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렇게는 말해도 될 것 같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이하 경칭 생략)는 ‘정치적’으로 죽지 않았다. 한국당에서 ‘자연인’(김성태 원내대표) 취급을 받는 홍준표의 소위 ‘현실정치 복귀’ 선언이 불러온 요란한 울림을 보면 그렇다. 포털의 홍준표 복귀 기사에는 어김없이 찬반 댓글이 불붙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반향도 여느 정치인보다 강렬했다. ‘수구보수 소멸이라는 대업을 이뤄주길 바란다’는 식의 냉소와 비판, 부정 여론이 많지만 그렇다고 압도하지는 않았다. 긍정적 호응도 적잖다. ‘강성 귀족노조 때려잡겠다던 홍준표를 몰라본 것이 천추의 한” 같은 격한 지지, “홍의 말들을 다시 들어 봤는데 그의 말이 상당히 맞고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는 인정도 동반한다. 아마도 홍준표를 감읍케 한 것은 “좌파들 하는 짓거리를 보면 대한민국은 홍 같은 스트롱맨이 더욱 필요하다”는 식의 극우로부터 들리는 메아리일 터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21일 (출처:경향신문DB)

패륜적 막말과 극단적 정책을 휘둘러 한국당 지방선거 참패의 원흉으로 지목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사퇴’를 강요받던 홍준표의 처지가 아니다. 애써 ‘현실’ 정치 복귀로 포장한들, 분명 이벤트 선언임에도 열렬한 관심이 쏟아졌다. 비상 대권을 가진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누려보지 못한 각광이다. 홍준표의 경쟁력 때문이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한국당 인사 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데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치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체현해 보인 게 있다. ‘나쁜 평판은 때로 평판이 없는 것보다 낫다. 간단히 말해 논란은 장사가 된다.’ 홍준표는 이 장사를 할 줄 안다.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 모두가 제 잘못이다”(6월14일 기자회견)라며 떠날 수밖에 없었던 홍준표다. 채 반년도 안되어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 홍준표의 말이 옳았다는 지적에 힘입어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고 당당하게, 아니 뻔뻔하게 돌아올 수 있게 만든 뒷배는 누구일까. ‘프리덤코리아’를 결성해 “이 땅의 지성들과 ‘네이션 리빌딩’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치서는 동력은 무엇일까. 단순 ‘홍키호테의 똘끼’로 넘길 수만은 없다. 나르시시즘과 극단의 이념, 막말이 교집된 ‘복귀 선언’에 실마리가 담겨 있다. “금년 초부터 문재인 정권의 좌파 갑질 경제는 연말이면 나라를 거덜 낼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지방선거 때 ‘경제를 통째로 포기하겠습니까?’ 호소했고, 북핵 폐기 문제도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라고 호소한 바 있다. 내 죄가 있다면 ‘세상을 미리 말한 죄’뿐인데 그걸 좌파들은 떼지어 막말이라고 매도했고 당내 일부 반대파도 동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해 과반을 겨우 지탱하고, 특히 경제 상황의 악화가 안 그래도 몸단 홍준표를 불러냈을 것이다. 경남지사 당시 폭력적으로 진주의료원을 폐원하면서 대척했던 민주노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상황도 그를 추동했을 터이다. 한편으로 인적 쇄신과 개혁은 간데없는 한국당의 좌초가 ‘홍준표 복귀’의 자양을 제공했다.

제임스 퍼거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분배 정치의 시대>에서 포퓰리즘의 재료로 이민, 불평등,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 붕괴, 경제위기, 탁월한 선동가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불평등과 정치 불신, 경제 문제 등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재료로 갖춰져 있다. 넉넉히 존재하는 불평등과 정치불신은, 불안과 분노를 이용한 정치가 출현하기 더없는 연료이다. 트럼프 같은 ‘탁월한 선동가’가 등장하면 포퓰리즘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포퓰리즘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정치가 실패하면 포퓰리즘은 되살아난다. 강제 퇴장 반년도 안되어 이데올로기적 분열의 정치 홍준표가 ‘당당하게’ 돌아왔다. 혁신 작업에 실패한 한국당, 이 시대 불안과 분노의 근원인 불평등 해소와 청년실업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두 번의 선거에서 밑천이 드러난 홍준표야 (여당의 기대대로) 한국당 해체의 트로이목마 구실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초점은 홍준표 ‘자연인’이 아니다. ‘홍트럼프’를 불러내는, 극우 포퓰리즘을 초대하는 우울한 신호가 깜박거리는 것이다.

