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결정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언론에 의해 잠깐 동안 제기됐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이번의 영장 기각결정은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에 별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본다. 심지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그것이 이 부회장에 대한 무죄판결로 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유무죄를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라 원활한 수사를 위해 피의자를 구속해 신병을 확보해둘 필요성이 있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따라서 법원의 영장기각은 현재 상황에서 특검 수사를 위해 이 부회장의 구속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라는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영장 기각결정이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도 이렇게 미미할진대, 제3자인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될지, 이 혐의에서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은 특검의 기소 이후 법원의 재판을 통해 결정될 부분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에는 무려 13가지에 이르는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소추사유들이 적시돼 있다. 그중의 하나가 형법상 뇌물죄 위반일 뿐이다. 설령 뇌물죄 부분에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가 없다고 헌재가 판단을 내리더라도 다른 12개의 탄핵소추 사유들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의 혐의가 입증되면 헌재는 바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굵은 눈발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앉아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그러면 이번의 영장기각 결정이 탄핵심판의 속도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탄핵심판의 결론에 영향이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속도에도 영향이 없다고 본다. 오히려 탄핵심판 공개변론 과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계속해서 지연 전략을 쓰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초기 첫 답변서에서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 연루자들의 법원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며 대통령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려 한 이래로, 여러 쟁점들에서 형사재판에나 적용되는 법리를 헌법재판의 하나인 탄핵심판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간 끌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안종범 전 수석이 작성한 수첩 중 11개가 수첩을 돌려주겠다는 검찰의 약속을 믿고 제출된 것인데 검찰이 이를 돌려주지 않고 압수영장을 청구해 확보한 위법수집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대법원 판례상의 독수독과원칙에 따라 위법수집 증거를 이용해 이루어진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을 담은 신문조서 등도 탄핵심판에서 증거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탄핵소추사유 중 하나인 대통령의 권한남용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그것도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용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법리를 들어 증거 채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심리를 지연시키려 한 것이다. 다행히 헌재는 이에 대해 불법한 압수인지 아닌지는 헌재가 판단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은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다투라고 하면서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핵심판은 형사사건과 별개라고 본 것이다. 더욱이 바로 다음 날 법원은 안종범 전 수석의 형사재판에서 수첩 모두를 증거로 채택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헌재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재판 지연 전략에 말려들지 않고 신속한 재판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헌재는 계속해서 이러한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추가 증인신청도 시간 끌기를 위한 것으로 판단되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중요한 쟁점의 심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면 변론을 신속히 종결하고 이제 평의를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헌재의 조속한 결정은 국익이나 국민의 뜻에 비춰봤을 때 꼭 필요하다. 또한 일부 재판관이 퇴임해서 8명이나 7명의 재판관이 탄핵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결정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9명의 결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비를 걸 수도 있다. 헌재 결정의 권위라든지 반대 측으로부터의 시비를 차단한다는 의미에서도 조속한 헌재 결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함박눈이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에서 열린 제13차 촛불집회에서 32만명의 시민들이 입을 모아 촉구한 것도 헌재의 ‘조기 탄핵’이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탄핵심판을 형사재판처럼 진행해서 시간을 지체할 거라면, 헌법재판관들은 헌재 대법정의 재판관석이 아니라 법원 형사법정의 판사석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헌재라는 최고법원의 재판관에게 국민이 부여한 막중한 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헌재의 조속한 결정을 다시금 촉구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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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촛불에서 횃불로 옮겨붙었다. 부문별, 계열별 전문가 집단이나 협회, 단체들의 자잘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혁신하려는 이 도도한 흐름은 국민·시민 주체가 만들어내는 촛불공론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나 시민이라 불리는 주체들이 단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따로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강고하게 연대한 개별주체들이다. 이렇듯 파편화한 개인들을 엮어주는 공론장은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일궈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거대한 퍼포먼스와 섬세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시민운동가와 문화예술인들의 역할도 매우 크다.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변혁의 에너지를 지켜내는 일은 100만 촛불의 몫으로만 남겨진 것은 아니다. 그 힘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업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울 추위가 강해질수록 현장을 지키는 문화예술인들의 강단있는 활동이 도드라져 보인다. 단 한 명의 입건 사례 없이 평화롭게 이어온 촛불집회는 공연을 매개로 한 정서적 공감의 장이다. 그것은 장르와 세대를 넘어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게 만드는 예술의 역할을 재확인시켜준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가 공존하는 촛불문화제는 투쟁의 장을 축제의 장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12일 서울 대치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특검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여기에 더해서 시각예술가들의 다양한 표현물들이 집회장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텍스트 작업은 물론 걸개그림과 포스터, 깃발, 퍼포먼스, 스티커,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풍자와 비판정신 가득한 작품들로 광화문광장을 예술의 거리로 만들고 있다. 100만의 촛불파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여서 예술적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장의 갤러리 ‘궁핍현대미술광장’을 열고 개관전 ‘내가 왜’를 시작했다. 촛불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공론장을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하고 확산하는 예술적 소통공간이다.

이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마음은 국가위기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 이성적인 합의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일의 초기부터 광장에 자리 잡고 광화문텐트촌을 꾸리고 있는 예술인들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집회 현장의 공연 및 전시 프로그램을 통하여 광장의 에너지를 집결하는 한편, 그 너머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문화예술 개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가 아무래도 비리의 폭로에 주력하느라 차분한 성찰과 대안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들의 광장토론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과 사업 분야에 집중해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예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돌았다. 민관협치 개념으로 출범했던 예술위원회는 오작동을 연발했다. 공공기관의 인사 문제 또한 무방비로 농단의 무대로 전락했으며, 문화융성의 이름으로 깨알 같은 사익편취가 만발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는 동안 문체부의 행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행정적 과실 유무 여부를 떠나서 공직자 윤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담하기 그지없으니, 이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시 논의할 때가 왔다.

