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보면 심심찮게 태극기를 발견한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옆 상무대에 모셔 놓은 희생자의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광주시민은 왜 태극기를 들었을까. 먼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항쟁이었다. 또 걸핏하면 정적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군사정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의 예상대로 신군부는 고정간첩이 선동하고,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개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극기는 광주시민들이 정체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인상 깊은 사진도 있다.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양손을 들고 다탄두 최루탄이 쏟아지는 도로를 뛰는 사진이다. 독재에 대항해 태극기를 든다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로의 변화, 국가 정체성의 변화 요구였다.

민주화 이후 시위 현장에서 태극기는 사라졌다. 왜?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엄하며, 전체를 위한 부속품이 아니라는 거였다. 국기가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할 필요도 없었다. 하여 3·1절, 광복절 같은 국경일, 국제적 스포츠 경기가 아니면 태극기를 들 일이 별로 없었다.

보수단체인 태극기행동본부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개최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서울광장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시위대에는 노인이 많다. 이들에게도 태극기는 역시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내보이는 존재 증명일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고, 어떤 이들은 사우디 같은 건설현장에도 다녀왔다. 심지어 ‘미국의 전쟁’이었던 베트남에 파병됐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타국에서 총과 삽까지 들었다고 자부하던 이들을 자극한 것은 대통령 탄핵으로 자신들이 세운 대한민국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성조기를 들고나온 이유는?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반공과 친미로 다져왔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가 1947년  미 군정 고위 한국인 관료 115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1명만이 항일 운동과 관련 있고 나머지는 일본 강점기 때 관료, 군인 등이었다. 정통성이 취약한 친일파들은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를 내면화했다. 군사정권은 인권을 유린했고, 반대자들을 탄압했지만 세습 왕조국가나 다름없는 북한보다는 낫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강화하면서 반공과 친미는 보수의 종교가 됐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박 대통령이 2015년 3월 중동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공항에서 병원으로 곧바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찾아 병문안했던 것은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근대화는 국가주의에서 민주주의적 개인화로의 이행을 뜻한다. 근대화는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다원적이다. 한데 한국의 근대화는 오로지 산업화만을 중시해왔다. ‘조국 근대화’를 내건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꾀했고, 반근대적이었지만 보수에게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들은 오로지 성장만이 중요하고, 재벌이 곧 경제이며, 경제만 좋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 속에 살아왔다. 탄핵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이런 사고에서 나온다. 이런 한국의 근대화를 김덕영은 ‘환원근대’라고 했다.  또 극단적인 친미주의를 추구하며 미국과의 강박적인 분리불안을 나타내는 한국을 ‘콤플렉스 국가’라고 비판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를 듣고 국기에 배례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사랑이라고 치켜세운 박 대통령은 국가주의즉, 전근대의 상징이다. 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것은 인권·세계평화·민주주의 등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호소이다. 태극기·성조기 시위대의 눈에는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인(私人)에게 넘기고, 재벌을 압박해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반헌법적 행위가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 탄핵은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일 수 있다. 이번 탄핵은 개인의 고난사를 넘어 그동안 사회적 나침반을 제대로 설정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국가와 동맹을 맺었던 재벌은 특혜를 받아왔다. 안타깝게도 국가는 산업역군이라 자부하는 노인들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들은 산업화의 짙은 그늘에 놓였지만 집단을 위한 희생을 애국으로 각인해왔다. 국가주의 신화 속에서 ‘조국을 위해 일했다’는 신념을 재확인하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에 태극기를 움켜쥔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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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었다. 선열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꼭 9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에선 3·1정신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촛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불공정·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 촛불민심은 국치(國恥) 주범들의 단죄만 요구한 게 아니다. 촛불집회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심판을 계기로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헌법을 유린한 피의자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탄핵 반대 집회를 이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 박근혜 구하기에 나선 수구세력들이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해서 ‘태극기집회’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제98주년 3·1절인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거대한 경찰 차벽으로 나뉜 두 집회가 각각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집회(오른쪽)와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장의 두 집회는 보수와 진보, 여와 야의 이념이나 진영의 대결이 아니다. 촛불이 이뤄낸 탄핵을 사회개혁, 국가개조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광장에서 만났을 뿐이다. 가치의 충돌도 아니다. 미래의 대립도 아니다. 촛불은 무너진 민주공화국을 복원하고 시민주권시대를 열자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탄핵 반대가, 보호하고 지킬 가치일 수는 없다. 촛불은 구체제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자는 미래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다.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란 협박과 선동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것이 본질이다. 보수세력이 기계적 중립이란 허울 아래 탄핵 촉구와 반대, 촛불과 태극기가 경쟁하고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촛불을 폄훼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고, 친박계 의원들이 탄핵 불복을 공언하고 나선 건 탄핵 이후, 대선 이후에도 보수층을 결집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자구(自救)의 몸부림이다. 한술 더 떠 박 대통령은 3·1절 집회를 하루 앞두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탄핵 반대 맞불을 키워 지지층을 모으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작태다.

