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본격적인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성사됐다. 여야는 어제 세월호특별법과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등 이른바 ‘세월호 3법’을 일괄 타결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극한 갈등을 겪은 끝에 세월호특별법에 마침표를 찍게 된 셈이다. 국가적 참사 앞에서 수습의 핵심인 정확한 진상과 책임자 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이 반년을 넘겨 이제야 마련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생때같은 아들딸과 가족을 잃은 유족, 사경을 헤치고 나온 생존자들이 그간 겪었을 비통과 참담함을 헤아릴 길이 없다.

여야가 타결지은 내용을 보면 기존 ‘9·30 합의’에 세월호 유족의 참여를 일부 강화한 선이다. 우선 여야가 특검 후보군 4명을 특검추천위원회에 제시할 때 새누리당이 사전에 세월호 가족의 동의를 받도록 명시했다.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기소권 절대 불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에 막혀 결국 유가족들이 수사권·기소권을 포기하는 대신 요구해온 게 특검의 독립성·중립성 확보다. 특검 추천 과정에서 유가족의 직접적 참여가 관철되지 않아 아쉽지만, ‘유가족 동의’ 절차를 강제한 것도 ‘특검 중립성’을 담보할 만한 장치다. 특별법에 따라 17명으로 꾸려질 진상조사위의 위원장을 유가족 추천 위원이 맡고, 진상조사위에 동행명령권을 부여한 것 등도 조사권 강화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수준의 합의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겪었다. 여야가 진즉 진정성을 갖고 유가족과 대화를 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고립과 압박에 몰린 유가족들의 거듭된 양보 뒤에야 세월호특별법이 잉태됐다는 점에서 여야의 무책임과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침몰사고 199일째인 31일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풍선이 매달려 있다. (출처 : 경향DB)


온갖 진통과 숱한 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세월호특별법이 탄생하게 됐다. 최대 18개월에 걸친 세월호 진상 규명의 장정을 내딛게 된 것이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란 목표에 이르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협상 과정에서 보여온 태도에 견줘보면 우려부터 앞선다. 증인 문제로 세월호 국정조사를 굴절시켰듯이 진상조사위의 구성과 조사활동을 갖은 이유로 무력화하고 훼방하는 행태를 재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가리지 않고는 참다운 교훈을 얻을 수도, 해법을 마련할 수도 없다.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는 사고의 원인과 구조 실패,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진상조사위와 특검이 철저하고 다각적인 조사로 ‘세월호 진실’을 파헤칠 수 있도록 여야 모두 진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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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67일째인 어젯밤, 특별법 제정안에 대한 여야 대표 간 합의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여전히 10명의 실종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은 심리적 치료와 치유 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농성 중인 참담한 상황에서 기대와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도대체 왜 300명이 넘는 생명이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져가야 했는지에 대한 진실 발견과,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단죄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직 대표 간 합의에 대해 양당 의총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정한 첫발’을 이제 겨우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냉정하게 바라보자. 왜 이렇게 늦어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하나다. ‘정치적 계산’을 빼면 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우리 모두는 분노와 참담함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분노와 위로의 공감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대통령의 책임’ 문제가 중심에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쪽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주장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심지어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유가족을 ‘대통령 공격하는 매국노’라며 비난한다.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구조하지 못하게 한 주범’이라며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그리고 여당이 져야 한다.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유가족의 분노와 울분을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었다면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었을 리 없다. 두 번째 큰 책임은 야당에 있다. 당내 분열과 다툼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 등 내홍을 겪던 야당은 정부·여당 못지않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고 초기엔 철저한 무기력과 침묵으로, 대중의 질타를 받은 뒤엔 정치적 투쟁으로, 세월호 못지않은 ‘급변침’의 모습을 보였다.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규명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지난 반년간의 줄다리기 중에 사라져버린 증거들과 심경이 변화된 참고인들, 서로 공모·결탁해 말을 맞춰버린 관계자들로 인해 진실 발견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보다 더 중요할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절차가 시작되면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려 할 것’이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불안과 공포, 쉽게 합의해 원만하게 진상조사가 이루어져 ‘대통령과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야당의 두려움과 공포가 만나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30일 저녁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여야 합의사항을 책상 위에 놓은 채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반면(사진 위쪽)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원내지도부는 굳은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 (출처 : 경향DB)


