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닐 때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오래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배경은 뉴욕시,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에 회부된 소년에 대한 배심원 합의가 진행 중이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 합의를 끌어내서 그 결과를 판사에게 알려주면 된다. 배심원들은 유죄냐 아니냐만 결정할 수 있다.

판사는 만약 유죄 합의를 이끌어낼 경우 소년에 대해 사형을 언도하겠다고 귀띔한다. 배심원들은 최종 합의를 이끌어낼 때까지 밀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첫 배심원 투표 결과는 무죄 1 대 유죄 11. 모든 배심원이 유죄를 생각하는 가운데 무죄라고 손을 든 배심원은 끊임없이 사건의 면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것을 주장한다. 어떤 배심원은 야구 보러 빨리 경기장에 가고 싶어 평결을 빨리 끝내자고 하고, 또 누군가는 생떼를 쓰고 악만 지른다. 주인공은 “꼭 그렇다고 확신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도 생각해 봅시다” 하고 설득을 멈추지 않는다.

배심원들은 처음의 대세를 뒤집고 무죄 12명으로 합의를 해낸다. 개개인들이 합리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 의견을 내지만, 누군가는 대세가 기울기 때문에 편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몇 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내고 ‘합리적 의심’을 통해 합의를 해낸다. 영화는 우리의 통념들에 대해서 반문한다. “딱 보면 뻔하다”는 말 대신 미묘하게 어그러진 사실의 맥락과 조각들을 끊임없이 맞추려는 시도가 억울한 사형집행을 막아낸 것이다.

최근 특정인에 대한 ‘폭로’와 폭로에 뒤따르는 SNS상의 ‘공론화’, 공론화에 이은 ‘인신공격’이 유행병이 됐다. 지난달 건대입구역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엄마와 같이 탑승했던 7살 어린이가 엄마 없이 먼저 내리고 버스가 떠나가버렸다. 엄마는 300m 떨어진 곳에서 내려서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기사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승객을 내릴 수 없었다는 원칙을 지켰다. 사건 직후 누리꾼 한 명이 본인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사건을 폭로한다. ‘공감한’ 누리꾼들은 사건을 SNS를 통해 ‘공론화’했고,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의 ‘단죄’가 버스기사에게 쏟아졌다. “중년 남성 기사가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했다”는 호소가 진실을 덮었다. 적지 않은 미디어가 SNS와 폭로자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이른바 ‘팝콘 튀기기’를 했다.

사실관계가 파악된 직후 SNS와 언론 등에서 태세전환이 벌어졌다. 버스기사를 비난하던 분위기는 뒤바뀌어 아이 엄마를 ‘맘충’이라며 비난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처음 폭로를 한 누리꾼은 사과를 약속했지만 곧 조용히 사라졌다. 버스기사와 아이 엄마의 가슴에만 멍이 들었다. 모두의 확신은 근거가 부족했지만 단정은 무차별적 공격으로 이어졌다. 영화 <김광석> 개봉 후에 벌어지는 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가 가해자로 의심하는 서해순이 법의학자들의 판단처럼 무죄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책임을 묻고 사건을 정리할까?

모든 사람들은 일정한 편견을 갖고 있고, 온전한 정보도 갖고 있기 어렵다. 영화 속 배심원들이 효율적인 다수결 투표가 아닌 지루한 만장일치 합의를 하는 것은, 서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꺼내 토론하면서 불완전한 개인의 한계를 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답답한 것은 어떤 이슈가 벌어질 때마다 보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실력이다. 시민들이 납득하는 공론을 만드는 기제가 미흡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함께 모여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합의해 해결해본 적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부터 ‘모둠 수업’은 합의하기보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말한 대로 흘러간다.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무임승차’만을 비난할 뿐이다. 교육학자들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모습을 “개성 있지만 무난한” 사람이라고 정리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싸우면 시시비비를 가려주기보다는 “형(언니)이니까 양보하라”며 혹은 “동생은 형(언니) 말 듣는 거야” 하고 혼을 낸다. 직장의 회의에서도 결론이 정해지면 맞춰 따르는 데에 익숙하다. ‘송곳’ 같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지만, “나대지 말라”는 경고를 듣거나, 경고를 무시하면 왕따를 당한다. 조정과 협상의 경험이 부족하고 절차는 겉돈다.

