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다시 세월호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다. 교황은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한다. 교황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부끄럽다. 지구 반대편의 교황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데 ‘지금 이 땅’에선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가.

방한한 교황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 세월호 가족을 만났다.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 전 차에서 내려 단식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은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국에 머물던 내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던 그는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교황이 떠난 뒤, 잠깐의 열광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는 다시 싸늘해졌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전가의 보도 격인 ‘외부세력 배후론’을 꺼내 유가족을 국민에게서 분리시키려는 전략을 폈다. 세월호특별법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수사·기소권과 유가족의 특별검사 추천권이 빠진 반쪽짜리로 통과됐다. 최근 특별조사위가 출범하긴 했으나 새누리당 측 위원들의 방해 책동으로 활동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선체 인양 문제 역시 답보 상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립 서비스’만 되풀이하는 터다. 정부·민간 합동조사팀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고, 국민의 60%가 인양에 찬성하는데도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천에 건립하려던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예산을 지원할 중앙정부 주무부서가 정해지지 않은 게 이유라고 한다.

최혜정 단원고 교사와 박지영 승무원의 유족들이 8일 미국 필라델피아 네이비야드에서 골드메달을 받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부터 최 교사 아버지 최재규씨, 박 승무원 이모부 유진규씨, 최 교사 어머니 송명순씨, 박 승무원 어머니 이시윤씨. _ 연합뉴스


지난해 4월16일 이후, 모두가 ‘세월호 이후’를 이야기했다.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잊으라고 압박하는 세력, 그 틈을 타 잊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잃은 304명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생존방식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 사건이다.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 구성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공동체 전체가 거짓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서둘러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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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방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월호’와의 동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은 서울공항 환영행사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의 손을 잡으며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인간적 고통 앞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했다. 그사이 세월호 가족을 만나 그들이 지고 온 십자가를 전달받은 뒤 바티칸으로 가져갔고, 유족 이호진씨에게 직접 프란치스코란 이름으로 세례를 줬으며, 124위 시복미사 전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유족 김영오씨의 손을 맞잡았다. 떠나기에 앞서 아직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무엇보다 방한 다음날 제의에 착용한 노란 리본은 돌아가는 기내에서도 여전히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교황이 세월호 가족들과 어느 정도 접촉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실제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의 요청으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 짧게나마 직접 만난다는 정도의 계획만 있었다. 세월호특별법 타결이 늦어지면서 광화문광장의 농성이 길어지자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시복미사 때 농성장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게 불과 방한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교황은 당초 예상이나 기대를 뛰어넘는 행보를 통해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교황은 왜?

그는 자신의 방한이 화려하고 번듯한 행사에 그치길 거부했다.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124위 시복미사 집전이 방한 목적이었으나 정작 그의 뜻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는 데 있었다. 교황이 어떤 사람을 만날지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그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이들이고, 그래서 권력이 외부에 노출시키기를 꺼리는 이들이다. 교황은 세월호 가족들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나흘째인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을 찾아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위해 입장하며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교황은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치를 뛰어넘어 휴머니즘이란 가치를 구현했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 앞에서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그는 노란 리본을 달자마자 “이런 행동이 정치적 중립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란 리본이 한국정치의 맥락에서 어떤 뉘앙스를 갖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세월호 가족을 위로했다. 실종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하느님에게 맡긴다고 기도했다. 교황의 행동은 고통을 대하는 감성과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종교의 가치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교황이 실천한 가르침이다. 그는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며 희망은 연대로부터 온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평화, 정의, 희망, 연대라는 단어의 추상성은 교황이 세월호 가족의 손을 잡고 그들 머리에 축복을 내리는 순간 구체적 실체로 다가왔다. 동시에 교황은 모든 가치는 선택을 통해 구현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방한 중 그의 위로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행위들, 예를 들면 아기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장애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데 그쳤다면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숙고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교황 방한은 25년 만의 일이었다. 오랫동안 교황 방한을 기다렸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월호로 뒤덮인 4박5일이 아쉽기도 할 것이다. 훨씬 크고 보편적인 메시지를 던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자의적으로 확대된 해석이라고 의심할 만도 하다. 실제로 교황은 진정한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기원했다. 위대한 순교자들의 땅을 찬양했다. 그러나 교황의 진정한 메시지는 한국사회의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을 관통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법과 원칙, 공평과 효율 이전에 ‘사람’이 중심이며 이를 통해 정의도,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황이 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교황 리더십이 거론되고 교황 마케팅도 활발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자신이 그토록 아낀다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과 같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 깨어있는 자의 행동이 무엇인지 가까이 지켜본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한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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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귀국하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15일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고 16일 광화문 시복식 전 가진 카퍼레이드에서도 유일하게 세월호 유족 앞에서는 차에서 내려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해주었다. 이런 행동은 예수가 그렇게 사셨고, 교회는 그의 모범을 따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함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교황의 이러한 행동은 권력과 금력에 도취되어 너무나 비대해져버린 전체 한국 그리스도교계에, 나아가서는 극단적 이념논쟁에 포로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 던져준 준엄한 메시지이다.

