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정책이 2년째를 맞고 있다. 성남시는 2016년에 분기당 12만5000원의 청년배당을 만 24세 청년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분기당 2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배당은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청년배당을 지급받으려면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그 이외에 다른 조건은 없다. 그래서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 1만1000명 정도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다.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100억원 정도이다. 이 청년배당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왔다. 왜 ‘조건 없이 돈을 지급하느냐’는 반론도 많았다. 그리고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1년에 100만원으로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16년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 성남시 청년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청년들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40.3%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고, 55.0%가 ‘어느 정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청년들 중 95.3%가 1년에 50만원, 100만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는 돈이 부족한 것이다.

조사결과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 청년의 얘기였다. 그 청년의 얘기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돈이 없어서 취업을 하려 함 → 취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스펙이 필요 → 스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함 → 공부할 돈이 없음 →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함 → 돈은 버는 데 공부할 시간을 빼앗김. 악순환.”

이 얘기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미래를 준비하려 해도 돈이 필요한데, 기성세대는 돈을 지급하기보다는 ‘요즘 청년들은 열정이 부족하다’는 꼰대질을 해 왔던 것이 아닐까?

청년들 중에는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렵다’는 얘기를 한 청년도 있었다. ‘젊을 때에는 고생해야 한다’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 배부른 소리한다’는 시선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야말로 ‘경제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세대이다. 말로만 시민일 뿐,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나 기회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저임금·불안정 노동밖에 없는 청년들이 많다. 이런 청년들에게 ‘열정’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자립해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자립하라’는 강요를 하는 것도 모순이다.

진정한 자립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 청년들이 일찍 자립하는 나라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는 나라이다. 청년들에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과 혜택들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청년들의 자립이 쉽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아스팔트 깔고 쓸데없는 건물 짓는 데 들어가는 돈만 줄여도, 그리고 새고 있는 세금만 제대로 걷어도 청년들에게 몇 년간이라도 청년배당을 지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청년이 되었을 때에 일정 기간 동안 청년배당을 받을 수 있다면, 청소년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덜 불안하고, 좀 더 여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들은 배려와 존중을 받은 느낌이라고 한다. 말로만 ‘시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으로 대우를 받은 느낌인 것이다. 그래야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시민권’도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당수 청년들은 참정권조차 박탈당한 상황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세 선거권 연령을 규정하고 있고, 지방의원이라도 출마하려면 만 25세가 되어야 한다. 그나마 만 25세가 넘어서 피선거권을 획득하더라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청년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도 없다. 비례대표가 ‘장식품’에 불과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청년들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 당선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2030세대가 1%, 지방의회에서도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래서 청년배당과 함께,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의의 판은 열렸다. 지난 15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기로 잠정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될 핵심 쟁점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청년들의 참정권 확대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높은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다양한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

청년들이 직접 청년배당과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더 나이 많은 세대들도 함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실현되더라도, 팍팍하게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삶에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불평등에 관한 담론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1 대 99 사회’ ‘격차사회’ ‘사회 양극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분석적으로 불평등, 격차, 집중, 사회 양극화는 소득분포의 다른 차원을 가리킨다.

소득불평등 지수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니계수는 개인 단위로 소득 차이를 다루는 반면 격차, 집중, 사회 양극화는 집단을 중심으로 소득 차이를 다룬다.

격차는 특정한 소득집단 간의 소득 차이를 다룬다. 격차 지수로 많이 사용되는 ‘P90/P10’은 상위 10% 소득집단의 평균소득과 하위 10% 소득집단의 평균소득 격차를 측정한다.

집중은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서처럼 상위 소득집단의 소득 점유를 다룬다. 피케티가 사용하는 소득불평등 측정은 상위소득 1%나 10%와 같은 특정 집단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한다. 반면 사회 양극화는 두 개의 소득 집락(集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으로 통상적으로는 중간소득 계층이 줄어들고, 중간소득 이상과 이하로 분리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한국의 소득 분배는 이 4가지 차원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일단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된 한국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2012년 0.307이었고, 2013년과 2014년에는 0.302로 유지됐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불평등이 심한 경우의 지니계수는 칠레 0.465(2014년), 멕시코 0.459(2014년)와 미국 0.394(2014년), 터키 0.393(2013년), 영국 0.358(2013년) 등이었다. 2014년 한국의 지니계수 0.302는 일본 0.33(2012년)보다 낮고 프랑스 0.294(2013년)나 독일 0.292(2013년)에 더 가깝다. 이 수치로만 본다면 한국의 소득 분배는 양호한 수준이다.

