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한 책의 서문을 빌려 지금의 대한민국을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세월호라는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을 흔들고, 광장을 사람들로 메우고, 촛불과 횃불을 타오르게 만드는 것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전에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라는 정식명칭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거듭 ‘세월호 7시간’을 추궁하고 있다. 매스컴도 연일 최순실 국정농단과 함께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해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참사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현재, 왜 세월호는 자꾸 돌아오는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분석한 어느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햄릿이 우울증과 광기에 시달리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햄릿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고, 그는 유령이 되어 거듭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마도 하야와 탄핵을 외치는 촛불에 세월호 7시간의 민낯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304명의 원혼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국가수반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진심 어린 애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촌각을 다투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을 진두지휘하기는커녕,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는 황당무계한 질문을 던졌다. 이어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가 보여준 냉대와 외면은 전 국민의 무의식을 곧장 우울증과 광기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한 시도 그 장면에서 떠날 수 없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세월호는 왜 자꾸 돌아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돌아오는가. 누군가 좋아한다는 샤머니즘적으로 말하자면 세월호 아이들로 가득 찬 우주의 기운이 태블릿 PC를 찾아내 최순실을 꿇어 앉히고, 광장에 촛불을 밝히고, 셈이나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꾸짖고, 다시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다. 인양되지 못한 선체처럼 전 국민의 저 깊은 곳에 내려앉은 세월호의 영령들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를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그 사건을 자꾸 되새기는 ‘반복강박’은 그 사건을 이해가능한 것으로 돌려놓고 안전한 것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어적 심리기제이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주체는 그 사건에 의해 압도되고 사로잡히지만 계속적인 추체험과 반복을 통해 그 괴물스러움은 이해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반복강박의 효과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백 번, 수천 번의 호명과 되새김은 희생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우리가 미치지 않기 위해 수행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이 반복강박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작업, 그리고 집단적 우울과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애도의 첫걸음은, 정확한 ‘사실의 재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 오보·괴담 바로잡기라는 청와대의 ‘이것이 팩트입니다’는 ‘굿판을 벌였다, 성형시술을 했다, 잠을 잤다’ 등등의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정만 했을 뿐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팩트라며 밝힌 7시간의 일정표에 대통령의 육성과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상대로 무슨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라고만 말하는 그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토록 수많은 루머와 의혹에도 끝내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모든 의혹을 뛰어넘는 더 무시무시한 무엇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지난달 26일 광장에 나갔다. 촛불행렬을 따라 줄줄이 걷는 그 길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추모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야가’를 부르고 퇴진을 외치던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나도, 내 앞의 사람도, 내 옆의 사람도, 내 뒤의 사람도, 선뜻 따라 부르지 못했다. 양희은의 ‘상록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인권의 ‘애국가’보다 더 먹먹한 선율. 감히 떼창도 할 수 없는 그 노래가 광장의 사람들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그렇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국가수장이 광장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우리가 함께 묻은 그 아이들은 영영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금 한반도 남쪽에서는 일찍이 세계정치사에서 본 일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시민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넘게 매 주말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새로운 정치질서를 외치고 있다. 입으로는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지만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만약에 이 거대한 시위가 통치능력이 없는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면 한국인은 그저 데모나 잘하는 국민으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이들이 집권한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들어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며칠 전에도 대통령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법리에도 맞지 않은 제안을 던지자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의원들을 보고 촛불민심은 믿을 게 자신뿐이란 것을 더욱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말이 국민의 대변자이지 사실은 기존의 정치구도 안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그야말로 악마와도 손을 잡는 무리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의원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제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시나브로 사라지고 만다.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집권당과 그 수족인 권력기관들은 야당을 마음대로 주물러가며 반세기 넘게 부패한 권력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란 현실이고 타협”이라고 대답한다. 맞다. 문제는 너무 쉽게 원칙을 저버리고 타협한다는 것이다. 김영삼의 ‘3당 합당’이 그랬고, 김대중이 김종필의 손을 잡은 것이 그랬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삼김시대’가 끝났다고 말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보이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야당은 물론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중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다 삼김의 정치적 적자이거나 그 문하생들이다. 물론 박정희를 비롯해 삼김은 모두 위대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다. 경제 강국 대한민국의 약진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지만 그들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도 크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지나친 권모술수와 밀실야합, 지역할거 구도는 한국정치를 막다른 길로 몰아세우고 말았다. 모든 정보가 빛의 속도로 오고 가는 시대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정치유산을 끌어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민혁명이 일어난 배경이고 또 청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제1야당의 문재인 전 대표이다. 공정한 선거관리가 이루어졌다면 어쩌면 그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제 광주에서 “촛불을 계속 들어 시민혁명을 완성하자”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정작 촛불집회에 가서는 자유발언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미리 예언하지만, 이 작은 사건의 의미를 제1야당 지도부가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민혁명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시민혁명은 시민들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혁명 정세는 대단히 특이하다. 지난 세기에 있었던 혁명처럼 인민들이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국가의 공권력이 건드리면 무너질 정도로 허술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다 짱짱한데 오직 정치적 리더십만 부재한 상황이다. 이 난국을 만든 책임이 있는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재집권보다는 살아남기에 더 급급할 것이고, 야당은 탄핵만 성사되면 자동적으로 집권할 수 있으려니 하겠지만 촛불민심은 여야를 떠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순간 가장 강력한 권력인 촛불세력이 제도권 밖의 존재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한시적인 집합체인지라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누구는 바람만 불면 꺼질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거대한 쓰나미이니 거기에 얹혀 권력을 한 번 잡아보자고 한다.

