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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27 실패한 국가와 정상국가

미국 정치권은 트럼프 스캔들로 요란스럽지만, 정작 미국이 당면한 핵심적 문제는 트럼프에도, 그리고 러시아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의료보험제(오바마케어)는 현재 상태로는 지속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케어로의 수정도 사실상 상원 통과가 불가능하다. 재정 계획이나 조세 개편안은 아무도 현재 상태로는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의회가 승인해준 미국의 부채 발행 한도는 다 찼기 때문에 재정 고갈로 인한 정부 셧다운 가능성은 커져가는데 정작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예산 증액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국무부 등 주요 행정부 핵심 포스트를 아직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하원외교위원장이 “현재 국무부는 여러 가지 사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이는, 심지어는, 공화당이 행정부와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다른 말로 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그리고 의회는 ‘정상 작동’이 안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멜라니아 트럼프가 옆에서 박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사회학에서는 이처럼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가기구가 맡겨진 자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는데 우리네 말로 옮기면, “이게 나라냐”쯤에 해당한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국가’는 각기 층위가 다른 몇 가지 정의가 혼재된 것이다. 실패한 국가는 부패, 무능력 등으로 국가기구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능적 비효율성’(dysfuntion)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가 반영해야 하는 사회 내부가 도저히 상호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사회 내의 적대적 대립이다. 국가의 기능은 그 효율성과 역량의 정도와 무관하게, 이 같은 사회적 적대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8년 이후 미국 정치의 변화 과정은 자못 시사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대중들은 기존 체제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와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집권 뒤에 한 일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repair)와 미봉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실망한 대중들은 2010년의 중간 선거에서는 공화당(티파티)에 표를 던졌다. 그러자 ‘민주주의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보수파와 더 타협했으며, 결과는 더 강력한 현상 유지였다. 오바마의 정치적 레토릭, 즉 자신은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개혁파라는 이미지는 그의 재선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기득권의 강화에 불과했으며, 그럴수록 대중들의 불만은 더 커져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요인들이 바로 어떤 막말을 해도 지지를 받는 트럼프현상을 불러왔다. 그 결과 미국 대중들은 금융위기 이후 거의 10년이 지나는 동안 기득권인 민주당과 또 다른 기득권인 공화당 사이를 오가면서 결국은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었고, 그사이에 국가기구는 자신들의 조직 이기주의만을 존재 이유로 삼게 되었다.

미국의 사례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대중의 구호가 ‘이게 나라냐’에 머무는 한, 그것은 단지 국가 기능의 강화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따름이며 그것이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나라’가 아니라 ‘사회’이며,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수십년 동안 똑같은 비정상과 실패를 재생산해내고 있는가이다. 실패한 국가에 질려서, ‘제대로 된 국가’(정상국가·normal state)만 바라고 빌고 있다면, 우리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에 매달려 이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진자 운동을 할 뿐,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고, 트럼프를 훨씬 능가하는 더 화려한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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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