‘괴물’ 트럼프 대통령 탄생이 현실화됐을 때이다.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설마 이런 일이 여기서(미국)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틀렸던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여기서’에 ‘한국’을 대입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극단의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사회구조를 튼튼히 하지 못하면, 그날은 더 당겨질 수밖에 없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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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정치는 쇼’라고 한다. 정치의 민낯을 들여다보면 진실은 오간 데 없고 대중을 현혹시키는 각종 쇼가 범람하는 게 사실이다. “쇼”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정치인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인데, 최근 들어 부쩍 “쇼”란 말을 남발하고 있다.

그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과 문재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정상적인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이루어진 이면에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노골적인 색깔론도 펼쳤다.

납득이 잘 안됐는데 같은 당 내에서 반발이 속출하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5%를 뛰어넘는 것을 봐서는 내 판단이 틀리거나 경도된 것 같지는 않다. 홍 대표의 뇌리에 박혀있는 생각과 자신이 정치행위라고 믿고 실천해 온 일들이 타인의 정치행위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형성했다고 보면 무리일까.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1일 (출처:경향신문DB)

백번 양보해 남북이 합작해 ‘쇼’를 만들었다 치자. 하지만 쇼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 <쇼쇼쇼>라는 TV 인기 프로가 있었다. 요즘 말로 초호화 버라이어티 쇼였다. 명사회자 ‘후라이보이’ 곽규석씨의 재치있는 원맨쇼와 코미디언의 콩트, 그리고 유명가수들의 노래가 어우러진 명품 쇼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시골 장터를 떠돌던 유랑 악극단도 보는 이의 애환을 달랬지만 재미와 파격 면에서 <쇼쇼쇼>와 도저히 비교될 수가 없었다.

두 남북 정상을 비롯, 동행한 이들이 11시간59분 동안 판문점을 무대로 펼친 감동의 드라마를 주말 내내 보고 또 봤다. TV 화면을 뚫고 전달되는 선의와 환한 기운에 온몸이 가뿐해지고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전쟁의 위협으로 그동안 얼마나 불안해하며 가슴을 졸였던가. 두 정상이 손잡고 북한 땅을 잠시 넘나드는 장면, 봄 햇살을 받은 연초록을 배경으로 평생의 길동무처럼 도보다리에서 다정하게 앉아 환담하는 파격적인 모습은 역사에 길이 남을 평화의 상징이자 통일에의 염원이 구현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두 정상의 발길이 닿은 곳곳, 물 흐르듯 이어진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진정성을 멋으로 녹여내려는 정성이 역력했다. 회담장의 그림 한 점, 기념식수에 뿌린 백두·한라의 흙 한 삽, 옥류관 냉면 등은 풍성한 얘깃거리와 함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홍 대표에게는 혹세무민하는 ‘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면 홍 대표의 감성과 판단력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반대편 정치인을 깎아내리기 위해 마음을 숨기거나 속였다면 자신감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주사파 운운하는 색깔론은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지겹고 시골 약장수의 호객행위처럼 신선함이 없다. 홍 대표의 발언은 한마디로 흥겨운 잔칫집에 찬물을 끼얹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다. 평소 정쟁으로 맞설지라도 남북의 평화와 통일 분야에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8000만명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는 절체절명의 사안에 남 말 하듯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자란 점이 있다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지혜를 모으는 경쟁에서 야당이 뒤처져서는 안될 것이다.

비핵화 선언이 실속이 없다는 비판도 그렇다. 말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닌 듯하지만 맥락을 보면 일종의 억지다. 비유컨대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등교시켰더니 당장 90점 이상을 받아오지 않으면 퇴학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래전 남북 여성들의 만남의 장에 몇 차례 참가한 적이 있다. 인적·물적 교류에 앞서 허심탄회한 소통이 전제돼야 하며 그 소통을 위해선 상호존중과 끈질긴 인내심이 절대적임을 절감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위험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우리 안에서 솟아오른다”고 했다.

화창한 봄날 남북의 두 정상이 평화를 향한 2인3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가을의 결실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난만한 꽃들의 대잔치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한여름의 무더위와 때론 태풍까지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동참하고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 행렬에서 홍 대표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과 여당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위장쇼”라고 깎아내리기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더 멋진 정치쇼로 경쟁해야 한다. 무조건 폄하하기보다 잘한 것을 가려 칭찬하는 용기가 있을 때 적절한 비판이 더 힘을 갖는 법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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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남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역발전 적임자’ ‘나라를 구할 사람’ 등 크고 작은 선거 때 등장하는 구호에는 국민을 대표할 만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물론 정치적 자산이 풍부한 사람이 진짜 국민을 위해 나선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게 마련이다. 능력은 부족하고 자격은 없는데,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부류들은 정치적 자산이 보잘것없거나, 혹은 가졌던 것을 잃었음에도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모른다. 자신의 언행이 정치적 파장을 만들고, 여론을 움직인다고 착각한다.