매주 이어지는 두 집회를 놓고 걱정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걱정할 것 없다. 대다수 시민들은 알고 있다. 탄핵이 인용되면 반대 세력의 반발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수구세력의 반동과 퇴행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과 외환위기 속에서도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뤄냈다. 박 대통령 탄핵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헌법과 정의와 역사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누구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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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시청 앞은 태극기를 든 노인들로 가득 찼다. 연단에 오른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부당하게 탄핵됐고, 국정농단은 조작된 사건이며, 언론이 거짓 선동했다고 되풀이했다. 국정농단이 아니라 ‘고영태와 그 일당의 금품사기 사건’이라고 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사기 피해자라는 것이다. 국회·검찰·언론은 깨부숴야 할 탄핵 3적으로 불렸다. 대형 스피커에서 울리는 ‘탄핵기각’ ‘대한민국 만세’ 구호가 찬바람에 섞여 귓전을 때렸다. ‘계엄령뿐, 군대여 일어나라’는 팻말을 목에 건 노인이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 앞 유리엔 ‘박사모 대구본부 12호차’ ‘박사모 경기 평택지회’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물어봤다. 왜 나왔느냐고. “촛불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 “민주노총, 전교조가 나라를 장악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힘을 보태러 나왔다”고 했다.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속은 게 죄지, 땡전 한 푼 챙긴 게 뭐가 있느냐”고도 했다. 

이들의 심리는 일종의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으로 보인다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했다. 촛불집회를 보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한 반대 행동이라거나, 경제·사회적으로 배제된 노인들이 마지막 남은 자신들의 시대와 가치까지 말살된다고 느껴 저항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엊그제 여론조사 결과 탄핵 찬성은 79%, 반대는 15%였다. 콘크리트처럼 완강한 15%다. 이들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 다른 세계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 예비군복을 입혀놓으면 멀쩡한 사람도 확 달라진다. 정상인에게 내재된 광기(狂氣)는 건강한 상식과 합리적인 이성으로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광기가 집단화될 때는 마녀사냥, 나치, 문화대혁명, 매카시즘 같은 잔혹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말했다(<정상인의 은밀한 광기> 중).

12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 등이 탄핵무효 등을 촉구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발표되고 박근혜가 단상에 올랐다.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을 다 잊어버립시다. 하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몇날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이명박·박근혜 양자 대결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선 후 파국을 예견했다. 박근혜는 혼돈과 우려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지지자들의 상심을 달랬다. 사람들은 전율이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 15%의 광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뿐이다. 그럴 가능성은 0%다. 10년 전 박근혜는 후일을 도모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박근혜는 내일이 없다. 그래서 감동의 연설도, 참회의 이벤트도 필요없다.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 장차관, 수석, 비서관 18명이 구속됐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이런 나라는 없다. 대통령 자리에서 진작에 물러나야 했지만 박근혜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자백과 증거로 확인된 사실도 “엮였다”고 했다. 잡범들은 일단 도망가고, 잡히면 부정하고, 그래도 안되면 ‘빽’을 쓴다. 도망칠 수도, ‘빽’을 쓸 수도 없는 대통령은 부인(否認)을 택했다.   

