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과 국민 여론은 거듭 대통령의 하야다. 하지만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던 대통령의 정치는 완료됐으며 명예혁명과 망명을 운운했던 일각의 로망은 소멸했다. 남은 것은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다. 국회의 정치는 이제 외길로 보인다. 탄핵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대통령의 헌법과 국회의 헌법이 맞붙는 막다른 길이다. 반면 시민의 정치는 이 길과 함께 또 다른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사문화된 원칙을 되살려 엘리트 독과점 정치의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겠다는 국민혁명의 길이다.

날마다 특종과 속보와 가십성 뉴스가 홍수를 이루지만 국민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하야를 마땅하게 여기는 민심은 하야한들 지난한 탄핵으로 간들 그다음이 마땅치 못한 이 난국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직시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웠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은 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이다. 초겨울의 주말문화이자 저녁문화가 된 광장 행렬이 100만 촛불을 켜면 때맞춰 청와대 실내등이 꺼지고 경복궁과 북악산이 깜깜해지는 광경은 우연이 아니다.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교차하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국민 저마다의 간절한 ‘보디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거대한 ‘미디어 아트’다.

이 ‘국민예술’이 열망하는 국회의 정치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의 4대 국정과제를 사사로운 먹잇감으로 갈취한 ‘비선 실세’의 공범들과 이들을 공권력으로 뒷바라지한 국가 시스템의 적폐를 대청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 국회를 정당득표 연동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신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탄핵 정국을 경과하는 동안 국회의 정치가 보여줘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로 가서 차기정부가 하겠노라 공약한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민심은 안다. 51%로 당선된 대통령을 95%가 마음에서 버리게 된 국민의 자괴감은 더 이상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아니라 새 판 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집단지성의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이 점에서 민심의 향배를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못 볼 것의 끝을 끝내 보았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이 몹쓸 사태를 단숨에 정리할 방법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탄핵의 외길에서 입법, 행정, 사법, 헌법재판, 선거관리에 이르는 헌법기관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에 그 어떤 지름길도 샛길도 없음을 직시하고 국가 대개조의 가시밭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국민과 소통하며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어야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정치는 국회의 정치를 견인하되 따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100만 촛불이 부른 그 노래의 후렴구 그대로다.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소설가 부희령은 “오래오래 광장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라 믿지만 그러기 위해선 “촛불이 꺼지면 언제든지 옆 사람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강풍이 불고 한파가 와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국민과 함께 만들 공적 주체는 누구일까. 이 난국에도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헌법기관, 바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정부와 의회이며 228개 기초 지방정부와 의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경험했다. 중앙권력의 갑질 횡포에 위축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지만 주민자치를 위해 깨알같이 많은 일을 해 왔으며 특히 위기 때 국민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 되었던 공공이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 지방정부와 의회가 전국 각지에 한겨울의 촛불 민심을 환대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의 정치는 겨울밤 내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천일야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 천일야화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집필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나라를 후회 없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의 통찰대로 “허깨비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정치가 갖는 힘이자 국민혁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면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지방자치의 각양각색 정치여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6월 국민항쟁 30년이다. 그 사이에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이 원하는 바는 일곱번째 대통령을 뽑기 전에 헌법 제1조의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맘껏 꿈꾸는 일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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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내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비박근혜계 세력의 중심인 김 전 대표가 대선주자 자리를 버리면서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야 3당 의석을 모두 합쳐도 171석밖에 되지 않아 탄핵 정족수(200석) 확보에 고심해온 야당에 그의 가세는 원군이 될 것이다.

23일 새누리당 김무성 전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하지만 김 전 대표의 다짐이 썩 미덥지는 않다. 김 전 대표는 지난 4년 내내 박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방조했다. 교과서 국정화 앞장서기 등 퇴행적 행태를 보였고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는 선봉에 섰다. 그런 그가 이제 와 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니 사돈 남말 하는 격이다. 최근에는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새누리당에 있느냐. 몰랐다면 거짓말 아니냐”며 자신의 직무유기를 덮으려는 모습까지 보인 터다.