[시사 2판4판]홍시를 기다리며 (출처:경향신문DB)

#안철수의 불평. 요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서 후자의 모습을 본다. 당초 안 대표는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앞세웠던 ‘새 정치’라는 재산이 있었다. 한때 호응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 정치는 그가 정치권에 머무는 시간과 비례해 소진됐고, 지난 대선 직후 제보조작 파동이 불거지면서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그는 현실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을 야권 대표주자로 여기고, ‘문재인 대 안철수’의 구도에만 올인한다.

이명박·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한 그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 대표는 촛불집회 1년을 맞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서 “가장 먼저 탄핵을 당론으로 정하고 헌신했던 것이 국민의당”이라고 했다. 그가 촛불정신을 마음에 두고, 여전히 새 정치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그는 나쁜 권력의 폐해가 드러난 국정농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문 대통령 때리기에 모든 걸 걸었다. “국민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무능 파노라마” “트럼프 따라하기”.

야당 대표의 권력비판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지만, 그의 언사는 감정이 앞서는 듯하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한국에 짧게 머문다며 ‘코리아패싱’을 주장하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 발언을 답습해 “속이 상하고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안 세력임을 자처하는 야당 대표라면 “트럼프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는 주문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유한국당의 ‘아무말대잔치’에서나 들을 법한 발언들을 그는 쏟아내고 있다. 같은 당 이상돈 의원이 “문재인이 싫다.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홍준표의 착각.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여전히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았다는 ‘성완종 리스트’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그간의 막말 퍼레이드, 대선 때 돼지발정제 논란까지…. 그는 대중에게 희화화된 보수꼴통 정치인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홍 대표를 과거 강력한 야당 대표였던 이회창이나 박근혜의 반열로 보는 사람은 없다.

홍 대표의 통장은 텅 비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 바깥에서 머무는 듯하다. “연말쯤 자유한국당이 부활할 것” “내 개인기로 당을 살렸다”는 그의 장담은 같은 당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지율 10% 문턱에서 헐떡거리는 야당 대표가 25명이나 되는 특보단을 거느린 까닭은 무엇인가. 국민들은 그에게서 ‘3류 코미디’를 보는데, 홍 대표는 제1야당 대표라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그가 국회 국정감사 중 의원들까지 대동해 미국 방문을 강행했던 것도 북핵 문제 협의를 위해서라지만, 과시욕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미국이 군사행동을 할 경우) 하루에 6만명의 인명 손상을 예상하고 있더라”고 발언을 한 것도, 미국 고위 인사들과 통한다는 영향력·정보력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터다. 하지만 방미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서청원 의원과의 진흙탕 싸움 와중에 던진 “깜냥도 안되면서 덤비고 있다”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준 낮은 협박” 등 막말뿐이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나, 여론은 홍 대표에게 딱 그 정도를 기대한다.

#정계개편의 망상. 이런 대표들이 주도하는 통합 논의의 앞날은 뻔하다. 강경보수로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있는 한국당,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민의당, ‘정치적 신용불량’ 정당들이 뭉쳐봐야 더 큰 불량정당이 될 뿐이다. 힘만 합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은 망상이다.

재산이 없는데도, 돈을 끌어다 쓰면 빚이 쌓이고, 종국엔 파산한다. 지금 안 대표와 홍 대표의 마이너스 통장에는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들의 지휘하에 연대나 통합을 모색하는 정치세력도, 민심에서 퇴출되는 불량주로 전락할 것이다. 자극적 언사, 명분 없는 이합집산으로 순간을 모면하려 하지 말지어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정치적 잔고는 안녕하십니까.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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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9 대선에서 2위를 했던 홍준표 후보는 자유한국당 대표로 정치에 복귀했다. 3위 안철수 후보도 국민의당 대표로 돌아왔다. 4위 유승민 후보도 바른정당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선 넉달 만에 선거에서 경쟁했던 유력 후보들이 모두 제1, 제2, 제3야당 대표로 돌아와 정치를 함께하고 있거나 전면에 나설 참이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과거엔 대선에서 지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다. 이젠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됐다.

