중국 역할론’은 무엇이 문제였나? 중국 역할론은 ‘북한 선행동론’과 함께 오바마 정부 ‘전략적 인내’ 정책의 양대 축이었다. 오바마 정부도 임기 초에는 ‘9·19 공동성명’에 따라 북핵문제를 협상으로 풀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선비핵화’를 고집하는 바람에 미국은 2010년 가을부터, 북한이 선행동(핵폐기)하도록 중국이 역할을 할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겠다는 전략을 추진했다. 협상을 통해서 성취해야 할 결과를 대화 개시의 조건으로 내건 바람에 북핵 6자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문제는 회담이 열리지 않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경량화·다종화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역할론은 북한 핵능력을 키워주었다. 중국 역할론이 북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다시 북핵문제 해결책으로 이것을 들고나오는 것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중국 역할론과 ‘1+1’ 세트로 따라붙는 북한 선행동론도 트럼프 정부의 북핵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카드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건 2005년 9월 베이징 6자회담에서 합의·발표된 9·19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다.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받아내고자 하는 것은 미·북 수교, 일·북 수교, 대북 경제지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다. 이를 남북한과 미·중·러·일이 만장일치로 합의했었다. 당시 언론들은 9·19 공동성명을 ‘북핵문제 해결의 로드맵’이라고 평가했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외교협상의 말대로 이 합의는 몇 가지 이유로 결국 이행되지 못했다.

 

한 달 후면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 미국의 북핵정책은 5개월가량 공백기가 있을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국민적 관심이 온통 헌재의 탄핵 결정에 집중되어 있어 외교안보팀이 기존의 북핵정책을 습관적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막고 싶어도 때를 놓친다. 외교안보팀은 곧 물러날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국가에 의지하는 5000만 국민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으로 북핵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야권은 권한대행만 견제할 것이 아니라 외교안보팀도 감시해야 한다.

 

북핵문제는 원리상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해결된다. 그리고 그 결정권은 현실적으로 미국에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선행동론이 아니라 미국의 선행동론에 입각해서 실마리를 풀고, 중국 역할론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에 입각해서 한국이 미국으로 하여금 그런 선행동을 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간첩이 틀림없어. 평일 아침에 흙 묻은 등산화를 신고, 허름한 배낭을 멨다. 게다가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분명 간첩이야. 저걸 어떻게 신고하지? 가다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워야겠다.’

 

1970년대가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6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도 아니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아홉 먹은 멀쩡한(?) 청년, 게다가 버스 운전사였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모는 삼화교통 333번 버스에, 어릴 적 반공 세뇌 교육으로 배운 그런 간첩 행색의 남자가 탔다. 나는 룸미러로 그자를 훔쳐보면서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파출소에 버스를 대고 얼른 뛰어가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와서 조사해 보니 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요즘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북한지령 망국촛불’이라고 쓴 팻말을 보면 내가 버스 운전할 때 간첩 신고한 것과 너무 흡사하다.

 

“도대체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 당시, 집회하는 대학생·시민들을 보고 ‘도대체 왜 집회하는 거야?’라고 궁금해했던 것보다 더 세상을 모르고 있다.

 

사실 박사모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가끔 본다. 얼마 전에 방송대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일흔 정도 돼 보이는 방송대 학생이 내 가슴에 달린 백남기 농민 추모 리본을 보더니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난 백남기 그 사람, 살아온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달고 다니는 세월호 배지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아니, 다 끝났는데 아직도 달고 다니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는 지난주에도 있었다. “아니, 대통령 7시간이 왜 그렇게 중요하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박사모들은 어릴 때 나처럼 반공교육에 세뇌된 사람들이다. 나는 다행히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리영희의 <반세기의 신화> 등 다양한 책을 보면서 세상을 배웠다. 그런데 박사모들은 그때 세뇌된 상태로, 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세상을 판단한다. 전엔 박정희, 요즘은 박근혜에게 장악돼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만 보니 그 의식은 변하지 않는다.

 

하긴 TV조선 같은 종편은 더 심하다. 2011년 12월 조선일보 기자 박은주가 TV조선 방송에 나와 박근혜를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했다. 다른 진보언론이나 인문학 책을 보지 않고 그런 방송만 보니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없고, 꼴통 보수의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보수언론이 박사모 같은 단체를 만든 주범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가 세상에 드러난 건 진보·보수언론의 합작품이었다. 박근혜 불통 정권을 일관되게 비판해온 매체는 경향신문, 한겨레이지만, 2016년 7월26일 ‘청(와대) 안종범 수석, 500억 모금 개입 의혹’ 기사로 K스포츠·미르 재단 의혹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TV조선이었다. 그리고 다시 진보언론이 국정농단한 최순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JTBC, 조선일보가 가세하면서 박근혜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끝까지 침묵하던 공영방송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박근혜 게이트를 다뤘다.

 

박사모는 헷갈린다. 박정희, 박근혜를 칭송하던 보수언론이 갑자기 박근혜가 최순실 꼭두각시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고, 탄핵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니 헷갈릴 수밖에. 그들은 정말로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를 수도 있다. 그리고 “언론은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보수언론이 갑자기 내부자에서 심판자로 바뀐 걸까? 두고 봐야 한다. 보수언론이 이전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고, 전쟁을 조장하고, 진보를 비방한다면 ‘역시 보수언론은 쓰레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박사모한테 “언론은 쓰레기”라는 칭찬을 늘 받을 수 있는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그리고 박사모들은 경향신문이나 월간 작은책 같은 진보적인 매체도 좀 읽어보시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안건모 | ‘작은책’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6년 10월에서 12월에 걸쳐 한국에서 벌어진 평화시민혁명의 의미를 지금 가늠하기에는 너무 이른지도 모르다. 일단은 잠정적 진단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국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투쟁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이끌어냄으로써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만명에서 시작한 집회는 매번 참가자가 늘어나 급기야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국에서 참여하는 초거대 집회로 발전했음에도 순조롭게 열렸다. 정말 놀랍게도 부상자, 구속자 한 명 없이 평화롭게 순항했다. 세계가 놀랐고 우리 자신도 놀랐다. 우리는 이 세기적 평화시민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가능했는지 곰곰이 헤아려야겠다. 이 진지한 점검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가 걸려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필자는 갖는다.

