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이 신호였나 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는 박 대통령의 언명이 나오자 당정과 장외의 극우 세력이 총궐기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헌재 결정’ 비판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으스스한 죄목을 들이대고, 야당을 향해선 “대선 불복보다 심각한 헌법 불복”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여당은 헌재 결정 규탄집회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검경은 엄단을 복창하고 있다. 헌재 결정에 대한 반대집회마저 처벌하겠다니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를 방불케 한다. 보수단체들이 10만여명에 달하는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때맞춰 종편을 필두로 한 일부 보수언론은 ‘헌재 결정 반대=종북=진보’의 틀을 꿰맞추려 안간힘이다. 다원성과 소수자 관용이란 민주적 근본가치를 훼손한 헌재의 결정이 내려졌을 때 이미 예견된 종북몰이 ‘이념전쟁’이 현실화한 것이다.

헌재 스스로도 정치적인 정당 해산 결정이 가져올 후폭풍을 짐작한 듯 결정문에서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진보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실현 불가능한 주문이다. 헌재가 정치적 소수파를 그 일부의 과오만을 이유로 공존하지 못할 반체제세력으로 규정해 강제 추방한 것 자체가 ‘종북 논쟁’과 무차별적 색깔론이 판칠 공간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은 거듭 강조했듯이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 복수정당제도 등 민주체제의 중요 요소를 송두리째 외면한 것이다. 헌재의 결정을 문제 삼는 건 그 자체가 수십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를 나락으로 빠뜨렸기 때문이다. 헌재가 정당 해산의 근거로 삼은 ‘이석기 세력’보다, 국민주권과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더 위협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24일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보복의 끝은 어디인가. 한국사회를 해방 직후 국가보안법의 공포 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인가"라 묻고 "저는 패배한 사람으로서 어떤 책임도 감내하겠지만, 한국사회를 공안광풍에 몰아넣고 당원들을 겁박하지 말라"고 말했다. (출처 : 경향DB)


헌재의 결정을 정당화하게 되면 한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민주주의 암흑기로 내달을 수 있다. 주류 기득권 세력과 견해가 다른 소수파에 대한 공안탄압이 상시화되고,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로 끝없이 진보세력을 옥죄어 ‘사상의 동토(冬土)’가 초래될 수 있다. 여기서 침묵하고 방관하게 되면 그러한 공안탄압과 이념전쟁의 공범이 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헌재 결정에 대한 최종적 검증과 심판은 정권의 가이드라인이나 강압적 공안몰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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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는 자유로운 정치적 결사를 전제로 한다. 일정한 정치적 견해로 뭉친 정당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 없이는 현대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을 정치 외부의 힘으로 경쟁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민’이라는 민주주의 전제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당이 선호되지 않는다면 그건 시민의 선택에 의해 가려져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원리에 타당하다. 정통성 있는 심판자는 오직 시민뿐이다.

한국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주체사상파(약칭 주사파) 혹은 넓은 의미의 자주파라는 특정한 이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왔고 그들의 참여로 정당도 탄생했다. 이 정당은 나름의 이념과 정강 정책을 제시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시민들의 욕구와 시대정신에 가까운 이념과 정책을 제시할 때는 지지를 늘렸고, 그렇지 못하고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의심을 받을 때는 지지를 잃었다.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때, 이석기 사건 때, 진보당 지도부가 이 사건을 옹호할 때 시민은 지지를 철회했고 그 때문에 진보당은 신뢰를 잃고 생존의 기로에 서야 했다. 시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인식한 대로 정치적 선택을 한 결과이다. 만일 진보당의 이런 행태에도 진보당이 성장했다면 정치의 오작동을 의심할 수 있지만, 진보당은 쇠퇴하고 몰락하는 중이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핵심적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근거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당의 해산과 선거로 선출된 의원직 박탈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만일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원했다면 판단하는 주체 역시 이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가 다룬 민주주의, 민주적 기본 질서, 정당이라는 개념들만 보더라도 정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재판관은 모두 판사·검사 출신으로 제한된 직업적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다수의 이념 성향 역시 보수적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헌재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정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비유와 문학적 표현으로 점철되어 있는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법률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인의 성명서에 더 가깝다. ‘대역(大逆)행위’ ‘불사(不赦·절대 용납할 수 없음)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이란 표현에는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건 법의 논리가 아니다.