새누리당을 합리적인 보수로 개혁하겠다는 말도 생뚱맞기는 매한가지다. 수구적인 발언, 색깔론을 무수히 제기하며 정치판을 흐려온 그가 합리적 보수가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친박 세력이 새누리당의 당권을 쥐고 버티는 상황이니 그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으로는 보수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일이다. 과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시인하고 통렬히 참회하는, 분명한 자기 청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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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군중이 매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의 의회’를 열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능가하는 분노의 함성과 외침이 만추의 광화문광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권력의 사유화’로 박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통치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듯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지도자는 국가를 이끌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1974년 7월25일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른 닉슨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바버라 조던 하원의원은 “국민의 공적신뢰(public trust)를 배신한 대표는 탄핵될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대표에게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한 것이지 ‘신탁’한 것이 아니다. 대표는 주권자인 국민의 수탁자(fiduciary)가 아니라 대리인(agent)일 뿐이다. 수탁자는 피수탁자인 국민의 공익을 위해 정치권력을 행사하도록 위임받았지만, 위임받은 기간 동안 피수탁자인 국민에 대한 책임성으로부터 면제된다. 반면에 대리인으로서 대표는 주인인 국민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지도록 기속(羈束)되며, 따라서 국민의 공적신뢰를 상실한 대표는 권력을 회수당할 수 있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국민이 대리인인 대표, 특히 대통령의 권력을 회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주기적 선거를 통한 퇴출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탄핵제도를 헌법에 넣음으로써 입법부가 국민을 대리하여 공적신뢰를 상실한 대통령을 비롯해 대표들의 권력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19일 전국 60여 곳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 주최 측 추산 96만명(경찰 추산 26만여명)이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부산 서면 촛불집회(왼쪽 사진)에는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만명이 참가했다.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 새누리 해체’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오른쪽 위). 광주 집회에선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에 횃불을 켜고 열었던 ‘민주성회’가 재현됐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오는 26일 5차 촛불집회에 최대 3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은 미국식 탄핵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 65조는 대표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을 소추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 일당과 범죄를 공모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특검에 의해 추가 범법행위가 밝혀지기 이전에도 탄핵 소추를 당할 수 있다.

