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민주주의란 것이 민의를 표현하기 전에 먼저 대리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수준을 끝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더구나 과연 이것이 민주적인가? 민의와 상관없이 그 민의를 대표할 대리인들이 선정되는 것이. 무엇이 저들을 대선후보라고 정했는가? 여론조사? 지지율? 과연 그것이 민의를 얼마나 반영할까? 한국의 정치인 지지율 조사가 얼마나 그릇되고 조작되고 바람몰이용인지는 이미 지난 18대 대선에서 충분히 폭로된 바 있다.

결국 대의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선출된 자들(the elected) 가운데 고르기 게임이다. 즉 ‘자격 갖춘 자들’(the elite) 중에서 고르는 정치게임. 1987년 헌법으로 재개된 대통령 직선제도 마찬가지다. 내 주권은 선거일과 선거일을 앞둔 얼마 동안만 작동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나는 내가 원하는 후보감이 없는 것도 참아내야 하고,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지금도 이른바 주권자들은, 어느새 촛불 든 자발적이고 다양하며 역동적인 시민들에서 촛불 든 방청객이 되고 있다. 주말마다 촛불 들고 광화문 콘서트에 모이는 관중들. 일부에서 제도권과 촛불권력, 혹은 의회권력과 시민권력의 관계를 두고 ‘이중권력’으로 개념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국회와 사법권력, 그리고 촛불권력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시너지효과를 내야 한다는 규범적인 언명에 불과하다. 왜 규범적이냐면? 현실의 정치사를 보면,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정치, 아니면 의회권력과 ‘민중권력’, 지금은 또 이름을 바꿔 의회권력과 ‘시민권력’이라는 양대 정치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를 맺거나, 양자가 유지 존속하면서 상호 성장한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렵다. 양자는 대립 혹은 경쟁적인 동원의 관계다. 이것은 사회운동론이 주로 규명해온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가 노란 리본이 깃봉에 달린 태극기를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리고 이 점이 더 중요한데, 그렇게 되는 이유가 바로 양자 동원체제의 효과나 작동기제 탓이 아니라 그들이 터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의 성격 탓이라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거세하면서 의회민주주의라는, 한때는 반민주적 장치로 불렸던 정당정치에 기초한 대의제를 유일한 민주주의로 만들어낸 정치체제다. 그렇게 자유주의를 민주주의가 안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지금 의회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이 광장권력과 제도정치의 시너지와 이중권력 상태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테제이며, 혹은 광장권력을 통해 의회권력을 장악하거나 의회권력으로 진출하려는 욕망의 정치적 표현일 뿐이다. 그래야 대중은 스스로 주권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동원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동원은 선거로 이어주는 동력이고, 선거는 대중의 주권을 제도적 대리자들의 대의정치로 전화시키고, 대중은 다시 장외로 퇴출되거나 아니면 제도화된다. 벌써부터 정권교체 이후 ‘대중’의 동원이 불러올 혼란과 환멸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그렇다면 촛불 이후에 올 것들은 무엇일까? 여러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미국의 오큐파이운동에 대한 지젝의 인용으로 마무리하련다.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길로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유쾌한 순간을 맞고 있지만, 축제를 여는 데는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중요한 건 축제가 열린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언가 변화돼 있을까요?”