다 틀렸다. 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관점이다. 만약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 시민혁명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내어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먼저 촛불시민 세력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대의 또는 소통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름이야 어떻게든 붙여지겠지만 일단은 그냥 ‘시민권력’이라고 하자. 의회는 여야 협상을 통해 시민권력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한시적인 법을 제정해야 한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시민권력과 의회가 지정한 비상거국내각이 통할한다. 물론 이 아젠다는 시민들이 계속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다는 가정하에 성립할 것이다.

지금의 촛불집회는 하루아침에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멀리는 4·19혁명에서 광주민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거쳐 진화를 거듭해 온 것이다. 한때 한국의 시위에는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난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폭력 평화시위 기조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축제의 요소까지 곁들어져 외국인 관광객들도 안심하고 참여하는 문화상품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가히 한국의 시위문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과 선진성을 자랑한다. 이러한 시위문화를 일궈낸 한국의 시민들이기에 비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면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기어이 혁명을 완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는 하야하라.” 서울 도심에서만 100만여명!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월드컵 때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비폭력으로 평화롭게 진행한 집회였다.

짱돌과 최루탄과 쇠몽둥이가 난무하던 1980년대 집회 광경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333번 시내버스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엔 늘 데모대와 경찰이 대치했다.

내가 봤던 경험으로만 보면 데모가 가장 심했던 때는 1987년 6월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간접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4·13 호헌조치’를 선언한 뒤, 각지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랐고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시민과 학생들은 백골단에 몽둥이로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려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 퇴진’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쓰인 손팻말과 플래시를 켠 스마트폰,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여만명이 데모한 6월26일이 아니었나 싶다. 버스 운행을 하다 데모 때문에 길이 막혀 서울역 정류장에 서 있었다. 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내리고 한 명도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도,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도 데모대가 꽉 차 있었다.

