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인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 두 명이 최순실씨 측근과 질문·응답을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 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주기 위한 것으로 청문회에서 실제 각본대로 이뤄졌다. 게이트 내부 고발자인 고영태씨는 지난 1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이 새누리당의 한 의원과 사전에 입을 맞추고 4차 청문회에서 위증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의 의원이 ‘최순실씨와 일하며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박 전 과장이 ‘최순실이 아니라 고영태가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한번은 고영태가 태블릿PC 충전기를 구해 오라고도 했다’고 답하는 스토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이 18일 오후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과의 사전 위증모의 논란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연합뉴스


15일 열린 청문회는 고씨의 예견이 적중했다. 이만희 의원이 “JTBC에서 공개한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박 전 과장은 “고영태씨가 갖고 다니면서 충전기를 사오라고 시켰다”고 답했다. 모의가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게이트 부역 세력이 국정조사마저 조작하고 방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완영 의원이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나 태블릿PC 관련 답변을 협의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과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완영 의원이 태블릿PC는 고영태의 것으로 보이도록 하자며 정동춘 이사장에게 제의했고, 정 이사장이 이를 박헌영 과장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던 셈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두 의원이 특위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위 사퇴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의 조사를 통해 출당 등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한다. 국회는 두 명을 윤리위원회에 회부, 제명 등 중징계하는 것은 물론 국정조사 방해 행위로 특검에 고발해야 한다. 시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자가 의원 행세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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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요즘 새롭게 시민의 힘, 참여의 힘을 느낀다. 지난 9월20일 한겨레신문이 ‘최순실’이란 이름을 거명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직접적으로 지난 10월24일 JTBC가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 관한 보도로 국정개입 사건의 전모를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격랑에 휩싸여 버렸다. 바로 그 주 주말인 10월29일부터 헌법유린과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라며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2월3일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인 232만명이 참여한 6차 집회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 시민들은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평화롭지만 도도한 분노가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다.

광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말한다. 머릿수 하나라도 채우러 나왔다고. 내가 빠져서 숫자가 줄어들면 안된다고. 내가 안 나가도 누군가 나오겠지가 아니라 날씨가 추워서 혹시 집회 참가자 숫자가 줄어들까봐 나라도 참가해야 한다고. 아이들과 청소년은 물론이요, 제주에서 비행기삯을 물어가며 참가한 90세 할머니가 계신가 하면 100세 할머니까지 거리로 나오셨다. 흔히 말하는 ‘무임승차자’는 보이지 않는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마음, 자기 몫까지 대신해줘서 고맙다는 인사가 댓글에 넘친다.

광장만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이제 시민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가림이나 숨김이 있기 어렵다. 정보가 끊임없이 유통되고 공유되면서, 정부가 알리고 싶지 않아 여백으로 남겨졌던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퍼즐 맞추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 4명이 시간과 재능을 기부해서 만든 대통령 탄핵 국민 청원 사이트 ‘박근핵닷컴’(parkguenhack.com)은 국회의원과 일반 시민을 직접 연결하는, 민심을 바로 전달하는 핵심 통로가 돼 이미 100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참여했다. ‘박근혜 퇴진 모바일 국민투표’도 실시됐고, 카카오톡을 활용해서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하고 요구하기 등 새로운 의사전달과 소통방법이 날개를 달았다. 시민들은 이제 폭력을 동원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고 쾌활하게 분노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을 가졌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국회 표결을 앞둔 지금 상황이 참담하고 수치스럽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 건강한 시민이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발견은 상당한 위안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세계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환경·에너지·기후변화 위기 상황에서 많은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지난 6일 정부는 신기후체제 출범에 따른 효율적 기후변화 대응을 지향한다면서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과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기본로드맵을 발표했다. 별다른 사회적 논의 없이 그렇게 계획이 만들어지고 로드맵이 그려졌다.

산업계와 시민사회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런 접근에 비판적이다. 촛불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의와 사회적 관심이 환경·에너지·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모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는 최근 몇 해 동안 활발한 사회적 소통을 거의 잊고 지냈다. 그 어느 나라보다 소통 역량이 크고 사회적 관심과 참여의지가 높은 이 나라에서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의 무능과 부패, 시대착오적 관심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에너지를 소진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위기 시대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두 달 이상 우리 사회의 모든 의제를 다 삼켜버린 이 부당한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를 대통령 탄핵으로 깨끗이 일단락 짓고 새롭게 발견한 건강한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뤄가도록 하자.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소통의 장이 마련된다면 시민참여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로의 문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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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국정 농단’을 입증하는 태블릿 PC가 나왔다는 그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태리 식당에 있었다. 막 ‘먹물 파스타’를 주문하고 난 참이었다. 스마트폰에 와이파이를 접속해 익숙한 포털 사이트 로고를 터치하는 순간, 쾅 하고 머리를 북채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생업에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한 것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으나 밥맛은 천리만리 달아난 지 오래였다.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눈으로 먹는 것, 아니 흡입하듯 탐식하는 건 확실히 있었다. 뉴스였다. 스마트폰의 액정 위로 흘러넘칠 듯 폭발하는 뉴스.

