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과 국민 여론은 거듭 대통령의 하야다. 하지만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던 대통령의 정치는 완료됐으며 명예혁명과 망명을 운운했던 일각의 로망은 소멸했다. 남은 것은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다. 국회의 정치는 이제 외길로 보인다. 탄핵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대통령의 헌법과 국회의 헌법이 맞붙는 막다른 길이다. 반면 시민의 정치는 이 길과 함께 또 다른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사문화된 원칙을 되살려 엘리트 독과점 정치의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겠다는 국민혁명의 길이다.

날마다 특종과 속보와 가십성 뉴스가 홍수를 이루지만 국민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하야를 마땅하게 여기는 민심은 하야한들 지난한 탄핵으로 간들 그다음이 마땅치 못한 이 난국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직시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웠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은 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이다. 초겨울의 주말문화이자 저녁문화가 된 광장 행렬이 100만 촛불을 켜면 때맞춰 청와대 실내등이 꺼지고 경복궁과 북악산이 깜깜해지는 광경은 우연이 아니다.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교차하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국민 저마다의 간절한 ‘보디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거대한 ‘미디어 아트’다.

이 ‘국민예술’이 열망하는 국회의 정치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의 4대 국정과제를 사사로운 먹잇감으로 갈취한 ‘비선 실세’의 공범들과 이들을 공권력으로 뒷바라지한 국가 시스템의 적폐를 대청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 국회를 정당득표 연동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신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탄핵 정국을 경과하는 동안 국회의 정치가 보여줘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로 가서 차기정부가 하겠노라 공약한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민심은 안다. 51%로 당선된 대통령을 95%가 마음에서 버리게 된 국민의 자괴감은 더 이상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아니라 새 판 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집단지성의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이 점에서 민심의 향배를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못 볼 것의 끝을 끝내 보았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이 몹쓸 사태를 단숨에 정리할 방법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탄핵의 외길에서 입법, 행정, 사법, 헌법재판, 선거관리에 이르는 헌법기관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에 그 어떤 지름길도 샛길도 없음을 직시하고 국가 대개조의 가시밭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국민과 소통하며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어야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정치는 국회의 정치를 견인하되 따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100만 촛불이 부른 그 노래의 후렴구 그대로다.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소설가 부희령은 “오래오래 광장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라 믿지만 그러기 위해선 “촛불이 꺼지면 언제든지 옆 사람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강풍이 불고 한파가 와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국민과 함께 만들 공적 주체는 누구일까. 이 난국에도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헌법기관, 바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정부와 의회이며 228개 기초 지방정부와 의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경험했다. 중앙권력의 갑질 횡포에 위축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지만 주민자치를 위해 깨알같이 많은 일을 해 왔으며 특히 위기 때 국민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 되었던 공공이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 지방정부와 의회가 전국 각지에 한겨울의 촛불 민심을 환대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의 정치는 겨울밤 내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천일야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 천일야화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집필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나라를 후회 없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의 통찰대로 “허깨비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정치가 갖는 힘이자 국민혁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면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지방자치의 각양각색 정치여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6월 국민항쟁 30년이다. 그 사이에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이 원하는 바는 일곱번째 대통령을 뽑기 전에 헌법 제1조의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맘껏 꿈꾸는 일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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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야하라.” 서울 도심에서만 100만여명!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월드컵 때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비폭력으로 평화롭게 진행한 집회였다.

짱돌과 최루탄과 쇠몽둥이가 난무하던 1980년대 집회 광경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333번 시내버스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엔 늘 데모대와 경찰이 대치했다.

내가 봤던 경험으로만 보면 데모가 가장 심했던 때는 1987년 6월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간접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4·13 호헌조치’를 선언한 뒤, 각지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랐고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시민과 학생들은 백골단에 몽둥이로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려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 퇴진’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쓰인 손팻말과 플래시를 켠 스마트폰,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여만명이 데모한 6월26일이 아니었나 싶다. 버스 운행을 하다 데모 때문에 길이 막혀 서울역 정류장에 서 있었다. 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내리고 한 명도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도,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도 데모대가 꽉 차 있었다.