그때였다. 서울역 광장 쪽에서 대학생 한무리가 백골단에 쫓겨 내가 서 있는 버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얼른 차 문을 열었다. 최루탄 냄새를 훅 풍기면서 학생들이 타는데, 이게 웬일인가?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회수권(당시의 학생들 버스 요금)을 하나씩 꺼내서 요금통에 넣으면서 올라오는 게 아닌가. “빨리 타! 빨리!” 하고 소리 지르니 학생들은 그때서야 부리나케 버스로 올라온다. 다 탄 뒤 얼른 문을 닫았다. 아슬아슬했다. 뒤이어 백골단 열댓 명이 쫓아왔다. 그중 몇 놈이 문을 두드렸다. 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백골단은 열이 받아 몽둥이로 버스 문과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때 남대문 쪽에서 또 다른 시위대가 내가 탄 버스 주변에 있는 백골단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보도블록을 깬 돌을 쥐고 있었다. 결국 백골단은 도망갔다. 버스 문을 열어 줬더니 학생들이 “고맙습니다!” 하면서 우르르 내렸다. 학생들은 길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다시 시청 앞으로 행진하면서 소리쳤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6월29일,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야당의 직선제 개헌을 수락했다. 민중의 힘으로 얻은 값진 승리였다. 비록 그 뒤에 노태우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그때 쟁취한 직선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됐다.

2016년. 이젠 시위 현상이 많이 바뀌었다.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백골단도 해체됐고 최루탄과 짱돌도 사라졌다. 시위대는 청와대 400m 앞 효자동, 폴리스라인과 차벽 앞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을 운영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무슨 폭력?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구조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안 하는 것,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게 하고 책임자 처벌을 안 하는 것, 자본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노예로 만드는 것, 약점이 있는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 최순실에게 갖다 바친 것,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는 것 등은 모두 당장 내 목숨을 빼앗는 폭력이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면 손가락이라도 꺾어야 한다. 1987년 백골단에 쫓겨 내 버스를 타면서, 회수권을 내던 착한 학생들이 짱돌을 던진 행위는 목을 조르는 자의 손가락을 꺾는 행위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보다 결코 가볍지가 않다.

국가 수장으로서 자격을 잃은 박근혜 정권과 부패한 지배층, 그리고 수구 언론은 민중에게 선진국처럼 ‘폴리스라인까지만’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는 선진국은 대체 어느 나라인가? 선진국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져도 폭동이 일어난다. 하물며 나라를 말아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계속 그렇게 민중들의 목을 조르면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건모 | ‘작은책’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광화문에 시민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약 2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1987년 6월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박근혜의 국민이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다고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과 기만의 언어, 봉건적 권위와 여제적 행태로 채워진 ‘박근혜의 시간’은 국민에게는 자학의 시간이었다. 박근혜의 오만과 기만과 불법과 무능은 ‘우리가 도대체 지난 대선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가슴속 깊이 파인 상처를 자학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학이 분노의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언론의 굳건한 ‘협업’ 탓이었다.

굳건한 협력의 빗장을 풀고 은폐의 육중한 문짝을 열어젖힌 것은 흥미롭게도 보수권력이 자신의 입으로 삼고자 했던 종편방송이었다. JTBC가 확보한 최순실의 태블릿PC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박근혜의 시간은 최순실의 시간으로 확인되었다. 드디어 시민의 자학은 거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등에 배반의 칼 하나씩 꽂힌 채 망연자실한 시민들에게 대통령은 마음 없는 성명서를 독백처럼 읊조리고 들어갔다. 총리를 일방적으로 지명하고, 국회의장실의 카펫을 패션쇼의 런웨이 걷듯 휘돌아 나왔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아주 오래된 기만, 아주 익숙한 대통령의 오만을 다시 떠올리며 이제 시민들은 거대한 저항행동에 돌입했다. 2016년의 시민항쟁이 시작되었다. 모든 역사적인 저항행동이 그렇듯 시민항쟁은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불만의 직접적 계기가 무엇이든 시민항쟁의 근저에는 피폐한 경제와 고단한 시민의 삶이 있다. 청년의 미래를 닫아 버리는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의 현실,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줄어드는 소득과 늘어나는 부채, 노동계를 압박하는 재벌·대기업 친화정책, 모든 세대가 불안을 벗을 수 없는 현실 등이 저항의 심층에 시퍼렇게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저항의 뿌리는 그만큼 깊다.