한때 그렇게 유행하던 ‘웰빙(well being)’이 시들해지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 중의 하나가 ‘힐링(healing)’, 곧 치유다. 마음의 치유를 다루는 소위 힐링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의 상위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은 낙담하고 상처받은 자들이 “위로와 위안이 내게 정말 필요해”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외로운 사람들, 특히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힐링’의 범람 현상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00년대의 유행어였던 ‘웰빙’이 더 조화롭게 잘 살기 위한 대중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2010년대의 ‘힐링’은 더 잘 살고 싶기는커녕 받은 상처를 치료라도 하고 싶은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교황은 한국인들의 몸부림을 정확하게 눈여겨보았고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감싸 안아 위로해주고 치유해주었다. 그는 종교적 집회를 위해 한국에 왔지만 한번도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위협적 언사를 쓰지 않았다. 다만 맘몬신앙에 함몰된 한국 사회가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기를 그리고 이기주의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무한 경쟁에서 빚어진 죽음의 문화에 맞서 싸우기를 촉구했다.

교황의 위력은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서 끝나지 않는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폴란드를 방문하여 “여러분은 인간입니다. 굴욕적으로 살지 마십시오”라고 역설하면서 폴란드 연대노조에 공개적 지지를 표명하여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겸손하고 청빈한 그의 언행으로 인해 교황에 즉위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세상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고, 경제지 포천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그를 꼽았을 정도이다.

15일 오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입장을 하며 한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의 무엇에 세상이 이처럼 열광하고 환호할까? 그의 등장은 세계에 뜨거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는 ‘프란시스 효과(Francis Effec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경영학계는 최근 몇 년간 연이은 성직자들의 성추행과 바티칸은행의 추문 등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고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던 가톨릭교회를 단박에 일신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업 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탁월한 CEO 모델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 윤 일병 사건 등으로 인해 현재 한국인들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고 치유가 간절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지금 간절히 필요한 것은 치유, 용서, 화해이다. 교황 방한으로 인해 우리 사회 안에 조금이라도 평화가 증진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황 방한이 가져다주는 최대 선물이 될 것이다.


문영석 | 강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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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도착 첫 메시지는 평화와 화해였다. 교황은 어제 성남 서울공항에 내려 영접 나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유족들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으로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고 한다. 교황은 이날 오후 참석한 청와대 연설에서도 평화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이로써 한국을 찾아온 교황의 사회적 묵상 주제가 정의로운 평화와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위로가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교황은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라고 강조했다. 휴전 상태에서 60년 넘게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온 남북 당국에 대해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외교가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위한 정의로운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교황의 지적은 복잡한 이해갈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교황의 평화·정의론은 갈등과 분열로 고통받는 한국 사회에도 무거운 메시지를 던진다. 교황은 “한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이 비판과 충고에도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교황이 시복식을 집전할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 달 넘는 단식농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황이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공동선과 진보, 발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정치적 분열과 경제 불평등,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마지막 한 사람의 목소리까지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교황이 소외받고 상처입은 사회적 약자를 껴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세계가 열광하는 ‘양떼 속의 목자’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쁨도 크다. 교황은 방한 첫날부터 남북한과 한국 사회, 그리고 세계를 향해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평화와 정의’를 화두로 던졌다. “희망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이냐”고 호소하는 교황의 말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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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이념에 의해 틀 지어졌던 조선은 18세기에 이르러 국가의 기본 원리가 무너지고 성리학적 규범이 내파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조선은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과 함께 비대해진 양반계층의 걷잡을 수 없는 탐욕과 부패, 붕당화로 마침내 국가 공동체 전체가 해체될지도 모를 지경으로 치닫게 된다.

이제 성리학적 이념과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철학과 규범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일단의 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새로운 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이벽을 중심으로 한 천진암 강학회가 자리한다.

