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PD, 아나운서, 리포터, 미술음악치료사. 모두 전문 프리랜서 직업들이다. 언론에서 프리랜서는 주로 유명인사들의 사례가 소개된다. 무엇보다 전문성이나 창의성을 다루지만 고소득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영화나 방송에서 프리랜서 직업은 커피 전문점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노트북 컴퓨터로 일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일은 밝기만 한 것일까. 또한 프리랜서는 좋은 일자리(decent work)의 미래상일까.

프리랜서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회사 직원이 아니다. 비용은 ‘인건비’가 아니라 ‘제작비’로 나간다. 그러니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건강검진도 없다. 당연히 연차휴가도 없다. 프리랜서는 회사나 고용주들이 대신 지급하는 형태로 모든 세금을 내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누리는 혜택은 받지 못한다. 소득 예측도 어렵고 변동성도 심하다. 합리적인 계약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일하는 곳에서는 신분증이 아니라 출입증을 받는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 불과하다.

국내외 통계에서 프리랜서는 취업자의 약 5% 남짓 된다. 적지 않은 규모다. 문제는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모호한 고용형태다. 프리랜서(Freelancer)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독립계약자’나 자영업자로 불린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주로 ‘자유직업인’으로 지칭된다. 프리랜서는 이미 기존 노동자와는 구분되는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고착화된 지 오래다. 명칭상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순간,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의 미비는 고용의 왜곡을 초래한다.

최근 ㄱ방송사 프리랜서와 대화를 하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화가 났다. 그녀에게는 1년에 3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유급이 아닌 무급이다. 그런데도 다행이라고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나, 취업 때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삶 속에 ‘휴가’는 낯선 단어였다. 휴가는 곧 소득의 단절, 경제활동의 단절을 의미한다. 1주일에 6일 출근하면서 고작 주급 4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사용하는 휴가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소중한 3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프리랜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와의 차별은 마지막 남은 자존감조차 상실케 한다. 야간이나 주말 혹은 명절 근무는 모두 프리랜서의 몫이다. 싫다고 할 수도 없다. 봄·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 자칫 실업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고용불안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회사 인력이 아닌자. 한마디로 회사의 편의대로 쓰고 필요 없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일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막막해졌다.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도 이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고용’에 관심을 가질 시기다. 지난 4월15일 미국 뉴욕시는 ‘프리랜서보호법’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서면계약, 임금 적시 지급, 보복으로부터의 자유,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와 법률 서비스 등이다. 법의 취지는 “신분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프리랜서에게 건강보험과 퇴직연금 혜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유럽의 몇몇 협회들은 프리랜서 수익의 일정 금액을 상호부조 성격으로 공제하기도 한다. 프리랜서 재교육 비용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 최근 국내에서도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아직은 소수이나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프리랜서에게도 일터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MBC와 KBS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파업이 마무리되면 작가나 리포터 등 내부 구성원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결방으로 급여를 받지 못한 프리랜서에게 최소한의 휴업수당이라도 지급하면 어떨까. 그 정도의 작은 희망을 기대해 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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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정기국회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6일 의원총회 뒤 북핵 대책을 주제로 안보토론회를 열었다. 북한의 계속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당내에 ‘북핵위기대응특위’도 구성했다. 오후에는 의원 70여명이 전방의 해병대를 찾아 북한 핵실험 도발을 규탄했다.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이유로 국회를 뛰쳐나왔지만, 장외에서 안보정당의 잰걸음을 보인 것이다.

한국당은 평소 안보 수호 세력을 강조해온 보수정당이자 제1야당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초유의 안보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위기 대응에 앞장서야 할 입장이다. 초당적 안보협력은 한국당이 여당 시절 틈만 나면 주문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당은 어제도 그제도 국회를 외면하고 장외로 나갔다. 한국당은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듯하다.

4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 등에 항의하며 국회 보이콧 시위를 하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그렇게 감싸고 돌던 MBC 김장겸 사장은 결국 노동청에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고 돌아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MBC는 왜곡보도에 반발하는 기자·PD 10명을 해고하고 71명 징계, 187명을 부당 전보했다. 악덕 기업주도 감히 엄두내지 못할 악질적인 부당노동행위다. 김 사장으로선 사법기관의 정당한 법집행을 더 이상 피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김장겸 지키기’에 나선 한국당으로서는 정기국회를 보이콧하며 끌어다붙인 구차한 핑곗거리조차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이번 주말 서울 강남에서 대규모 대국민보고대회를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2005년 사학법 개정 반대 투쟁 이후 12년 만의 장외집회다. 홍준표 대표는 “우리가 장외투쟁을 하는 것은 야성(野性)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단련을 해야 하는 그런 시점”이라고 했다. 한국당 의원들의 야성을 키우는 데 안보·민생이 근육강화제로 쓰이는 꼴이다.