정말로 양호한 수준일까? 왜 사회 양극화와 헬조선 담론이 대두되는 현실과는 크게 다를까? 문제는 자료에 있다. 통계청이 사용하는 ‘가계동향조사’는 표본수가 적어 고소득층이 거의 포착되지 않는다. 표본수가 커질수록 고소득 포착률이 높아진다. 표본수가 가계동향조사의 2배 정도가 되는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에서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2년 0.4044, 2014년 0.3873, 2015년 0.3814로 미국 수준에 근접했다. 이것은 OECD에 보고된 통계청 자료와는 상당히 다른 불평등 현실을 보여준다. 표본수가 더 늘어나면, 지니계수도 더 높아질 것이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집단 간 격차를 보여주는 P90/P10은 1990년 6.5에서 2000년 7.7, 2005년 9.8로 높아졌다. 그리고 2010년에는 13.16으로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는 2006년 1인 가구가 통계에 포함되면서 격차가 확대된 효과가 포함돼 있다. 이는 2015년에 11.91로 약간 줄었으나, 2015년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에서는 P90/P10도 16.62로 높게 나타났다.

상위 소득 10%의 소득 집중도는 1990년 22.81%에서 2015년 25.46%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에서 상위 소득집단으로의 소득 집중 수준은 OECD 평균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소득 집중이 계속 심해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소득 집중도에 근접하고 있다.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의 경우 상위 소득 10%의 소득 집중도가 26.80%로 가계동향조사보다 높게 나타났다.

양극화도 동일하게 심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추정한 포스터와 월프손의 양극화 지수는 1990년 0.2149에서 2010년 0.2887로 증가했다. 2015년 0.2799로 약간 줄어들었지만,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에서 추정한 양극화 지수는 0.3331로 가계동향조사보다 15% 정도 높게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 불평등, 격차, 집중과 양극화 모두가 심화되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불평등,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 정체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헬조선 담론은 소득 분배의 악화가 낳은 파생적인 산물이다. 3포 세대인 청년, 절반이 빈곤층인 노인 그리고 고용불안과 조기 퇴직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는 중년. 헬조선 담론은 모두가 불안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신광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큰 의문과 회의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가져왔다지만 장면들은 예뻤고, 평범한 대로 음악도 듣기 좋았다. 특히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영화의 큰 줄거리에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워, 마음속 ‘별점’을 두 개 반 정도만 줬었다. 약간의 고뇌와 좌절을 겪지만 젊은 백인 미남 미녀가 젊은 날의 ‘꿈’이라는 것을 장쾌하게 이뤄버린다는 성공 서사가 단순하고도 이상했다. 내가 본 LA는 트럼프가 싫어한다는 멕시코, 코리아, 차이나 등에서 온 키 작은 노동자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판타지의 미감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고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하는 데 제약이 있는 뮤지컬 양식을 빌렸다는 점을 감안해도 납득이 안됐다. 그러나 영화 사이트를 보니 서사나 주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영화는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완벽하다’ ‘황홀하다’면서 수사의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것은 특히 영화 비평가들이었다. 비평은 형식주의에 기울어 퇴락했는가? 내게 이 영화는 예쁜 판타지라기보다 거친 자기계발 서사로 보인다.

영화 '라라 랜드'의 한 장면

남자 주인공은 전능자다. 마음껏 ‘예술과 상업성’ 사이를 왕래하며 다 성취한다. 여자 주인공의 꿈을 이루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그녀도 ‘꿈’이란 걸 멋지게 이룬다. 도대체 그 ‘꿈’은 무엇인지? 공연 첫날에 막강한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벼락 스타가 되는 것? 역시 ‘캘리포니아 드림’이며 할리우드다. 꿈과 현실 사이엔 거의 아무런 장애가 없다. 고뇌와 성장통은 죄의식 없는 ‘성공’이라는 것을 더 맛깔나 뵈게 하는 양념 간장 정도다.