국가단위 행정을 지자체단위 행정으로 세분화·지역화하고, 아카데미와 시장과 행정이 주도하는 제도예술과 그 바깥 비제도예술의 공존과 균형을 맞추며, 예술위원회를 되살려 민관협치를 복원하고, 기관장 인선 관련 전문성 강화 및 국정농단의 비리 관련 부역행위에 관한 행정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일 등 무수한 사안들이 있다. 나아가 국정 전반에서 문화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재구조화 논의가 절실하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최순실은 현 정권의 비선 실세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처에 똬리 틀고 있는 모순덩어리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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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전국적으로 70만명이 모인 9차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대통령 퇴진’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심판 진행을 통한 ‘조기 탄핵’을 외치는 국민들의 함성이 높았다.

헌재의 탄핵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첫째, 대통령의 ‘즉각 퇴진’은 대다수 국민들의 일관된 민심이다. 국회의 탄핵소추 직전에 ‘국회가 여야 합의로 퇴진 일정을 정해주면 거기에 따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일부 정치권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국민들은 미동도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 스스로의 하야가 됐건, 헌재에 의한 파면결정이 됐건 박근혜 대통령과는 함께할 수 없음을 일관되게 밝혀오고 있는 것이다. 헌재가 행사하는 헌법재판권도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 원리에 의해 주권자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헌정을 중단시킨 대통령에 대한 ‘즉각 퇴진’ 요구는 즉흥적이고 가변적인 여론이 아니지 않은가. 주권자 국민들이 상당기간 일관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민심이다. 헌재에서는 이러한 민심을 잘 살펴 신속한 탄핵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국익을 위해서도 신속한 탄핵결정이 꼭 필요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한 국정수행은 임시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안으로는 경기 침체로 경제위기가 도래하고 있고 밖으로는 미·중·러의 대립과 북핵 문제로 여러 외교·국방상의 현안들이 쌓여가고 있다. 새 대통령을 뽑아 적극적인 국정수행으로 이러한 국내외의 위기들을 돌파해 나가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비정상적인 권한대행 체제로 아까운 시간들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지난 22일에 헌재에선 제1차 준비절차기일이 열렸다. 3명의 수명 헌법재판관들은 5번이나 ‘신속한 진행’을 강조했다고 한다. 문제는 대통령 측의 태도다. 대리인단을 통해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답변서에서 13가지 탄핵소추 사유 전부에 대해 부인하고 철저한 사실조사를 요구했다고 한다. 탄핵심판을 사실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형사재판처럼 끌고 가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끝까지 민심과 국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 헌법재판의 하나이면서 ‘파면’을 통해 일종의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은 징역형 등의 형사처벌을 통해 형사책임을 묻는 형사재판과 그 심판절차에 있어서도 같을 수 없다. 징역과 같은 형사처벌을 내리는 형사재판에서는 징역 몇 년으로 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사실조사를 통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엄격한 혐의 입증이 필요하지만, ‘파면’이라는 징계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에서는 그 정도로 철저한 사실조사와 혐의 입증이 필요 없다. 개략적인 사실조사를 통해 13가지 중 어느 하나의 탄핵소추 사유에서라도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지위에서 국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신임을 박탈할 정도의 위헌 혹은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바로 파면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형사상 유무죄를 가리는 철저한 사실조사는 탄핵인용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그 후 기소돼 형사재판에 넘겨졌을 때 하면 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을 하고, 형사재판은 법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헌재의 탄핵결정은 1월 말 박한철 소장의 퇴임 전까지 내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한대행에게는 헌재소장이나 헌법재판관과 같은 중요한 인사를 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1월 말 박 소장 퇴임, 3월 중순 이정미 재판관 퇴임 후의 후임자 선출은 당분간 어렵다고 봐야 한다. 9명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있을 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서두르면 충분히 가능하다.