 

한국에서 평화시민혁명이 분출한 시점은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집권이 예정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역학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이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혹은 개입축소정책으로 재조정되려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한국의 동향을 북한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 등 관련 당사국들이 예민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수로, 배타주의로, 자국이기주의로, 인종주의로 흐르고 있지만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정의로, 화해와 공존으로, 공동체주의로 향하고 있다. 핵무장으로 자신의 생존을 찾으려는 북한은 국정파탄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집권자를 국회에서 탄핵하고 재판에 넘기는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으로 미·일 군사동맹에 한국을 편입시키려 하지만 평화시민혁명에 부닥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대북정책에서 자신에 어깃장을 놓는 박근혜 정권이 못마땅했지만 평화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의 중도하차가 분명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태도를 재조정하려 할 것이다.

 

간략하게 살펴봤지만 평화시민혁명은 남북한 분단대결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미묘한 시기에 한반도 내부와 주변에 큰 파장을 던지면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적으로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사태 때문에 지난 60년 가까이 지속된 박정희·박근혜 프레임의 모든 사고와 행태가 한국 국민으로부터 폐기되었다. 이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면서 반성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지배자의 군림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혁명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승만 이래 미국 일변도의 의존체제가 불가피하게 전환을 강요당하는 시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 그렇게 하도록 요구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 더 이상 군비확장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군사동맹을 폐기하거나 축소해가겠다고 대선 전부터 약속했다. 이 추세는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전략대화는 한반도에서의 대결보다는 힘의 균형 쪽으로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한반도에서의 평화공존, 교류번영을 추구하고 남북의 현상변경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양 대국의 이해와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핵 문제에서 이런 흐름에 함께하느냐가 관건이 되겠다. 남북의 대화·교류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은 아베 정권의 일본과 대화를 이어가되 일본의 평화운동 진영과 긴밀한 논의를 깊이 있게 나눠야 한다.

 

박근혜와 그 일파가 나라망신을 저지르고 위험에 빠뜨렸다면 평화시민혁명은 세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국격을 높였다. 평화시민혁명은 이제 한국과 한반도의 운명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 평화를 새롭게 확장하는 데 공헌하게 될 것이다. 이 위기의 지구촌에서 한국이 평화시민혁명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와 그 일파들을 극복하고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우리 시민들이 자랑스럽다.

 

이부영 |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저지레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 모양이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밥만 먹고 이야기만 들었다면 키친 캐비닛이라 한들 뭐라 하겠는가? 그런 거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무엇인가를 도모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이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키친 캐비닛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이 최근 지적했듯 ‘가족기업’이다. 최순실은 남편, 박근혜는 아내라는 얘기다. ‘재산마저도 집단 운영해온 공동운명체’라고 하니, 구태여 부른다면 ‘키친 캐비닛의 대화’가 아니라 ‘베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때는 박근혜는 구국선교단이라는 거창한 조직의 대표를 맡고 최씨네는 실질적 경영자 역할을 하는 가족기업을 운영했다. 지금 최씨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종잣돈은 이때부터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에게 명예총재를 맡긴 후부터 최씨네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을 다 냈다’는 것이 최씨네 식구로부터 나온 증언이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 실험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재단을 책임지고 있던 때에도 그들의 궤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족기업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돈을 빼돌리는 일이다. 이들은 공공재를 개인화하는 일을 능사로 알았다. 당시에 일어났던 온갖 부정이 그러했다.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던 동안 대학 경영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입학, 경리부정, 재산매각대금의 불분명한 처리 등 문제 제기가 꼬리를 물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비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최씨네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가족기업이었다. 결국 그 일로 박근혜 재단이사장은 학원민주화 과정에서 자리를 내놓았는데, 당시의 부정비리가 최근 청와대에서 일어난 것과 복사를 한 듯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농단한 것이다.

 

지난 주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살인 암투를 보여주었는데, 그 핵심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거기에서도 오랫동안 가족기업을 굴려온 최씨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구국선교단,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그리고 청와대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돈을 어떻게 빼돌렸는지를 이번 기회에 파악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일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듯하다. 그리고 가족기업을 통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은 모두 토해 내도록 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부정축재에 대해 취한 방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부정축재를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저 음험한 가족기업의 모의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분칠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앉은 곳마다 능수능란한 방법으로 돈을 빼먹어온 저 어두운 역사를 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 환수한 나랏돈은 나라에 돌려주고, 학교의 돈은 학생들을 위해 쓰도록 하고, 공익재단의 돈은 재단이 돌려받아 사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최순실이 저지른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고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에서 재차 무고를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는지는 특검이 구체적으로 증거를 확인하며 밝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반복적인 ‘영업수법’으로 미루어보아 박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리에는 전략만 있고 성찰은 없다. 물론 그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입을 앙다물고 전위를 맡고 친박이 새누리당의 스크럼을 다시 짜며 후위를 맡아 특검과 헌재 심판을 돌파할 계획으로 보이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저지른 동일수법 전과기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꼭 열흘이 지났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 퇴진이 헌법과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정·청은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과 황당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되레 탄핵민심을 짓밟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헌법 위반 5건, 법률 위반 8건의 탄핵 사유를 모두 부정했다. 나아가 “최순실 등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헌재는 충분히 사실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탄핵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헌재가 검찰과 특검에 수사자료를 요청하자 곧바로 이의신청을 낸 것 역시 명백한 지연 전략이다. 그러면서 “최순실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 “측근비리가 발생한 역대 대통령도 모두 탄핵 대상”이라는 따위의 해괴한 논리를 들고나왔다. 정유라 친구 아버지의 현대차 납품 특혜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터무니없는 변명 일색이고 시민 상식과 거리가 먼 억지 주장이다.