지금 특검의 마지막 브리핑에 귀를 쫑긋하고, 다음주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여부로 세상을 행과 불행으로 나누고자 한다면 당신은 많이 불행하고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환멸과 희망은 한 끗 차이다. 어느 쪽으로 풀썩 넘어지는가, 아니 풀썩 넘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버틸 것인가? 촛불이 촛농으로 흘러내려 지저분한 얼룩이 되지 않으려면 촛불은 버텨야 한다. 투표함이 아니라 이 광장에서. 그리고 나아가야 한다. 99%가 사는 길은 법관의 판결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둘러싼 투쟁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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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에 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16차 변론에서는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이라고 모독하고, 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는 막장극을 벌였다. 강 재판관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질문 등을 많이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탄핵 위기에 몰렸다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22일 16차 변론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인들까지 무더기로 신청을 한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 측이다. 증인들이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거짓 가능성이 높은 발언을 하면 재판관이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의 재판관 기피 신청을 각하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최종 선고에서 강 재판관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뻔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은 이날 또 박한철 전임 헌재소장, 정세균 국회의장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억지를 부렸다. 일부 대리인은 신성한 법정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발언하는 등 무례의 극치를 보였다. 이 같은 행동이 헌재 재판관들을 자극해 대리인단 전원 사퇴 명분을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헌재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주권자인 시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과 보조를 맞추려는 듯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특검 수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기간 연장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한과 알량한 법 지식으로 수사망을 피하고 시민과 국회를 능멸해온 우 전 수석은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모든 것을 박 대통령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다. 묵인·방조 수준을 넘어 국정농단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한두 건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 ‘찍어내기’ 인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방해, 개인비리 의혹 등 그의 혐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 전 수석 비리 규명은 특검 수사의 곁가지가 아닌 본류다. 황 대행은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하고, 특검은 보강 수사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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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특검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수사기간 30일 연장을 요청하고, 야 4당까지 원내대표 회동에서 연장 승인을 요구한 상황에서 한국당만 홀로 반대 당론을 정한 것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당론 채택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심판 이후에도 특검을 계속하는 것은 대선 정국에 특검 수사를 이용한다는 대선용 정치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8일로 종료되는) 특검의 연장은 전적으로 황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새 특검법을 통해서라도 기간을 연장하려는 야당의 발을 묶겠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특검 수사기간 연장 여부는 그것이 수사에 필요한지를 최우선으로 놓고 따져야 한다. 그런데 수사기간이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특검이 특검법에 기재된 수사 대상을 모두 다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검은 지난 두 달 가까이 많은 진실을 밝혀냈지만 드러내야 할 진실이 아직도 많다. 엊그제 청와대 비서관이 미르재단 설립과 모금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삼성을 제외한 대기업의 뇌물제공 등은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다. 특검 수사가 충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한 데 이어 특검의 대면조사도 회피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측 증인들은 온갖 방법으로 진실을 덮고 있다. 황 권한대행도 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특검 연장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어제도 그는 “특검 연장에 대해 추가로 밝힐 입장이 없다”며 특검 연장 결정을 미뤘다. 시민을 우롱하는 태도와 다름없다.

자유한국당이 특검 연장 반대를 당론으로 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 수사가 계속되면 대선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실 규명보다 당파적 이익을 앞세우는 몰염치한 행위다. 한국당 의원들은 연일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애국폭동” “계엄령 선포”와 같은 반사회적인 구호를 외치고 있다. 탄핵 민심에 반성하는 듯하더니 ‘친박 새누리당’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반사회적인 언동을 하는 수구·친박 단체들의 지지라도 붙잡으려는 모습이 가련하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힐 기회가 이번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방조해 나라를 어지럽혀 놓고 그 진실을 가리는 일마저 방해하겠다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한국당은 특검 수사기간 연장 반대 당론을 당장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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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파견된 검사 6명이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민정수석비서관실에 근무하는 검사 출신 행정관이 검찰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1997년 제정된 검찰청법에는 검사가 대통령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직위를 겸할 수 없다. 그러나 검사는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 근무하다 다시 검사로 임용돼왔다. 편법 파견이다. 하지만 정권마다 구태가 되풀이됐다. 노무현 정부 때 8명, 이명박 정부 때 22명,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15명이 재임용 형식으로 검찰로 복귀했다. 그때마다 비판이 일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번에 사표를 낸 검사들은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지목되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선발한 이른바 ‘우병우 사단’이다.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한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권력과 검찰은 서로 멀리 있어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검찰은 권력과 결탁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법을 집행할 수 있다. ‘말을 잘 들으면 눈감아주고, 눈엣가시처럼 굴면 본때를 보이는’ 식으로 수사권을 자의적으로 발동할 수 있다. 검찰 출신 우 전 수석도 정권과 결탁해 국정농단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 결과 검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개혁대상 제1호로 꼽힌다.