한국에서 억울한 사람들의 선택지는 개인적 보복이 아닌 이상 두 가지다. 단체행동으로 몰아치거나, “법대로” 해결하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소비자운동 등은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단체협상을 통해 엇갈리는 의견을 검토하며 문제를 푸는 과정을 가졌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의 흐름은 검증과 합의의 단계, 협상의 언어를 생략한다. 혹여 폭로 대상인 개인이 코너에 몰려 실언이라도 하면 실언은 ‘팩트’가 되어 온라인 공격의 빌미가 된다. 상황의 맥락, 당사자의 처지 등 현실의 미묘함은 해석 대상에서 제외된다. 개인들은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문제해결을 포기하고 명예훼손과 무고죄 등의 법적 구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익명성에 기댄 공격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교실에서 왕따 주동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처럼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공론화’라는 단어는 공론을 모아내는 것보다 온라인 부족들이 특정 목표물을 폭격하자는 신호이기 일쑤다. 무리의 확증편향이 극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론화의 대의가 옳다 한들 이는 문제해결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판단을 정지한 채, 영화 속 배심원들처럼 적절한 절차를 통해 충분히 의견을 교류하고 합의해야 ‘공론’이 안착한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토론회처럼 이해당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교류해야 합의를 만들어낼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 내용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지식인까지 나서 온라인의 ‘단죄’라는 광란의 ‘도가니’에 단편적인 판단으로 기름을 끼얹으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시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공론을 모으는 합의의 경험이 누적된 게 민주주의 사회의 실력이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꼭 그렇다고 확신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도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을 하는 의인들의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듣고 싶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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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13일 댄 베이커 수석편집국장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사 기자들의 트위터·페이스북 사용 안내다. 핵심 사항 첫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기자들은 당파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관점을 고취하고,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뉴욕타임스의 명성을 깎아먹는 어떠한 공격적인 코멘트를 해선 안된다. 뉴욕타임스가 객관적으로 다루려는 이슈를 두고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언론인 E P 데이비스가 “기자들은 개인 의견이나 언론사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불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게 1884년이다. ‘기자 개인’ 의견 표명 자제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디지털 저널리즘’에서 기자와 소셜미디어는 논쟁적인 사안이다. 언론사들은 독려하든가 자제시키든가, 또는 둘을 조합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뉴욕타임스가 ‘제한 사항’을 늘린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건 왜일까? 가이드라인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우리 기자들과 에디터들의 트윗은, 비록 트럼프 담당이 아니더라도, 뉴욕타임스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썼다. 베이커가 가이드라인 발표 전날 조지워싱턴대 포럼에서 한 발언에선 더 구체적인 이유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베이커가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절대로 소셜미디어에 말해서는 안된다. 신문의 (비판 보도) 동기가 대통령에 대한 ‘벤데타’(vendetta·보복)가 아니라 ‘건전한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맹렬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는 뉴욕타임스는 몇몇 기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팩트에 근거한 비판 보도나 불편부당 원칙에 흠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뉴욕타임스를 ‘가짜뉴스’를 만드는 곳이라고 여러 차례 비난한 트럼프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이드라인은 뉴미디어와 저널리즘, 표현 자유, 독자 소통, 권력 비판, 진보·보수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 보수 쪽은 공격했다. 미디어리서치 센터 부회장 댄 게이너는 “트위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는데 뉴욕타임스는 이제야 직원들이 멍청하고 좌파적인 것들을 트윗한다는 걸 깨달았나”라고 했다. 보수매체 폭스뉴스가 대표로 지목한 기자는 백악관 담당 글렌 트러시다. 이 매체가 문제 삼은 트윗 하나는 “당신은 인종주의자, 반유태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와 거리 두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상관과 계속 일할 것인가”다.