지난 주말부터 대규모 저항의 물꼬를 튼 시민의 물결에서는 냉철한 이성적 분노가 감지된다. 광장의 시민들은 질서 있는 ‘이성적 군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위군중의 표정이 밝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군중이 아니다. 배신의 칼을 맞은 시민의 표정이 왜 이토록 밝은가? 오랜 자학의 시간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일 수 있다.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자학과 세월호, 메르스, 경주 지진으로 이어지면서 누적된 불안의 원천이 온전히 드러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듯하다. 덧붙일 수 있는 설명 하나는 ‘자신감’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과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5%로 곤두박질친 대통령 지지율과 보수언론의 변화를 보며 광장의 시민들은 끊임없이 “더 모여야 된다”고 서로를 독려한다.

2016년 항쟁의 시민들에게 인지된 기회구조가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저항행동에서는 주어진 기회구조를 운동주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정부의 통제역량에 대한 인지가 중요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조직과 동원의 역량에 대한 인지 또한 중요하다. 말하자면 광장에 모인 군중의 밝은 표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냉철한 이성이 담겨 있고, 이제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2016년의 시민항쟁은 어느 때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군중의 냉철한 이성과 고도의 집단지성이 비추는 렌즈 앞에선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고,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다. 국민을 배반한 권력의 마지막 꼼수도, 정치권의 주판알 튕기기도, 궤변의 책임논리나 돌발적 소영웅주의도 시민의 눈을 속일 수 없다.

박근혜의 모래시계에서 마지막 모래알이 흘러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직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국정공백, 헌정중단보다 더 큰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그래서 민심과 공감하는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민들은 국정의 정상화를 기대하며 그 역할을 야당이 떠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야당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사로운’ 정치에서 시작된 위기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잇속을 노리는 정치는 이 국면에서 가장 예리하게 포착될 것이다. 야 3당은 오로지 시민의 뜻에 따라 국정을 정상화하는 길을 올곧게 선택해야 한다.

경제 위기와 트럼프의 미국 대선 당선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급박한 현실을 자신이 물러나지 않아야 할 이유로 들이대는 것은 반상식과 비정상의 절정이라는 것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쁠 순 없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통합된 국민의사에 반하는 대통령의 아집으로 나라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면은 혼미하나 민의는 하나다. 남녀와 세대와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어 6월항쟁 이후 지금처럼 압도적인 국민통합과 단일의사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고위급 인물들이 줄줄이 소환·구속되는 데서 볼 수 있듯 청와대는 이미 부패의 핵심이자 범죄소굴이었다. 그 범죄자들에게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동시에 자신들의 범죄를 가능케 해준 두목이었다.

퇴임 이후 문서를 반출한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자기 정부의 공직기강비서관과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 사범으로 정죄한 대통령(과 여당)은, ‘현재의’ 국가기밀을 계속 반출하도록 조장·허용·묵인하는 국기문란행위를 자행한 자신에 대해서는 탄핵을 포함해 훨씬 엄한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늘 말한 원칙이고 신뢰다.

종횡으로 연결된 사적 범죄집단의 위세는 공조직을 압도하였다. 대포폰, 차명거래, 외부밀실 회합, 국가재물사취와 이익보장, 주고받기 거래 등 조직폭력배들이 사용하는 어둠의 수법들을 문명국가의 최고 공조직 내에서 지속한 그들이 반(反)국가 범죄집단이 아니라면 누가 반국가·반공화국 범죄자들인가?