지난 9일 여야는 청와대 파견 검사의 검찰 복귀를 2년간 금지하는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청와대 파견’이라는 ‘훈장’을 달고 친정으로 돌아와 패거리를 만들고 요직을 독차지하면서 독립성을 훼손하는 악순환을 중단해야 한다. 검찰청법에서 검사의 청와대 근무를 금지한 배경에는 ‘청와대 파견 검사는 중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파견 검사들의 복귀를 일정기간 제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

이번에 사표를 제출한 검사 6명의 검찰 복귀도 불허해야 한다. 이들은 우 전 수석과 함께 일하며 국정농단의 수발을 들었다. 지금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 내부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검찰에서 파견 나온 검사들이 우 전 수석 수사에 소극적인데, 특검이 끝나고 검찰로 돌아갔을 때 조직의 역풍을 우려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파견 검사의 복귀는 특검팀 검사의 사기 위축은 물론 우 전 수석 수사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검찰은 청와대와 단절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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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종전 11차례 실시된 특검과는 달랐다. 특검 및 특검보와 파견검사들은 한 몸이 되어 팀플레이를 했다. 주말과 설 연휴를 반납하고 거침없이 달려왔다. 혐의가 있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환했고, 구속사유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증거가 있는 곳은 여지없이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특검이 출범한 이후 구속자는 11명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사이의 뇌물거래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5명, 비선진료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줄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이화여대 입학·학사비리에 연루된 김경숙 전 학장 등 4명을 구속했다. 구속자만 보더라도 박영수 특검은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수사성과를 냈음을 알 수 있다.

특검법이 정한 수사대상은 14가지이다. 특검이 이 14가지의 수사과정에서 인지한 사건도 수사대상이다. 현재 특검은 정해진 수사대상 중 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수사를 완료했다. 앞으로 수사해야 할 사항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삼성, 현대, SK, CJ 등 재벌로부터 받은 뇌물사건은 첫걸음만 뗀 상태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작성한 업무일지에 나타난 수많은 정치공작 의혹,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의혹,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의혹, 청와대가 재벌에 압력을 넣어 극우단체의 관제데모 자금을 마련한 의혹, 비선진료 의혹,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 등에 대해서는 아직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저녁 광화문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특검의 1차 수사기간 70일은 2월28일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 법에 정한 의혹사건을 규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특검이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발부받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군사상 비밀’을 핑계로 방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경내에서’ ‘비공개로’ ‘1회에 한하여’ 대면조사하지 않으면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압수수색 승인 여부는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의 권한’이라며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를 두둔하고 있다. 청와대와 황 권한대행이 특검수사를 가로막는 동안 천금 같은 수사기간은 흘러가고 있다. 특검이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려면 수사기간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

특검법에는 특검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수사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수사기간의 연장은 황 권한대행의 손에 달려있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승인 요청을 묵살한 장본인이다. 그는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는 데 협력하지 않고 박 대통령의 범죄증거를 은폐하는 길을 선택했다.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연장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특검의 운명을 피의자 박근혜와 동반자의 길을 선택한 황 권한대행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다. 국회가 나서서 특검법을 개정하여 수사기간을 연장하도록 해야 한다.