박근혜의 전략은 3단계다. 특검 수사는 부인과 모르쇠로 대응한다. 헌법재판소 심리는 최대한 지연시킨다. 목표는 기각이다. 기각 이후 최종 시나리오는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다.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3월13일)한 뒤 헌재 재판관 7명 중 2명만 반대하면 기각이다. 자신이 임명한 재판관이 둘 있고, 평생 대구에서만 근무한 향판(鄕判) 출신 재판관도 한 명 있다. 박근혜는 지금 3월13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필요한 것은 탄핵 반대 여론을 키우는 것뿐이다. 이른바 태극기집회를 촛불집회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촛불과 태극기의 대결 구도만 세우면 성공이다. 또 국민 갈라치기다. “태극기를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란 발언은 총동원령의 신호탄이었다. 국정원 댓글도, 세월호 위기도 다 이렇게 넘겼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고, 보수는 전통적인 걸 지키자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나라의 틀을 크게 보고 아우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독일의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는 빈부격차와 계층 갈등이 커지기 전에 사회보장제도를 최초로 만들었다. 복지의 대명사인 사회안전망은 보수 정치인 영국의 처칠이 만든 제도이다. 책임과 희생과 헌신은 보수의 행동원칙이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훼손한 박근혜와 최순실을 옹호하면서 국기를 흔드는 노인들은 지금 무엇을 지키려는 것이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태극기에 겹쳐 성조기를 흔들고 펼치는 모습은 더 비루하다. 나라 망신은 대통령 한 명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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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반응은 싸늘했다. 엊그제 3·1절에 공공기관이나 주요 도로는 태극기 물결로 넘쳐났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이나 이면도로에선 찾기 힘들었다. 간간이 태극기가 빼곡히 걸린 주택가나 일반도로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는 하나같이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한 태극기 달기 ‘모범거리’나 ‘모범마을’이었다. 집주인이 아니라 구청, 동사무소 직원이 달아준 것이다. 그 외 대부분 가정집과 도로의 태극기 게양률은 10%를 밑돌았다. 국가의 상징 태극기도, 국가 기념일도 갈수록 푸대접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국가 기념일의 저조한 태극기 게양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념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태극기 달기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초·중·고생 10명 중 4명이 3·1절을 잘 모르고, 심지어는 ‘삼점일절’ 운동으로 발음하는 학생도 적잖다고 한다. 역사 교육의 중대한 문제다.

