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이 5·18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조작·왜곡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 의혹 등을 조사 중인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85년 구성된 ‘80위원회’ 등을 통해 5·18 관련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그 진상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5·18 당시 출동한 군인이 1981년 작성한 ‘체험 수기’에는 “계엄군이 ‘무릎 쏴’ 자세로 집단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있지만, 1988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체험 수기에는 이런 내용이 누락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특조위가 발굴한 1985년 6월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를 보면 당시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운영됐다.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이 위원장을 맡고 청와대와 내무부·법무부·국방부·문공부·치안본부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이 위원회는 산하에 ‘80위원회’를 두고 5·18 관련 백서 발간 업무를 진행했는데,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2국장이 이를 맡았다고 한다. 80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과 백서의 유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안기부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인 장세동, 총리가 직전 안기부장이던 노신영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어떤 일을 꾸몄을지 짐작이 간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그간 “무장한 시민들이 먼저 총을 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거짓으로 드러났다. 계엄군은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한 바 있다. 집단발포 이전 5월21일 오전 8시쯤 전남 나주 반남지서에서 카빈총 3정과 실탄 270발을 탈취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치안본부의 전남도경 감찰기록을 보면 발포 전에 무기를 빼앗긴 경찰관서는 없었다. 신군부가 오전 8시 총과 실탄을 탈취당했다고 주장한 반남지서에서는 오후 5시40분 카빈총 35정을 빼앗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건 발생 37년이 지났다. 폭도로 불렸던 시민들은 누명을 벗었고, 그들이 묻힌 망월동 공동 묘지는 국립민주묘지가 됐다. 그러나 학살자들은 5·18을 여전히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헬기 사격, 전투기 대기, 집단 암매장 등의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5·18 진상규명은 계속돼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상황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넘어넘어)를 읽다가 눈물을 쏟았다. <넘어넘어>는 1985년 출판되자마자 판매금지됐으나 당시 시민·학생들이 몰래 복사해서 돌려 읽던 ‘지하의 베스트셀러’였다. 얼마 전 개정판이 나온 것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중학생과 고등학생들까지 계엄군에 희생당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그냥 철딱서니 없이 구경만 하는 학생이었다. 이후 역사의 공간에 있던 5·18이 다시 ‘현재’로 소환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죄책감이다.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쳐 오랫동안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수치심은 ‘능력 없음’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뭔가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절망하고 자책한다. 죄책감은 ‘용기 없음’에 대한 것이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 현장과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 차원을 넘어서더라도 동료와 역사에 대한 빚진 마음이 남을 수 있다. 이건 부채감이 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과 황석영도 5·18에 부채감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월 광주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의 민주화운동에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강력하게 진압했던 것은 공포심을 조장하여 시위를 포기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현장에서 가공할 폭력성을 목격한 시민들은 경악했다. 진압봉으로 머리를 후려갈기고 말리는 노인까지 구타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영문도 모른 채 공수부대에 폭행당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다친 시민을 병원으로 싣고가는 택시운전사가 “사람이 죽어가는데 병원으로 먼저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차 유리를 깨고 개머리판과 진압봉으로 기사를 폭행했다.

‘30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알몸으로 붙잡혀 기합을 받고 있었다. (중략) 이들이 조금이라도 구령을 따라 하지 않거나 동작을 느리게 할 경우 몽둥이가 가차 없이 날아갔다. 특히 여성들의 곤욕스러움은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넘어넘어)

최정운 교수에 따르면 ‘광주는 폭력극장’이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은 당하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오월의 사회과학)이었다.

광주시민들도 처음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공포심은 동료 시민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데 보고만 있었다는 수치심에 의해 약화됐고, 이 수치심은 인간으로서 참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분노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졌다. 학원의 셔터문을 내려 겨우 빠져나올 수 있게 해놓고 기어나오는 학원생들을 진압봉으로 내리치던 모습을 보던 YWCA 신협 직원 박용준은 그때부터 시위에 가담했다. 그는 5월27일 새벽 YWCA에서 진압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건설자재 사업을 하던 박남선(26)은 공수대원이 여고생의 가슴을 대검으로 희롱하는 것을 목격했다. 항의하는 할머니를 군홧발로 걷어차는 걸 보고 항쟁에 뛰어들었고, 나중에는 시민군 상황실장까지 맡았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이렇게 시민들의 항쟁으로 바뀌었다.