현행 특검법에는 또 다른 허점이 있다. 검찰은 최순실을 대기업이 미르재단 등에 돈을 제공하도록 한 혐의를 뇌물수수죄가 아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했다. 반면 특검은 이를 뇌물수수죄로 기소하려고 한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변경권과 공소유지 권한을 특검이 가질 것인지, 검찰이 가질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특검법은 이에 대해 명확히 정해놓지 않고 있다. 특검법을 개정하여 모든 국정농단 사건의 공소유지권한을 특검이 갖도록 하여 재판의 통일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는 수십년 동안의 적폐를 해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첫걸음이다. 국회는 하루빨리 특검법을 개정하여 특검이 역사적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재화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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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제는 일정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특검 조사를 거부하더니 어제는 ‘국정 공백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원인이고, 특검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발언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이제 주권자와 전면전을 선포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5000만명이 시위를 해도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던 김종필 전 총리의 예언이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손범규 변호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자기들(국회)이 탄핵을 해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국정 마비를 일으켰다. 제대로 된 증거와 확실한 혐의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야당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탄핵부터 감행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혼란이 박 대통령의 비리와 헌법 위반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주권자의 뜻을 받들어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지금도 절대 다수의 시민이 헌재의 조속한 탄핵 결정을 바라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에서 양측 대리인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 변호사는 “탄핵을 위한 자료 수집 의미를 갖는 특검을 야당이 통과시킨 것이라 처음부터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도 했다.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반헌법적·반민주적 발상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했다. 특검 수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박 대통령이 자청한 일이다. 특검법안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다수가 지지해 78%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박 대통령은 탄핵 결정을 지연시키겠다는 의도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손 변호사는 탄핵심판에 참여 중인 대통령 대리인단 전원 사퇴와 대통령의 최후 변론 출석에 관해 “배제할 이유가 없다. 가능하다”고 말했다.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탄핵심판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계산이다. 다행히 어제 열린 12차 변론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박 대통령 측의 불필요한 증인 신문을 적극 제지하며 신속한 재판 진행 의지를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이상 법을 바꿔서라도 특검 수사 기간은 연장돼야 한다.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주권자에 도전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들을 응징하고, 헌재는 박한철 전 소장이 밝힌 대로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만료(3월13일) 전 선고가 이뤄지도록 재판을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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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거짓말을 감추려면 다른 거짓말을 더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악순환에 빠졌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낸 ‘소추 사유에 대한 피청구인의 입장’이라는 의견서에서 “피청구인(박 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고 그녀가 여러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음”이라고 적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등이 최씨에게 속아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40년 지기인 최씨를 작년까지 평범한 가정주부로 알고 있었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어이가 없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설립과 모금에 대한 세부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등 박 대통령과 최씨가 공범이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캐릭터(박근혜 2016년 12월 21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기밀 유출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부하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탓으로 돌렸다. 박 대통령은 의견서에 “(정 전 비서관에게)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어서 참고하라고 한 것”이라며 “연설문, 말씀 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들을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거짓말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문서를 전달한 것은 박 대통령 지시였다고 이미 검찰에서 자백하고 법정에서도 진술했다. 헌재 재판관들이 박 대통령 주장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박 대통령은 언론 취재와 특검·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에도 ‘오리발’을 내밀었다. 지난달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와 극우 성향 언론인과의 인터뷰 등에서는 “완전히 엮은 것”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 내용도 지키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해놓고는 거부했고, 최근에는 청와대 압수수색 불가 방침으로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말도 뒤집었다. 박 대통령의 파렴치 행태는 끝이 없다. 특검이 어제 수사 기간 연장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검법상 1차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인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결정으로 한 달간 연장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거짓 증언과 수사 방해 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은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특검은 수사 강도를 더욱 높여 박 대통령의 증거 은폐 의혹까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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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애먼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설인 지난 28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박사모’ 회원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는 손태극기 2개를 든 채 몸을 던졌고, 태극기에는 ‘탄핵가결 헌재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모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 유족을 상대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스님이 박 대통령 체포 등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은 박 대통령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조씨의 투신에는 설 직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거대한 산”이라며 허위 내용으로 극우 언론인과 인터뷰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박사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대통령직 유지를 국가 수호와 연계하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인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 박근혜 정부가 중도에 해체되더라도 주권자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세우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며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임계치에 이르렀다. 설 연휴 모처럼 일가 친척이 모인 자리의 대화 주제도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와 나라 걱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는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수구 보수층을 내세워 재기를 모색해보려는 꼼수에 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고, 헌재는 탄핵 결정을 앞당겨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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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도 훼방을 놓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고소했다. 자중해야 할 피의자가 수사 주체를 고소해 처벌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 향후 특검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순실씨도 막무가내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검의 소환 통보를 6차례나 거부해 수감 중인 최씨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물가와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와 나랏빚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탄핵 국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나라 바깥도 어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전 세계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헌재가 일단 내달 1일 김 전 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을 심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헌재의 최종 결론은 8명의 재판관이 내리게 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오는 31일 퇴임한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8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 조건이 변해 박 대통령은 그만큼 유리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걸 노렸을 것이다. 헌재는 무책임한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선고 일정 등을 가능한 한 일찍 알려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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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3일 (출처: 경향신문DB)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게 전부다. 헌법은 양심, 언론 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다. 더구나 이 정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내부에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빨간 딱지를 붙여 탄압했으니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두 사람은 구속 직전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현직 장관 구속 1호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이라고 믿기 힘든 파렴치한 피의자들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수차례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동자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가장 심각하고 위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검은 문명국가의 수치인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반드시 찾아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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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기각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지금까지의 특검 수사 결과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요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이다.

