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자 수가 5000명을 넘었지만 우리나라 공중 보건망은 개선된 것이 없다. 속칭 햄버거병, 계란 살충제 오염, 생리대 화학물질 등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수많은 생활용품과 식료품이 초래하는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는 계속되지만 (화학)물질 중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거의 없다. 또 다른 특정 제품, 특정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영향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고의 공통점을 보면 정부가 허가한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고, 정부가 피해 위험을 먼저 알아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 개인이 알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위험들이다. 이들 사고는 제품 사용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나 조직이 없는 데에서 오는 일련의 사고다.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휴대폰 케이스…. 생활 속에서 흔히 먹거나 쓰는 것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이어져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화학물질 위험은 표준적인 동물실험만으로 충분히 알아낼 수 없다. 모든 화학물질은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건강 영향을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입는다.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DDT의 암과 생식 독성, 탈리도마이드의 태아 기형은 동물실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PHMG, PGH, CMIT, MIT에 의한 폐 손상, 천식 등도 우리나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화학물질 독성은 해당 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경험하지 않고는 알아낼 길이 없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을 사용할 때 입은 피해사례를 모으고 감시하는 국가 조직은 물론 감시망이 없다.

미국에는 소비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있다. 이 위원회는 1990년에 가습기 사용으로 인한 호흡기 건강영향 위험을 알렸고, 가습기에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에는 소비자가 입은 작은 사고나 건강영향을 모니터링하는 56개의 물질중독센터(Poison Center)도 있다. 누구나 경제 소비 활동에서 입은 사고, 불편, 중독 경험을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실시간으로 물질중독센터의 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피해 사례의 원인 규명, 추가 확산 차단은 물론 치료에도 활용한다. 예측하지 못한 사고 등을 사용과정에서 모니터링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공중 보건망이다. OECD 모든 나라와 WHO 회원국의 50%에 달하는 나라에도 이러한 목적의 물질중독센터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물질중독을 감시하는 체계가 없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과학기술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위험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은 화학물질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4만종이 넘는 화학물질을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하고, 지금도 인공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제품의 위험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으로 하여금 가능하면 안전한 제품을 만들도록 억지하는 것이 화학물질이 야기하는 건강 피해 예방의 첩경이다.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건강영향 사고를 차단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게 할 수 있는 정부 감시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들이 물질중독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에 퍼진 주요 지역 보건소와 병원을 연결하는 가칭 ‘물질중독정보센터’로 공중 보건망을 짜자. 물질중독정보센터 설립 및 신고된 피해사례 통계만으로도 기업의 악의적인 위험관리 방기를 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위험도 알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박동욱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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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접수가 시작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 수는 작년 말까지 5341명이었다. 피해 신고자를 보면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는 피해자 일부에게 치료비, 장례비 등 최소한의 비용을 먼저 지급한 다음 구상권 법적 쟁송을 통해 원인 기업에서 보상액을 회수할 계획이다. 보상 대상 피해자는 엄격한 의학적, 과학적 연관성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피해 질환에 대한 기업 책임을 증명해야 하는 법적 다툼도 어렵다. 피해자는 정부 보상과는 상관없이 다시 기업을 상대로 배상, 보상 등 힘겨운 법적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원인 기업의 보상을 피해자 자신이 받아내도록 거의 방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등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다시 개인화되고, 끊임없는 법적·사회적 논쟁이 반복된다.

피해 신고자가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든 기업은 총 20여곳이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이 대부분이다. 같은 피해를 입어도 사용한 제품에 따라 보상 금액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피해를 입었는데 기업에 따라 책임 인정 여부와 보상 수준이 다르다면, 이를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가습기살균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정된 동일 질환은 동일 수준으로 보상하는 것이 상식이다. 독일의 탈리도마이드(1959년), 일본의 수은(1959년), 영국의 DES(1971년), 우리나라의 이황화탄소(1986년) 등 화학물질 중독으로 대규모 건강 피해 참사를 일으킨 기업은 모두 1개씩이었다. 책임을 물을 대상이 그나마 단순했다는 뜻이다.

2016년 11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 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가족모임 강찬호 대표가 연단에 올라 군중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제공)

