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3일. 학생의날을 맞이하여 교사들의 교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해결 및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외쳤다.

2015년 이후 대중 페미니즘 운동은 대체로 익명의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운동의 형태였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을 때 여성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2차 가해, 무고죄 고발, 그리고 조리돌림이었으므로 이는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미투에 이르러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스쿨미투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에 학생들은 진학과 취업 등을 빌미로 2차 가해를 당해왔다. 그들의 싸움은 이런 현실적 위협을 감수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페미니즘을 그저 ‘배부른 투정’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지금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젊은 여성들을 그저 낯선 존재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 등이 주최한 ‘스쿨미투’ 집회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교육 당국의 책임있는 자세와 대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의 한 진보단체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강의가 끝나고 한 여성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중학생 딸이 최근 혜화역에서 열렸던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딸의 정치적 행동을 존중하는 어머니로서 그 서울행을 막지는 않았지만, 시위 다음날부터 그분이 즐겨듣는 한 뉴스 방송이 혜화역 시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걱정은 심해졌다.

디지털 성범죄 편파수사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집회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그 방송은 3차 시위 직후 3일 연속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에서 혜화역 시위에 대해 언급했다.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를 비롯하여 진행자 자신이 워마드 사이트에서 관찰한 몇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극우 단체가 혜화역 시위에 개입되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토로했던 것이다.

깜짝 놀란 그분은 딸에게 방송을 들어보라고 권했지만, 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모녀 사이의 갈등이 심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던 와중에 우연히 페미니즘 강의를 듣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강의를 들어보니 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갑질 폭력의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연일 충격을 주고 있는 한국미래기술의 양진호 회장은 디지털 성범죄와 전쟁을 벌여온 청년 여성들이 끊임없이 지적했던 웹하드 카르텔의 중심에 있는 자였다. 그는 웹하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로 ‘몰카 헤비 업로더’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여 돈을 벌었고, 디지털 장의업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물을 올려서 돈을 벌고, 지워주면서 또 돈을 벌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번 돈이 1000억원이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위력은 그렇게 번 돈으로부터 나왔다.