국가 권부의 사사화는 국가 공공기구와 시민사회의 열정과 생기, 의지와 창의, 애국심과 헌신을 무력화하여 국가발전을 가로막은 최고 주범이었다. 이런 국가공조직이 국가발전을 이끌 수는 없다. 군대라면 전쟁에서의 승리는 꿈조차 꿀 수 없다. 따라서 국가의 사사화는 공화국의 존엄성과 공화국 시민의 존귀함과 자존감을 짓밟은 국가능멸인 동시에 국가파멸의 망국적 범죄다. 

무엇보다도 무녀에게 홀렸다는 논리는 전혀 옳지 않다. 핵심 문제는 구조이며, 구조를 활용한 대통령의 사인적 정신상태와 행동이다. 부패고리는 치밀했다. 그리고 부패를 낳은 국가 주요 정보와 정책의 사적 누설과 사익의 교환은 철저했고 반복적이었다. 대통령을 닮은 사적 행위자들은 국가의 약한 공적 고리 곳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국민의 복지와 임금으로 돌려져야 할 자원을 송곳처럼 빼먹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적 친위세력을 공적 길목에 정확히 배치하여 갈취구조를 완성하였다. 부패구조는 마치 ‘조직 내 조직’처럼 공적 결정체계와 소통과정을 무력화시키는 암적 존재였다. 그들은 방송, 체육, 연예, 문화, 올림픽, 교육, 재벌, 대기업, 경제단체에 넓고 깊게 마각을 뻗쳤다. 이들 국가부패구조를 종횡으로 엮는 정점 고리는 대통령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모셔놓고 권력-관료-재벌-기업-문화-방송-교육-대학의 상층부가 거대한 부패의 사슬구조를 형성하여 국가를 뜯어먹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금번 부패사슬구조는 전혀 훈련받지 못한 무자격 하류잡범들이 대통령과의 사적 연줄 하나를 무기로 국가 심부를 초토화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었다. 대통령의 오랜 사적 심부름꾼을 포함한 하류잡범들의 지식과 경력을 보면 이들에게 국가 최고 인재들이 계속 제공한 국가기밀과 결정권한, 굴종과 아부는 애국심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적 윤리조차 찾기 어려운 서글픈 국가현실을 상징한다. 국가고위직들이 특정 사인에게 업무협조·보고·정보제공·복종·굴종·아첨·공모하는 치욕적인 행태를 반복하는 실상은 국가기강과 공공윤리의 전면 붕괴를 보여주는 표상이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의 가장 비통한 모습이다. 국가공공성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도 노예적 관료와 지식인들 중 누구도 양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재벌과의 정경유착은 문제의 심층 본질을 구성한다. 냉혹한 이해타산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대통령의 정치적 뒷배와 경제적 특혜에 대한 기대 없이 일시에 신설 조직에 거액을 갹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불법행위 묵인과 탈세 무마를 포함한 불법흥정과 거래는 국가를 사설부패집단으로 변모시킨 전두환·노태우의 파렴치한 수법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 기업들이 불법 제공한 거액은 노동자들의 피땀이라는 점이다. 재벌 대기업들의 천문학적 이익과 사내유보금은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구조로 인해 가능했다. 청년실업이 만연하고, 주요 국가산업이 쇠퇴하고,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숱한 노동자들이 실직당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에도 국가권부는 스스로가 넓고 넓은 부패공간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정권과 기업의 부당한 결탁이 경제의 추락과 국가퇴락을 가속시킨 요인인 것이다. 대통령 하야와 부패고리 청산이 국가추락을 막고 성장동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인 까닭이다.