이런 헌재 결정은 권위를 가질 수 없다. 헌재 결정을 두고 설득력 있는 반대와 비판이 맞선다면 그건 이미 권위가 훼손됐다는 걸 뜻한다. 물론 헌재는 이념 갈등의 종식을 희망했다.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진보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견해가 다른 이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이념 전쟁과 종북몰이, 헌재 결정 이후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결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 재미교포의 방북 경험을 들려주는 토크쇼를 ‘종북 콘서트’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며 적극 뒷받침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헌법의 적”이라며 대결적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집권당은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할 태세이다. 보수단체는 진보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마치 전투 채비를 하는 전사와 같은 전의가 느껴진다. 이들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순간 이 사회 전체는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헌재 우회전 ‘빨간불’ 21일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 종로구 재동로터리에 헌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함께 붉은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출처 : 경향DB)


이들은 우리 내부의 평화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른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북한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이념을 제거한 헌재와 이에 동조하는 정권, 종북몰이에 빠진 보수들이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과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어색해 보인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정치의 무능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정치적 갈등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조정하거나 이견을 상호 설득의 과정을 통해 좁히는 대신 사법부에 떠넘겨왔다. 이 정치 실패가 사법부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관용하는 자유주의의 확산에 자부심을 느낀 시민들은 이제 사상·이념의 축소라는 퇴행적 현상을 지켜보게 되었다. 소수의 사상·이념을 물리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도, 그걸 지하세계에 가둬놓지 않고도 공론의 장에서 소화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 주권’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담론의 일부였다. 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통찰력을 제공하기도 했고 보수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비유어법이기도 했던 이런 말과 생각을 단지 의심만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사회의 내부는 다시 분단될 것이다. 이성적 사고의 절단을 보게 될 것이며, 불구의 사회로 되돌아가는 우울한 풍경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헌재는 한국 사회의 문제 하나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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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어제 법무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키로 결정했다. 9명의 재판관 중 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을 제외한 8명 전원이 진보당 해산 및 의원직 박탈에 찬성 의견을 냈다. 통합진보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만큼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보다 해산의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게 헌재의 최종 판단이다. 이로써 통합진보당은 창당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으로 정당이 해산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어서 그 정치사회적 파장과 후유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최종 목적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고 밝혔다. 종북세력이 당을 장악한 뒤 북한식 사회주의 모델을 이행하려 했다는 법무부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뒤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했다”고 해산 사유를 밝혔다. 그 구체적 근거로 내세운 것이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이른바 ‘RO(혁명조직)’ 회합이다. 헌재는 “경기동부연합을 축으로 한 구성원들은 당시 정세를 전쟁국면으로 인식하고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하여 국가기간시설 파괴와 통신 교란을 실행코자 했다”고 밝혔다. 진보당 활동 과정에 불거진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서울 관악을 지역구 여론조사 조작사건도 해산 사유의 하나로 들었다. 의원직 박탈 역시 명확한 법 규정은 없지만 정당해산제도가 갖는 헌법 수호기능이나 정당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판시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사법기관이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인 정당을 강제 해산시킨 초유의 일이다.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정당의 존립 여부는 선거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이런 면에서 헌재의 이번 결정은 납득할 수 없다. 정당해산권은 헌법 규정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베니스위원회(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의 정당해산 관련 지침을 봐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당된다. 민주적 헌법질서 전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사용을 주장하는 정당에만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통합진보당의 정당활동이 해산 결정을 부를 만큼 폭력적이거나 급박한 위험이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정한 정당해산권이 정치의 다양·다원성 보장을 위해 다수의 권력으로부터 소수정당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더욱 역설적이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에서 한 당직자가 취재진의 촬영을 막기 위해 '근조 민주주의'가 적힌 종이를 문틈에 이어붙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해산 결정의 논리적 근거가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핵심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우리뿐 아니라 서구의 여러 정당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개념이다. ‘진보’라는 이름 앞에 무조건 종북 딱지를 붙인다면 대한민국에 멀쩡한 곳이 어디 있을까 싶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대북관과 그간의 정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건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다. 이석기 의원과 경기동부연합을 축으로 한 통합진보당 일부 당원들의 시대착오적 주의 주장도 용납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당내 일부 세력의 문제를 들어 당 전체를 종북활동의 전위대로 규정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굳이 정당해산이라는 충격요법이 아니라 형사 사법절차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의율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해산 결정의 주된 논거로 든 이른바 RO 모임 역시 실체가 아직 모호하다. 이 의원의 항소심에서도 RO의 실체는 물론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났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법률적 판단이 끝나지도 않은 사건을 서둘러 정당해산의 근거로 삼은 것은 석연치 않다.

