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촛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11 [백승찬의 우회도로]사이다는 없다
  2. 2017.01.03 증오로 하나 된 세계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뒤 국회에서 탄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분노한 10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전국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박근혜 결사 옹위’를 주장하는 ‘맞불 시위’가 등장하긴 했지만, 거센 분노의 흐름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부패한 지도자를 거의 축출한 작금의 상황은 시쳇말로 ‘사이다’이다. 이제 시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 계기가 마련됐으니,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12일 개봉하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명박 정권 당시 YTN, MBC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거나, 편향적인 보도와 인사에 항의하거나, 그도 아니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이후 7년간 겪었던 일들을 다뤘다. 해직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두 달 후면 복직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1심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끈질기게 소송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복직된 이도 있지만, 몇몇은 끝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거대 언론사들은 기나긴 송사를 통해 해고의 정당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해직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7년 세월 동안 언론사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다. 초기엔 해직 언론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던 여론도 조금씩 식어갔다. 심지어 해직 언론인들이 모두 복직된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잊혀진다는 건 힘들고 서글픈 일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파괴된다. 평소 온화한 가장이었던 조승호 YTN 기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한 일로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용마 MBC 기자는 암과 싸우고 있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조승호 기자는 무박 2일로 100㎞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박성제 MBC 기자는 취미였던 스피커 제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해결된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도 아닌 문제들 때문에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탄핵 정국은 저널리즘의 승리라는 분석이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대통령과 측근, 비선 인사들의 비리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단독’이란 말머리를 붙인 기사들이 각 언론사에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제작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저널리즘에 대한 최근의 상찬이 “불편하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앞서 권력을 비판했던 해직 언론인들은 복직되지 않았고, 이들을 거리로 내쫓은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피해자들에게 아직 ‘사이다’는 돌아가지 않았다.

어지러운 판국일수록 쾌도난마의 언변, 일도양단의 해결책이 환호를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도 그런 정치인, 논객이 인기를 끈다. 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사이다’의 원조였다.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끈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을 담아냈다. 당시 유세 장면을 보면 노무현은 근래 보기 드문 탁월한 대중연설가였음을 알 수 있다. 대규모 군중 앞에서도, 골목길의 소규모 유세에서도 그는 두루 강점을 보였다. 그의 말은 논리와 감정을 동시에 자극했으며, 인간적인 매력까지 담아냈다.

그런 노무현조차 집권 이후엔 이런저런 장애물에 부딪혀 뜻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서거 5개월 전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와 가진 마지막 인터뷰가 최근 뒤늦게 공개됐다. 자신의 임기를 솔직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그는 “(역사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확고한 비전과 추진력, 의지를 가진 정치인에게조차 개혁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모델로 한 영화다. 현실의 조희팔은 수조원의 피해액을 남긴 채 죽었지만(혹은 사라졌지만), 영화 속 진현필(이병헌)은 시원하게 응징당한다. 진현필의 정·관계 로비 장부를 입수한 강직한 경찰 김재명(강동원)은 대규모 수사팀을 이끌고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한다. 개봉 이후 3주 만에 650만 관객이 이 속 시원한 엔딩에 박수를 보냈다. 현실이 <마스터> 같다면 좋겠지만, 실제론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 가까울 것이다. 지루하고 지지부진하고 답답하다.

개혁이란 살림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살림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난다. 안 하기 시작하면 집안꼴이 엉망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지겨운 살림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이제 지겨운 일을 꾸준히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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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되던 날, 인터넷에는 ‘6자회담 가상도’라는 그림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합리적 해법이 되어야 할 6자회담의 참석자들을 사진과 함께 올린 것인데,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모아놓고 보면 한숨이 나온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 그리고 박근혜. 시진핑 정도가 예외랄까, 도무지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심지어 이 맥락에서는 아베가 몹시 멀쩡해 보인다는 평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들이 모여서 회담을 한다면 북핵 문제의 합리적 해법은 고사하고 당장 3차대전이라도 시작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이건 6자회담 참가국만의 일이 아니다. 히틀러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는 유럽 최초의 극우 대통령을 뽑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2차대전 이후 나치의 잔당들이 만든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대선후보 노르베르트 호퍼가 작년 4월 대선에서 1위 당선자를 0.6% 차이로 추격했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채 쓸어내리기도 전에 부정투표 논란이 불거졌고 대법원은 재투표를 결정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작년 12월4일 이루어진 재투표 직전까지 호퍼는 여론조사에서 계속 앞서갔고 당선이 확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 재투표에서 경쟁자인 판 데어 벨렌이 이긴 것은 다행스러운 이변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의원내각제인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은 명예직에 가깝고 실제 권력은 총리에게 주어진다. 호퍼는 자유당의 진짜 실세인 슈트라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인데, 현재의 정당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2018년 총선에서 슈트라헤는 오스트리아의 총리가 될 것이다.

영국은 이미 브렉시트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그 결정의 유일한 승자는 유럽연합(EU) 제재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한 러시아뿐이다. 프랑스는 어떤가. 올해 4월로 예정된 대선 가도에서 현재 1위를 달리는 후보는 역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마담 프렉시트”라고 부른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도 EU에서 탈퇴하겠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의 호퍼가 “오엑시트”를 내세웠던 것은 물론이다.

세계는 오바마를 잃었지만 그래도 아직 메르켈이 있지 않으냐고? 하기야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가 하도 엉망으로 돌아가니 메르켈이 4선을 고민한다는 보도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작년 9월 지방선거에서 메르켈의 기민당은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에 메르켈 본인의 지역구를 내주어야 했다. 올가을 치러질 총선에서 독일은 극우정당의 연방하원 입성을 허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희망은 연대와 관용의 복지선진국 스웨덴일 터.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나치주의와 연계된 극우정당 스웨덴 민주당의 지지율이 25%를 넘어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불과 5년 전 이 정당의 지지율은 5%였다.

세계가 증오의 정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증오로 하나 된 세계’라 해도 손색이 없을 판이다. 유럽에서 퍼지는 증오의 큰 원인은 난민 문제인데, 난민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 헝가리 같은 나라도 장벽을 쌓고 있고 몇몇 나라들은 기독교도만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했다. 하기야 난민이 아예 없는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범죄와의 전쟁이란 미명하에 자국민을 죽임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기술의 변화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글로벌리제이션으로 그나마 있는 일자리는 다른 나라로 옮겨가거나 혹은 이민자들이 뺏어간다는 것이 증오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논리이다. 실제로는 이민자들이 빼앗아가는 일자리는 미미하거나 혹은 자국민들이 채우지 않는 일자리를 채운다는 연구결과는 부풀려진 증오 앞에 별 힘을 쓰지 못한다.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질적일수록, 그런 사회에 소수자 집단의 유입속도가 빠를수록 증오는 커지고 거기에 비례해서 극우정당 득표율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한국은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그게 왜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수십년간 반복 주입되어온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원의 동질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지금은 조선족과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북한이탈 주민에 한정되어 있지만 통일이 가시화되기라도 한다면 소수자 집단의 유입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증오가 폭발하고 극우정치가 판을 칠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일부 학자들은 막스 베버 이후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이성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바야흐로 광기의 시대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1000만 촛불로 열린 광장의 결실이 대선 결과로만 판단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광기의 시대에도 온전히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이성과 관용의 제도화가 그 결실이 되어야 한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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