그때였다. 서울역 광장 쪽에서 대학생 한무리가 백골단에 쫓겨 내가 서 있는 버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얼른 차 문을 열었다. 최루탄 냄새를 훅 풍기면서 학생들이 타는데, 이게 웬일인가?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회수권(당시의 학생들 버스 요금)을 하나씩 꺼내서 요금통에 넣으면서 올라오는 게 아닌가. “빨리 타! 빨리!” 하고 소리 지르니 학생들은 그때서야 부리나케 버스로 올라온다. 다 탄 뒤 얼른 문을 닫았다. 아슬아슬했다. 뒤이어 백골단 열댓 명이 쫓아왔다. 그중 몇 놈이 문을 두드렸다. 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백골단은 열이 받아 몽둥이로 버스 문과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때 남대문 쪽에서 또 다른 시위대가 내가 탄 버스 주변에 있는 백골단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보도블록을 깬 돌을 쥐고 있었다. 결국 백골단은 도망갔다. 버스 문을 열어 줬더니 학생들이 “고맙습니다!” 하면서 우르르 내렸다. 학생들은 길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다시 시청 앞으로 행진하면서 소리쳤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6월29일,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야당의 직선제 개헌을 수락했다. 민중의 힘으로 얻은 값진 승리였다. 비록 그 뒤에 노태우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그때 쟁취한 직선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됐다.

2016년. 이젠 시위 현상이 많이 바뀌었다.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백골단도 해체됐고 최루탄과 짱돌도 사라졌다. 시위대는 청와대 400m 앞 효자동, 폴리스라인과 차벽 앞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을 운영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무슨 폭력?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구조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안 하는 것,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게 하고 책임자 처벌을 안 하는 것, 자본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노예로 만드는 것, 약점이 있는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 최순실에게 갖다 바친 것,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는 것 등은 모두 당장 내 목숨을 빼앗는 폭력이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면 손가락이라도 꺾어야 한다. 1987년 백골단에 쫓겨 내 버스를 타면서, 회수권을 내던 착한 학생들이 짱돌을 던진 행위는 목을 조르는 자의 손가락을 꺾는 행위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보다 결코 가볍지가 않다.

국가 수장으로서 자격을 잃은 박근혜 정권과 부패한 지배층, 그리고 수구 언론은 민중에게 선진국처럼 ‘폴리스라인까지만’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는 선진국은 대체 어느 나라인가? 선진국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져도 폭동이 일어난다. 하물며 나라를 말아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계속 그렇게 민중들의 목을 조르면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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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본격화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현재 드러난 박 대통령의 불법행위는 중대하며, 특히 국가운영을 일개 사인이 농단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이에 몇 주에 걸쳐 서울에서만 수십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국민들이 모여 박 대통령에게 퇴진하라고 요구했다.국민들은 사실상 박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박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권위와 신뢰를 모두 상실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하면서 차라리 탄핵을 하라며 시간 끌기에 나선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지금과 같이 현직 대통령을 국민들이 물러나게 한 사례로 유의미한 것은 1960년의 4·19혁명일 것이다. 4·19혁명 당시 서울에서만 10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진 끝에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4월26일 아침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국민적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한 선언이었고, 실제로는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어떻게든 대통령직을 유지하려 했다.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들이 계속되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친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 대통령의 고집을 알아챈 국회에서는 같은 날 만장일치로 ‘시국수습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서는 이 대통령의 즉시 하야, 부정선거의 재선거 등을 포함하여 당시의 시국을 정리할 간단명료한 내용이 제시되었다. 당시 국회는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대통령 하야와 시국수습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이러한 결의안은 위력을 발휘하여 이 대통령은 결국 다음날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사임하겠다는 사임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위기를 돌아보건대 국민이 사실상 대통령을 탄핵한 상황에서 국가를 수습할 중임은 국회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주권을 대리하는 기관인 만큼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질서 있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안, 곧 시국수습결의안을 작성하여 의결해야 한다. 국회에서의 이러한 결의는 4·19혁명의 전례가 있는 이상 박 대통령에게 큰 압박이 될 것이며, 잘되면 복잡한 탄핵절차 없이 국정을 수습할 계기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표를 결집시킨다면 곧바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국수습결의안은 지금의 혼란한 정국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종원 |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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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돌아섰다. 검찰이 등을 돌린 것은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군과 경찰이 시민의 편에 선 것과 같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굴종하고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다는 ‘하이에나 검찰’의 재빠른 변신이다. 검찰은 촉이 빠르다. 검찰의 표변은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란 뜻이다.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 것을 안다.