누구나 되고 싶은 것(욕망)과 할 수 있는 것(능력·현실) 사이의 차이 때문에 좌절을 겪는다. 더욱이 저 항목들은 절대평가되지 않고 철저히 상대평가된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내 삶 위에 겹쳐보며 욕망과 능력 사이의 괴리를 더 아프게 느낀다. 어떤 고매한 분들은 ‘네 자신의 삶을 살라’는 조언을 주지만, 그것은 기껏 위약이거나 또 다른 성공 전략의 일부다. 평생-상대평가-시스템으로부터 탈주하여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은 속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건 어른이건 우리는 상대평가에 너덜너덜해진 자의식을 늘 매만지고 우울해한다.

특히 등수 매기기와 경쟁을 처절히 버티고 내면화하며 자라온 젊은 친구들은 20%쯤의 자기긍정과 10%의 정신승리, 나머지는 온통 자기비하와 그것을 견디는 방어기제로 된 ‘뇌구조’를 갖고 있는 것 아닐까? 비율은 대학서열, 다니는 직장의 종류, 외모에 대한 자신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압박감은 비슷하다. 10~20대 자살률이 증명한다. 본의 아니게 저고용 초고령화 사회에 태어난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AI)과도 전투를 벌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실로 복잡하고 치열하게 고뇌한다. 이런 헬조선에서의 고민은 <라라랜드>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한국에서 자라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직장인·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자가 된다. 그런데 이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헤쳐 살아가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제 메커니즘과 윤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유럽의 어떤 나라들처럼 중·고등학교 때부터 노동자의 권리와 근로기준법 같은 진짜 삶의 규범을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막연히 ‘꿈을 이뤄야 한다’거나 ‘성공해야 한다’는 바람을 집어넣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과 연대에 대한 경멸과 증오도 불어넣는다. 그것은 물론 ‘타인의 욕망’과 자기경멸을 가르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일까? 초등학생들도 아이돌이나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라 하고, 스물 몇 살 된 친구가 ‘제가 아직 이룬 게 없어요’ 같은 말을 한다.

가난과 평범은 실패가 아니다. 그런데 계급, 학벌, 젠더로 가로놓인 엄청난 격차가 대다수의 인간을 엑스트라나 들러리처럼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꿈’이라는 환각을, 다른 한쪽에서는 분노와 자포자기를 대량생산한다. 노조 가입률이 10%밖에 안되고, 을과 병들이 늘 아귀다툼을 하는 사회에서 이런 마음의 악순환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물론 노래와 춤이 꿀처럼 흐르고 ‘내 꿈이 이뤄지는’(feat. Park GH) 라라랜드에 살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근로기준법이 지켜지고 칼퇴근·생리휴가·육아휴직이 불이익이 되지 않는 사회, 노동조합 활동가와 가난한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는 사회, 평범한 행복과 작은 성공이 죄스럽지 않은 ‘랜드’로 가고 싶다. 그래서 또 촛불을 든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치란 무엇인가? 대학 신입생 때 정치학개론 문제였다. 데모하느라고 결석을 밥 먹듯이 해 수업내용 대신 상식에 기대어 “만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이라고 썼다가 낙제점을 받았다. 이후 정치학 박사가 되고 30년 정치학을 가르치면서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는 “갈등조정의 제도화”라고 답한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들을 국회와 같은 제도의 틀 내에서 조정하는 일이 바로 정치라는 이야기이다. 촛불혁명을 바라보면서 이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의 최고경쟁력은 민주화운동, 사회운동이다. 외국 학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골리앗 투쟁, 촛불, 희망버스 등 우리의 운동을 너무 부러워한다. 그러면 나는 “이 운동들이 자랑거리가 아닐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답한다. 그렇다. 치열한 거리 투쟁과 거리의 정치가 일상화된 것은 정치가 제도 내에서의 갈등조정이라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의 실패’, ‘정치의 직무유기’ 결과가 바로 ‘거리의 정치’이고 광장이다. 정치가 원래 해야 하는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우리의 자랑거리인 거리의 정치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나 오려는가?