 

홍준표 대표는 원외다. 원외 대표는 힘이 없다. 김장겸 MBC 사장 지키기를 위한 국회 보이콧은 원외인 홍 대표의 당내 입지를 굳히는 데 활용됐다. 문재인 정부와 정면대결함으로써 문 대통령과 일대일 대결 구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박근혜·이회창·김대중 같은 강력한 ‘야당 대통령’이 목표다. 홍 대표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 재판에 계류 중이다. 1심 유죄, 2심 무죄였다.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이다. 그는 지금 강해야 살 수 있다. 홍 대표는 보이콧을 결정한 의총에서 “지지율 걱정도 있지만 우리는 밑바닥에 와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했다. 당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푸념한 것으로도 들린다.

공영방송 장악 저지는 허울뿐이다. 세계 어느 공영방송이 뉴스 시청률 5%에 신뢰도 최하위인 데가 있겠는가. MBC는 공영방송이랄 것도 없다. 김장겸은 대여투쟁의 신호탄이었다. 홍준표는 김장겸이 아니라 뭐라도 대여투쟁의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홍준표의 한국당은 사안이 무엇이든 반대 아니면 취소, 거부다. 청와대 회동 거부, 여·야·정 협의체 거부, 원내교섭단체 연설 거부, 여야 대표 만찬 취소, 인사 반대, 부동산·증세·복지 정책 반대…. 관성적 반대를 하다보니 공관병 갑질로 옷 벗은 육군 대장마저 “좌파단체가 군 장성을 여론몰이로 내쫓았다”고 감쌌다. 그에겐 여론을 거꾸로 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홍준표는 ‘김영삼 키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추진 당시 주변에서 100만명 서명운동을 제안하자 “그걸 누가 세어 보겠노”라며 1000만명으로 올리라고 했다. 핵무장 1000만 서명운동은 YS 흉내내기다. 홍준표의 야심은 제2의 YS가 되는 것이다.

흔히 시민들의 이념 성향은 보수 40%, 진보 30%, 중도 30%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런 분포도는 큰 의미가 없다. 이젠 이념이 아니라 가치다. 현실은 정의 80%, 정의에 대한 반발 10%, 무관심 10%로 바뀌었다. 한국당은 정의에 대한 반발 세력 10%에 기대고 있다. 친박과 극우, 재벌과 초고소득자다. 제1야당이 시민이 아닌 특정 소수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여소야대 4당 체제가 이뤄졌다.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여야는 5공 비리와 지방자치제 시행, 5·18민주화운동 등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했다. 법안 처리율은 81.1%였다.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아 김윤환 민정당 원내총무와 협상에 나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에 입각해 야당이 과도한 힘을 앞세워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당의 지위와 역할을 존중했다. 야당이 합리적인 정책과 대안을 많이 냈다”고 회고했다. 20대 국회의 현재까지 법안처리율은 17%다. 야당 복도 따로 있는 모양이다.