탄핵은 헌법에 명시된 합법적 절차이나, 현 탄핵사태가 헌정위기로 발전할 것인가의 여부는 박 대통령의 대응에 달려 있다. 여야의 탄핵 소추 시도에 대해 박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의 충실한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책임성으로부터 면제된 ‘수탁자’처럼 행동함으로써 자유 헌정주의의 기본 정신을 위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탄핵 소추에 필요한 ‘적법한 절차(due process)’를 밟는 데 협조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고, 탄핵 소추가 의결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대통령 권한 행사가 정지된 기간 동안 과도정부를 대행할 국무총리의 임명도 거부할 태세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이 하원에 의해 탄핵 소추된 것은 그의 범법행위보다도 검찰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법이 충실하게 집행되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인 제임스 매디슨은 “대통령이 헌법을 전복하려고 시도한다면 탄핵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닉슨은 헌법을 전복하려 함으로써 국민과 의회를 분노케 했고 퇴출된 후에도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이 갈수록 더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면서 최순실 사건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탄핵 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겠다는 기존의 약속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 최고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공적신뢰를 배신하였기 때문에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거리와 광장에서 분출되고 있다. 이제 거리에서 분출되고 있는 분노를 의회 대표들이 장내로, 의사당 안으로 끌어들여 처리해야 한다. 계속 ‘거리의 의회’가 ‘제도권 의사당’을 압도할 경우 국민적 분노는 통제불능 상태가 될지 모르며,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 될지 모른다. 박 대통령은 탄핵에 필요한 절차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국회와 검찰에 협조함으로써 이번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더 책임성 있는 민주주의로 전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노자는 “멈추어야 할 때와 장소를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다(知止不殆)”라고 가르쳐 주었다. 박 대통령은 이미 멈추어야 할 지점을 너무 멀리 넘어가 버려 위태롭게 되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만족해야 할 최적점을 발견하는 것이다(知足不辱). 박 대통령이 만족해야 할 최적점은 국민의 일반의사이다. 광장에서 표출되고 있는 국민적 요구에 응답하면 박 대통령은 닉슨처럼 치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임혁백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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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본격화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현재 드러난 박 대통령의 불법행위는 중대하며, 특히 국가운영을 일개 사인이 농단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이에 몇 주에 걸쳐 서울에서만 수십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국민들이 모여 박 대통령에게 퇴진하라고 요구했다.국민들은 사실상 박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박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권위와 신뢰를 모두 상실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하면서 차라리 탄핵을 하라며 시간 끌기에 나선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지금과 같이 현직 대통령을 국민들이 물러나게 한 사례로 유의미한 것은 1960년의 4·19혁명일 것이다. 4·19혁명 당시 서울에서만 10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진 끝에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4월26일 아침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국민적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한 선언이었고, 실제로는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어떻게든 대통령직을 유지하려 했다.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들이 계속되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친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 대통령의 고집을 알아챈 국회에서는 같은 날 만장일치로 ‘시국수습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서는 이 대통령의 즉시 하야, 부정선거의 재선거 등을 포함하여 당시의 시국을 정리할 간단명료한 내용이 제시되었다. 당시 국회는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대통령 하야와 시국수습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이러한 결의안은 위력을 발휘하여 이 대통령은 결국 다음날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사임하겠다는 사임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위기를 돌아보건대 국민이 사실상 대통령을 탄핵한 상황에서 국가를 수습할 중임은 국회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주권을 대리하는 기관인 만큼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질서 있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안, 곧 시국수습결의안을 작성하여 의결해야 한다. 국회에서의 이러한 결의는 4·19혁명의 전례가 있는 이상 박 대통령에게 큰 압박이 될 것이며, 잘되면 복잡한 탄핵절차 없이 국정을 수습할 계기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표를 결집시킨다면 곧바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국수습결의안은 지금의 혼란한 정국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종원 |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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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최씨 등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자료를 근거로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여러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과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추가 조사를 통해 내용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던 입장을 뒤집고 검찰의 수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지휘하는 검찰에 의해 형사범죄의 피의자로 규정된 것도 초유의 일인데 사법체계마저 거부하다니 충격적이다. 국가적 비극이자 이런 막장이 따로 없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우선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에서부터 추가 출연 강요, 최씨의 대기업 갈취,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사건 전반에 개입했다. 국가 비밀자료 유출도 드러난 것만 47건으로, 장차관 인선 검토 자료와 외교문서까지 포함돼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100%라고 말 못하겠지만 거의 99%는 저희들이 입증 가능한 부분만을 썼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범죄가 감출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이라고 한 것도 예우일 뿐, 실제 역할과 위상을 고려하면 주범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1일 (출처: 경향신문DB)

그동안 박 대통령 측은 범죄 연루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야당과 여론이 박 대통령을 상대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이 박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밝힌 만큼 이젠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부인하며 수사를 거부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고 인격 살인을 당하는 상황이 됐다”고 항변했다. 국정을 농단하고도 거짓말로 모면하려던 행동은 잊은 채 다시 피해자 시늉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지 않았다며 특검에서 무고함을 밝히는 한편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책임 유무를 가리자며 탄핵절차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기 편인 줄 알고 수사를 통해 다 밝히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검찰이 공정하지 못하다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특검법이 통과됐으니 검찰 조사는 건너뛰고 특검 조사를 받겠다는 소송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왔다고 국정 최고기구인 청와대가 한순간에 말을 뒤집고 국가 시스템을 거부한 것은 막가파식 대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의도는 검찰에서 방어에 실패하자 다시 특검과 헌법재판소에서 법리 논쟁을 하며 장기간 버티겠다는 것이다. 보수 일색으로 꾸려놓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진용을 믿고 탄핵절차로 가자는 심산인데 여론을 모르는 딱한 처사다. 95%의 시민에게 이미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 법정 투쟁에 의지해 연명하려는 모습에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에 전면 복귀하더니 엊그제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를 신설해 여론전에까지 나섰다. 범죄적 행위와 세월호 참사 무능 대응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곁가지 해명으로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다.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 당내 친박세력도 당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 국정을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국민 여론과 맞서는 꼴이다.

어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등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만나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국회에 요청했다. 여당 내에서조차 탄핵론이 나온 만큼 박 대통령이 특검의 칼날을 벗어난다 해도 탄핵은 피하기 어렵다. 그제 4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며 휘발유를 붓고 있으니 촛불이 더 크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월호 침몰 때 사라진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까지 드러나면 여론은 더 험악해질 게 뻔하다. 그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의 버티기는 한때나마 자신을 지지한 시민과 국가에 대한 배신이자 반역이다. 박 대통령이 56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보다 못한 선택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와 국민을 더 이상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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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내에 있는 야당들이 해야 할 일은 서명운동이 아니라, 어떻게든 탄핵을 성사시킬 길을 찾는 것이다. 탄핵이 눈앞으로 다가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해도 할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탄핵이 현실화될 것 같으니까 사퇴했다.