특검도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불응하면 진실규명을 위해 강제수사도 가능하다. 헌법 84조가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재직 중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은 ‘기소’ 면제의 특권이다. 기소 이전의 수사단계에서 특검이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영장을 신청해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국회의 탄핵소추의결로 권한행사가 정지된 대통령은 직무수행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형사상 특권이 적용되어야 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 자체가 없는데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형사상 특권을 보장해주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재의 파면결정에 추가적인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지금 국민들이 헌재를 향해 외치고 있다. ‘지체된 탄핵결정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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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 노동운동의 지도자이자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유진 뎁스는 미국인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설령 그럴 능력이 있더라도 여러분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을 그곳으로 이끌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여러분을 그곳에서 끌고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뎁스가 살아서 촛불집회를 본다면 자신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느낄 법도 하다. 그만큼 시민들은 특정한 정치 지도자나 정당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강력한 정국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게 했다. 아직 확고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상황도 극히 유동적이지만, 주권자가 직접 나서서 기성 정치권이 나라의 새 기틀을 세우도록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혁명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혁명이라 부르는 사건은 4·19혁명뿐이다. 물론 이 용어에 부정적인 이들도 아직 많고, 현행 헌법 전문도 ‘4·19 민주이념’이라는 표현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4·19는 결코 ‘의거’나 ‘봉기’에 머물지 않은 위대한 ‘미완의 혁명’이며,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경험을 거치며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학자들은 뚜렷한 이념, 조직된 주체, 폭력적 권력 교체 등의 기준에 비춰 촛불집회에 혁명의 개념 적용을 꺼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론은 현실을 뒤따라오는 법이다. 이화여대생의 끈질긴 농성 투쟁이 운동권의 관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음을 되돌아보라. 머지않을 미래에 정치적 변화가 고비를 넘는 순간, 이 땅이 새로운 정치이론의 탄생지가 될 수도 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4월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4·19가 터진 다음달에 그는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기도’) 우리의 혁명을 끝까지 이룩하자고 노래했다. 그처럼 소박한 성취라면 그저 자연발생적인 봉기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4월의 혁명성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동시에, 민중 역량의 취약함과 혁명을 훼방 놓을 세력의 건재함을 직시했다. 그런 복합적 인식 위에서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육법전서와 혁명’)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머지않아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면 이후 60일 안에 치러질 대선에서 새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다. 숨 가쁜 정치 일정 속에 시민혁명의 방향타를 주권자로부터 가로채려는 술수와 공작이 더 거세질 것이며, 야당들의 동요와 과욕이 부른 실책도 이어질 것이다. 그런 방해물들에 역사의 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시민들은 대선 이전에라도 결선투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를 바꾸고 검찰, 언론, 재벌 개혁을 서두르라고 외치는 중이다. 또한 권력 분점에 눈이 먼 졸속 개헌이 아닌 긴 안목의 차분한 개헌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이 민심에 충실한지를 가늠할 시금석 하나는 김수영의 깊은 인식과 한 몸인 살아 있는 언어 감각을 보여주느냐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의 헌정파괴에는 명백히 사법적 처벌 대상인 ‘공범’이 많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공범에 준하는 자들을 ‘부역자’라고 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한국전쟁기의 참혹한 대립을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는 우리 편이 아니면 곧 적이요, 적은 처단 대상일 뿐이라는 흑백논리에 오염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대선주자가 말한 ‘국가 대청소’는 성급한 어휘 선택이며, 촛불집회의 자유발언에서 시민들이 거듭 강조한 ‘우리 안의 최순실’에 대한 성찰과 동떨어진 느낌이 짙다. 퇴행을 거듭해온 우리 사회를 갱신하려면 단지 선명한 구호가 아닌 자기갱신의 비전을 담은 창조적 언어, 혁명의 언어가 필요하다.

급박한 변혁의 시기는 언어를 둘러싼 싸움의 나날이기도 하다. 농단, 탄핵, 인용 등 어려운 한자어가 빈번하게 쓰이는 시국에 ‘키친 캐비닛’ 같은 낯선 외국어가 오용되기도 한다. 세월호 희생자 중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9명의 실종자를 ‘미수습자’로 바꿔 부르게 한 사연을 정치권은 깊이 되새겨야 한다. 광장 안팎을 가득 메우는 자신의 실천이 혁명인지 아닌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촛불시민의 당당한 자세야말로 새로운 언어와 정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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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세력들이 전면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최순실씨는 그제 열린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8가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것인데 공모 사실 자체가 없으니 무죄라는 논리도 폈다. “죽을죄를 졌으니 용서해 달라”며 검찰청에 들어서면서 머리를 조아리던 게 불과 50일 전 일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며 국회가 제시한 13가지 탄핵 사유를 모두 부인했다. 몇 차례 반성하는 대국민사과를 일방적으로 하고 눈물도 흘리는 듯하더니 이제 와서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식이다. 갖은 비리에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기억상실증도 동시에 걸리는 모양이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팽개친 이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 21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와 최씨의 재판 발언,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친박계와 최씨 측근의 국정조사 말 맞추기 의혹 등을 종합하면 모든 것이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는 의심이 든다. 박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에서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완료 후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끌고, 이를 이용해 헌재의 탄핵 결정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정혼란이 길어지든 말든 자신의 몸을 건사해 반전의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이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시민들에게 퍼뜨리려 한 것도 작전의 일종이다. 최씨는 이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재판부에 검증을 요청했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씨 소유가 아니라고 해도 비선에 국민주권이 훼손되고 국정이 유린된 이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본심이 확인된 만큼 박영수특검팀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특검팀은 20일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면서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이들의 비리도 밝혀야 한다. 범죄 소굴이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압수수색을 실수 없이 마쳐야 함은 물론이다.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 절차를 진행해 탄핵 결정을 늦추려는 국정농단 세력에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 법원도 매일 재판을 연다는 각오로 국정혼란의 조기 수습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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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곧잘 비교됐던 미국 대통령은 앤드루 잭슨(1767~1845)이다. 미국 제7대 대통령이었던 잭슨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비주류 출신이다. 정치조직을 활용하지 않고 유권자를 상대로 유세를 벌여 당선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 잭슨의 지지계층은 노동자·농민 등 서민이었다. 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은 그를 ‘서부 출신 촌뜨기 대통령’으로 경시했다. 그래서였을까. 잭슨은 대통령 취임 이후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각료들을 제쳐두고 측근들과 국정을 논의했다. 이에 반발한 각료들은 잭슨이 ‘키친 캐비닛’(주방 내각)을 운영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가정에선 일반 손님은 응접실(Parlor)까지만 들이고, 친한 사이만 주방(Kitchen) 출입을 허용한다. 이에 빗대 미국 정가에선 잭슨 대통령 재임 이후 공식 내각을 ‘팔러 캐비닛’, 비공식 자문위원을 ‘키친 캐비닛’으로 부른다. 대통령에게 격의 없는 조언을 하는 키친 캐비닛은 임명직이지만 보수는 없고, 1년에 4차례 백악관에서 모임을 갖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하기 전 키친 캐비닛의 일원으로 활용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재일동포 출신 이홍범 박사 등을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 답변서에 ‘키친 캐비닛’이란 용어가 느닷없이 등장했다. 박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연설문을 고치게 한 것은 ‘국민 눈높이 자문’을 받은 것이며, 이를 속칭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미국 따라하려면 오바마처럼 세월호 참사 당일에 뭐했는지 분 단위로 공개하라”는 등의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둘(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는 치킨 캐비닛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 국민은 치킨 캐비닛에 권력을 위임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순실이 ‘키친 캐비닛’이라니, 프로포폴 전담 캐비닛이었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으며 20달러 지폐 앞면에 인물초상이 새겨진 잭슨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것 같다. 미국 시민이 알까 걱정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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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저지레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 모양이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밥만 먹고 이야기만 들었다면 키친 캐비닛이라 한들 뭐라 하겠는가? 그런 거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무엇인가를 도모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이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키친 캐비닛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이 최근 지적했듯 ‘가족기업’이다. 최순실은 남편, 박근혜는 아내라는 얘기다. ‘재산마저도 집단 운영해온 공동운명체’라고 하니, 구태여 부른다면 ‘키친 캐비닛의 대화’가 아니라 ‘베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때는 박근혜는 구국선교단이라는 거창한 조직의 대표를 맡고 최씨네는 실질적 경영자 역할을 하는 가족기업을 운영했다. 지금 최씨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종잣돈은 이때부터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에게 명예총재를 맡긴 후부터 최씨네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을 다 냈다’는 것이 최씨네 식구로부터 나온 증언이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 실험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재단을 책임지고 있던 때에도 그들의 궤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족기업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돈을 빼돌리는 일이다. 이들은 공공재를 개인화하는 일을 능사로 알았다. 당시에 일어났던 온갖 부정이 그러했다.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던 동안 대학 경영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입학, 경리부정, 재산매각대금의 불분명한 처리 등 문제 제기가 꼬리를 물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비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최씨네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가족기업이었다. 결국 그 일로 박근혜 재단이사장은 학원민주화 과정에서 자리를 내놓았는데, 당시의 부정비리가 최근 청와대에서 일어난 것과 복사를 한 듯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농단한 것이다.