정치인은 시민의 눈높이에서 볼 줄 아는 상식이 필요하다. 상대를 적이나 동지로 대하는 사고로는 곤란하다. 홍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한국당은 정의와 형평을 상실한 이익집단이었기 때문에 청·장년들의 지지를 상실했다고 본다. 정의와 형평은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당은 주도 세력도, 정책도 그대로다. 정의롭지 못하고, 형평을 지키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 신진세력에 문호를 개방하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지지를 회복하기는 난망이다. 친여보수언론의 프레임 짜기는 과거처럼 쉽게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촛불이 증명해줬다. 시민들은 “3년(2020년 총선)이 너무 멀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자”고 아우성이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간판은 수도권에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무릎 꿇고 절하고 읍소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2018년에도 또 기회를 달라고 할 것인가.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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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막말 퍼레이드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면 언론에서 겁이 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대통령 안 시키려고 온갖 지랄을 다한다”고 했다. “나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도록 조작하는 여론조사기관은 도둑놈 새끼들이다. 반드시 응징하겠다” “종편 허가권이 정부에 있으니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절반으로 확 줄여버릴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론조작이나 편파 보도 운운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대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후보는 유세 때마다 이런 막말에 색깔론,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더하고 있다. 최근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이 극도로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 애들이 문재인 눈치 보면서 병원으로 데려가는 걸 안 해주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건강 문제는 그의 변호인조차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홍 후보는 아무렇지 않게 아니면 말고 식 발언으로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도저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언행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그의 막말은 이제 듣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주요 후보 5명 가운데 비호감도가 가장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하지 않다. 홍 후보는 정상적 방법으론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고 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수표를 묶어 대선에서 살아남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5·9 대선은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초유의 안보·경제 위기를 헤쳐 나갈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래 비전과 정책 현안에 대해선 뚜렷한 소신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TV토론에서 공정위·재벌 개혁 방안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가르쳐주면 그대로 하겠다. 어떻게 개혁해야 하느냐” “그건 아직 공부가 덜 됐다”고 비켜 나갔다. 갈 데까지 간 홍 후보의 언행은 보수 정당의 품격과 신뢰를 추락시킬 뿐 아니라 보수의 희망과도 거리가 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유세에서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면 극우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오십보백보다. 증오와 편 가르기로 표를 얻으리란 생각은 유권자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이런 저질 막말과 비방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유권자들이 가려 듣고 표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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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정당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정당 후보는 10%, 3% 안팎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당이 하는 양을 보면 마치 대선을 포기한 듯하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입에서 맥이 빠진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바른정당에서는 유승민 후보를 밀기는커녕 홍 후보와의 단일화를 언급하고 있다. 어제는 의총을 열어 유 후보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두 당이 지리멸렬한 것은 보수 기득권에 빠져 새로운 보수의 통치철학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 정세에 편승한 대결적 남북관계와 그에 기댄 낡은 안보관을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다. 시장만능주의와 대기업 중심의 경제관에 매달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해법은 외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에도 진솔한 반성 없이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오만까지 보였다. 보수 우위의 정치·여론 지형 위에서 안이하게 권력을 즐기기만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정당은 과거 한나라당 때도 이른바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으로 존폐 위기에 몰린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고 천막당사에서 다시 출발해 결국 재집권에 성공했다. 보수 정당이 지금 맞닥뜨린 위기는 그때보다 몇 갑절 더 엄중하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활을 걸지 않고는 회생하기 어렵다. 회생을 위해서는 이번 대선을 잘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에는 정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야당으로서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각오로 새 출발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자면 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보수는 진보와 더불어 사회를 지탱하는 양 날개다. 보수의 몰락은 모두의 불행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제부터 탈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술수나 꼼수로 빨리 일어서려는 생각보다 건강한 보수라는 방향을 잡는 데 더 천착해야 한다. 낡은 경제관과 안보관을 답습해서는 새 길을 찾기 어렵다. 설득력 있는 보수의 가치와 비전을 세우는 게 먼저다. 깊은 성찰과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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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이던 새벽잠, 그의 목소리가 들려 번쩍 눈이 떠졌다. 2015년 4월9일 아침 북한산을 오르며 48분간 마지막 인터뷰를 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다음날이다.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5시56분. 스마트폰에는 20분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는 긴급뉴스가 떠 있었다.

홍 지사의 항소심 재판장은 다섯 달 전 이완구 전 총리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판사였다. 두 사람의 1·2심 판결문 4개를 밑줄 그으며 읽고 또 읽었다. 판사로부터, 나 스스로부터 생길 수 있는 선입견을 줄이는 데까지 줄이고 싶었다. 남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온갖 물음표였다. 홍 지사의 무죄 판결문은 시작과 끝이 급반전했다. 재판부는 ‘금품 전달자 윤승모가 성완종에게 1억원을 받아 홍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이완구 재판 때 배제한 성완종 녹취록은 다시 증거로 채택했다. 홍 지사 쪽 사람들이 “홍 지사는 모르는 돈으로 해달라”고 윤씨에게 노골적으로 ‘거짓 증언’을 회유한 전화 녹음파일도 증거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끝에는 ‘윤승모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검찰 증거도 미흡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국회 의원회관이 공사 중인 걸 왜 기억하지 못했는지, 띠지를 고무줄로 바꾼 곳이 집 거실인지 안방인지, 여의도로 가는 차에서 부인은 옆에 앉았는지 뒤에 앉았는지…. 판결문에는 검찰이나 법정에서 바뀌거나 헷갈린 윤씨의 진술이 여럿 적시됐다. 1심에선 설암 투병 중에 4년 전 상황이 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참작된 부분이다. 사실관계를 다툴 여백을 인정하면서도 항소심은 방어권을 더 톺아봤다. 처벌을 자처한 금품 전달자의 말은 배척되고, 끝까지 돈의 행방은 모른 채 끝낸 재판이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6일 열린 성완종 게이트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왜 홍준표를 메모와 인터뷰에 담았을까. 내내 곱씹어본 물음이다. 8명의 리스트에서 홍 지사는 친박도 아니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도 가장 멀었다. 그 답은 성 전 회장이 죽기 사흘 전 윤씨의 병실을 찾아 사실대로 말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한 데서 열린다. “녹취록과 메모에 대한 신뢰도, 검찰 수사도 여기서부터 풀리길 바랐던 거지요.” 성 전 회장의 아들과 측근이 돌아보는 말이다.