정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과정도 순수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이 정점에 달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치부가 드러난 시기였다. 헌재가 관행을 깨고 어제 특별 기일을 잡아 선고일정을 앞당긴 것도 절묘한 타이밍이다. 지금은 청와대 비선 실세와 정윤회 등의 국정농단 의혹을 놓고 국민적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시점이다. 정부와 여당이 정당해산청구라는 깜짝쇼를 통해 불법 대선 의혹을 넘긴 데 이어 이번 헌재 결정을 정치적 국면전환용으로 악용한다거나 또다시 ‘종북 몰이’에 나서 이념 갈등을 조장한다면 심각한 저항과 역풍을 자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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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 나는 해방 60주년에 <해방 60년의 한국정치>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문에서 한국현대사를 이처럼 요약한 바 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란 이 땅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유엔인권조약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이다. 80년대 ‘제3의 물결’이라는 범지구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정리한 세계정치학계의 권위 있는 집단연구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그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압살해 왔다. 그 결과 한국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라는 ‘자유민주주의의 비극’, 아니 ‘희극’의 역사가 되어 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에 대한 정부의 최종 변론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위에 인용한 내 책의 서문이었다. 정부는 최종 변론에서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이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혐의에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파괴행위’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황교안 법무장관(아래 왼쪽 사진)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아래 오른쪽 사진)가 각각 정당해산심판 청구인과 피청구인으로 참석해 최후변론을 했다. (출처 : 경향DB)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기를 거부하는가 하면 북한의 핵무장을 자위권의 발로라고 옹호하는 등 친북적인 언행으로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같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민주노동당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누리당이 12·12와 5·18학살을 주도해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 등 5공 반란세력의 민정당을 계승했기 때문에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아니 순수가정으로 통합진보당의 노선이 설사 종북주의라고 하더라도 종북주의의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에피소드가 ‘조갑제 사건’이다. 대표적인 극우논객인 조갑제씨는 노무현 정부를 ‘친북비호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군인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사실상의 무장봉기를 선동했다. 그러자 친노단체들이 그를 내란선동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나는 “조갑제를 위한 변명”이란 글을 통해 그의 주장이 틀린 것이지만 진보의 사상만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우파건 좌파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이를 억압하고 사법적으로 처벌하려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거리가 멀다. 종북주의이건, 극우주의이건, 그것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상의 시장’에서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걸러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종북주의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따지기에 앞서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정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다 하더라도 이들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 해산조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데 왜 무리수를 두는가? 또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가 지지자들이 어두웠던 시절의 지하당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쩌려는 것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그 핵심인 자유권을 압살하는 것이 과연 이를 지키는 것인지 반문해봐야 한다. 통합진보당도 이번 기회에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듣는 노선들을 정비하고 발본적인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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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공개변론 절차가 마무리됐다. 헌법재판관들의 비공개 토론인 평의가 끝나면 선고만 남겨두게 된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청구를 철회하지 않은 이상, 이제는 헌재가 신중하고 엄정하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연내 선고”를 압박하고 있으나 흔들려선 안될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은 한 정당의 운명을 가름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까닭이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헌법 제8조 2항)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그 존립과 해산 또한 선거를 통해 주권자가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이자 한국도 회원국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정당해산과 관련한 지침을 채택한 바 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이 지침에 따르면, 정당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 전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 사용을 주장하는 정당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구성원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전체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또한 덜 과격한 조치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경우 해산해선 안된다. 한마디로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게 요체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5일 청구인과 피청구인으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에 참석한 가운데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직접적 계기는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법무부 주장은 대부분 무너졌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따른다며 그 근거로 이 의원이 관여했다는 RO(혁명조직)의 활동을 들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내란선동 혐의는 개인적·우발적 행위이지, 정당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견해다. 결국 정부의 심판 청구는 정당활동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과 국제사회의 공인된 기준 모두에 어긋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20일 서울북부지법에선 전두환 정권 시절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사람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사법부가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를 눈감아 고통당한 피고인에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헌재가 훗날 이러한 사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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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통합진보당을 대리하여 지난 1년 동안 17차례의 변론을 하였으나, 여전히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첫 번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정부는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 이래로 현재의 통합진보당까지 그 목적과 활동이 전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미 13년 동안이나 문제 삼지 않다가 왜 갑자기 작년 11월에서야 제소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통합진보당의 핵심적인 강령과 활동은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의 심판청구서에 첨부된 증거들을 보면 인터넷에 구글링해서 찾은 통합진보당과 관련한 보수논객의 칼럼과 보수언론의 주관적인 보도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많은 내용이 중복되어 재판정에서 무더기로 철회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졸속으로 해산청구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왜 통합진보당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단 하나의 확실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는지이다.