이 두 공포가 만들어낸 ‘세월호 정치’는 ‘적폐’의 일부인 해운비리 관련 정치인과 역대 정권 고위 공직자들에게 면책과 도피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반면에, 졸지에 참극을 겪은 피해자 가족에겐 ‘지옥’에 갇힌 시간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다. 가족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 앞에서 어떤 일이라도 해보겠다는 단식이 정치행위로 오인받고, 폭식 퍼포먼스라는 치졸한 조롱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정치인이 마련한 술자리 끝에 또 다른 약자인 대리기사와 행인을 폭행한 ‘범죄 혐의자’로 전락되고 있다. 무엇보다, ‘단원고 유가족’과 소위 ‘일반인 유가족’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반년간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여당 그리고 야당의 책임자들과 의원들은 ‘가해자’였다. 이제 더 시간을 끌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양측 모두 대립과 공격의 관행을 내려놓는 용기와 겸허함을 보여야 한다.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의 대표자’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지지세력의 비난과 찬사 앞에 비겁한 동조와 연기를 보이던 습관을 거두어야 한다. 분명히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전과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보다, ‘세월호의 진실’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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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다. 세월호특별법에 막혀 공전을 거듭해온 국회도 어제 저녁 정상화됐다. 5개월여를 끌며 극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 세월호 정국이 여야의 벼랑 끝 타협으로 일단 정치적 출구를 마련한 모양새다. 하지만 여야의 합의안은 또다시 세월호 유가족들의 뜻을 배제한 채 이뤄졌다. 유가족들이 여야의 합의안을 공식 거부, 세월호특별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는 8월19일 ‘2차 합의안’을 기본으로 특별검사 선정 과정에서 야당의 추천권을 좀 더 강화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구체적으론 ‘여당 몫 특검추천위원 2명에 대한 야당·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골자로 한 2차 합의안에 ‘특검추천위원회가 특검 후보 추천 시 여야가 합의한 4명 중 2명을 추천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당초 유가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으로 내놓은 것은 ‘여야와 유가족이 합의한 4명’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도 내락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청와대의 입장을 대변한 친박 강경파들의 반대로 “유가족의 참여는 추후 논의한다”로 후퇴했다.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기소권까지 포기하며 최소한의 진상규명 장치를 바라는 유족들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결과다. 사실 이번 합의를 뜯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2차 합의안’이 사실상 관철된 모양새다. 이런 수준의 세월호특별법을 만드느라 그토록 극심한 갈등을 겪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는지 허탈할 지경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오른쪽 두번째)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오른쪽 세번째)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발표한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타결은 ‘수사권·기소권 절대 불가’라는 박 대통령의 고집 앞에서 현실적으로 관철 방안이 없는 세월호 유족들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서면서 마련됐다. 결과는 유가족들이 이대로 가다간 특별법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수사권·기소권’을 포기하며 양보안을 내놨으나, 이마저도 묵살당한 셈이다.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는 취지와 목적은 분명하다.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한 명백한 진상규명과 유사한 비극을 막는 재발방지책 마련이다. ‘2차 합의안’ 때도 한계로 지적됐듯이 특별법의 가장 핵심인 진상조사위의 수사권이 빠짐으로써 과연 세월호 참사의 명확한 진상과 책임 소재를 밝혀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더욱이 특검 추천권 강화 부문도 ‘동의’ ‘합의’ 등의 조건이 달려 있다. 새누리당이 유족의 동의를 존중하지 않고, 합의를 핑계로 야당의 특검 추천권 강화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애초 유가족들이 ‘2차 합의안’을 거부한 것은 특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큰 이유였다. 이번 여야의 합의안 역시 이러한 유가족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하다. 여야가 “추후 논의”로 미봉한 ‘특검 후보군 추천 과정에 유가족 참여 보장’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특별법으로는 ‘세월호 이후’로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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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원을 갔다가 연락도 없이 늦을 때가 있었습니다. 큰 애와는 다르게 휴대폰 배터리 충전을 제때 해놓지 않는 탓에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으면 혹시라도 흉한 일을 당했을까 초조해져 애타게 아이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4월16일 참사가 발생하고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이러한 기다림과 백배 천배의 간절함으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간절함은 우리의 목숨줄까지 끊어 놓을 수도 있겠다는, 거의 죽음의 문앞에까지 갔다가도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날들이었습니다.