‘편향’과 ‘정치 의견’의 기준이 무엇인지 되묻는 의견이 나온다. 진보 성향의 트위터 이용자는 “기후변화, 편견, 불법이민자 말살에 어떻게 ‘한쪽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나”라며 비판한다.

나는 KBS·MBC 노조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찬성한다. 둘 다 ‘정치 의견’이다. 한국 사회 한쪽에선 ‘편향’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칼럼에 밝히는 것은 괜찮고, SNS에 글을 올리면 안되는 것일까? 한편으론, SNS를 ‘눈팅’만 하고 글을 올리지 않게 된 건 내 의견과 경향신문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시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경향신문 소속이라 팔로한 이들에게 ‘SNS 글은 개인 의견이니 회사 입장과는 무관합니다’라며 무작정 편의를 봐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소속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SNS를 한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SNS에 다시 글을 올린다면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의 16가지 핵심 사항 중 다음을 새기려 한다. “소셜미디어 독자들을 항상 존중하라. 독자의 기사·포스트에 관한 질문이나 비판에 응답하려 한다면, 사려 깊게 하라.”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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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추석을 보내고 나니 한 해가 거의 다 끝나가는 느낌이 벌써 든다. 낮에는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넘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만 들어서도 소매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차다. 떨어지는 은행의 구릿한 냄새들이 영락없는 가을인데 나이가 든 탓일까, 사는 일에만 골몰한 탓일까, 마음에는 가을이 물들지 않는다. 사색의 계절이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는 이야기가 다 무슨 말인가 싶다. 아침 드라마 사이사이로 채널을 바꿔 홈쇼핑을 보면서 올해는 온열매트를 장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다가 과일가게 좌판에 놓인 붉고 말랑한 연시를 보면서도 달콤하겠다는 생각보다 올해 배추 값은 또 얼마나 하려나 아직 한 달도 더 남은 김장철 걱정부터 든다. 친정에서는 김장을 할 때 단맛을 내기 위해 연시를 넣는다. 연시가 한창 나오는 시절에 미리 사서 냉동실에 얼렸다가 김장철에 꺼내어 녹여 쓰는 것이다. 고추는 올해 흉작이라고 했다. 해서 묵은 고추 남은 걸 쓸까 했는데, 언니가 사놓은 것이 있어서 좀 얻어 쓰기로 했다.

이런저런 겨울준비 고민을 벌써 하다 보면 스스로가 낯설고 좀 우습다. 대단한 살림꾼도 아니고, 매사에 대비가 투철한 성격도 아니고, 굳이 구분하자면 개미보다는 베짱이에 가까운 성격인데, 왜 이렇게 느닷없이 사는 일에 몰두하는 걸까 곰곰이 이유를 찾아보니 이게 다 SNS 때문이다 싶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꽤 오래 이용했던 SNS 계정 하나를 닫았던 것이다. 오래전 트위터를 이용하다 그만둔 후로 두 번째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굳이 꼽자면 SNS 소식을 따라가느라 이제 시작된 아이의 사춘기를 놓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많은 시간을 전업주부이자 엄마로 사는 내게 SNS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구이자 세상 그 자체일 때가 많았다. 아무리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아도 따라가지 못하는 소식, 관점 더러는 문화 콘텐츠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하니 내게 SNS를 그만둔다는 건 어떤 면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는 일 같아 좀 비장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특이한 경우인지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사는, 나와 친한 동네 이웃들은 대부분 SNS를 하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SNS상의 지인들만큼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모르는 소식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촛불을 들었고, 그들도 생리대의 안전성 검사를 의심했고, 어금니 아빠의 범죄에 치를 떨었다.

물론 그럼에도 두 개의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게 다른 지점이 있었다. 비슷하나 다른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SNS를 한다는 건 그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산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면 가끔 어느 세상이 진짜인지, 어느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바람이 실제를 바꾸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계정을 닫았는데, 한 세계가 뭉텅이로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한 세계가 남아 있다. 이 아이러니는 아무래도 현실 적응 기간의 감정인 듯 싶다.