사법부 판단은 존중하지만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인신 구속은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개인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법원은 수사에 미진한 점이 있고 의심이 들면 마땅히 구속영장을 기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다. 수십명의 전관 변호사를 병풍처럼 세운 재벌 총수가 아닌 일반인이었어도 법원이 이처럼 결정했을까. 23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법은 평등하지 않았고 상식은 또 한번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야당도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경제 위기론과 재계 및 보수세력의 압박에 법원이 무릎을 꿇었다는 지적도 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본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새벽 영장 청구가 기각되자 구치소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 부회장의 핵심 혐의는 박 대통령 등에게 뇌물을 줬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 측에 건넨 433억원의 대가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는 이른바 ‘피해자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당시 경영권 승계가 걸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으로 박 대통령과 정부 도움이 절실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연금공단의 지원이 이뤄진 정황이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뇌물의 대가로 박 대통령에게 경영권의 안정적 승계라는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규정했다. 특검은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2015년 6월 말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게 잘 챙겨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법원도 이를 인정해 문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지난달 발부했다. 그래놓고도 이 부회장의 청탁과 이 부회장이 건넨 돈의 대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 판단대로라면 일련의 사건이 모두 독립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 출연 외에도 최씨 모녀를 직접 지원했다. 재단 출연이야 다른 재벌·대기업도 했다지만 삼성은 승마 유망주 육성 명목으로 2015년 8월 최씨가 세운 독일의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1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가량을 송금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최씨를 콕 집어서 지원한 것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도 부정한 청탁이 없다고 봤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없이 자신의 영장이 청구됐다는 점도 호소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뇌물 수수자보다 뇌물 공여자를 먼저 구속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최종 타깃이 박 대통령인 만큼 특검 입장에서는 이 부회장 신병 확보가 절실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고 해서 이 부회장이 무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검도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의지를 밝혔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매우 유감이나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흔들림 없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특검은 추가 증거가 확보되는 대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SK·롯데·CJ 등 다른 재벌 총수의 뇌물 공여 의혹 수사도 계속돼야 한다. 특검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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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측이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변론에서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촛불’은 민심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서석구 변호사는 “광화문 대규모 촛불집회를 주도한 곳은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인데, 이를 주도한 곳은 민주노총”이라고 언급한 후 “민주노총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이석기를 석방하라고 행진하는 것을 볼 때 민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명령에 따라 남조선 인민이 횃불을 들었다’고 했다”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은 촛불민심에 색깔론을 덧씌우면 탄핵을 모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대통령이 정경유착 비리를 저지르고 비선의 국정농단을 부추겨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에 대한 시민의 비판을 북의 지령 때문이라니 그가 국가 지도자이기는커녕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시민 모독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다. 박 대통령은 또 서 변호사의 입을 빌려 “소크라테스도 사형됐고,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면서 자신을 박해받은 성인들에 비유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6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수사 기록을 증거로 쓰면 안된다는 주장도 했다. 서 변호사는 “박 대통령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이었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이영렬 지검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많은 인사혜택을 받고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다.