 

지난 주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살인 암투를 보여주었는데, 그 핵심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거기에서도 오랫동안 가족기업을 굴려온 최씨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구국선교단,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그리고 청와대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돈을 어떻게 빼돌렸는지를 이번 기회에 파악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일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듯하다. 그리고 가족기업을 통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은 모두 토해 내도록 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부정축재에 대해 취한 방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부정축재를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저 음험한 가족기업의 모의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분칠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앉은 곳마다 능수능란한 방법으로 돈을 빼먹어온 저 어두운 역사를 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 환수한 나랏돈은 나라에 돌려주고, 학교의 돈은 학생들을 위해 쓰도록 하고, 공익재단의 돈은 재단이 돌려받아 사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최순실이 저지른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고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에서 재차 무고를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는지는 특검이 구체적으로 증거를 확인하며 밝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반복적인 ‘영업수법’으로 미루어보아 박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리에는 전략만 있고 성찰은 없다. 물론 그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입을 앙다물고 전위를 맡고 친박이 새누리당의 스크럼을 다시 짜며 후위를 맡아 특검과 헌재 심판을 돌파할 계획으로 보이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저지른 동일수법 전과기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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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꼭 열흘이 지났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 퇴진이 헌법과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정·청은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과 황당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되레 탄핵민심을 짓밟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헌법 위반 5건, 법률 위반 8건의 탄핵 사유를 모두 부정했다. 나아가 “최순실 등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헌재는 충분히 사실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탄핵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헌재가 검찰과 특검에 수사자료를 요청하자 곧바로 이의신청을 낸 것 역시 명백한 지연 전략이다. 그러면서 “최순실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 “측근비리가 발생한 역대 대통령도 모두 탄핵 대상”이라는 따위의 해괴한 논리를 들고나왔다. 정유라 친구 아버지의 현대차 납품 특혜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터무니없는 변명 일색이고 시민 상식과 거리가 먼 억지 주장이다.

 

[장도리]2016년 12월 20일 (출처: 경향신문DB)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란 주장에 이르러선 차라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수차례 대국민담화를 통해 울먹이며 시민에게 용서를 구하던 위선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살고 보겠다는 ‘막가파’식 태도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원내대표에 이어 비상대책위까지 접수하려는 ‘도로 친박당’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 중이다. 친박계 추대와 지지로 뽑힌 신임 정우택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내년에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또 좌파, 색깔론 타령이다. 어제는 비대위원장을 놓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은 곤란하다”며 ‘유승민 불가론’을 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 위반과 범죄행위의 실질적 공범이고 부역자 집단이다. 대통령과 함께 친박도 탄핵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석고대죄하기는커녕 여전히 대통령을 감싸며 한 줌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니 아예 민심과 담을 쌓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정당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찬가지다. 황 대행은 연일 지위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보를 하고 있다. 황 대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임시로 과도기를 이끄는 탄핵 시기 국정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동반퇴진해야 할 총리가 속죄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마치 선출된 대통령이나 된 듯한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늦게나마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여권의 일사불란한 일련의 행태는 당·정·청이 합심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계속 정권을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보인다. 촛불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반격이 가능했던 데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야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국정농단 세력의 발호 움직임에도 우물쭈물하며 허송세월했던 게 사실이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져 시민들을 답답하게 한 바 있다.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시민의 뜻은 신속하게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야 3당은 촛불민심을 수렴해 구체제를 청산하고 시민들이 요구한 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말뿐이 아닌, 진짜 수권정당의 능력을 보여줄 때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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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가 공개됐다. 탄핵 사유를 반박한 박 대통령의 논리라는 게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에 기재된 헌법 위반 혐의 자체를 모두 부인했다. 뇌물죄와 강요죄 등 각종 법률 위반 혐의는 ‘검사의 의견’이나 ‘무분별하게 남발된 언론의 폭로성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과나 반성은 일언반구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는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탄핵안의 핵심인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라고 했다. 미르재단 등은 공익사업이고, 박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한 것은 아니므로 뇌물수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관련 제3자뇌물수수죄도 부인했다. 기업의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압권은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최순실씨 딸 정유라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에 관한 답변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시야가 제한돼 있는 직업공무원들로 이뤄진 보고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국민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한 방법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인정돼 왔다”고 했다. 정몽구 회장에게 KD코퍼레이션 특혜 민원을 하는 자리에 직접 동석했으면서도 이런 식이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국민의 생명권을 등한시한 ‘세월호 7시간’에 관한 답변도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해경 등에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고 신속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했다”고 했다. 집무실로 출근하지도 않고 숙소인 사저에 틀어박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데 정상 근무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으로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긴 지 5시간, 사고 신고 8시간이 지났을 때다.

