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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12 모바일 시대의 소장, 그리고 감상

얼마 전 제이지, 마돈나, 다프트 펑크 등 당대의 스타들이 손잡고 새로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놨다. 타이달이라 이름 붙여진 이 서비스는 해당 아티스트의 최신 음원을 들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기존 서비스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고음질 음원도 감상할 수 있다. 기대를 모았던 이 서비스에 대한 반응은 그러나, 영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음악 산업을 주도하는 이들이 모인 ‘어벤져스’임에도 불구하고 타이달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불편하지만 당연한 사실 때문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음반이 가장 비싸고 음원 다운로드가 그 다음, 스트리밍이 가장 저렴하다. 음반은 음악이 담긴 CD알판, 패키지와 케이스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음악을 영구 소유할 수 있으니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물리적 패키지는 없지만 음원 역시 음악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그 다음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반면 스트리밍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소유할 수는 없으니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 요컨대 음악이란 소유와 감상, 두 가지 측면에 의해 가격이 매겨진다.

모바일 시대의 도래는 이 둘의 소비를 양극화시켰다. 과거의 유물로만 여겨졌던 LP는 전체 음악 플랫폼 시장에서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점유율 상승을 보이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LP는 920만장에 이른다. 전년 대비 52%라는 놀라운 상승세다. 이 통계를 발표한 미국의 음반 판매량 집계기관인 닐슨 사운드 스캔이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유의미한 판매량 증가는 없지만 다시 LP를 찍는 뮤지션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재하, 들국화, 김광석 같은 고전부터 김동률, 이적,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3호선 버터플라이 등 동시대 뮤지션들 또한 LP를 발매했다.

LP가 추억의 대상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저장 플랫폼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모든 음악 플랫폼 중 LP만큼 소유의 기쁨을 충족시키는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30×30㎝의 커버가 있고 지름 12인치의 바이닐은 마치 대화면 TV와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음악의 역사에서 LP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에 커버 아트가 가장 발달했던 이유도 이 크기에 있다. 또한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얹어 한 면을 들은 후 다음 면으로 뒤집는 일련의 과정은 음악 감상을 일종의 제의적 가치로 승화시킨다.

보관하기도, 감상하기도 가장 번거로운 장치지만 역으로 소유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역시 소유 기능을 하는 CD와 음원 다운로드의 미국 내 판매량이 2014년 전년 대비 각각 9%, 12%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소유로서의 음악 플랫폼이 LP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LP판 (출처 : 경향DB)


하지만 LP의 시장 점유율은 아직 6%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명 발전 과정과 마찬가지로 음악 시장의 논리 역시 편의성에 기대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2014년 판매량이 전년 대비 54%라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 것이 단적인 증거다. 모바일 시대에 ‘음악의 소유’라는 개념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수만권의 책이 소장된 도서관을 갖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이 편리성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21세기 초 애플이 주도한 다운로드 시장에서는 음반과 음원의 가격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정책은 하나의 표준이 되어 국내 음악 관계자들이 음원 유통사를 대상으로 벌여왔던 음원 가격 정상화 투쟁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몇 천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위인 스포티파이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도 음악 감상이 가능한 프리미엄 버전이 고작 9.99달러다. 유료 결제 대신 광고를 듣는 버전은 심지어 무료다. 소유를 위해 필요한 공간(음반 수납장이건 하드 디스크건)은 사라지고 모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데, 그 비용은 한없이 저렴해진 것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인기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자신의 음악을 빼버리며 ‘스트리밍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도 여기 있다.

타이달이 보여주듯, 스트리밍이 대세가 될수록 음악의 가치는 내려간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음악의 값을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매기는 건 아날로그 시대나 디지털 시대 초기까지의 패러다임일 것이다. 더 이상 ‘소유로서의 음악’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진 지금, 음악의 값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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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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