그럼에도 해결 과정은 복잡하고 세대를 걸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럴진대 하나의 피해자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초래한 원인 제공 기업이 다수인 경우, 피해자가 기업들과 어떻게 소송 등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병원에서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어 폐 손상으로 사망해 책임을 물을 기업을 지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인한 특이적인 폐 손상으로 인정되었지만, 병원은 제품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 사례다. 이 경우 정부도 구상권을 청구할 기업을 지목할 수 없다. 산후조리원, 회사, 학교 등에서 피해를 입은 사례도 마찬가지다. 여러 제품을 함께 사용한 경우, 피해에 대한 구상권 청구 및 보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가습기 살균제가 일으키는 세포 염증반응을 시작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건강문제들. 천식, 비염, 중증 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간독성, 선장독성, 폐암, 유산 조산, 피부질환, 폐렴. (출처: 임종한 교수 추계학술대회 자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질환은 다양하다. 연관이 확실하게 밝혀진 폐 손상은 물론 유산, 조산, 사산, 천식, 비염, 다른 장기 손상 등도 의심되고 있다. 피해자는 물론 가족의 정신적 피해도 있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기존 질환이 악화된 경우도 분명한 피해다. 지금은 증상이 없지만 나중에 피해 질환으로 판명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화학물질 중독에 의한 피해 질환의 종류, 발생, 범위는 현재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다. 새로운 피해 질환 사례가 계속 발견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집단 화학물질 중독에 의한 피해 사례는 대부분 세대를 넘어서도 발견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상, 지원 등도 계속되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이 참사의 종결은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을 지경이다. 화학물질 중독에 의한 집단 건강 피해는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그야말로 무서운 것인 만큼, 지속적인 보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구상권으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한다.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되어 각종 질환에 걸린 피해자들을 지원한 ‘석면피해구제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석면 사용으로 이익을 취한 산업계가 비용의 90%를 부담하고 발암물질인 석면에 대해 법적 안전 관리에 소홀한 정부가 나머지 10%를 부담하도록 한 법적·사회적 합의였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정부 부담이 더 커야 할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피해자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며 전문가도 아니다. 바로 정부이다.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 소홀로 이런 유례없는 건강 피해 참사가 일어났다면 정부는 신속한 수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일의 시작은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제정이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환경보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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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경부가 발표한 ‘생활 화학제품 안전 관리 대책’은 그간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화학물질 관리 측면에서 많은 진전을 보였다. 독성 정보 등록 대상 화학물질 확대, 살생물제 안전 관리 방안 처음 도입, 허가·제한·금지 대상 화학물질 확대, 독성 정보의 포괄적 관리 체계 도입 등은 생활 화학제품으로 인한 건강피해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본 조치라고 본다. 이 같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련한 생활 화학제품 안전 관리 대책은 핵심이 빠져 있다. 생활용품 사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위험 관리, 기업의 책임, 건강영향 감시에 대한 대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화학물질 안전 관리는 기업 책임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번 환경부의 대책에는 생활 화학제품 사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 정보 제공 의무와 건강 피해 등 사고에 대한 기업 책임 대책이 빠져 있다. 단순한 법적 기준 위반에 대한 과태료, 과징금 등 처벌과 자율적 안전 관리 참여 정도로는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기업은 화학물질의 독성은 물론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정보와 관리 대책을 가장 잘 알지만 법적 규제만을 소극적으로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4만5000여종의 화학물질 중 고작 15% 정도만 안전이 확인된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생활 화학제품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위험이 완전히 달라진다. 독성이 낮더라도 많이 사용하면 위험성은 커지고, 심지어 새로운 건강영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폐 손상, 천식, 비염 등은 PHMG, PGH, CMIT, MIT 등의 물질이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로 사용되면서 새로 밝혀진 치명적인 질환이었다. 겨울철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 좁은 방에서 임신부, 어린아이들이 사용하면서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옥시싹싹, 가습기 메이트), 생활화학 제품, 화학물질 등 관련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한마디로 노출 특성이 화학물질의 위험을 결정한다.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하여금 원료인 화학물질의 독성은 물론 제품을 사용했을 때 예상되는 노출과 위험정보를 제출하도록 하고 그 위험에 대한 책임도 지게 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제도(REACH)’에 들어 있는 핵심 규정이다. 화학물질 관리는 기업의 자율적인 참여나 사회적 책임에 맡길 수 없고 법과 규제로 강제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화학물질 사고나 중독 감시 체계가 없는 것도 문제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사망 사례가 1996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다수 발생했지만 무려 15년여 동안 알지 못해 참사로 이어졌다. 이런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화학물질 중독 사례를 감시하는 국가 체계가 여전히 없다. 국가와 기업이 화학물질에 대한 나름대로 예방 조치를 취하지만 건강영향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화학물질의 위험은 다양한 건강피해 사례를 통해 서서히 밝혀진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만이 화학물질 사용을 금지하고 제한하며 노출 기준도 낮추는 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화학물질 중독 감시 사례를 통해 건강피해의 추가 확산을 막는 것은 물론 그 결과를 화학물질 안전 관리 대책, 기업 책임 부과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전체가 ‘(화학)물질중독센터’를 갖고 있는 이유이다. 미국은 56개 ‘물질중독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된 제품 피해 자료를 확산 차단, 예방, 치료, 제품 법적 조치 등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보호원은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생활 화학용품의 사용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여러 단계에 걸친 규제와 감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화학물질의 독성 정보 등록 및 평가, 제품으로 사용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 정보 등록 및 평가, 예방하지 못한 질병 피해 감시 및 활용 그리고 건강피해에 대한 기업 책임 부과 등 단계별·부처별 그물망 같은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 곳이 뚫리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그 위험이 차단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더해 생활 화학용품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현명한 소비를 유도하는 대책까지 세우면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박동욱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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