교육공정성의 붕괴는 금번 사태의 또 하나의 중심 줄기다. 입시는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의 전 생애를 건 승부다. 그러나 부모의 불법 권력과 금력에 힘입어 뒷문입학이 가능하다고 할 때 국가 교육체계의 모든 공정성은 무너진다. 나아가 권력-대학, 부모-교수의 부당한 거래로 학업성취도가 결정된다면 대학교육은 존재의 이유조차 없다. 이 두 모습의 결합은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대학 입시, 공무원시험, 환경미화원은 물론 비정규직조차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지옥 같은 현실이다. 그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청년들이 기나긴 날을 사투해야 하는 현실에서 누군가가 부모의 부정부패를 등에 업고 아무런 노력도 없이 쉽게 인생의 성공가도에 들어서는 부당한 현실은 부모와 청년학생들을 격분과 공분 상태로 치닫게 하였다. 이런 언어도단의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박근혜는 박정희의 육체적 2세일 뿐만 아니라 정치행태 역시 고스란히 부활시켰다. 새마을운동, 국정교과서, 국가정보기구 선거개입, 정경유착, 부패구조, 종북공세, 최태민·최순실 일가 부활과 밀착…. 박근혜시대는 박정희시대 통치양태의 부정적 생환이었다. 사실 대통령만 특권적 2세가 아니었다. 박정희를 모셨던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충격적이게도 현 정부의 청와대, 정부 공공조직, 여당의 고위인사 부모들은 상당수가 박정희시대 장관·장군·고위관료·국회의원들이었다. 대통령과 이들 세습 자제의 사사적 특권행태에서 모든 국민을 위한 공화국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정점이 사사화하자 학교·기업·금융·병원·유치원 등 거의 모든 곳에서 재봉건화와 재신분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국가가 튼실히 보호하는 공화국 국민과 공적 시민은 실종되고, 낱낱의 사적 개인들만이 거대기구들과 단독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즉 일상 삶의 현장에서 사장·회장·교장·원장·상사를 포함한 소위 ‘갑’들에게 당하는 일반 서민들의 직업적 불안정성과 인간적 모멸은 국가공공성의 해체에 비례하여 말단까지 급속하게 확산된다. 국가권력의 민주화 없이 기초 생활단위와 일상현장의 인간화는 전연 불가능하다. 생활현장의 민주화와 인간적 대우는 국가권력에 대한 공적 통제와 민주화에 비례한다. 그들 각 단위 삶의 불안과 울혈이 불의한 사적 국가권력의 전횡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 금번 국민항쟁이다.

공화국은 본래 소수특권층이 아닌 ‘모두의 복리’ ‘모두의 행복’(common wealth) 또는 공민의 나라(republic)를 뜻한다. 우리가 지금 공화국 대한민국을 소수 부패집단에서 국민 모두를 위해 반드시 다시 찾아와야 하는 이유다. 애국국민들이 국민항쟁을 통해 참된 민주공화국을 재건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예혁명이요, 시민혁명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끝내 하야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대통령의 존재가 대한민국의 골칫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환부인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식물대통령’을 거쳐 우리는 사상 처음 ‘환자대통령’을 갖게 되었다. 국민항쟁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질병은 대한민국 전체로 번지고 말 것이다. 하야가 정답인 이유다. 잿더미로 변한 조국의 공공성을 구출하고 공화국을 구원하기 위해 우린 다시 시민적 영혼을 가다듬어 광장에 모여야 한다. 

이번 국민항쟁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지금은 국가권력과 국민권력의 분리상태다. 이중권력상태다. 즉 정의로운 국민권력과 불의한 정권집단의 격돌이다. 불의한 권력집단은 대한민국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와 국가미래가 끝없이 추락해도 끝끝내 국민과 맞서려는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정의를 이기는 불의도 없다. 정의로운 국민을 이기는 불의한 권력은 더욱 존재할 수 없다.

하야 이후 국민의 용서를 기다린다면, 자비로운 국민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엄정수사와 진실고백, 중립내각 구성, 국정 완전후퇴, 비정(秕政) 백서 발간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관용 어린 국민들은 하야 이전이라도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국민과 국가와 본인의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 마지막 남은 애국의 기회를 잃지 말기를 눈물로 호소드린다.

