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에게 C레이션에 대한 기억은 새롭다. ‘국방색’ C레이션 상자의 포장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래서 선우휘는 소설 <불꽃>에서 “어린애 같은 경탄. 원더풀 C레이션”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C레이션은 전쟁 필수품이었다. 황석영은 월남전을 다룬 소설 <탑>에서 “우리는 헬리콥터가 떨군 이틀분의 C레이션과 탄약을 받고, 길게 늘어진 로프에 시체를 달아 매어올렸다”고 했다. C레이션은 미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되는 ‘전투식량’이다. 미군의 전투식량은 크게 A, B, C, D 등 네 가지다. A레이션은 냉장이나 냉동식품으로 현장에서 요리해 제공하는 것. B레이션은 진공포장된 상태에서 현장에서 요리되는 것. C레이션은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것. D레이션은 간식류를 말한다. 이제 C레이션에 대한 열광은 없다. 전투식량에 묻어 있는 과거 향수를 느끼고 싶거나, 별난 맛을 보려는 이들이 찾을 뿐이다.

그런데 전투식량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경주 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북핵 파장까지 겹치며 생존 물품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비상시 행동요령, 생존법 등 정보가 공유되는가 하면 비상식량, 라디오, 휴대용 전등과 같은 재난대비 비상용품 구입이 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재난용품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개그우먼 강유미씨가 유튜브에 올린 ‘전쟁가방 샀어요’라는 동영상은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강씨는 방독면을 쓴 모습과 함께 자신이 구입한 재난용품을 모은 이른바 ‘생존배낭’을 소개했다. 23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배낭에는 진공포장 비빔밥, 미니구급함, 정수필터 등이 들어 있다. 생존배낭은 고열량 비스킷·통조림·생수 등 비상식량과 칼·손전등·라이터와 같은 생활용품, 바람막이·담요 등 보온장구와 조명탄·야광봉과 같은 통신장비로 구성된다. 몇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다양한 상품이 나와 있다.

생존배낭은 오지체험이나 서바이벌체험 등에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 관심을 갖는 실제 상황이 되고 있다.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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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단독·확대 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과 극동지역 개발 등 양국 간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두 정상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했다”고 강조했고, 푸틴 대통령은 “북핵은 압박과 제재만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다. 두 정상 모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반대했지만 해법에서는 차이를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은 다른 때보다 더 주목받았다. 6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의 역할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더불어 대북 국제 제재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원유공급 중단과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등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한·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고 할 것이다. 러시아가 최근 북핵에 대한 개입 수위를 부쩍 높이는 것도 이를 노린 것이다.

북핵 문제를 떠나서도 한·러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경제분야 등에서 협력을 크게 진전시키지 못했다. 러시아의 자원개발을 중심으로 한 협력 방안이 몇 차례 논의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한반도와 러시아 극동지방을 연결하는 남·북·러 3각 협력을 강조했다. 북한을 통한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도입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핵 문제가 풀리면 양국 간 협력 사업이 크게 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침 푸틴 대통령도 신동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미·중·러 등 관련 여러 국가들이 모두 추인해야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사안이다. 러시아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 어제 두 정상의 북핵 발언에서 드러났듯 아직 양국 간 견해 차가 크다. 문 대통령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 협력 요청에 푸틴은 민간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도 북한의 핵개발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통일기반 조성 차원에서라도 한·러관계는 공고히 해야 한다. 북방도서를 놓고 일본과 갈등 중인 러시아로서도 한국과의 유대 강화가 긴요하다. 어제 정상회담이 새로운 한·러관계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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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렸지만 자유한국당은 불참했다. 국회는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고 강력하고 실효적 제재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대북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제1야당이 빠진 ‘반쪽 결의’가 됐다. 그 시간에 한국당은 MBC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에 반발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문재인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음모를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한국당은 “안보 문제만은 초당적으로 임한다”면서 이날 열린 국방위·정보위 등 안보 관련 상임위에 참여하긴 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은 국회를 뛰쳐나와 고용노동부와 대검을 항의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9월4일 (출처: 경향신문DB)

 

지금 우리는 북핵이 턱밑까지 다다른 최악의 안보위기에 처해 있다. 자고 일어나면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더하거나 새로운 방안을 내놓는 등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이 판국에 한국당은 국회 보이콧도 모자라 장외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국민보고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시민의 공감대와는 동떨어진 정략적 이벤트다. 홍준표 대표는 “전대협 주사파, 안보·북핵 경험이 전무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4강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외교수장, 무기 브로커 출신 국방부 장관, 대북 협상만 하던 국정원장 등 이런 참모들이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 간 대북정책은 다를 수 있다. 정부 대응이 잘못됐다면 따질 건 따져야 한다. 하지만 비판도 때가 있다. 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와의 차이를 접어두고 합심협력, 북핵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무슨 호재라도 잡은 양 정치공세의 불쏘시개로 삼아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고 정부 발목이나 잡는 건 책임 있는 정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 정권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분열과 방심이다. 북한 도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도 우리의 단결되고 결연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한 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단합된 모습을 보일 때 민심도 안정될 것이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사명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침 어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각당 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해 회동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야당 대표가 적극 호응, 정쟁을 중단하고 안보위기 극복을 위한 결의를 과시하기 바란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북의 도발을 억제하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건재함을 알리는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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