지난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내용을 방송한 후에도 한국사회는 침묵했다. 찍은 사람, 올린 사람, 받아본 사람, 그렇게 번 돈을 나눠 먹은 사람,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일 터다. 지금 여당에서도 ‘갑질 폭력’만 언급할 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물로 벌어들인 돈이 도대체 어디까지 흘러들어간 것일까?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단 폭력과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는 청년 여성들에 대해 기성세대는 너무 쉽게 겁을 먹는다. 어쩌면 그들이 적폐청산의 핵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양진호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성적폐야말로 한국사회 적폐의 설정값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그대로 두면서 갑질만 해결할 수는 없다. 그 갑질은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로부터, 그렇게 여성의 존엄을 가볍게 여겨온 문화로부터 가능해지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겁을 먹어야 할 것은 청년 여성들의 날것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들의 성적폐 카르텔을 가려온 그들의 세련된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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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27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강철보다 단단한 벽을 넘어 너무나도 어렵게 그러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힌 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이자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져 피해자가 감추어야 할 정조에 관한 죄일 때, 가문의 수치이자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당할 때, 바로 그 일이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군사주의가 공모한 어마어마한 성폭력 범죄행위임을 낱낱이 전 세계에 알린 그날이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국가가 모두 외면하던 시절, 피해자가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시작한 그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했던 그래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폭력과 강간캠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 인권규약을 다시 쓰기 시작했던 그날, 그 정신을 기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국가기림의 날로 지정된 그날, 대통령이 “우리 자신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가 전체 여성들의 성폭력과 인권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한 그날, 대한민국은 당사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빚졌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선언한 그날,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고,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뻔뻔하게 선언했습니다. 사회적 타살을 감내하며 어렵게 나온 피해자들의 입을 다시 봉하는 판결을 감행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첫 정부 기념식을 마친 뒤 피해자인 김경애 할머니에게 인사하자 김 할머니가 문 대통령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날은 코소보, 예멘, 우간다, IS 성폭력 생존자들이 기림일을 맞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해 각자의 경험을 증언하고 손잡던 날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이 나서서 조직적 성폭력의 의미를, 현실을, 그 참혹한 결과를 알리고 저항하며 세상을 바꾸자고 결의하던 날이었습니다. “한국의 강인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분들은 저희의 영웅이십니다. 견디기 힘들고, 가슴이 찢어질 듯하고, 끔찍하고, 고문과 같고, 위안이 되기 어려운 아픔과 함께 살아야 하는 절망의 깊이 속에서도 여러분들은 저희에게 영감이 됩니다”라고 말하며 연대를 다지던 그날, 증거를 인멸하고, 피해자들에게 입증을 요구하고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발뺌하고 피해자의 행실과 자격을 묻고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심지어 없었던 일, 꾸며낸 일, ‘거짓말쟁이’ ‘더러운 ○○’라며 온갖 욕설과 수치심을 안겨 준 가해자들, 그리고 그 옹호자들과 힘겹게 싸워온 지난 세월을 서로 나누던 그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 할머니께서 여성들의 ‘광복’과 명예회복의 의미를 다시 확인시키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피해자를 피의자로 완벽히 둔갑시킨 판결문으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를 구분하며, 피해자의 행실을 의심하고 증언의 신빙성을 따지는 최악의 2차 가해로 전 세계 용감한 생존자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거리에 나섰습니다. 단순히 안희정씨 사건의 재판관들에게 항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가해행위, 편파수사, 편파판결, 편파보도를 규탄하려 모였습니다. 불법촬영·유포·소지·방조자들과 웹 하드 업체, 쾌락산업이란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여성 몸을 거래하는 자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처벌, 여자 화장실마다 뚫려 있는 ‘구멍’들의 실체 규명, 포털 사이트 댓글만 봐도 접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끔찍한 욕설과 비방에 대한 반성과 자제, #미투운동 이후에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는 무지하고도 공고한 남성연대체의 해산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최근 페미니즘이 왜곡되고 과격하게 변형되었다고 말씀하시지요?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다운 처우를 위해, 동등한 교육을 위해, 참정권을 위해,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동등하게 돌볼 권리와 책임을 위해, 질 좋은 공보육 시설을 위해, 재생산의 정의를 위해, 혼자든 누구와 함께하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거리에서 안전할 권리를 위해, 매 맞지 않기 위해,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특정한 집단이나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기 위해 군사훈련을 한 적도 가스실을 설치하거나 생체 실험을 하거나 집단 강간소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페미니즘 때문에 누가 일상이 두렵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다치고 강간당하고 죽었습니까. 무엇이 과격하고 위험한지요. 공정한 판단, 공정한 수사, 공정한 판결, 공정한 취재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입니다. 광복 73주년,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촛불혁명 2주년 이후에도 여성들에게 해방과 정의는 오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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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 넘치던 이십대 초반에 페미니즘을 접했을 당시 내가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십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마주한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다. 두 번째 만난 글들은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에게 훨씬 더 구구절절하게 와닿았고, 때론 가슴 깊이 찔러서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공감할 여지가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받아왔던 불편부당한 대우를 명확히 인식하게 되고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 삶이 더 편안해졌나’ 질문을 주고받아보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는 것이 복잡해졌다고,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쉬운 일이 없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던지는 인사말도, 사사로이 던지던 농담도, 자녀와 나누는 대화도,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는 고민과 공부를 계속하면서 본인이 가진 권력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약자를 위한 정치학인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내 권력을 불필요한 곳에서 쓰지 않으려니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계속 점검하고 조심해야 하는 의무를 스스로 떠안은 셈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하다 우리 중 88서울올림픽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문화를 누리고 산 내 경험을 잠시나마 동시대인들 모두의 보편적 경험으로 오해했다. 내가 누리게 된 우연한 혜택을 ‘평균값’으로 여기지 않으려면 내가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그 안에 권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시민단체 활동가이자 장애인 가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등교육을 이수한 서울내기 이성애자인 나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위치를 넘나든다. 가난한 노동계급의 남성이 어떻게 권력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는 권력의 방향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고려하지 못한 발언이다.