2015년 12월31일자 경향신문 1면엔 성 전 회장이 ‘올해의 인물’로 기록됐다. 기사는 “여전히 부정부패와 검은돈 뉴스가 이어지고, 살아있는 권력은 단죄하지 못한 2015년이었다”고 맺었다. 소름 돋게 맞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이 “정유라 지원이 왜 안되느냐”고 삼성을 재차 닦달한 것은 성 전 회장이 죽고 3개월이 지난 뒤였다. 재벌들의 손목을 비틀어 미르재단이 출범한 것은 그해 10월이다. “이런 기업인은 나 하나로 끝나야 한다”는 성완종의 외침이 권력의 심부에선 희화화되고, ‘거악들의 모의’는 계속된 것이다. 입시 특혜를 준 대학 총장, 블랙리스트를 지휘한 비서실장, 삼성 79년사에서 처음 구속된 총수, 진시황의 생부였던 거상 여불위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장사는 권력을 얻는 것”임을 보여준 최순실까지…. 여기저기 꼭짓점을 따고 대통령을 겨누는 특검을 보며 속에 맺히는 게 있다. ‘성완종 특검’이 떴다면 이리 엉성하고 기울어진 정경유착 수사가 됐을까. 낯부끄러운 ‘8 대 0’ 성적표를 받아든 검찰은 명예회복의 마지막 벼랑에 섰다.

