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12일 시작됐다. 청문회는 시민의 사법부 통제를 위한 민주주의 절차이자 향후 6년간 사법부를 이끌어갈 인물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장치이다. 김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전관예우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은 약자에게 편안하고 강자에게 준엄한 사법부를 원한다”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의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회 시작 전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권호욱 기자

김 후보자 발언에는 돈과 권력이 없어 재판에서 억울하게 지는 일을 없애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으로 추락한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법개혁의 핵심 과제이자 시민들이 새 대법원장에게 바라는 바다. 문제는 김 후보자가 이처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지만 청문회는 보수야당의 인신공격성 질의로 시민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 숙청, 피의 숙청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 등은 김 후보자가 진보 성향 판사들이 만든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와 그의 후신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는 것을 문제 삼아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대중적인 판사 연구모임이다. 야당 논리대로라면 보수 성향에 서울대 법대 엘리트 법관들이 회원인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판사들도 앞으로 중용될 수 없다.

김 후보자가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법원장으로 지명됐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과 법제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대법관 출신 아닌 대법원장이 임명된 전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50세 연방대법원장이 임명됐다. 김 후보자는 58세이다. 김 후보자가 대법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법개혁에 적임일 수 있다. 기존 대법관 상당수가 김 후보자의 선배이므로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더라도 제왕적인 권한 행사가 어렵다.

흔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환경미화원이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해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보호해왔다. 시민들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사법부, 대법원장에 의해 통제당하지 않는 법관을 원한다. 오늘도 청문회가 있다. 이에 대한 김 후보자의 명확한 입장과 사법개혁 청사진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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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문화예술인과 판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처지는 확연히 다르다. 김 전 실장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양 대법원장은 임기가 끝나가지만 여전히 3부 요인인 사법부 수장이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달 28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추가 조사해야 된다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강경했다. 그는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라고 해서 일반 공무원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텐데 왜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두 국가 예산으로 구매해 사무실에 비치한 것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연루자들은 특검 수사로 기소까지 된 마당에 사법부만 ‘성역’으로 둬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파일 제목만 읽은 뒤 열람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조사방식도 무시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정작 판사 블랙리스트 당사자인 대법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최종적으로 심리한다. 1심 법원이 3일 재판을 종결하고 이달 중순쯤 선고한다. 자신들의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대한 사법부가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양 대법원장이 입장을 발표하던 그날, 김 전 실장은 법정에서 신문을 받았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몰랐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김 전 실장에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비서실장이 알지 못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가능하냐”며 날을 세웠다. 사법부에도 뼈아픈 대목이다.

차성안 판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법부가 블랙리스트 논란을 묻어두고 간다면 내가 판사의 직을 내려 놓을지를 고민하겠다”고 했다.

지난 4월 말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 방법을 제시하며 “저의 법적 판단이 틀렸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사직 하겠다”던 오모 판사도 있었다. “절망스럽다” “이렇게 끝나고 마느냐”는 한숨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사회부 |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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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사 탄압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법관 임관식에서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은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갈파한 경구로서, 우리 모두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젊은 법관 107명이 처음 법복을 입고 들은 ‘대법원장님 말씀’은 과연 사실일까.

이 말은 발자크의 소설 <창녀의 영광과 비참(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입니다. 사법부의 현재 관행을 때려 부수고 다른 바탕 위에 새롭게 지으십시오. 하지만 사법부 신뢰를 멈추진 마십시오.’ 현실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섞인 문장이라고 한다.

파리8대학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예영 서울대 교수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발자크는 사법권이 얼마나 권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고 부패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명성, 출세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야심, 그리고 권력층의 이해관계와 명예가 얽혀 있어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판사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다.”

지난 6일 대검찰청의 조각작품 ‘심흔 95-1’을 두고 촬영한 대법원이 과녁에 든 표적물처럼 보인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양 대법원장(과 그의 비서업무를 하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하필이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발자크의 소설을 찾아내 인용하면서, 발자크의 말이라거나 경구라고까지 표현한 이유가 있을 테다. 문제는 이들의 원전 비틀기 대상이 프랑스 대문호의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헌법의 핵심 구절을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양 대법원장은 제왕적 인사권을 방어하기 위해 ‘법관의 독립’이 아닌 ‘법원의 독립’을 말해왔다. 이날 임관식에서도 “법관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의 구성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1항)를 뒤집은 것이다. 이런 해석이라면 제헌헌법에서는 ‘구성된’ 대신 ‘조직된’이었으므로 판사가 법원의 조직원이 된다.

헌법 제5장 법원(101~110조)을 관통하는 핵심은 ‘법관의 독립 보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에서는 법관의 독립 상대가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재판의 독립’으로 바꾸고, 그 상대도 ‘외부의 부당한 통제’로 축소시킨다. 내부의 통제가 없다는 것인지, 있어도 그만이란 것인지 애매하다.

그리고 양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라고 신임법관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헌법 130개 조항 어디에도 ‘명백하게’ 재판의 독립을 선언한 구절이 없다. 우리 헌법이 선언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며 그 결과가 ‘재판의 독립’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양심에 바탕을 둔 법관의 독립을 선언한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마저 미묘하게 왜곡된다. 대부분 학자들은 ‘헌법과 법률을 기초로 양심에 따라’라고 해석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라고 쉼표 하나를 얹어 법관의 양심을 3분의 1로 깎아내린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거쳐 나온 그의 발언이 이것이다. “법관은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지난 6년 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의 헌법 해석이다.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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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자료 등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판사들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김모 전 심의관 컴퓨터에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정리한 일종의 사찰 파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찰 파일에 관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발령 2시간 만에 행정처에서 인사조치당한 ㄱ판사는 이 파일 관리 업무도 맡으라고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과거에도 설이 무성했다.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의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서 법관의 88.2%가 대법원장 등의 뜻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보직 등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다.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한다. 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운용한 것이 확인되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탄핵이 불가피하다. 양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존재 여부를 떠나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거론된 것 자체가 사법부엔 치욕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사법개혁 방해 의혹을 조사 중인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블랙리스트 관련 진술을 판사들로부터 확보하고도 쉬쉬하면서 의혹 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 파일이 있었다는 컴퓨터를 당장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 등으로 복원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양 대법원장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벌인 판사 통제 작업의 실체가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나 검찰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최선은 지금이라도 양 대법원장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과 사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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