이 넘나듦을 이해하고 맥락에 따라 누구에게나 권력이 있기도, 때론 없기도 함을 인정해야 감수성을 기를 수 있다. 다른 경험을 갖고 각자 다른 존재로 성장한 개인들이 조화롭게 사는 사회를 기대한다면 예민한 감수성이 꼭 필요하다. 드러나지 않는 바탕을 이해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당장은 불편함을 만드는 존재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더 나은 개인의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의 힘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온 문명의 역사는 잘못된 것을 깨닫고 고쳐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잘 듣는 것’은 감수성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이 무엇이 부당하다고 말하는지, 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지에 대해 귀 기울여보아야 한다. 초등학교 사회책에나 등장할 만한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와 같은 지극히 당연한 말들이 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집회 구호가 되었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들어야 한다. 정말 그 판결이 공정했는지, 그 판단에 부적절한 젠더권력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두가 함께 점검해보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 숨쉬기도 힘든 이 여름날 거리로 나선 여성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으려면 개인의 감수성뿐만 아니라 우리는 국가와 사법부의 감수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동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고 학력도 좋으니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었을 리 없다는 판결문은 개인의 권력을 최고점과 최저점을 이은 한줄서기 어디쯤으로 보는 데서 오는 망언이다. ‘정조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왜 그러고 있었냐’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재판부가 부디 감수성을 높이기를 바란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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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가 소설처럼 쓴 글을 보면서 가슴에 와 박혔던 구절은 ‘아버지가 나빴다’ ‘어머니가 나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검찰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쳐줬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러줘야 한다고 가르쳐줬어야 했다”고 썼다.

그의 글을 읽고 비슷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동안 살면서 가족과 윗 세대와 학교에서 듣고 배운 것들과 못 배운 것들을 되짚는다. 누구든 다 비슷했겠지만 차별은 늘 있었고, 노골적인 무시와 구조적인 억압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여자애가 고기를 잘 먹는다”고 타박하던 외할머니, 초등학교 5학년 성교육 시간에 “여자들은 통닭과 같다. 누가 먹고 싶어 먹었다면 그 사람을 욕할 수는 없다”던 선생님. 최근 ‘황태자’가 풀려난 대기업의 ‘여비서’ 공개채용 시험을 본 기억도 떠올렸다. 토론 면접에서 나름 선방했다며 안심하고 있던 내게 “말은 조리있게 하는데, 어디 회사 오래 다니겠느냐”고 한 사장님. 어쨌든 시험에 붙었고, 3박4일 직원 연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연수 프로그램이 ‘녹차 끓여내는 법’이라는 걸 보고 어쩐지 허망해졌다.

결국 그 회사에 가지 않았고 기자가 됐다. 업종이 다르고 회사가 달라도 차별은 늘 있었다. 그럭저럭 대응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잘 살았을까? 때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임을 자각했고, 때로는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그냥 넘어갔다. “블루스 추자”는 취재원들, ‘이쁜 여자’ 타령하는 남자에게 똑같이 성차별적인 언사를 섞어 능글맞게 대처했던 것은 고육책이었을 뿐이다. 싫어요! 미쳤어요? 왜 성희롱이야! 하면서 맞서지 못한 나같은 이들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성적 괴롭힘의 바탕이 됐다는 죄책감이 크다.

서 검사의 글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것은 성적 괴롭힘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 아이를 키워야 하고, 무신경한 남편의 대꾸에 혼자 실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부여잡고 있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그 모든 과정은 여성들에겐 너무나도 보편적인 것이었다.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닥쳐오는 공격을 어떻게 맞받아쳐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양성도, 기후변화도, 인권도, 노동자의 권리도,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시절엔 그런 화두가 없었다는 이유를 붙이자니 좀 우습다. 성차별도, 인권 침해도, 노동자 착취와 탄압도, 환경 파괴도, 모두 그 시절에 더 심했으면 심했지 지금보다 나았을 리 없으니까. 이제라도 사회 전체가 이런 고민에 맞부딪쳤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좀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5일자와 6일자 신문에 노동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여전히 우리가 배우는 것들엔 살면서 꼭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 평등과 정의가 비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배우지 못했던 것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말하는 용기,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자신감이었다. 이제라도 서 검사와 용기 있는 이들을 보며 배운다.