국정복귀 일성으로 던진 ‘엘시티 철저 수사’ 지시는 지금 박근혜가 갖고 있는 패가 흑싸리 껍데기만큼 보잘것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됐다. 특검 후보로 반짝 거론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과 친분이 있다. 부산의 룸살롱 마담이었던 그의 내연녀 임모씨(혼외아들의 생모)에게 레스토랑을 차려준 사람이 이영복이다. 하마터면 채동욱에게 조사를 받을 뻔한 박근혜는 ‘채동욱 특검’ 시나리오를 좌절시켰다. 대통령의 엘시티 발언은 김수남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김 총장도 이영복과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검찰총장에게 보내는 모종의 메시지란 얘기가 돌았다. 문재인·김무성 연루설까지 더하면 1타3피, 1타4피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정에 고심하는 수준이 이 정도다. 김 총장에게 물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영복 회장을 아시는가.

“그렇잖아도 범정(범죄정보기획관실)으로부터 그런 첩보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얼굴을 본 적도, 통화한 적도, 악수 한번 한 적도 없다. 난 부산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전혀 모른다.”

-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는 뭔가.

“아마 대통령도 비슷한 정보보고를 받은 것 아닌가 싶다.”

- 검찰총장을 염두에 두고 한 얘기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 문재인·김무성 연루설은.

“지라시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써대는 소설이다.”

박근혜는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던지고 있다. 최순실을 덮으려 개헌을 꺼내든 것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인지 알 수 있다.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하다”(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의학적 소견은 그래서 더 무겁게 들린다.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미국의 여류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톰 리플리가 재벌 아들인 친구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자기 말이 탄로날까봐 불안에 떠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

박근혜의 거짓말은 리플리의 수준을 넘어섰다. 최순실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 일으키는 유언비어”→“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사실”→“연설문 도움받은 정도”→“선의로 한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또 다른 거짓말을 내놓는 식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감찰에 나선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이라며 내쫓았던 그다. 이제 와선 “나도 최순실에게 속았다”고 한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계속 맡아야 한다는 자기방어 논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비정상적 자기합리화, 자기왜곡, 공감능력 상실이다. 100만 촛불민심 앞에서 뻔뻔할 수 있고, 어떤 위기에서도 멘털 갑으로 버틸 수 있는 이유다. 불행히도 김종필 전 총리의 “5000만명이 시위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언은 점점 맞아가고 있다. 의학 교재엔 리플리 증후군의 위험성도 쓰여 있다.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으로 믿게 되면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위험이 높아진다.’

지금 박근혜에게 나라를 맡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미친 마부에게 말을 맡기는 것과 진배없다. 리플리는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재능 있는 박근혜씨’는 현실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의 거짓말 릴레이와 막가파식 버티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검찰 수사도 못 받겠다고 하더니 국회 추천 총리도 철회하겠다고 한다. 중대범죄의 주범이 청와대를 진지 삼아 농성 중이다. 성(城)안에 갇힌 줄 모르고 성 밖 시민을 상대로 결사항전 태세다. 자기 살겠다고 나라야 결딴 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짓이다. 내일은 또 뭘 꺼낼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대통령은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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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100만 촛불 민심’이 분출한 뒤 야 3당이 주도권 다툼 양상을 보여왔다. 광장에서 필요로 할 때에는 뒷전에 있다가, 광장이 비좁아지니까 앞에 서보려고 어깨 밀기를 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야 3당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그간 발끝만 바라보던 청와대와 친박이 고개를 들고 보수 진영에 반격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때 야당들이 정치적 셈을 하는 것은 몰염치를 넘어 촛불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정의당 심상정 대표(왼쪽부터)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야 3당 대표 회동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그나마 뒤늦게 깨닫고 자성하는 듯하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어제 “지난 2~3일 사이 야권 공조에 대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약간 삐걱거렸던 야권 공조가 정상화된다”며 “이번주를 지난 시점에 야 3당 합동의총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15일 합동 의원총회 등 공동행동 방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 비대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만나 박 대통령 퇴진을 공동목표로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들은 범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검찰에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토록 촉구하며, 국정조사와 특검 추천 공조, 시민사회와 협력하기로 했다.