대신 비슷한 고민 끝에 SNS 활동을 그만둔 다른 친구와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회귀인류’라는 거창한 이름을 만들고 이름에 어울리는 회귀의 행위가 뭘까 찾다가 고전을 함께 읽기로 했다. 첫 책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들어만 보고 읽지는 않은 책 가운데 동전 던지기 하듯 고른 책이다. 고전을 읽는다 한들 멀리 회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불현듯 같은 혹은 다른 SNS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앞으로만 쭉 달리는 것보다 왔던 길 다시 돌아가서 되짚어 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중략)/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문에 쓰인 글이다. 나 자신을 위하여 종이 울릴 때, 나는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가을을 아주 타지 않는 건 아닌 듯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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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인기 예능프로그램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방송인 김구라씨와 김생민씨를 놓고 ‘서민 비하’ 논란이 뜨겁다. 최근 ‘생활비 절약’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해 인기를 얻고 있는 김생민씨(44)에 대해 김구라씨(47)가 ‘짠돌이’ ‘자린고비’라는 등의 표현으로 비하했다는 비판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방송은 지난달 30일 방영된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 편이었다. 이날 패널로 초대된 김생민씨 등은 실생활에서의 돈 씀씀이와 절약 습관을 얘기했는데, 김구라씨가 이를 직격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짜다고 철든 건 아니다” “생활습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김생민씨를 비꼬기도 했다.

방영 이후 SNS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김생민씨의 일상이 우리 일상과 흡사한데 그 일상을 조롱거리로 삼는 것이 화가 났다.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그걸로 얻은 수입을 쪼개서 지출하고 저축하는 게 뭐가 웃긴가?”라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은 “ ‘비싼 커피 마시지 마라’ ‘택시 타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시면서 한 푼 두 푼 모으시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며 “김구라씨가 조롱한 건 나와 내 부모, 내 친구들”이라고 했다. 김씨의 발언이 자신의 실제 생활을 폄훼했다고 느낀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제작진을 비롯해 당사자인 두 사람이 모두 사과를 하고 해명을 했지만 쉽사리 화는 삭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김구라씨의 ‘라디오스타 퇴출 요구’ 인터넷 청원까지 했고, 3만명이 넘는 누리꾼이 서명에 나섰다.

논란이 점점 커져 김구라씨에 대한 감정싸움으로 치닫기도 했지만 일부에선 제도와 사회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트위터리안 ‘rbe****’은 “근본적으로 너의 인생이 안 풀리는 게 커피값을 안 아껴서가 아니라 낮은 최저임금과 저질 노동문화 때문이라는 말도 해야 한다”고 적었다. ‘guin****’은 “사회가 성실하게 하루를 채워나가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해줬으면 좋겠다. 근면성실한 삶을 사는 서민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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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1일 유명 영화감독과 배우의 스캔들이 한 매체 보도로 불거졌을 때, 그날 하루 네이버에 오른 관련 기사는 403건이다. 경향신문은 지면에도 온라인에도 내보내지 않았다. 나와 편집자는 온라인에 ‘무엇을 쓸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사안을 두고 의견을 나누다  “쓰지 맙시다” 할 때가 많다.

대량생산체제의 한국 온라인 뉴스시장에서 ‘우라까이’(베껴쓰기를 가리키는 일본어로 언론계 속어)든 ‘인용보도’든 수분이면 뚝딱 만들어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뷰를 보장하는 뉴스거리를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양적인 트래픽을 유지·상승시키는 것도 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정론을 표방하고, 독자들은 그 실천을 주문한다. 트래픽과 저널리즘의 동시 수행이라는 언뜻 불가능한 과제를 마주한 채 고민할 때가 많다.

경향신문 현장 기자들이 모든 온라인 이슈를 거르기는 힘들다. 온라인에서 불붙는 타지의 단독보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슈를 받을지를 판단하는 건 모바일팀 일이다. 신뢰할 만한 언론사 또는 사람(단체)인가, 단독보도나 주장에 물적 증거가 있는가를 들여다본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쓸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보다 까다롭다.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어떤 소문·의심·비난·주장·추정을 담은 것이라도 기득권을 비판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정의를 구현하는 (듯한) 내용을 두고서다. ‘○○신문·방송이 보도했다’로 내보내곤 했다. 일하면서 찜찜한 부분이었다.