‘만사구비지흠동풍(萬事俱備只欠東風).’ 홍 지사가 승소 후 페이스북에 올린 삼국지의 고사다.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모든 조건이 갖춰졌고 가장 중요한 동풍만 남았다’고 한 말이다. 그 동풍에 무죄 판결을 빗대고픈 속마음을 실은 셈이다. ‘천하대란에는 크게 통치해야 한다’→‘박근혜의 위기이지 보수의 위기가 아니다’→‘큰 선거를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다’. 페이스북에선 대선을 곁눈질하는 ‘일일준표’ 정치가 다시 시작됐다. 무상급식과 평생 싸우고 진주의료원 폐쇄를 밀어붙인 그는 ‘서민복지’와 ‘핵무장론’을 앞세워 보수의 정치에너지를 쌓고 있다고 생각할 터다. 하나, 그가 넘어야 할 대선의 심리적 벽은 성완종 녹취록이다. 그의 재판에는 묻혀 있는 의혹과 더 살펴야 할 팩트가 수두룩하다. 좌불안석이 돼 금품 전달자를 회유하려 한 녹음파일의 비밀은 깨끗이 풀려야 하고, 띠지가 고무줄로 바뀐 채 묘연해진 1억원의 행방도 궁금하다. 3심제로 가는 ‘법정게임’과 달리, 선거판은 2심의 ‘무죄 판결’과 세간에 걷히지 않은 ‘유죄 심증’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는 면죄부를 받았다고 하루하루 자기최면을 걸고 있을까. 그의 보폭이 커질수록 맹성과 자숙을 권하는 역풍도 커질 것이다. 개운치 않은 홍준표의 정치가 제갈량이 기다린 동풍을 만날까. 마이동풍이 될 수도 있는 봄이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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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특별수사팀은 성 전 회장에게서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홍 지사를 내일 소환키로 했다. 앞서 ‘자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이미 4차례 조사를 받았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국회에 가서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사 시절 얻은 ‘거악 척결’ 이미지를 자산으로 정계에 진출한 홍 지사가 피의자로 검찰에 불려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성 전 회장은 생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전 부사장이 이를 사실상 시인하자 홍 지사 주변 인사들은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려 시도했다. 그 사이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메모는 반대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아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등 법리논쟁을 펼쳤다. 어제는 “윤승모씨는 성 전 회장의 로비 창구다. 심부름을 이것만 했겠느냐. 대선, 총선 때도 똑같이 심부름했을 것”이라며 물귀신 작전을 폈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보기 딱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알려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6일 오전 출근하자마자 집무실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 도중 수첩을 보면서 검찰 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검찰이 ‘리스트 8인’ 중 홍 지사를 첫 소환자로 지목한 것은 자금 전달자의 일관된 진술 때문일 것이다. 물증을 찾기 어려운 불법 정치자금 사건치고는 난도가 낮은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홍 지사는 경남지역 무상급식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시민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터다. 그를 우선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거기서 끝나선 안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7인도 모두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은 검찰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최근 대선자금 수사의 실마리가 될 만한 새로운 진술도 나오지 않았는가. 경남기업의 ‘금고지기’였던 한장섭 전 부사장은 “2012년 대선 직전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 김모씨에게 전달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앞서 성 전 회장도 경향신문에 “2012년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에게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전 부사장이 털어놓은 정황은 성 전 회장 발언보다 구체적이다. 검찰의 의지만 있다면 수사 단서는 충분하다. 검찰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엄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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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 ‘자금 전달자’로 지목된 윤모씨와 접촉해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상남도 산하 기관장인 ㄱ씨는 최근 윤씨에게 전화를 걸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받은 1억원을) 경선 캠프 살림 사는 데 썼다고 하면 안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윤씨가 이를 거절하자 ㄱ씨는 윤씨를 만나러 경남 남해에서 서울까지 왔으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ㄱ씨 외에 또 다른 측근 인사도 윤씨를 만나 “홍 지사에게 직접 돈을 건네지는 않았다고 말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명백한 증거인멸 시도이다. 검찰은 언제까지 이런 행태를 수수방관할 텐가.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캠프에 있는 측근’으로 지목된 윤씨는 “(성 전 회장이 돈을 줬다고) 말씀한 마당에 (내가)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며 금품 수수를 사실상 시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홍 지사 측근들이 나서 ‘배달사고’로 만들려고 한 정황이 짙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홍 지사의 인식이다. 홍 지사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만났을 수는 있다”면서도 “회유 운운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 말했다. ‘모래시계 검사’ 출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범죄 혐의를 받는 인사의 측근이 사건의 핵심 관련자를 만나 말을 맞추려 했는데, 이게 회유가 아니면 무엇인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2일 오전 경남도청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문 채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홍 지사에게 진실 고백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라고 본다. 이제는 검찰이 나서야 한다. 특별수사팀은 경남기업 관계자 2명을 증거인멸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을 외부와 격리시켜 말맞추기 등을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같은 이치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홍 지사 측 인사들도 즉각 소환해야 한다. 홍 지사 본인도 조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홍 지사는 측근들의 윤씨 접촉을 사후에 보고받았다고 했으나, 사전에 지시하거나 인지하지 않았는지 규명이 필요하다.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이 못 본 척한다면 ‘리스트’ 수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수사가 부실하면 특별검사 재수사로 가게 된다는 것은 검찰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특별수사팀은 곁가지만 건드리지 말고 ‘리스트 8인’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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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홍준표 경남지사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만나 무상급식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어 무상급식 중단까지 홍 지사의 거침없는 행보가 만든 자리이다. 연초에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정치인으로서 용꿈을 향한 돌격이라지만 그의 무상급식 이해에서 미래 국가지도자에 걸맞은 깊이를 찾기 어렵다.

우선 홍 지사는 무상급식 평가에 불공정하다. 무상으로 인해 급식 질이 떨어져 음식물 쓰레기가 늘고 처리비용도 증가했다고 지적한다. 정말 그런가? 무상급식은 가공식품보다는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기에 과일 껍질과 같은 전처리 재료가 늘어난다. 좋은 쓰레기이다. 식후 잔반 사례가 언론에 가끔 소개되는데, 지난해 경기교육청의 조사에 따르면 약 5000명의 초등학생 중 81%가 급식 질에 만족하고 학부모는 85%로 더 높다. 굳이 제도적 원인을 찾는다면 친환경 급식의 저염·저지방 식단이 일부 학생들의 입맛과 어긋날 수 있다. 이는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혀와 학생 성장발달 단계에 적합한 건강식단이 벌이는 생산적 갈등으로 격려할 일이다. 처리 비용이 늘어난 핵심적인 원인도 양보다는 단가에 있다. OECD 회원국 중 음식물 쓰레기를 해양에 버리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는데 2013년부터 이게 금지돼 처리 단가가 올랐다. 이건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이다.