19일에는 제4차 민중총궐기 광화문 집회가 열린다. 야 3당은 집회 안팎에서 촛불에서 드러나는 민의를 부족함 없이 대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각 정당 간, 대선주자 간 경쟁은 그 이후에나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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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 최순실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의 한마디가 젊은 세대를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정유라씨보다 한 살 어린 김군은 풍파를 견딜 나이인가?

풍파를 견딜 나이라서 삼성의 하청업체들은 20대 노동자들에게 메탄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일을 시켜서 실명에 이르게 했단 말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에서 들려오는 하청노동자 상당수가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인데, 이들에게 불어오는 풍파는 정당한 것인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반대의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삼성과 현대차 등 재벌 그룹의 2세, 3세들은 20대 초반에 본사 또는 핵심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기획실 요직은 물론 이사와 임원으로 등극하는데, 이들은 충분히 세상의 풍파를 견딜 나이라서 그런 것이란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놈의 세상은 청년들에게 너무 많은 풍파를 견딜 것을 요구한다. 일자리는 부족하거나 질 낮은 일자리뿐이어서 ‘미생(未生)’을 강요당한다. 임금과 고용만 불안한 게 아니라 다치거나 죽기 쉬운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하지만 흙수저와 달리 금수저에겐 이런 풍파를 이겨낼 수단이 차고 넘친다. 억울하면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 그래, 우선 금수저에겐 부모의 돈과 권력이 있다. 그런데 재벌과 관료들, 비선 실세들이 가진 권력이란 것도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거나 위임된 것이 아니다.

선출도, 위임도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들은 권력을 갖게 되었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적당한 인물을 골라 선거에서 선출되도록 돕는다. 아니, 심지어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 선출되더라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구워삶으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그리고 관료들이 합심해 만든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재벌들이 774억원을 상납한다. 최근 속속 폭로된 내용들에 따르면 재벌들의 출연은 노동개악·성과퇴출제·민주노조 말살을 정부가 추진하도록 하기 위한 뇌물이거나 수고비 성격임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또다시 구체적인 대가성이 약하니 어쩌니 하며 면죄부를 주려 하겠지만, 재벌들의 상납금은 최소한 ‘보험금’으로 볼 수 있다.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59조원에 달한다. 774억원으로 759조원을 지킬 수만 있다면 0.01%의 보험료이니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

이런 방식으로 재벌과 관료, 비선 실세들로 구성된 ‘금수저 커넥션’이 구성되고 대를 이어 돈과 권력이 상속된다. 선거에 나서지도 않고 대중에게 검증되지도 않은 이들이 입법·사법·행정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국정농단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1월12일 100만 촛불로 구체화된 대중의 분노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이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 운명을 좌지우지한단 말이냐!

재벌독재와 관료독재, 비선 실세의 독재를 뿌리뽑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헌법’ 얘기가 많이 거론되는 요즘 트렌드를 따르자면, 한국의 헌법이 이런 독재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해둔 조항이 2개 있다. 하나는 헌법 제21조가 규정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 제33조에 따라 노동조합을 만들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권리이다.

노동자와 시민은 100만 촛불의 형태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발동하고, 저항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국면으로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행동이라는 권리를 발동시킬 차례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민중총궐기의 중심축에 민주노총이 서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민주노총은 오늘 11·12 민중총궐기에 이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한다. 재벌독재, 관료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핵심 수단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2000만 노동자와 5000만 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고작 10%다. 노동자 10명 중 1명만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이렇게 낮은 조직률을 보이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다.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 징계, 고소고발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불법이 아니냐고? 검찰과 관료들은 재벌과 사장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재벌과 사장, 검찰과 관료가 함께 ‘금수저 커넥션’을 구성하고 민주노조 말살과 노조 탄압을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100만 촛불의 여세를 이어갈 노동조합 결성의 물결을 만들어갈 때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금수저들은 풍파를 이겨낼 많은 수단이 있지만, 헬조선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에겐 촛불과 함께 노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풍파!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그 풍파를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임금도, 비정규직의 고통도, 위험의 외주화도, 노동조합의 힘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오늘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지만 시험지에도, 수험과목에도, 노동조합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 학교에서도 노동조합을 가르치게 해야 한다. 교사들도 나서고 학생들도 함께 요구하자. 100만 촛불과 노동자들의 총파업이라는 살아 있는 역사의 실천을 통해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힘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점을 보여줄 때이다.