탄핵 절차로 갔을 때 우려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번째는, 국회 내에서 탄핵 소추 의결에 필요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새누리당 안에서도 탄핵 얘기가 나왔다. 이들이 탄핵에 동의하도록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 뇌물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든 퇴출명단에 올릴 준비가 국민들은 돼 있다.

두번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만약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헌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여론이 그렇다. 따라서 아무리 보수적인 헌법재판관들이라고 하더라도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탄핵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심판에 걸리는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번째는, 국회가 탄핵 소추 결의를 하게 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당들은 진작에 총리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 때문에 망설여서는 안된다. 만약 황 총리가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정을 농단하려 할 경우에는 황 총리까지 탄핵시켜야 한다.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다. 역사를 보면, 권력서열 3위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사례도 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던 때에도 권력서열 3위인 외교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었다.

네번째,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1명의 임기가 내년 1월, 3월에 각각 끝나는 문제가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최소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한데,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 자리가 새로 충원되지 않으면 그만큼 가결이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뇌물수수를 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버틸 헌법재판관이 있을까?

그래서 지금은 야당들이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하고, 탄핵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이 해야 할 몫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탄핵 절차가 시작된다고 해서 시민들은 촛불을 놓아서는 안된다. 국회나 헌재에만 맡겨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앞으로는 퇴진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12일에 이어 19일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헌법 제1조가 제대로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염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강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는 다른 국가의 헌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헌법 제1조는 입법권이 의회에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일본헌법 제1조는 천황 얘기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대한민국 임시헌법’에 뿌리를 두고, 제헌헌법으로 이어진 문구이다. 이 두 문장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응축된 문구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촛불은 헌법 제1조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제도를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시민들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며, 지방의 자치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집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다.