세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의 어떤 조문에 위반된다고 주장하지 않고 왜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가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고유한 가치가 없고 북한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인가?

네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흡수통일을 반대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흡수통일이야말로 북한이 망하기를 기다리거나 망하도록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의 평화통일원칙에 위반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통합진보당의 정강정책은 6자회담에서 합의된 내용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6자회담의 주체인 미국과 일본 등도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25일 대전 둔산동 대전시청 앞에서 들고 있는 ‘담뱃세 및 주민세 인상 반대’ 팻말이 눈길을 끌고 있다. _ 연합뉴스


다섯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가 독일 공산당 해산결정을 교과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독일은 해산결정된 독일 공산당이 재건되었음에도 재건된 공산당을 해산시키지 않고 있다. 독일이 재건한 공산당을 해산하지 않았음에도 독일의 민주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섯 번째 수수께끼는 우리나라도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베니스 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의 지침과 유럽연방재판소의 결정례가 ‘정당이 테러나 폭력을 통해 헌법의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명백한 위험이 없는 한 해산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테러나 폭력혁명을 추구할 명백한 위험이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작 제시한다는 것이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판결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가 핵심적으로 주장한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를 부정했고 내란음모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체제전복의 위험성은 없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구성원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자가 많기 때문에 위험한 정당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유엔에서도 인권침해를 하는 악법이라고 폐지를 권고한 바가 있고, 이전 열린우리당도 당론으로 폐지를 주장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유엔이나 열린우리당도 위헌세력이란 말인가.

정부가 이러한 의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 한 불편한 소수야당을 제거하기 위해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비판적인 정당이 필요하다. ‘정당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말이 옳은 만큼이나 ‘소수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도 옳다. 정부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조롱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철회해야 한다.


이재화 | 변호사·민변 사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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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은 어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본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핵심 공소사실인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 의원 등이 내란범죄 실행의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을 비롯한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 행위의 시기, 대상, 수단·방법, 실행 또는 준비에 관한 역할 분담 등을 특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하혁명조직 ‘RO’와 관련해서도 “제보자 진술만으로 RO 조직의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1심에선 피고인들이 남한 사회주의혁명 완수를 목표로 RO를 구성했으며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 실행을 모의했다고 봤으나 2심 재판부가 이를 부인한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11일 통합진보당 당원과 지지자들이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이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오로지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의원 등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내란음모라는 중대 범죄의 유무죄를 가르는 일에는 일체의 외부 요인이 배제돼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폭동의 세부적 계획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면서도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2심에서는 보다 정교한 법리 검토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 다만 ‘음모’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선동’을 인정한 것은 ‘타협적’ 판결로 비친다.

내란음모 무죄 판결은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통상 내란음모가 조직적·계획적 성격이 강한 데 비해, 내란선동은 개인적·우발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해석한다. ‘음모’가 성립하려면 2인 이상의 범죄 실행 합의를 필요로 하지만 ‘선동’은 2인 이상이 참여하거나 구체적 모의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헌재가 이 같은 법해석을 정당해산 심판에 적용할 경우 이 의원 등의 범죄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이어지기는 어렵게 된다.

내란음모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8월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잇따를 즈음이다. 국정원은 3년간 내사를 벌여온 사건을 갑자기 공개수사로 전환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이제 국면전환용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최종심을 맡게 될 대법원이 엄정한 심리를 통해 모든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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