이번 3·1절의 태극기 게양이 눈길을 모은 것은 정부가 대대적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여서다. ‘광복 70주년 맞이 태극기 달기 운동’의 초라한 성적표는 이미 예견된 바다. 국민 다수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낮은 현실과 동떨어진 캠페인이었기 때문이다. 애국심이 솟아나야 태극기를 달 텐데, 거꾸로 태극기 게양을 통해 애국심을 짜내려 했으니 억지였다. 지난 2년간 태극기 달기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키워온 정부가 운동을 벌인 것 자체가 코미디다. 입사지원서 100번 낸 취업준비생이나 연말정산과 담뱃값 인상으로 세금 더 내게 된 시민, 생때같은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정부의 무관심에 이중으로 고통받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태극기 달기 구호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 얘기를 할 때부터 알조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나오면 국기에 경례를 하더라며 “그렇게 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기에 경례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던 유신 시대의 비민주성은 뚝 떼놓고 애국가와 경례만 강조한 것은 획일화된 국가주의 발상이다. 어린 학생들이 어른 이마에 두른 태극 무늬 띠만 보고도 조건반사식으로 경례를 올려붙이던 암울한 시절을 40여년 만에 소환한 셈이다. 대통령 발언 직후 정부는 국기 게양·하강식 부활을 담은 법개정 계획을 들고 나왔다. <국제시장>의 부부싸움 장면은 흥미 유발을 위한 에피소드 기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박 대통령이 애국심의 표본으로 규정하자 충직한 관리들이 일사불란하게 1970년대식 ‘애국심 마케팅’을 고안한 것이다. 관료 사회가 국가주의의 잔재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태극기 달기와 애국심은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그랬다. 3·1운동도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이번에 정부는 “강요가 아니라 권고”라고 일관되게 부인했다. 그러나 태극기 달기 운동의 규모와 권위주의적 방식은 권고 형태의 강요임을 드러낸다. 10개 중앙부처와 17개 시·도가 참여하는 캠페인이 자발적 시민운동일 수 없다. 정부는 태극기 달기 실적을 연말 지자체 평가에 반영키로 했고, 지자체는 이를 공무원 복무 평가 지표로 삼기로 했다. 3·1절에 구청과 동 직원이 동원돼 모범마을에 태극기를 게양해주는 희한한 ‘쇼’가 벌어진 이유다. 충격적인 민심 조작이기도 하다. 대형 태극기 걸기 경쟁이 벌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행정자치부가 정부서울청사 외벽에 가로 33m, 세로 22m 태극기를 붙이자 경북도는 가로 110m, 세로 20m 태극기로 맞섰다. 외양은 갖췄지만 내용은 부실한 정부를 빼닮았다.

철학자 칸트는 현대 사회의 노예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원하거나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정부가 공무원과 국민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노예로 몰고 가려 하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번엔 다행히 각성한 국민 다수가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은 박 대통령 집권 3년차 첫번째 정책실패 사례다. 대통령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 국기 게양대에 걸린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세찬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럼에도 태극기 달기는 필요하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 순국 선열의 얼을 되새기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 개인의 행복의 크기가 국력의 크기가 되고 그 국력을 모든 국민이 함께 향유하도록 하겠다.” 이 말대로만 하면 충분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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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태극기

정부가 대대적으로 ‘전 국민 나라 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운동추진단을 구성, 운영토록 했다. 방송과 민간기업, 학생을 동원하고 어린이집과 경로당을 방문해 홍보활동을 편다고 한다. 행정자치부는 민간건물과 아파트 동마다 별도의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 게양률을 높임으로써 애국심을 고양하겠다는 게 운동의 목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태극기 달기 운동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인 데다,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자발성이 전제되지 않는 국민 운동은 국가 권력의 강요일 뿐이다. 이렇게 한다고 애국심이 높아질지 의문이 든다.

현행 국기법은 정부가 교육과 홍보 등 국기 선양사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운동은 내용과 방식 모두 실망스럽다. 행자부의 ‘3·1절 국기달기 운동 및 의정업무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은 인사·복무 차원에서 태극기 게양운동을 추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실적이 나쁘면 근무 평점이나 인사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얘기다. 정책이 배제와 차별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국민적 공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폐지된 지 오래인 국기 게양·하강식 부활과 국기 게양 소감문 및 인증샷 제출은 정권 안보 차원의 비교육적 과제물이 쏟아지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

서경덕 교수가 독도 앞바다에 띄운 초대형 태극기 _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연말 영화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퍼지니까 국기에 경례를 하더라고 언급해 이 운동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러나 애국심은 정부의 일방적 계몽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고 느끼면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경제는 갈수록 침체되고 있고, 복지나 양극화, 일자리 문제도 악화일로다. 대통령의 인사실패와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 세월호 참사 미온 대처, 독선적 국정운영으로 지지율은 땅에 떨어진 상태다. 삶이 팍팍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박수를 보낼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인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는 한탄이 나올 만큼 무리한 태극기 달기 운동은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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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태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