팽목항의 시계는 이렇게 늘 24시간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9월30일이 유가족이나 실종자들에게 168일째의 ‘4월16일’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매번 미뤄지는 수색완료 목표 예정일을 마주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몸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의 약속을 미루고 이미 되었다고 믿었던 일들이 아직 안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려주었을 때, 과연 제대로 수색이 이뤄지고 있나 화가 나지만 마지막까지 믿고 맡겨야 할 이들이기에 실종자 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릅니다.

세월호에는 아직도 수색을 못한 객실이 있습니다. 내려앉은 옷장들과 이불 틈바구니에서 지금도 매일 아이들의 유품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객실도 다 수색한 것이 아니고 유품도 계속 나오고 있으니 실종자 가족은 매일 오늘이라도 아이가 나오겠지 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구해주지 못했는데, 시신 수습이라도 해야, 아니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일도 못하면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나중에 아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기에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박은희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출처 : 경향DB)


4월16일 이후 아이를 찾은 부모들이 하나둘 진도를 떠나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도 정부의 구조와 수색은 늘 답답했고 주요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닌 이야기들로 분주했습니다. 이제 10명의 실종자 가족만이 남았으니 과연 국민과 정부와 언론은 우리를 얼마나 기억하고 함께 애를 써줄까 생각합니다. 진도체육관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곳에 가득 찼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의 기억 속에서 버틸 힘을 찾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어봅니다. 형제들끼리 투닥거리며 싸우다가도 누가 형이나 동생에게 해코지를 하면 성을 내며 한편이 되어줍니다.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유가족과 실종자에게 필요한 것은 ‘저희도 한편이에요’ 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글로 또는 집회에서 그리고 분향소나 진도 방문으로….

매주 금요일에 팽목항으로 출발하는 ‘기다림의 버스’를 타는 것은 ‘저희가 함께할게요. 제대로 수색이 되는지 함께 지켜봐 줄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오늘도 가늘어진 숨을 힘들게 헐떡이며 쉬고 있는 이들에게 인공호흡기가 되어줄 겁니다. 10월3일, 전국에서 팽목항을 향하는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박은희 |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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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는 이유가 있다. 진실은 말이 있어야 존재한다. 신문에 활자화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된다. 어떤 언어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적과 동지, 이익과 손해, 정의와 부정의가 달라진다. ‘신자유주의 좌파’ 정부에서부터일까. 나는 국어 해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녹색 성장’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권이 절정일 줄 알았는데, 이제 더 이상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 아닌 것 같다.

대필과 표절은 사법적, 윤리적 범죄행위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캔들’이라고 한다. 성폭력은 현행법상 명백한 범죄인데 ‘실수’라고 말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우선인데, 왜 다들 대책위원회를 만드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고위직 인사청문회에서 주로 문제되는 사안들(투기, 탈세, 병역 비리, 학력 위조)도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남들 다 하는데 재수 없어 걸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풍조에서 “이 정도면 통과”, “털어서 나는 먼지”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범죄는 사실 유무로 결정하는 것인데, ‘이 정도’는 어디서 나온 잣대인가.

학위 논문 베끼기, 서류 조작, 폭력 사건 은폐, 뇌물 수수, 피해자 협박 등 날만 새면 전과를 쌓는 이가 있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 하도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 잘 아는 사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상한 일은 그의 존재가 아니라 지인들의 대응이다. 사람들은 그를 성토하면서도 결론은 언제나 “악착같이 살다보니… 언젠가 정신 차리겠지”로 ‘중지(衆智)’를 모은다. 경찰과 해당 대학에 법규에 맞는 절차를 밟도록 하면 그만인데, 신고는 하지 않고 욕만 해댄다.