초·중·고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에 20만명 넘는 이들이 서명을 했다. 이 소식을 전한 포털 기사에는 이례적으로 여성들이 댓글을 많이 달았다. 온라인 전체가 ‘남초’이다시피 한 상황에서 응원글이 많이 보이니 반갑다. 그런데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학교야말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대다수 여성들이 성차별과 성희롱을 경험하는 ‘첫번째 사회’가 아니던가. 그러나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함께 바뀌고 커 나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좀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학교에서의 제도교육을 통해 개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한참 앞서 나갔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저성장과 취업난 속에 인권과 평등과 평화와 환경과 다양성의 가치에 반하는 일들이 고개를 드는 시대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최소한 몇 명이라도 옳게 말하고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바뀐다. ‘몇 명’의 목소리가 역사를 바꾼 사례는 얼마나 많았던가. 성평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인간에 대한 예의, 범죄와 폭력에 맞선 저항,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열린 자세 모두 배워야 한다.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모든 정책에 ‘젠더 평등 의식’이 녹아들게 해야 한다.

<구정은 정책사회부장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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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국립생태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슬그머니 물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을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하는데….” 최 교수는 몇몇 학자들이 잘못 소개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2004년 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과학적 근거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했다는 공로였다.

최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한 안경환 서울대 교수의 책 <남자란 무엇인가>가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몰래 혼인신고’ ‘여자와 술’ 같은 내용은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 부분은 빼고 진화론과 관련된 부분만 보자.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남자는 여자의 유혹에 약하게 진화되어 있다. 여자는 생존을 보장해주는 한 남자와 안정된 관계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관심이 쏠려 있지만 난교는 남자의 생래적 특징이다.’

난교가 남자의 본성? 페미니스트, 아니 (남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발끈했다. 진화론은 정말 남성의 바람기를 정당화하는가?

최재천 국립 생태원장. 박민규 기자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후손, 즉 DNA를 남기려고 한다. 이게 진화 법칙의 골자다.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윌슨은 최재천 교수의 스승이다. ‘여성은 평생 겨우 400개 정도의 난자만을 생산할 수 있다. 이 중 기껏해야 20개만이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수 있다. 갓난아이를 나이가 찰 때까지 기르고 그 후에도 보살피는 데 드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엄청나다. 반면 남성은 한 번 사정할 때마다 1억마리의 정자를 방출한다.’

남성은 자신의 DNA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퍼뜨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고, 여성은 남성이 아이만 낳고 육아에 힘을 보태지 않을 경우 낭패를 당할 위험이 있어 믿음직한 남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도‘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난혼 경향이 있고 여성에게는 일부일처제의 경향이 있다’고 했지만 인간사회의 진화는 문화적이라고 했다. ‘난혼 사회도 있고 하렘제에 기초한 사회도 많다. 이 놀랄 만한 다양성은 인간의 생활양식이 유전자가 아닌 오히려 문화에 의해 주로 결정됨을 시사하고 있다.’(<이기적 유전자>)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 특히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것은 많은 가설이 그 복잡한 남녀관계, 성 인식 문제를 번식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고 비판한다. “남자가 다 바람둥이가 아닌 것처럼, 여성도 번식이 아닌 즐기기 위해 섹스를 한다고!” 더 중요한 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본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컷의 바람기가 본성이라면 바람피운 남편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거야?”

사실 남성과 여성의 본성이 있다는 생각은 성적 역할을 나누는 논리로 이용돼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은 적극적이어야 하고, 여성은 신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건 남성은 중요한 자리에서 리더적 자질을 발휘해야 하고, 여성은 집안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얘기로 변형된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통해 무너뜨리려고 했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진화론이 자칫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복구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우려도 있다. ‘과학적 방법은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사실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다. (중략) 처음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처럼 보이던 것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믿음으로 굳어지는 것이다.’(<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진화론은 본성이라는 이유로 남녀차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성평등 시각도 있다.