1777년부터 7~8년간 이어진 이 모임의 절박한 문제는 무엇이었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성리학적 원리와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었을 것이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극한에 이른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가는 길이란 확신이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눈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갈망과 혁신의 노력이 깨어지면서 조선이 맞이한 비극적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그렇게 희생된 이들을 시복하기 위해, 200여년이 흐른 뒤 그들이 옳았음을 세계에 선포하기 위해 교황은 한국을 찾았다.

21세기를 사는 이 땅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국가가 내파하고 백성이 죽어가던 그 시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비록 근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덕택에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때와 무엇이 크게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87년체제라 부르는 민주화 이후에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경제와 자본의 압박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건들은 다만 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각종 경제지표와 실업률, 심각한 소득 불균형, 출산율과 자살률 등 수많은 수치는 이런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으며, 절망과 냉소가 우리를 휘감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연 과장된 표현일까.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야 할까. 이 절망과 냉소를 넘어설 새로움은 무엇일까. 오늘날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학은 이미 근대적 패러다임의 한계와 함께 새로운 사유와 사회체제가 필요함을 절박하게 주장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위기에 서학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와 체제에의 열망을 일깨웠던 그 시간이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새로움을 향한 싹으로 트이기를 바란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직후 구호시설 '도노 디 마리아'를 찾아가 한 아이에게 입맞추고 있는 모습. 이날 교황은 구호시설에서 야만적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베풂과 관용의 가치를 되찾아야 함을 강론하였다. _ AP연합


분명한 것은 그 새로움은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적 체제와 물질 만능의 사조를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목소리를 지니지 못한 이들의 삶이, 그들의 생명과 실존이 존중받는 새로운 문화와 사회체제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종교의 수장이 아니라 이제껏 보여주었던 프란치스코란 인물의 가르침과 외침이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교황의 방한을 환호하는 까닭은 그가 전 세계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급격하게 해체되는 우리의 삶과 생활세계를 새롭게 만들어갈 신념과 사상을 외치고 실천하는 그의 인격 때문이며,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대적 표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독재를 경고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물질만능의 문화와 사회에 거침없이 맞서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의 기쁨>에서 “온갖 불의와, 온갖 허위의식에 맞서”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두려움 없이” 시대의 변화를 위해 뛰어들라고 권하고 있다. 이 시대의 위기와 반인간적 사태를 보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은 결코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는 어떤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계,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 지금 아파하고 죽어가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죽어가는 마음,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자는 새로운 복음화의 강력한 권유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에게 교황은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이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원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처럼 시간이 공간보다 더 중요하다. 그의 행동과 가르침이 인간다움을 이룩하고, 인간의 존엄함을 드러내는 삶의 표징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가 정신적 새로움으로 향해가는 엄중한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신승환 | 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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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드디어 오늘 한국에 온다. 78세 고령에 여름휴가까지 마다하고 14시간의 길고 긴 비행 끝에 지구 반대편을 찾아오는 귀한 걸음이다. 교황은 이제 한국에서 4박5일 동안의 바쁜 일정에 돌입한다. 30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인 일정이라고 한다. 교황 방한의 주된 목적은 천주교 사목방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황이 종교를 초월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서 한국사회를 찾아온다고 믿고 있다. 교황은 방한 첫 미사를 환경미화원·시설관리인들과 함께 봉헌한다. 4차례의 미사 중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밀양·강정 마을 주민 등을 만난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은 특별히 직접 따로 만나 위로할 것이라고 한다. 교황의 평소 말과 행동대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먼저 껴안는 모습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갈등과 불안에 싸여 있다. 부실한 국가운영에서 빚어진 세월호 사고, 죽음을 부르는 군대 폭력과 왕따, 날마다 터지는 인면수심의 사건·사고 등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런 가운데 국민 안전을 지키고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깊어만 가고 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화재사건으로 194명의 희생자가 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 교황의 방한은 갈등과 질곡의 한국사회, 특히 정부,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을 향해 이 같은 성찰과 고해성사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바티칸시티에서 대중과 만나던 중 아기가 주케토(가톨릭 성직자들이 쓰는 모자)를 집어들려 하고 있다. 교황은 아기에게서 모자를 되찾아 다시 고쳐 쓸 때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출처 : 경향DB)