 

[장도리]2016년 12월 20일 (출처: 경향신문DB)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란 주장에 이르러선 차라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수차례 대국민담화를 통해 울먹이며 시민에게 용서를 구하던 위선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살고 보겠다는 ‘막가파’식 태도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원내대표에 이어 비상대책위까지 접수하려는 ‘도로 친박당’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 중이다. 친박계 추대와 지지로 뽑힌 신임 정우택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내년에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또 좌파, 색깔론 타령이다. 어제는 비대위원장을 놓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은 곤란하다”며 ‘유승민 불가론’을 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 위반과 범죄행위의 실질적 공범이고 부역자 집단이다. 대통령과 함께 친박도 탄핵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석고대죄하기는커녕 여전히 대통령을 감싸며 한 줌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니 아예 민심과 담을 쌓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정당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찬가지다. 황 대행은 연일 지위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보를 하고 있다. 황 대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임시로 과도기를 이끄는 탄핵 시기 국정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동반퇴진해야 할 총리가 속죄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마치 선출된 대통령이나 된 듯한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늦게나마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여권의 일사불란한 일련의 행태는 당·정·청이 합심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계속 정권을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보인다. 촛불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반격이 가능했던 데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야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국정농단 세력의 발호 움직임에도 우물쭈물하며 허송세월했던 게 사실이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져 시민들을 답답하게 한 바 있다.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시민의 뜻은 신속하게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야 3당은 촛불민심을 수렴해 구체제를 청산하고 시민들이 요구한 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말뿐이 아닌, 진짜 수권정당의 능력을 보여줄 때는 바로 지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선례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한다. ‘시민혁명’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지만, 과연 사태가 이런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논의를 아껴둘 필요가 있다. 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불현듯 오는 것이고 가시적인 힘들을 통해 항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밤에 지나간 배”처럼 조용히 온다. 혁명은 평소에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규정된 것들이 무한하게 분출하는 정황이기도 하다. 이런 혁명의 모양새에 비추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당장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방만 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분명 세계의 논리에 기입되어 있던 ‘혁명적 상황’이 귀환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겠다. 한때 집회가 너무 비폭력에 집착해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오르내렸지만, 비폭력이라고 해서 폭력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간디의 비폭력이 스탈린의 폭력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철학적 탐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200만명이 넘게 모인 집회가 비폭력으로 일관할 수 있었다는 것도 대단한 에너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후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민주주의의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 ‘87년체제의 합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합의가 물질적 토대로 전환된 것이 ‘대통령 직선제’이다. 군사독재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 상징적으로 지목하자면 ‘넥타이 부대’가 연일 거리를 누비면서 외쳤던 구호가 바로 대통령 직선제였다.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87년체제의 합의를 번복하려는 극우의 반동을 밀어내는 ‘체제의 반발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로 표상되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87년체제의 합의를 이행한 결과였지만, 이른바 ‘산업화세대’에 속하던 일부 극우세력은 이런 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립되어 있었다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이들에게 ‘합법적 권력’을 부여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적 선거절차였다. 여기에 박근혜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 속았다고 보수 정치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지만, 당시 그들에게 이 미스터리한 존재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동을 종결 지을 ‘능력자’로 보였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을 품을 수 있는 포퓰리즘의 아이콘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이 미스터리한 존재였다고 하겠다. 이렇게 박근혜라는 이름은 말라죽어가던 극우의 뿌리를 되살려낸 구세주의 그것이었다. 여기에 태만한 보수의 포퓰리즘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태는 극우조차도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 ‘합법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극단적 민주주의의 유물론을 보여준다. 경제만 살린다면 ‘독재자의 딸’도 국가수반에 임명할 수 있다는 이런 ‘포용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이 포용성은 그 반대에 있는 이들, 다시 말해서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상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일반 노동자를 구분하고, 정치적인 유가족과 그렇지 않은 일반 유가족을 나누고, 운동권과 일반 시민을 갈라치는 태도가 극우 보수 연합의 경우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편향성을 극복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오히려 그에 반대하는 집단에 합법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은 증명한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집권 역시 이런 민주주의의 편향성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트럼프 같은 ‘백인 쓰레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민주주의일까. 이 질문은 2012년 우리에게 던져졌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백인들처럼 그때 우리도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분명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자 했을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일본의 청년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당시 그 청년들의 행동에 십분 찬동하더라도 냉정하게 물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다. 과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그 자유민주주의에 ‘자이니치’는 포함돼 있는가. 전후 일본이 보여온 태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행동에 나서는 이들이 명징한 신념과 대의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 자체가 이념적 방향을 공고하게 만드는 쪽이라고 봐야 한다.

 

탄핵이라는 명백한 목표가 있는 지금이 지나고 나면 현재 벌어진 상황은 다시 봉합될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어떤 목표가 남게 될지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하면서 태평천하를 약속했던 보수의 의제가 10년도 가지 못하고 몰락했다. 이 칼럼 연재는 그 보수의 의제를 분석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제 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부족한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제현에게 감사드린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가 공개됐다. 탄핵 사유를 반박한 박 대통령의 논리라는 게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에 기재된 헌법 위반 혐의 자체를 모두 부인했다. 뇌물죄와 강요죄 등 각종 법률 위반 혐의는 ‘검사의 의견’이나 ‘무분별하게 남발된 언론의 폭로성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과나 반성은 일언반구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는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탄핵안의 핵심인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라고 했다. 미르재단 등은 공익사업이고, 박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한 것은 아니므로 뇌물수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관련 제3자뇌물수수죄도 부인했다. 기업의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압권은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최순실씨 딸 정유라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에 관한 답변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시야가 제한돼 있는 직업공무원들로 이뤄진 보고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국민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한 방법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인정돼 왔다”고 했다. 정몽구 회장에게 KD코퍼레이션 특혜 민원을 하는 자리에 직접 동석했으면서도 이런 식이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국민의 생명권을 등한시한 ‘세월호 7시간’에 관한 답변도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해경 등에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고 신속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했다”고 했다. 집무실로 출근하지도 않고 숙소인 사저에 틀어박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데 정상 근무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으로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긴 지 5시간, 사고 신고 8시간이 지났을 때다.