박 대통령 측은 박영수 특검팀에도 딴지를 걸었다. 야당이 특검을 추천해 정치적 중립성에 위반된다는 논리지만 박 대통령의 불법행위가 증거로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을 지연하기 위한 꼼수도 부렸다. 증인신문이 예정됐던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헌재는 이들이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국회 청문회 출석을 기피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쓰던 방식과 닮은꼴이다. 헌재의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와 당위성은 이미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헌재가 신속히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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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리석은 행위가 세계적인 사건이 되어버렸다. 국정농단을 둘러싼 참혹한 진실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면서 나라는 국제 망신이고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언론보도, 촛불시위, 검찰조사에 이어 특검과 국정조사가 진행되면서 과녁은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결국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함으로써 온 나라를 가득 메운 촛불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 국회의원 171명의 이름으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다. 야 3당이 만든 탄핵소추안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부실대응을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강요한 혐의 등은 뇌물죄와 직권남용, 강요죄로 명시했다. 12월9일 의결을 예정하고 있는 ‘탄핵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탄핵안이 발의된 순간 가결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탄핵안은 가결되거나 가결 이상의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 근거를 밝혀보자.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국민을 대한민국의 주권자로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대통령에 반대하고 압도적 다수가 탄핵을 원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탄핵을 받았다. 헌법적 권능에 기초해서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이 그 권능에 기초해 탄핵을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이미 탄핵은 이루어진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탄핵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통령 탄핵의 법적 권한은 국회에 속하지만 이번 탄핵의 진원지는 광화문이다. 국민이 탄핵의 결정자라는 뜻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4%가 이를 대변한다. 탄핵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며 국회의원 300명의 의결은 국민들의 결정에 대한 보충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탄핵 결정권의 본질이며 진행 중인 촛불 정신이다.

국정농단의 공범인 새누리당에는 탄핵 결정권이 없다. 새누리당은 탄핵 발의를 거부함으로써 국민의 명령을 거부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면서 우왕좌왕하는 새누리당은 노선 부재와 내부 분열로 대통령 탄핵에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새누리당에 남은 일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가능한 범위에서 각자 생존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대통령 역시 탄핵의 변수가 아니다. 국정파탄의 몸통으로 특검과 국정조사의 핵심 대상으로 전락한 대통령은 범죄행위의 피의자에 불과한 만큼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시인하고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자숙하며 탄핵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이것이 한때나마 자기를 뽑아준 국민에게 예의를 다하는 길이다. 더 이상의 고집이나 부질없는 담화로 탄핵 국면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죄를 더할 뿐이다.

이제 탄핵이 임박한 시점에서 국회가 명심해야 할 역사적 진실이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하에서 국민은 4년(국회의원 선거) 또는 5년(대통령 선거)에 오직 하루 주권자의 지위를 인정받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지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여 새로이 건설해야 하는 비상한 국면에서는 능동적 주권자로서 국회 자체에 대하여 창조적 파괴를 명할 권능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국회와 권력이 본디 국민의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원리로서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론에 기초한다.

국회의원에게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권리는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범법자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며 의무는 주권자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탄핵을 완수하는 것이니 권리와 의무가 하나로 일치한다. 국민을 모독하는 범죄행각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는다면 국회는 해산에 준하는 정치적 탄핵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이를 거부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자로서 자격을 상실할 뿐이다.