박명림 |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치의 기본은 공과 사의 구별이고 정직이다. 나는 일찍이 박근혜 대통령의 치적이 성공하기를 마음속 깊이 빌었다. 나는 대통령이 여자이고 독신이기 때문에 그 어느 대통령보다 진실하고 깨끗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순실이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증거물이 발견될 때까지 자신의 위법행위를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속이고, 자신의 개인적인 친분을 위해 국법을 어기고 기업의 목을 비틀고 학문의 전당을 짓밟는 무법자의 대부 역할을 해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권력에 취해 오기와 오만과 아집으로 대통령직을 만인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군주로 착각하고 각료를 비롯한 참모 및 당·정관계를 수직적 주종관계로 추락시키고 나만이 옳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참모들의 직언을 배신으로 보복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을 지적하고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을 강조한 참모를 배신자로 낙인 찍어 정치적 살인을 시도했다. 과거 공화당 통치시절 당 사무총장이었던 고 김성곤 의원이 정부와 당의 개혁을 주장하다 배신자로 낙인 찍혀 안기부(국정원)에 끌려갔다. 살아 있는 닭의 털을 뽑듯 김 의원은 카이젤 콧수염을 생으로 뽑히는 고문을 당했고, 그는 후유증으로 얼마 안 가 억울하게 삶을 마감했다. 피는 역시 속이지 못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친분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위법 행위를 자행하며 국민을 속이는 대통령에게 더 이상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지금 대통령은 사이비 종교의 최면술에 걸린 듯 이성을 잃었다.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하야로 국정 공백이나 국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 4·13총선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의식과 판단, 그리고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 등에서 보여준 민중총궐기에서의 시민의식, 그리고 국민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며 최순실 감시자가 된 현실을 보면 그렇다.

그리고 검찰은 미르·K스포츠 재단을 위해 조성된 800억원이라는 돈이 과거 전두환과 노태우가 조성한 비자금과 어떻게 다른지 기금조성에 대한 수사에 운명을 걸어야 한다.

검찰은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로 부패한 집권세력이 기업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악용하는 폐습을 뿌리 뽑아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검찰임을 증명해야 한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자금을 제공한 기업들은 정직하게 사실대로 진술해 다시는 권력이 기업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협력해야 한다. 닭 모가지는 비틀어도 날은 밝지만 기업의 모가지를 비틀면 보릿고개가 다시 옴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국민 모두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그리고 법이 다스리는 나라, 법치국가를 만들어 보자.