태블릿 PC에 든 내용이 연설문을 비롯해 외교와 안보 관련 정책 등 권력 핵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임을 알게 되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주변에 앉아 있는 외국인들이 한글로 된 뉴스를 알아볼 것도 아니고 “당신네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는 사람이 제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꼭두각시냐?”라고 물을 것도 아닌데 스마트폰을 감추고 싶어졌다. 이어 모욕감이 찾아왔다. 내가 가진 작은 권리, 시민으로서 위임한 주권이 사적인 물건이라도 되는 양 자기들 멋대로 주고받는 장난감이 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뉴스를 접한 뒤로는 계속해서 뉴스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 언론사 홈페이지에 접속했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중독자가 되어갔다. 단 5분이라도 뉴스를 확인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느껴졌다. ‘새로운 내용(News)’이 없으면 짜증이 났다. 사람들이 지금 겪고 있을 분노와 절망, 좌절감이며 박탈감과 근심이 뉴스를 타고 리얼타임으로 전해졌다.

뉴스와 문학은 모두 문장을 매체로 삼고 있다. 소설은 허구를, 뉴스는 사실을 다룬다. 소설은 창작이고 뉴스는 소스가 있는 이야기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뉴스는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인스턴트 식품과 같다. 다양한 사실을 담되 즉물적이고 자극적이며 전파력이 강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어모은다. 뉴스가 만발하면 문학은 위축된다. 문장과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지력과 주의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뉴스가 주의력을 가져가면 문학에 배분될 게 줄어드는 것이다.

뉴스는 ‘현재,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박력이 넘치고 자극적이다. 문학은 느리고 점진적이다. 문장이 정련되고 산출되는 데 시간이 걸리며 감화와 설득의 과정이 길다. 뉴스가 직선주로라면 문학은 산책로처럼 에둘러가는 길이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하고 길 위에 오래 머물며 모든 것을 충분히 맛보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뉴스는 얼핏 보면 공짜처럼 보인다. 문학에는 많지는 않으나마 책값이나 저작권료 같은 비용이 따른다. 이런저런 걸 따져보면 뉴스와 문학은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 검투사와 농부가 전쟁터에서 만나는 격이랄까.

뉴스는 거죽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치명적인 독은 뉴스의 소스, 본질에 있다. 본질이 변했다. 제도의 근본은 썩고 법의 뿌리는 빠졌고 신뢰의 밑동이 잘렸다. 국민이, 신성한 주권이, 민주주의가 모욕당했다.

내게도 그 뉴스의 폐해는 너무도 명백하다. 이 ‘벙커버스터’ 폭탄은 단 한 방만으로도 문학 산업계를 초토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미 마감이 임박한 글 외에 생산성이 요구되는 ‘창조경제적’ 글쓰기는 거의 할 수가 없게 됐다. 그 뉴스 때문에 세상 전체의 담론이 획일화되고 상상력이 제한되며 생산성이 떨어졌다.

우리 각자의 생업과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그 뉴스에 담겨 있는 뇌물의 액수, 또는 편파적인 예산 배정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뉴스에 등장하는 인물을 볼 때마다 밥맛이 떨어져서 음식을 적게 먹게 되는 까닭에 요식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이어트 관련 산업도 마찬가지다. 누가 이 계절에 고요히 책을 읽고 있는가.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미국 대선이 끝난 뒤 날아온 문자 메시지처럼 ‘세상이 망하기 직전인데 열심히 일(공부)하면 뭘 하나’ 같은 허탈감과 무기력증이 사람들을 공습하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의 악행이 우리의 평안과 안식과 즐거움, 활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 뉴스 이후로 도대체 웃을 일이 없다. 사람들은 밤잠을 설치고 집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감정의 소모와 분노, 의심과 불신이 일상화되었다. 이 나라가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인가? 권력자를 ‘하늘의 자식’이라고 불렀던 고대의 군주, 왕권신수설의 봉건제 국가의 왕에게나 가능한 권력의 사유화, 아무런 직위도 없는 그림자 권력의 발호가 21세기의 민주국가, 그것도 남의 나라가 아닌 내 나라에서 일어나다니? 최악의 문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권력 사유화의 선례를 만들었음에도 그것이 왜 큰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듯한 태도이다.

그 뉴스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이 사회의 안전과 평등, 경제에 관한 문제를 지금 누가 돌아보고 있는가. 그들끼리 입만 열면 하는 말로, ‘국정’이니 ‘민생’이니 하는 것은? 지금도 어디선가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을 권력형 범죄,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는? 기강은? 질서는? 법치주의는?

황태자? 비선? 실세? 문화융성? 창조경제? 융복합? 단어조차 역겹고 신물 난다. 온 나라가 악성 뉴스의 방사능에 뒤덮인 듯하고 사람들의 내면은 최면술에 걸린 듯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몇몇 개인의 욕심과 권력의 오용, 그들이 챙긴 사적 이익은 산불의 불씨처럼 세상을 불태울 화근이다. 지금의 시작은 기실 심히 미약할 것이다. 미래에 두고두고 도래할 끝의 창대함에 비하면. 내 상상력은 그 끝이 어떨 것인지 그려내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유화된 밀실 권력의 행태는 언제나 문학적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37년 전 그들이 국가정보기관의 안가에서 대연(大宴), 소연을 열며 서로를 죽이고 죽는 종말론적인 막장 공연을 연출하던 예가 그러했듯.

지옥 같은 뉴스의 진원지를 핵폐기물 처리장처럼 엄중하게 봉인하고 벙커버스터 폭탄으로도 결코 부서지지 않을 두꺼운 콘크리트로 덮어버릴 수는 없는가. 그 안에다 끼리끼리 해 먹기 좋아하는 그들을 몰아넣고 방사능의 반감기가 오기까지 다만 1000만년이라도.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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