우리는 도덕 불감증이 아니라 도덕의 개념 자체가 바뀐 시대에 살고 있다. 후안무치가 도덕인 시대다. 세월호는 ‘도덕의 재구성’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사건 발생, 이후 대응방식, 막말 정국까지 쇼크의 연속이지만 최근 ‘세월호특별법’에 이르러 나는 결국 인식 불능 상태에 빠졌다.

대통령이 특별법에 ‘신경’ 쓰는 것이 삼권분립 위반, 권력 남용이라는 주장은 말인지 소리인지 어이가 없다. 그것이 권력 남용이라면 부디 행사했으면 한다. 발언자의 의도된 무지이기를 바랄 뿐이다. 원래 삼권분립은 분권보다는 협치(協治)에 가까운 개념이다. 어쨌든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새로운 언어는 여야가 혹은 정부·여당이 유가족과 세월호특별법을 “협상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의무교육 과정에서 배상과 보상의 구별을 가르친다. 국가폭력, 범죄, 천재지변 발생 시에는 피해자에게 배상이나 보상을 해야 한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피해는 이미 발생한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피해를 최대한 구제(救濟)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법질서의 기본이다. 세월호 탑승자들과 그 가족의 피해는 공동체의 책임이고 이는 무조건적 당위다. 그런데, 협상이라니!

유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과 협상은 다르다. 협상은 동급 행위자 간의 일이지, 가해자와 피해자 그것도 일방적 피해자에게 선심 베풀 듯 제안할 일도, 피해자가 쟁취할 사안도 아니다. 유가족은 아무런 의무가 없다. 타협과 협상은 힘의 균형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바람직한 정치지만, 지금 정국에서 ‘협상’은 피해자가 무슨 요구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와 여당은 앞장서서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을 제정하면 된다.

새누리, 일반인 희생자 유족 면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오른쪽) 등 원내지도부와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왼쪽)이 28일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협상’은 이 문제에 대한 정부·여당과 지지 세력의 세월호를 대하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아픔 이용돼… 유가족도 양보할 수 있어야”라고 말했다.

나는 세월호의 고통이 이용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공유되었는지부터 묻고 싶다. 누가 누구를 이용했는가? 같이 아파한 사람은 야당에 투표하고 그로 인한 여당의 아픔(?)이 안타까운 이들은 여당에 투표했다. 덕분에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유가족의 고통을 십분 이용한 세력은 바로 현 정권이다. 이용한 정도가 아니라 무시하고 모욕했다.

유가족이 양보해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가족의 죽음. 그 이후의 삶, 우주,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더 양보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받아내야’ 저잣거리 표현으로, 속이 후련하겠는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양보하는 것이 균형인가. ‘우리’는, 사회는,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양보했는가.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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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특별법에 따라 구성될 진상조사위원회의 권한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하다고 보았던 최근 여야 합의안도 거부한 것이다. 충분히 고생한 유가족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접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가 죽어갈 때 구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벗고 싶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없기에 억울한 죽음의 이유라도 밝히는 것이 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중립적인 사람, 정부와 여당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아이가 죽은 뒤에 뼈와 살이 갈려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도 이런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들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그것은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신 국민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전에도 이렇게 엉망이었습니까? 하필 우리 아이가 죽었지만 다른 누군가도 이렇게 죽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얽히고설켜 서로를 봐주는 부패의 사슬을 어떻게든 끊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의 방법으로 가능한가요?”

지난 21일 세월호 참사 가족 총회가 끝난 다음날, 국회 농성장에서 세월호에 자식을 잃은 아버님, 어머님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남들이 지나치다 싶어도 고집스레 원칙을 주장하는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다른 사람은 이런 고통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연민, 생각보다 엉망이었던 나라에 대한 걱정과 분노, 이런 것들이 이분들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결정을 접하고 수긍하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날 밤, 선배 한 명도 오랜만에 필자에게 전화해서 ‘세월호 유가족들 너무한다’고 했다.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이제는 그만하지’라는 것이었다.