 

박 대통령은 19일부터 시작되는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결과 뒤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헌재의 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가 혼란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집권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겠다는 뜻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시민들 가슴에 또 한 번 못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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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려 있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즉각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기 위한 선거가 실시된다. 헌재의 결정 시점에 따라 대선시기가 달라질 수 있고, 대선후보로 나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퇴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등 정치일정은 매우 급박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받게 될 현시점의 대통령기록 처리와, 실제 탄핵인용이 될 경우 대통령기록 이관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대통령기록 파기와 멸실이 우려된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기록관의 장은 대통령 임기종료 6개월 전부터 이관 대상 대통령기록물의 확인·목록작성 및 정리 등 이관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상적으로 임기를 종료한다면, 2017년 8월25일에 대통령기록 이관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되면 법에서 명확한 이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현시점에 청와대가 대통령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이관에 협조적일지도 매우 우려스럽다. 최순실 특검법 수사대상 1호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청와대 관계인이 민간인 최순실 등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거나 외교·안보상 국가기밀 등을 누설하였다는 의혹사건’이다.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 4층에 역대 대통령 선거 당시 사용됐던 벽보와 유세사진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특검법에 문건 유출에 관한 수사를 명시하고 있으니, 증거자료로 활용될 대통령기록이 파기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현재 특검 및 대통령기록관은 청와대에서 생산된 대통령기록에 관한 어떤 법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실제 대통령기록을 전달받은 최순실은 지난 10월 독일 도피 기간 ‘더 블루케이’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폐기를 지시했고, 측근들은 컴퓨터 5대의 하드디스크를 포맷한 뒤 망치로 파기했다. 만약 이런 일이 청와대에서 일어나면 체계적인 수사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어렵게 시행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법도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특검과 대통령기록관은 위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우선 박영수 특검은 대통령기록관의 협조를 얻어 박근혜 정부 대통령기록 생산 실태를 확인해야 한다. 현재 대통령기록물법에는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의 원활한 수집 및 이관을 위하여 매년 대통령기록물의 생산현황을 대통령기록관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은 이 통계를 박영수 특검과 공유해야 하며, 통보되지 않은 대통령기록에 관한 실태 파악에도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현재 청와대 대통령기록에 대한 파기 및 증거인멸을 하지 못하도록 특검은 압수수색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수사과정 중에 대통령기록의 파기 등이 확인되면 ‘증거인멸죄’ 등이 아닌 대통령기록물법 무단파기 등으로 기소한다는 의지를 피력해야 할 것이다. 형법상 증거인멸죄는 실효성 있는 처벌을 하기 힘들었으나, 대통령기록물법상 무단파기죄는 ‘10년 이하 징역’으로 강력한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이 실현되면, 대통령 이관에 관한 현 정부의 협조를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법에서는 기록 생산기관이 폐지될 때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의 장은 지체 없이 그 기관의 대통령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 청와대 전체의 직무가 마비될 수 있어, 기록 이관 절차를 이행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은 인용결정이 난다는 가정하에 대통령기록물을 인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국정농단을 드러낸 것도 대통령기록이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겨둔 비망록이 얼마나 큰 증거로 활용되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이렇듯 대통령기록은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문제점을 보여줄 수 있는 ‘사초’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생산된 대통령기록을 향후 역사적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보호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전진한 ‘바꿈’ 상임 이사·알권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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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넘실대는 거대한 저항행동을 일단 ‘2016 촛불대항쟁’이라고 불러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한 것이 촛불대항쟁이었다. 바로 이 촛불시민이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주판알을 굴리던 국회를 내몰아 마침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게 했다. 촛불의 힘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라는 촛불의 염원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16 촛불대항쟁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사적 의미가 되기에 충분하다. 외환위기 이후 점점 더 고단해진 시민의 삶은 민주주의를 아득히 잊어버린 듯했고 위임권력은 권력자들만의 것이 되었다. 이 황폐한 정치의 시대에 놀랍게도 2016 촛불대항쟁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진화된 형태로 귀환시켰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진화를 멈춘 대의 민주주의의 출구를 열었다. 촛불대항쟁은 21세기 민주주의를 진화시킨 지구적 사건이 될 만했다. 그 특징을 몇 가지 들여다보자.