야당의 장외투쟁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여당에 저항할 마땅한 방법이 없을 때 시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소야대 국회다. 진정 공영방송이 걱정된다면 얼마든지 방송법을 보완해 방송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 안보 대응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에서 정부·여당을 질타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당이 바깥으로 돌며 하는 일은 안보 강화가 아닌 불안 조장이다. 시민을 안심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부족한 상황에 안보 협치는커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이렇게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일도 없다. 시민들은 안보마저 정쟁에 이용하는 제1야당에 분노하고 있다. 더는 한국당의 생떼를 받아줄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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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뒤 국회에서 탄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분노한 10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전국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박근혜 결사 옹위’를 주장하는 ‘맞불 시위’가 등장하긴 했지만, 거센 분노의 흐름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부패한 지도자를 거의 축출한 작금의 상황은 시쳇말로 ‘사이다’이다. 이제 시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 계기가 마련됐으니,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12일 개봉하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명박 정권 당시 YTN, MBC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거나, 편향적인 보도와 인사에 항의하거나, 그도 아니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이후 7년간 겪었던 일들을 다뤘다. 해직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두 달 후면 복직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1심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끈질기게 소송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복직된 이도 있지만, 몇몇은 끝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거대 언론사들은 기나긴 송사를 통해 해고의 정당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해직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7년 세월 동안 언론사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다. 초기엔 해직 언론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던 여론도 조금씩 식어갔다. 심지어 해직 언론인들이 모두 복직된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잊혀진다는 건 힘들고 서글픈 일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파괴된다. 평소 온화한 가장이었던 조승호 YTN 기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한 일로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용마 MBC 기자는 암과 싸우고 있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조승호 기자는 무박 2일로 100㎞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박성제 MBC 기자는 취미였던 스피커 제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해결된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도 아닌 문제들 때문에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탄핵 정국은 저널리즘의 승리라는 분석이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대통령과 측근, 비선 인사들의 비리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단독’이란 말머리를 붙인 기사들이 각 언론사에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제작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저널리즘에 대한 최근의 상찬이 “불편하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앞서 권력을 비판했던 해직 언론인들은 복직되지 않았고, 이들을 거리로 내쫓은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피해자들에게 아직 ‘사이다’는 돌아가지 않았다.

어지러운 판국일수록 쾌도난마의 언변, 일도양단의 해결책이 환호를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도 그런 정치인, 논객이 인기를 끈다. 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사이다’의 원조였다.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끈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을 담아냈다. 당시 유세 장면을 보면 노무현은 근래 보기 드문 탁월한 대중연설가였음을 알 수 있다. 대규모 군중 앞에서도, 골목길의 소규모 유세에서도 그는 두루 강점을 보였다. 그의 말은 논리와 감정을 동시에 자극했으며, 인간적인 매력까지 담아냈다.

그런 노무현조차 집권 이후엔 이런저런 장애물에 부딪혀 뜻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서거 5개월 전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와 가진 마지막 인터뷰가 최근 뒤늦게 공개됐다. 자신의 임기를 솔직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그는 “(역사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확고한 비전과 추진력, 의지를 가진 정치인에게조차 개혁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모델로 한 영화다. 현실의 조희팔은 수조원의 피해액을 남긴 채 죽었지만(혹은 사라졌지만), 영화 속 진현필(이병헌)은 시원하게 응징당한다. 진현필의 정·관계 로비 장부를 입수한 강직한 경찰 김재명(강동원)은 대규모 수사팀을 이끌고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한다. 개봉 이후 3주 만에 650만 관객이 이 속 시원한 엔딩에 박수를 보냈다. 현실이 <마스터> 같다면 좋겠지만, 실제론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 가까울 것이다. 지루하고 지지부진하고 답답하다.

개혁이란 살림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살림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난다. 안 하기 시작하면 집안꼴이 엉망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지겨운 살림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이제 지겨운 일을 꾸준히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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