응답하라, 청와대 (출처 : 경향DB)


그런데 과연 유가족들이 너무한 것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고등학생 중 7.7%만이 그렇다고 답했고, ‘부정부패가 철저히 감시되고 있고, 사라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고등학생이 6%에 불과하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세대가 직장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세대는 부정부패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유가족들이 오히려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 것 아닌가. 부패로 사회의 감시망을 약화시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나서야 하는 상황 아닌가. 필자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났던 분들 중에 소위 ‘유모차 부대’-필자는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다-라는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그동안 유기농으로 이유식을 먹이고, 좋은 유치원과 학원을 찾아 아이들을 보내면 좋은 부모가 된다고 생각했다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자신들의 아이를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이런 ‘각자도생’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고, 부정과 부패로 감시기능이 마비된 현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다 세월호 유가족처럼 세월호 참사를 대할 수도 없고, 소위 ‘유모차 부대’처럼 나서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돈보다 생명이 중시되고, 부정과 부패가 철저히 감시되고 처벌될 수 있다면 그 이익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돌만은 던지지 말았으면 한다.


박주민 | 변호사·세월호 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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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 40일째인 22일 병원에 실려갔다. 김씨의 혈압은 90/60, 혈당은 57-80, 체중은 47㎏으로 혈압·혈당·체중 모두 정상치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제대로 단식을 했으면 벌써 (병원에) 실려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던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 말대로 됐다.

김씨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해온 이유는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것이다. 다른 세월호 가족들처럼 김씨 역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진실을 은폐할 동기가 있다고 의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진상조사건, 특검이건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가급적 자유로운 인사들이 진실 규명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김씨 등이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야가 재합의한 방안대로 특검을 구성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될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특검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무수한 의혹과 의심이 뒤따를 것이다. 세월호 가족과 정부·여당 사이에 팬 불신의 골이 이렇게 깊다. 정부·여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정부·여당이 그렇게 만들었다. 유병언을 세월호 참사의 몸통이자 ‘절대악’으로 만든 검찰은 유씨가 사망한 지 40일이 넘도록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세월호가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기까지 유씨가 책임을 져야 할 어떤 일을 했는지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다.

전대미문의 사고 발생 직후 7시간 동안 대통령과 청와대가 시간대별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는지 아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정부·여당은 그에 관한 사항을 조사·수사 대상에서 한사코 배제하려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오른쪽)이 24일 오후 단식 농성 중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된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입원하고 있는 서울 용두동 동부병원 병실을 찾아 김씨의 손을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당 의원은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을 ‘노숙자’로 비하하고, 호통친다. 여당은 ‘세월호 참사=교통사고’를 공식 입장으로 내세운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고, 자신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도 없는 정부·여당을 세월호 가족들이 신뢰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문제의 원인은 불신이다. 불신의 원인 제공자가 정부·여당이라면 해결 방법 역시 불신을 불식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진상조사위건 특검이건 가족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사·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어떤 조사·수사 결과가 나오건 가족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가족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로 진상조사위건 특검이건 구성하면 된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박 대통령은 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김영오씨를 하루빨리 만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야 한다. 인간적 존중과 배려가 깔린 소통의 온기는 불신을 녹이는 첫걸음이다. 거창한 명분 따위는 다 제쳐두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자유롭게 무리지어 오가는 청와대 앞길에서 김씨가 경찰에 가로막히는 풍경을 보는 건 대통령의 덕목 운운하기 앞서 인간적으로 민망한 일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가족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제 뜻을 관철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마무리되면, 세월호 가족의 목소리가 배제된 침묵의 시간이 오면 이 사회는 더 평화로워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했다. 사회적 분열의 치유와 통합, 평화는 배제와 억압, 강요된 침묵의 결과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는 의미로 읽힌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통합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의 ‘통합’은 어떤 것인가.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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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생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 40일 만인 어제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씨는 입원 뒤에도 수액 주사 외에 식사는 거부하고 있다. 진상규명이 가능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걸 못 보고 여기서 (단식을) 멈추면 유민이를 볼 낯이 없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안타깝고 참담할 따름이다.