 

첫 번째, 촛불대항쟁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대규모 군중행동은 대개 불법적이고 비제도적 행동을 수반한다. 그러나 촛불대항쟁은 230만명의 군중이 완전한 자발성으로, 그리고 완전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도화된 저항행동을 보여줌으로써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나타냈다. 단 한 건의 체포나 연행 없이 자율적 군중의 민주적 활동반경을 넓힌 셈이며 대의적 영역을 넘어 직접참여의 민주주의를 확장한 효과를 얻었다. 두 번째, 거의 매일 그리고 매주말 열리는 거대 집회는 생활민주주의의 현장이 되었다. 생활민주주의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 참여적 정치양식이 결합된 질서를 말한다. 말하자면 개인의 삶을 공공적 쟁점으로 구성된 정치양식과 결합하는 생활공공성의 질서다. 2016 촛불대항쟁은 불법 없는 시민행동이라는 점에서 이제 확장된 정치제도요, 정치양식이 되었다. 적어도 촛불시민들은 대통령의 퇴진과 새로운 질서라는 공적 쟁점을 추구하고자 자신의 일상적 시간을 정치와 결합시키고 있다. 촛불대항쟁은 생활시민이 생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공적 정치양식이 되었다.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보이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째, 촛불대항쟁은 자아실현의 민주주의이자 자기표현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이 거대한 집회는 일원적 질서로 움직이지 않고 거대투쟁조직이 일원적으로 시민을 동원해내는 구조도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해내고 있다. 매주 새롭게 등장하는 깃발과 구호에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기표현의 민주주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얼룩말연구회, 한국고산지발기부전연구회, 독거총각결혼추진회, 노처녀연대, 행성연합 지구본부 한국지부, 장수풍뎅이연구회, 아이돌 팬의 깃발 등 대단히 다양하고 흥미롭다. 네 번째, 촛불대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성을 반영한다. 2016 촛불대항쟁은 역사적인 시민항쟁의 누적된 학습효과를 갖는다. 1960년 4월의 민주주의와 1987년 6월의 민주주의가 모두 미완에 그쳤다. 시민의 힘으로 항쟁을 만들었으나 제도정치권이 받아내지 못했다. 2016년 촛불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우리 시민혁명의 미완의 역사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차가운 이성으로, 훨씬 더 부릅뜬 눈으로 제도정치권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2016 촛불대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세대적 진화를 기대하게 한다.

 

현재까지 일곱 차례에 걸친 거대 집회에는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망라되어 있다. 심지어는 신혼부부들이 이 위대하고도 거룩한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기 위해 유모차를 몰고 나온다. 또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말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를 떠올리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2016 촛불대항쟁은 이미 문명사적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는 위태로운 정치과제들이 남아 있다. 더 크고 맑고 차가운 촛불의 눈으로 정치권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고 외쳐야 한다. 완성된 시민혁명, 그것도 무혈의 명예혁명 한 번 해봤으면 더한 바람이 없겠다. 전국에서 출렁이는 촛불의 물결이 2016년 ‘촛불혁명’으로 기록되는 날을 그려본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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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의 심판대에 올려놓았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력을 삿된 비선조직에 넘겨 국정을 농단하고, 세월호 등 수많은 재난과 사고에서 직무유기와 무능함으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구히 확보’(헌법 전문)한다는 국가의 존재 목적조차 저버렸다. 우리는 광장의 돌팔매를 대신한 탄핵의 절차로써 대통령이 벌인 탐욕과 불통의 막장드라마를 종결짓고자 한다.

사실 탄핵심판은 이 패악의 대통령에게 공식적이고 영구적인 징벌을 내리는 하나의 요식적인 법 절차에 불과하다. 지금 진행 중인 특별검사나 국정조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기에 국정농단 사건의 조사와 심판을 맡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그들의 입으로, 그들의 통치용어로 되뇌게 함으로써 그들이 통치자가 아니라 우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종복임을 다시금 확인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특별검사의 수사부터 보자. 특별검사를 지배하는 화두는 의당 진실이다. 물론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기에 그가 밝혀내는 진실은 초미세의 한정된 부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특별검사의 수사는 우리로 하여금 저 권력집단들의 흉포한 속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의 언동 하나하나에서 직권남용과 강요와 뇌물의 죄책을 가려내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그들의 범죄적 행태들이 어떻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구성하며,우리를 ‘개, 돼지’로 내몰 수 있는 그들의 권력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썩어가고 있는지, 그 복면 뒤의 정체를 하나하나 드러내어야 한다.

반면 국정조사는 굳이 진실에만 매일 이유는 없다. 국정조사의 주된 임무는 판단에 있다. 민주사회의 공직체계는 모든 권력이 합법성과 민주성, 책임성을 구비한 공적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강제한다. 수많은 인력과 엄청난 재정으로 구축된 공적 조직을 통해 대통령이나 재벌과 같은 상층 권력자들의 힘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일종의 수직적 권력분립의 체제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가 밝혀야 할 것은 이런 시스템의 붕괴 원인과 그 시스템의 복원 가능성이다. 이 광대한 공무원 조직은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이런 막장의 국정농단이 걸러지지 못했는지, 그래서 이 나라의 법치와 관료제는 도대체 왜 존재했었는지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른다”,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막무가내식의 국정조사 증인들의 발언이 공조직의 기록과 공적 검증 시스템에 의해 즉각 반박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철저히 판명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몇몇 재벌이 무너뜨린 우리의 공적 시스템은 이런 작업을 통하여 비로소 재건될 수 있을 터이다.