진화론자들은 수렵채집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생존에 중요하다고 본다. 세라 블래퍼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에서 ‘(중략) 최고 사냥꾼의 아이들이 잘 먹는 까닭이 아버지가 더 많은 고기를 가져다주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가장 뛰어난 채집자와 결혼하는 데 성공해서였다’고 썼다. 진화론에 비춰보면 동성애도 자연계에 흔한 현상이다. 최재천은 동물의 동성애 현상을 관찰한 책이 작은 백과사전 두께만 하다고 했다.

성 차별은 과학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문화적으로 힘의 역학과 권력 관계 속에 생겨난다. 이동성이 중요하고, 타 부족과 갈등할 수밖에 없는 유목민족의 경우 상대적으로 남성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평등적인 부족사회에서 중앙집권적인 군장사회로 발전하면서 통한 정복의 역사가 진행됐고, 남성의 권력이 강화됐다. 현대사회에서는 상급자 여성이 하급자 남성을 성희롱하기도 한다.

과학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적 증거는 높은 설득력을 얻고 진실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생각하면 과학을 말할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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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미니즘과 관련된 프로젝트 제의를 받으면서 갈등한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갈등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대단한 페미니스트라고’라는 겸양도 들어있지만, 한편에는 페미니스트라고 분류되는 순간 감당해야 할 많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늘 올바르고 도덕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녀가 함께 모여 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여자로만 가득 찬 울타리 안에서 옳은 소리만 하는 운동가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인권 운동가나 투사가 되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며 멋대로인 데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많은 의미에서 나는 아직은 남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에 대한 불편함에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보다는 어떤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나는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가벼운 에세이를 낸 적이 있는데, 이후 나는 본의 아니게 ‘디아스포라 문학 전공자’가 되어버렸다.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 내가 문학에서 애초에 지니고 있던 다양한 관심은 삭제되고 이후 그것에 한정된 글을 주로 쓰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주의자’를 경계하는 편이다. 어떤 특정 부분을 지향할 수는 있으나 어떤 인간도 그것만일 수는 없고, 우리는 조금씩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페미니스트’란 것도 그와 유사하다. 그 모자를 쓰는 순간, 다른 정체성은 보이지 않고 호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불편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공격성과 부정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만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말 많고 따지기 좋아하고 남자들과 적대하는.’ 그러나 그 단 하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또 내가 왜 불편했는지에 대해 최근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인데, 여기에서 그녀는 주류 페미니즘, 근본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완벽한 페미니즘 대신 결함이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복수의 페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면서, 그 불완전한 대로의 페미니스트이기를 원한다고 공표한다.

지난 학기에 ‘페미니즘과 여성문학’이라는 강의를 맡았는데, 이 수업은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소 재미가 없이 흘러갔다. 왜냐하면 분석방법과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불행, 고통과 원한에 ‘남자’라는 타깃을 달아주면 모든 것은 해결 가능해 보인다. 고민 끝에 그러한 일률적인 분석틀을 버리고 텍스트를 매개로 각자의 경험에 대해 토론하는 것으로 바꾸자 수업은 훨씬 더 흥미로워졌다. 그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우리들은 로맨스를 즐기고 외모를 가꾸고,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예쁜 여자를 좋아해도, 전업주부를 열망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 오직 여성의 직장, 육아와 가사의 평등, 여성의 대상화 등에 대해 똑같은 주장과 원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육아, 가사, 그런 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건……’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듯 여성의 수만큼 수많은 갈등과 원망이 있고, 그것은 때로 근본주의 페미니즘이 말하는 그것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국 청년들의 고통을 전부 ‘청년실업’으로만 치부할 수 없듯이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워 모든 것의 교정을 요구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은 오류이다. ‘논리정연하고 도덕적이며 일과 가정에서 완벽한 여자, 남성과 적대하고 스커트를 입지 않는 남자 같은 여자, 희생없이 끊임없이 권익만 요구하는 이기적 페미니스트’와 같은 추상적 이미지도 환상일 뿐이다. 여성 혐오는 그러한 관념 속에서 자라난다. 다 큰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생을 쓸쓸해하는 어머니, 직장 일 때문에 늘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아내, 씩씩한 딸 등의 구체적인 모습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편린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록산 게이의 말처럼, 어떤 완벽한 모델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인 채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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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여자 나이 50부터 황금기야. 손자들 키워달라고 자식들이 매달리기 전까지가 누려볼 수 있는 마지막 자유시간이라니까….”