 

박 대통령은 19일부터 시작되는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결과 뒤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헌재의 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가 혼란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집권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겠다는 뜻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시민들 가슴에 또 한 번 못질을 한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지 열흘이 지났다.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연일 지위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논란이 많은 ‘박근혜표 정책’을 과도하게 밀어붙이는가 하면 대통령급 의전까지 요구하면서 야당과 갈등을 빚고 있다. 시민들은 비상시국에 황 대행 문제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황 대행의 행보를 보면 야당에 일부러 싸움을 거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인사와 정책에서 돌출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유임을 국회와 상의없이 결정하더니 임기가 끝나가는 현명관 마사회장의 후임자 임명을 강행한다고 밝혔다. 마사회장 임명이 얼마나 급하길래 이렇게 서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의 변경이 없다고 굳이 공언한 것은 적절치 않다. 대통령 탄핵에 ‘박근혜표 정책’을 중단하라는 뜻이 포함된 만큼 정책 추진을 중단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상대국과의 신의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것은 촛불민심을 거스르는 일이다. 상대국조차 정책 추진에 의구심을 드러내는데 우리가 먼저 이행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보수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보수진영의 대표인물로 부상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1차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가관인 것은 황 대행이 대통령급 의전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하면서 국회사무처장에게 의사당 밖까지 마중나와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국회는 총리를 넘어서는 의전으로 예우했다. 황 대행은 지난 3월에도 과잉 의전으로 빈축을 샀다. 공식 일정이 없는데도 관용차를 타고 서울역 KTX 열차 탑승장까지 진입하면서 탑승하기 위해 들어오는 시민들을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이러니 촛불집회에서 퇴진구호가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과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등 난제가 겹쳐 있다. 국회와 힘을 모아도 부족한 이런 판국에 대통령 대행이 야당과 각을 세우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황 대행은 야당이 제안한 국회와 정부 간 협의체 구성에 반대한 뒤 정당대표와 개별 회동을 하자고 역제의했다.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도 거부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도 비판받을 행동이다. 황 대행은 겸허한 태도로 과도기를 이끄는 ‘국정의 관리자’라는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한 장면을 펼쳐보자. 백정인 꺽정이는 양반인 덕순이와 죽이 좀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로 존대와 하대를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임꺽정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존대와 하대에 대해 논쟁이 오가던 중, 머리 깎고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 선생이 꺽정이의 성정을 좀 다스려 보려 한다. “우리말에 층하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어른 아이는 고사하고 양반이니 상사람이니 차별이 있는 바에야 말이 자연 그렇게 될 것 아닌가.”

 

계급 차별을 없애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꺽정이의 반론에 대해 병해대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응수한다. “벌써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에 차별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임꺽정이 아니다. “못쓸 차별을 없애려면 영을 내릴 사람이 있어야지요.” 설령 영을 내린다 한들 그 차별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겠는가? 그러자 결국 임꺽정은 본인의 명성에 걸맞은 대답을 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면 될 것 아니오.” 병해대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대화는 마무리된다.

 