탄핵심판의 지향점은 이 모두에 대한 헌법적 평가여야 한다.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의 말처럼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 한다면, 탄핵소추의결서에 나와 있는 모든 탄핵 사유를 다 조사하고 심사하느라 시간을 끌 이유는 전혀 없다. 행동 하나하나가 잘못된 것인지의 여부를 따지는 형사재판과는 달리, 탄핵심판은 그 사람을 그 자리에 계속 앉혀 놓아도 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몇 가지 탄핵 사유만으로도 대통령 ‘깜’이 못 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대로 파면결정을 해도 된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집중하여야 할 점은 무너진 공적 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헌법적 가치들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이다.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원리의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고 그것이 불통의 정치, 야합의 폭정, 탐욕의 패악을 이겨내는 우리 국민들의 권력 위에 구성된 것임을 재확인하는 일이 그의 주된 임무가 된다.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이 우리들의 신성한 저항권으로 이어지며, 그 헌법의 명령이 우리들의 촛불로 실천되고 있음을 탄핵결정문에 알차게 담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2년 반이 지나면 1919년 4월11일 상하이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선언한 지 100주년이 된다. 우리는 한백년의 민주공화국을 찬란한 우리의 미래로 만들어낼 준비를 이미 끝냈다. 그 여정의 8부 능선에서 우리가 일구어낸 탄핵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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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 제69조에 의거하여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천명했다.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과 국가안위 및 국민 신뢰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구속력을 지닌 ‘헌법충성’(loyalty of constitution)의 책무를 밝힌 것이다.

기원전 487~416년 아테네 민주정은 70년간 투표에 의해서 독재자 11명을 국외로 추방했다. 이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탄핵의 목적은 주권자의 신임에 반하여 권한남용으로 국가와 헌법에 위반한 공직자의 직무를 박탈하는 것이다.

영국은 1376년부터 의회가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관습헌법에 의한 탄핵권을 행사함으로써 오늘날 의회민주정의 모범을 확립했다. 탄핵조사는 두 가지 헌법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는 탄핵조사의 법위반자가 탄핵을 받아 파면되어야 하는 지위에 있는지이다. 두 번째는 탄핵 피소추자의 직무행위가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를 구성하는지이다. 탄핵이 야당에 의해서 정치적 보복의 수단으로 남용되면 정부를 위기에 빠뜨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탄핵 대상과 탄핵 사유가 엄중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가운데 30일 탄핵심판을 맡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뒤로 청와대의 모습이 보인다. 김창길 기자

미국 헌법기초자들은 탄핵의 두 가지 헌법적 쟁점을 연방헌법에 충분히 반영했다. 1787년 미국 헌법기초자들은 연방헌법에서 ‘대통령, 부통령, 모든 민간공무원은 반역죄, 뇌물죄, 그 밖의 중대한 범죄·비행을 이유로 탄핵심판에 의해서 파면된다’(제2조 제4항)고 명시했다. 미국은 1793~2010년 하원에서 공직자 19명(대통령 2명, 장관 1명, 법관 15명, 상원의원 1명)을 탄핵 소추하고, 상원은 공직자 16명(유죄 8명, 사퇴 3명)을 탄핵심판했다. 하원은 탄핵 조사와 소추의 고유 권한을, 상원은 탄핵심판과 파면결정, 그리고 장래 공무담임권도 제한할 수 있다.

‘반역죄’와 ‘뇌물죄’는 헌법충성을 선서한 공무원이 국민의 신뢰와 국가를 배반하고, 직무의 완전성(integrity)과 법적 정의 및 헌법 자체를 침해하여 국가안위에 위험을 야기한 범죄다. 다음의 ‘중대한 범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에서 중대한 범죄는 권력행사의 목적에 따른 직무성질과 범죄의 심각성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미국의 중대한 범죄 유형은 부적절한 권한 남용과 초과, 직무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위법행위, 부적절한 목적이나 사익추구의 권한남용을 들 수 있다. 중대한 범죄의 특성은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여 ‘지독하게’ 권한을 남용하여 ‘상당한 규모의’ 위법행위를 범한 경우이다. 미국 대통령의 탄핵 사유로 인정된 중대한 범죄의 목록은 뇌물을 수수하여 국가와 헌법질서에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 정적의 불법적 기소·체포·살해 등에 국가기관을 이용하는 경우, 정신 질환이나 심각한 게으름으로 인해 기본적인 직무수행이 곤란한 경우 등이 포함된다.

2004년 5월1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에 관한 ‘탄핵심판사건’(2004헌나1)에서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라고 선고했다. 이는 미국 헌법의 탄핵 사유 중 중대한 범죄를 참고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헌법충성 의무와 국가·국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위배하는 동시에 직무행사와 관련하여 국가 및 국민의 이익을 희생하고 특정인과 담합하여 터무니없는 권한남용을 했으므로 셀 수 없이 많은 ‘중대한’ 법위반을 범했다. 국가와 대통령 지위조차도 사유물로 간주하고 국익과 국민의 권리를 희생하면서 오직 최순실 일가의 사익추구를 위하여 100건 이상의 위법행위를 했다. 이제 주권자는 신뢰를 배반하고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 대통령을 탄핵·파면하여 무너진 헌법질서와 국격을 바로 세우도록 명령하고 있다.

정영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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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결과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제3자 뇌물죄 등을 저지르고, 국정을 파탄으로 이끈 몸통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검사가 진행해야 할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내 야당이 해야 할 몫과 광장의 촛불이 해야 할 몫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국정복귀’ 운운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 원내 야당은 탄핵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결의했다고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국회 내에 있는 야당들이 해야 할 일은 서명운동이 아니라, 어떻게든 탄핵을 성사시킬 길을 찾는 것이다. 탄핵이 눈앞으로 다가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해도 할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탄핵이 현실화될 것 같으니까 사퇴했다.