공포심과 수치심을 넘어서는 것은 생명과 맞바꿀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포심을 딛고 일어서니 연대감이 작동했다. 주부들은 주먹밥을 해 시민군에게 나눠줬고, 헌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양말 수십 켤레를 가지고 와서 (사망한) 시민의 맨발에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신겨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알려진 바로는 술집 접대부였다고 한다. 그녀는 입관할 때 물을 떠다가 직접 시신의 얼굴들을 정성스레 씻어주기도 했다.’(넘어넘어)

사람들은 역사의 길목, 아니 삶의 모퉁이에서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 부채감 사이를 맴돌면서 고민한다. 어떤 이는 부채감을 느끼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어떤 이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다가 화살을 상대방을 향해 돌리기도 한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됐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5·18이 영화나 책으로 자꾸 소환되는 것은 “부끄럽지는 않은가?”라는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15개 교육청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동안 광주시교육청의 ‘5·18 교육’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인천과 경북을 제외한 15개 시·도 교육감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개최, 5·18 계기교육 지원, 5·18 체험학습, 광주 오월민주강사단 교육, 학생 희생자 추모사업 등을 펴기로 했다. 이들은 또 4·19혁명, 제주 4·3사건, 부마항쟁, 대구 2·28사건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대한 보조교재도 만들기로 했다. 초·중·고교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각 지역 교육청이 시대정신을 받들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동안 5·18 교육은 일부 교육청이나 전교조 중심의 교사들이 계기교육 차원에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5·18 즈음만 되면 일선 교육 현장은 이를 둘러싼 갈등에 휘말려왔다. 무엇보다도 입맛에 따라 5·18을 폄훼·왜곡·축소해온 보수정권 탓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국정 역사교과서 밀어붙이기에 나서면서 국가 스스로가 갈등의 주체가 됐다. 지난 1월 공개된 중·고등 역사, 한국사 교과서는 검정교과서에 비해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기술하고 진상을 축소·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 이상 5·18 교육을 둘러싼 소모전은 사라져야 한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투쟁은 1987년 6월항쟁과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뿌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면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제2호 업무지시를 내려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이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문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잘 읽고 있기 때문이다.

5·18 교육은 민주시민 양성과 한국 민주주의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은 쓸모가 없다. 15개 시·도 교육청의 이번 조치는 향후 교육의 자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아울러 인천과 경북 교육청도 빠른 시일 안에 5·18 교육에 동참하길 바란다. 교육에 지역차별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5·18에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버지를 잃은 딸과 눈물의 포옹을 했다. 5·18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거명하며 “그들의 헌신을 기리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가슴속에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분노와 슬픔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맞는 심경이 각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염원을 압축한 노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합창단이 부르면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해마다 5·18 기념식은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진보·보수를 떠나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씨, 문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1980년 5월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투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탱하는 근간이었고, 1987년 6월항쟁과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시원(始原)이었다. 광주는 민주의 가치와 인권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다. 문 대통령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처사다. 5·18민주화운동은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완전한 진상규명도 다짐했다. 5·18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것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일 뿐 아니라 정의가 승리하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데도 계엄군 헬기 기총소사, 국가기관의 조직적 왜곡과 날조 등으로 5·18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은폐돼 있다. 지금껏 발포 명령자가 누군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일으킨 폭동’ ‘님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 찬가’라는 따위의 황당한 허위 주장이 난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살의 주범 전두환마저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의 제물”이라며 마음껏 5·18을 능멸했다. 늦었지만 국회와 정치권이 5·18진상규명위원회 구성,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5·18이 박제된 과거가 아님을 웅변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37번째 맞은 행사지만 이날 기념식은 특별했다. 5·18정신을 온전히 승계한 민주정부만이 국민의 생명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민주정부였다면 광주 민주화운동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로 인해 국민도 잃고 권력도 잃었다. 국가가 존재 이유를 잊으면 비극이 발생한다. 5·18은 항상 그 교훈을 일깨운다.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