‘유민 아빠’가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은 7월14일이다. 당초 예상한 단식 기간은 여야가 세월호특별법 처리 시한으로 합의했던 7월16일까지였다. 그러나 특별법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면서 사흘 하려던 단식이 40일에 이르렀다. 그사이 김영오씨는 57㎏이던 체중이 47㎏으로 줄어들 만큼 쇠약해졌지만, 달라진 건 없다. 400만명 가까운 시민이 ‘수사·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했으나 정치권은 외면했다. 무책임한 집권세력과 무능한 야당은 ‘그들만의 합의’를 가족에게 내밀며 동의를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0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왔던 김영오씨가 건강이 악화되어 22일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의료진은 김씨가 근육 손실이 불가피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김씨는 의료진의 미음 공급을 거부하며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경향DB)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렇다고 정치 실종만 탓할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은 ‘유민 아빠’의 고통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에는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 저마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130일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많은 시민이 세월호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피로감 운운하며 수수방관하고, 일각에선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세월호 가족이 요구하지도 않은 ‘피해자 전원 의사상자 지정’ 같은 유언비어가 떠도는 현상은 공동체의 건강성을 의심케 한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더 비정하고 잔인해질 셈인가.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지만, 세월호 가족은 피해자다. 피해자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 피해자가 한 달 넘게 단식하다 병원으로 실려갈 때까지 집권자가 돌아보지도 않는 사회는 정상적이라 말할 수 없다. 다행히도 이러한 ‘비정상성’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동조 단식에 참여한 시민이 2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는 김영오씨와 시민들이 단식을 멈추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공동체의 각성이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낼 때 그날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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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 행렬이 끝나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이 단식을 시작한 지 벌써 39일이나 지났다. 이미 육체적 한계를 초과한 상태이다. 단식은 항의행동의 마지막 수단이며 목숨을 건 비폭력 비무장 행동이다. 이 단식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단식 행위가 시간이 지날수록 지리멸렬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강고해지고 연장되고 있다는 데 있다. 시민단체에 이어 학계, 문화예술계, 교육계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왜 이런 단식으로까지 나가게 되었을까?

이번 단식은 다른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무책임과 무능, 통치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대통령은 4·16사건 발생 한 달 만에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유가족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3일 후 눈물까지 보인 담화를 통해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런 대통령의 뜻과 말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유민 아빠를 면담하고, 결단을 해야 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특별법 거부와 반대 의지가 또한 세월호 정국을 불통으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노골적으로 4·16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의원은 50명이나 된다. 7월2일부터 유족들이 벌인 서명 결과이다. 특히 4·16사건 국정조사위원장은 내놓고 특별법 반대 의견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희생자를 ‘조류독감’에 빗대고, 단식 중인 유족들을 ‘노숙자’로 비하하고, 이번 사건이 단순한 ‘교통사고’라고까지 막말을 했다. 김무성 대표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또한 4·16 특별법 제정은 특혜를 받기 위한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무감각과 무관심 역시 사태 악화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의사상자 지정과 같은 특혜를 위한 것이라는 악소문과 악선전이 전파되고 있는 사정 역시 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는 방해물이 아닐 수 없다. 유족들은 이런 특혜를 원하고 있지 않다.

이번 국민단식의 기본 정서는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국민감정의 단호한 발로이다. 시민 개개인이 향유해야 할 헌법적 가치, 국민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 인간안보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시민각성과 양심으로부터의 도덕적·윤리적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이다.