물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며 바람이 일어 태풍이 된다. 주권자의 집합적 자기표현인 촛불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낡은 관행을 파괴하는 혁명적 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역사적 국면에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거나, 숫자를 셈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이 요구하는 바가 아니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주권자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국회의 대오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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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6차 촛불집회에 230만명이라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이 참석했다.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서울과 부산 등 전국 67곳의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불상사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0월29일 2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1987년 6월항쟁을 뛰어넘는 규모로 커졌고, 갈수록 더 크게 타오르고 있다. 평화와 질서를 지키면서 대통령과 정치권을 질타하는 한국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전 세계가 경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9시30분까지 서울에 170만명, 전국적으로는 232만명이 운집했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촛불의 지향은 분명하다.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불평등, 그리고 정치의 비효율과 무능 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다. 당면 과제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넘어 낡은 체제의 교체를 시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이런 집회가 사상 최대 규모로 커진 것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절대 촛불을 끌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촛불집회의 성과는 이미 현실화됐다. 무능한 정치권을 대신해 정치를 선도하고 있다. 정치적 타산에 젖은 야당의 대오를 하나로 묶어내고, 탄핵과 명예퇴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새누리당 비박근혜계를 다잡고 있다. 새누리당 비주류는 어제 기존 입장을 바꿔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퇴진을 못 박아도 9일 탄핵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촛불 시민들은 또한 경찰 등 공권력이 제약해온 집회·시위의 자유도 이끌어냈다. 자발적인 통제로 평화집회를 이뤄내며 수십년간 봉쇄당했던 청와대 앞 집회를 실현했다. 이런 시민의식이라면 박 대통령 탄핵 이후 무질서를 걱정하는 것은 기우다. 국정 공백이나 경제에 미칠 악영향 등도 충분히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6차 집회에서 시민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 새로운 구호를 외쳤다. 즉각 퇴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했다. 임기단축이라는 꼼수로 공을 국회로 떠넘기고, 대구 서문시장 방문을 통해 정치적 복귀를 꾀한 데 대한 응징이다.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최고권력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보수 대오를 유지하면서 대선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새누리당을 향해서는 즉각 해체를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어제 뒤늦게 “열번이고 백번이고 끝없이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이 역시 촛불의 힘이다. 대안세력이 되지 못하는 무능한 야당도 날서게 비판하고 있다.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의 개시, 탄핵안 표결 등 한국의 정치를 바꿀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촛불 앞에서 얄팍한 정치적 계산은 무의미하다. 시민들의 뜻은 박 대통령을 한시도 더 이상 그 자리에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금주중 퇴진 시기를 명확히 밝히면 탄핵안 가결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탄핵안 부결은 곧 박 대통령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이고, 그러면 특검의 조사도 무력화된다. 그때 촛불 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제도권 정치가 모두 불신임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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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규명할 특별검사로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이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은 “수사영역을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정파적 이해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인 미증유의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시민들의 퇴진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방을 둘러싼 ‘7시간 의혹’은 여전하다. 박 특검의 말처럼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수사 대상이나 범위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박 특검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 특검은 국정농단으로 금이 간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95%의 촛불 민심으로 출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특검 수사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의 비리를 드러내 처벌하는 것 외에 망국적인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박 특검이 대검 중수부장 시절 부하였던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사사로운 인연으로 나라의 명운이 달린 수사를 그르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밝히는 것도 이제 특검의 몫이 됐다. 이들은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넣고 수사정보를 유출해 ‘부두목’ ‘행동대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검찰과 사건 관련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김 전 실장은 최씨와 차은택씨 등 사건의 주범들을 이미 2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12월 민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은폐·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등 사건의 핵심 피의자이다.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입성을 최씨가 막후에서 도왔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실망스럽다. 검찰은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을 각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을 최씨 공범으로 규정하고 재벌 총수들을 소환할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검찰에도 당부한다. 특검이 임명됐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 비리 의혹 등 남은 수사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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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올려다보기도 힘들 만큼 고압적인 광화문이 그토록 처연한 모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귀를 때리는 스피커의 울림이 멀리 보이는 화면과 전혀 맞지 않는, 각자의 외침과 노랫소리가 100만, 혹은 200만의 인파와 함께 뒤엉기는 혼돈 속에서 문득 치밀어 올라온 것은 깊은 서러움이었다.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광장을 메운 낯선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낸 것도 이런 서러움이며, 그들도 지금 목이 메고 있을까. 문득 스피커에서는 ‘길가에 버려지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노는 강력하나 일시적이고 이토록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토록 철저하게 질서있고, 차갑도록 뒷정리에 신경을 쓰며, 가족과 함께 유모차를 밀고 오게 하는 힘은 분노는 결코 아닐 것이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분노보다도 훨씬 더 서늘하게 깊고 무거운 그 무엇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버려진’ 서러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유전자에 각인될 정도로 소소한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국가, 좌측통행을 어느날 우측통행으로 바꿀 수 있으며 조의금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는지까지 결정해주는 국가, ‘한강의 기적’을 이끄는 엔진이었으며 사회경제 모든 분야를 베 짜듯이 효율적으로 지휘하는 국가. 그 국가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한낱 홑이불 뭉치에 불과했다는 자각이야말로 이 상실감과 서러움의 원인이 아닐까. 경외하면서도 미워하고, 그 무능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 존재를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국가가 사실은 한번도 ‘거기 없었다’는 사실이 이 열패감의 원인이 아닐까.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런 ‘버려진 서러움’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을 잃는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실패하였다고 생각했다. 메르스 창궐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생명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개성공단 폐쇄에서, 그리고 각종 사안들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말을 듣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공적 과정으로 국가가 ‘부재’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던지는 물음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며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법적 책임을 묻는 지점을 넘어선다는 의미이고, 포괄적이라 함은 청와대를 넘어서서 국가와 사회 전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의미이다.