박근혜 퇴진! 노동조합과 함께!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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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10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국정 역사교과서의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역사교육학과 교수들도 그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지 않으면 ‘불복종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국정화에 찬성했던 보수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명시하려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은 어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법률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들을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에 상정했다.

15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전국 대학 역사·역사교육 교수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성명에는 전국 102개 대학의 역사·역사교육 교수 561명이 참여했다. 김창길 기자

그런데도 교육부는 오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가족교과서 발행을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부야말로 ‘혼이 없는 비정상’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5종 가운데 교사용지도서 2종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공격하면서 정부 검증을 거치지 않은 교사용 지도서로 인해 편향적인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던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 교사용 지도서를 제외한 것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보는 책이라 사전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변명을 했다. 교육부는 또 국정 역사교과서의 의견수렴 절차를 공개토론형이 아닌 ‘비공개 접수형’으로 진행하며 반대 여론 형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교육부 장관이 고시만 개정하면 된다. 지금 당장 국정화를 철회해도 내년 3월부터 기존 검정교과서를 쓰면 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것이다. 또 주권자의 3분의 2가 반대하는 국정화 강행은 시민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을 강행한다면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주권을 침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교육부 관료, 국사편찬위원회와 집필진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이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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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가부 차원을 넘어 이제 시간의 문제가 됐다. 시민 마음에 박근혜 정부는 이미 실각한 대통령과 아무 일도 못 하는 식물정부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상의 국정 중단 상태가 앞으로 1년 넘게 지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일을 매듭짓지 못하면 야 3당과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대통령 퇴진과 중단된 국정을 재개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마침 야 3당 모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간 ‘대통령 2선 후퇴’라는 모호한 입장에 서 있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도 그제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야 3당과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기 위한 비상시국기구 구성을 위해 구체적 노력에 들어가겠다”며 “조속한 국정 정상화와 국민이 원하는 민주정부 이행을 위해 힘을 합쳐 퇴진 운동에 박차를 가하도록 전력투구하겠다”고 했다. 같은 당 문재인 전 대표도 “박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그간 질서 있는 퇴진을 촉구해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박 대통령의 퇴진이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점에서 (문 전 대표와)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과 이후 국정 복원 방법을 놓고 각각의 야당, 차기 대권주자별로 입장 차가 있겠지만 대의 앞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해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이나 탄핵 검토 소위 운영은 물론 기왕에 국민의당이 진행 중인 서명 작업과 소셜미디어에서의 의견 취합 등도 심도 있게 검토돼야 한다. 국회 추천 총리 선임과 그의 추천에 따른 내각 교체 등도 논의해 가사상태인 정부를 깨워야 한다. 조기 대선 등 정치 일정을 위해서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을 2016년 11월 시민항쟁 이전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할 방안을 궁구해야 한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항쟁 등 시민들이 일어서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번번이 군부와 그 후예들이 권좌를 가져가는 일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여의도 정치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지역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최적화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낙담하기보다는 분노해 일어선 ‘100만 촛불 민심’을 가장 잘 받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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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보름 전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검찰이 금명간 박 대통령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순실씨 비위에 관한 언론의 잇단 보도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00만 촛불 민심이 검찰 수사를 견인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억지춘향 격으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규정한 게 단적인 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 규명보다는 박 대통령에게 가벼운 혐의를 적용해 하루빨리 사건을 털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검찰 주변 얘기를 종합하면 검찰은 청와대와 최씨가 재벌·대기업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에 총 774억원을 거둬들인 행위에 대부분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재단 설립 과정에 재벌들의 부당한 청탁이 없었고 재벌들이 낸 돈에 대한 대가성도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뇌물죄보다 형량이 현저하게 낮을 뿐만 아니라 돈을 낸 재벌들은 피해자가 되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재벌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해 경제민주화 입법 중단, 비리 총수 사면, 관광진흥법 같은 민원 법안을 만들어줄 것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특히 부영 같은 기업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15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연설문 등 청와대 기밀문건을 유출한 혐의도 공무상 비밀누설이 아닌 헌법 위반 사안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최씨 같은 비선 실세가 밀실에서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박 대통령이 이를 묵인했다면 이는 헌법 제1조1항에 명시된 ‘민주공화국’ 국가형태 조항과 제1조2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 원리에 위배된다. 박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는 헌법 제7조2항의 직업공무원제 위반이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헌법수호 의무(헌법 제69조)도 방기했다.