여야 졸속야합에 대한 불만과 협상 창구 변화로 인해 상호대치가 장기화될 경우 유가족들의 육체적 피폐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시간의 경과는 ‘희생의 기억’이 아니라 대중을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이런 구차한 꼼수를 노리는 보수정치세력은 시간의 경과만을 기대하고 있다. 결국 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불의와 부패를 누르고, 정의와 새로운 평화생명의 안전질서를 실현할 것인가, 위험사회의 극복을 위한 재난예방의 새로운 질서를 시민참여를 통해 실현할 것인가 여부는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권과 책임추궁을 위한 기소권을 보장하는 올바른 특별법 제정 여부에 달려 있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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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협상과 결렬을 반복하며 대립하던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했으나 유가족의 반발로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어제 핵심 쟁점인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문제에서 국회 몫 위원 4명 가운데 여당 몫 위원 2명을 세월호 사고 유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 추천키로 했다. 이는 특검을 야당 추천인으로 임명하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당초 야당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검을 누구로 할 것인가의 핵심은 빠진 채 특검추천위원 문제에 맴돈 결과다. 야당 추천 특검이었으면 거둘 수 있는 성과와 비교할 때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차 합의 때와 같은 최악은 피했지만, 여전히 최소 수준의 합의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는 집권세력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도 변화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집권당으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세력이라면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그러나 7·30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찰적 자세를 버리고 세월호 국면을 조기에 끝내는 데만 집중했다. 그 때문에 여야 간 협상이 ‘가장 효과적인 진상규명 방안’보다 그저 무난한 방법을 찾아 절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야당도 협상력 결여, 지도력 부족, 신뢰 상실 속에서 새누리당에 이러저리 휘둘리다 길을 잃고 여기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주호영(왼쪽),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임시국회 종료일(19일)을 이틀 앞둔 17일 오후 교착상태에 빠진 세월호특별법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회동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유가족들은 이번 합의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1차 합의에서 형식적 절차만 조금 수정한 정도로는 애초 유족 측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도 1차 합의의 틀을 유지한 채 미세조정하는 협상으로 일관했다. 여야 합의와 유족 측의 거부가 반복되는 이 과정은 야당의 실패를 넘어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특별법도 여야 간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타협이 불가피하다. 유가족 측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적극적으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는 특검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여야 합의라면 그런 원칙을 반영했다고 당당히 설득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협상에 많은 시간을 낭비했지만, 수용 가능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여야는 이번에 정치적 역량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적 거부를 당한 여야는 각자 자기 역할을 성찰하며 이 난국을 풀기 위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유족 측의 거부는 정치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의 기본을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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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고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걸음걸음에 ‘세월호 메시지’가 강렬하다. 교황은 방한 첫날 서울공항에 나온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맞잡고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15일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전 따로 세월호 유족을 만났고, 이들에게서 받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진행했다. 미사에서는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16일 광화문광장 시복 미사 집전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한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다르자 차에서 내려 이들의 얘기를 들어줬다. 교황은 세월호 사고로 딸을 잃고 단식 농성 중인 김영오씨의 두 손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 세월호를 절대 잊지 말아달라”는 김씨의 간청에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호 참사를 초래한 정부의 총체적 무능에 분노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책임 규명의 정도를 외면하는 정치권에 절망한 세월호 가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눈물을 닦고 위안을 얻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이 대통령보다 수천리를 날아온 교황을 더 자주 만날 수 있고, 그에게 희망을 의탁하는 현실은 잔인하고도 처연하다. “아이들이 왜 그토록 어처구니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세월호특별법”을 교황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참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민 아빠' 김영오 씨와의 만남 (출처 : 경향DB)


세월호특별법을 만들려는 취지와 목적은 명료하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정확한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실질적인 수사권이 보장되지 않는 세월호특별법을 유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재협상 결정을 했지만, 실은 유가족과 국민이 여야 양당의 합의를 파기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4개월이 넘도록 진실을 밝히는 첫걸음조차 못 떼고 있다. 임시국회가 19일로 종료되지만, 세월호특별법은 교착 상태다.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합의 파기만 문제 삼으며 정치적으로 야당의 ‘자책골’을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세월호특별법을 매듭짓지 않고는 정부·여당이 고대하는 ‘세월호 이후’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 정국 파탄의 부담도 종국엔 여당에 돌아간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려는 각종 법안도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다.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여당이 풀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의 요구는 한 가지, ‘성역없는 진상 규명’을 담보하는 세월호특별법이다. 진실과 책임 규명을 회피·모면하려는 게 아니라면 새누리당이 그러한 세월호특별법 만들기에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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