온라인 저널리즘 문제와 대안을 물었을 때, 박재영 고려대 교수가 우려한 부분도 이것이다. “검증하지 않은 센세이셔널한 정보가, 검증한 밋밋한 정보를 몰아내는 경향성이 온라인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 겁니다.” 그는 조기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은 올해 미확인 정보가 전례 없이 온라인을 휘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국 언론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JTBC와 TV조선 등 여러 언론사의 실증 탐사보도는 언론사의 개가였다고 박 교수는 평가한다. 그러나 언론 전반으로 확대해보면, 과가 공을 앞질렀다. 다른 언론사의 단독보도, 유명인의 SNS 발언을 두고 사실 확인과 검증 없이 받아쓰는 ‘카더라’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가 ‘디지털뉴스팀’ ‘온라인뉴스팀’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정보 불충분, 이해집단의 대결구도화, 마구잡이 비판은 각각 오해, 갈등, 냉소를 부추기며 언론을 증오와 독설의 배설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정통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김세은 강원대 교수는 온라인 팀·기자의 과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유혹에서 벗어나라.” 품은 적게 들이면서 트래픽은 많이 뽑을 수 있는 기삿거리에 매달려선 안된다는 말이다. 현장 기자들이 공들여 취재한 기사를 전면에 배치해 승부수를 띄우는 게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검증·확인의 저널리즘을 수호할지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다. 김세은·박재영 두 학자도 참여한 <한국 언론의 품격> 책 머리말엔 “신뢰할 수 있는 뉴스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비틀거린다”는 월터 리프먼(1889~1974)의 말이 적혀 있다. 지난 미 대선 때 페이스북에 트럼프 관련 가짜 기사를 써온 폴 호너라는 사람은 대선이 끝난 뒤 가짜 기사가 널리 퍼진 이유를 두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널리즘의 수행은 언론 몫이자 책임이지만 시민 역할도 중요하다. 다행히 한국엔 언론 비판에 적극적인 시민들이 많다. 언론의 자정 능력은 약하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여러 언론사의 자성은 시민들의 질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대선에서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사실보도 기준을 갖고 언론을 감시·독려해야 할 이유도 여기 있다.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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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시대에 젊은 세대를 붙잡기 위한 언론들의 노력은 힘겹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로 대표되는 이들은 ‘입에 스마트폰을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활자보다 영상에 친숙하고, TV 대신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다.