지난 주말 밤 서울 한복판을 밝힌 100만 촛불은 국정농단으로 금 간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이었다. 검찰 수사는 박 대통령과 최씨 등의 비리를 밝혀내 처벌하는 것 외에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망국적인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진정 이를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사 대상이나 범위에 성역을 두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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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헌법이다. 유사 이래 최대의 집회로 기억될 민중총궐기에서 우리는 100만개의 촛불과 100만개의 헌법전을 목도한다. 그것은 저항권이라는 고루한 법용어에 그치지 않는다. 침탈당한 주권을 되찾기 위한 항의의 수준을 넘어 그 주권이 담아내어야 할 내일의 세상을 도모하는 우리 모두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한 외신이 ‘공동통치’(mitregieren)라 이름하였다는 대통령과 그 일행의 막장 스캔들은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암종의 뿌리는 청와대와 고위공무원과 정치권과 검찰과 언론과 재벌, 심지어 학계에까지 펼쳐진 이 땅의 모든 권력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향해 공모하고 담합하여 비선조직으로 국정을 농단하며 세상을 우롱하였다. 샤머니즘이나 말타기와 같은 ‘창조’적 문화는 그로 인한 구정물들이 모여드는 하수구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과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그저 돈이 되고 권력이 부가될 수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이 창조의 이름에 값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작금의 사태는 생각없는 대통령의 작품이자 동시에 그러한 대통령을 간택하고 그를 통해 마지막 금전, 최후의 권세까지도 쥐어짜내는 이 권력연합의 공동작업물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세상은 아귀축생의 본능만이 횡행하는 탐욕국가 그 자체였다.

사실 이런 모습은 1987년의 헌법에 이미 잠재되어 있었다. 당시 치열한 투쟁에 나섰던 대중들이 스스로를 정치주체로 조직하기도 전에 신군부와 3김의 타협에 의해 1987년 헌법이 던져지듯 만들어졌다. 그러기에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운운하면서 국헌수호와 국토보전이라는 최고의 주권적 권한까지 일임해 버린 저 사악한 ‘유신헌법’의 잔재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대통령‘중심’제라는 전대미문의 권력체제를 잔존시킬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가열찬 정치의식에도 불구하고 국민발안이나 국민투표, 국민소환 혹은 납세자의 권리나 지방분권 등 국민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국정운영 주체로 받아들이는 시도조차도 제대로 해볼 수 없었다.

민주화라는 빛 좋은 슬로건과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개살구 같은 단어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언제나 그들의 것이었고, 굴종은 오직 국민에게만 강요되었던 연유도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재벌·대기업과 정치권력이 정경유착의 새로운 끈을 마련하고, 보수언론과 퇴락한 학술계가 뒷받침하는 구도는 이런 대중소외의 전략 속에서 이룩됐다. 광장의 정치를 국가의 정치로 대체하면서 길거리 선남선녀들을 그저 통치의 대상으로, 국가의 타자로 내쳐버림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작금의 스캔들은 이런 권력연합에 압도당한 1987년 헌법 체제가 속으로 곪아 터지면서 드러난 것들이다. 국민을 배제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되는 정치체제가 봉착하게 되는 필연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기에 “국정에서 손 떼라”라는 구호는 사태의 본질에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국헌유린 행위에 대한 응징에 현저히 못 미친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의 독직·부정행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시스템과 그것을 이용하거나 방조·방임하면서 좀비적 탐욕에 몰두한 이 국가체제를 교정해 나가는 데 아무런 방책도 되지 못한다.