이와 함께 교황은 ‘평화와 화해의 메신저’로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이자 국제적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있는 한반도를 찾아온다. 명동성당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등을 통해 들려줄 평화의 메시지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매우 크다. 인천 아시안게임 협상과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제안 가능성 등이 거론되는 중이어서 타이밍도 좋다. 교황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쟁과 분쟁·갈등으로 얼룩진 인류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화해와 용서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한국에서 교황이 던질 평화의 메시지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이번 방한 일정이 교황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이 교황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분단현장, 사회갈등 현장 방문이 일정에 없는 점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교황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사랑과 희망의 목자’로서 가는 곳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교황이 한국 방문 중에도 우리들의 삶을 정의롭게 바꾸는 따끔한 가르침과 멋진 파격의 행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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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온다. 교황 방한은 천주교의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124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 참석을 위한 것이지만, 모두 이례적이다. 아시아청년대회는 추기경이나 주교들도 별로 참석하지 않던 행사였다. 하물며 교황 참석은 처음이다. 시복식도 대개 교황의 특사가 집전한다. 이 때문에 교황 방한은 한국 천주교회, 그리고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의 표현인 셈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둔해졌지만,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내란음모’ 사건과 ‘간첩조작’ 사건이 반복되고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극단적이며 소모적인 준전시상태다. 팔레스타인만큼 평화가 절실한 곳이다. 속사정은 더 복잡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지만, 양극화는 극단적이며 돈만 좇는 천박한 풍조는 세계 제일 수준이다. 4·16 세월호처럼 국가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하는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으며, 최근의 병영 실태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치졸한 폭력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나라,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도 모자라 가장 늙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어린이, 청소년들은 희망 없는 불안한 내일에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의 부품처럼 경쟁력을 강요당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서 한국은 꼭 가봐야 할 곳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교황 방문 일정도 파격적이다. 연일 파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단박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도자가 된 교황답다. 한국의 한복판, 그것도 첨예한 갈등의 복판으로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4·16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단식 농성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인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 지역 주민,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탈북자도 만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 : 경향DB)


유신 정권 말기,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한다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나 인권의 보루 역할을 맡는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도 이러지는 않았다. 가능한 수준에선 최선의 동선이며,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왜 교황은 저 멀찍한 로마 바티칸에서 이역만리 한국의 가장 첨예한 갈등의 현장과 피해 당사자들을 만나려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교황이 누구보다 따르고 싶어 하는 예수의 뜻을 좇고 싶기 때문일 게다. 사실 예수는 매우 논쟁적인 분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더없이 컸지만, 잘못된 체제와 기득권의 탐욕에 대해서는 서슬 퍼런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교황에게는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닌 사람으로서는 꼭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일 게다.

교황이 특정 사안에 대한 심판자 역할을 하려는 건 아닐 거다. 한국이 낯선 외국인에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게다. 답은 우리의 역량과 지혜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닷새 동안 교황은 다양한 메시지를 발표할 거다.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일관할 수 있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원리를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돈보다 생명을, 이윤보다 안전을 구해야 한다는 교훈, 무엇보다 사람이 존엄하고 가치 있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원리, 보편적인 인권 이념과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그래서 보편적인 답을 구할 수 있을 게다. 교황 방한이 우리 자신의 사람됨을 돌아볼 수 있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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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오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 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은 종교와 종교지도자의 진정한 사명을 새삼 일깨워준다.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따르면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끝난 뒤 제의실에서 세월호 유족과 학생들을 따로 만나 충격과 슬픔을 위로하며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교황이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낮은 곳의 사람들’이 대거 천주교 측의 초대를 받아 참석한다. 평소에도 바티칸 쓰레기 청소부들을 초청하고, 무슬림 여성과 장애인들의 발을 씻겨주며, 자신의 생일에는 외국인 출신 노숙인들을 불러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교황 특유의 ‘낮은 곳 행보’가 한국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구호시설을 방문, 환영나온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있다. _ 연합뉴스


약자와 빈자를 기꺼이 가슴에 품는 교황의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은 왜 한국 사회의 종교와 종교지도자들은 대부분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도들에게 거둔 돈으로 호화롭기 짝이 없는 초대형 성전을 짓는 데 열을 올리고, 교회를 자신의 사유재산인 양 자식에게 물려주며, 국가기관의 불의와 폭력을 고발하고 맞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등 이 땅의 대표적인 종교기관들이 저지르는 반종교적 일탈행위는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종교지도자들은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과오를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받는 이들을 보듬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황이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한복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껴안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의 정책적인 해결방안은 결국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제시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현재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을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제정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교황의 이번 방한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갈등이 슬기롭게 해결되고,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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