탄핵 절차로 갔을 때 우려되는 것은 네 가지이다. 첫번째는, 국회 내에서 탄핵 소추 의결에 필요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새누리당 안에서도 탄핵 얘기가 나왔다. 이들이 탄핵에 동의하도록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야 한다. 뇌물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든 퇴출명단에 올릴 준비가 국민들은 돼 있다.

두번째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만약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헌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여론이 그렇다. 따라서 아무리 보수적인 헌법재판관들이라고 하더라도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탄핵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핵 심판에 걸리는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번째는, 국회가 탄핵 소추 결의를 하게 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당들은 진작에 총리 문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 때문에 망설여서는 안된다. 만약 황 총리가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정을 농단하려 할 경우에는 황 총리까지 탄핵시켜야 한다.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다. 역사를 보면, 권력서열 3위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사례도 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던 때에도 권력서열 3위인 외교장관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었다.

네번째,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1명의 임기가 내년 1월, 3월에 각각 끝나는 문제가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최소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한데,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 자리가 새로 충원되지 않으면 그만큼 가결이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뇌물수수를 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버틸 헌법재판관이 있을까?

그래서 지금은 야당들이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하고, 탄핵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이 해야 할 몫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탄핵 절차가 시작된다고 해서 시민들은 촛불을 놓아서는 안된다. 국회나 헌재에만 맡겨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앞으로는 퇴진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12일에 이어 19일에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헌법 제1조가 제대로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염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강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구는 다른 국가의 헌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헌법 제1조는 입법권이 의회에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고, 일본헌법 제1조는 천황 얘기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대한민국 임시헌법’에 뿌리를 두고, 제헌헌법으로 이어진 문구이다. 이 두 문장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응축된 문구이다.

그래서 시민들의 촛불은 헌법 제1조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제도를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시민들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며, 지방의 자치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집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다.

이 일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이 일을 맡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제1조 운동’으로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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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는 자유로운 정치적 결사를 전제로 한다. 일정한 정치적 견해로 뭉친 정당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 없이는 현대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을 정치 외부의 힘으로 경쟁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민’이라는 민주주의 전제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당이 선호되지 않는다면 그건 시민의 선택에 의해 가려져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원리에 타당하다. 정통성 있는 심판자는 오직 시민뿐이다.

한국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주체사상파(약칭 주사파) 혹은 넓은 의미의 자주파라는 특정한 이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왔고 그들의 참여로 정당도 탄생했다. 이 정당은 나름의 이념과 정강 정책을 제시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시민들의 욕구와 시대정신에 가까운 이념과 정책을 제시할 때는 지지를 늘렸고, 그렇지 못하고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의심을 받을 때는 지지를 잃었다.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때, 이석기 사건 때, 진보당 지도부가 이 사건을 옹호할 때 시민은 지지를 철회했고 그 때문에 진보당은 신뢰를 잃고 생존의 기로에 서야 했다. 시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인식한 대로 정치적 선택을 한 결과이다. 만일 진보당의 이런 행태에도 진보당이 성장했다면 정치의 오작동을 의심할 수 있지만, 진보당은 쇠퇴하고 몰락하는 중이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핵심적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근거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당의 해산과 선거로 선출된 의원직 박탈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만일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원했다면 판단하는 주체 역시 이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가 다룬 민주주의, 민주적 기본 질서, 정당이라는 개념들만 보더라도 정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재판관은 모두 판사·검사 출신으로 제한된 직업적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다수의 이념 성향 역시 보수적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헌재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정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비유와 문학적 표현으로 점철되어 있는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법률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인의 성명서에 더 가깝다. ‘대역(大逆)행위’ ‘불사(不赦·절대 용납할 수 없음)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이란 표현에는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건 법의 논리가 아니다.

이런 헌재 결정은 권위를 가질 수 없다. 헌재 결정을 두고 설득력 있는 반대와 비판이 맞선다면 그건 이미 권위가 훼손됐다는 걸 뜻한다. 물론 헌재는 이념 갈등의 종식을 희망했다.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진보당)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공세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견해가 다른 이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이념 전쟁과 종북몰이, 헌재 결정 이후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결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 재미교포의 방북 경험을 들려주는 토크쇼를 ‘종북 콘서트’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며 적극 뒷받침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헌법의 적”이라며 대결적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집권당은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할 태세이다. 보수단체는 진보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마치 전투 채비를 하는 전사와 같은 전의가 느껴진다. 이들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순간 이 사회 전체는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헌재 우회전 ‘빨간불’ 21일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 종로구 재동로터리에 헌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함께 붉은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출처 : 경향DB)


이들은 우리 내부의 평화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른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북한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이념을 제거한 헌재와 이에 동조하는 정권, 종북몰이에 빠진 보수들이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과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어색해 보인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정치의 무능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정치적 갈등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조정하거나 이견을 상호 설득의 과정을 통해 좁히는 대신 사법부에 떠넘겨왔다. 이 정치 실패가 사법부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관용하는 자유주의의 확산에 자부심을 느낀 시민들은 이제 사상·이념의 축소라는 퇴행적 현상을 지켜보게 되었다. 소수의 사상·이념을 물리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도, 그걸 지하세계에 가둬놓지 않고도 공론의 장에서 소화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 주권’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담론의 일부였다. 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통찰력을 제공하기도 했고 보수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비유어법이기도 했던 이런 말과 생각을 단지 의심만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사회의 내부는 다시 분단될 것이다. 이성적 사고의 절단을 보게 될 것이며, 불구의 사회로 되돌아가는 우울한 풍경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헌재는 한국 사회의 문제 하나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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