이 대화에서 임꺽정과 병해대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 사이에 차별이 없다. 그게 바로 민주공화국의 본질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모두 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다. 차별적 특권 계급의 존재는 용인되지 않고, 모든 이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누리며 동시에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그 법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에서 만들고, 행정부에서 실행에 옮기며, 사법부를 통해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되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은 결국 동일하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결합된 법치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박근혜 게이트는 왜 문제인가? ‘민주적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믿음을 뒤흔들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가정을 깨뜨렸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 박근혜의 뒤에 ‘선출될 생각도 없었던 권력’인 최순실 일당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설령 최순실이 ‘착한 비선 실세’였다고 해도 사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은 박근혜를 뽑았지 최순실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그러므로 최순실이 기밀로 취급되는 대통령 연설을 주무르고, 온갖 인사에 개입한 것은, 그 자체가 민주공화국의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당하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복종’하는 임꺽정 같은 신분사회의 피지배계층이 아니다. 우리는 울화가 터진 꺽정이처럼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는 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헌법, 법률, 조례, 규칙 등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움직이고, 필요하다면 유권자를 대의하는 기관인 의회에서 법규를 바꾸거나 새로 만든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아니라 ‘비선 실세’의 뜻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그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그러므로 혁명이 아니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적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가 온전히 작동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민란’이나 ‘혁명’보다 급진적인 사건이다. 드디어 우리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정태 자유기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별별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한 새해 소망  (0) 2017.01.02
억울함을 넘어서  (0) 2016.12.26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0) 2016.12.19
‘혼밥 대통령’의 비극  (0) 2016.12.12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나물님’  (0) 2016.12.05
혁명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0) 2016.11.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새누리당 친박근혜계가 요즘 하는 일을 보면 그 막무가내 행태를 표현할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부른 폐족으로 자성하기는커녕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막 나가고 있다. 그제는 박 대통령을 징계하려는 당 윤리위까지 편법적으로 장악했다. 친박 일색의 최고위원회가 이진곤 윤리위원장과 사전 협의 없이 친박 성향 위원 8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기존 윤리위원 7명보다 더 많은 위원을 추가 투입해 대통령 보호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그래 놓고 “애초 윤리위 구성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꼼수와 편법도 모자라 오리발까지 내미는 처사에 할 말이 없다. 참다못한 이 위원장과 기존 위원들은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왼쪽)이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계 주류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친박처럼 몰상식한 정치 집단은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민주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 집단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의 맹목적 충성은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라는 표현이 백번 맞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강요하며 후배 정치인들을 겁박하는 서청원 의원의 조폭적 행태 역시 목불인견이다. 촛불시민의 분노를 불렀던 김진태 의원은 어제 또다시 “친박이 아무리 주홍글씨라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진 않았다. 종북 좌파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생겼다”고 했다. 국정농단 동조 세력이 순국자들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이끌었으니 탄핵으로 귀결된 것이 당연하다. 친박은 자신들의 모임 명칭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라고 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정통 보수세력으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했다. 혁신과 법치주의를 표방하다니 그 뻔뻔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친박은 16일 새 원내대표로 정우택 의원을 밀기로 어제 집단 결의했다. 탄핵을 부른 데 대한 반성은커녕 또다시 당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시민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오만한 행동이다. 신임 원내사령탑은 조만간 이정현 대표가 사퇴하면 당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하게 된다. 한 줌도 안되는 계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오염시키는 친박세력이 다시 당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 의원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친박을 지금 징치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같은 불통 정권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청와대 앞 자유발언대 트럭에 선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진주의 19살 젊음이의 명징한 정치발언, 민회나 시민평의회 논의 등을 보면 오늘의 광장은 촛불만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정동(情動)의 정치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요즘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담론화되고 있는 ‘스트리트의 사상’(모리 요시타카), 그리고 분노의 정동이 자본과 권력에 의한 ‘하이재킹 당하는’(이토 마모루) 국면과도 다르다. 타격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정치적 단죄를 이루고 아래로부터 정치사회를 구성해 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직접정치 실험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수구체제는 ‘잘살아보세’의 유신망령과 허구적 복지담론을 한국 사회가 허용한 결과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 자본축적 체제를 강화하고 민중적 삶을 보편적 피해상황으로 내몰았지만 한국 사회는 대안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아니더라도 노동자 민중과 청년실업 등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이미 사회적으로 깊을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촛불의 분노가 정유라 이화여대 입시부정이라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에서 촉발됐듯이 신자유주의적 착취구조의 모순이 정치적 주체의 신체에 각인된 가운데 촛불항거는 일시에, 그리고 순식간에 확산됐다. 따라서 국민의 95%가 지지하는 광장의 정치는 박근혜의 탄핵과 보수정권의 해체는 물론 그 정치구조와 신자유주의체제 자체의 극복을 지향한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는 전후 체제의 재편이라고 할 만큼 위기를 맞고 있다. 공황이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 고통으로 전가되면서 각지에서는 광범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 이후 국제 난민이 급증한 가운데 전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2008년 이후 불타오른 세계적인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불길과 그 정치적 조직화 사례들은 오늘 광장정치의 미래에 중요한 참조체계가 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파업과 광장의 투쟁을 거리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해 낸 중요한 실례이다. 광화문광장 투쟁을 주도하는 1500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지역시민들은 포데모스를 모델로 시민평의회 구성을 기반으로 한 방안을 헌법으로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기획을 가시화하고자 한다. 광장을 천막으로 발랄하게 점거한 예술행동진영은 국민권력 시대를 요구하며 다양한 공론장을 열고 있다. ‘성토 공간’에서는 페미니즘과 소수자 정치의 요구를 ‘사소한’ 일로 간주하는 낡은 가르침의 반복을 끊고 해방의 자리를 펼쳐내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광장의 요구를 민주노총 주도의 사회헌장으로 명시해낼 필요성도 제기됐다. 당면 투쟁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고, 대선을 매개로 한 정치적 수렴구조를 광장연대와 같은 유연한 정치형태로 실현해가고자 하는 좌파정당의 움직임도 있다. 전 국민의 95%가 함께 분노한 정치적 경험이 만들어낸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정치사회, 그것은 보다 치열한 생산적 쟁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탄핵소추안 통과 다음날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일대일로, 창의와 전 지구화의 새로운 모델’ 회의에 갔다. 광저우 사회과학원 주최로 5대륙 학자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왕샤오밍 교수는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고 수준을 넘지 않으면 일대일로는 전도를 열 수 없다고 단언했다. 나는 경제적 세계전략으로서의 일대일로의 사상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캐묻는 한편 새로운 국제질서는 다원평등한 구조가 되어야 하며, 그를 위해 주변 국가가 안고 있는 정치사회의 문제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로 중국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오늘의 광장정치가 새로운 민주정치의 경로를 열어낼 수 있다면 관계의 전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백원담 | 성공회대 교수·국제문화연구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를 두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지난 9일 권한대행이 된 이후 그의 자세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고건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하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분을 넘어 대통령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그제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임을 국회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황 대행이) 대통령이 된 것처럼 (국회) 출석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흘리는데, 대통령 된 게 아니다”라고 꼬집은 것은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어제 보수 일색의 학계·언론계 인사들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참석자를 밝히지 않다가 뒤늦게야 마지못해 공개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권한대행답지 않은 비밀주의에 ‘반쪽 소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황 대행이 개인적 성향에 따라 국정을 이끄는 것을 넘어 정치적 위상 강화 등 또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황 권한대행에게 부여된 법적 지위와 그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오직 하나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비상시국에서 관리형 통치권자에 머물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권한대행은 국정의 틀을 새로 짜고, 방향을 정할 권한이 없다. 행정부 수반의 자리에 있지만 시민에 의해 직접 뽑힌 권력이 아니라서 권리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유일한 대의기구인 국회의 의사를 물으며 국정을 관리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에서 두 번째)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권한대행 자격으로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황 대행 체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와 대외정책의 안정적 관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갈등을 유발했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은 절대 해서 안된다.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해 박 대통령 정책도 탄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 대행은 보수정권의 취지를 이어간다는 이름 아래 박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집행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국정교과서 도입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같은 논란이 큰 사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빠지지 않도록 다잡으며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정운영의 방법에서도 관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소야대의 정치권과 소통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세균 국회의장 및 야당과의 의견 조율이 특히 긴요하다. 유 부총리 유임도 국회와 야당을 찾아 의사를 타진했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에 대한 의전을 요구하듯 국회 출석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국회에 나가 국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혹여 야당과 대립하면서 보수의 대표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면 애초에 버려야 한다. 어제 야 3당이 요구한 대로 정당 대표들과 만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 책임이 있다. 법무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선 댓글 개입을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이 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을 표적감찰로 압박해 물러나게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기사를 쓴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법적 처벌을 추진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공안적 시각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독주를 뒷받침해온 주요 인물이었으니 촛불시민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황 대행은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여당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고 돌변해 논란이 있는 정책에까지 손을 댄다면 대행의 지위를 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수개월간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모든 현안이 분출할 것이다. 이럴 때 황 권한대행이 공정한 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황 대행은 박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곧 국회의 의사를 받드는 것임을 인식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인적 욕심은 금물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도기에 국정을 떠맡은 황 대행이 자신의 문제로 새로운 갈등을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자중하기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연말이 되면 으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든 살아낸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어진다. 내년에도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한다.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나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것들’과 같은 리스트가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하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길을 지나다 초등학생 둘을 만났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책가방이 유독 무거워 보이는 아이가 입을 열었다.