홍 지사는 복지예산 부족의 책임 소재를 혼동한다. 그는 무상급식을 유지할 만큼 예산이 있느냐고 항변한다. ‘재정이 어렵더라도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던 도지사 취임사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근래 지방정부의 재정난은 공감하지만 무상급식 지원금은 경남도 전체 예산의 0.5% 미만이다. 정말 돈이 없어서 전국에서 무상급식을 지원하지 않는 단 한 명의 도지사가 되려는 것인가? 게다가 지자체, 교육청 예산이 빡빡해진 이유가 지역마다 조례 제정을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정착돼 가는 무상급식 때문인가, 아니면 기초연금을 두 배로 올리고선 지자체에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그리고 누리과정 예산 책임을 모두 교육청에 맡기고도 증가분을 지원하지 않는 중앙정부 때문인가? 홍 지사가 싸울 상대는 무상급식이 아니라 중앙정부이다.

홍 지사는 지나치게 좌우파 진영논리를 구사한다. “가진 자의 것을 거둬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게 진보좌파 정책”인데 자신이 서민계층을 도와주는 선별적 복지를 펴니 오히려 진보좌파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어느 좌파가 서민 복지지원을 반대한단 말인가? 당연히 어려운 계층은 좌우를 떠나 모든 복지의 대상이다. 대신 기초생활보장제처럼 애초 가난한 사람만을 위해 설계된 ‘선별적 복지’가 있고, 급식, 보육, 교육, 의료 등 모두에게 필요한 권리로 진화하는 ‘보편적 복지’도 있다. 무상급식 논란은 학교급식을 과거 시혜적 복지로 되돌릴지, 아이들 보편 권리로 안착시킬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좌우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다.


홍 지사는 서구 복지국가 발전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좌파가 상위계층까지 복지를 제공하는지 의문을 품는데,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 왔다. 스웨덴 복지학자 코르피는 복지국가 역사를 통해 ‘재분배의 역설’을 입증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지를 제공해야 재분배 원리에 맞을 듯하지만 실제는 보편적 복지의 재분배 효과가 오히려 크다. 선별 복지는 복지재정을 책임져야 할 상위계층의 세금 동의를 이끌기 어려워 ‘약한 복지/약한 재정’ 악순환에 빠지지만 보편 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고 시민 의무로 능력별 세금을 부가해 ‘강한 복지/강한 재정’을 구축한다.

예를 들어 선별 방식에선 가난한 노인의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고착되지만 보편 방식에선 더 재정을 늘려 모두에게 30만원, 40만원으로 올릴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복지 앞에 놓여 있는 장벽이 바로 세입 아닌가. 이를 넘어서려면 보편복지 노선으로 가야 하고, 한국에서 급식은 이를 상징하는 의제이다.

경남도는 무상급식 중단 명분을 세우고자 대신 “서민자녀 교육지원으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일간지에 광고를 실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연 50만원 교육복지 카드로 용이 나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고, 홍 지사 역시 시대에 역행하는 편협한 복지 이해로는 용꿈을 이루기 어렵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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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닫던 진주의료원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진주의료원을 방문해 “의료원을 정상화해 공공의료와 지방의료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경남도를 찾아 홍준표 도지사를 만났다. 새누리당도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공의료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하며 동시에 공공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며 진주의료원 폐쇄 반대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청와대 이정현 정무수석도 “최악의 상황으로 가서는 안될 것”이라며 사태 해결에 나설 뜻을 밝혔다. 홍 지사는 ‘도의회와 협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고 한다. 당·정·청의 개입으로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던 진주의료원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경향DB)


진주의료원 사태는 한 지방의료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공의료의 열악한 현실과 허술한 제도를 극명하게 노출시킨 국가적 사건이다. 공공의료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유지·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고민을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안전망이자 표준진료 기능을 하는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10분의 1에 불과한 우리 공공의료 수준에 실망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독단으로 그 체계가 허물어질 수 있는 현실을 목도하는 마당이 됐던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대한간호사협회 등 6개 보건의약단체가 이례적으로 어제 진주의료원 폐업 유보를 한목소리로 요구하며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와 대책을 촉구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당면한 과제인 진주의료원 정상화는 폐업 방침 철회와 휴업 해제에서 시작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다음이 경영 개선을 위한 자구책 마련과 노사간 신뢰 회복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노사에게만 요구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외부 공공의료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의료의 특성상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곳이 대부분이고 만성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공공의료를 위협하는 이번 같은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료원의 설립과 폐업은 중앙정부의 협의나 승인을 거치도록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공공의료는 정부가 복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욱 강화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진 장관도 “국가적으로 지방의료원은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공공의료의 많은 문제점을 세상에 드러낸 진주의료원 사태를 교훈 삼아 공공의료 체계 확립을 위한 근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공공의료의 필요성과 강화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함께 공공의료의 혁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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