이번 촛불혁명의 밑바닥에는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 나아가 ‘헬조선’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다. 단순한 박근혜 퇴진을 넘어 ‘11월 촛불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필요조건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정치의 발본적인 개혁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 등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그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민심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다행히 광장의 힘, 그리고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생겨난 1여4야의 5당체제는 이를 이룰 수 있는 사실상 유일무이의 기회이다. 공직선거법을 고쳐 이번 대선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 제도는 30%대 지지율의 ‘소수파 대통령’을 양산해 왔다. 이는 대표성과 정통성에서 문제가 많다. 이제 결선투표제를 통해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다수파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는 야권 대권주자의 경우 이에 부정적 내지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을 자신이 없다면 그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

민의, 즉 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수를 배분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거대보수지역정당들의 담합체제를 깨고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제도정치로 나아가 거리가 아닌 제도 내에서 갈등들을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실패를 극복하는 첩경이다. 헌법재판소는 인구차이에 의해 표의 가치 차이가 3배 이상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에 던지는 표는 군소진보정당에 투표하는 표의 4배로 계산되고 있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대표의 확대와 연동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야합해 작년 총선에서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했다. 일각에서는 중대선거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보여주었듯이 이는 돈이 많이 들고 정치신인의 진입을 막는 등 문제가 너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9세인 투표권 나이도 글로벌 스탠더드인 18세로 낮춰야 한다. 이번 촛불의 중심세력 중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이고 이들은 자유발언 등을 통해 놀라운 정치의식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바른정당이 이에 반대하는 것은 새 당이 여전히 수구정당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경고대로 이에 반대하는 정당은 촛불민심 역행 정당이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우 원내대표가 막상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투표권 연령 인하와 함께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결선투표제와 독일식 연동제에는 침묵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결선투표제와 독일식 연동제에 반대하는 정당 역시 촛불민심 역행 정당임을.

“멍청하긴, 문제는 경제야!” 잘 알려져 있듯이 1992년 미국 대선에서 40대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들고나와 이라크 전쟁 승리로 기고만장하던 조지 부시 대통령을 패배시킨 유명한 구호이다. 그러나 이는 반쪽의 진실만을 담은 반쪽짜리 구호이다. 정답은 “멍청하긴, 문제는 정치야!”이다. 문제가 경제라고 하더라도 바른 경제정책을 선택해 펼 수 있는 올바른 정치가 없다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박근혜 게이트도 다 정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며, 정치개혁, 선거개혁 없이는 박근혜 청산, 헬조선 청산도 없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 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를 넘어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대체될 시점이 머지않은 것이다.

청년 가구의 소득불평등도 심화돼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9.56배에 달했다. 가계빚도 2년 새 900만원 넘게 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청년층 2명 중 1명꼴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고 체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가구의 경제난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으로 변질됐다. 청년고용할당제는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되지 않아 ‘반쪽 대책’에 그쳤다. 내년 최저임금을 고작 7.3% 오른 시급 6470원으로 결정한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최장 6개월간 일정액을 지급하는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배당 사업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무능한 정부가 보인 옹졸함의 극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급·상여금·수당 차별을 없애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청년세대가 꿈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라의 미래는 기대할 게 없다.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보려는 간절함 때문이란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몇 해 전 재벌 총수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 후 영훈국제중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했다가 적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학교 재단 임원이 특정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 조작을 지시하고 이를 대가로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는 등 온갖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특권층 자녀가 하나고 편입학 전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했다는 의혹이 교육청 감사결과 적발되어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서울서부지검은 1년 넘도록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하나고 입시 부정을 신속하게 수사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다. 우리 사회 특권층의 부정입학은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럼에도 사법당국은 특권층 부정입학에 무관심하다. 특히 검찰 조직은 국민정서를 외면한 채 교육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특권과 반칙에 무감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개봉한 <내부자들> <검사외전> 등 검사들의 일상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엄청나게 흥행했다. 이 영화들이 왜 폭발적인 흥행을 거뒀는지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그러나 영화 속 내용이 현실과 정확하게, 아니 그 이상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현실에서 목격하고야 말았다.