청와대의 법적 책임은 물론 ‘입증의 책무’(onus probandi)를 진 검찰과 특검이 범법을 확증할 수 있는 지점까지만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법적 책임과는 달리 청와대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스스로의 결백과 여러 의사 결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국민과 동맹국가들에 납득시켜야 하는 또 다른 무겁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조사나 특검이 책임질 법적 절차 못지않게 중요하고 의미있게 지켜보고 평가해야 할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다른 축인 국회가 밟게 될 국정조사 과정이다. 나는 대통령의 사임이나 탄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명백하고 정직하게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박근혜 정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광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포괄성은 청와대의 범위를 넘어서 정부와 정당,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거버넌스 구조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라는 편리한 말로 뭉뚱그려지는 결과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특정 사익 집단이 어떤 경로로 공적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었고, 어떻게 공당(公黨)과 의회와 사회집단이라는 저지선을 돌파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재벌과의 상호침투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 편리하게도 준비하고 있는 ‘개헌’이라는 답변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손쉬운 해답일 따름이다.

이러한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당장 손쉬운 대답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많이 했던 말이 이러한 나라를 아들딸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바람이었던 것처럼 광장은 과연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을 것이며, 끊임없이 찾으려 할 것이다. 마치 ‘길가에 버려지다’가 이렇게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길.”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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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홈페이지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에 글을 올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의혹에 관해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굿판을 벌이거나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괴담이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결과적으로 의구심만 더 증폭시키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11분이 지난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최초로 서면보고를 받았다. 이후 10시15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전화로 지시하고 10시30분에는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시는 이것이 전부였다. 이후 안보실과 정무수석실·교육문화수석설 등으로부터 오전 10시36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14차례에 걸쳐 서면·유선보고를 받았지만 추가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16일 청와대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박 대통령이 근무 시간에 왜 숙소가 있는 관저에 머물렀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난리 상황에 박 대통령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면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청와대는 이에 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이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잠긴 지 5시간이 지났을 때다.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했다. ‘박 대통령의 7시간’ 규명은 특검의 몫이 됐다. 특검은 박 대통령뿐 아니라 청와대 주요 참모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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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농단에 연루된 청와대 참모진을 사퇴시킨 데 이어 총리 등 인적쇄신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31일에는 일정을 비우고 쇄신 방안에 대해 홀로 심사숙고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 공백 우려에 북핵 문제 등 주요 외교·안보 사안을 흔들림 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거국내각을 제안하며 구체적인 총리 후보까지 거론하고 있으며 최씨를 소환한 검찰에 조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최씨와 몇몇 청와대 참모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서둘러 파문을 덮으려는 심사이자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시민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울먹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시민이 선거로 위임한 통치권을 아무런 공직도 맡고 있지 않은 일개 민간인에게 넘긴 사람은 바로 박 대통령이다. 최씨가 재단 설립에서부터 대통령 연설문, 경제, 문화 등 온갖 분야의 국정에 맘껏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사람이 박 대통령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가 사안의 본질이다. 시민들은 최씨가 국정 시스템을 유린하도록 허용한 박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왜 대통령이 선을 넘어야 했는지 진상을 알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진솔한 설명과 사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러질 않았다. 최씨를 둘러싼 숱한 의혹 제기를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으로 일축했고 연설문 유출의 구체적 증거가 제시되자 형식적으로 사과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인식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결국 독립적인 수사 주체가 박 대통령을 성역없이 수사하지 않는 한 진상을 파헤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라는 설득력 없는 논리로 수사를 꺼리는 현재 검찰로는 진상 규명이 어렵다. 수사는 기소 전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음에도 정부·여당은 대통령 비호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헌법학자 출신의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도 자신의 저서에서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에 해당하지 않는 죄를 범한 경우에 수사기관은 수사를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미만이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에 불과하다. 사실상 국정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내치 외치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고 이선으로 물러날 것을 선언한 다음 특검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자신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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