이대로라면 절대 신문을 읽지 않을 ‘미래의 독자’를 붙잡기 위한 기성 언론들은 머리를 싸맨다. 짧고 재미있는 동영상, ‘바이럴(입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한없이 가벼운 존재’일까.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만든 말레이시아의 영상미디어 ‘레이지(R.age)’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지난 8~1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디지털 미디어 아시아(DMA) 2016’에서 레이지의 이안 이 편집장은 “리얼한 사회적 주제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도달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지는 최근 말레이시아의 아동 성범죄를 다룬 ‘내 휴대폰의 포식자(Predator In My Phone)’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총 21개의 영상 중 일부는 10분을 넘는 긴 동영상이었지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 아동 성범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사회적 캠페인까지 이끌어냈다. 이 편집장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아동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이 없다. 모바일에서 아동 성범죄 반대 버튼을 누르도록 해 수백만개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며 “마우스 클릭으로 참여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은 이미 35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했으며, 한 달 뒤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레이지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청소년들이 앞장서 거리로 나왔다. 지난 19일 촛불은 수능을 끝낸 학생들의 합류로 더 뜨겁게 타올랐다. SNS에 “투표권도 없는 학생들에게 어른이 미안하다”는 기성세대의 ‘반성’이 잇따른다. 이들은 정치적 주체이며, 어른보다 현명하며, 더 빨리 행동하고 있다. 이들을 ‘생각 없다’고 치부한 건 기성세대가 기존의 문법만 고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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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 측근들이 2012년 대선 당시 여론 조작에 관여하고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뒤로는 야당 의원들의 SNS를 감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분야와 영역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최씨 관련 비리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있는 최씨의 태블릿PC 원소유자로 알려진 김한수 청와대 뉴미디어정책실 행정관 등은 지난 대선 기간 중 800여개 유령 계정을 이용해 극우 성향의 선거용 글을 전파했다. 김 행정관의 경우 ‘대박스타일’(@glomex)과 ‘마레이’(@glomex2012) 등 2개 트윗 계정을 활용해 총 580차례 SNS 선거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김 행정관은 한 명이 여러 개의 계정으로 특정 메시지를 확산시킬 때 쓰는 트윗덱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고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글을 퍼 날랐다. 김 행정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같은 방법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JTBC도 박 대통령의 비선 캠프와 인수위원회 SNS홍보팀 출신이 사용하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문제의 채팅방에는 ‘일베’ 등 극우 성향 사이트 게시물과 조회수 등이 실시간으로 보고됐다. 채팅방에는 김 행정관 등 뉴미디어정책실 출신 인사들이 소속돼 있었다. JTBC는 채팅방에서 오간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뉴미디어정책실이 국가정보원의 패킷 감청기를 이용해 야당 의원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글을 실시간으로 살펴봤다는 주장도 있다. 패킷 감청기는 특정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카카오톡 등 그 사람이 쓰는 모든 SNS를 화면에 뜨게 하는 기계다. 사실이라면 최순실 사단이 온라인에서 야당 인사 등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의원들이 카톡방에서 대화하는 모든 것을 청와대가 보고 있다고도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비선 캠프인 ‘삼성동팀’ ‘신사동팀’ ‘논현동팀’을 지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발생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사건 등을 고려하면 최씨가 비선을 통해 여론 조작을 주도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최씨 측이 이렇게 공작정치까지 했다면, 이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였는지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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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한나라당 의원 몇명이 주축이 돼 '불법적 통신 등 특정 요건'에 해당되면 이동통신사를 통해 인터넷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법안을 발의했네요.

[관련기사] 정부·여당, 스마트폰 통한 SNS접속 원천차단 추진

'불법적 통신'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또 실제 법안이 통과될지를 떠나서 이런 통제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국회 홈페이지의 의안정보에 올라온 법안 내용입니다.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2011.11.08 발의)




<제안이유>
최근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모바일시대가 가속화됨에 따라 무선인터넷의 이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기간통신사업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 이에 따라 인터넷 접속역무를 제공하는 기간통신사업자의 중립성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으나, 현행법에는 이와 관련한 규정이 미비한 상황임.
이에 인터넷 접속역무를 제공하는 기간통신사업자의 준수사항을 명시함으로써 인터넷의 개방성과 통신망관리의 중립성을 유지하고, 이용자의 선택권과 통제력, 전기통신사업자간의 경쟁, 자유로운 서비스 혁신의 증진을 꾀하려는 것임.

<주요내용>
가. 인터넷 접속역무의 이용절차에 대한 정보공개 등 기간통신역무 중 인터넷 접속역무를 제공하는 기간통신사업자의 준수사항을 규정함(안 제40조의2제1항 신설).
나. 기간통신사업자는 불법적인 통신 등 특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 합리적인 통신망관리를 위하여 인터넷 접속역무의 제공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함(안 제40조의2제3항 신설).

<발의의원 (장제원 의원 등 11명)

권경석  권영세  박대해  박민식  안효대  유정현  장세환  장제원  정갑윤  최경희  최구식 

P.S 참고로 위의 의원들도 트위터 등 SNS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네요.

대표발의 장제원 @changjewon 
권경석 @kwonkskr  
권영세 @kwon_youngse
박대해  @daehaepark
박민식  @park_minshik
장세환 @jangbi2012 
정갑윤  @kyjung2206
최구식 @ksc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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