100만개의 촛불은 가장 엄중한 응징이자 최선의 대안이다. 동시에 100만개의 촛불은 ‘그들의 정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정치’를 간절히 요청한다. 그것은 비선으로 해체되어버린 대통령직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고, 사적 탐욕으로 유린된 정책과정들을 합법성과 민주성과 책임성을 갖춘 정상국가로 되돌려 놓자는 국민적 명령이다. 그뿐 아니다. 국가의 최중심에 우리의 함성이 자리하게끔 하는 것, 그래서 1987년의 오류를 딛고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주체로 곧추서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100만개의 촛불은 새로운 헌법명령으로 자리 잡았다. 이 촛불들은 광장에서 국가로 넘어간 우리들의 다양한 주권들을 다시금 광장으로 소환한다. 여기서 헌법개정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헌법의 본체를 구성하고, 헌법이 세상에 명령하도록 하는 주체의 지위를 우리가 되찾아내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들이 독점하고 있던 헌법을, 그들이 전횡하던 국가권력을, 이제는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의 것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촛불들은 그 자체가 헌법이 된다. 현행 헌법이 놓치고 있었기에 스스로가 내파될 수밖에 없었던 이 옹졸한 국가체제를 이제 우리의 헌법으로 대체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에야 비로소 민주공화국은 현실에서 그 값을 하게 된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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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12일은 시민혁명의 날이었다. 서울 도심을 밝힌 100만 평화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퇴진이 시민의 명령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를 넘어 “이게 민심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주말 촛불집회는 규모로도, 내용으로도 역사에 남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가족이나 연인, 중고생 등 참가자 범위가 넓어졌고 시위는 축제를 방불케 했다. 박 대통령의 출신 고교인 성심여고 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선배님 같은 후배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 길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도 휴대전화 손전등을 비추며 긁어냈다.

2016 민중총궐기 대규모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정지윤기자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재외 교포들도 같은 시간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많은 참가자들이 “집회에 처음 나왔다”고 했다. 국가의 기본을 무너뜨린 데 대해 남녀, 세대, 지역, 이념을 떠나 모든 시민이 분노했다. 박 대통령이 진정한 국민대통합을 이뤄냈다는 조롱은 웃을 수만은 없는 역설이다. 법원은 청와대 지근거리인 율곡로까지의 행진을 처음 허용하며 집회권을 보장했고, 경찰도 시민들과의 충돌을 피하며 안전관리에 힘썼다. 한국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100만 촛불에 담긴 분노를 보고도 여전히 미몽 상태에 빠져 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대통령께서는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지금 대통령으로서 무슨 역할을 더 할 것이며, 고심을 하고 말고 할 게 무엇이 있는가. 대통령은 시민들의 저항 수위에 따라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며 찔끔 사과와 꼼수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민심은 더욱 차갑게 돌아섰다는 걸 시민의 촛불로 입증했다.

100만 촛불에서 확인된 민심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단 하루, 한 시간도 박 대통령의 시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박 대통령은 당연히 물러나야 하며 그 길만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란 것이다. 1년3개월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는 것은 물론 2선에 머문다는 것 자체도 나라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무엇을 한들 믿지 못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문장은 누가 써주었는지 의심하는 게 시민 정서다.

국정 정상화 운운하는 대목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지난 4년간 시민들이 맡긴 권력을 개인에게 넘겨 연설문 작성부터 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꼭두각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미 국정은 비정상이었고 대통령은 없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집권당이라는 새누리당도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말로만 촛불 민심을 준엄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니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당뿐 아니라 청와대, 정부, 검찰 내 최순실 부역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박 대통령의 퇴진은 혼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다. 헌법과 국가, 정의와 역사,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촛불 민심은 대통령 퇴진을 넘어 우리 사회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열망을 담고 있다. 촛불은 대통령 퇴진 요구로 시작했지만 촛불의 종착지는 새로운 체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로 향할 것이다.

4·19혁명부터 6월항쟁까지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되살려온 주인공들은 항상 시민이었다. 시민들이 있었기에 헌정을 유린한 어떤 독재 치하에서도 이 나라를 지탱해올 수 있었다. 시민들은 또다시 민주공화국을 복원시키고 헌법 제1조에 따라 국민이 주인인 시민권력 시대를 열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나라를 ‘비선 놀이터’로 만들고 국정을 망가뜨린 벌을 스스로 청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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