이 일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이 일을 맡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제1조 운동’으로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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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로 지명하는 등 개각을 발표했다. 청와대는 “정치권이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살리기 위해 참여정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 교수를 책임총리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개각에는 대통령이 사실상 2선 후퇴의 뜻을 담은 것”이라며 김 지명자가 내치를 맡고, 박 대통령은 외치를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시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 3당은 한목소리로 개각 철회를 요구했고, 여당 내에서조차 일방적 개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정이 멈춰 있다. 충격적인 사실이 끝없이 드러나면서 정부 부처들까지 일손을 놓고 있다. 북한 핵개발 등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는 물론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등 외교안보·경제·민생 등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국정 현안들이 표류하고 있다. 시민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국정 정상화 방안을 논의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자기 권력 유지에만 골몰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탄핵·퇴진을 요구하는 판국에 박 대통령이 방탄 내각을 발표한 것이다.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가 2일 오후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취재진에게 내정 소감을 밝힌 뒤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현 난국은 여야 합의로 구성한 거국중립내각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1년4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는 데다 대선이라는 변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진정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국정의 정상화를 고민했다면 독단적으로 총리를 지명하기에 앞서 여야와 함께 논의하고 합의했어야 한다. 그런데 야당은 고사하고 여당 지도부도 모르는 개각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문란을 초래한 책임을 통감한다면 이같이 중차대한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시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야당의 협력 없이는 국정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을 설득하기는커녕 야당에 공세를 취하며 역주행했다. 박 대통령의 불통·방탄 개각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때나 가능한 정치적 공세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증언으로 이번 사태의 몸통은 박 대통령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시민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이제는 박 대통령을 국정을 이끄는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 보통 시민으로서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염치없는 행위를 한 박 대통령을 누가 지도자로 존경하며 따를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에게 속고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시민의 다수가 박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고 있다. 어제 안철수·박원순 등 야당 지도자들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많은 시민들의 탄핵·퇴진 요구에도 정치 지도자나 지식인들은 국정 불안정을 걱정해 퇴진 주장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불통 개각을 밀어붙인다면 더 이상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 국정을 이끌어나갈 민주적 리더십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그가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면서 한 달이 넘도록 경제부총리를 만나지도 않고, 민생법안을 외면한다고 야당만 비판하면서 11개월 동안 정무수석비서관과 독대도 하지 않는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시민은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막다른 길에 놓여 있다. 유일한 출구는 박 대통령이 이번 개각을 즉각 철회하고, 자기가 한 일을 시민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검찰 수사를 받음으로써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정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하고 야당과 함께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이런 시민들의 바람을 그래도 저버린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불통의 자세로 권력 지키기를 위한 술수만 동원한다면 더 이상 그를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민들은 이미 마음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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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은 온 세계의 모순을 걸머진 화약고가 되어 있다. 우리는 식민지 경험에 이어 분단구조 아래에서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빛나는 민주화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보수반동 정권이 연달아 들어서서 모든 걸 뒤엎어 놓았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갈등과 분열의 양상이 온 사회에 걸쳐 짙게 깔렸다. 무엇보다 인사정책을 보면, 고위 공직자를 불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요리조리 병역을 기피하고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채웠다. 게다가 무슨 은혜를 갚는다고 해 자신의 선거캠프에 있던 사람이나 곁에서 아첨하는 인사를 골라 요직에 앉혔다. 이는 바로 족벌주의나 환관정치로 추악한 권력의 남용이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울먹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다음. 재벌에게 법인세 인하 등 온갖 특혜를 주고 노동자의 권익을 짓밟았으며 민주인사를 종북좌파로 몰아붙여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남북대화는 파탄을 가져왔으며 사드 배치 문제로 인접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를 두고 단돈 10억엔을 받고 마무리 짓는 해괴한 일도 벌였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막고 고사하게 만들었고 시민단체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마침내 ‘박근혜 게이트’(최순실 게이트는 틀린 말)가 곪아서 터졌다. 양식이라고는 한 푼 없는 무식하고 사이비종교를 받드는 최순실이라는 간악한 여인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후에서 국정을 농단하다 못해 기업인에게 강요해 비리재단을 만들고는 사유화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세기 끝 무렵, 고종과 민비는 진령군이라는 무당에게 빠져 국고를 탕진하였고 진령군은 그 위세를 업고 온갖 이권을 차지하고 재물을 갈취한 게 100여년 전에 일이다. 추악한 권력이 현대 민주정치 제도 아래에서 재현되었다.

하나 더 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지정하고 건국절을 새로 지정하려 하고 있다. 세계 민주국가에서는 교과서를 검인정이나 자유 채택제로 선택해 역사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르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국가는 현재 김일성 교조를 강요하는 북한과 종교교육에 충실한 이슬람권 국가뿐이다. 또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지정하는 건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작업이다. 왜 이러는가? 이승만 때문인가, 박정희 때문인가?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일대와 전국 여러 곳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일어나 박근혜와 최순실을 규탄하고 ‘박근혜 하야와 탄핵’을 외쳤다. 이 기세대로라면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4·19혁명, 6월항쟁이 다시 일어날 분위기이다. 오늘날 그런 사태가 일어나야 모순의 사회를 바로잡고 국가 기강을 세우며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승만은 하야하고 박정희는 살해당하고 전두환은 감옥에 가지 않았는가?

지금 여당에서는 비리에 연루된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고 대통령의 중립을 보장한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게 그 해결 방법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어림없는 해결책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중심제이므로 그 권한을 어떤 편법으로 어떻게 분산하든 박근혜 주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미봉책을 국민 정서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양식 있는 인사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말 것이다. 너무나 썩어 문드러져서 어지간한 집도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이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독재의 향수를 잊고 일대 결심을 굳혀 이 사회의 비리와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다. 편중 인사를 전면 철폐하고 양식과 청렴, 전문성과 능력을 헤아려 공직자를 임명하고 환관과 같은 간상모리배를 제거하는 기풍을 만든다. 재벌의 특혜를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소득자의 권익을 보장하며 남북의 대화 물꼬를 트고 반민주적 국정 교과서를 철폐한다. 그러고 나서 참된 민주가치가 무엇인지, 소득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처절한 성찰을 해야 한다.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마지막으로 사퇴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통령은 우리 헌법이 명시한 최고 통치자다. 통치자는 용기와 결단력과 판단력이 있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자질이 모자라면 물러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다. 하야를 선택하라. 일시의 혼란은 긴 역사에 비추어 보면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터지는 둑을 미봉으로 막으려 하다가 정작 둑이 터지고 나면 모든 게 쓸려간다. 그때는 개인도 나라도 그르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준엄한 자기 성찰과 결단이 요구된다.