“시험 망쳤어.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어.”

옆에 있는 아이가 맞장구쳤다.

“나도 자괴감 들어! 밤새워서 공부했는데, 공부한 데서 하나도 안 나왔어.”

이렇게 자괴감에 사로잡힌 아이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자괴감을 느껴야 할 대상은 정작 아무렇지 않은데 자괴감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아이들의 입에서 앞다투어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원고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괴감은 올해 하반기에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일 것이다. “이러려고 대통령 하려고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는 담화문 속 대통령의 말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러려고 주식투자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이러려고 직장인 했나 피로감 들고 괴로워”처럼 자기 자신과 관련된 토로부터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이러려고 세금 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처럼 정부를 향한 따끔한 일침까지 곳곳에서 패러디가 이루어졌다. 패러디의 끝에는 해학이 남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뒤끝은 늘 씁쓸했다.

자괴감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대통령은 이 단어를 원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하긴 담화는 본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일체의 질의응답을 허용하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고 들어가 버리지 않았는가. 나는 대통령이 담화문을 읽을 때 자괴감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움’이 아닌 ‘분노’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분명 화가 나 있었다. 자기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기저기서 칼끝을 겨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정작 자괴감을 느낀 것은 국민들이었다.

인간이 자괴감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은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 없이 어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겠는가, 자괴감을 건너지 않고 어떻게 자부심에 가닿을 수 있겠는가. 부끄러움은 다음을 기약하게 해주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이 있어야 반성을 할 수 있다. 조금 더 떳떳하고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괴감은 ‘앞으로’를 내다보는 마음이다. 대통령의 자괴감은 앞이 아닌 뒤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억울하고 화가 난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 아니면 양심에 거리낄 게 없는 사람이다. 나는 대통령의 자괴감을 인정하지 못하겠다.

국민들의 자괴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혼란스러운 정국 때문에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주말을 반납하고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자책감을 느끼고 배신감을 참을 수 없어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도 보인다. 무너지고 난 후에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힘든 상황일수록 그것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히 깨닫게 된다. 자괴감이 심화되면 심한 자책이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는 상태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다시 모였다. 역설적으로, 이 또한 우리가 자괴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음 세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우리는 촛불을 더 높이 들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우리는 입을 모아 외쳤다. 촛불이 이겼다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침묵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고. 이기는 경험을 했다는 것, 다음을 기약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다. 희망이 아직 남아 있음을 온몸으로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내가 바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괴감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다. 자괴감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성찰의 시간이다. 우리는 광장에서 작년과는 다른 우리의 존재감을 이미 재확인했다. 국민들은 자괴감을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괴감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대통령과 얼마나 다른 품격인가.

오은 | 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시민의회, 시민권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면서 이 용어에 대해 촛불 현장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문제가 된 단어는 ‘권력’이었다. 권력이 시민의 손에 있다고 하면 괜찮을까. 우리는 둘 다 시민권력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를 했다.

대중의 환호를 받고 등장한 권력이 대중의 원망을 사고 몰락해간 역사는 많다. 이는 ‘선한 권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권력 자체의 속성이 스스로를 강화하고 지배권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권력을 쥐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보면서도 권력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덧없음에 대권행보를 중지하고 물러나는 대권주자는 아직 없다.

권력의 흡인력은 무지막지해 보인다. 이전 권력의 비참한 말로가 뻔히 보이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타인에게 미치고자 하는 권력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는다.

지난 1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현대국가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겹으로 있다. 그러나 권력은 촘촘한 견제장치와 감시망도 뚫고 확대된다. 덜 나쁜 권력은 있어도 좋은 권력은 없는 걸까.

지난 주말에 청와대 100m 앞까지 갔다. 처음 가보는 통인동과 청운동. 오후 5시쯤 되었을까. 행렬이 마지막 진로에 세워진 차벽 앞에서 멈추고 돌아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인도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와글와글하는 소란이 한동안 일더니 점차 “박사모는 물러가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군중 사이로 태극기가 언뜻 보였다.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어느새 극우단체의 전유물처럼 된 지는 오래다. 태극기가 안보와 반공과 반북의 이미지로 굳어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가까이 가봤다. 소음 사이로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태극기를 든 분의 첫마디는 “문재인은 간첩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회가 해산되어야 한다고 했다.

촛불들의 선동에 놀아난 국회가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주장은 앞서 오후 2시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앞에서도 들었다. 우리도 며칠 전에 국회 해산을 놓고 설왕설래했던 터라 그들의 국회 해산 구호는 듣기가 묘했다.

박사모 회원 등으로 여겨지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촛불행사를 방해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낮에 세월호 천막 바로 앞에서 소란을 피웠는데 이렇게 행렬을 따라다니며 반대 구호를 외치는 그들이 놀라웠다.