직장 다니는 딸 대신 손자들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이웃의 선배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그 좋다는 ‘여자 나이 50’을 넘기는 2016~2017년, 나는 젊은 날 이후 잊고 지냈던 나의 ‘여성성’에 대해 새삼 고민하게 됐다.

나를 ‘50세 고민녀’로 만든 데 불을 댕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해서, 여성으로서 티끌 한 점 뭘 더 누려본 기억이 없는 내가 추운 겨울 박 대통령의 파면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촛불을 들고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까지는 기꺼이 견딜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집회에서 사회자가 박 대통령을 두고 “잡×”이라고 성별을 지칭한 상소리를 하는 순간, 나는 졸지에 오물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촛불 든 당신 말고 박 대통령’에 대고 하는 얘기라고 주장하겠지만, 나 역시 어디서든 “잡×”이라고 불릴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다. 박 대통령은 규탄하지만, 그 규탄에 여성혐오가 동원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이 양가적 감정과 불쾌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곤혹스러웠다.

그날 집회에 다녀온 이후 내 생애 최초로 한 여성주의자 그룹에 가입했다. 페이스북에서 마주친 ‘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박하여행)이라는 상큼한 이름의 단체였다. ‘박근혜 퇴진을 위해 행동하면서, 또한 현재의 흐름 속에 무작위로 일어나는 성차별 발언과 행동도 모니터링하고 시정한다’는 활동 취지가 내 혼란감을 콕 집어 해명하는 것 같아서였다.

온라인으로 가입만 해 두었다가 한 번도 함께 행동을 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참여한 것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튿날 이에 반대해 열린 1월21일의 ‘세계여성공동행진 서울’이었다. 집회 장소는 지난해 5월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강남역 10번 출구 앞. 좌우를 둘러보아도 2000여명의 참가자 중 50대인 내가 최고령일 듯싶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어색함을 애써 누르며 대열을 따라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대열 밖에서 행진자들의 사진을 찍는 젊은 남성을 본 진행요원이 몸싸움이라도 할 기세로 거칠게 항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항의 정도가 격렬해서 잠시 어안이 벙벙했는데, 이유는 행진이 끝난 뒤 같은 모임 회원인 한 젊은 여성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인터넷에 얼굴이 돌면, 거기에 페미×이라고 온갖 욕설 댓글이 다 붙고, 나체랑 합성해서 막 조리돌림 하거든요.”

그러니까, 순한 목소리로 “여권이 인권이고 인권이 여권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던 그 젊은 여성들은 사진 하나라도 인터넷에 오르는 날에는 어떤 온라인 테러를 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30년 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아다니던 그 투쟁의 공간만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그간 모르고 살아왔던 또 다른 전장이 오늘 젊은 여성들의 일상공간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 절감하고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정치민주화라는 긴급한 과제 앞에서 여성운동은 배부른 타령이라고 뒷전으로 밀리던 30년 전의 세월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오늘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는 나는 선배 세대로서의 부채감을 지울 수 없다. 과연 그때로부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중화장실에서 무참히 살해당할 수 있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온라인 테러를 당하고, 정치적 주장을 위해 성차별이 용인되고, 국가가 여성의 낙태권리에 개입하며, 낳은 아이를 어떻게 사회가 함께 기를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마련하지 못한 채 아이 셋의 젊은 공무원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모는 이 환경의 문제가 중년 여성인 나와는 관계없는가.

직장의 선배 여성, 혹은 곧 시어머니나 친정엄마, 장모가 되어갈 중년 여성 세대가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당면한 문제를 함께 바라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차별 체제의 일부가 되어 젊은이를 억압하는 노인들로 늙어가고 말 것이다. 여자 나이 50, 페미니즘에 대한 내 고민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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