루이 16세는 거대한 프랑스 혁명의 노도(怒濤)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단두대에 올라갔다. 이게 역사의 교훈이요, 심판이다.

이이화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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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멈췄다. 국민들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일을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자괴감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가지고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저지른 일은 국가의 기본을 철저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이러한 허탈감과 분노에는 여야, 진보와 보수, 세대, 지역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모든 것에 앞서서 기본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전부 무너졌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아름다운 헌법의 문구를 순진하게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비선 실세가 이 정도까지 국정을 농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수십 년을 성실하게 일한 관료가 입신양명까지는 몰라도 실세 눈 밖에 났다고 하루아침에 쫓겨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기업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통치자금으로 뜯길망정 적어도 실세 모녀의 사금고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자식 뒷바라지를 남들만큼 못해줘서 명문대에 보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을망정 적어도 대학이 규정을 뜯어고치고 지도교수를 바꿔치워 가면서 실세의 자식에게 특혜를 주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무엇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가 국정의 컨트롤타워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조차 의심받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 2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광장에서 수원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민주주의 수원 공동행동’ 회원들이 촛불 문화제를 열고 “박근혜 퇴진” “박근혜 탄핵”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탄핵과 하야를 얘기하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 가능성을 보도했고, 며칠째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지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앞으로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추진한들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관료나 기업이 움직이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탄핵과 하야를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가가 정권과 함께 침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다음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1년4개월이나 남았다. 탄핵이 설사 국회 문턱을 넘는다 하더라도 헌재를 거쳐야 하니 몇 달간의 국정공백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인 박근혜의 일관된 스타일로 볼 때 하야를 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서실장과 총리가 슬쩍 흘린 피해자 코스프레 후 봉합이라는 수순은 거대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높을뿐더러 성공한다 하더라도 1년4개월간의 국정공백을 불러올 뿐이다. 세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공책을 동원한 반격에 대한 루머도 떠돌아다닌다. 이것은 그야말로 망국을 불러올 것이므로 그 정도의 합리성만은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거론하고 있는 거국내각은 해법이 될 수는 있다. 노태우 정부 말기에 구성된 거국중립내각의 현승종 총리처럼 본인의 정치적 야심을 앞세우지 않으면서 여러 정치분파로부터 비교적 고른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원로들은 그나마 몇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성정으로 볼 때 이것도 역시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현승종 내각은 2개월간 선거관리만 하면 됐었지만 지금 만약 거국내각이 구성된다면 1년4개월간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차이점도 있다. 무엇보다 미세하게 변하는 청와대의 스탠스를 지켜보노라면 시간을 끌면서 여론이 식기를 기다리고 수석 몇 명 교체와 최순실 소환, 그리고 도통 진전이 없는 특검 혹은 검찰 수사의 수순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착각임이 드러날 것이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분노의 온도는 세월호 참사 때보다도 훨씬 뜨겁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져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던 노인과 대구·경북도 혀를 차며 오늘은 또 얼마나 충격적인 정권의 실체가 드러날지 8시 뉴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정치무관심층으로 꼽히던 직업군의 사람들도 이게 무슨 나라냐며 수치심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대학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다. 실로 20여년 만에 대동단결하여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언론은 아직도 넉넉한 실탄을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설 것이다. 29일로 예정된 탄핵집회가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때의 집회구호는 ‘이명박 OUT’이었지만 이번에는 앞에 한 줄이 더 붙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일갈이다. 이 짧지만 강렬한 물음에 대통령은 “이게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답할 수 있어야 봉합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이것을 나라라고 부르기는 불가능하다. 편 가르기를 통한 보수 결집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있어야 보수고 진보고 있는 것이니까. 구중궁궐에서 측근들에게만 둘러싸인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다시 광화문을 정권과 국민이 충돌하는 격렬한 전장으로 만들 것인가. 그 격렬한 전장에 이번에는 컨테이너 대신 무엇을 쌓을 셈인가.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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