그런데 내 우려는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황당한 구호 때문이 아니었다. 무모하게도 수천, 수만명의 촛불 행렬 사이로 들어와서 ‘깽판’을 놓고 있는 저분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촛불집회에서 폭행사태가 일어나면 안된다는 조바심이라기보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든 안위가 위협당해서는 안된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서너 명 되는 분들이 어찌나 극성스럽게 군중들과 대거리를 하는지 무슨 난리가 난 줄 알고 헬멧을 쓴 경찰들이 일렬로 군중을 헤치고 들어와서 그들을 에워쌌다. 만약의 불상사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데 꼭 그들만을 보호한다기보다 촛불 군중들을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측면도 있으리라. 이쪽저쪽을 따지지 않고 시민의 안위에 대한 보호조치를 할 정도는 되는 경찰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보수단체 회원들은 경찰이 보호막을 쳐주자 더 기세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때도 나는 군중들이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경찰들의 머리 위로 뭘 집어던지면 저들이 다칠 거라는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소란이 계속되었지만 군중들은 ‘박사모는 물러가라’는 말 외에는 어떤 위력행위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유인물이나 두꺼운 종이팻말을 던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과 같은 보폭으로 걸으면서 ‘물러가라’는 말 외에는 욕지거리도 위협도 안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권력 또는 힘이라는 것은 견제받고 통제되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제할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전희식 | 농부·‘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저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시작은 지난 대통령 선거 이틀 뒤였다. 2012년 12월21일 한진중공업 노조원 최강서가 자살했다. 이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 이운남, 한국외대 노조위원장 이호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윤주형,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 박정식의 죽음이 이어졌다. 왜 노동자들은 대선 직후 자살했을까? 노동자들 죽음의 행렬을 초래할 만큼 선거가 중요했나?

하지만 다음 선거를, 5년 뒤를 기약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지금 당장 조금의 미약한 훈풍이라도, 그 어떤 여지라도 기대했던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작 그 선거로부터 건질 것이 가장 적었던 노동자들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선거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거 국면에서 정리해고 철폐와 비정규직 폐지를 외치며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노동자들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여전히 배제된 자들인 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정치권의 외면은 결국 노동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9일,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최강서를 생각했다. 그의 유서를 생각했다.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 못하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촛불들의 이른바 ‘시민혁명’은 과연 노동과 만날 수 있을까?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을 때 조그만 기대조차 무너져 목숨을 버려야 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줄까?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그 체제의 귀퉁이에서 가장 먼저 절망했던 사람들 말이다.

단지 죽은 자들만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시민들이 다음 선거를 기다리고 있을 동안에도 이 사회의 거리거리에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박 정권하에서 가장 먼저 탄압당했고, 가장 먼저 떨쳐 일어났다. 이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되어 거리로 나섰고,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든 지 한 달 만에 쫓겨나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비슷한 처지의 11개 군소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노조파괴, 민생학살, 박 정권 퇴진을 위한 노동자 공동투쟁’을 만들었고, 박근혜 퇴진을 가장 먼저 외쳤다.

아마 박근혜 탄핵이 최종 결정되면 정치적 민주주의로 족한 사람들은 거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 거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여기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협소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담아내지 못하는 노동, 민중생존권, 반제국주의의 문제들을 두고 싸워야 하는 이들은 그다음 닥쳐올 질서잡기의 역풍을 고스란히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촛불은 최강서를 기억해줄까? 촛불 안에 있는 다양한 차이들, 특히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도 포용할 수 있을까? 촛불엔 아직 박근혜를 향한 분노 말고는 공통분모가 없다. 시민혁명이라는 거대 담론 뒤안에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그 목소리조차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있다. 이른바 시민혁명의 주체는 여전히 비어 있다. 그리고 시민혁명의 주체는 대문자 ‘시민’이 아니라 이제 다양한 사회적 주체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렇게 시민이 다양화하고 분기해서 자신들의 사회적 이해를 드러내고 그것의 연합 속에서 조직되어 ‘사회정치적 동맹’을 만들어 나갈 때, 이 사회는 단지 권력의 우두머리 하나를 교체하는 것 이상의 것들, 사회를 재편하고 헌법을 다시 쓰는, 말 그대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대통령 탄핵을 두고 “로도스가 저기다, 뛰어내려라”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가 가야 할 로도스는 아직 시계 제로다. 그 섬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가을 한국인은 참으로 위대했다. 100만, 200만명이 저마다 촛불 하나씩을 들고 몰려나와 근 두 달 동안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는 모습을 나는 프랑스 남쪽 님(Nimes)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어라…”를 외쳤던 신화를 떠올리게 하였으니, 만인의 입이면 무쇠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2016년 12월9일,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어떻게 기록할까?