이영수 | 재이손산업(주) 대표이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한민국이 멈췄다. 국민들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일을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자괴감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가지고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저지른 일은 국가의 기본을 철저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이러한 허탈감과 분노에는 여야, 진보와 보수, 세대, 지역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모든 것에 앞서서 기본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전부 무너졌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아름다운 헌법의 문구를 순진하게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비선 실세가 이 정도까지 국정을 농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수십 년을 성실하게 일한 관료가 입신양명까지는 몰라도 실세 눈 밖에 났다고 하루아침에 쫓겨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기업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통치자금으로 뜯길망정 적어도 실세 모녀의 사금고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자식 뒷바라지를 남들만큼 못해줘서 명문대에 보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을망정 적어도 대학이 규정을 뜯어고치고 지도교수를 바꿔치워 가면서 실세의 자식에게 특혜를 주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무엇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가 국정의 컨트롤타워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조차 의심받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 2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광장에서 수원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민주주의 수원 공동행동’ 회원들이 촛불 문화제를 열고 “박근혜 퇴진” “박근혜 탄핵”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탄핵과 하야를 얘기하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 가능성을 보도했고, 며칠째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지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앞으로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추진한들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관료나 기업이 움직이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탄핵과 하야를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가가 정권과 함께 침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다음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1년4개월이나 남았다. 탄핵이 설사 국회 문턱을 넘는다 하더라도 헌재를 거쳐야 하니 몇 달간의 국정공백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인 박근혜의 일관된 스타일로 볼 때 하야를 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서실장과 총리가 슬쩍 흘린 피해자 코스프레 후 봉합이라는 수순은 거대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높을뿐더러 성공한다 하더라도 1년4개월간의 국정공백을 불러올 뿐이다. 세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공책을 동원한 반격에 대한 루머도 떠돌아다닌다. 이것은 그야말로 망국을 불러올 것이므로 그 정도의 합리성만은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거론하고 있는 거국내각은 해법이 될 수는 있다. 노태우 정부 말기에 구성된 거국중립내각의 현승종 총리처럼 본인의 정치적 야심을 앞세우지 않으면서 여러 정치분파로부터 비교적 고른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원로들은 그나마 몇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성정으로 볼 때 이것도 역시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현승종 내각은 2개월간 선거관리만 하면 됐었지만 지금 만약 거국내각이 구성된다면 1년4개월간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차이점도 있다. 무엇보다 미세하게 변하는 청와대의 스탠스를 지켜보노라면 시간을 끌면서 여론이 식기를 기다리고 수석 몇 명 교체와 최순실 소환, 그리고 도통 진전이 없는 특검 혹은 검찰 수사의 수순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착각임이 드러날 것이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분노의 온도는 세월호 참사 때보다도 훨씬 뜨겁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져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던 노인과 대구·경북도 혀를 차며 오늘은 또 얼마나 충격적인 정권의 실체가 드러날지 8시 뉴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정치무관심층으로 꼽히던 직업군의 사람들도 이게 무슨 나라냐며 수치심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대학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다. 실로 20여년 만에 대동단결하여 탐사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언론은 아직도 넉넉한 실탄을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설 것이다. 29일로 예정된 탄핵집회가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때의 집회구호는 ‘이명박 OUT’이었지만 이번에는 앞에 한 줄이 더 붙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일갈이다. 이 짧지만 강렬한 물음에 대통령은 “이게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답할 수 있어야 봉합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이것을 나라라고 부르기는 불가능하다. 편 가르기를 통한 보수 결집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있어야 보수고 진보고 있는 것이니까. 구중궁궐에서 측근들에게만 둘러싸인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다시 광화문을 정권과 국민이 충돌하는 격렬한 전장으로 만들 것인가. 그 격렬한 전장에 이번에는 컨테이너 대신 무엇을 쌓을 셈인가.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어제 황교안 총리 주재로 긴급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었지만 아무런 수습책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한 축인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 퇴진론이 분출하는 속에 친박근혜 세력까지 붕괴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물음에 탄핵 또는 하야해야 한다는 응답이 42.3%로 나와 내각·청와대 인적쇄신(21.5%)으로 마무리하자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90% 투표했던 대구·경북지역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안보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대통령이 자초한 국정문란으로 식물정권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소속 회원들이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최순실게이트에서 비롯된 국정농단 논란과 관련한 청소년 시국선언 선포 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청와대는 내주 중 총리와 청와대 일부 보좌진을 교체하는 방안을 거론한다고 한다. 안이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어떤 것을 들고나와도 시민이 용납하기 어렵다. 이미 대학가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스스로 특검 수사를 자처하는 것이 옳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박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시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부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탄핵과 하야 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도 질서 있는 국정 수습책이지 선명성 경쟁이 아니다.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여야가 다 참여하는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야 합의로 새 총리와 주요 장관을 뽑은 뒤 중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도 어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 리더십으로 현 체제가 유지돼서는 안된다”면서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거국 중립내각이 구성돼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전 대표가 동의했으니 일정한 공감대는 형성된 셈이다. 새누리당도 이 국면을 회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국정 안정화를 위해 중립내각 구성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도 중립내각을 수용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남은 임기 1년3개월 동안 최소한의 역할만 하겠다고 공개 선언해야 한다. 그게 박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최소한이나마 책임지는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