영훈국제중 입시 부정, 하나고 입시 부정, 이화여대 입시 부정 의혹 등은 이른바 특권층의 특권의식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교육 불평등 구조가 얼마나 심각하게 고착화해 있는지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런 현실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든다. 공식적인 신분제도는 조선 후기에 철폐되었건만 다른 형태의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사회 혼란을 핑계로 입시 부정을 눈감아주는 검찰 조직이 존재하는 한 특권층 입시 부정과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학업에 전념해야 할 청소년들 사이에서 “또 다른 정유라가 있을지 모른다. 중·고생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외침이 터져나오고 있을까. 사법당국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관할 교육당국이 특별감사를 통해 입시 부정, 회계 부정, 채용 비리 등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으나, 서울서부지검은 사건 일체를 관할 경찰서로 이첩하고는 불기소 의견으로 수사지휘를 했다. 검찰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종결짓지 못하는 동안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이 터져나왔다.

검찰에 허락된 사정의 칼날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공권력이다. 이를 특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할 때 어느 국민이 검찰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출석일수가 모자라도 권력의 힘으로 졸업이 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입학자격을 갖추지 못했어도 권력으로 입학 지원 자격 자체를 바꿔버린 일도 밝혀졌다. 이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을 허락했다. 뿐만 아니다. 학교생활도 학점도 졸업도, 심지어 졸업 후 취업과 사회생활에서도 온갖 특혜를 누렸다. 특권층에겐 ‘헬조선’이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 땅의 많은 흙수저들은 극도로 절망스러운 현실과 마주하고 섰다. 과연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전경원 하나고 해직교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이 조항은 있었다. 그러나 1968년에 태어난 나는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었나? 최근 최순실·박근혜의 민주주의 유린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자가 집권하고 있었다. 20살이 될 때까지 나는 자유의 공기를 맡지 못했다. 대학 1학년 때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1987년 12월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런데 100%의 권력을 차지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당시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해서 관철시켰지만,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주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 김영삼이 집권했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민주주의가 조금씩 자리를 잡는 듯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은 지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큰 흐름으로 보면 1987년 이후에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재벌개혁을 얘기했지만, 재벌의 힘은 더 커졌다. 언론개혁을 얘기했지만, 기득권을 가진 언론의 힘은 더 커졌다. 행정개혁과 사법개혁을 얘기했지만, 철옹성 같은 행정관료, 사법관료들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통치의 대상이었고, 국가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서 우리 삶은 더욱 나빠졌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되었다. 부와 지위의 세습 현상이 심해졌고,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수저’를 가르는 ‘수저론’이 등장했다.

급기야 어느 날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최소한 국민이 선출한 사람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마저 무너졌다. 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예산을 주물렀고, 인사에 개입했으며, 불법모금을 했고, 국가적인 정책 결정에까지 개입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미국의 닉슨 대통령보다 100배는 무거운 잘못을 저질렀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위임한 권력을 엉뚱한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게 한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런 사태를 알고 있었을(몰랐다면 더 문제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물러나야 한다. 내각 총사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대통령을 자기 당의 후보로 내세웠고, 지난 3년7개월 동안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었던 새누리당도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상황을 수습하는 수순은 이래야 한다. 먼저 야당과 시민사회가 시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연석회의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 연석회의에서 중립총리·거국내각 구성도 논의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제안하는 거국중립내각은 진정한 의미의 거국중립내각일 수 없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논의의 주도권을 쥐고 황교안 총리와 장관들의 사퇴를 끌어내고 내각을 구성해야 진정한 의미의 거국중립내각이 된다. 새누리당은 무조건 여기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중립총리·거국내각을 제대로 세운 후에는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와는 별개로 국정을 농락한 부분에 대해 거국내각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 사임과 조기 대선 실시가 불가피할 수 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임하면 60일 내에 대선을 치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립총리와 거국내각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조기 대선을 실시해도 큰 혼란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물러나는 것으로 끝낼 상황이 아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비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제2의 박근혜, 제2의 최순실이 나올 수 없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연석회의는 거국내각 구성 등의 현안뿐만 아니라 정치개혁도 논의해야 한다. 논의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대부분의 정치 선진국이 택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가 잘되고 부패가 없으면서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국가들은 대부분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존재하는 이상, 결선투표제도 도입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제도를 바로잡는 것은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헌법 개정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체제로는 헌법 1조 1항의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없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토론 과정을 거쳐 보다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리하면, ‘중립총리·거국내각 구성 → 조기 대선 → 선거법 개정 → 헌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2의 민주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물론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저항할 것이다. 거대야당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수록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싶은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