돌이켜보면, 4년 전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부터 그는 좀 이상했다. TV토론에 나와 “그래서 내가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잖아요”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웬만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댓글조작 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여직원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것을 두고 “사람들이 그녀를 감금했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앉은 그는 어쩌면 지금도, 나쁜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감금돼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첫 재판관 회의가 열린 헌법재판소 앞에서 경찰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언어구사력이 극히 저조해서 논리적 사유가 불가능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스캔들이 될 거라고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급기야 그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보수’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물론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세웠던 공약들이라는 것이 ‘진보’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박정희’는 이 땅의 우상이었다.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면서 그가 저지른 온갖 만행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 18년 동안 이룩한 경제적 성과만을 내세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퇴행적 로맨티시즘이 상당수 한국인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식 개발과 7·4·7 공약을 내세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옛날에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삽을 들고 4대강을 파기 시작했다. 어떤 외신은 그런 그를 보고 “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박정희를 잊지 못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그 단세포적인 논쟁은 이제 너무나 식상하고 피곤한 것이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그것이 보혁 논쟁의 출발점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박근혜의 출현에 대하여 어떤 외신은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웃었지만 소용없었다.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따위는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정말이지 절망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땅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 낡은 우상을 사람들이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반신반인의 그 위대한 박정희의 딸’은 알고 보니 청와대 관저에서 각종 주사나 맞으면서 최순실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의혹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비서실장 김기춘은 유신시절에 박정희 밑에서 배웠던 온갖 독재적 탄압을 오늘날 버젓이 음모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놀랍고 끔찍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근혜가 탄핵심판대 위에 올랐다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던 그 지긋지긋한 우상이 통렬하게 허물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우상을 허물어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보수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차가운 사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일지 | 소설가·동덕여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중국에 불파불입(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촛불혁명은 구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불립불파(不立不破)라는 말도 있다. 건설이 없으면 파괴도 없다는 뜻이다. 구체제에 균열을 내어도 새 체제 건설에 실패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결정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음의 질문을 서둘러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가? 여러 측면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는 소위 ‘87년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87년 체제는 1987년 헌법을 제도적 기초로 하기 때문에 개헌이 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안이 체제전환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제도라는 면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체제전환의 핵심적 내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수단과 관련한 논의만이 분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제기되는 개헌론에 정치적 사심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단과 경로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체제전환의 목표와 과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개헌의 핵심내용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다. 지금의 87년 체제를 더 인간적이고 활력이 있는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수구세력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동안 절차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서구 정당정치의 모델을 한국정치에 적용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분단체제로 인해 우리의 정치현실은 서구와 다르다. 수구세력은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도 무시했고,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는 ‘광장의 정치’를 통해 극복되고 있다. 우리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광장의 정치는 정치의 낙후성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렇지만 수구세력의 통치기반에 대한 제도적·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정치적 퇴행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두 번째,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 경제영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확충은 물론이고, 재벌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시스템 건설을 공론화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재벌이 주도하는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붕괴 과정에 접어들고 있다는 조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은 우리나라의 활력을 억누르는 주요 원인이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앙으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이다. 비대한 중앙권력의 문제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 문제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연방제 수준으로 분권화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제도개선 없이는 어떤 권력구조를 택하더라도 권력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불균등·불균형 해소도 중요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 국회의원 선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 주요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통해 제도권 정치가 다양하고 폭넓은 민의를 대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87년 헌법 논의가 정치적 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의 개헌논의는 불평등·불균형 해소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세 번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및 국제 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현재처럼 남북이, 북·미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이 의제는 수구세력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민주개혁세력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수구적 노선과 태도가 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가 국민 여론 속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기들을 잘 활용하면 안보담론을 평화, 안전, 생명 담론으로 재구성해 갈 수 있다. 이 작업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새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해 재벌에 의존하거나 분단에 대해 체념하는 태도 등과 같은 구체제 중독에서 벗어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후 새누리당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내부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친박계는 그제 심야에 급히 모여 ‘혁신과 통합보수연합’ 모임을 결성하더니 연일 비박계를 공격하고 있다. 어제는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이 나서 김무성·유승민 의원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 인신공격을 했다. “배신과 배반의 아이콘인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적반하장·후안무치”라고 말했다. 온갖 전횡으로 당을 망쳐놓고도 도리어 큰소리를 치니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박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은 친박이나 비박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 무게로 따지자면 친박의 책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무겁다. 친박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이다. 사전에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으면 사후 시정에라도 적극 나섰어야 하지만 오히려 덮고 비호하는 데 급급해 오늘의 사태를 빚었다.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다 참패를 자초한 것도 친박세력이었다. 거기에 대통령 탄핵까지 초래했으면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무슨 낯으로 남을 향해 배신자 운운하는지 알 수 없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태다.

새누리당 조원진 최고위원(맨 오른쪽) 등 친박계 의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심야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박 대통령을 탄핵결의했으면 그 책임을 친박이 앞장서 지는 게 당연하다. 지도부가 총사퇴함으로써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면모를 일신해 다시 시민의 지지를 구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그런데 친박은 이런 정치의 기본조차 무시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 의원들을 대거 당선시켜 놓았다는 점만 믿고 버티기로 작정한 것이다. 친박의 이 같은 행태는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폐족이 되어 물러서면 재기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대 다수 시민을 얕잡아보는 자세다. 박 대통령이 탄핵에서 벗어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말도 나왔는데,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망발이다. 대통령의 실정을 무조건 추종하다 탄핵을 불러놓고도 같은 잘못을 계속하겠다는 발상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혁신’과 ‘통합’을 표방하는 건 시민을 바보로 아는 게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친박세력은 겉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외치고 있지만 속으론 친박이라는 정치적 파벌의 이득만 취하고 있다. 500억원이 넘는 당 재산과 보수 기득권을 지키는 게 목표이다. 알량한 의리로 포장해 파벌의 이익을 추구하는 친박의 못된 행태를 시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여전히 큰소리치는 오만방자하고 탐욕스러운 친박세력의 존재는 보수의 수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모든 문화권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숫자가 존재한다. 예로부터 동양이나 서양에선 1을 근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수로 여겼다. 2는 여러 문화권에서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수로 통했다. 중국에선 두 쌍의 부부가 같은 날 결혼하는 것을 금기시했고, 유대교 율법은 남자가 두 여자나 두 마리 개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금했다. 숫자 3을 신성시한 수메르인들은 ‘아누’ ‘엔릴’ ‘엔키’ 등 3명의 신이 하늘과 대지, 물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동양에선 4를 죽음과 저주를 의미하는 수로 여기지만 서양에선 ‘질서와 통합’을 의미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처음 4개의 수인 1, 2, 3, 4를 더하면 완전한 숫자인 10이 되고, 세상이 물·불·흙·공기라는 4원소로 구성된 것만 봐도 4는 조화로운 숫자라고 했다. 5는 인간의 오감과 깊은 연관을 맺은 숫자로 간주돼 왔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5를 ‘가장 인간적인 숫자’로 여긴 것이나 신약성서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5명의 여성이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출신 저술가 안네마리 쉼멜은 “수의 개념은 종교와 민간신앙을 자양분으로 신비주의와 마법문화의 싹을 틔웠다”고 했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에서 퇴장 1명,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퇴장-찬성-반대-무효표 숫자를 차례로 연결하면 ‘1234567’이 된다. 누리꾼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탄핵 인용, 박근혜 대통령 9(구)속, 0(영)창행을 조합하면 ‘1234567890’이 완성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의 비율도 절묘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5~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탄핵 찬성이 78.2%로 집계됐는데 이 수치를 반내림해 국회의원 총재적수(300명)를 곱하면 탄핵 찬성 의원수 234명이 나온다.

국회 탄핵안 표결에서 ‘숫자의 마법’을 가능케 했던 것은 다름아닌 시민들의 집단지성이었다. 탄핵 민심이 국회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민심과 표결 결과가 이렇게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이를 박 대통령이 평소에 했던 말에 빗대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숫자의 조합”이라고 했다. 역시 민심은 천심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